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18:40:15

해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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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초대 군주
모수왕 | 慕漱王
파일:해모수.png
동명왕릉 능문 제당에 그려진 해모수 벽화.
<colbgcolor=#6A5445><colcolor=#fbe673> 출생 연대 미상
부여
사망 연대 미상
북부여
능묘 미상
재위기간 초대 군주
기원전 59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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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A5445><colcolor=#fbe673> 성씨 해(解)
모수(慕漱)
부왕 천제 / 상제
왕후 유화부인
자녀 해부루, 고주몽
별호 태자(太子)
천왕랑(天王郞)
천제(天帝)
황천(皇天)
시조(始祖)
단군(壇君) }}}}}}}}}

1. 개요2. 관련 기록3. 대중매체에서
3.1. DC코믹스
4. 여담5. 관련 문서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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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漢神雀三年 孟夏斗立巳
한나라 신작 3년, 첫 여름 북두가 사방(巳方)을 향해 비추고
海東解慕漱 眞是天之子
해동에 해모수가 오셨으니 진실로 천제의 아드님이시로다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한국 신화의 등장인물.

그러나 당대의 기록인 《위서》(魏書)나 광개토왕릉비, < 모두루 묘지명> 등에는 해모수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북부여를 건국한 부여의 시조이며, 동시에 동부여의 시조인 해부루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아버지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백제의 대성팔족 중 하나인 해씨 가문에서 부여계인 가문의 정통성과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가공한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2. 관련 기록

옛 기록(古記)에 이르기를 “《전한서》에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壬戌) 4월 8일 천제(天帝)[2]가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五龍車)를 타고 흘승골성(訖升骨城) 요나라(大遼) 의주(醫州) 지역에 있다.에 내려와서 도읍을 정하고 왕을 일컬어 나라 이름을 북부여(北扶餘)라 하고, 자칭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 했다.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扶婁)라 하고, 해(解)로써 씨를 삼았다. 그후 왕은 상제의 명령에 따라 동부여로 도읍을 옮기게 되고 동명제(東明帝)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나 졸본주(卒本州)에 도읍을 세우고 졸본부여가 되었으니 곧 고구려(高句麗)의 시조이다. 아래에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북부여-조
그러나 실제 《 한서》에는 저런 내용이 없다. 추가적으로 《 삼국사기》에서 동명성왕의 탄생년도는 기원전 58년으로, 해모수가 강림한 기원전 59년의 이듬해이기 때문에 이를 동명성왕이 수태된 년도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다.
북부여왕 해부루(解夫婁)의 재상 아란불(阿蘭弗)의 꿈에 천제(天帝)가 내려와서 이르기를, 장차 내 자손을 시켜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 하니, 너는 이 곳을 피해가거라, 동명(東明)이 장차 일어날 조짐을 이른다,, 동해의 물가에 가섭원(迦葉原)이란 곳이 있는데, 땅이 기름지니 왕도를 세울 만하다고 했다. 아란불은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니, 국호를 동부여(東扶餘)라고 했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동부여-조
《단군기》(檀君記)에는 "단군(檀君)이 서하(西河)의 하백(河伯)의 딸과 친하여 아들을 낳아 부루(夫婁)라고 이름했다"고 했다. 지금 이 기록을 상고해 보면 해모수(解慕漱)가 하백(河伯)의 딸과 사사로이 통해서 주몽(朱蒙)을 낳았다고 했다. 《단군기》에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夫婁)라고 했다" 했으니 그렇다면, 부루(夫婁)와 주몽(朱蒙)은 배다른 형제일 것이다.
북부여왕 해부루가 먼저 피해 간 땅이 동부여이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고구려-조
천제(天帝)가 태자를 보내어 부여(扶餘) 고도(古都)에 내리어 놀게 하니, 이름이 해모수(解慕漱)이다. (해모수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오룡거(五龍車, 5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종자(從者) 100여 인은 모두 백곡(白鵠, 흰 고니)을 탔는데, 채색 구름이 그 위에 뜨고 음악 소리가 구름 가운데에서 울렸다. 웅심산(熊心山)에 머물러 10여 일을 지내고 비로소 내려왔다. 머리에는 오우(烏羽)의 관(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龍光劍)을 찼는데, 아침이면 일을 보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가니, 세상에서 이르기를 '천왕랑'(天王郞)이라고 했다.
조선왕조실록》 <평양부>편
이후에 하백의 세 딸 중 유화 정을 통해 결혼하고자 했으며, 하백과 재주를 겨루어 승리했다. 하백이 잉어로 변하자 수달로 변해 잡고, 사슴에는 승냥이로, 에는 가 되어 내리쳤다고 <동명왕>편에 묘사되었다. 그런데 해모수가 혼자 승천해버려서 가문을 욕되게 했다고 화가 난 하백 유화를 추방했다.

