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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범석 |
제2대 신성모 |
제3대 이기붕 |
제4대 신태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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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대 손원일 |
제6대 김용우 |
제7대 김정렬 |
제8대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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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대 장도영 |
제13대 송요찬 |
제14대 박병권 |
제15대 김성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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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대 천용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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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대 송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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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대 서욱 |
제48대 이종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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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욱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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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7대 국방부장관 서욱 徐旭 | Suh W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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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3년 5월 12일 ([age(1963-05-12)]세) | ||
전라남도
광산군 비아면 비아리 (現 광주광역시 광산구 비아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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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 홍은벽산아파트 | ||
본관 | 이천 서씨[1] | ||
재임기간 | 제48대 육군참모총장 | ||
2019년 4월 16일 ~ 2020년 9월 18일 | |||
제47대 국방부장관 | |||
2020년 9월 18일 ~ 2022년 5월 11일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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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1e31><colcolor=#fff> 배우자 | 손소진 | |
자녀 | 슬하 2녀[2] | ||
학력 |
숭의중학교 (
졸업) 광주인성고등학교 (졸업 / 5회) 육군사관학교 (군사학 / 학사) 국방대학교 (군사학 / 석사) 경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 박사) |
||
종교 | 천주교 ( 세례명: 시몬) | ||
신체 | 170cm | ||
경력 | 제47대 국방부장관 | ||
군사 경력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 41기)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1985년 ~ 2020년 | |||
최종 계급 | 대장 (대한민국 육군) | ||
최종 보직 | 육군참모총장 | ||
주요 보직 |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제1군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제25보병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기획참모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 제31보병사단 제93보병연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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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 보병 | }}}}}}}}} |
1. 개요2. 생애3. 주요 직위4. 논란5. 재임 중 사건사고
5.1.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5.2.
북한이탈주민 강화도 경유 월북 사건5.3.
북한이탈주민 철책 훼손 귀순 사건5.4.
대한민국 국군 격리장병 인권침해 논란5.5.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5.6.
청해부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5.7.
성추행 피해 해군 부사관 사망 사건
6. 경력7. 인물평과 일화들, 여담8. 둘러보기[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대장으로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하였고 정경두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의 뒤를 이어 2020년 9월 18일, 제47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으로 취임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국방부장관으로 업무를 수행했다.2. 생애
1963년 5월 12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출생. 1981년 광주인성고등학교를 졸업[3]하고, 육군사관학교에 41기로 입교했다. [4] 1985년 졸업과 함께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2022년 5월 10일 생도생활을 포함해 41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3. 주요 직위
- 중령
- 제1보병사단 제11보병연대 2 대대장 (2001.12 ~ 2004.09)[5]
- 제1보병사단 작전참모 (2004.09 ~ 2005.11)
- 합동참모본부 통합방위계획작전담당 (2005.11 ~ 2006.12)
- 대령
- 합동참모본부 비서실 정책협력담당T/F장 (2006.12 ~ 2007.12)
- 제2작전사령부 감찰참모부 검열과장 (2007.12 ~ 2008.11)
- 제31보병사단 제93보병연대장 (2008.11 ~ 2009.11)[6]
- 제1야전군사령부 작전처 계획편성과장 (2009.11 ~ 2011.05)
- 준장 2010년 12월 1차 진급
- 한미연합군사령부 지상구성군사령부 작전처장 (2011.05 ~ 2011.12)
-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부 작전처장 (2011.12 ~ 2012.11)
- 한미연합군사령부 기획참모부 차장 (2012.11 ~ 2014.04)
- 소장 2014년 4월 2차 진급
- 중장 2016년 10월 1차 진급
- 대장 2019년 4월 1차 진급
- 육군참모총장 (2019.04 ~ 2020.09)
- 전역 2020년 9월
- 국방부장관 (2020.09.18 ~ 2022.05)
이처럼 합참과 연합사의 작전 관련 주요 보직을 차례로 거쳐 현직 장성들 가운데 일약 최고의 작전통으로 인정받아 왔다. 보직 경력들도 화려하지만[9], 동기들 중 모든 계급에서 1차로 진급했던 선두주자 조종설 중장이 알자회 출신임이 밝혀져 좌천된 것도 향후 그의 중용 가능성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결국 세간의 예상대로 1차로 대장 진급했다.
