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0:47:38

요르단/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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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언어4. 관광
4.1. 유명 관광지4.2. 가는 방법
5. 스포츠

1. 개요

요르단의 문화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상세

종교적으로 무슬림이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권 국가에 이슬람 법계인 샤리아를 국법으로 채택하지만 아랍, 이슬람 국가 중 문화적, 종교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국가다. 여성의 지위도 중동에서 상당히 높아 여성들에게 히잡을 강요하지 않기에 여성들도 히잡을 안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일부다처제는 여전히 허용하지만 드물다.

여성들의 의상, 교육, 사회 활동 등도 자유로운 편이다. #. 그러나 요르단인 여성이 외국인 남성과 결혼하면 그 자녀는 요르단 국적을 받지 못하는 국적법상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외국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간다.

요르단의 국적법은 1998년 6월 14일 이전의 대한민국처럼 부계혈통주의를 따르기 때문에 외국인 아버지와 요르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게 요르단 국적을 주지 않는다. 반대로 요르단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에게는 요르단 국적을 준다. 이 때문에 요르단의 여성 방송인이 '엄마의 국적은 나의 권리'라는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부계혈통주의로 인해 요르단 국적을 얻지 못한 아이들은 각종 차별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부계혈통주의로 인해 요르단 국적을 얻지 못한 아이들의 생활기록부를 파란색으로 표기하는 등.

인구가 단기간에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2010년대 중순만 해도 인구가 700만 명도 되지 않던 국가였음에도 몇년 새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200만 명 이상이 넘는 난민들이 와 인구가 갑자기 늘어났다. 이로 인해 난민 남성과 요르단인 여성이 결혼했지만, 자녀가 요르단 국적을 얻지 못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파일:카라케일 맥주.png
요르단의 국산 맥주 카라케일(Carakale).

더불어 이슬람을 믿는 아랍 국가면서도 바레인 튀니지처럼 이슬람 율법에서 하람(부정한 것)으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1] 판매도 허용하는데 이 때문에 아예 페트라, 필라델피아, 카라케일[2] 같은 자국산 맥주 브랜드들이 존재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중동 사람들이 자국에서 금지된 술을 사고 마시기 위해 여행을 오고 한국, 중국, 일본, 유럽, 미국, 캐나다 등 비이슬람 국가에서 온 외국인 체류자와 관광객이 돼지고기를 살 때도 있으며, 바레인과 함께 일반적인 성소수자( 동성애) 활동이 불법으로 규제하지 않고 있다.[3] 또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동국가다.[4]

하지만 완전히 개방적인 것은 아니라 2019년 넷플릭스의 첫 아랍어 드라마인 '진'이 외설논란에 휩싸였다. #

요르단에서 가장 유명한 아랍 요리 요리인 만사프, 마클루바이다.

요르단에 동물원은 있으나 판다는 없기 때문에 요르단인들이 판다를 보려면 대한민국, 일본, 카타르 등 판다가 있는 국가로 해외여행을 떠나야 한다. 대체로 요르단인들은 판다를 보기 위해 가장 가까운 카타르로 많이 가는 듯.

일요일은 평일이고 금요일은 휴일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처럼 대체휴일제가 없어 공휴일이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휴일 하루를 손해보게 된다.

성인 인구의 65.9%가 과체중이고 33.5%가 비만이다. 미국에 맞먹을 만큼 비만율이 높은 이유는 야외 활동에 지장이 많은 사막 기후인 데다 고열량 식품의 보급률이 높기 때문이다.

라마단 금식기간, 특히 저녁에 과격한 운전을 하는 차량들을 많이 볼 수 있으므로 도로주행 및 보행에 평소보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3. 언어

공용어는 아랍어다. 아랍어 방언이 타 중동국가보다 약해 아랍어 어학연수지로 손꼽히며, 영어가 주요외국어로 지정돼 널리 사용된다.

토착 요르단 아랍인이 사용하는 아랍어 방언은 사우디아라비아 내륙을 중심으로 쓰이는 나지드 방언에 속하지만, 팔레스타인계 주민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다보니 팔레스타인 방언도 서부나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사용된다.

