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속령인 도시에 대한 내용은 지브롤터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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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 해협 Strait of Gibraltar | Estrecho de Gibraltar | مضيق جبل طار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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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브롤터 해협은 유럽의 스페인 남부와 아프리카의 모로코 북부 사이의 해협이다.2. 언어별 명칭
언어별 명칭 | |
영어 | Strait of Gibraltar |
스페인어 | Estrecho de Gibraltar |
포르투갈어 | Estreito de Gibraltar |
아랍어 | مضيق جبل طارق |
3. 지리
깊이가 300 m, 해협의 최단 폭은 14 km이다. 판과 판이 만나는 곳인 데다가 몇백만 년 전 한때 지중해가 마르는 소동이 벌어졌을 때( 메시나절 염분 위기) 바닷물이 드나들며 깎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깊이가 깊다. 베링 해협이 최근 빙하기 때 닫혔을 때도 지브롤터 해협은 닫히지 않았다.[1] 메시나절 염분 위기가 끝나 지브롤터 해협이 다시 열렸을때 이 해협은 거대한 폭포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중해는 앞서 말했듯이 증발량이 높아서 염분의 농도가 대서양보다 높다. 그래서 증발량을 메우기 위해 대서양의 바닷물이 지중해로 밀려들기 때문에 표층해류의 방향이 주로 대서양에서 지중해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브롤터 해협 북쪽은 스페인, 남쪽은 모로코이나 다른 나라의 해외 영토가 있다. 북쪽에는 영국의 속령인 지브롤터가, 남쪽에는 스페인의 영토 세우타가 있다.
지브롤터 해협에 다리를 놓겠다는 구상도 있다. 그러나 해협의 최단폭이 14km로 광안대교의 길이의 2배에 달하며 수심이 약 900m 가량이라 다리를 짓기는 힘들고 해저 터널의 구간도 길어져야 하며,[2] 해저 터널이 되면 관광 효과가 사라지는 문제로 아직까지 진척이 별로 되지 않고 있다. 한일 해저터널과 유사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다만 한일 해저터널과 달리 대륙과 대륙을 연결하는 것이라 잠재수요는 매우 많고 북아프리카와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표준궤이기 때문에 철도 문제 등에 비교적 자유롭다.
그리고 여기에 초대형 댐을 건설해 지중해를 싹 말려서 새로운 초대륙을 만든다는 계획도 있었다. 아틀란트로파 문서로.
4. 헤라클레스의 기둥
지브롤터 암벽에서 바라본 모로코의 제벨 무사 산
세우타에서 바라본 모로코의 제벨 무사 산
Pillars of Hercules
Las Columnas de Hércules
أعمدة هرقل
워낙 중요한 지역인데다, 고대시대때 대서양에 관한 터부시되던 금기 때문인지 헤라클레스와 관련된 전설도 있다.
12시련 중 게리온의 소떼들을 약탈하라는 과업을 부여받은 헤라클레스는 서쪽의 가장 끝 땅에 있다는 게리온에게 가기 위해 그 당시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고 있었으며 지중해와 대서양을 가로막고 있었던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가야만 했다. 허나 헤라클레스는 험준한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가는게 어지간히 번거로웠는지, 산을 넘어가는 대신 산맥을 박살내어(…)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해버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이 지금의 지브롤터 해협이고, 부순 아틀라스 산맥의 흔적인 지브롤터 반도의 북(北) 바위산과 아프리카 대륙봉의 남(南) 바위산을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이라고 칭하게 되었으며, 이후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지브롤터 해협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굳어지게 된다. 사실상 지브롤터 해협의 고대 명칭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플라톤은 <티마이오스>에서 헤라클레스가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한 여파로, 아틀란티스가 헤라클레스의 기둥 사이로 빨려들어가 사려졌다고 했으며, 대서양 너머에 사라진 아틀란티스가 있다고 저술했다.[3] 또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의 또다른 의견에 따르면, 원래 존재하던, 지금보다는 더 넓었던 해협을 헤라클레스가 힘으로 좁혀서 괴물들이 대서양으로부터 지중해로 침입해오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우타에 세워진, 신화를 형상화한 동상
여하튼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에 대한 신화가 그 시절부터 전해졌는데,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고대 지중해인들 사이에서 사실상 세계의 끝의 경계선으로 여겨졌으며,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로 가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당시 로마인들은 헤라클레스 기둥 너머 대서양을 Tenebrosum Mare(암흑의 바다)로 여겼다. 심지어 단테의 <신곡>에서도 '헤라클레스가 더이상 넘어가지 말라고 표시해둔 경계선' 정도로 언급될 정도니 전반적인 인식이 어땠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스페인 왕국과, 현재 스페인의 국장에서도 볼 수 있는데, 국장에도 존재하는 두 기둥은 바로 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표현한 것이며, 중세가 지나고 대항해시대와 같은 개척시대가 열리자 일종의 공포의 상징이었던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은 본래 유럽 세계의 요람이었던 지중해 문명권과, 그 너머 대서양의 신 개척지와 신 항로의 경계선을 은유하는 상징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실제로 스페인 국장에 사용된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은, 카를 5세에 의해 금기라고 할 수 있는 두 기둥[4]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5. 전략적 요충지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기 전까지는 지브롤터 해협이 유일하게 지중해와 흑해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출구였다. 그래서 고대 시절부터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상당히 중요성이 높았으며, 해협의 양안에는 항상 도시나 요새가 존재했다.해협의 폭이 바다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좁기 때문에[5]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가기도 좋다. 그래서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세력이 북아프리카로 건너가거나, 반대로 북아프리카를 확보한 세력이 유럽 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지브롤터 해협을 거처가는 길이 가장 편리하다. 애초에 한니발 장군이 북아프리카에에 있는 카르타고에서 포에니 전쟁(로마 원정)을 시작한 바탕이 바로 식민지 히스파니아(에스파냐)였다. 반달족의 경우에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이동했으며, 이슬람 제국의 경우에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진출하는 방향으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넜다. 특히 이슬람 제국의 경우에는 해협의 이름인 지브롤터를 붙여주기까지 했다.
