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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이방과 定宗 李芳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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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과 (3화에서 조정에 들어설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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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 ||
<colbgcolor=#A60C0C,#360505><colcolor=white> 묘호 | <colbgcolor=#ffffff,#111111> 정종 (定宗) | |
작호 | 영안군 (永安君) | |
신분 |
밀직부사 (3회 ~ 10회) → 영안군 (10회 ~ 18회) → 의흥친군위 절제사 (11회 ~ 18회) → 조선국 왕세자(18회 ~ 19회) → 조선국 국왕 (19회 ~ 21회) → 조선국 상왕 (21회 ~ 28회)[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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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회차 | 1회 ~ 28회 | |
배우 | ||
김명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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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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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2대 왕.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 사이의 차남. 이방원의 둘째 형이다. 묘호는 정종(定宗), 작호는 영안군(永安君).
2. 캐스팅
김명수는 태조 왕건에서 왕규[2], 불멸의 이순신에선 와키자카 야스하루, 대조영에서 검모잠, 정도전에서 공민왕 등 사극 경력이 풍부한 중견 배우다.후술한 캐릭터에 걸맞은 역대 정종 중 가장 카리스마 있고 입체적인 인물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방원 역할을 맡았던 주상욱과는 12년 차이가 나는데[3], 마침 이방과와 이방원도 10살 차이로 큰 형과 사실상 막내[4]의 나이 차이를 보여주는데도 적합한 나이 터울이다.
3. 극중 묘사
시종일관 점잖은 성격인 맏형 이방우와 달리 화통한 성격의 행동파. 이성계와 함께 전장을 누비던 무관 출신답게 형제들 중 무력이 가장 뛰어나며, 후술할 이숙번과 이방원과의 에피소드를 종합해보면 극 전반을 통틀어서도 탑급으로 보인다. 작중에서의 인물상은 역대 사극의 이방과 중 가장 역사 기록에 충실하다.[5]태민영[6]이 연기한 유약하기만 했던 용의 눈물의 이방과나 노영국[7][8]이 연기한 지나치게 정치적 능력이 강조된 대왕 세종의 이방과, 무예는 수준급이나 정치에는 별로 의지가 없는 인물로 그린 이태림이 연기한 정도전의 이방과나, 가족들에 대한 효심과 우애가 넘치는 장남을 대신하는 둘째형 이미지의 서동원[9]이 연기한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과 등과는 다르게 여기에서는 화통한 성격에 리더십도 갖추었으며, 부모에 대한 강렬한 효심, 이성계의 무용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아들이라는 게 두루 강조됐고 동시에 '우왕 제거' 같은 정치적인 주장도 적극적으로 표현하였다.[10] 불가피한 경우 권력투쟁도 피하지 않을 만큼 강단있고 당당한 성격을 지녔다. 그리고 이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방원에게 손쉽게 권력을 넘겨준 것에 대해서도 명확한 이유를 설정해놓았는데, 무엇보다도 "가문"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이방과에게 권력은 2순위에 불과하며 가문의 화합을 위해서라면 왕위조차도 버릴 수 있는 것.
실제 역사적 기록에서 보이는 '정종 이방과'의 여러 행동들은 작중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우선 이방과는 유약한 인물이 절대 아니었으며 나름 가문의 입지를 드높이고 목적을 이룸에 있어 과감한 방식도 서슴지 않는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아버지 이성계 못지 않은 무력을 겸비했으며,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의 가문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너자 우왕 제거 등 정치적인 행동에도 적극 나섰다. 이후 조선이 건국되고 자신의 형제들을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행동대장 격으로 지휘했으며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이후, 가문의 수호를 위해 노력한다. 즉 작중 이방과는 그동안 대중매체에서 묘사되던 유약하거나 단순히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 아닌, 가문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신하로서 왕실마저도 위협하며 반대로 가문의 화합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왕위까지 넘기는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냈다. 그야말로 가문이 최우선인 캐릭터.
1화에서는 형, 화상과 함께 자신들을 감시하던 병사들을 죽이지 않고 칼등과 힘으로 제압한 뒤 탈출했고 2화에서는 최영의 군사들이 짠 방진을 정면돌파하여 간단히 뚫어버렸다. 9화에서는 본인도 백전노장인 이성계가 보기에도 백만대군을 맡겨도 안심할 수 있다고 할 만큼 무장으로써 능력을 높이 평가해주었다. 17화에서는 방원을 주먹질로 쓰러뜨린 것은 물론 이숙번[11]을 간단히 패대기쳐 쓰러뜨린다.[12] 19화에서는 말을 타고 달리면서 이성계의 철궁으로 활을 쏴 전부 명중시켰다. 20화에서는 곤룡포를 입은 비무장 상태에서 무장한 방원이 휘두른 검을 피함은 물론 검을 한 손으로 잡은 뒤 이방원의 갑옷 입은 복부에 주먹을 날려 쓰러뜨리고 이방원이 놓친 검을 주워들려하자 발로 짓밟고는 그대로 검을 빼앗아 제압했다. 이때 이방과가 마음만 먹었다면 칼을 들고 대전에 들어와 임금을 위협한 현행범이었던 이방원은 왕이고 뭐고 그 자리에서 참살당했다.
한편으로 사료와 기존 매체들에서 공통적으로 묘사되었던 착하고 정이 많은 성품도 충실히 반영하면서[14] 역대 이방과 캐릭터 중에서 꽤나 입체적이고 무게감있는 모습을 보인다. 호걸스러운 면모와 부드럽고 온화한 카리스마가 공존하는 인물. 또한 아내인 정안왕후를 아끼고 존중하는 애처가의 면모도 있다. 정안왕후와의 마지막 여행신은 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훈훈한 부부의 애정신.
폐하 욕은 참아도 아버지 욕은 못 참을 정도로 효심이 깊으며 다른 형제들이 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질 때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자고 동생들을 다독이거나 박대하는 아버지에게 원망의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등 이성계의 아들 중 가장 효심이 깊은 모습으로 나온다.[15] 그래서 이성계가 무인정사 후 그에게 어쩔 수 없이 보위를 물려주었음에도 누누 자신의 세력을 모아 이방원을 견제하라고 충고했고[16] 이방과도 처음엔 아버지를 고통 속에서 해방시키려고 이방원과 대립하기도 했다.
사실 대단한 억제기 노릇을 했는데 친형제인 방간과 전투까지 벌이고 대전에 피묻은 칼을 들고 올만큼 눈이 돌아가 있던[17] 이방원을 적절히 혼내주고 자기 손으로 벨 수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 용상을 얻기 위해 폭군도 불사하겠다는 방원에게 인간으로 남으라는 충고를 해줘 흑화를 막아줬다. 이방원이 왕이 된 이후에도 정치적으론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사적으로는 그에게 계속 충고하고 폭주할 기미가 보이면 적절하게 제동을 거는 등, 이방원의 정신적 지주이자 우군으로 계속 묘사된다.
반면 이성계가 무장으로써 높이 평가한 것과 달리 정치인으로써는 부족하다고 한 것처럼 아버지 이성계가 식음을 전폐하고 신세 한탄만 하고 있자 차마 보다 못해 이성계를 밖으로 보내주고 이는 결국 화로 이어진다. 이처럼 여말선초의 격동하는 정치판에서 방과의 선하고 의심할 줄 모르는 성품은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요약하자면 기본적으로 리더십있고 그릇이 큰 인물이며[18][19], 이성계 못지 않은 훌륭한 무장에다 가족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도 확실한 좋은 아들이자 형이며 남편이지만, 난세의 정치판에서 구르기엔 너무나도 착한 사람인셈.
