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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 1987 | 1988 | 1989 | 1990 |
7위 | 6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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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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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시즌별 성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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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2011년 페넌트레이스 월별 일정 |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10월 |
한화 이글스 2011 시즌 성적 | |||||
순위 | 승 | 무 | 패 | 승률 | 1위와의 승차 |
6 / 8 | 59 | 2 | 72 | 0.450 | 21.0 |
- 2010년 대비 팀성적 변화
- 49승 2무 82패, 승률 0.368(8위) → 59승 2무 72패, 승률 0.450(공동 6위)
- 팀타율 : 0.244(8위) → 0.255(7위)
- 팀출루율 : 0.331(8위) → 0.338(공동6위)
- 팀장타율 : 0.359(8위) → 0.362(7위)
- 팀득점 : 543점(8위) → 568점(7위)
- 홈런 : 104개(7위) → 93개(6위)
- 도루 : 121개 → 100개(7위)
- 팀평균자책점 : 5.43(8위) → 5.11(8위)
1. 개요
한화 이글스의 2011 시즌을 정리한 문서.2. 2011 비시즌
2011년 한화 이글스의 전망은 상당히 암울했다. 일단 플러스 요인은,- 1지명된 유창식
- 군제대하는 고동진, 한상훈
- 그러나 말 그대로 유망주일 뿐, 성공유무는 알 수 없다. 이해를 돕자면 간단히 유원상과 김혁민을 보면서 매년 희망고문 당했던 한화팬들의 모습을 보면 된다. 게다가 유창식은 어깨 염증때문에 겨울 훈련도 뒤늦게 합류한 상황이었다. 결국 개막 시점에서 2군에 잔류하다 불펜들이 불을 화끈하게 지르면서 간신히 1군에 올라왔다.
1984년생에서 1986년생까지는 일단 군입대를 걱정해야 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선수가 김태완, 이희근, 유원상, 김혁민, 양훈, 윤규진, 정현석, 허유강, 황재규 등 사실상 지금 팀의 주전 선수 또는 주전 후보 전부이다. 일단 윤규진은 2011년에도 시즌을 치르고 2012 시즌부터 공익으로 갈 예정이다. 김태완, 정현석은 2011년 군복무를 시작했고, 황재규는 2010 시즌 끝나고 10월말에 곧바로 공익으로 복무를 시작하였다.
군대에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이면서 1군에서 주전 후보로라도 뛰고 있는 선수는 군필인 최진행과 전현태, 병역 혜택을 받은 류현진, 아직 나이가 어린 오선진과
결국 한대화 감독 임기내엔 노장선수와 1987년생 이후의 신인급 선수로 땜빵을 해야한다. 롯데 자이언츠의 8888577 시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한대화 감독의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류현진마저 없는 포스트 한대화의 한화 이글스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최소한 10년간은 이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지금부터라도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혹은 넥센이 지금보다 더 이상한 방식으로 전력 누수가 되지 않는 한 앞으로 좀 많이 하위권에서 머무를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말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한화로 복귀할 수도 있다는 떡밥을 투척했다.
거기에 장성호가 수술로 2011 시즌 전반기 출장 불가, 5월에 복귀라는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은 팀이 거의 공중 분해되는 수준까지 온 것이나 다름없지만 여전히 구단에 대한 투자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거기에다가 타 팀들이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통해 주전급 미필 선수들 상당수가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하여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고, 내년 한화 이글스의 성적은 오르기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그나마 한화 이글스가 탈꼴찌를 한다면 LG나 넥센을 밀어낼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이 두 팀이 한화와 함께 하위권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LG 트윈스는 순위는 그렇다 쳐도 전력은 투타 모두 상당한 수준이며, 넥센 히어로즈도 전력은 그리 우수하지 않지만 주축선수가 없을 뿐 의외로 쓸만한 인재가 많은 팀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한화에 비해 두 팀 모두 상당히 앞서는 수준의 팀으로 볼 수 있으며, 그나마 넥센이야 어떻게 전력을 보강해서 추월한다 쳐도 LG와 그 이상의 팀들은 2011년 한화의 선수층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강팀들이다.
안 그래도 리그 최악의 관중 동원률을 보여주는 한화 이글스인데,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요인이 없는 내년에는 미래가 더 암담하다. 군대 가는 선수보다 군대에서 복귀하는 선수들의 실력이 대체로 좋지 않다.
