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BC9B7, #DBC9B7 40%, #DBC9B7 60%, #DBC9B7)"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0; border-radius:5px;" {{{-2 {{{#!folding [ 데뷔 이전 멤버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20%;" {{{#000 {{{#!folding [ Studio Albums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tablewidth=100%> | |||
1969 |
1969 |
1970 |
1971 |
|
1973 |
1975 |
1976 |
1979 |
{{{#!folding [ Live Albums ]
{{{#!folding [ Compilations ]
{{{#!folding [ Singles ]
{{{#!folding [ 관련 문서 ]
}}}}}} ||
Houses of the Holy
|
||||
|
||||
<colbgcolor=#dd6832><colcolor=#fff> 발매일 | 1973년 3월 28일 | |||
녹음일 | 1971년 11월 - 1972년 8월 | |||
장르 | 하드 록, 포크 록, 블루스 록, 프로그레시브 록, 펑크(Funk), 레게 | |||
재생 시간 | 40:57 | |||
곡 수 | 8곡 | |||
프로듀서 | 지미 페이지 | |||
싱글 발매곡 |
Over the Hills and Far Away[1] (1973.05.24,
미국) D’yer Mak’er[2] (1973.09.17, 미국) |
|||
사용 악기 | ||||
스튜디오 | 롤링 스톤스 이동식, 헤들리 그레인지, 스타그루브, 올림픽, 아일랜드 | |||
레이블 | 애틀랜틱 레코드 | |||
앨범 번호 |
Atlantic SD 7255 Atlantic K 50014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트랙 리스트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Side A | |||
<rowcolor=#fff> 트랙 | 곡명 | |||
1 | The Song Remains the Same | ♫ | ||
2 | The Rain Song | ♫ | ||
3 | Over the Hills and Far Away | ♫ | ||
4 | The Crunge | ♫ | ||
Side B | ||||
<rowcolor=#fff> 트랙 | 곡명 | |||
1 | Dancing Days | ♫ | ||
2 | D’yer Mak’er | ♫ | ||
3 | No Quarter | ♫ | ||
4 | The Ocean | ♫ |
[clearfix]
1. 개요
영국의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이 1973년 3월 28일에 발매한 정규 5집이다.2. 상세
Houses of the Holy는 전작의 하드 록을 그대로 계승함과 동시에 약간 앰비언트적이기도 한 프로그레시브 록의 지향성도 드러나 있다. 또한 이 앨범에서 밴드는 레게를 시도하는 등 이전에 시도하지 않았던 여러 장르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힙노시스가 디자인 한 벌거벗은 금발 소녀와 소년이 산을 기어오르는 선정적인 앨범 커버로도 유명하다.로버트 플랜트의 하이 톤 보컬의 최전성기를 보여주는 장엄한 헤비 메탈 곡인 The Song Remains the Same으로 시작해, 킹 크림슨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멜로트론 음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발라드 넘버인 The Rain Song, 괴랄한 드럼 비트가 압도적인[3] 펑크(Funk) 넘버 The Crunge, 레게의 영향이 짙게 드러나는 D’yer Mak’er, Dancing Days 등의 명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동명의 곡은 다음 앨범인 Physical Graffiti에 수록되어 있다.[4]
3. 녹음 배경
하드 록과 헤비 메탈에 초점을 두고 작업한 4집이 어마어마하게 성공을 거두었기에, 밴드는 이번 앨범에서도 전작의 헤비한 하드 록적인 부분을 그대로 계승하기로 하는 등 전반적인 분위기를 4집과 동일하게 가져가기로 결정한다. 한편 밴드는 자신들의 스타일을 고수할뿐만 아니라 동료 뮤지션들의 조언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밴드 멤버들의 친구인 조지 해리슨은 지미 페이지에게 레드 제플린의 곡들은 좋지만, 발라드 넘버가 거의 없다는 아쉬움을 말했기에, 지미 페이지는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Something을 오마주한 The Rain Song을 작곡하였다.한편 밴드 멤버들은 4집 발매 이전 인도의 뭄바이를 여행하면서 힌두교 사상과 인도 문화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 1972년 휴식 기간에 멤버들은 전문 시타르 연주자들과 교류하고 인도 음악에 대해서 공부하는 등 인도 음악과 서양 록 음악의 접목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와 동시에 1970년대 초반에는 핑크 플로이드, 예스 등의 밴드들로 인해 실험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가 유행했었기에, 밴드는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프로그레시브 록 또한 받아들이기로 한다.