이렇게 모든 가족들이 이방원을 증오하고 두려워할 때, 유일하게 끝까지 형으로서 그를 감싸주려 한다. 때문에 아버지와 이방원 사이에서 이들을 조율하고 이방원이 이성을 잃지 않게 설득하며 고군분투했다.
어찌보면 家를 넘어 國를 목표로하는 이방원에게는 정 반대의 행보를 걷는 인물로 이방과에게는 國보다는 家가 더 중요했다.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기 위한것도 아버지인 이성계를 위해서였고 세자와 왕위에 오르며 이방원과 아주 잠시 정치적인 스탠스를 다르게 취한 것도 이방원과 이성계를 화해시키기 위한 노력때문이었고, 양위를 하는 것[20] 그 후 상왕이 되어서도 정치문제에서도 가족 문제만 개입하는 것을 보면[21] 이방과는 확실히 國보다는 家인 인물이었던 것.[22]
4. 극중 행적
4.1. 조선 건국 전
형 이방우와 이화상과 함께 인질로 잡혀있는 모습으로 첫 등장을 하는데, 아버님이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구국의 결단을 내리셨으니 우리는 목숨으로 갚자는 이방우를 답답해하다 계책을 짜내서 탈출에 성공한다.[23] 감시하던 병사들을 죽이지 않고 기절만 시키느라 애 좀 먹는 이방우와 달리 능숙하게 전부 제압하는 무예와 수준급 임기응변 등 실력 있는 무장이라는 점이 강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최영의 군사들을 피해 달아나던 중 강씨가 한씨에게 한 "방우는 영민하고, 방과는 용맹하다."로 정리할 수 있다. 이후 아버지가 있던 군영으로 달려가 동생 이방의와 이방간에게 군복과 무기를 받으면서 나름 환영받는다.개경 시가전에서도 길을 막고 버티는 최영의 군사들을 형과 동생들과 함께 기병을 이끌고 선두 진격하면서 뚫어버릴 정도로 무예가 뛰어났다.
회군이 마무리 된 뒤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우왕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이방우에게 멱살을 잡혔고, 이후 우왕이 아버지 이성계와 가족들을 죽이기 위해 집을 습격한 사건 이후에는 집에서 형제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아버지 때문에, 가족들이 죽을 뻔 했다는 이방간의 말에 격분해서 "폐하를 욕하는 건 참아도 아버님을 욕하는 건 못 참는다."며 일갈한다. 이후 언쟁이 격해져 이방간이 대도를 뽑자, 가소롭다는 것처럼 역시 칼을 뽑는데 무예 실력은 형제들 중 압도적인 듯하지만, 실제 칼싸움은 일어나지 않았고, 뒤이어 그 자리에 찾아와서 아들들의 다툼을 목격한 이성계에게 들켜서 지휘봉으로 호되게 두들겨 맞는다.[24]
상왕인 우왕이 자객을 보내 아버지를 해하려 한 것과 자신의 막내 동생이 당한 것에 대해 분노했는지 얼굴이 굳은 상태로 뜨겁게 달군 쇠꼬챙이를 김저에게 겨누며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지옥을 맛볼 것이라는 경고를 하는데[25], 얼마나 살벌하게 했는지 김저가 배후가 우왕임을 실토해냈고, 우왕을 처리해야 한다고 펄펄 뛴다. 이방원이 집안을 대표해 사대부의 회합에 참석하자 매우 불안해하는데 그 이유가 이방원을 시기해서가 아니라 젊은 이방원이 쟁쟁한 문신들 사이에서 '우왕을 처리하자는 의견을 내지 못할까 두려워서'[26]였다. 이방원이 집안을 대표하는 게 불만인 이방간에게 이방원이 가족을 구하려 그리 애썼는데 뭐가 문제냐고 꾸짖고 먼저 자리를 뜬다. 폐가입진으로 창왕이 폐위되고 우왕이 유배된 뒤 이방의, 이방간과 함께 축배를 기울였고, 이후 밀직부사로 임명되어 그와 같이 우부대언으로 임명된 동생 이방원과 함께 조정에 출사하여 조회에 참석한다.
다른 신하들이 들어오기 전 셋이서 빈 용상을 바라보는데 이성계가 용상을 가리키며 저기가 가장 높은 자리이며 하늘의 뜻을 가진 자들만 앉는 자리라고 했는데 실제 그 자리에 있었던 셋은 다 용 상 에 앉은 인물이라는걸 고려하면 의도된 연출인듯. 게다가 이 셋은 모두 왕-상왕 테크를 탄 인물들로 정말 높은데까지는 다 올라본 인물들이라는걸 생각해보면...[27]
공양왕이 아버지를 왕권으로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자 야밤에 가별초를 이끌고 궁 밖에서 소란을 일으켜 공양왕을 압박하려는 이방원을 도와준다. 하지만 그 결과 우왕과 창왕이 죽게 되자 민심이 흉흉해졌고, 이방원과 같이 말을 타고 가다가 이를 보게 되는데, 이런 분위기를 이해 못하는 이방원에게 그 자리를 떠나자고 말한다. 이후에는 이방의, 이방간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인다.
공양왕 3년(1392년), 전주 이씨 일가가 낙마로 중상을 입은 이성계를 찾아온 자리에서, 이방원이 아직 깨어나지 못한 이성계를 모시고 강경하게 개경 복귀를 주장하자 이에 가장 먼저 동의하여 개경으로 복귀하기로 한다.[28] 이 시점부터는 장남인 이방우가 잠적한 뒤라서 가족 중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장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자 숙부인 이화와 매부인 이제와 함께 공양왕의 처소로 찾아가서 공양왕에게 정도전 일파를 석방시키고 김진양을 국문에 처해달라고 압박했고 결국 공양왕이 승락하자 재빠르게 물러났다. 이 때 공양왕이 "신하들을 불러서 논의를 해야 한다."고 하자 공양왕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면서 "어떤 신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몽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으로 도망간 자들을 말입니까?"고 답하며 악역 포스를 유감없이 보여줬고[29], 심지어 나갈 때도 뒷걸음이 아닌 그냥 등 돌리고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아마 공양왕이 이전에 아버지인 이성계를 압박하며 망신을 준것에 상당히 분노했던 것 같다. 그 뒤 직접 김진양을 국문해서 김진양에게 정몽주가 사주해서 정도전 탄핵 상소를 올렸었다는 진술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일로 이성계의 눈밖에 나버려 저택의 출입을 금지당한다. 이 때문에 이방간이 화를 내고 자리를 뜨자 "저, 저놈이 또..."라고 말하며 한숨을 쉰다. 그러고 남은 동생들을 돌아보며 포기하지 말고 계속 찾아오면 언젠가 아버지 마음도 풀릴 테니 그렇게 하자고 설득한다. 그리고 다시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갔으나, 또 문전박대 당한다. 그런데 이때 정도전을 비롯한 신하들이 국새를 가지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잠시 후 이화상으로부터 이성계가 국새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게 된다.
그날 밤, 동생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기쁨을 나누고, 아버지에게 용서받지 못할 거라고 걱정하는 이방원을 너야말로 대업의 일등 공신이라며 위로한다. 며칠 후, 아버지의 즉위식에 동생들과 함께 참석하려 하지만[30] 또 다시 문전박대 당하면서 동생들과 허탈해하면서 물러난다.
