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벽화의 한 종류
벽화의 대표적 기법. 현재는 회반죽 벽에 그려진 모든 벽화를 가리켜 말하는 수가 많은데, 본래는 바탕인 회반죽벽이 아직 마르지 않은, 즉 축축하고 ‘신선’(이탈리아 어로 프레스코)할 때 물로 녹인 안료로 그리는 부온 프레스코(Buon fresco) 기법 및 그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를 가리킨다.바탕이 뒤틀리거나 변형되면 그림이 손상되기 때문에 두꺼운 벽체 위에만 쓸 수 있다. 또한 석회는 습기에 약해 영국과 같이 습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사용하기 곤란하다. 하지만 이탈리아 중부처럼 건조한 기후를 가진 곳은 프레스코 기법이 잘 유지된다.
회반죽으로 미리 벽에 초벌칠을 하고, 그 위에 기본 스케치를 확대한 시노피아라 하는 실제 치수의 소묘를 그리거나 따로 카르톤을 준비한다. 벽이 마르기 전에 채색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 경에, 화가가 그날 중에 제작할 수 있다고 예정한 면적(조르나타라고 함)에만 마무리칠의 회반죽을 칠한다. 회반죽은 시간이 지나면 공기 중의 탄산가스와 결합되어 경화되고 수분이 증발해 마르게 되므로, 아직 마르지 않은 즉 ‘생(生) 것일 때’(a fresco) 안료를 아무런 고착제도 쓰지 않고 물에만 녹여서 그려간다. 안료는 회반죽에 같이 배어들어가 고형화되기 때문에 벗겨질 걱정이 없는 견고한 화면이 생긴다. 하루 동안에 조르나타가 다 채워질 수 없을 때에는 긁어내고, 다음 기회에 새 마무리칠을 하는 회반죽칠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부분적으로 완성시키면서 단시간에 제작을 마무리해 가며 더구나 반죽이 마르고 나면 수정이 불가능한 이 화법에서는, 특별한 숙련 외에도 면밀한 계획성과 꾸준하면서도 재빠른 판단력과 소묘력을 필요로 한다.
과학적으로 보면 생석회에 물을 타 반죽해 소석회를 만들어 안료를 섞어 칠하면 굳으면서 탄산칼슘, 즉 석회가 돼 회벽과 일체화된 원리가 있다. ※
이 소재에 의한 색감은 독특하며 투명한 색채공간과 미묘한 명암의 표현에 적합하다. 또 한편 회반죽이 마르고 나서 안료에 고착제를 넣어 그리는 기법은 세코(secco)라고 하며, 프레스코로 그리고 나서 그 표면에 세코로 보충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대 로마의 벽화가 참다운 프레스코냐 어떠냐는 것은 지금도 논의가 많다. 비잔틴이나 로마네스크의 벽화에서는 고착제로 석회를 쓰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세코 화법으로 간주된다. 참 프레스코의 등장이 확인되는 것은 13세기 말로,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를 특히 프레스코의 황금기라고 할 수가 있다. 지오토, 마사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미켈란젤로 등이 명작을 남겼다.
1.1. 여담
-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당대에 이 프레스코화로 대결을 펼친 적이 있다. 피렌체 공화국의 수장이던 피에로 소더리니의 주선에 의해 ' 베키오 궁전'의 건물 벽면에 서로 다른 두 천재가 프레스코화를 그려 장식하기로 한 것이었는데, 제작 과정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안기아리 전투'는 처참하게 녹아내려 버렸다. '녹아내렸다'는게 패배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빈치 그림( 안기아리 전투)의 안료가 녹아내렸다. 이 당시 다빈치는 기존의 물감에 기름을 섞어서 새로운 배합의 안료를 시도했는데, 건조 과정에서 기름이 녹아서 흘러내려 버린 것. 이후 ' 카시나의 싸움'을 그리던 미켈란젤로 또한 로마 교황의 초청을 받아 로마로 떠나버리면서 결국 이 대결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안기아리 전투는 레오나르도 본인이 그린 구상 스케치는 남아 있어서 이후 많은 화가들이 복원(?)했다. 대표적으로 라파엘로 산치오가 모사한 그림이 있다. 그림에서 보이는 역동성으로 레오나르도의 표현력을 짐작할 수 있다.
- 스페인 에케 호모 화 훼손 사건도 프레스코 물감을 일반 수채화 물감 마냥 덧칠하다보니 빚어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