또한 곡 작업 당시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는 알레이스터 크로울리에 빠져서 흑마법 사상에 심취했었는데, 음모론자들은 이 앨범에도 흑마법 사상과 악마 숭배 사상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4. 앨범 커버
|
<rowcolor=#fff> 내부 커버[5] |
|
|
<rowcolor=#fff> 커버 뒷면 | 2014년 딜럭스판 커버[6] |
촬영은 북아일랜드에 있는 주상절리인 자이언트코즈웨이에서 촬영했다.[9] 힙노시스 팀은 촬영 모델로 다섯 살짜리 남자 아이 스테펀 게이츠,[10]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 서맨사 게이츠[11]를 섭외하였고, 이들이 발가벗고 주상절리를 올라가는 모습을 일주일 동안 다중 노출로 찍었다고 한다. 촬영 당시 북아일랜드는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인해 가톨릭 교도와 성공회 교도가 대립하는 살벌한 분위기였으며[12], 날씨가 나빠서 촬영 과정과 1차 결과물은 절망스러웠다고 한다. 그러나 틴팅 과정에서 일어난 실수가 마음에 들어서 결국 낙점했다고 한다.
결과물은 만족스럽게 나왔지만 가장 큰 문제는 커버가 너무 선정적이라는 점이었다.[13] 작업본을 그대로 썼다가는 애틀랜틱 레코드에게 퇴짜맞을 것이 분명했기에, 밴드 매니저인 피터 그랜트는 앨범 커버에 종이 한 장을 덧대어 포장할 것을 요구했다. 결과 적으로는 노출 부위를 가리는 앨범의 제목이 써진 띠나 스티커로 마무리 되었다.
5. 흥행
전작이 대흥행하여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밴드가 된 레드 제플린인 만큼 차기작 또한 대흥행했다.미국에서만 1,100만 장이 팔렸으며 영국에서는 30만 장, 독일에서 25만 장, 프랑스에서 20만 장, 호주에서 14만 장이라는 인증 판매고를 기록했다.
차트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 UK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다. 이로 인해 동료 밴드인 핑크 플로이드의 최대 역작인 The Dark Side of the Moon이 UK 차트 1위에 실패하는 일이 생긴다. 이외에도 캐나다, 호주에서 차트 1위에 올랐으며 핀란드에서는 2위, 그리고 일본, 프랑스, 오스트리아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다만 전작이 너무 상업적으로 성공했기에 전작보다 상업적 성공 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또한 다음 앨범인 6집 또한 록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앨범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동시에 상업적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성공했기에 두 앨범 사이에 끼어 있는 비운의 앨범이라고 불리기도 한다.[14]
6. 음악적 성향과 평가
Album Guide |
★★★★★ |
★★★★★ |
Rate Your Music |
3.91 / 5.00 |
Acclaimed Music |
1973년 19위 / 1970년대 152위 / 올타임 550위 |
상업적뿐만 아니라 음악적 평가 또한 매우 높다. 곡 구성이 약간 산만하긴 하지만 음악들의 깊이 또한 매우 깊으며, 상술했듯이 이런저런 음악적 실험들을 많이 했기에 음악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다만 발매 당시에 롤링 스톤은 레드 제플린과 적대 관계였던만큼 이 앨범에 대해서도 “올해 나온 앨범 중에서 가장 산만하고 지루한 앨범”이라는 악평을 했다. 그러나 롤링 스톤을 제외하고서는 평론적으로도 좋은 평을 얻었으며, 1974년에는 이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녹음 패키지 상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21세기 들어서 평가가 올라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에서도 200위권 이내에 드는 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상술했듯이 4집과 6집이 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중 하나라고 평가받다보니, 5집은 분명히 올타임 명반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초라해보이는(…) 면이 없지않아 있다. 그렇기에 팬들 사이에서는 정말 좋은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4집과 6집에 묻힌 비운의 앨범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은 레드 제플린이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했다는 점이다. 당장 이 앨범에서 다룬 장르만 해도 10가지 가까이 된다. 레드 제플린은 이 앨범에서 D’yer Mak’er에서는 레게를, The Crunge에서는 펑크(Funk)를, The Rain Song에서는 소프트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앨범은 레드 제플린이 단순한 헤비 메탈 밴드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주요 근거로 쓰이며 3집, 6집, 8집과 함께 레드 제플린의 음악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예시로 자주 거론된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시도도 많이 하는 동시에 기존부터 밀고 왔던 블루스 록과 하드 록, 그리고 이에 기반한 헤비 메탈 또한 더욱 발전한다. The Song Remains the Same 같은 곡들을 들어보면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음악성의 발달은 본작의 다음작인 6집에서 절정을 맞는다.