5.1. 이슬람 vs 기독교 (해협 공방)
레콩키스타 후반기 들어 이슬람 세력이 점차 남쪽으로 밀려나면서 지브롤터 해협은 중요한 전장이 되었다. 711년 이후 최초로 지브롤터 해협에 접근한 기독교 세력은 카스티야 왕국으로, 1278년에 알헤시라스를 포위했으나 격퇴되었다. 그러나 1292년에 카스티야는 타리파를 점령하여 해협에 교두보를 확보했고, 1309년에는 지브롤터를 점령하며 기세를 올렸다. 이에 모로코-그라나다 연합군이 두 도시를 수차례 회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다만 카스티야 역시 기세를 이어 알헤시라스를 포위하나 격퇴되었고, 모로코의 마린 왕조가 마침내 1333년 지브롤터를 수복한다. 뒤이은 카스티야의 공세를 막아낸 마린 왕조는 남은 타리파를 공격하나, 1340년 리오 살라도 전투에서 대패하고 오히려 카스티야 군이 2년의 포위 끝에 1344년 알헤시라스까지 점령하자 결국 이베리아 반도에서 전면 철수하게 된다.그럼에도 그라나다 왕국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웠다. 1349-50년의 지브롤터 포위를 이겨낸 그라나다는 1369년 알헤시라스를 수복하지만, 1379년 카스티야가 반격을 준비하자 도시를 파괴한 후 주민들을 지브롤터로 소개시킨다. 이후 해협에는 30년 넘게 평화가 지속된었다. 그러던 1415년, 포르투갈이 최초로 해협 건너의 세우타를 기습 점령했다. 다만 1436년 카스티야의 지브롤터 포위는 또 격퇴되었고, 1462년에야 점령했다. 그리고 1471년에 포르투갈이 뒤이어 탕헤르까지 정복하며 지브롤터 해협은 북안은 스페인, 남안은 포르투갈이 지배하는 형식으로 완전히 기독교 세력 하에 놓였다.
1292 ~ 1309 타리파 (†)
1309 ~ 1333 타리파, 지브롤터 (†)
1333 ~ 1344 타리파 (†)
1344 ~ 1369 타리파, 알헤시라스 (†)
1369 ~ 1379 타리파 (†)
1379 ~ 1415 타리파, 알헤시라스 (†)
1415 ~ 1462 타리파, 알헤시라스, 세우타 (†)
1462 ~ 1471 타리파, 알헤시라스, 세우타, 지브롤터 (†)
1471 ~ 1684 타리파, 알헤시라스, 세우타, 지브롤터, 탕헤르 (†)
5.2. 스페인 패권기
이후 대항해시대가 도래하면서 제해권이 점점 더 중요해지자 지브롤터 해협의 가치는 더 높아졌으며, 각 세력 간의 마찰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핵심 거점인 지브롤터는 왕령지였음에도 1467년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 구스만이 점령해 자립했다가 1507년에야 왕령지로 회복되는 일을 겪었다. 1580년, 포르투갈이 사실상 스페인에 병합되며 해협의 양안은 스페인 제국의 통제 하에 놓였다. 1640년 이베리아 연합이 해체된 후에도 세우타는 그대로 스페인 령으로 남았다. 한편 탕헤르는 짧은 2차 포르투갈 시기를 거쳐 1661년 영국에 양도되었는데,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거쳐 알라위 왕조가 공격한 끝에 결국 1684년 후자에 넘겨졌다. 따라서 이슬람 측은 약 2세기 만에 해협의 남부 일부라도 확보할 수 있었다.1471-1580 알헤시라스, 지브롤터 (스). 세우타, 탕헤르 (포)
1580-1640 알헤시라스, 지브롤터, 세우타, 탕헤르 (스)
1640-1661 알헤시라스, 지브롤터, 세우타 (스). 탕헤르 (포)
1661-1684 알헤시라스, 지브롤터, 세우타 (스). 탕헤르 (영)
1684-1704 알헤시라스, 지브롤터, 세우타 (스). 탕헤르 (모)
1704- 알헤시라스 (스), 지브롤터 (영), 세우타 (스), 탕헤르 (모)
5.3. 영국의 지브롤터 정복
탕헤르를 포기하며 해협을 떠났던 영국은 1704년에 이번에는 무력으로 지브롤터를 장악하면서 250여년간 스페인이 쥐고 있던 해협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스페인은 지브롤터 회복을 위해 1704-05년, 1727년, 그리고 미국 독립전쟁을 틈타 1779-83년에 대대적으로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이후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지브롤터에 항상 본국함대와 맞먹거나 적어도 그 다음 순위가 될 정도의 해군 전력을 집중해서 몰타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지중해의 제해권을 유지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5.4. 2차 대전기