3.1.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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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참모총장 시절의 모습 |
전임 김용우 대장(육사 39기)이 이미 3기수를 건너뛰어 총장이 되었었기 때문에 다음 인사에서 또 여러 기수를 건너뛸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즉 육사 40~41기에 해당하는 임관 기수중에서 총장이 내정될 것으로 예상된 것. 그런 와중에 야전군사령관 경험이 없었던 서욱 대장이 선배인 김운용 대장(육사 40기), 박종진 대장(3사 17기-육사 38기에 상당) 등을 제치고 육군참모총장직에 오르면서 또 다시 기수 서열이 뒤집힌 것.[10][11]
더군다나 문재인 정부에서는 오히려 육사 출신인 게 역으로 불리할 수도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최초의 비육사 출신 육군참모총장이 나올지를 두고 언론이 떠들석하기도 했기에,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상징성이 어마어마해지는 것이다.[12] 사실상 육사 출신의 전유물이었던 총장직을[13] 이번엔 육사에게 주지 않을 것으로 보았으나, 결국 서욱 장군이 총장으로 내정되었다. 이는 비육사 우대 기조에도 불구하고 내외부의 반발을 무마할 만큼 훌륭한 비육사 출신 총장감이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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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일, 육군훈련소 현장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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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5일, 다락대 과학화훈련장 현장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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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일, 신년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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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9일, ROTC 후보생 동계훈련 현장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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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9일, 국방홍보원 국방TV 프로그램 ‘국방포커스’에 출연해 한국 육군의 미래상을 소개하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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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9일, 전북 남원시 노암동 수해 피해복구지원 현장을 찾아 장병들의 노고를 격려했으며 계속되는 집중호우에 군의 피해 예방과 빈틈없는 경계작전태세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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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4일, 국회 국방위, 육군본부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
3.2.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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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장관에 서욱 대장이 지명되면서, 현재 대장인 85년 임관 육사 41기/3사 20기/학군 23기 라인은 합참의장으로 영전할 원인철 공군참모총장 한 명을 제외하고 자연스럽게 전역할 것으로 보이며, 다음 기수인 육사 42기/3사 21기/학군 24기에서 현재 중장에 올라있는 군인들은 육군사관학교 출신뿐[14]이므로, 사실상 서욱 장군 다음 육군참모총장 역시 육군사관학교에서 배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현역 대장 7명 중 최소 5명 최대 6명이 교체되는 인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2020년 8월 31일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지명됐다.[15]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원회는 9월 2일, 서욱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16일에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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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8일 오전 10시 30분 육군참모총장 전역식, 오후 1시 30분 국방부장관 이-취임식, 오후 3시 30분 대통령 임명장 수여식을 가졌으며, 같은 날 원인철 합동참모의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어 청문보고서가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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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취임 다음 날 첫 행보로 주말도 반납한 채 강원도 철원 인근 화살머리 고지를 방문하여 유해발굴사업 이행작업을 점검하였다. 서 장관은 정부의 평화정착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군사대비태세를 잘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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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3일 14시 20분, 공군참모총장 이.취임식을 시작으로 15시 20분 육군참모총장 취임식, 17시 10분 합동참모의장 이.취임식을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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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0일 0시를 기해 윤석열 신임 대통령에게 군통수권 일체를 이양한 후 이날 오전 이종섭 후임 장관에게 이임후. 퇴임해 41년간의 군 경력을 마쳤다.
4. 논란
4.1. 공중급유기를 이용한 미국 출장 논란
2020년 10월 15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공군본부 국정감사에서는 서욱 국방부장관이 한미안보협의회(SCM) 참석을 위해 KC-330 공중급유기를 타고 미국을 방문한 것으로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현장에서 질의를 하던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을 향해 국내 출장 갈 때는 탱크타고 다니면 되겠다고 비판했다. 이에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은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공군 공중급유기가 이번 일과 같은 다목적 용도로 쓰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자가격리를 피하기 위해서는 민항기에 일반인들과 섞여 타고 가기가 어려웠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이번에 출장용으로 사용된 KC-330은 수송기 임무를 겸하는 ‘다목적(Multi-Role Transport Tanker)’ 항공기이며 연합뉴스 , YTN, 한국일보, 뉴스1, MBC 이미 많은 국가에서 공중급유기 겸 수송기를 대통령 전용기나 국방부장관 출장 기타 고위인사들이 해외출장에 사용한다는 점,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검역강화 때문에 일반 민항기를 탑승할 경우 격리 등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 등을 고려하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물론 이 의견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좋은 행동은 아닌 것이, 4대 밖에 안되어서 스케쥴이 상당히 빡빡하게 잡혀 있는 기종이라 이런식으로 빼내는 행동은 임무 수행에 차질을 빚기 쉽다. 플라이트레이더 같은 항공기 이착륙 및 항적추적/중계 사이트 등을 보면 E-737도 4대 밖에 안되어서 24시간 감시는 커녕 특정시간대에 x시간 동안 운용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E-737은 2대가 임무투입 또는 작전대기에 들어가고 나머지 2대는 다음 임무를 위한 정비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 주장은 국군의 핵심 감시 자산인 조기경보통제기와, 비교적 옵션에 가까운 지원 전력인 급유기를 혼동하여 서술한 오류가 있다. 스타크래프트로 비유하자면, 스캔이나 베슬, 옵저버나 아비터를 빼는 것과 수리용 scv나 쉴드 배터리 이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상술한 대로 시그너스는 해외 교민 수송이나 영헌 운반 등의 수송 업무에도 투입된 적이 많았다.