4. 관광

4.1. 유명 관광지

파일:암만 신전.jpg
수도 암만 시타델의 헤라클레스 신전

파일:Jerash.jpg
고대 로마 유적인 제라쉬

파일:카스르 므샤타 2.jpg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 지어진 별궁 카스르 므샤타

파일:케라크.jpg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십자군 시대의 케라크 성채

관광업은 영토가 척박하고 석유나 가스 같은 자원도 그리 없는 요르단의 가장 큰 돈줄 중 하나다. 이슬람 국가긴 해도 개방적이다 보니 기독교 유적지를 파괴하거나 없애버리지 않고 보존한다.

이라크, 시리아 등 이웃 아랍 국가들 보다 치안도 안정적이어서 여행금지국가도 아니기에 유적지를 관람하러 오는 관광객이 많다. 요르단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3편 '최후의 성전'의 촬영지로 유명한 페트라 - 알 카즈네 신전. 유독 유적의 보존 상태가 좋은데 깊은 산과 계곡 속 천연 암반을 깎아 만들어진 유적의 위치 덕에 자연 풍화를 면했으며, 나바테아인이 사라진 뒤 이곳을 차지한 아랍인들이 우상화될 만한 석상의 얼굴만 부수고 나머지는 손대지 않은 채 방치하며 잊혀진 덕이다. 알 카즈네에 보물이 있다고 해 안에 들어가 파보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아 그대로 방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유적들은 1812년에서야 유럽인들에 의하여 알려졌다. 산으로 가려진 좁디 좁은 길에 이런 귀중한 유적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당시 유럽에서도 엄청나게 놀랐다. 현재 페트라에서 이나 낙타 관광객을 태워 주거나 관광 가이드를 하는 사람은 오래전부터 대대로 이곳에서 살던 유목민의 후손이다. 요르단 정부가 이곳 관리권을 국영화하려고 하자 대대로 이 유적지 부근에서 살아오던 이들이 반발하였고 이에 정부가 이를 달래고자 유적 관광업에 종사할 권리를 줬다.

현지인들은 매우 저렴한 가격(대략 1,500원)에 페트라에 입장하나 외국인 관광객은 10만 원에 가까운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간다. 그러나 요르단 국민이 아니더라도 학업 때문에 요르단에 살고 있으면 현지인만큼 저렴한 가격에 들어갈 수 있다. 페트라를 널리 알린 주역인 인디아나 존스 3편은 요르단에선 1년에도 몇번씩 방영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 거기에 트랜스포머 2도 여기서 촬영해 정기적으로 방영해주고 있으며 사해도 유명하다. 대개 이스라엘 쪽으로 많이 구경하러 왔으나 엄청 비싼 물가 덕에 훨씬 물가가 싼 요르단 쪽 바닷가로 관광객이 많이 온다. 이스라엘도 관광업에 타격이 갈게 뻔하니 사해 관광을 더 싸게한다든지 발버둥친다. 그리고 가보면 사실 정말 별거 없다. 이집트 홍해가 있는 누웨이바에 가는 경로로도 유명하다. 2004년 테러 사건 이전에는 이스라엘-이집트 성지순례 코스로 텔아비브-암만-아카바-누웨이바 코스가 주력 상품이었다. 지금도 이 코스는 살아 있지만 2004년 10월 7일에 벌어진 동시다발 폭탄 테러로 관광객만 31명이 죽은 사건 이후로 누웨이바를 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페트라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다른 관광지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페트라 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유적인 제라쉬나 아카바 만의 항구도시 아카바[5], 요르단 남부의 사막지대 와디 룸 역시 요르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관광지다. 역사를 좋아한다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수도 암만부터가 3천 년 역사를 지닌 도시로 그 시타델 일대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헬레니즘, 로마, 우마이야 시대를 망라하는 각종 유적이 즐비하다. 중세 이슬람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암만, 마다바 일대에 흩어진 10여 개의 우마이야 왕조 시대의 별궁들을 답사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슬람 시대의 비키니 벽화로 유명한 왈리드 2세 시기의 쿠세이라 암라이다. 참고 12세기에 약 70년간 십자군 하에 있던 요르단은 예루살렘 왕국의 동부 방어를 맡았기에 당시의 성채들도 제법 잘 남아있다. 사막 기후와 개발이 더뎠던 탓에 본국인 서유럽의 중세 성채들보다 더 잘 보존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그 유명한 살라흐 앗 딘도 세 차례의 시도 끝에야 점령한 알 카라크 (케라크) 성채[6]와 샤우바크 (몽레알) 성채, 살라딘이 세운 아질룬 성채 등이다.
파일:41086020184_1c8bf98e1c_b.jpg
요르단 동부의 쿠세이르 암라 궁전의 프레스코 벽화.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사막에서 유목하는 베두인이 소수 있는데 옛날 실크로드의 대상처럼 낙타를 타고 상업에 종사하진 않고 사막화로 인해 유목생활이 힘들어져 이촌향도해 대부분 도시에 몰려살거고 요르단 국왕이 무료로 제공하는 물을 받으러 도시를 오가는 반유목 생활을 하지만 유목민답게 접대의 관습이 남아있어 온 손님은 관광객이라도 3일동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먹고 재워주는 전통이 있지만 흉흉한 세상에 너무 믿지는 않는 편이 좋다.

