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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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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유럽2.2. 동아시아
3. 주요 사건
3.1. 가상
4. 연도 목록5. 관련 문서

1. 개요

15세기는 서력으로 1401년부터 1500년까지의 시기다.

2. 역사

2.1. 유럽

중세의 위기를 극복해내고 근세로 이동해가는 시대였다. 르네상스라는 경향의 최전성기이자 백년전쟁의 종료, 2206년간 이어진 로마 제국의 완전한 멸망과 오스만 제국의 급부상, 이로 인한 대체항로를 찾기 위해 일어난 대항해시대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의 중심지를 이탈리아와 같은 지중해 국가들로부터, 영국, 프랑스, 스페인과 같은 대서양 국가들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14세기부터 진행된 르네상스는 15세기에 가장 화려한 모습을 맞이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대표 예술작품으로는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피에타 등이 있다.

총기 기술이 향상되면서 유럽의 군사적 경향은 훈련이 까다로운 기사와 같은 기병에서, 상대적으로 훈련이 간단한 총기를 소유한 보병들 위주로 개편되었다. 새로운 군인들은 싸우는 일을 신분에 따른 일이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안정을 얻기 위한 업으로서 수행했다. 그렇기에 더 많은 돈을 주는 국가를 위해 충성했다. 국가들은 이러한 보병들을 군인으로 유지하기 위해 많은 재정을 들여야 했고, 결국 세금을 얻기 위해 중앙집권화는 불가피했다. 그리고 중앙집권화를 위해서 또 그 군인들을 활용하면서, 이러한 재정군사국가를 위한 선순환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면서 영주의 힘은 계속해서 약화되었지만 왕의 권력은 이러한 순환으로 강해져갔던 것이다.

제지술의 발전과 인쇄술의 등장도 이러한 국가들의 발전에 기여했다. 말로는 전달하기 힘든 것을 이제는 종이를 통해 금방 전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의 뜻에 대한 왜곡이 상대적으로 줄었으며, 기존에는 어려웠던 원격지에 대한 왕의 직접통치가 가능해진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살펴보면, 백년전쟁이 종식되면서 프랑스 왕국의 왕실은 세금과 상비군을 유지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으며, 17~18세기에 일어날 프랑스의 절대왕정의 초석을 닦았다. 영국의 경우 백년전쟁 이후 30년 간 일어난 장미 전쟁으로 인해 튜더 왕조가 들어서고 많은 귀족들이 죽음으로서 귀족의 권위가 약해지고 왕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15세기에도 여전히 지중해에서의 원격지 상업은 강세를 띠고 있었으나, 동유럽에서는 오스만 제국 메흐메트 2세의 치하에서 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정복, 멸망시키고 발칸반도 소아시아에 걸친 판도를 구축하며 무역 루트를 독점했다. 이에 따라 지중해의 상업은 점차 약화되었다. 그리고, 지중해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대서양과 가까웠던 이베리아 반도의 중요성이 커졌다. 8세기부터 이슬람 제국과 800년 동안이나 전쟁을 벌여오던 이베리아 반도는 이미 군사적으로 강력해져 있었고, 1492년 마침내 카스티야 왕국이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를 정복하면서 이베리아의 레콩키스타는 끝났다.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지적 욕망과 도전정신이 강해지고, 오스만을 거치는 것 대신에 동방의 향신료를 직접 수입할 수 있는 루트를 고민하다 보니, 대서양->아프리카 방향으로 우회하면 된다는 아이디어가 나타났다. 이를 처음 실행으로 옮긴 것은 1420년대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였다. 포르투갈은 15세기 내내 새로운 섬들을 발견했고,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 1498년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발견하면서 유럽의 보잘것 없는 국가였던 포르투갈은 한순간에 대서양, 인도양 무역의 강자로 떠올랐다.

스페인은 포르투갈보다 뒤늦게 대서양 항해에 뛰어들었으나, 항해 경험이 많던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를 활용해 '서쪽으로 쭉 가면 인도가 나오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를 실천으로 옮겼다. 콜롬버스는 많은 국가에서 투자를 거절받았으나, 수백년의 레콩키스타를 통한 가톨릭 수호의 이미지와 지중해 무역을 통해 국력이 매우 강성해져 있었던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콜롬버스가 실패하든 말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콜롬버스는 인도를 찾지 못하고 처벌당했으나, 그가 1492년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은 16세기 이후 유럽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그리고 그가 들여온 신대륙의 작물들은 유럽의 식문화를 바꾸었다.

이러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활동은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2.2. 동아시아

한국의 경우 조선 시대 태종 재위기부터 연산군 재위 중기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국력이 최전성기였다는 세기로 많이 평가받으며 특히 세종 르네상스가 극적이다. 다만 태종, 세종, 문종의 치세로 가파른 국력 상승세를 탔던 전반부에 비해, 계유정난으로 불리는 세조의 집권을 계기로 하는 후반부는 개국초의 활력과 건전성이 약화됨에 따라 국력 상승세가 다소 둔화되는 측면이 있다.

명나라 역시 15세기 전/후반부의 기조가 확연히 갈리는데, 전반부는 영락제의 대외원정으로 몽골과 베트남을 제압하고 정화의 남해 원정을 진행시키는 등 대외팽창적 세계제국의 면모를 과시했으나, 토목보의 변(1449)으로 황제가 포로로 잡히는 등 박살난 이후 만리장성을 수축하여 방어태세로 전환하고 내치에 주력하는 모습으로 전환하게 된다.

일본 아시카가 요시미츠 사후 지배력이 약화되어 가던 무로마치 막부 오닌의 난(1467-1477)으로 유명무실해짐에 따라, 전국시대라 불리는 헬게이트가 열리게 된다.

불멸기원 2000년이 이 시기에 왔다.

3. 주요 사건

3.1. 가상

4. 연도 목록

5. 관련 문서


[1] 음력으로는 1494년인데 양력으론 1495년이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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