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4 20:25:58

유즈노사할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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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 Ю́жно-Сахали́нск (유즈나사할린스크)
영어: Yuzhno-Sakhalinsk (유즈노사할린스크)
파일:유즈노사할린스크 휘장.svg
유즈노-사할린스크
Южно-Сахалинск
설립 1882년
인구 200,235 (2021)
면적 164.66㎢
인구밀도 1216.05명/㎢
시간대 UTC+11
1. 개요2. 역사3. 도시 정보4. 인구5. 교통6. 스포츠7. 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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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사할린섬 남부에 위치한 도시이자 현재 사할린주의 주도(州都)이다. 유즈노가 러시아어로 남쪽이라는 뜻이라 의미는 '남사할린의 도시'이다. 일본령 시기 당시의 이름은 '풍요로운 언덕'을 뜻하는 도요하라(豊原)였으며 일본령 가라후토의 중심지였다.

2. 역사

1882년 창건 당시에는 징역 관리인[1] 블라디미르의 이름을 따 '블라디미롭카(Vladimirovka/Влади́мировка)'라는 이름의 정착촌으로 개발되었다.
다시 5km 더 나아가면 1881년에 징역 노동을 관리하던 블라디미르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블라디미로프카 마을이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검은 강"이라고 부른다.[2] 주민은 91명으로 55명이 남성이고 46명이 여성이다. 세대주는 46명으로 이들 중 19명은 독신이며 직접 소의 젖을 짠다. 스물일곱 세대 중에 단 여섯 세대만이 합법적이다. 농업식민지로서 이 마을은 북부의 두 지구를 합한 것보다 값어치가 있으나, 남편을 따라 사할린으로 왔으며 감옥의 때가 묻지 않은 자유민, 즉 식민지에 매우 가치 있는 여성으로 이곳에 이주한 여성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최근에 남편 살해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북부의 관리들이 두에의 ‘가족용 감방’에서 괴로움을 당하도록 내버려둔 자유민 신분의 불행한 여성들이라면 이곳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유익할 것이다. 블라디미로프카 마을에는 소 한 종류로만 100마리가 넘고, 말이 40마리에다 훌륭한 건초지가 있으나 주부가 없으니, 즉 진정한 가정경제가 없다는 말이 된다.
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 섬"[3]에 실린 1890년도 당시 이 도시의 묘사는 위와 같다. 오늘날 20만 명의 중소도시인 것과는 달리 100명밖에 살지 않는[4] 개척 초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유배자가 아닌 여성이[5] 1명뿐이라는 것도 유배지로서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지점이다.
파일:Toyohara.png 파일:Yuzhono.png
일본령 가라후토 시절(1933년) 평면도와 현재
1905년에 러일전쟁의 결과로 맺어진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일본 영토가 되어 '도요하라'(豊原)로 개칭되었고, 1907년에 가라후토청의 소재지가 되었으며, 1929년에 정(町), 1937년에는 가라후토 유일의 시(市)로 승격되었다.[6] 전반적인 도시 구조는 이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위 지도를 보면 1933년대 도시의 형태가 오늘날과도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7]

그러나 1945년 소련-일본 전쟁에서 승전한 소련이 점령하여 자국령으로 편입하였고 이듬해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8]

3. 도시 정보

일본령 시절은 물론 러시아령인 현재에도 사할린 섬의 중심도시이다. 홋카이도 삿포로와 같이 바둑판 모양으로 도시가 구획된 계획도시이다.

파일:attachment/유즈노사할린스크/Example1.jpg

일본 통치기에 만든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할린 지역 박물관(Sakhalin Regional Museum, краеведческий музей южно сахалинск). 다른 용도로 세운 일본식 건물을 재활용한 것이 아닌 건립 당시부터 박물관으로 사용한 건물이다. 도시 곳곳에 일본 제국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고 이런 흔적들은 일본 관광객들이 필수로 들르는 순례코스이다.[9]

관광 인프라는 상당히 열악한 편이다. 위에서 설명한 사할린 지역 박물관과 가가린 공원[10], 사할린 대성당과 보스크리센스키 성당[11], 쇼핑몰, 스키장 등을 제외하면 볼거리가 거의 없는데 애초에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같은 관광도시가 아니다.