2010 군 입대 선수 목록은 다음과 같다.
복귀 선수는 최진호, 정민혁, 정범모, 한상훈, 백승룡, 고동진, 오재필[2]이다.
코치진은 송진우가 1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코치로 돌아왔으며, 한용덕 2군 투수 코치가 다시 1군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이로써 한 팀에 총 통산승수 500승 코치진을 달성했다.[3]
2011년 류현진의 연봉을 1억 안올려줘서 그의 자존심에 금이 갔다고 기사가 나와 한화팬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반면 연봉이 가장 많이 깎인 선수는 장성호로 삭감률은 20%였다. 이에 대해 2009년 구대성이 부상 통증을 참아가며 혹사당했는데도 연봉이 33.3% 삭감당한 것과 비교하여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이 깎인 선수는 19%가 삭감된 김혁민이며, 전체적으로 보면 한화 이글스는 연봉이 삭감된 선수가 적은 구단에 속하지만 깎을 게 있어야 깎지 몇몇 빼고는 죄다 막장 성적 찍고 애초에 저연봉 선수라 깎아봤자 눈에 띄지도 않는다.
2011년 1월 15일, FA 최종 계약일까지 한화 프런트는 FA 선언을 한 이도형, 최영필과 계약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이 둘을 은퇴시켰다. 둘 다 나이가 많아 성적이 하락세를 타며 크게 도움이 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력이 최약체인 한화 입장에서는 선수 하나가 아쉬운 상황인 만큼 이 둘을 갖다 버린 것이 문제였다.[5] 안 그래도 막장인 한화 프런트는 2010년 8월 11일에 이경재에서 김관수로 사장이 바뀌고 나서 더욱 더 막장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영입하라는 FA는 영입하지도 않고, 이범호 영입도 지지부진하며, 감독에게 "우리의 리빌딩은 정신력과 자체 리빌딩, 젊은 선수 위주로 할테니 님이 좀 잘해보삼." 식으로 과도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짊어지게 하니, 한대화 감독 입장에서는 그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러다 정말로 한대화 감독은 맨 손으로 63빌딩을 세워야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 1월 27일, 이범호가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 9번이나 만났지만 다년 계약을 요구하는 이범호에게 1년 계약을 요구하면서 결국 한화 쪽에서 영입을 포기해버렸다. 일설에는 갈곳 없는 이범호를 상대로 후려쳐보려고 했다고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6] 이 사실을 알아챈 기아는 김조호 단장의 지시로 이범호
반면 이범호가 한화에겐 주야장천 다년 계약을 요구해놓고 KIA 타이거즈와 1년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다.[8] 12억이라는 액수가 이범호를 지나치게 고평가한 액수가 아니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과연 12억에 기타 금액까지 50억에 육박하는 액수를 배팅한 이범호 영입이 KIA 타이거즈에게 대박이 될지 쪽박이 될지는 기다려봐야 알 수 있을 것이므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기아가 부른 액수가 너무 세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에는 한화가 그 돈 줘가며 이범호를 데려올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9]
한편, FA제도에서 보호선수는 18인에서 20인으로 개정되었지만 이범호는 그 이전에 FA로 일본으로 간 케이스라 보호선수 18명 제외규정을 받았다. 2011년 신인선수[10]를 보상선수로 지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놓고 KIA와 대립하였으나 2011년 1월 31일 결정난 KBO의 유권해석에 따라 신인선수들은 보상선수에서 제외되었다. 유력한 보상선수로 한대화 감독이 원했던 김주형을 비롯해, 김희걸, 박기남 등이 꼽히고 있으나 2월 12일 안영명을 지명하여 그의
1월 31일, 최진행의 허리 부상 상태가 심상치 않아 조기귀국을 고려하고 있으며, 한대화 감독이 머리 싸매고 드러누울 지경이란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이러다간 한대화 감독이 쓰러졌단 기사가 언제 떠도 그다지 놀랍지 않을 듯 하다. 2월 4일 최진행의 허리부상이 심각해져서 결국 조기귀국을 하고 말았다. 이제 한화는 차포 떼고 거기에다가 마 상까지 다 떼고 시즌을 시작하는 상황이 되었다.
