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晉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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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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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袁悅之(? ~ 389)
동진의 인물. 자는 원례(元禮). 예주 진군 양하현 출신. 말솜씨가 뛰어나 장단설(長短說)에 능했으며, 그 내용도 논리정연하여 매우 이치에 맞았다.
2. 생애
초기에 사현의 참군으로 근무하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부모의 상사(喪事)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고 상을 모두 마친 원열지는 수도로 귀환할 때, 집에서 《 전국책》 한 권만을 들고 상경하여 그 책을 천하에 무엇보다 귀하게 여겼다.이후 회계왕 사마도자의 휘하로 들어가 그의 총애를 받았는데, 원열지는 사마도자에게 권력을 독점할 것을 강력히 권했다. 원열지의 언변이 워낙 뛰어나 사마도자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니, 왕공은 이를 경계하고 효무제에게 고발했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원열지가 사마도자의 또다른 총신인 왕국보의 지시에 따라 효무제가 신임하는 비구니 지묘음(支妙音)과 태자의 모친인 진숙원(陳淑媛)에게 밀서를 보냈다는 사실도 같이 드러나면서 효무제는 크게 노해 원열지를 체포해 주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