19세기 들어 신생 강국으로 떠오른 독일은 이러한 영국의 길목방어를 눈 뜨고 볼 정도로 무력하지는 않았다. 독일은 지중해의 제해권을 위해 U보트를 지중해로 투입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브롤터에 집중한 영국의 해군 전력이 너무 막강한데다가, 앞서 언급했듯이 지브롤터의 해류가 대부분 지중해로 들어오는 방향으로만 흐르기 때문에 잠수함 같은 것을 투입하면 지중해로 들어오기는 쉽지만, 나가기는 거의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하여 지브롤터의 덫이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으로 상황이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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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작전에 대한 스페인의 신문 기사 |
1941년, 히틀러는 또다시 지브롤터를, 이번에는 스페인 전부를 공격할 이자벨라(Isabella) 작전을 구상한다. 프랑코가 계속 중립을 지키자, 프랑코가 연합군에 가담하거나 연합군이 나폴레옹 전쟁 때처럼 스페인을 통과해 서유럽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한 것이지만, 계획에 그친다.
5.5. 현대 분쟁지
세계 대전이 종전된 후에는 항공력의 발달과 영국의 세력 약화 등이 합쳐져서 이전처럼 절대적 요충지의 지위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21세기의 시점에서도 지중해나 흑해에 있는 군용함선들이 외양으로 나가려면 수에즈 운하로 나가지 않는 한 반드시 이 해협을 거쳐야 하므로 지정학적 중요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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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롤터 해협의 영해 지도.[6] |
6. 해저터널 건설
- 길이 : 38.7km (해저 구간 27.7km)[7]
- 예산 : 160억 프랑(164억 달러; 22조 3천억원)
- 완공 : 2030년 이후
직선 거리는 13km지만, 굴곡진 이유는 최대한 덜 깊은 바다를 지나기 위해서이다. 애초에 최단 거리인 정 중앙부를 피한 것도 너무 깊어서 공사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출처 : Kotra코트라 *
7. 대중매체
특전 U보트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자 한 승조원이 경악해서 "지브롤터? 그곳은 바늘구멍보다 좁아!"라는 대사를 친다.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에서는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제3제국이 다트 이슈드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어이 이 지브롤터 해협에 다리를 놓는 데 성공한다. 다만 건설하는 도중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작중 크라이사우 서클의 공작으로 한 번에 허리가 끊어지는데, 이 때 사용한 구체 역시 다트 이슈드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동전사 건담 SEED DESTINY에서도 이곳이 중요한 곳으로 언급된다.
대항해시대 2에서는 알제항에서 가까운데다가 함대가 지나가는 길목이 좁아서 하이레딘 형제한테 끔살당하는 초보들이 많았다.
오버워치 맵으로 감시 기지: 지브롤터가 등장한다.
[1]
향후 몇십만 년 뒤에 없어질 것이라고는 한다. 자세한 건
유라시아 문서로.
[2]
해협을 가장 짧게 건너는 단면의 최대 수심은 900 m지만, 대서양 쪽으로 좀 더 벗어난 지점을 지나는 단면의 최대 수심은 300 m 이다. 이 역시 현대 토목기술로 다리를 건설할 수는 없지만
해저터널은 다리에 비하면 시도할만한 수준이다. 이미 지브롤터 해협의 두세배는 되는
도버 해협에
채널 터널을 뚫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니.
[3]
대서양이 Atlantic Ocean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4]
즉, 지중해와 대서양의 경계
[5]
그래도 비슷한 속성의
보스포루스 해협이
이스탄불 도시 안을 흐르는 큰 강 정도 넓이인 데 비하면 지브롤터 해협은 훨씬 넓은 편이다.
[6]
다만 해당 지도는, 스페인 관할인
파슬리 섬의 영해를 표시하지 않은 오류가 있다. 해당 지도에서 세우타 옆에 미세한 붉은 점으로 표시한 곳이 파슬리 섬이다.
[7]
도버 해협을 지나는
채널 터널이 대략 50km (해저 구간 37.9km), 일본의
세이칸 터널이 약 54㎞(해저 구간 23.3km)인 것을 보면 충분히 건설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