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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
제19대 주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 최병혁 崔秉赫 | Choi Byung-hyeok |
|||
파일:최병혁대사.png | |||
<colcolor=#fff> 출생 | 1963년 | ||
경기도 화성시 | |||
현직 | 제19대 주사우디아라비아 특명전권대사 | ||
재임기간 | 제28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 ||
2019년 4월 17일 ~ 2020년 9월 2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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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 배우자 | 이혜영 | |
자녀 | 슬하 1남 2녀 | ||
학력 |
중경고등학교 (졸업 / 10회) 육군사관학교 ( 학사) 미국 육군참모대학교 (전략학 / 석사) 경남대학교 대학원 ( 국제정치학 / 박사) |
||
경력 |
주한미군전우회 부회장 주한미군전우회 코리아챕터 회장 재단법인 한미동맹재단 자문 |
||
군사 경력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41기)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1985년 3월 28일 ~ 2020년 9월 23일 | |||
최종 계급 | 대장 (대한민국 육군) | ||
최종 보직 |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 ||
주요 보직 |
육군참모차장 제5군단장 육군본부 감찰실장 제22보병사단장 제3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 제3군단 참모장 합동참모본부 해외파병과장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제1경비단장 제76보병사단 참모장 제28보병사단 참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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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외교관.육군사관학교 제41기 출신으로, 예비역 육군 대장이다. 육군참모차장으로 재직했으며, 2019년 4월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정식 내정되었다.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을 받아 진급신고와 함께 대장으로 진급하여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재직하였으며, 2020년 9월 23일 후임 김승겸 대장(육사 42기)에게 연합사 부사령관직을 이임 후 전역하였다.
2. 생애
1963년 경기도 화성시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경고등학교(10회)를 졸업하고 1981년 육군사관학교 41기로 입교해 1985년 3월 28일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같은 날 육군참모총장으로 지명된 서욱 장군과는 사관학교 동기이며, 원인철 합동참모의장(공사 32기), 윤의철 합동참모차장(육사 43기)과는 고등학교 동문이다.[1]대령 시절 제28보병사단 참모장, 제76보병사단 참모장,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을 역임하고 이후 수도방위사령부 작전처장, 합동참모본부 민군작전부 해외파병과장[2]을 거쳤고 미 육군대학원 전략학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준장 시절 제3군단 참모장, 제3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3]을 역임하던 중 2014년 6월 22사단에서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 전임 사단장이었던 서상국 소장(육사 40기)이 보직해임되고 그 후임자로서 소장 진급 후 사단장으로 보직되었다.
사단장 시절에는 별들의 무덤이라는 제22보병사단에서 사단장을 무사히 마치고 24대 사단장부터 27대 사단장까지 하지 못했던 이임식을 하고 2016년 5월 대한민국 육군본부 감찰실장으로 영전하였다.
2017년 10월 중장 진급 후에는 제5군단장으로 보직받았고 군단장 역임 후 2018년 11월 육군참모차장으로 영전하였다.[4]
2.1. 연합사 부사령관
2019년 4월 대장급 인사에서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내정되었고 4월 15일 진급 및 보직신고를 거쳐 대장으로 진급과 동시에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보직되었다.
동기였던 서욱 육군참모총장이 2020년 8월 28일 국방부장관에 지명되면서 박한기 대장의 후임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는데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으로 지명됨에 따라 합참의장으로의 영전은 물 건너간 셈이 되었다. 결국 기수 문제로 인해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직을 끝으로 전역하지 않겠냐는 시각도 있었는데 육군참모총장에 비육사 출신 최초로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이 임명된 데다,[5] 후임 육군참모차장이었던 김승겸(육사 42기) 중장이 대장 진급 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영전하여 예상대로 이번 군인사에서 전역이 확정되었다.
비록 동기와는 다르게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전역했지만, 오히려 뒷말이 없이 전역했기에 스트레스는 다소 적었다고 볼수 있겠다.[6]
2.2. 전역 후
주한미군전우회 부회장, 대한국방보훈회 한국지부 회장, 주한미군전우회 코리아챕터 회장, 서울안보포럼 이사장을 지냈다.2021년 9월 전진구 전 해병대사령관과 함께 윤석열 대선캠프에 합류하였다.
2023년 12월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로 임명되었다. #
2.3. 국방부장관 지명과 고사
2024년 12월 5일,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책임지고 사퇴함과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국방부 장관에 지명됐다. 그러나 비상계엄에 대한 야당의 질책으로 청문보고서가 채택될지는 미지수[7]였고, 본인도 국방부장관 후보직을 고사하며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이후 외교부 본부에서 새로운 국가로의 발령을 대기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보도이후 국방부장관 후보직은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으로 재지명이 이루어졌으나 한기호 의원 역시 고사했다고 한다. #
3. 경력
- 소위 1985년 3월 28일 임관
- 대위
- 소령
- JSA 경비대대 부대대장
- 중령
- 대령
- 준장 3차 진급
- 제3군단 참모장
- 제3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
- 소장 2014년 7월 3차 진급
- 중장 2017년 9월 2차 진급
- 대장 2019년 4월 1차 진급
-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2019. 04. 17. ~ 2020. 09. 23.)