어떤 기록에서는 천제(天帝) 본인이기도 하고, 어떤 기록에서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천제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어느 쪽이든 신적인 존재로 여겨진 듯하며, 고구려 부여 일대에서 시조신으로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의 기록에서는 단군과 동일시되어서 《 삼국유사》 <왕력>편에는 해부루를 단군의 장남, 동명성왕 단군의 차남이라고 기록했다. 보통 이 부분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있다.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간다든가, 유화부인이 햇빛으로 임신 / 혹은 임신 중에 햇빛이 배를 비추는 상황, 오룡거를 몰고 다닌다든가 하는 것에서 태양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속일본기》 엔랴쿠 8년에 백제인들이 직접 전한 백제 부여씨 왕실의 출자에서는
"백제의 원조(遠祖)인 도모왕(都慕王)은 하백의 딸이 해의 정기에 감응하여 태어났는데, 황태후는 곧 그의 후손이다."
라는 대목으로 적혀 있는데 이건 빼도 박도 못한다. 《 위서》에서도
子, 河伯外孫
이라고 명확하게 나와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부여인들의 대표 성씨인 해씨(解)가 순우리말 ( 태양)을 음차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자 解(해)의 상고한어 재구음은 /*kreːʔ/로 발음되었고, 후기 상고음에선 *kai, *ke로 발음되었으며, 전기 중고음으로는 *kai, *ke, *hai, *he 등으로 발음되었다. 상고음이 아닌 후기 상고음과 전기 중고음으로 대응할 시 '해'[日\]의 중세 어형 'ᄒᆡ'는 음운적 유사성이 없지는 않다. 상고음만을 기준으로 해(태양)의 중세 한국어의 어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견해는 단견일 수가 있다. 《삼국사기》 등에 나오는 표기 등이 실제 상고음으로만 적혔다는 보장은 없고, 후기 상고음이나 전기 중고음으로 적혔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부여에 관련해서 해(解)씨 표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이므로, 고려시대 당시의 발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동국정운》에 따르면 조선 초기 '해'(解)의 발음은 'ᅘᅢᆼ〯'로, '해'(日)의 중세 한국어 형태인 'ᄒᆡ〮'와는 발음과 성조에 다소 차이가 있긴 하다.