또한 영화 마션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극중 화성으로 나오는곳은 요르단의 와디럼이라는 곳이다. https://bitna.net/1607

4.2. 가는 방법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도착비자를 2만 원 후반대에 발급받을 수 있다. 또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가진 몇 안 되는 아랍 국가라 이스라엘을 방문해도 입국에 별 지장이 없으며 이스라엘에서 육로로 입국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때 요르단에서 찍은 입국 도장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므로 이후 타 아랍 국가들을 여행하려 할 경우 유의해야 한다.

대부분 중동국가들이 그렇듯이 항공편으로는 한국에서 요르단까지는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두바이 도하, 이스탄불 등 다른 중동 도시들을 경유해서 가야 한다. 보통 두바이에서 에미레이트 항공을 타고 간다. 위에서 언급한 주의점을 숙지한다. 그나마 직접 이스라엘에 취항하는 터키항공, 최근 대 이스라엘 관계 개선에 나선 아랍에미리트의 에미레이트 항공, 에티하드 항공은 사정이 나으나 카타르 항공은 이스라엘과 카타르의 사이가 매우 나빠 카타르 항공으로 경유할 시 문제가 생긴다.

5. 스포츠

아랍 국가들 중에서는 농구 인기가 많은 국가이다. 2000년대에 여러 아시아 대회에서 자주 한국의 발목을 잡으며 한국 킬러였던 국가지만, 농구가 강해진 것이 미국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못한[7] 농구선수나 아프리카 농구선수를 귀화시켜 단기간에 강해져 진정한 강국으로 보기 어렵다.[8]

카타르와 같이 허울좋은 농구 강호라는 평을 들었지만, 2011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 귀화선수의 국대 참가를 엄격히 제한해 카타르가 스스로 실격패를 자초하여 탈락한 것과 달리 요르단은 의외로 강세를 보이며 자국선수 위주로 강호급으로 발전한 이란을 8강전에서 88-84로 이겼다. 필리핀도 준결승에서 이기고 아시아 최강급인 중국과의 결승에서 통한의 아쉬운 69-70 패배로 준우승을 거두었다. 어찌됐든 3위를 거둔 한국과 같이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배정된 조예선에선 그리스 푸에르토리코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경기는 2012년 7월 2일부터 8일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열렸는데 요르단은 그리스에게 63:107, 푸에르토리코에겐 52:93. 2경기 모두 40점차 대패를 당하면서 참가국에서 가장 많은 실점을 당하면서 12위 꼴찌로 마무리했다.

아시안 게임 농구에선 메달이 없었다. 1986년,2006년 아시안 게임에서 4강에 올라갔으나 메달은 받지 못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농구에서는 한국에 조예선에서 69-98로 참패했으며 약체인 몽골에 74-83으로 패해 11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역대 아시안 게임에서 자주 부진하던 요르단이긴 했지만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선 남자농구 결승에 전승을 거두며 처음으로 올라가 첫 금메달을 노렸지만 조별리그에서 87-62로 이긴 필리핀에게 결승에서 60-70으로 져서 첫 농구 메달인 은메달로 만족해야 했다.