7. 트랙 리스트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tablebordercolor=#dd6832><tablebgcolor=#dd6832> |
Houses of the Holy
Track listing |
}}} | |
{{{#!wiki style="margin:-5px -10px;padding:7px 10px;background-image:linear-gradient(to right,#fff,#efc356,#dd6832,#dd683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Side A | |||
<rowcolor=#fff> 트랙 | 곡명 | 러닝타임 | ||
<colcolor=#000000,#FCF8EC> 1 | The Song Remains the Same | 5:24 | ||
2 | The Rain Song | 7:32 | ||
3 | Over the Hills and Far Away | 4:42 | ||
4 | The Crunge | 3:10 | ||
Side B | ||||
<rowcolor=#fff> 트랙 | 곡명 | 러닝타임 | ||
1 | Dancing Days | 3:40 | ||
2 | D’yer Mak’er | 4:19 | ||
3 | No Quarter | 7:03 | ||
4 | The Ocean | 4:28 | ||
7.1. Side A
7.1.1. The Song Remains the Same
The Song Remains the Same 05m 24s California sunlight |
|
Composed/Wirtten by
플랜트-페이지
7.1.2. The Rain Song
The Song Remains the Same 07m 32s This is the mystery of the quotient, quotient |
|
Composed/Wirtten by
플랜트-페이지
7.1.3. Over the Hills and Far Away
Over the Hills and Far Away 04m 42s Many have I loved, and many times been bitten |
|
Composed/Wirtten by
플랜트-페이지
7.1.4. The Crunge
The Crunge 03m 10s I want to tell you 'bout my good thing |
|
7.2. Side B
7.2.1. Dancing Days
Dancing Days 03m 40s Crazy ways are evident, |
|
Composed/Wirtten by
플랜트-페이지
가사의 히피식 말장난이 인상적인 곡이다.7.2.2. D’yer Mak’er
D’yer Mak’er 04m 19s When I read the letter you wrote me, it made me mad, mad, mad |
|
7.2.3. No Quarter
No Quarter 07m 03s Walking side-by-side with death |
|
7.2.4. The Ocean
The Ocean 04m 28s Singing to an ocean, I can hear the ocean's roar |
|
8. 차트 성적
<rowcolor=#fff> Houses of the Holy의 주간 차트 성적 | ||
<rowcolor=#fff> 차트 (1973 – 1974) | 피크 성적 | |
영국 | Official Charts | 1 |
미국 | Billboard 200 | 1 |
캐나다 | RPM | 1 |
호주 | ARIA | 1 |
서독 | Offizielle Top 100 | 8 |
프랑스 | SNEP | 3 |
덴마크 | Hitlisten | 7 |
노르웨이 | VG-lista | 4 |
스웨덴 | Sverigetopplistan | 4 |
오스트리아 | Ö3 Austria Top 40 | 3 |
9. 인증 판매고
<rowcolor=#fff> Houses of the Holy의 인증 판매량 | |||
<rowcolor=#fff> 국가 | 인증 | 판매고 | |
영국 | BPI | 플래티넘 | 300,000장^ |