4.2. 조선 건국 후
이성계가 대신들과 세자를 누구로 할지에 대해 의논할 때 형 이방우 다음 차례로 언급된다. 이지란과 이화가 추천했지만 이성계에게 정치에 미숙하다는 평을 들으며 탈락한다.[31]이방원이 이방석 세자 책봉 사실을 알고서 자신에게 찾아와서 항의를 하자고 하지만 아버지의 뜻인걸 어쩌겠냐는 말만 하며 연거푸 술잔만 들이킨다. 독한 소주를 빈속에 안주도 없이 연거푸 넘기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납득할수 없는건 마찬가지이지만 다같이 아버지에게 홀대받고 있는 처지에 자식으로써 거스를 수도 없어 술만 푼다. 이 모습을 이화상과 그의 부인 김씨가 멀리서 지켜본다. 이후 이방원이 아들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른 형제들과 찾아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후 강씨와 대신들의 요청을 못 이긴 이성계의 부름을 받고 입궐하게 된다. 이성계로부터 의흥친군위 절제사로 임명을 받게 됐는데, 독대하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보는 왕이 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감개무량해하면서 오랜만에 훈훈한 환담을 나눈다. 하지만 물러나기 전에 이성계에게 저희를 용서해주시는거냐고 묻자 이성계는 대답을 회피한채 계속 가라고 재촉하고 마지못해 결국 돌아가게 된다.
이후 동생들에게 모두 절제사 직위를 받은 것, 그리고 아들로서는 용서를 받지 못한 것을 전한다. 당황과 분노를 표출하는 동생들에게 공감하면서도 신하로서 받아들여주신만큼 시간이 더 지나면 자식으로서도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타이른다.
신덕왕후가 죽은 후에 슬픔으로 몸져누운 아버지가 아들들을 불렀을 때 잠시 등장해서 병석에 누운 이성계의 안위를 묻는 장면으로 짧게 등장하고, 이방원이 하륜과 함께 거사를 논의하던 때, 이방원 측에게서 절대 아버지 이성계에게 칼을 겨눌 인물이 아니라며 사실상 따돌림당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15회에서 사병을 다 빼앗긴 후 상기된 얼굴로 울분을 삼키며 대나무를 썰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 사병을 혁파한 것이 이방석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이복 형들과 종친들의 힘을 빼놓기 위함임을 파악하면서, 이방석의 자질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동생 이방원에게 조선을 세운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은 세자 자리이니 네 것이 아니라며 이방원에게도 순응할 것을 당부한다. 이런 말을 들은 이방원이 어찌 큰 형을 닮아 간다는 핀잔을 주자, 형하고 사상차로 갈등했던 일이 떠올랐던건지 호탕하게 웃는다.
4.3. 1차 왕자의 난 당시
정도전이 한씨 소생 왕자들을 모두 행랑채에 가두었을 때, 이방과는 소격서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실록에서도 1차 왕자의 난 당시 정종(이방과)는 태조의 쾌유를 비는 제사를 했다는 기록을 반영했다.소격서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다가, 이방원이 보낸 이방의와 이방간의 말을 듣고 급히 궁에서 멀리 도피하게 된다. 그러던 와중, 궁에서 들리는 함성 소리를 듣고는, 지금까지 들은 소식들과 맞추어 즉시 상황을 판단한다. 첫째, 지금 들리는 함성소리는 정도전의 군사들이 아니다. 그랬다면 자객을 동원할 리가 없다. 둘째, 삼봉이 형제들을 죽이려 했기에 이방원이 이에 반격한다는 명분으로 동원할 수 있는 병사치고는 그 수가 많으며 또한 곧바로 투입되었다. 그렇다면 이는 이방원의 정당방위성 군사행동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된 정변이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분노한다.
그러면서 부왕에게 돌아가려 하지만, 이방간이 군호도 모르는 상태에서 근처에 접근했다간 야음으로 인해 병사들이 왕자인 줄 못 알아보고 죽일 수도 있다며 만류하자 어쩔 수 없이 피신한다.
이방간의 집에 대피해 있다가 상황을 파악하러 나갔던 이방간의 아들 이맹종이 군사를 일으킨 주체가 이방원이란 점을 확인시켜주자 분기탱천해서 이방원을 찾아가 주먹질을 한다. 자신을 붙잡아 말리는 이숙번을 잡아 패대기치고는 이방원을 때리길 멈추지 않고, 결국 하륜이 칼을 빼고 그의 목에 들이대고 나서야 멈춘다.
이방원이 수하들을 물리고 단 둘이 남게 되자, 자신을 세자로 세우려고 상소를 올리려 한다는 것을 듣고 온 방과는 역적질이나 패륜질은 혼자 할 것이지 왜 자신을 방패로 삼아 끌어들이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자 이방원은 아버지를 지켜드리기 위해서라도 이방과가 잠시 세자를 맡아 가교의 역할을 한 뒤 자신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이방과는 아버지를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이방원은 지금은 안 된다며 거절하고 나가버리고, 이방과는 손을 책상에 내리치며 분노를 삼킨다.
이방우 다음 가는 효자임과 동시에 형제들 중 방원을 많이 아끼고 배짱도 잘 맞았던 방과 역시 방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버지 못지 않게 점점 달라지고 있음이 묘사되고 있다.
야심한 밤에 입궁을 시도했으나, 이방원의 지시를 받은 이숙번이 가로막아서 거부된다. 자신에게 유독 무례하고 구는 이숙번에게, 정안군의 권세를 믿고 안하무인이라면서 비난하자 이숙번도 그걸 아신다면 얌전히 물러가라면서, 칼까지 들이밀며 "정안군의 허락없이 궁궐을 출입하려는 자 누구든 베도 좋다고 명하셨다!"고 윽박지르자, 분을 참고 물러선다.[32]
4.4. 갑작스런 등극, 이방원과의 대립
이후 부인인 김씨와 대화를 나눈다. 김씨는 세자를 잠시 맡아뒀다가 넘겨달라는 이방원의 요구는 무례한 것이라며 거부하라고 권하지만, 이방과는 만약 자신이 이방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방원과 부왕 사이에 있어설 안 될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갑갑한 용상에서 여생을 마무리할 생각은 없다는 생각을 밝힌다. 그리고 세자로 책봉이 되었다.태조와의 독대에서 태조에게서 자신을 향한 효심을 지켜줄 것을 부탁받고, 태조가 자신에게 양위를 선언하자 결국 왕이 되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용상이 탐나서가 아니라, 이미 선을 넘어버린 아버지와 이방원의 갈등을 끝내기 위해서였던 것.[33] 첩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불노를 원자로 삼기로 하면서 이방원을 견제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34]
이에 이방과가 즉위하기 전에 따지러 온 이방원에게 한가지 조건을 걸고 그걸 지킨다면 바로 양위한다고 선포한다.[35] 하지만 이를 따를 생각이 없던 이방원은 사과는 아버지가 할 일이라며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하고,[36] 이방과는 "네가 기어이 아버지의 자식이길 포기한다면 나도 더이상 네 형이 되줄수 없으며, 그렇다면 나도 너를 죽이는 데 망설일 건 없다!"면서 팽팽하게 맞서는 이방과의 모습으로 18화 끝.[37]
"서기 1398년, 태조 7년, 음력 9월, 이성계의 둘째 아들 이방과가 조선의 두 번째 국왕으로 등극한다. - 용상을 둔 세 부자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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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끝내 왕위에 오르면서 이방원과 척을 지게 된다. 조정에서의 힘은 이방원이 강하다 보니[38] 이방원의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게 된다.
작중 정종의 주요 조치는 동복형제인 왕자들을 군에서 옛 호칭을 본떠 공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 정안군도 정안공 등으로 승격. 또한 왕자의 아들들이 군으로 불린다. 개경 천도의 경우는 등장하지 않고, 바로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이어진다.
작중 정종의 행보에 대해서는 언급이 적지만, 그래도 상왕이 된 아버지한테서 정치적인 조언을 들으면서 이방원을 견제할 자기 세력을 모으기 위해 힘을 쓴다.[39] 신하들에게 자신은 평생 칼만 잡아 왔기 때문에 정치에 무지하다고 솔직하게 말하며, 신하들을 가까이 불러 국정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경연장에 사관을 들이자는 상소에 대해 내 무식이 드러날 테니 큰일 아니냐는 농담을 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하지만 이방원의 계략으로 그나마 자기가 모은 신하들이 뇌물을 받았다는 누명을 쓰고 사헌부로 압송되고 만다. 하지만 어쨌건 본인의 목표는 왕좌를 지키는 것이 아닌 아버지와 방원을 화해시키는 것에 있는 듯 방원을 불러다가 아버지와 화해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한다.