4.2. 북한 미사일 발사는 '도발 아니다' 규정
2021년 10월 23일 북한이 SLBM을 발사한 것과 2022년 1월 5일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것을 '도발'이 아닌 '위협'이라고 표현했다. 즉 남쪽으로 쏜 것이 아니라 '도발이 아니다'라고 규정한 것. 구체적으로는 북한에서 NLL 이남이나 영해, 영공에 미사일이 날아오는 경우에만 한정해 도발이라는 논리. # 그런데 통합방위법 제2조 10항(전문개정 2009. 5. 21.)에 의하면 “도발”이란 적이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국민 또는 영역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영역이란 곧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고 있는 영토, 영해, 영공을 의미하며, 명목상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이지만, 실질적으로 주권이 미치는 영역은 군사분계선 및 북방한계선(NLL) 이남이므로, 통합방위법상, 북한이 자강도에서 북한 영역의 동해로 미사일을 쏘는 것은 법적으로는 도발행위가 아닌 것이다. 즉, 서욱 국방부 장관은 법적으로는 맞는 말을 한 셈이다.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마다 우리 주가와 경제가 피해를 보는 현상이나, 언제고 해당 미사일이 남쪽으로 발사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는 비판이 있다. 무엇보다 명목상이라고는 하지만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전체는 헌법에 나와 있듯이 대한민국 영토이기에, 정말 세세하게 따지자면 도발행위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정의용이 모호하게 다른 답변[18]을 내놓은 것과도 비교된다. # 그리고 무엇보다 해당 법 전문개정이 2009년인데 2019년 김여정이 대북 이중 기준 철회를 요구한 뒤에 '도발이 아니다'고 발언한 것이기 때문에 김여정의 요구를 충실히 따른 것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 김여정은 '우리의 자위권 차원 행동은 모두 위협적 도발로 매도되고 자기들의 군비 증강 활동은 대북 억제력 확보로 미화하는 미국, 남조선식 대조선 이중기준은 비논리적'이라고 주장한 적 있다.
5. 재임 중 사건사고
5.1.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5.2. 북한이탈주민 강화도 경유 월북 사건
5.3. 북한이탈주민 철책 훼손 귀순 사건
5.4. 대한민국 국군 격리장병 인권침해 논란
2021년 4월 18일 코로나 19로 휴가 복귀 후 자가격리된 병사에게 제공하는 도시락이 가격에 비해 상당히 부실하다는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이후 12사단에서도 부실 급식 제보가 나왔다. 이후 31사단은 장병들이 이런 행태를 제보하지 못하도록, 휴대폰을 뺏는다고 한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23일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열린 코로나19 4차 유행 차단을 위한 긴급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육군 격리 장병의 급식 부실 논란과 관련해 “책임감을 느낀다”며 부대 지휘관이 직접 식단 등을 점검할 것을 지시했다. #
5.5.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성추행 사건 뿐만 아니라 은폐, 합의 종용등 2차 가해 또한 철저히 조사하도록 군검찰 및 군사경찰에 지시했다.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이 발생한 후, SBS의 취재결과 서욱 국방장관은 지난 5월 말 이성용 총장에게 별도 전화 보고까지 받았다. 서 장관은 보고를 받고 공군에 엄정 수사를 지시했지만, 사고 부대인 제20전투비행단이 그대로 수사를 맡았으며 2차 가해 의혹 수사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서욱 장관의 지시를 묵살한 것으로 의심되는 상황이다. #
사태가 확대되자, 국방부 검찰단으로 사건이 이첩되었다. 일각에선 서욱 장관 개인의 인품이나 능력과 별개로 위의 격리장병 부실급식 논란까지 겹쳐져서 타군에까지 장악력이 미쳐야 하는 국방부장관으로서의 위엄이나 정치력이 부족한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애초에 명령 권한이 있는 상급자라면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 지시를 관철시켜야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으며, 만약 작정한 듯이 지시를 어긴다면 적절한 조치를 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방부장관에게 인사권이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채 작정하고 말을 안 듣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것.