2월 20일 이여상이 군면제 판정을 받는 실로 오래간만의 호재가 들려왔다. 덕분에 경쟁할 수 있는 2루수가 늘었다.
한화 이글스 선수들에게 제공되는 전훈식단이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후져서 한화 팬들에게는 거센 비난을 받고 있으며, 타 팀 팬들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운동선수들을 위한 식단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이며, 일반 중소기업의 구내식당 수준으로 보이는 모습이 기사화되었다. 눈으로 직접 보자.
이후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의 식단도 공개되고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 SK 와이번스의 식단도 공개되자 한화 이글스의 식단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그 모습 때문에 한화 이글스 구단은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특히 메뉴들이 외국인 선수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아서 팬들은 외국인 선수들은 삶은 계란밖에 먹을게 없겠네.라고 비난하고 있다. 어떤 블로그에서 그 토속적인(?) 한화 이글스 메뉴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음식을 그릇에 담고 있는 외국인투수 오넬리 페레즈의 모습이 담겨 더더욱 안쓰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가뭄에 콩나듯 이기던 오키나와 연습경기에 비해,[12] 시범경기에서는 나름대로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5승 7패로 공동 6위.
3. 페넌트레이스
4. 4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11년/4월 문서 참고하십시오.5. 5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11년/5월 문서 참고하십시오.6. 6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11년/6월 문서 참고하십시오.7. 7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11년/7월 문서 참고하십시오.8. 8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11년/8월 문서 참고하십시오.9. 9~10월
자세한 내용은 한화 이글스/2011년/9~10월 문서 참고하십시오.10. 총평
탈꼴지에 성공한것은 좋지만 시즌의 최대과업이었던 리빌딩에 대해서는 미묘한 상태인 시즌이었다.리빌딩의 경우 투수진과 야수진으로 나뉘어서 설명이 가능한데, 투수진은 리빌딩에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트레이드로 온 마일영과 김광수, 나이들어서 포텐이 터진 박정진을 제외하면 전원 20대인 선수들로 연령층을 낮추는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선발진의 축인 양훈과 김혁민은 군문제가 코앞에 걸려있지만 윤근영, 신주영, 송창식등의 군필이 부상 후유증을 극복하고 올라오기 시작했으며 정재원, 정민혁등 희망고문이라도 하면서 가능성을 보여준 투수들도 있었다. 그 이외의 선수들은 구본범과 허유강을 제외하고 모두 나이가 어려서 아직 군 문제에 여유가 남아있는 선수들로, 2군에서 조련이 무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면 오래 걸리지 않아 세대교체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활한 류현진은 부상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고, 양훈, 김혁민, 안승민, 장민재는 풀 시즌을 소화했다는 점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 성적이다.
야수진은 리빌딩 大실패.
-
주전 중견수는
김재우도,
이상훈도,
오준혁도 아닌 여전히 37세의
강동우였으며
김경언,
추승우,
고동진이 뒤를 이었다.
이상훈은 시즌 초반에 매우 좋지 않았기에 그나마 이해가 가지만... - 장성호가 부상에서 복귀할때까지 주전 1루수로 써먹으려던 김강은 시즌 시작후 괴멸적인 1루수비를 보여주고 2군으로 사라졌으며 중간에 부상까지 입으면서 시즌이 끝날때까지 1군에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김용호는 치질로 인해 시즌 내내 잠적했고, 정범모 또한 군복귀 후 치질로 내내 보이질 않다가 시즌 말 2군에서 얼굴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 포수쪽에서 김기남이 주목을 받고 있으나 수비는 물음표에 일단은 신고선수 신분인지라 별다른 소식은 없다. 신경현이 부진하여 엄청난 욕을 먹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박노민은 좀 잘하다가 여지없이 수비에서 삽질을 하고 심지어 마지막 기회였던 8월에는 꼬리뼈 부상으로 아웃되었으며 이희근도 역시 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면서 신경현을 밀어내지 못했다. 나성용도 시즌이 끝날때쯤에서야 올라오는데 성공했다.[14]
- 주전 3루수로 군필인 이여상을 박아서 괜찮게 썼지만 허리 부상으로 인한 재활로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지 못한 여파가 나타나는지 시즌이 지나면서 타율이 꾸준히 떨어져 멘도사라인으로 수렴해버렸다. 또 다른 3루 대안인 김회성은 공을 방망이에 제대로 맞추질 못하고 정줄놓는 수비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신임을 받지 못했다.