미국 | RIAA | 11×플래티넘 | 11,400,000장^ |
호주 | AIRA | 2×플래티넘 | 140,000장^ |
서독(독일) | BVMI | 골드 | 250,000장^ |
프랑스 | SNEP | 2×골드 | 200,000장* |
<rowcolor=#fff> 총합 | |||
세계 | IFPI | - | 12,000,000장^ |
* 실물 판매량 ^ 앨범 주문량 ‡ 스트리밍 판매량 + 실물 판매량 |
10. 참여자
- 지미 페이지 – 기타, 페달 스틸 기타
- 로버트 플랜트 – 보컬
- 존 폴 존스 – 베이스, 피아노, 일렉트릭 피아노, Moog 신디사이저, 멜로트론, 오르간, 백킹 보컬
- 존 본햄 – 퍼커션, 드럼, 백킹 보컬
- 지미 페이지 – 총괄 프로듀서
- 피터 그랜트 – 책임 프로듀서
- 에디 크래머 - 믹싱 엔지니어
- 조지 치키안츠 – 믹싱 엔지니어
- 키스 하드우드 - 엔지니어
- 조지 마리노 - 마스터링
- 힙노시스 – 앨범 커버 제작
11. 여담
- 액슬 로즈가 자신이 맨 처음 접한 하드 록 앨범이라고 한다. 이 앨범의 D’yer Mak’er를 듣고 하드 록에 처음 입문했다고.
- 원래 레드 제플린은 영국보다 미국에서 먼저 음반을 발매했으나, 이 앨범부터는 미국과 영국 모두 같은 날에 발매하기 시작했다.
- 레드 제플린의 앨범 중 가장 짧은 재생 시간을 가졌다.
[1]
B면은
Dancing Days
[2]
B면은
The Crunge
[3]
이게 어느 정도냐면 베이스와 기타, 드럼이 제각각 못갖춘마디로 시작해서 말 그대로 제멋대로이다... 거기다가 개판 5분 전인 박자의 화룡점정인 엇박 보컬까지...
[4]
아마도 이 앨범 수록곡인
Dancing Days와의 유사성 때문에 그럴 것이다.
[5]
나중에는 아예 리마스터판 커버로 쓰인다.
[6]
커버 색이 파란색으로 조정되었다.
[7]
거의 같은 시점에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앨범 커버도 제작했다.
[8]
라켓(Racket)은 테니스 라켓을 가리킬 때의 그 라켓뿐만 아니라 시끄러운 소리, 즉 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깐 소거슨이 제시한 앨범 아트엔 '이 앨범 무진장 시끄러움'이라는 숨겨진 메시지가 있었던 것. 다만 이후 소거슨과 화해했는지
Presence 앨범 커버 제작에도 일부 도움을 줬고, 마지막 앨범인
In Through the Out Door에서 다시 참여했다.
[9]
촬영지 후보 중에서 원래는
페루도 있었지만 주어진 예산이 부족했기에 그냥 북아일랜드에서 찍었다고 한다.
[10]
훗날 영국에서 요리 관련 기고가와 텔레비전 진행자로 성공했다. 유튜버로도 활동중. 촬영 당시엔 벌거벗고 다니는 걸 좋아해서 신났다고 회고했다. 정작 음반은 2010년이 될 때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본인도 부담감이 있었는지, 듣고 나서 이제서야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11]
스테펀이랑 남매다. 당시 둘이서 아동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다. 서맨사는 촬영에 대해서 기억은 생생한데 엄청 추웠다고 회고했다. 2010년 기준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살고 있다. 서맨사는 후속작
Presence 뒷 커버에도 출연한다.
[12]
당시 거의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정치적 불안정을 이유로 북아일랜드 투어를 취소했었다.
로리 갤러거가 아일랜드의 국민 기타리스트로 대접받게 된 것도 1973년 벨파스트 투어를 유일하게 취소하지 않은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13]
서맨사 역시 성인이 된 이후 인터뷰에서, 지금이라면 찍을 수 없는 커버라고 밝히기도 했다.
[14]
반면 상업적 성공 수준은 6집보다 본작이 더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