2021년 6월 4일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의 사의가 수리되면서 서욱 장관의 거취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서욱 장관도 책임을 지고 사임할 것을 촉구했다. #, #
그런데 사실 성추행 은폐사실을 보고 받고 국방부 감찰실에서도 이건 조사해봐야 한다고 보고했으나 묵살했다고 한다. #
5.6. 청해부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5.7. 성추행 피해 해군 부사관 사망 사건
6. 경력
- 1985. 03. 육군사관학교 졸업, 육군 소위 임관(소위)
- 1985. 03.~1985. 07. : 신임장교 지휘참모과정
- 1985. 08.∼1986. 08. : 제21보병사단 66연대 전초중대 소대장( 중위)
- 1986. 08.∼1987. 07. : 제21보병사단 사단장 전속부관
- 1987. 07.∼1988. 06. : 제21보병사단 66연대 훈련 및 작전항공장교
- 1988. 06.∼1988. 12. : 전투병과학교[19] 대위 지휘참모과정( 대위)
- 1988. 12.∼1990. 06. : 제31보병사단 95연대 1대대 1 중대장
- 1990. 06.∼1992. 02. : 제31보병사단 95연대 3대대 12 중대장
- 1992. 02.∼1993. 02. : 제31보병사단 95연대 작전장교
- 1993. 02.∼1994. 12. : 국방대학원 군사전략 석사과정
- 1994. 12.∼1996. 03. : 제56보병사단 218연대 1대대 작전장교( 소령)
- 1996. 03.∼1997. 02. : 육군대학 육대선발과정[20]
- 1997. 02.∼1998. 02. : 제28보병사단 작전처 작전장교
- 1998. 02.∼1999. 04. : 제28보병사단 81보병연대 작전과장
- 1999. 04.∼2000. 07. : 대한민국 육군본부 비서실 군사외교계획장교
- 2000. 07.∼2001. 12. : 대한민국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영관진급관리장교
- 2001. 12.∼2004. 09. : 제1보병사단 11연대 2 대대장( 중령)
- 2004. 09.∼2005. 11. : 제1보병사단 작전처 작전참모
- 2005. 11.∼2006. 12. : 합참 작전본부 통합방위계획작전담당
- 2006. 12.∼2007. 12. : 합참 비서실 정책협력담당T/F장
- 2007. 12.∼2008. 11. : 제2작전사령부 감찰부 검열과장
- 2008. 11.∼2009. 11. : 제31보병사단 93 연대장( 대령)
- 2009. 11.∼2011. 05. : 제1야전군사령부 작전처 계획편성과장
- 2011. 05.∼2011. 12. : 한미연합군사령부 지상구성군사령부 작전처, 처장 ( 준장)
- 2011. 12.∼2012. 11. :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참모부 작전처, 처장
- 2012. 11.∼2014. 04. : 한미연합군사령부 기획참모부, 차장
- 2014. 04.∼2015. 11. : 제25보병사단 사단장 ( 소장)
- 2015. 11.∼2016. 10. :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작전부, 부장[21]
- 2016. 10.∼2017. 09. : 제1군단 군단장 ( 중장)
- 2017. 10.∼2019. 04. :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본부장[22]
- 2019. 04.∼2020. 09. : 제48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 대장)
- 2020. 09.∼2022. 05. : 제47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7. 인물평과 일화들, 여담
- 육군참모총장 출신 국방부 장관 중 한때 제복군인 시절엔 덕망 높은 덕장이었으나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역량을 다하지 못하고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병영부조리나 비리 등의 문제점을 혁신하는 데 동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모습만을 비치는 등 군 출신 장관 고유의 결단력과 추진력 및 정책 면에서 한계를 크게 드러낸 예를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후임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남영신 역시 그러한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군인으로서는 한때 덕장이었으나 군을 통제하는 위치에 선 문민 관료직을 수행한 장관로서는 명령에만 따르는 옛 시대 군인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 인물으로 남게 되었다.[23]
- 국방부 장관 취임 후 12개월 간 7번 대국민 사과를 했다. 북한 귀순자 경계 실패(2월 17일), 부실 급식·과잉방역 논란(4월 28일), 공군 여중사 사망 사건(6월 9일과 10일, 7월 7일), 청해부대 34진 집단감염 사태(20일), 해군 여중사 사망 사건(8월 14일) 대국민 사과.
- 아주 엄격한 지휘 방식으로 유명한 임관 동기인 남영신 장군이나 상벌이 확실한 김운용 장군, 안영호 장군과 달리 제복군인 시절이던 사단장이나 연대장 때 전역자들의 평가가 어떠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즉, 예하부대에 재량권을 최대한 부여하되 자신이 감찰을 통해 필요시에는 끊임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부대를 지휘하는 타입으로 일반 보병 병과 장군이라기엔 꽤나 특이한 잠복지휘+암약형 스타일로 여겨진다. 아래 일화들을 종합하면 덕장과 지장 스타일이 합쳐진 스타일. 이러한 점을 보면 성일환 전 공군참모총장과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평.
