1. 두산 유출사건(1991년)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의 구미공업단지 안의 두산전자[1]에서 3월 14일과 4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페놀 30톤과 1.3톤이 낙동강으로 유출된 사건. 페놀원액 저장 탱크에서 베이클라이트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일제강점기의 박가분 납 성분 사건과 함께 두산그룹의 운명을 결정한 사건이기도 하다.
1.1. 전개
유출된 페놀은 대구광역시(당시 대구직할시)의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유입되었다. 이로 인해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를 받자 취수장에서는 원인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다량의 염소 소독제를 투입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는데 페놀은 염소와 반응할 때 클로로페놀이 되면서 독성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구광역시의 수돗물은 페놀로 급속히 오염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페놀은 낙동강을 타고 흘러서 하류의 함안, 밀양 등에서도 검출되었고 급기야 부산광역시(당시 부산직할시)의 상수원에서도 페놀이 검출되어 낙동강 유역 일대가 페놀로 오염되는 사태가 발생했다.1.2. 결과
이 사건으로 대구광역시를 비롯해 낙동강 주변의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두산그룹에 대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고 수돗물 페놀 오염대책 시민단체 협의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두산그룹은 OB맥주를 소유하고 있었고 대구 동구 방촌동에 상당한 규모의 제조공장[3]이 있었던 데다 크라운맥주의 존재감도 미미했기 때문에 당시 대구 사람들에게 맥주=OB였다. 또 OB맥주 외에도 코카콜라를 생산했던 두산음료, 프랑스 다논(현재는 풀무원 계열)과 계약을 맺은 두산종합식품도 있었다.
3월 첫번째 유출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솜방망이 처벌만 받았다. 조업정지 30일 처분을 받고 그마저도 20일 만에 수출과 경제 타격이라는 명분으로 해제해 줬는데 고작 한 달 후인 4월 2차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대구지방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 등 13명이 구속되었고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 조치되었으며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직책에서 사임하고 당시 허남훈 환경처 장관 등이 경질되었다. 이해봉 대구직할시장의 경질설도 돌았으나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노태우 정부 말인 1992년까지 시장으로 재임했다.
그와 함께 수돗물 불신 풍조가 높아져 "소독약 냄새 나는 수돗물을 끓여 먹느니 깨끗한 물을 사 먹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불법 생수 시장[4]과 정수기 사업이 활성화되는 현상을 초래했으며 이후 대구광역시가 추진하려고 했던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도 무산되는 빌미 중 하나가 되었다.[5]
맥주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던 OB맥주는 만년 콩라인이었던 크라운맥주의 추격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 크라운맥주가 하이트를 출시하면서 "깨끗한 물 마케팅"을 전폭으로 전개했고 이는 향후 몇 년간 우위를 점하게 했으며 이 캠페인의 성공으로 나중에는 크라운맥주의 사명까지 하이트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OB가 다시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진로그룹으로부터 카스맥주를 인수한 후다.
이로 인하여 1999년 초에 프로야구팀 OB 베어스도 두산 베어스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당시 코카-콜라를 생산하던 두산식품은 물론이고 우성식품[6], 호남식품, 범양식품[7]도 피해를 입었다. 우성, 호남, 범양도 코카콜라 생산 회사였는데 이 때문에 우성식품은 경남 지역 소매상에 "두산식품은 서울과 강원 제주에만 코카콜라를 공급한다"는 해명문을 붙여 놓기도 했다. 훗날 코카콜라가 위탁체제에서 직영 보틀링 체제로 전환하는 데도 이 사건이 한몫 한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1997년 외환 위기와 두산그룹 3세 형제 내 갈등까지 떠지면서 두산그룹은 존폐 위기에까지 놓였고 결국 OB 맥주를 비롯한 각종 소비재 관련 계열사[8]를 대거 매각하면서 소비재 산업에서 손을 완전히 떼고 2000년대 들어서 인수합병 등을 통해 중공업 분야로 진출해 그룹 전체의 성격을 바꾸었다. 즉, 이 사건은 수십년 동안 이어진 두산그룹의 성격을 완전히 바꿔 버린 사건이기도 하다.