한때 일본령이었던 역사 때문인지 양파형 돔 지붕의 러시아식 건물과 기와 지붕의 일본식 건물이 공존하는 굉장히 특이한 도시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다.

도시 서쪽으로는 스스야(Susuya) 강이 흐른다. 일본령 시절에는 鈴谷로 표기했으며 아이누어 기원 지명인 것으로 생각된다. #

4. 인구

러시아인이 전체 인구의 80% 가까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인구의 12% 가량은 사할린 한인이며 사할린 전체 한인 중 대부분이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살고 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일본 땅이었던 이곳으로 징용된 사람들로 소련은 사할린을 점령하고 일본인(아이누 포함)은 쫓아냈지만 조선인은 쫓아내지 않았다. 이 때 일본은 일본인 대부분을 본토로 철수시켰지만 조선인들은 내선일체 운운했던 때는 언제고 외국인 취급하며 무책임하게 방치했다.[12][13]

이들은 대부분 삼남지방(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출신이었기 때문에 소련과 같은 공산국가인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았지만 냉전 당시 소련과 교류가 없던 대한민국 정부는 사할린 한인의 처우에 무관심했다. 이곳의 일부 고려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고[14] 실제로 수천 명이 영구 귀국했다. 안산시에 있는 고향마을 1단지 아파트는 영구 귀국한 사할린 한인 1세대를 위해 지어졌다.

유즈노사할린스크에 한인문화센터가 있는데 일본 자금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정문 입구가 신토 신사 도리이와 유사한 모양이라는 주장도 있다.

5. 교통

유즈노사할린스크 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오로라 항공이 운항한다. 과거에는 김해국제공항 노선도 있었지만 폐지되었다. 그 외 모스크바,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이투루프섬, 쿠나시르섬[15] 등 러시아 각지로 향하는 국내선과 일본 신치토세 공항 나리타 국제공항, 중국 하얼빈, 다롄 저우수이쯔 국제공항, 베이징 수도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국제선이 있는데 러시아 변방에 위치한 작은 도시 치고는 국제선이 충실한 편이다. 철도로는 유즈노사할린스크 역이 있다.

6. 스포츠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팀들이 연합해 형성한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에 참가하는 하키팀 PSK 사할린이 이 도시에 있는데 하키 강국인 러시아답게 상당한 강팀이다. 한국까지 원정오는 팬들도 있다.

이 도시를 연고로 하는 러시아 3부리그인 프로페셔널 풋볼 리그의 FC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라는 팀도 있다.