- 그와 별개로 군단장 시절에는 부조리 방지를 위해 일선 부대에 대한 기본적인 감찰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던 바 있다. 예하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직할대에서 내부 병영 부조리와 간부들의 무관심이 탓에 그간 큰 문제가 있었음에도 자정능력을 상실해 장병들의 고충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어떤 용감한 병사가 인트라넷 ‘군단장과의 대화’에 직접 제보를 해버렸다.[24] 보통은 보안상 이유란 구실로 거부되거나 일반적 용도는 물론 가해자들은 기겁할 정도로 올라가기 싫어하는 끔찍한 부조리 보고라면 백이면 백 막혀서 더 심한 부조리를 당해 심각할 경우 의문사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몇 달간 진척조차도 없이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서욱 재직 시절 며칠 만에 두꺼운 보고서(...)가 올라오고 한방에 해결된 사례가 있다. 군단장 재임 당시 제39보병사단장 문병호 소장과 박찬주 대장 갑질 사건이 터졌는데, 사건 직후 공관 옆에 함께 기거하던 조리병과 운전병을 바로 올려 보냈다. 특정 요일 특정 시간에는 간부 목욕탕을 용사들에게 개방하여 사우나를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시간에 출입하는 간부는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 등 병들의 복지에도 관심이 깊었다.[25]
- 군단장 이임 후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JSA 북한군 귀순 사건이 터졌는데,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과는 다르게 특별한 은폐 의혹이라든지 작전상, 교리상, 법리상 특별한 문제는 없었고 사건 수습을 슬기롭게 하여 위기관리 대처능력을 보여주었다. 비록 군사지역에서 발생한 응급환자를 군 병원 놔두고 민간병원으로 후송한 것이나, 북한군은 우리 측 지역에 총을 갈기는데 우리는 가만히 맞고만 있었던 것, 대대장이 직접 구출하러 갔다는 미담의 진위 공방 등이 있었지만 말이다.[26][27]
- 군단장 역임 시 예하부대(특히 전방 소부대) 현장지도를 나가는 것을 좋아했다. 재미있는 점은 ‘평상시’ 근무상태를 보는 것을 좋아해 무통보로 끽해야 한 시간 전쯤 언질을 주니 해당 부대는 발길에 불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전방 소부대 입장에선 연대장(보병 병과 기준 現 여단장)만 떠도 상전인 판에 장성들도 못 얕보는 장성인 군단장의 방문은 온 부대가 엎어지도록 최고 수준의 의전을 해야 하기에 정보가 없어 비서실로 불나게 전화 거는 경우가 많았다. 1군단장 취임 이후엔 불과 3달 만에 자신이 대대장 했던 전방 철책부대를 무려 5번이나 다녀왔다고. 이건 사단장 당시에도 마찬가지라 제25보병사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불시에 부대를 방문한 사례도 있었다. 전속부관과 함께 깜깜한 새벽에 본부대 시찰을 불시에 나갔는데, 여느 본부대가 그렇듯 평소였다면 불침번은 스멀스멀에 당직사관도 사실상 눈앞에서 꿀잠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날따라 군기가 훌륭한 용사들이 근무를 서고 당직사관도 기적적으로 깨어있어 “본부대는 근무기강이 잘 서있군.” 하고 격려하고 떠나간 일화도 있다.[28] 유자차를 좋아한다는 정보가 예하부대 사이에서도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현장지도를 가는 곳마다 유자차를 내와서 하루에 네댓 번도 유자차를 마셨단(...) 일화가 있기도 했다.
- 워커홀릭이다. 어느 실무자들보다도 본청에 제일 먼저 출근했으며 매우 늦게까지 일했다. 너무 일에만 열중하니 휘하 참모가 총대 메고 “일도 중요하시지만 참모들과 대화와 소통도 하고 축구라도 한 게임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건의한 적도 있었다. 사실 바쁜 시기가 맞았지만 본인도 부하의 그런 건의를 기분 나빠하지 않고 적극 수용하여 바로 축구 한 게임 하러 나가기도 했다.
- 합참 시설 중에는 출입문이 유리로 되어 있어 초병이 출입인원 신분을 확인하고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는 곳이 있다. 그런데 어느 초병이 근무 중 조작미숙으로 어느 소장(투스타)이 미처 지나가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리는 사고를 낸 적이 있다. 그 소장은 피가 나는 입을 감싸쥐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고, 초병은 어쩔 줄 몰라 식은 땀만 흘리며 난감해하는데 그 뒤에서 어느 중장이 소장을 향해 "이봐 아무개 장군, 자네 뭘 그런 걸 갖고 그러나? 자, 내가 열어줄 테니 이리로 들어오게"라며 직접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그 중장이 바로 합참 작전본부장 시절의 서 장군이다. 그 일이 있은 뒤 그 초병은 서 장군을 볼 때면 장관이나 합참의장 못지않게 큰소리로 절도있게 경례를 붙였다는 후문.
- 영어를 잘한다. 장교 중에서도 요직인 합참, 연합사 라인에서 근무하려면 영어를 못해서는 안 되기에 장군 중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다.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준장 시절 3년 반 내내 근무하기도 하였고 한미 작전에 대한 전문성이 매우 높다. 한미 합동훈련 시 통역장교가 자신의 말을 전달할 때, 그 내용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하게 전달하지는 못했는지 한마디 하기도 했다.[29] 듣는 거야 뭐 말하는 것보단 쉽지 않으냐 할 수 있는데, 일반 생활영어도 아니고 대규모 합동훈련인데 쓰는 용어부터가 차이가 나며 애당초 영어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다면 표현이 어땠는지는 물론이요 통역 내용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30]
- 천주교 신자이지만 타 종교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다. 사모님과 개신교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32], 목사가 서욱 장군을 앞으로 모셔서 짧게 모두말씀을 한 적이 있다.