1.3. 기타
- 백괴사전에서는 이 사건에 착안해 대구광역시를 '대구페놀공화국'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대구과학고등학교 지역드립 사건 이후 지역 비하 명칭을 대대적으로 삭제하면서 없어졌다.
- 사고가 일어난 해는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기인 1991년이었는데 사고가 터지고 나서 한 마디의 공식적 사과도 없었다가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인 1994년 1월 15일에야 이회창 당시 국무총리에게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문이 나왔다고 한다. 다만 이때의 사과는 1991년의 사고에 대한 것보다는 1994년에 1월에 또다시 일어난 낙동강 오염 사건에 대한 사과였다. #
- 이 사고가 일어난 후 대구은행에서도 낙동강을 살리자는 취지로 광고를 방영하기도 했다.
- 사건의 원흉인 두산 구미공장은 이후로도 계속 운영되다가 2005년 구조조정으로 폐쇄되었다. #
-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다.
- 아파트404에서 이 사건을 재연했다.
- 이 사건 이후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시작되어 현재까지도 식용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2. 코오롱 유출사건(2008년)
2008년 3월 1일 김천시에 위치한 코오롱 유화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직원 2명 사망, 14명 중경상의 인적 피해가 발생한 사건.3월 2일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소방용수에 섞인 페놀 등의 유독물질이 인근의 낙동강으로 유입된 것이 확인되어 상수원 취수가 중단되면서 구미, 김천의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 ##
화재 진압 과정에서 유독물질이 흘러든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유출 가능성을 지자체에 통보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났다. 코오롱 관계자 1명 구속[9], 3명[10] 불구속 입건으로 수사는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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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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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자제품에 쓰이는 기판을 제작하는 회사로, 현재는 (주)두산 전자BG이다.
[2]
마산시, 현 창원시가 상수도를 낙동강에서 끌어 쓴다.
[3]
이 공장은 이후 물류센터로 쓰이다가 2020년에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방촌역
태왕아너스 아파트가 들어섰다.
[4]
생수, 법적 용어로는 '먹는 샘물'은 당시 한국에서 불법이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때문에 외국인들 대상으로 잠깐 허용한 적이 있으나 올림픽이 끝난 후 다시 불법이 되었다. 이는 먹는 샘물 판매 금지가
행복추구권을 위반한다는
헌법소원 심판 결과가 나온 1994년까지 유지되었다.
[5]
물론 단순히 페놀 유출 사태만 문제가 된 것은 아니고 대구 일대에 널려 있던 염색공단으로 인한 수질오염이 가장 큰 문제였다. 대구광역시는 위천국가산단에 공해 업종을 배제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했으나 끝내 실패했고 20년이 넘은 뒤에야
대구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할 수 있었다.
[6]
삼환그룹 계열. 나중에 계열분리 후
머거본으로 개명.
[7]
훗날 코카콜라 본사가 나머지 회사들을 합병했을 때 인수를 거부하여 1998년에
콜라독립 815라는 독자 상품을 판매했으나 결국 2007년에 파산했고 과채음료 가야농장을 생산하던 계열사 건영식품도 웅진식품에 인수되었다.
[8]
OB맥주, 코카콜라, 다논을 포함해서
코닥필름과
3M,
네슬레도 있었으며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닛테레 계열 방송사의 학원물
오렌지 로드를 수입한 '골든베어 홈비디오'도 있었다. 외식업에도 발을 뻗친 만큼
KFC를 최초로 들여오기도 했고, 심지어
요시노야를 들여와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규동이란 음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9]
반응기 운전 직원, 반응기를 소홀히 관리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
[10]
공장장, 페놀 관리자, 비상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