이후 하륜에게서 도성 안에서 형제들끼리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중지하라는 어명을 내리기 위해 급히 선전관을 보냈으나 이 선전관이 난전 와중에 유시에 맞아 죽어버리면서 전달이 안 되고, 결국 백성들까지 휘말려 피해를 입게 된다.[40]
4.5. 방원에게 용상을 넘겨주다
20화에서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한 후 이성을 잃은 방원이 칼을 들고 대전에 들어오더니, 방간을 처리하기 전에 자신부터 베겠다고 하자 그럼 베라고 일갈하고, 방원이 진짜로 칼을 뽑아들고 휘두르자 가볍게 피하고는 갑주를 입고 칼을 든 방원을 상대로 칼자루를 한 손으로 잡고 반대쪽 손으로 배를 가격하여 간단히 제압한다.[41]그리고는 방원에게 "정신 차려라. 아무리 미칠 것 같아도 버텨서 끝까지 사람으로 남거라"며 충고한다. 또한 용상을 괴물이라 칭하면서 "우리 가문을 저 괴물이 갈갈이 찢어 놓았다, 이제 네가 용상을 맡아달라, 너라면 할 수 있다"라고 한탐함과 동시에 기존의 선언마저 철회하고 사실상 방원을 후계자로 삼는다. 이후 더 이상은 형제들간의 피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간다. 이 때의 표정도 동생 방원에 대한 안타까움, 기대 등이 겹친 매우 복잡한 모습이다. 자신이 봉변을 당하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밖에서 기다리던 정안왕후에게 자신은 아무 일도 없었으며 곧 용상에서 내려올 것이라고 아내를 달래준다. 이후 상왕인 이성계를 찾아가 용상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죄하지만, 이방원의 견제를 포기한 이방과에게 실망한 이성계는 그를 질책하며 쫓아내버린다.
곧 방원을 불러 세제로 책봉하겠다고 하지만 방원은 적장자 승계의 원칙을 지키고 싶다는 이유로, 정종의 양자로 들어가 세자로 책봉되고 싶다고 요구하고 이를 수용한다. 그리고 세자 내외를 상왕 이성계에게 알현시켜 서로 화해를 시키려 했으나 양자가 서로의 입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아 속을 태우고, 아버지를 내보내드리는 것조차 양보를 못하냐며 방원에게 질책하듯 이야기했으나, 방원은 아버지는 무장으로서의 자부심을 굽힐 수 없는 분이시니 궁 밖으로 나서면 군사를 일으켜 또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며 그를 묶어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자 착잡해 한다. 그리고 동시에 아버지가 그럴 리가라며 안일한 반응도 보이는데, 이는 후술할 행적을 불러온다.
조준을 비롯한 신료들에게 자신의 마음은 용상을 떠났다는 말과 함께, 세자가 정무를 수행하기 위해 인수부(仁壽府)를[42] 설치하라 명하고, 조준과 권근에게, 전주 이씨 가문은 이제 끝났다면서, 이제 방원이 새 국가를 반석 위에 세워놓게 되었으니 그를 잘 도와달라고 하교한다. 정안왕후는 왜 이방원에게 곧바로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이런 어정쩡한 상황을 유지하는지 답답해 하는데, 이방과는 궁궐에 이성계와 이방원만 남으면 참사가 벌어질 것이라 보고 둘을 중재할 목적으로 옥좌에 앉아 있는 것임을 드러낸다. 이 말을 들은 정안왕후는 납득이 갔는지 더이상 뭐라 못하고 한탄만 할 뿐이었다.
한편 상왕인 이성계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고 급히 찾아가 이성계의 의중을 듣고, 결국 그를 독단으로 궁 밖으로 내보내준다.
아버지를 왜 궐에서 내보냈냐고 항의하는 이방원에게 효를 실천하기 위해서였다며 국왕으로써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일이니 따르라고 하면서 동시에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하며 화난 이방원의 마음을 잠재운다.[43]
이후 이방원이 즉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났다.
4.6. 상왕 시절
상왕이 된 뒤 이방원과 궁궐을 걸으며 민씨 문제에 관해 얘기를 나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느냐며 이방원을 설득하지만 완강하게 나오는 태도에 당황해한다.[44]이방원을 찾아가 가례색을 폐하고 원경왕후에 대한 홀대를 그만 멈추라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이방원이 즉위 후 자신에게 태상왕 전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을 상기시켜주며, 지금 주상이 하는 짓은 태상왕이 그랬듯이 왕자들에게 두 어머니를 만들어주는 걸 반복하는 짓이라고 설득해 관철시켰다.[45]
사실상 실록에서도 이방과가 이방원의 정치에 유일하게 간섭하는 장면인데, 정치적으로야 당연히 그렇지 않지만 사실상 아버지 이성계의 뒤를 이어 전주 이씨 가문의 큰어른 역할을 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46]
조사의의 난이 발발했을 때, 이방원이 찾아와 이를 알리고 태상왕이 그 배후라는 것을 듣자, 또 가족끼리 상잔을 벌이는 현실, 그리고 아버지인 이성계의 행보에 충격을 받은듯 "아바마마"라고 되뇌이며 통탄한다.[47]
직접 찾아가 설득해보겠다는 말도 하나 이방원이 지금은 자신과 이성계가 정말 제대로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며 사실상 말린다.[48]
조사의의 난이 진압된 이후 태상전에서 끙끙 앓면서 지내는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착잡해하지만, 그가 자주 문후를 드려 위로하라는 대비 김씨의 청에 결국 이건 주상이 풀어줘야 할 응어리라면서 방원이 직접 아버지 이성계와 화해하기를 기다린다.
이후, 양위 파동을 일으킨 뒤 처남들을 숙청하는 방원에게 꼭 그랬어야 했냐고 묻자 어쩔 수 없었다는 이방원의 말에 이젠 보이지 않는 적과도 싸우고, 존재하지도 않는 적을 만들어 벤다고 한탄하면서도 그렇게 불안해서 어떻게 사냐고 물어본다.
27회에서 아버지 이성계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장례에서 절을 올리면서 오열하며 매우 슬퍼했다.[49] 이후 방원과 조카인 세자 이제를 데리고 말을 타고 바람을 쐬러 나서면서 두 사람간의 화해를 주선한다.
동생 부부가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죽음을 통해 파탄의 절정에 치닫고 있을 때, 본인은 상왕으로써 아내 대비 김씨와 함께 화목하게 이곳저곳 풍경이 좋은 곳으로 나들이를 다닌다.
무인 출신의 강골은 여전한지 경치가 좋은 곳에서 쇠약해진 부인을 손수 등에 업고 내려온다. 경치 좋은 곳은 가마로 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내려오는 도중 부인이 잠이 올 것 같다는 말을 하자 그저 피곤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가마에 도착하면 깨우겠다고 대답하지만, 부인은 업힌 채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를 깨달은 이방과는 놀라더니 곧이어 크게 흐느끼며 숨을 거둔 부인을 업은 채로 재차 걸으며 궁에 도착해 장례를 치른다. 더불어서 이 장면을 끝으로 이방과 본인도 극에서 퇴장했다.[50]
4.7. 이후
29회에서는 의정부 찬성 유정현이 이방원에게 "세자가 상왕 전하의 기생 초궁장을 건드렸다."라고 세자의 비행을 고하면서 같이 언급만 되었다.[51]다만 이 사건이 27회에서 상왕 자격으로 이방원과 세자의 화해를 앞장서 주선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방원이 세자의 비행에 분노하고 세자 교체를 결심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30회에는 이숙번이 쫓겨나는 계기로 예상되었던 서전문 사건으로 인한 정종과의 갈등이 이숙번 본인의 입으로 언급만 되면서 또 출연하지 않았다[52].
