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폭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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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100%]]| 위 사진은 강릉시 주문진읍 일대 폭설이 내린 흔적이다. |
1. 개요
2011년 1월 초와 2월 중순 두 차례에 걸쳐 눈구름대가 한반도 동부를 강타해 기록적인 폭설을 일으킨 사태다. 폭설 방재에 관해서는 달인으로 평가받는 영동 지역 전문가들도 손을 쓰지 못할 만큼 막대한 양의 눈이 쏟아졌으며, 심지어 한반도 최고의 눈 안전지대로 평가되는 경상도 내륙 지방은 물론 남부산[1]까지 엄청난 눈 폭탄이 터졌다. 통칭 100년 만의 대폭설. [2]또한 경상동해안을 비롯한 곳에 폭설이 오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갖춰져야한다. 매년 겨울철, 동해안은 일시적으로 북동풍이 부는 시기가 있는데 이 북동풍이 동해안을 지나면서 습기를 머금고 그대로 태백산맥에 충돌, 드물게 미친듯한 폭설이 내리게 되는데 이번 폭설의 경우 동고서저의 기압배치가 유독 길어지게 되면서 강원동해안과 경상동해안 지역에 장기간 긴 기간에 걸쳐 폭설이 쏟아지게 된 것이다.
2. 사태의 전개
2.1. 1월 3일
포항을 중심으로 한 경상북도 남부 동해안 지역과 울산광역시에 폭설이 하루 종일 쏟아졌다. 포항 시내에 쌓였던 28.7cm의 적설량은 69년 만의 최대 적설량이었으며, 남쪽 산지에 접해있는 오천읍, 연일읍, 동해면 등지에서는 비공식적으로 50cm가 넘어가는 적설량이 관측되기도 했다.포항은 평소에 눈이 많이 오는 편이 아닌 곳이었기 때문에 자체 제설장비를 2대밖에 갖추고 있지 못했고, 기록적인 폭설이 오자마자 도시 기능이 마비되었다. 눈이 많이 온 죽장면, 기북면, 대송면 등지는 아예 고립되기도 했다.
그 시기 해군 지휘관 화상회의에 생활반장(분대장)이 사령관 지시로 참관하였는데, 당시 그 6전단장님의 한탄이 애처롭기까지 하였다. 공군에서 ‘마징가’로 불리는 장비도 없었던 터라 말 그대로 활주로의 눈과 얼음을 곡괭이와 삽으로 깨야 했다고 한다. 폭설이 워낙 심했기에 이후엔 제2작전사령부 산하의 군 부대들이 대민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
울산에도 10cm가 넘는 눈이 오고, 울산과 인접한 부산 기장군에서도 비공식적으로나마 10cm에 가까운 눈이 내리는 등 이례적인 폭설이 내렸다.[4]
하지만 영동 지방은 이 폭설을 끝으로 한 달 넘게 폭설이 오지 않았다.[5]
2.2. 2월 11일
밤부터 동해시, 강릉시 등 영동 지역 일대를 중심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영동 지역은 1월 3일 이후 한 달 넘게 춥기만 하고 눈이 오지 않아서 가뭄 피해가 컸는데, 이번 눈으로 오랜만에 가뭄을 해소했다. 물론 대표적 다설지인 이 지역에 눈이 내리는 것 쯤은 다반사인 문제라 그다지 크게 경계하고 있지는 않았으나…2.3. 2월 12일
전날 밤부터 내린 눈이 오전까지 쉼 없이 이어지며 계속 적설되고 있었다. 더구나 수분을 가득 머금은 ‘젖은 눈(습설)’이었던 탓에 무거운 데다 녹지도 않고 미친 듯이 쌓여갔다. 연병장과 같은(…) 공터를 보고 있으면 눈이 쌓이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동해시의 경우 1m가 넘는 적설량을 보였고[6], 대부분의 영동 지역에 7~80cm의 엄청난 눈이 쌓였다.삼척시는 1m 10cm의 눈이 쌓였고[7] 인구가 밀집한 강릉시의 경우도 1m 20cm 이상이나 눈이 쌓였고, 당연히 교통대란으로 이어져서 지역 경제가 마비되는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이 날은 영동선과 태백선이 마비되면서 무궁화호도 멈춰버렸고, 공교롭게도 전날 KTX 열차마저 광명역에서 탈선하는 사고가 빚어져 코레일 직원들이 진땀을 뺐다. 도로도 예외가 아니라 고속도로가완전히 마비되는 불상사가 빚어지기도 했으며, 영동의 등줄기인 7번 국도가 완전히 막혀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연히 다른 지방도로도 무사할 턱이 없었다.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멀쩡한 도로가 갑자기 거대한 눈벽으로 변하면서 달리던 차들이 그 모습 그대로 고립되었을 정도였다.