- 주전 유격수는 이대수가 꾸준히 잘해줘서 다행이었지만, 백업 요원으로 육성중이던 강경학이 2군에서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크지 못했다. 강경학은 오른팔 부상을 입었다가 재활이 끝나자 왼팔을 부상당하는 처절한 과정을 거치고 결국 그냥 군 입대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 주전 2루수로 키우려고 했던 전현태는 올해도 희망고문만을 반복했고, 내야 유틸리티로 키우던 오선진도 부상으로 한동안 빠져있다 시즌 말에 복귀하였다.
- 코너 외야진도 문제가 심각했다. 코너 외야진에서 두각을 보인 선수는 30대(?!)의 이양기와 오재필이었다. 사실 한화의 리빌딩에 가장 걸맞은 선수들은 최진행, 전현태, 정민혁과 같은 군필이면서 20대 중반의 선수이지만 문제는 프런트가 거의 놓다시피한 선수관리 덕분에 20대 중반의 선수들은 죄다 미필이고 군 제대한 선수들은 거의 나이가 30 부근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야수진의 세대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노장들에게 의지하는 양상을 보였다.
2011년은 전반적으로 두각을 보인 젊은 야수가 한 명도 없었던 우울한 해였다.
야수쪽에서 유망주들이 끝모르는 삽질을 하자 투수쪽 리빌딩으로 선회한 듯한 느낌이 보이며, 이는 야수리빌딩을 늦추고 야수진의 나이가 높아지는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어쨌든 그 나이든 선수들 - 강동우, 이대수, 한상훈 - 이라도 없었으면
하지만 비교적 젊은 선수들 또한 자업 자득인 것이, 기회를 줘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상적인 리빌딩은 젊은 선수들이 어느 정도 해 주면서 노장들을 자연스럽게 밀어내는 것이지만 이들은 대타에서 한 방해서 선발에 박아주면 말아먹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15] 장성호, 정원석, 강동우, 신경현을 대체할 선수가 마땅히 보이지가 않는다. 그나마 외야진은 고동진과 이양기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나 이들은 30대의 나이로 인해 세대교체에 큰 도움은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피타고리안 승률(기대 승률)로 보면 승률이 .379이지만 실제 팀 승률은.450 인걸로 보아 올 시즌 한화는 이기고 있을 시 아슬아슬하게 이기고 질 때는 포풍 같이 털렸었다. 이 말은 끝내기가 많고[16][17] 3점 홈런과 만루 홈런이 많이 나와 영양가가 좋았으며, 필승조와 패전조의 차이가 크고 투수들이 널뛰기했다는걸 알 수 있다. 좋게 말하면 지는 경기와 이기는 경기를 확실히 구분함과 동시에 한대화 감독이 대타작전 성공률 .332로 좋은 용병술을 보여 줬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나쁘게 말하면 시즌 내내 운이 좋았다고도 볼 수 있다. 야구를 보는 팬들로서는 아주 다이나믹한 시즌을 보낸 것이다. 또한 2011 시즌 한화는 단 한번도 끝내기 패를 당하지 않았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2011 시즌 페넌트레이스 우승팀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상대 전적이 앞섰다! 겨우 10승 9패로 승패마진 +1밖에 못 벌긴 했지만 이 시즌 이후로 2014년까지 계속 한화가 삼성에 밀렸다는 걸 생각한다면 뭔가 큰 의미가 있는 것은 분명한 시즌이었다. 이 해 류현진은 규정이닝을 채우는 데도 실패했던 걸 감안한다면 더욱 그렀다.
2012 드래프트에선 야수 최대어인 하주석을 포함 내야수 2명, 투수 4명, 외야수 3명, 포수 1명 등 총 10명을 전부 지명하였다.
한대화 감독은 하주석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아직은 당장 주전감은 아니라며 2012년에는 이대수의 백업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11월 20일 FA 송신영과 3년 13억, 옵션 비공개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2005 시즌 김민재 이후 6년 만의 타팀 FA 영입이다. 무려 이상군 신임 운영팀장이 직접 멀리 있던 송신영을 찾아가서 모셔오듯이 데려왔다고 한다.