32회에서는 심온의 숙청 이후 바로 원경왕후의 사망으로 이어지며 언급도 등장도 없이 극에서 퇴장한다.[53] 28회에 있었던 정안왕후 김씨의 승하 이후 직접 등장이 없어 예상되긴 했지만 세종 즉위년인 1418년 10월에 정종과 태종이 서로 첫눈을 보내 장난을 친 일화 등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아예 나오지 않아 아쉬운 부분.[54]
5. 인간 관계
5.1. 이방원
동생이지만 자신보다도 낫다고 생각할 만큼 동생이 영특하다 보니 든든하게 동생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 또한 다른 형제들과 다르게 이방원의 편을 들어주거나 옹호해 주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세자책봉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방원과 달리, 불만족스러워도 아버지의 결정이니 그 결정을 따라 본인들은 세자를 보필해야 한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슬슬 형제 사이에 틈이 보이기 시작한다. 무인정사가 발발하는 과정에서 동생의 행동이 정도전에게 맞서기 위한 정당방위가 아닌 일찍부터 계획된 행동임을 눈치채고 결국 동생에게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이방원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부탁을 차마 거부할 수 없어서, 용상을 지키기로 하고 방원과 갈등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그 사이 다른 동생이 방원을 치기 위해 내전을 일으키다 실패하고 동복형제들끼리 피를 보는 사달까지 일어나자 방간을 꺾고 담판 지으러 온 방원을 맨손으로 제압하면서[55], 결국 저 용상이 우리 가문을 산산이 찢어놓았고 괴물을 만들었다며 한탄하며 이제는 방원이 저 용상 자리를 맡아달라고 하면서 사실상 양위의 뜻을 비친다.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로도 원경왕후와 사이가 틀어진 방원에게 조언을 해주며, 방원이 세자 양녕대군과도 사이가 안 좋아지자 둘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화해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왕실의 큰 어른이자 든든한 형으로써 역할을 다한다.5.2. 이방우
형. 장남으로서 가문에 헌신한 형을 존중하고 기뻐하지만, 고려 왕조에 대한 충성심 높은 형님의 행동이 답답해서 한소리하기도 한다. 이방우가 아버지의 마음을 듣고 잠적한 이후로는 이방과가 장남 노릇을 대신하고 있다. 더불어 불만을 가진 동생들에게 말썽피우지 말라는 설교를 하는 모습에 이방원이 "방우 형 닮아간다"고 핀잔을 주자, 자기가 마땅치 않게 여겼던 그 형을 닮아간다는 사실에 아이러니함을 느끼기도 한다.5.3. 이성계
아버지. 아버지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면 절대로 참지 못할 만큼 충직한 효자이다. 정몽주 살해사건에 이방원 뿐만 아니라 자신과 다른 동생들도 개입되어 있다는 소식을 알고서 아버지가 냉대해도 동생들처럼 쉽게 불만을 표하지 않고 참고 아버지가 용서해주실 때까지 기다린다. 결국 무인정사 후, 이성계가 유일하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아들이 되었고, 이방원과 적대하는 것이 마뜩치 않음에도,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버릴 수 없기에 이방원과 싸우길 결심했으나, 결국 2차 왕자의 난이라는 동복 형제끼리의 상잔이 벌어지자, 더 이상의 혈육 상쟁을 막기 위해 이방원에게 양위하고, 아버지의 질책을 들으면서도 아버지와 방원을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한다.5.4. 이방간
친동생. 같은 한씨 소생의 핏줄이다 보니 아끼는 모습도 보이지만 한편으로 이방간이 이방원한테 질투심을 느낄 때마다 그런 동생이 한심하게 느껴져서 꾸짖는다. 하지만 이방간 또한 성질이 급하고 직설적인 탓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주 부딪친다. 특히 우왕이 이성계의 거처를 기습하는 사건으로 이방간이 아버지를 험담하자 서로 칼을 뽑아 대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2차 왕자의 난이 진압되자 이방원에게 이방간을 살려주는 대가로 양위를 해준다는 걸 보면 동생을 생각하는 모습을 드러낸다.5.5. 이숙번
동생 방원의 심복이지만 1차 왕자의 난 전후로 부딪히는 일이 많아지며 악연이 되고 있다. 정변을 일으킨 것에 분노하여 방원을 때리는 것을 말리는 이숙번을 패대기쳐버린 것을 시작으로, 이숙번은 앙금이라도 품었는지 궁궐에 들어가려는 이방과를 고압적인 태도로 저지하면서 칼까지 들이미는 등 방과에게도 안하무인격으로 나온다.[56] 19화에선 즉위한 방과가 이방원이 자신의 수족이 될 신하들을 사헌부로 압송하자 이방원의 행방을 물으며 이숙번의 멱살을 잡는다. 당시 이숙번은 방과를 옆에서 보좌하는 우부승지였는데, 정황상 보좌가 아닌 감시역이었다.5.6. 정안왕후
부왕인 태조가 신덕왕후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종 역시 애처가였다. 정안왕후와의 사이는 일생 내내 두터웠으며 상왕으로 물러나고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자 자주 함께 경치 좋은 곳을 돌아다니기도했다. 후에 업고 산을 내려갈때 본인의 등이 편안하다고 말한 대비가 사망하자 매우 슬퍼했다.6. 어록
거 왜 고지식하게 죽을 생각만 하시오? 살아서 효도할 생각을 해야지. - 1회, 계책을 써서 인질을 벗어나며 형 방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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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어디서 아버님을 욕하는 거냐? 폐하를 욕하는 건 참아도 아버님을 욕하는 건 못 참는다. 알겠느냐?! - 2회, 아버지를 비난하는 방간을 꾸짖다가 싸우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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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대신들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정몽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으로 도망친 자들 말이옵니까? - 8회, 죽은 정몽주를 역적으로 규정하도록 공양왕을 위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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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께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네 놈이 그러고도 자식이냐?!
역적질을 하려거든 혼자 하거라!
패륜아가 되려거든 네 놈 혼자 되란 말이다!
왜 거기다 날 끌어들이는 거냐?! 왜!! - 17회, 무인정사를 일으킨 뒤 자신을 세자에 앉히려는 방원에게 화를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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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디 한 번 해보거라! 네가 기어이 아바마마의 아들이길 포기한다면, 나도 더 이상은 너의 형이 되어줄 수 없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네가 내 아우가 아니라면! 나도 이제 너를 죽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 18회, 방원과 정적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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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군주를 돌아볼 시간이 있거든 차라리 그 시간에
효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거라. 지척에 있는 부모의 큰 고통은 외면하고 먼 기억 속에 있는 작은 안타까움만 반추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다신 조회에 늦지 말거라. - 19회, 조회에 늦은 방원과의 기싸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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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아, 정신 차리거라. 아무리 미칠 것 같아도 이를 악물고 버티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사람으로 남거라. - 20회, 방원을 후계자로 지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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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 밖으로 보내드리겠사옵니다. 가시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가십시오. - 20회, 정에 못이겨 이성계를 개경 밖으로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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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문의 피눈물로 세워진 나라다. 잘 이끌어 가거라. 알겠느냐? - 21회, 방원에게 양위의 의사를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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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끝내 새 왕비를 들이시겠다는거요? 그리하여 우리 형제들이 겪었던 고통을 주상의 아들들에게 물려주겠단 거요? 주상이 지금 하고 계신 일이 그 일이오. 왕자들에게 두 어머니 만들어주는 일이오. 주상, 부탁이오. 여기서 멈추시오. 주상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소? 절대로 태상왕 전하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이오. - 23회, 중전과 다투는 방원에게 화해를 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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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소. 경치가 좋은 곳은 다 길이 험한 것을. 내 등이 불편하오? - 28회, 일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대비 김씨와 유랑을 한 뒤, 그녀를 업고 하산 중에. 직후 이방과에게 업힌 김씨는 숨을 거두었고, 이 대사가 이방과의 사실상 마지막 대사이다.
|
[1]
정종은 태종 이방원이 세종 이도에게 양위하고 물러난 1418년 이후에도 태상왕이 아닌 상왕으로 남아있었다. 다만 상왕이 된 태종과의 호칭상 구분을 위해 노상왕(老上王)으로 불리었다.