당시 7번 국도 관리기관인 강릉국도관리사무소에서는 당연히 제설작업을 실시하고 있었으나, 시간당 10cm 이상 내리는 눈 때문에 제설차가 지나가고 난 다음 바로 눈이 쌓여서 일반인 차가 정지하고, 한쪽 차선이 막히니까 제설차가 못 지나가고, 제설차가 못 지나가니 더 많은 차가 멈춰버리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다. 제설차는 앞의 도저블레이드로 눈을 밀어내고 뒤에서는 염화칼슘 용액이나 소금물을 뿌려서 적설을 방지하는 원리이나,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눈이 집중적으로 내리는 바람에 눈이 녹지 않고 쌓여버렸기 때문이다.
이 당시 차량들은 최소 6시간에서 많게는 20시간 이상이나 고립되었으며,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걸어서 빠져나오는 일까지 있었다. 이 사태는 결국 중앙분리대 일부를 해체해서 차량들을 회차시키고 나서야 해결될 수 있었다. # 울진 ~ 삼척 구간의 7번 국도에서도 원덕쯤에서 9시간이나 차량들이 고립되는 안타까운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어쨌든 이후 7번 국도의 중앙분리대 곳곳을 가변식으로 변경하여 비상시에 회차할 수 있게 바뀌었다.
물류 자체도 마비되었지만, 당연히 농가의 피해도 극심했다. 쌓인 눈 탓에 비닐하우스 보일러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 많은 화훼가 동사했고, 축사가 눈 무게를 못 이겨서 무너져버린 안타까운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군인들도 제설작전에 총동원 되었다. 심지어 휴가가 예정된 병사들까지 모두 동원하여 눈을 치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어차피 전국의 교통망을 비롯한 고속도로까지 완전히 마비가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1년 전의 전국 폭설 사태'와 똑같이 휴가 날짜가 미뤄지게 되는 대참사가 다시 한 번 반복되었다.
결국, 12일 오전에 국방부 인트라넷 게시판에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들 처음엔 일상적인 날씨 욕하기 수준이었으나, 몇 시간이 지나자 동해안 지역 부대 중심으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전해져오고... 광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글들이 올라오지 않게 됐다(전원 작업). 이때 8군단 권역 병사가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 병사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제목이 ' 메이데이 메이데이'[8]
제설작업은 강원도 해안 지방에 주둔한 대한민국 육군 제23사단이나[9] 대한민국 공군 제18비행단을 중심으로 펼쳐졌는데, 눈이 워낙 많이 내리다 보니 사단에서 보유하고 있던 제설 장비로는 모자라서 가평, 춘천 등의 공병부대에서 제설장비를 대여하여 제설에 임하였다.
또한 거의 눈 속에 파묻히다시피한 강릉시, 동해시, 삼척시 내로 대민지원을 나갔다. 당연히 병사들은 포상휴가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23사단 병력의 혹한기 훈련은 취소되었으나 포상휴가는 일부부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대민지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들이 살고 있는 부대 내부의 제설작업이다. 이 때문에 일부는 주둔지 안의 제설을, 일부는 대민지원을 나갔으나 포상휴가를 받은 것은 거의 다 대민지원을 나간 병력들뿐이었다(...). 추가로 제설작업 도중 계속 쏟아지는 눈발로 인해 제설을 하다 눈 속에 고립된 소대도 있었는데, 이들은 반나절을 눈 속에서 지내야 했다. 당시 그 소대의 부대 복귀 후 경험담을 들어보면 정말로 "여기가 대한민국인지 시베리아 벌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얼어죽는 줄 알았다."라고 한다.