- 어느 한 사업가가 부대에 강연차 방문한 적이 있는데, 서욱 장군이 중대장일 당시 휘하 병사였다. 사업가분이 술회하기를 당시 상관 말씀이 “서욱이는 별일 없으면 참모총장까지 갈 거다.”라고 하셨는데 진짜로 그 말이 이루어졌다. 당시 그 상관께서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아무한테 빈말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관장교 시절부터 이미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는 위의 무능한 행적들 때문에 정치적인 의미를 붙여서 부정적인 쪽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무슨소리냐면 참모총장 위는 힘들거라는 소리다.
- 소령 시절[33], 병사의 증언에 따르면 장교 1명에 병사 2명이 딸린 부서에서 근무했는데, 이상한 업무 안 시키고 쉴 때 쉬게 해주고 농담도 잘하고 스마트함 그 자체라고 한다. 그 시절에도 다른 장교들이 "별은 무조건 단다"는 평이 있었다고 한다.
- 광주인성고등학교 5회 동기생인 정종제 광주광역시 부시장은 "서욱 장군의 육군참모총장 내정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다”며 “동문들은 물론 광주 출신이 군의 요직에서 일을 하게 돼 지역민으로서 자랑스럽고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교 시절 성실하고 긍정적 사고의 소유자였으며 운동도 잘하고 나름의 기준과 원칙이 명확한 친구였다.”며 “교우관계도 넓고 소통을 잘해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 국방부 장관 재직 중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5.18 민주화운동 관련 질의응답을 받자 "5.18 민주화운동에 군이 개입한 것은 매우 잘못되었다." 라는 응답을 생생히 지켜보고 듣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서욱은 당시 광주인성고등학교 3학년으로 그것도 고향 사람들이 자신 앞에서 전두환이 이끄는 하나회 중심 신군부 반란군이 주축이 된 계엄군들에게 짓밟혀 처참히 죽어가는 참상을 두 눈으로 생생히 지켜보았던 너무나도 가슴아픈 과거가 있었다.[34]
- 육참총장시절 학생군사학교를 시찰하고 장교후보생의 부모와 전화통화를 시켜준 적이 있는데, 이런 드립이 나왔다.(...)
- 민주당의 윤호중 현 원내내표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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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부상서공파.
[2]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 관련하여 유가족에게 사건 해결을 약속하며 슬하에 딸 2명이 있다고 언급했다.
[3]
5회 졸업생이다. 졸업 동기로
박병호,
정종제,
노희용이 있다.
[4]
육사 41기 동기로는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최병혁 대장, 前
국방대학교 총장
이석구 중장, 前
제3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조종설 중장, 前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사령관
이정기 중장, 前
군수사령관
이정근 중장, 前
교육사령관
최영철 중장 등이 있다.
[5]
당시 3대대장이
남영신 現
육군참모총장이다.
[6]
연대장을 향토보병사단에서 지낸 육사 출신임에도 대장 자리에 올랐다.
박선우,
김관진,
한민구 같이 향토보병사단에서 사단장을 지낸 육사 출신 장교가 대장에 오르는 경우는 많았지만, 향토보병사단에서 연대장을 지냈던 육사 출신 장교 중 대장에 진급한 정말 드문 사례. 하지만 이는 서욱 장군이 이전에
JSA,
임진각,
대성동 등 중요한 시설들이 있는 구역을 맡은 1사단에서 근무한 이력을 보면 휴식 안배 차원에서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 2020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한
김정수
제2작전사령관도 연대장을 서욱 장관과 비슷한 시기에 31사단 95연대에서 했다.
[7]
재직중 2015년에는 경남대 대학원에서 '노태우, 노무현 정부의 전작권 전환 정책 비교'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당시 학위논문에 대해 일부 표절 의혹이 제기되어 훗날 국방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그의 논문 지도교수였던
김근식(현재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은 "심사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지적받은 사항에 대해서는 저자의 양심에 달린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8]
제1군단장은
제25보병사단장의 직속상관직이다.
[9]
경력만 화려한게 아니라 판문점 총격 귀순 사건 대응도 매우 호평을 받았다.
[10]
만약 박종진 대장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하였더라면 비육사 출신이라는 상징성이 컸겠지만, 임관 연도로 보나 기수로 보나 애초부터 전임 김용우 총장보다 선배였기 때문에 여전히 모양새가 어색했을 것이다. 물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결단만 있으면 못할 것도 없다지만 군 조직의 특성상 선후임 관계라는 걸 어느 정도는 고려해야 하는데다, 대한민국 육군 역사상 동기가 연이어 총장이 된 경우는 있었어도 후임으로 선배가 총장이 된 경우는 없었다. 물론 김용우 대장이 박종진 대장보다 후배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면서 족보가 꼬였고, 게다가 박종진 대장은 2018년 12월 31일
제1야전군사령부의 해체와 동시에 전역하였기에 서욱 장군이 대장 진급 및 육군참모총장 취임 당시에는 민간인이었다.