[2]
후속작
제국의 아침에서는
용의 눈물에서 아버지
이성계를 열연한
김무생이 맡았다.
[3]
김명수는 1966년생, 주상욱은 1978년생.
[4]
이복
동생들과 일찍 죽은
이방연을 예외.
[5]
배우 역시 무인으로서의 이방과 재현에 어울리는데, 김명수 배우는 그간 사극에서 무골 기질이 강한 무장 역할을 많이 맡아왔기 때문이다.
[6]
2000년 작고
[7]
본작에서
조준으로 나온다.
[8]
2023년 작고
[9]
역대 정종 배우 중 가장 나이가 적다.
선덕여왕에서
덕충으로 등장하여 당시
월야 역
주상욱(본작의 이방원)과는 동료이며
석품 역
홍경인(본작의 이방의)과는 적대관계였다.
[10]
다만,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과 역시 조선 개국 이후에는 가장 막내인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다든지, 무인정사가 일어났을 때 이지란의 눈을 돌려 그의 개입을 막고, 이후 정도전을 포함한 모든 정적들을 살해하고 온 이방원과 함께 이지란을 설득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든지, 왕위에 오르게 되자 이방원에게 자신은 적자가 없고 다른 생각도 품지 않았으니 자신의 후계자는 이방원이라고 강조하는 등, 욕심만 없을 뿐 어느 정도 정치적 식견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11]
극중에서 대체로 문관으로 묘사됨에도 불구하고 유생 여럿을 때려눕히고 난전중에 박위를 베었을 만큼 이숙번도 무예가 수준급이다.
[12]
심지어 이때 이숙번은 갑옷까지 입은 상태임에도 저만치 날려버린다.
[13]
아무리 이방원이 실권이 많았지만 명분으로 보자면 현재 왕을 살해하려한 대역죄인이다. 이방과가 넘어가주지 않았으면 그냥 넘어갈만한 문제는 절대 아니다.
[14]
극중에서 다른 인물들(정안왕후, 방원, 방간 등)의 대사를 통해 방과의 착한 성품이 은연중에 강조된다. 권력다툼과 권모술수, 감정싸움이 난무하는 본 드라마에서 이렇게 다른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훌륭한 인품이 강조되는 경우는 정몽주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하다.
[15]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유이하게 이방과가 이성계의 뜻을 거스른 사건은 정몽주 참살 사건 및 이방원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후계로 인정한 일이다. 전자의 경우 이방과 본인은 나름대로 아버지를 위한다고 정몽주를 역적으로 만들었지만 오히려 이성계의 역정만 들었고, 후자의 경우 더 이상 혈육 간의 경쟁을 보기 싫었기에 이성계의 뜻을 알면서도 일부러 거역했다.
[16]
용의 눈물에선 아예 죽이라는 말까지 했다.
[17]
2차 왕자의 난에 휘말려 무고한 백성들이 휘말린 것을 보고 완전히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18]
극중에서 재위중에 국정운영 업무의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거나 신하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등 자신의 친화력과 부드러운 성품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하는 모습을 잠시 보여주기도 한다.
[19]
사실 군의 사령관씩이나 할만한 인물이면 기본적인 정치 능력은 있다고 봐야한다. 개인의 무용이 뛰어나거나 병법에 밝기만 해서는 적어도 수만명 수준의 많은 사람들을 통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차세계대전의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가 군인으로써 능력도 뛰어났지만 이런 정치적 조율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 한성미하는 장군들과 제각각인 외국군대까지 통솔할 수 있었으며 당장 이방과 본인의 아버지인 이성계도 젊은 시절 연전연승에 기고만장해 안하무인으로 설치다 위기시 다른 장수들이 제대로 지원안해줘 크게 고생하고 이후로 인간관계에 신경쓰는 정치감각을 키운 마당이다.
[20]
방의와 방간을 살리기 위해서
[21]
중전을 폐하지 말것, 그리고 서서히 사이가 틀어지는 이방원과 양녕대군의 화해를 주선해준 것 등
[22]
國보다는 家인 다른 인물로는 이방원의 큰 아들인 양녕대군이있는데 이방과에 경우에는 양녕과는 달리 좋은 예시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용상에 원치 않게 앉았었지만 한 번도 나라 운영에 등한시 한 적도 없었고 제 나름에서는 노력을 했었고 책임감도 있었다. 자기 아빠가 왕이니까 그 다음 왕은 무조건 자기라며 설치고 공부나 정치는 등한시한 채 술과 주색에 빠져 놀기만 한 양녕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이 이방과이다. 아이러니한 게 이방과는 이방원과 양녕의 사이를 풀어주려고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이기도 하였는데 오히려 양녕은 이런 이방과의 노력을 이방과가 아끼던 기생인 초궁장을 탐하는 기행을 벌여 은혜를 원수로 갚아 되돌려줬다.
[23]
이화상이 형님들이 자결했다고 외쳐 놀란 병사들이 황급히 문을 열자 숨 죽이고 있다가 기습하여 제압 후 탈출한다.
[24]
이성계가 이방과와 이방간이 싸우는 것을 보고 이방간에게 "네 형이 왜구냐?"라고 일갈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배우 김명수가 〈
불멸의 이순신〉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 역할을 맡은 적이 있어서
해당 장면은 재밌다는 사람들이 많다. 더불어 이방과에게는 반대로 "네 동생이 홍건적이냐?"는 말을 하는데, 김명수가
비슷한 시대를 다룬 전작에서
맡은 역할을 생각하면... 참고로 공민왕은
홍건적으로 인해 몽진까지 했을 정도로 홍건적과는
악연이 있는 인물이다.
[25]
그가
이성계의 아들이란 점도 있겠지만, 우왕 14년 초에 벌어진
무진피화 때 '순군부 부만호'로 임명된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26]
당시 자리에 있던 문신들은
정몽주,
정도전, 조준, 남은, 윤소종 등이 있었다. 나름 높은 관료에 이색 밑에서 공부를 했던 쟁쟁한 사람들이라 젊고 자리도 정랑에 불과했던 이방원이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27]
실제 조선에서 상왕으로 알려진 인물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들이다. 상왕 항목에도 제대로 상왕 자리에 앉았던 임금은 이 셋뿐이다.
[28]
이 때 이방원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한이 있더라도'라고 하는 대목에서 반사적으로 아버지를 모욕하는 줄 알고 울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후 이방원의 설명이 납득이 갔기에 때문에 바로 이성을 되찾고 삭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29]
여담으로 이방과 역을 맡은 배우
김명수와 공양왕 역을 맡은 배우
박형준은 MBC 공채 동기이다.
[30]
이때 입은 관복이 붉은색인데, 붉은색은 고위 관리들이 입는 관복이므로 당시 이방과가 어떤 관직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름 높은 직책에 있었거나 아니면 실질적인 장자이기 때문에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담으로 지금까지 등장했던 궁궐 씬의 이방과는 전부 푸른색 관복을 입고 출연했다.