영관급 장교들이 직접 삽이나 넉가래를 들고 주둔지내를 제설하기도 했다. 물론 자기 자동차 주차한 일대(...) 위주로. 중령/ 대령들은 대/연대장이다 보니 삽은 안 들더라도 계속 현장에서 병사들을
2.4. 2월 13일
12일의 피해를 복구하고자 가용 가능한 모든 방재인력이 총동원됐다. 군인의 경우 대한민국 육군은 물론 대한민국 해군, 대한민국 공군까지 끌어모을 수 있는 인력은 죄다 동원됐다.텔레비전과 라디오 뉴스는 온통 폭설 피해와 제설 관련 뉴스가 장식했고, 더구나 바로 다음날 다시 눈 예보가 있어 문자 그대로 설상가상의 상황이 되었다. 영동 일대에서는 휴교령을 결정했고 다음 날의 폭설에 대비해 바짝 긴장을 조였다.
참고로 이 날 이집트의 무바라크가 전격 하야를 선언했다. 그러나 매스컴이 영동 폭설 뉴스에 열을 올리느라 그 소식은 상대적으로 묻히고 말았다.
2.5. 2월 14일
그리고 예보대로 이날 아침부터 다시 눈구름이 몰려들었다. 울릉도를 시작으로 강릉권에는 오전 8시경부터 전날에 이어 신명나는 블리자드가 시작되었고, 이어서 경상도에도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산의 경우 날씨가 풀려가는 추세인데다 전국에서 가장 눈 구경하기 힘든 지역의 하나라 폭설에 대한 당혹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10]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는 '부산 눈'이 10위권 안에서 꾸준히 오르내렸다. 더군다나 부산의 공식 적설량은 7cm이고, 울산은 21.4cm를 기록하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였다. [11]그리고 이번 눈구름은 결국 내륙까지 밀려왔다. 그렇게 눈을 보기 힘들다는 대구마저 눈에 묻혔고[12][13], 충북권까지 눈이 흩날렸다. 물론 경상도의 눈 피해가 영동만큼 크리티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일단 인구가 많은 데다 평상시 폭설 안전 지역이라 이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않았기에 눈 피해에 상대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영동 지역에 쏟아붓고 남은 눈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대처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은 다행.
결국 경상도 일대에도 영동처럼 휴교령이 내려졌고, 부산, 울산, 포항 등의 해안권 대도시의 기능이 정지되었다. 다만 고등학교는 정상 수업했다. 참고로 눈 때문에 버스 및 택시가 제대로 운행하지 않아 지각생이 수두룩했다. 강원도와 면한 울진의 경우는 이 날에만 1m 이상의 적설량을 보여 40년만의 최대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3. 기타
사실 이로부터 불과 보름여 전까지 울릉도에도 12월부터 1월에 걸쳐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다. 누적 적설량은 4m에 육박했을 정도(…). 하지만 울릉도가 워낙 외진 지역이고 또 원래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라 그런지 이곳 폭설은 별 관심을 못 받고 묻혀버렸다. 그리고 울릉도는 이 폭설에도 또다시 기록적인 적설을 보였다. 어차피 울릉도에 주둔한 제118조기경보전대와 319관제대대, 울릉경비대 등의 인원들은 11월 초부터 4월 초까지 전방 철책 못잖게 눈과의 사투를 벌이며 살기 때문에 딱히 놀라워하지도 않았다.우연인지 혹은 폭설이 전 세계적인 추세였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국 동북부 지역에서도 12월 27일부터 29일까지 기록적인 양의 폭설이 내렸다. 뉴욕주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은 4일 가까이 연착과 취소로 엉망진창. 보러가기 여기서도 100년만의 폭설이었다는 듯. 2016년 한파 및 폭설 사태 때에도 미국 동부 전체가 소위 "스노마겟돈"(…)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매서운 폭설을 경험했는데, 북극 상공의 찬 공기가 요동을 치는 것이기 때문에 전 지구적으로 그 영향이 간다고 한다.
유럽에도 마찬가지로 폭설이 내려서 많은 공항이 폐쇄되거나 마비되었다.
그리고 3년 후인 2014년 2월, 영동권은 또 다시 눈 폭탄을 맞이하였다. 대폭설이 행사가 될 기세다.