[11]
당시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김병주 대장(육사40기)도 총장이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포병 출신이라는 핸디캡과 서욱 중장과의 경쟁에서 밀려 총장이 되지 못했다. 참고로
채병덕 총장(병기)같은 건군기 인물들을 제외하고 비보병 인물이 참모총장이 된 사례는
황의돈 대장 1명뿐이다. 그나마도 황의돈 대장은 정보병과 출신이었는데, 예전 정보병과가 보병의 하위 병과였을 당시 그도 보병병과였다가 정보병과가 독립할 때 따라 나간 것이라 완전히 비보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직도 전방 수색대대장을 정보병과 중령이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정말 보병(합참의장의 경우는
김태영 대장(포병)이 역임한 사례가 있다.)
[12]
실제로 박종진
제1야전군사령관이 참모총장에 내정되었다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고, 김성진 중장(
학군사관 22기-육사 40기에 해당)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유력하다는 기사도 있었다.
[13]
그동안 사실상 육사출신만 할 수 있는 직위가 네 개 있었는데, 육군참모총장 (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대장), 특수전사령관 (중장), 육군사관학교장 (중장)이 그것이다. 특수전사령관은
남영신 중장(당시 계급)이 취임하며 깨졌고, 육사 교장은 육사 출신들의 카르텔이니 뭐니 해도 명색이 육군사관학교이기에 절대로 비육사 출신이 들어올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 둘뿐인데, 그래서 비육사 출신이 총장이 되느냐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던 것이다. 결국 육참총장 역시
남영신 대장이 취임하게 되며 육사 출신들로만 이어져내려 온 기록을 깼다. 하지만,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최근
김승겸 대장이 취임하게 되어 여전히 육사 출신들이 맡게 되는 전통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14]
3사관학교 21기,
학군사관
24기의 최선임자들은 소장이다.
[15]
국방부에서는 서욱 국방부장관 후보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을 합동참모의장 후보자로 지명했다고
설명했다.
[16]
오전 10시경 시작한 청문회가 밤 8시 너머까지 진행됐다. 육사 4기수 선배인
신원식 의원이 서욱 후보자의 컨디션을 고려하여 간단한 식사와 휴식 시간을 제공할 수 있게 국회 국방위원장에게 정회를 요청하기도 했다. 역시 군 선배인
한기호 의원은 마무리멘트를 통해 서욱 후보자의 국방부 장관으로서의 행보를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포함했을 정도로 훈훈한(?) 분위기였다.
[17]
김장수 장군에 이어
육군참모총장에서
합동참모의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방부장관에 임명된 역대 두 번째 경우이다.
[18]
그의 답변은 "전략적 도발에 대한 기준은 ‘한반도의 전반적인 안보 상황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 여부’"라는 것이었다.
[19]
당시는 병과별로 학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전투병과학교에서 교육을 실시하였다.
[20]
소령급 장교를 1년간 교육하며 해당 과정에서의 학업 성적이 진급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21]
육군 작전직능 소장 최요직
[22]
육군 작전직능 중장 최요직
[23]
거기다 위의 정부 기조에 맞출 수밖에 없는 여당 추천 인사만이 임명되는 한국의 국방부 장관으로서 국가관과 안보관을 의심할 만한 발언들을 지속하고 청문회나 국회 감사장에서의 말돌리기 등으로 적정선의 약한 경고나 유감도 표명치 않는 등 평가에 적힌 말 그대로 우유부단한 모습만을 보인 탓에 서욱 장관의 장관으로서의 직무수행도 평판이 전체적으로 좋지 못한 것은 있다. 물론 정권 기조와는 전혀 반대되는 기조를 내비췄다가는
윤석열
대통령(문재인 정부 당시
검찰총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문재인 정부 당시 사법연수원으로 인사 이동)처럼 아예 좌천당하거나 정권 측의 압박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어느 정권이건 기정사실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서욱 전 장관 본인의 논란이 된 발언들을 토대로 분석하면 진실은 서 전 장관이 알지언정, 서 전 장관의 발언들로 들여다본 안보관은 일국의 국방장관을 맡기엔 너무나도 위험하고 의심스럽다는 평가가 군필자들 사이에 많았다.
[24]
이게 왜 엄청난 거냐면, 육군 병사들은 인트라넷으로 군단장과의 대화에 직접 제보할 수가 없다. 보통 그 옆에 참모장과의 대화나 아니면 주임원사의 대화는 작성이 가능하나 군단장과의 대화칸은 인트라넷 아이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이 없는 병사는 간부의 협조를 얻든지 몰래 하든지 해서 계정을 빌려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당직 좀 서보거나 인사, 행정계원이면 간부들 아이디를 다 알고 있다.