[31]
하지만 이성계도 백만대군을 맡겨도 불안하지 않다면서 무인으로서의 이방과는 높이 평가했다.
[32]
이 에피소드는 태종 때 한양도성 서문의 위치를 옮기면서 이숙번의 집 근처가 후보지가 되자, 이숙번이 압박을 가해 상왕 정종이 살던 인덕궁 부근으로 후보지를 옮겨 결국 그 앞에 서전문이 생긴 일화를 비튼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이방원의 형인 이방과까지 무시할 만큼 안하무인이었던 이숙번의 모습을 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히 이는 과장으로 이숙번이 실제로 이방과한테 칼까지 겨눴다간 이방원한테 민씨 형제보다도 먼저 숙청당했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이방과가 그 자리에서 반격해서 이숙번을 베어버렸어도 이방원조차 할 말이 없다. 왕실의 최고 어른을 막겠답시고 목숨을 위협한 것이니...
[33]
태조는 이방과에게 어보를 내밀며 이를 거절하면 스스로 자결하겠다며 양위를 강요한다. 이방원의 거사 이후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던 이방과는 정말 어쩔 수 없이 양위를 받아들였다.
[34]
다만 이러면 서자가 세자가 된 것이 부적절하다는
무인정사의 명분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이방원 측이 딴지걸기 쉽다는 것이 약점이다. 그러나 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닌데, 먼저 무인정사의 명분은 멀쩡한 적자들이 있으면서도 서자를 세자위에 올렸음을 문제삼은 것이기 때문에 중전과의 자식이 없는 정종은 "적자가 없어서 서자 중 가장 나이 많은 아이를 후계자로 삼는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정 서자라는 것이 문제라면 중전에게 입양시키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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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어 용서 받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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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방원은 용서를 구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첩의 교태에 눈이 멀어 그 아들을 세자로 세운 우매한 군왕이라고 말하는데, 당연히
이성계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 하필 둘의 대화 직전에
이방과의 서자
불노가 세자로서 용상에 앉아있었기에 해석에 따라선 이방과까지 싸잡아 욕하는 말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방과는 본처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없었기에 이렇게 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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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드라마들과 비교해서 방과가 마냥 바지사장으로 머무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점. 물론 방과의 말대로 본인은 용상의 욕심보다는 가족의 화합을 위해서 그런 것이긴 하다. 실제 방과는 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타협점을 찾는 인물이었고, 2차 왕자의 난에서도 왕인데도 직접 방간을 찾아가 설득했다. 그리고 태종의 치세에도 일체 개입하지 않았으나 유일하게 한소리 한게 태종이 원경왕후와 대판 부부싸움을 한 뒤 원경왕후를 폐비하고 새 장가를 들려고 하자 우리 부부는 적자가 없지만 화목한데 주상은 아들도 많으면서 왜 그러냐며 반대했고, 결국 태종도 포기했다. 그만큼 방과는 다른 것에 대해서는 물렀더라도 가족문제는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다.
[38]
이방원이 편전에 들어갈 때 국왕의 의전에 맞먹는 수의 궁인들과 내관들이 빽빽하게 둘러싸 예를 갖추며 맞이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현재 조선의 실세임을 보여주고 있다. [39] 이 과정에서 아버지가 쓰던 철궁을 물려받고선 격구장에서 말을 타고 달리면서 그 궁으로 화살을 쏴 명중을 시켜서 신하들에게 강인함을 보여준다. [40] 실제 역사에서는 도승지를 보내서 방간을 질책하고 군사를 해산하고 입궐하면 무사히 보전해주겠다고 전했지만 이방간이 듣지 않았다. 이를 선전관을 살해하면서까지 형이자 왕인 방과의 명을 거역하는 역도의 모습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41] 이방과는 고려 말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오랜 기간 전장을 누빈 역전의 용사였다. 조선 건국 이전까지는 그야말로 백면서생의 문관이었던 이방원이 이방과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본작을 비롯한 사극들에서 제대로 묘사된 적이 없지만 실록에서는 재위 기간에 정치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격구나 사냥 등, 몸을 쓰는 여가활동을 하며 무인 기질은 살아있다는 걸 보여줬다. 오죽하면 신하들이 격구등으로 놀지만 말고 제발 일 좀 하라고 정종에게 간청한 것까지 사관들이 기록했을까.. [42] 정종 때 세자가 된 이방원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 방원이 양위를 받는 게 기정사실이라 같은 한자음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연상시킬 수 있지만 이 인수부는 한자로 仁壽라고 쓰기 때문에 인수위원회의 引受와는 다르다. [43] 어차피 이성계가 태상왕으로 궁에 남은 상태에서 자신이 상왕으로 물러나고 이방원이 즉위할 경우 이성계 - 이방원 성격상 20회에서 이방과 본인이 한 말마따나 대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이성계가 출궁한 상태이면 이방원이 왕위를 이어받기도 더 쉬워지긴 한다. [44] 실제 역사에서도 이방원이 가례색을 설치해 성대하게 후궁을 맞아들이려고 하자, 이방과가 이를 극구 만류하며 저지시킨 바 있다. # [45] 실록에서도 원경왕후와 대판 부부 싸움을 한 태종이 더는 못 참겠다며 원경왕후를 폐하고 새 왕비를 들이겠다고 하자,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던 정종마저 정색하여 자신과 정안왕후는 적자가 없어도 화목한데 주상은 왜 그러시냐며 그만두라고 말렸다. 결국 태종은 기어이 후궁을 들이기는 했지만 왕비를 폐하는 것만큼은 중단했다. 애초에 단지 부부싸움을 했다는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잠저 시절부터 함께한 조강지처를 폐위한다면 그리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테고 세자를 포함한 적자들의 지위도 불안해질테니, 실질적으론 원경왕후에게 "자신을 더이상 화나게 만들지 말라"는 태종의 경고라고 할 수도 있다. [46] 이것외에 정치와 관련해서는 이방과는 이방원이 무엇을 하던지 간섭하지 않았다. [47] 이 당시 드라마 속 정종의 심정을 생각하면 통탄과 배신감이 함께 왔을 거다. 결국 또 다시 가족간에 골육상쟁이 일어난데다 그 원인이 자신이고 그 골욕상쟁을 다시 일어나게 한 사람이 자신이 걱정이 되어서 궐 밖으로 나가게 도와준 이방과 자신이 놓아준 아버지 이성계였으니 통탄은 물론이요 배신감도 상당했을거다. 자신의 효를 아버지는 그저 군사를 일으켜 아들들 죽이려는 수단으로 이용해 먹었으니... [48] 사실 분노에 찬 이성계가 이방과의 설득을 들을 리 없고, 오히려 이방과를 인질 삼아 이방원을 압박할 수 있으니 만큼 지금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쪽이 이방과에게 현명하다. [49] 실록에서 태상왕 태조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정종은 홀로 말을 타고 달려왔으나 이미 태조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고 나와있다. [50] 역사상으로 정종은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인 141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32회에서는 심온 숙청 이후 곧바로 원경왕후가 숨진 해인 1420년으로 배경이 넘어가면서 정종의 사망 장면은 묘사되지 않았다. [51] 이때부터 이방원이 극대노하여 상소들을 뒤엎었다. [52] 사실 이숙번의 서전문 일화는 1413년에 발생했는데, 29화에서 이미 어리 스캔들이 터졌기 때문에 30화에서 짧게 언급되는 걸로만 그칠 것이라는 예상은 당연한 것이었다. [53] 이방과는 1419년에 사망한다. 즉, 심온의 숙청 (1418년)과 원경왕후의 사망(1420년) 사이에 숨을 거두었다. [54] 극 묘사상 최종화에선 세종의 지적대로 나라를 위한다는 이유로 상처입힌 수많은 사람들의 용서를 얻지 못한 채 용상의 포로가 된 태종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이 장면이 나왔다면 흐름을 해칠 가능성이 있어 빠진 것으로 보인다. 또 여말선초를 훨씬 상세하게 묘사한 대작 용의 눈물 같은 경우도 정안왕후가 퇴장한 뒤의 분량은 없다시피하다. 정종 자신이 승하하는 장면에서 나온 것이 유일하며, 이마저도 "이 때 쯤 승하했으므로 넣어 준다" 라는 느낌이었지 극중의 흐름에서 중요한 분량을 차지한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극의 흐름을 생각하면 빼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55] 상술했듯 이방원은 문관이었는데 반해 이방과는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전장을 누빈 역전의 용장이었다. 개인의 무용으로는 백면서생이었던 이방원이 상대가 안 된다. [56] 다만 이방원이 궁궐에는 자신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들여보내주지 말라고 했고, 이방원이 형인 방과에게 "지금은 궁에 들어가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이방원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봐도 된다. 다만 그걸 믿고 깐족대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는 것. 보통 이런 경우 상대가 왕자인 만큼 일반적으로는 "저도 명령에 따르는 것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같이 말하며 정중히 대하기 마련이며, 특히 궁을 지키는 게 조영무였다면 분명히 방원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더라도 방과에 대한 예의는 잊지 않았을 것이다. 이숙번은 명령에 따른다지만 안하무인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도 맞다.