- 전역 2020년 9월 23일 전역
4. 여담
* 키가 장신이다. 172㎝인 문재인 前 대통령과 나란히 섰을 때 10㎝ 이상 크다. 유추되는 키는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과 강인순 장군 정도와 비슷한 185㎝ 정도. 전에 럭비를 해서 풍채도 좋다.
- 준장 3차, 소장 3차, 중장 2차 진급자였기에 대장 진급이 힘들어보였으나, 2019년 4월 대장 진급에 성공하여 1년 5개월간 복무 후 퇴역하였다.[11] 임호영 전 연합사 부사령관과 비슷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최병혁 장군은 제1경비단장, 합동참모본부 해외파병과장, 제3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 제5군단장 등 역임 보직 자체는 요직이 많은데 진급이 늦었다.
- 2003년 제25보병사단 GOP대대장 시절 KBS 기적체험! 구사일생 인터뷰에 출연했었다. (8분 35초부터) 자신의 부하병사인 정○○ 상등병(당시 일등병)이 군 복무 뿐만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자기 희생을 아끼지 않는 그 병사를 보고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12]
- 제22보병사단장 시절 부하 병사가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가 집주인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보직해임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잘 무마되어 징계가 없어 별들의 무덤 저주를 피해갔고 그 결과 대장까지 진급했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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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인철(8기), 최병혁(10기), 윤의철(12기).
중경고등학교가 본래 군인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학교였으나 1981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그렇기에 그 이전에 이 학교에 입학한 세 사람 모두 아버지가 군인 출신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전군 대령 보직 중 준장 진급률이 제일 높은
요직으로, 이 직위에서 10년간 8명이 별을 달았다.
# 전임 과장은 육사 1년 선배
김운용 대장으로, 김운용은 준장 진급이 확정되고서도
아덴만 여명 작전 마무리를 위해 한참동안 준장(진) 계급으로 이 직책에 근무했다.
[3]
준장 보직 중 진급률이 제일 높은 보직이다. 10년간 8명이 진급했다.
[4]
여담으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조정환 예비역 대장(육사 33기) 역시 22사단장-5군단장-육군참모차장의 코스를 밟았다.
[5]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전임과 전임 참모총장이었던
김용우
대장,
서욱
대장 둘 다 대장 1차 보직으로 참모총장직에 임명된 것을 보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장 2차 보직으로 참모총장직을 임명하지 않는 추세였는데
박한기 합동참모의장의 후임으로 지명된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1984년 임관인데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1986년 임관인 만큼 국군 의전서열상 육군참모총장은 1985년 임관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보였는데
남영신 대장이 학군 출신 최초로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하였다. 그대신 연합사 부사령관과
지상작전사령관,
제2작전사령관을 육사 출신이 가져오게 되었다. 애초에 실력, 능력을 떠나서 남영신은 문정부에서 육사의 힘을 빼기위해 밀어주던 인물이었다.
[6]
최병혁 장군이 전역하는 동안 군은 코로나19 부실급식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으며, 훗날의 일이지만 동기인 서욱은 서해공무원 피격사건까지 연루되어 고생했었다. 이때문에 본인은 국방부 장관직을 고사했다.
[7]
원래 라면
국회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후보자여도
윤석열 대통령이 장관 임명을 강행할 수 있지만, 상황이 상황인 데다가 대통령 본인의 탄핵소추안이 보고된 상태라 임명을 강행하기는 어렵다.
[8]
과거엔
제2작전사령부가 아닌 제2야전군사령부였다.
[9]
임 병장 총기사고 수습을 사단장 임기 내내 밤새도록 했다고...
[10]
군단장 취임 전날 예하부대인
6사단에서 발생한
제6보병사단 소속 일등병 유탄 사망사건로 인하여 취임하자마자 사고 수습...
[11]
육사 41기 중장 1차 진급자였던
조종설
특수전사령관은 알자회 출신임이 확인되어 전역대기직인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좌천되었으며, 본인과 함께 중장에 진급한
이석구
국군기무사령관은 야전군단장직 미역임과 계엄령 문건과 관련하여
송영무 당시 국방부장관과 마찰로 인해 진급을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하여 중장 1차 진급자였던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과 본인이 대장에 진급하였으며,
서욱 대장은 진급 후 곧바로
육군참모총장을 지내다가 2020년 9월 18일, 국방부장관에 취임하였다.
[12]
2002년 5월 지하철 서울역에 추락한 취객을 지혈로 응급처치한 그 병사가 정○○ 상등병(당시 일등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