7. 그외

  • 사할린 문서에서 다루고 있듯 사할린은 농경과 목축으로만 생계를 영유하기는 다소 어렵고 의 특성을 활용해 어획을 하거나 나물 등을 식용하는 생활 방식이 생존에 좀 더 유리하다. 그런 이유로 사할린 한인 한국 요리 문화가 러시아인들에게도 제법 인기를 끈다는 모양이다. 다른 지역의 한류가 21세기 대한민국의 문화에 의해 퍼진 거라면 이 지역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선택한 것이니 러시아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체화가 된 듯하다.
  • 유즈노사할린스크에는 맥도날드, 버거킹, KFC, 헤스버거[16] 등 유명 패스트푸드 브랜드가 없다. 대신 이곳만의 햄버거 체인이 있어서 간단히 식사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 주러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의 주(駐)유즈노사할린스크 출장소가 있다.
  • 일본령 가라후토 시절 개칭된 명칭인 '도요하라'는 그 유래가 불분명하다. 다른 홋카이도~사할린 인근 지역과는 달리 아이누어 지명은 알려져있지 않다. 어쩌면 정말 문자 그대로 푸른 초원이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도시 인근은 이 많은 사할린 중에서 몇 안 되게 평지의 비율이 높은 곳으로, 위 안톤 체호프의 인용문에서도 "농업식민지로서 가치가 높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 인근 쿠릴 열도의 중심 도시의 이름도 '유즈노쿠릴스크'로 이 도시와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남쿠릴시"라는 뜻이다. 쿠릴 열도 최남단 쿠나시르 섬에 위치해있다.
  • 중순양함 스즈야가 이 도시를 흐르는 스스야 강에서 유래하였다. 일본 전함 중 현재 일본의 영토가 아닌 곳의 이름을 딴 몇 안 되는 예이다. 함대 컬렉션의 관련 캐릭터에서 이 사실을 게임 내에서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1] 초기 사할린의 역사는 시베리아와 마찬가지로 유배지의 역사였기 때문에 유배 온 죄인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2] 사할린은 본래 "검은 강"을 뜻하는 만주어에서 왔으니 이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이누인이 본래 이 지역을 일컫던 명칭을 번역한 것일 수도 있으나 확실히 알기 어렵다. [3] 1890년 9~10월 경에 사할린에 다녀왔고 1890년대 초중반에 출간하였다. [4] 이 글의 다른 부분을 보면 사할린 전체가 대체로 그런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코르사코프도 좀 더 일찍 개척이 시작되긴 했지만 인구는 1000명을 조금 넘는 정도이다. [5] 소설의 묘사만으로는 남자들 중엔 자유민이 좀 있는 것인지, 남자들도 모조리 다 유배자인지는 알 수 없다. [6] 따라서 도요하라(유즈노사할린스크)는 2차 대전의 결과로 일본이 상실한 유일한 시였다. 연합군에 의해 점령된 나하 등 다른 도시는 다시 일본에 반환되었고 마찬가지로 소련이 점령한 쿠릴 열도는 인구가 부족해 일본 기준 시(市)가 없었다. 단, 패전 직전 일본은 카라후토 제2의 인구밀집지인 에스토루(恵須取, 현 우글레고르스크(Uglegorsk))를 시로 승격할 계획이었으나 이는 결국 소련의 침공으로 무산되었다. 조선, 대만에도 도시는 꽤 있었지만 일제강점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 외지였으므로 시 제도는 시행되지 않았다. [7] 왼쪽 지도 동쪽 중앙부에 있는 도요하라 공원(豊原公園) 지역은 지금도 공원이고 운동장은 지금도 쓰이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야구를 안 해서 그런진 몰라도 야구장은 없어졌다. 인근의 가라후토 신사는 지도에 "Sintoistskiy Khram Karafuto Dzindzya"(신토 사원 가라후토 신사)로 표시는 되어있다. [8] 이와는 대조되는 점으로 인근 코르사코프는 19세기 초기 개척 시기부터 '코르사코프'라는 이름이었다. [9] 그러나 2022년부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사실상 길이 막혀서 못 간다. [10] 소련의 영웅인 유리 가가린을 기리기 위해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11] 고대 러시아 건축 스타일로 지어진 성당으로 알렉세이 2세 총주교가 1995년 네프테고르스크 지진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선물한 카잔의 성모마리아상이 있다. [12] 사실 그나마도 러시아는 이들에게 러시아 국적을 부여했지만, 일본 내 한국인은 일방적으로 일본 국적을 박탈하고 알아서 한국/북한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남북한 관계 속에서 둘 중 무엇도 선택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무국적자로 남은 이들이 조선적이다. [13] 다만 직후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걸 감안하면 돌아가지 않은 것이 목숨 보전에는 더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14] 사할린이 석유와 천연가스로 인해 1인당 GDP가 6만 달러 정도로 높다지만 그래도 평균 월급이 100만원 수준인데다 무엇보다 인프라가 너무 열악하기 때문이다. [15] 이투루프(에토로후)와 쿠나시르(구나시리) 두 섬은 현재 러시아와 일본이 분쟁 중인 도서 지역이다. [16] 핀란드의 유명 햄버거 체인점으로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와 야쿠츠크 등에 진출해있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