이방원이 편전에 들어갈 때 국왕의 의전에 맞먹는 수의 궁인들과 내관들이 빽빽하게 둘러싸 예를 갖추며 맞이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현재 조선의 실세임을 보여주고 있다. [39] 이 과정에서 아버지가 쓰던 철궁을 물려받고선 격구장에서 말을 타고 달리면서 그 궁으로 화살을 쏴 명중을 시켜서 신하들에게 강인함을 보여준다. [40] 실제 역사에서는 도승지를 보내서 방간을 질책하고 군사를 해산하고 입궐하면 무사히 보전해주겠다고 전했지만 이방간이 듣지 않았다. 이를 선전관을 살해하면서까지 형이자 왕인 방과의 명을 거역하는 역도의 모습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41] 이방과는 고려 말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오랜 기간 전장을 누빈 역전의 용사였다. 조선 건국 이전까지는 그야말로 백면서생의 문관이었던 이방원이 이방과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 본작을 비롯한 사극들에서 제대로 묘사된 적이 없지만 실록에서는 재위 기간에 정치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격구나 사냥 등, 몸을 쓰는 여가활동을 하며 무인 기질은 살아있다는 걸 보여줬다. 오죽하면 신하들이 격구등으로 놀지만 말고 제발 일 좀 하라고 정종에게 간청한 것까지 사관들이 기록했을까.. [42] 정종 때 세자가 된 이방원을 보좌하기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 방원이 양위를 받는 게 기정사실이라 같은 한자음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연상시킬 수 있지만 이 인수부는 한자로 仁壽라고 쓰기 때문에 인수위원회의 引受와는 다르다. [43] 어차피 이성계가 태상왕으로 궁에 남은 상태에서 자신이 상왕으로 물러나고 이방원이 즉위할 경우 이성계 - 이방원 성격상 20회에서 이방과 본인이 한 말마따나 대참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이성계가 출궁한 상태이면 이방원이 왕위를 이어받기도 더 쉬워지긴 한다. [44] 실제 역사에서도 이방원이 가례색을 설치해 성대하게 후궁을 맞아들이려고 하자, 이방과가 이를 극구 만류하며 저지시킨 바 있다. # [45] 실록에서도 원경왕후와 대판 부부 싸움을 한 태종이 더는 못 참겠다며 원경왕후를 폐하고 새 왕비를 들이겠다고 하자,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던 정종마저 정색하여 자신과 정안왕후는 적자가 없어도 화목한데 주상은 왜 그러시냐며 그만두라고 말렸다. 결국 태종은 기어이 후궁을 들이기는 했지만 왕비를 폐하는 것만큼은 중단했다. 애초에 단지 부부싸움을 했다는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잠저 시절부터 함께한 조강지처를 폐위한다면 그리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테고 세자를 포함한 적자들의 지위도 불안해질테니, 실질적으론 원경왕후에게 "자신을 더이상 화나게 만들지 말라"는 태종의 경고라고 할 수도 있다. [46] 이것외에 정치와 관련해서는 이방과는 이방원이 무엇을 하던지 간섭하지 않았다. [47] 이 당시 드라마 속 정종의 심정을 생각하면 통탄과 배신감이 함께 왔을 거다. 결국 또 다시 가족간에 골육상쟁이 일어난데다 그 원인이 자신이고 그 골욕상쟁을 다시 일어나게 한 사람이 자신이 걱정이 되어서 궐 밖으로 나가게 도와준 이방과 자신이 놓아준 아버지 이성계였으니 통탄은 물론이요 배신감도 상당했을거다. 자신의 효를 아버지는 그저 군사를 일으켜 아들들 죽이려는 수단으로 이용해 먹었으니... [48] 사실 분노에 찬 이성계가 이방과의 설득을 들을 리 없고, 오히려 이방과를 인질 삼아 이방원을 압박할 수 있으니 만큼 지금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는 쪽이 이방과에게 현명하다. [49] 실록에서 태상왕 태조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정종은 홀로 말을 타고 달려왔으나 이미 태조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고 나와있다. [50] 역사상으로 정종은 태종이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인 141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32회에서는 심온 숙청 이후 곧바로 원경왕후가 숨진 해인 1420년으로 배경이 넘어가면서 정종의 사망 장면은 묘사되지 않았다. [51] 이때부터 이방원이 극대노하여 상소들을 뒤엎었다. [52] 사실 이숙번의 서전문 일화는 1413년에 발생했는데, 29화에서 이미 어리 스캔들이 터졌기 때문에 30화에서 짧게 언급되는 걸로만 그칠 것이라는 예상은 당연한 것이었다. [53] 이방과는 1419년에 사망한다. 즉, 심온의 숙청 (1418년)과 원경왕후의 사망(1420년) 사이에 숨을 거두었다. [54] 극 묘사상 최종화에선 세종의 지적대로 나라를 위한다는 이유로 상처입힌 수많은 사람들의 용서를 얻지 못한 채 용상의 포로가 된 태종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이 장면이 나왔다면 흐름을 해칠 가능성이 있어 빠진 것으로 보인다. 또 여말선초를 훨씬 상세하게 묘사한 대작 용의 눈물 같은 경우도 정안왕후가 퇴장한 뒤의 분량은 없다시피하다. 정종 자신이 승하하는 장면에서 나온 것이 유일하며, 이마저도 "이 때 쯤 승하했으므로 넣어 준다" 라는 느낌이었지 극중의 흐름에서 중요한 분량을 차지한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극의 흐름을 생각하면 빼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55] 상술했듯 이방원은 문관이었는데 반해 이방과는 아버지 이성계를 따라 전장을 누빈 역전의 용장이었다. 개인의 무용으로는 백면서생이었던 이방원이 상대가 안 된다. [56] 다만 이방원이 궁궐에는 자신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들여보내주지 말라고 했고, 이방원이 형인 방과에게 "지금은 궁에 들어가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이방원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봐도 된다. 다만 그걸 믿고 깐족대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는 것. 보통 이런 경우 상대가 왕자인 만큼 일반적으로는 "저도 명령에 따르는 것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같이 말하며 정중히 대하기 마련이며, 특히 궁을 지키는 게 조영무였다면 분명히 방원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더라도 방과에 대한 예의는 잊지 않았을 것이다. 이숙번은 명령에 따른다지만 안하무인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도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