11월 22일에 2차 드래프트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포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1군에 올릴 수 있는 최승환을 얻어오면서 한화의 2군 팜에서는 달랑 김강 하나만 내줬다. 유망주 5명을 내준 두산 베어스나 삼성 라이온즈와 매우 비교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를 좋아할 수 만은 없는 것은 한화의 2군이 괴멸적이라는 것을 인증하는 셈이기 때문이다.[19]
11.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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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89년생 투수
[2]
개명 전 오승택
[3]
송진우 210승 +
정민철 161승 +
한용덕 120승 +
이상군 100승
[4]
적은 것으로 보이나
박정진의 경우엔 정말 제대로 대우해준 것이 맞다. 08년
마정길은
박정진보다 더했지만
박정진과 거의 똑같은 인상률이 적용됐었다. 사실 전문 마무리 투수가 아닌 이상 전천후(?) 불펜투수가 아무리 잘해봤자 높은 인상률을 받기란 매우 힘들다.
[5]
게다가 이 둘은 A급 선수가 아니어서 연봉도 저렴한 편이었다. 또한 그 동안의 공헌도를 생각하면 계속 데리고 있는 쪽이 모양새도 더 좋았고.
[6]
사실상
소프트뱅크에서는 이범호를 2011년 전력외로 놓았고 일본 진출 전 영입에 관심을 보였던 롯데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7]
그렇게 기아는 김상현의 부상으로 인해 비어버린 3루수 자리를 이범호를 통해서 대체하게 된다.
[8]
일본에서 1년간 감각을 잃었을 이범호가 살아나는데 걸릴 시간을 생각해본다면 1년 계약에 12억은 너무 무리한 투자라 단연 이면 계약이 있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9]
실제로 한화 선수단 46명의 연봉이 약 23억이라고 한다. 그 절반에 육박하는 12억을 한화에서도
김태균 다음 자원으로 쳤던
이범호에게 투자했어야 했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10]
이들의 계약 기준일은 2011년 2월 1일로,
KIA 타이거즈측의 입장은 '보호선수 명단을 1월 31일까지 제출하면 이 시점에서는
KIA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지명할 수 없다.'였고, 한화측의 입장은 '보호선수 명단은 어디까지나 데려갈 수 없는 선수를 지정해 놓은 것에 불과하니 2월에 보상선수를 지명한다면 2011년 신인선수를 데려갈 수 있다.'였다.
[11]
김주형은 후일 짐짝 취급을 받긴 하지만 그나마 몇 없는 내야 유틸이라는 점에서 선수진이 미미한 한화 입장에서는 나름 의미가 있었고, 김희걸은 군필에 이닝도 제법 먹어주는 불펜투수, 박기남은 한화에 왔으면 주전 경쟁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물론 안영명이 지역 연고 프랜차이즈에, 못 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군대를 안 다녀왔다는 것.
[12]
이것도 기가 차는 것이, 이 막장 프런트에서 연습구장을 구해주지 않아 한대화 감독이 직접 인맥을 섭외해서 연습구장을 빌렸다.
[13]
참고로 2010 시즌 한화의 시범경기 성적은 3승 7패. 시범경기마저 꼴찌를 했었다.
[14]
그나마 포수자리는 셋 다 하나씩 보여준게 있다는것이 약간의 위안거리이다.
[15]
사실 야왕 신드롬으로 불리는 이 해의 플루크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지나치게 높은 대타 성공률이었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 이 용병술이 파해되면서 대타 성공률도 다시 평균 이하로 떨어져버렸다.
[16]
11승 역대 최다 타이
[17]
2011시즌 끝내기 모음
[18]
심지어 LG는 송신영을 데려오면서 같이 승부조작범 김성현을 데려왔고, 그 과정에서 박병호와 심수창, 15억원을 내줬으나 정작 송신영은 FA가 되어 떠나버렸고, 김성현은 승부조작이 걸리며 그대로 감옥에 갔다. 그리고 박병호의 포텐셜이 터지고, 심수창도 롱런하면서.....
[19]
한화는 FA로 데려온 송신영에 대한 보상선수로 LG에 쿨하게
추승우를 주자고 할 정도로 보호선수 20인 명단이 널널한 편인데 40인이면 더더욱 자리가 남아 돈다. 우스갯소리로 40인 안에
청계산 회장님과 치어리더들을 넣어도 여유롭다
카더라라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