다산 정약용은 《 아방강역고》에서 해모수를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과 동일 인물로 봤다. 해모수는 신화적 존재에 가까우므로 부여의 동명왕을 모델로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고리국으로 비정되는 백금보-한서 2기 문화 일부가 지린 성으로 남하해 토착세력과 연합하여 서단산 문화(기원전 10세기~4세기)를 이루었고, 대해맹 유형(기원전 3세기~2세기)을 거쳐 포자연 유형(기원전 2세기~기원후 3세기)으로 이어진다. 기원전 4세기~3세기 무렵 본격적인 하나의 국가로 발돋움한 서단산 문화가 부여로 비정되는데 부여는 그대로 성장해 고리국을 역흡수하였다. 그러다 기원전 2세기, 기원전 1세기에 걸쳐 두 차례 압록강 일대로 부여 포자연 유형이 남하하였고, 이 중 기원전 1세기 남하한 부여 세력이 압록강 유역의 고조선인들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고구려는 문화적으로는 피지배층인 고조선의 영향이 더 짙었지만 지배층은 부여인의 정체성이 확고했고, 고조선은 이후 성장하여 부여가 고리국에게 그랬듯이 부여를 역흡수하였다. 하지만 부여는 기원후 1~3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려 고구려를 압박하였고 494년이 되어서야 멸망했으며 전성기 시절 부여는 고구려를 얕잡아본 정황이 여럿 있다. 따라서 고구려는 자신들의 건국 정당성을 고리국 시절로 소급하였고, 이러한 상황은 백제도 되풀이하게 된다. 고구려 건국 신화를 부여 신화에서 그대로 베낀 건 덤. 2세기 후반 임진강 일대로 고구려인이 남하했다 3세기 중후반에 한강 유역으로 다시 남하해 경기 서부에서 유력한 토돈분구묘제 세력을 지배 파트너로 하여 한성백제가 건국되는 것으로 되풀이된다. 백제는 문화적으로 고구려의 후신이며 온조시조설에서 고구려 추모왕의 후손임을 명시하는 등 고구려의 후신임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했지만[3] 고구려가 백제를 얕보는 문제 때문에 스스로를 부여씨라 칭하고 성왕 대 잠깐 남부여를 쓰는 등 실상과 상관없이 부여의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부여 해(解)/여(餘)씨-고구려 고(高)씨-백제 부여(扶餘)씨, 해(解)씨에서 나타나는 성(姓)의 특성이 있다. 부여는 해씨 성을 썼는데 고구려 고씨는 해씨 성을 한자화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일본 한자의 훈독과 음독처럼 삼국시대 한반도에서도 한자 표기의 음독과 훈독이 삼국시대 후기까지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 즉 해씨와 고씨는 같은 성이다. 그런데 부여는 멸망한 뒤 스스로를 부여의 국호에서 딴 여씨 또는 이를 축약한 서(徐)씨라 칭했고, 백제 왕가인 부여씨는 1자 축약할 때 여(餘)씨 또는 서(徐)씨로 축약했으며 백제 대성팔족 중 백제 건국 기사부터 등장하는 해씨는 고구려에서 내려왔음에도 '부여인'이라고 명시된다. 즉 이들의 성은 근본적으로 다 같다는 뜻이다. 또 일본서기의 기록에서 태자 시절 위덕왕은 고구려 장수에게 "자신의 성은 고구려와 같다"고 말하는 등, 백제 왕실과 고구려 왕실의 성이 같음을 알 수 있다. 고리국-부여-고구려-백제의 건국 과정에서 되풀이되는 현상과 시조가 같다는 전승, 같은 성을 쓰는 정황 등을 보면 이들은 정말로 같은 부계 혈통을 공유하는 동성(同姓)이 맞을 수도 있겠다.[4] 이들이 모두 같은 성이 맞다고 가정할 경우, 해모수는 고리국의 시조가 태양신으로 신격화되었다 부여-고구려-백제 왕가까지 시조신의 존재가 구전되었고, 이것이 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대중매체에서

3.1. DC코믹스

파일:haemusu dc.png

New52 슈퍼맨 #45에서 첫 등장. 한국의 태양신으로 나온다. 힘을 잃은 슈퍼맨이 돈을 벌기 위해 마이너한 신들과 싸우는 검투장에서 만나게 된다. 슈퍼맨이 관전하는 가운데 필리핀 신화의 태양신 아포라키와 붙어서 이긴다

파일:haemosu dc2.jpg

검투장에서 만난 이후에는 같이 바에 들어가 소주를 마신다. 슈퍼맨 #45, 46, 47, 49와 액션 코믹스 #50에서 등장한 것 말고는 크게 비중이 없는 신이다. 첫 번째 컷 벽을 보면 정지라는 한글이 보인다.

4. 여담

  • KG모빌리티가 쌍용자동차 시절 1세대 렉스턴을 개발할 당시 출시 직전까지 해모수라는 이름이 렉스턴이라는 이름과 경쟁을 벌였으나, 마지막에 차량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고 한다. 이후 해모수는 렉스턴의 고급형 컨셉트카 '헤모스'의 명칭에 활용된다.

5. 관련 문서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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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왕실의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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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유사 [2] -고구려-조에서는 제(帝) 뒤에 자(子) 자가 있다. [3] 온조시조설에서는 온조가 추모와 소서노의 아들이라 나오는데, 백제의 기원인 고구려계 세력은 2세기 후반에 출몰하는 게 해석이 어려운 점이다. 일단 사서 기록에 따르면 추모왕 이래 고구려 왕가는 모두 예씨부인의 아들인 유리명왕의 후손이며 비류시조설에서도 소서노의 존재가 강조되는 걸 감안하면 아들은 아니라도 실제로 추모와 소서노의 후손이 165년 차대왕- 신대왕 즉위과정의 혼란 때문에 남하했을 가능성은 있다. 마찬가지로 부여 건국 연대와 고구려 건국 연대는 수백 년 차이가 나고, 주몽 건국 설화를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의 건국 설화에서 그대로 베꼈음을 고려하면 부여 시조 동명왕의 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먼 방계가 부여를 떠나 분가했을 수도 있다. [4] 중국은 전국시대 말까지도 진나라 황족의 성이 영(嬴)이고 씨가 조(趙)인 등 성씨가 구별되었고 전한 시대에 성씨가 통합되어 이를 대체하기 위한 본관(本貫)의 개념이 위진남북조시대에 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