중동답게 축구도 꽤 인기가 많은 편. 다만 사우디나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의 국가들과 비교하면 전력이 다소 약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래도 2010년대 후반 즈음부터 전력이 올라오기 시작해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 조별리그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호주를 이기고 조 1위로 올라가는 저력을 보였다.[9] 특히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꺾고 결승전에 이르렀으며, 대한민국에 충격과 공포의 패배를 안겨다 주었다. 요르단 축구에 대해 자세한 건 요르단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조. FC 서울 야잔 알아랍이 요르단 국적 최초의 K리그 선수이다.

태권도도 좀 한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요르단은 은 3, 동 1을 획득했는데 모두 태권도에서 땄다.[10] 특히 은 3개는 모두 결승에서 한국선수에게 패했으며 동 1개는 8강에서 한국선수를 이긴 결과다. 하지만 그래놓고 4강에서 졌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태권도와 가라테에서 각각 금, 은, 동메달을 똑같이 2개씩을 받았던 걸 비롯하여 개인 종목은 꽤 하는데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선 태권도에서 메달이 없었다.[11]

2016 리우 올림픽 태권도 68kg급에서 요르단의 아부다디 아부가우시가 한국의 이대훈을 비롯하여 여러 우승 후보들을 꺾고 요르단이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1980 모스크바 올림픽 이후 최초의 메달을 금메달로 획득하였다.


[1] 수도 암만에 돼지고기 정육점이 두 군데 가 있는데 이용 고객은 주로 비무슬림(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불교, 원불교 등)과 비 무슬림(한국,일본.중국,홍콩,대만 ,미국,프랑스 등) 외국인이다. [2] 현지 양조장 사장이 미국 유학 시절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에서 10년간 맥주 양조업을 배우면서 만들었다. 실제로도 모국인 요르단뿐만 아니라 해외의 맥주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중동 최고의 명품 맥주라는 평가를 받는다. [3] 하지만 요르단 내에서 성소수자 활동이 합법인데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가 무슬림인 세속적 이슬람 국가이다보니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게 매우 압도적이다. 물론 수도 암만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들이 성소수자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고 있기는 하나, 아직은 갈 길이 많이 멀어보인다. [4] 중동에서 안전한 편이라지만 관광객을 대상으로 접근하는 호객꾼, 사기 및 강도, 소매치기 등은 주의해야한다. [5] 20세기 영국의 사주로 일어난 대오스만 반란인 아랍 대봉기 당시 처음으로 점령된 도시였기에 역사적 의의도 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통해 잘 알려졌다. [6] 1868년 독일인 의사가 여기서 고대어로 된 돌비석을 발견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연구를 방해했고 독일 측이 이걸 알게되자 독일로 가져가려 했기에 현지인들이 엄청난 돈을 요구했다. 하지만 독일에서 당시 요르단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 총독에게 뇌물을 먹이면서 독일로 가져가게끔 허락했는데 주민들은 억지로 빼앗길 바에는 차라리 부순다고 부숴버린다. 실망한 독일이 포기한 거랑 달리 프랑스에서 깨어진 돌비석 잔해나마 주민들과 협상 끝에 사가지고 가서 일부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하지만 당시 돌비석의 2/3만 남았다. 그나마 탁본을 뜬 게 남아있어 연구할 수 있다. 무려 기원전 840년에 만든 가장 오래전에 남은 고대 히브리어 비석이다. [7] 하지만 NBA 선수로도 잠깐 뛴다든지 하부 미국 농구리그에서 뛰던 이들이라 이들도 절대 무시 못 한다. [8] 2010 튀르키예 세계 농구대회에서도 그동안 올림픽이나 세계 농구대회에서 자주 대패하던 앙골라의 16강 진출 제물이 된 적도 있다. 참고로 앙골라는 8강전에서 우승팀 미국에게 121-66, 55점 대패로 이 대회 최다 점수차 패배+최다 실점을 당했다. [9] 다만 16강에서 베트남에게 승부차기 끝에 탈락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10] 당시 남자만 8체급 실시했다. [11] 가라테에서 은메달 1개를 받았으며 다른 종목에서 동메달 4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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