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52년 3월 18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시까지 파주 문산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대한민국 해병대가 중공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2. 배경
서부전선의 장단-사천강은 서울로부터 거리가 25마일밖에 되지 않았고 중공군은 공세가 예상된 터라, 한국과 미국의 해병대가 이곳을 수비하기로 하고 제1해병연대가 3월 18일 이곳에 배치되었다.3. 중공군의 1차 공세
1952년 4월 1일부터 6월 29일까지 진행된 1차 전투에서 해병대는 연대장 김동하 대령을 필두로 중공군의 2차에 걸친 기습공격과 3회의 야간공격을 막아내었다.4. 중공군의 2차 공세
1952년 9월 6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2차 전투에서 연대장 김석범 대령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라는 말과 함께 중공군의 대대 규모 공세를 역습으로 격퇴하였다. 그러나 이후 중공군이 전차포와 자주포를 동원하여 36고지와 67고지를 포위공격하자, 아군 해병대도 전차부대와 포병을 동원하여 가까스로 방어하였다.5. 중공군의 3차 공세
10월 2일부터 7일까지 치른 3차 전투에서는 수도권 방어 임무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해병대 제1연대가 제1전투단으로 재편성되어 전차중대, 공병중대가 보강되었고 김석범 준장의 지휘 아래 중공군 공격을 유인 역습 작전으로 격퇴했다. 다만 이때 1차 전초선을 중공군에게 내주고 2차 전초선으로 후퇴하였다.6. 중공군의 4차 공세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치른 4차 전투에서는 통영 상륙 작전을 이끈 김성은 대령이 지휘를 맡아 중공군의 대규모 2차 공세를 저지, 적의 전투의지를 상실시켰다.7. 결과
해병대는 적 사살 14,017명, 포로 11,011명의 전과를 올리고, 전사 776명, 부상 3,214명의 피해를 입었다.특히 개성-문산 축선을 지켜 수도권 방어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