이 기록적인 폭설을 영상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다. ebs 극한직업에서 당시 제설 작업하는 상황들을 취재했던 것. 영상1[14] 영상2 Full 영상
이 때 폭설로 인해 봄방학과 졸업식을 앞둔 동해안 학교들이 졸업식을 미루지 못해 폭설을 뚫고(...) 학생들을 등교하게 하는 일을 저질러서 학부모들로 부터 원성을 받았다. 이후 동해안 많은 학교들이 졸업식을 2월 초, 빠르면 겨울방학을 빨리 끝내고 1월 말에 한다.
덤으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년 하반기 11월 30일부터 12월 9일까지 말도안되는 눈폭탄이 또 쏟아져 동해고속도로가 전면 통제까지 하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불상사가 발생했다!
4. 관련 문서
[1]
즉, 겨울에 뭐 내렸다 하면 눈이었던 낙동강 벨트 및 금정-백양산 일대가 아니다.
[2]
사실 지난 2005년 3월 동해안, 특히 남부 동해안에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당시 부산에는 대설경보 발령과 함께 37.2cm라는 무지막지한 양의 눈이 내렸다. 그 밖에 1월 중순에 중부 등 다른 지역에도 몇 번 눈이 내렸다.
[3]
해병대는 몰라도, 해군 제6항공전단은 활주로 눈을 치우느라 바빴다.
[4]
경상도는 겨울에 상대적으로 훨씬 따뜻한 제주나 서귀포에 비해서도 강설 일수가 적다. 특히 12월이나 1월의 경우 영하권의 추위가 지속되는 등 눈이 올 정도의 온도가 지속되나, 서해상의 수증기가
소백산맥과
지리산을 넘으면서 건조해지는 일명
푄 현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베이징과 같은 극한의 건조한 기간이 계속 이어진다.
[5]
실제로 2011년 1월 강수량은 5.0mm로 2022년에 이어서 1월 강수량이 두 번째로 낮았다.
[6]
동해시에 위치한 모 군부대에서는 1m
자(…)를 테이프로 2개 연결해서 시간마다 연병장에 쌓인 적설량을 보고했었는데, 최후에는 1m 50cm 가량이 쌓였다. 탁 트인 연병장이 이 정도였으니 이 이상 되는 곳도 있었을 듯. 기상청 자료에서도 102cm까지 기록했다.
[7]
1m 20cm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가곡에선 최적심 145cm까지 기록.
[8]
해당 항목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구조 요청 시엔 3번 반복하게 되어있으나, 글을 쓴 병사는 1m가 넘는 감당이 안 되는 적설량 + 급양병의 업무 때문에 이중 싸닥션... 경황이 없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9]
당시 23사 소속의 gp에 근무하던 병사의 증언을 참고해보자. 누가 gp 문을 밖에서 잠근 것이라고 생각해서 후임병에게 무슨 일인가 알아보라고 했더니 말없이 창문을 가리키더란다. 창문 밖의 풍경은 그냥 밤중과 같았다고.
[10]
부산광역시 항목의 기후 문항에 올려져 있는
2010년 1월 4일 폭설 당시 한반도 위성사진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전국적으로 눈이 덮여 새하얀 가운데에서도 유아독존격 녹색지대를 보여준 지역이었다.
[11]
그러나 실제로 따져보면 부산의 기온과 관측 지점의 위치상의 원인 때문에 부산의 적설량은 적었던 것뿐이다. 울산과 동일한 조건이었다면 비슷한 적설량에 대설경보까지 내려도 무방할 정도의 눈이 내렸다고 보면 될 것이다.
[12]
80년대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구에 눈이 많이 왔지만, 차량수가 늘어나고 보일러가 보급되면서 도시가 따뜻해져 2000년대부터 눈이 거의 오지 않게 되었다.
[13]
대구에 이렇게 눈이 오는 건 정말 놀라운 현상이라고 봐도 된다. 여담으로 1년 뒤에도 큰 눈이 온다.
[14]
이 문서에 적힌 모습들이 영상에 가감없이 그대로 나오며, 실제로 상술된 사례, 사건들이 영상에도 나온다. 다만 경상도가 아닌 영동 지방이 영상의 주요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