[25]
어찌보면 이러한 면 때문에 한때 제복군인이던 때에
장준규,
장경석,
임호영이 덕망을 보이던 시절과 꽤나 비슷하면서도 그들의 상위호환적인 면모가 보인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대북 대응태세와 실로 허술한 대북관을 제외하면 심각한 국내 정치사고를 아직 팡팡 터뜨리진 않았기 때문.
[26]
이건 잘못부터가 아니다. 구출 주체가 군이라 군 병원 후송이 가능해도 군 병원의 안습한 인프라(...)와 귀순병의 총상이 워낙 고급 숙련의가 아니면 소생불가 수준이었기에 결국 국내 중증외상 분야 최고 권위자인
이국종 교수에게 집도를 맡겼다. 당장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살린 이가 이 교수고, 다른 곳도 아닌 미국과 UN의 구역인 JSA에서 총상자 귀순병이 치료 없이 전사했으면 나락급 국제 망신 확정이었다. 응사하지 않은 건 답답해도 냉철히 판단한 것. 또 북측은
소총 반입 금지 국제규정도 어겼는데, 그런 반국가단체 반군들 상대로 대대장이 부사관들과 동행해 직접 귀순병을 구하러 가서 일단 부사관 2명이 직접 몸으로 구출했고 대대장도 상당히 앞쪽까지 간 걸 놓고 96년 강릉작전에서 전사한 故 오영안 준장(당시 대령, 기무대장)을 예로 들며 비판하는데, 오 준장은 결정적 궐석이란 결과를 남겼으나 애시당초 병과 담당부터가 행정사무, 정책 관련인 대공(対共) 보안수사였고 저 대대장은 고급제대 지휘관임을 감안해도 전투병과인 보병이다. 비교를 할 거면
리처드 윈터스를 갖다 붙였어야 했다(...). 결론은 군에다 책임 물으랴 공방전 펼칠 게 아니라 극찬할 일이다.
[27]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으로 군단장이 해임당하고 지휘계통이 줄줄이 징계를 받은 것과 달리, 서욱 장군은 작전본부장 직후 참모총장으로 영전하고 부사관 두 명과 대대장,
이국종 교수는 청와대 초청에 표창까지 받았으며, 이 교수는 후에 명예
대한민국 해군 중령으로 진급까지 했다. 군을 통솔하는 국가 입장에서 봤을 때에도 대처를 잘해주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28]
당직사관 담당이 잦았던 원사(진)의 감각도 남다르단 평이 많다. 괜히 원사를 단 것이 아닌데, 하루만 늦게 시찰을 했어도 경계태세와 기강이 해이하다며 대참사가 벌어졌을 일(...). 만약 너네 불침번 서다가 군단장님이 오셨어. 너, 어떻게 해야해? (경례를 합니다!) 잘했어. 그다음은 뭘 해야해? (무엇을 도와드립니까?)
[29]
김승겸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육사 42기)도 영어가 유창하여 연합사 통역병에게 갈굼을 시전했다고 한다.
[30]
물론
전인범 중장처럼 통역 없이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유년 시절에
외교관인 어머니
홍숙자를 따라
미국에서 생활하며 영어를 습득한 특이 케이스로 보는 것이 옳다.물론 장군 정도 되면 미군과 협력할 일이 꽤 있기에 기본적으로 영어를 다 할줄 알지만 그 중에서도 잘하는 경우.
[31]
같은 천주교 신자인
김영환(육사 42기) 중장은 루치오,
안영호(육사 42기) 중장은 안셀모,
황대일(육사 43기) 중장은 가브리엘이다.
[32]
장성급 지휘관들은 자신의 종교가 아니더라도 부대 통합과 종교 존중의 차원에서 타 종교행사에도 종종 참석한다.
[33]
아래에 적힌 부하 장병들의 인원수로 봤을 때, 대대 작전장교 시절로 짐작된다.
[34]
그러한 트라우마 탓이었는지 확실히 강경한 정치적 메시지를 내던지며 적국인 북중러를 경계하고 압박함을 강력하게 드러내며 미일 측과의 연대, 협의를 자주 하는 모습을 보여온 국민의힘까지 이어지는 보수정권 국방장관들과는 달리 큰 메시지를 던지진 않는 등 역대 장관들 중 확실히 다소 순하고 우유부단한 인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결국 그러한 성격 탓인지 스스로가 결단력 있게 추진해내지 못한 조직 운영 탓에 문제 해결에는 소극적이던 전임자들을 답습하게 되어 병영부조리나 비리 등의 고질적 병폐들은 전혀 줄이지 못하고 악습만 더욱 드러나는 일들이 발생했는데, 5.18 민주화운동에서 죽어간 민주열사들은 모두
자유를 누구보다 총칼과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목숨을 바쳐가면서 외쳤음을 생각하면 그들 중 누군가의 후손이었을 국군 장병들을 상대로
권위주의적 태도를 통해서 입을 막고 억눌렀던 행보만큼은 신분, 정치적 한계를 떠나 서 전 장관은 더욱 비판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