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강희제가 사용한 옥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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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옥새( 玉 璽)는 국새 중 옥(玉)으로 만든 새(璽)를 말한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군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이다. 천자만이 옥새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제후는 금인(金印)을 사용해야 했다.2. 옥새와 국새
국새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국새는 '군주의 도장'과 '국가의 도장'을 전부 포함한다. 하지만 21세기인 현대엔 군주의 도장은 옥새, 국가의 도장은 국새로 나눈다. 군주의 도장에 관한 상세한 설명은 옥새 문서에 있다. 그래서 옥새 문서는 단순히 '옥으로 만든 새'뿐만 아니라 '군주의 도장'이란 포괄적 의미까지 담겼다.3. 유래
이름에 옥이 들어간 이유는 가장 유명한 국새인 진시황의 국새가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보석 중 하나이며 옥의 일종인 화씨지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옥은 황금과 함께 고대부터 동양에서 임금의 권위를 상징하는 보석이었다.[1]진시황의 옥새는 화씨지벽이 아니라 옥의 명산지로 유명한 남전 지역에서 캔 옥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화씨벽이든 남전옥이든간에 옥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2]
진시황제 사후 전국옥새는 천여 년간 중국 여러 왕조의 황제의 손을 거치다가 후당 말제 때 결국 유실되어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3]
기록에 따르면 이 옥새에는 수명우천 기수영창[4]라는 여덟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하며, 이 명문은 진시황 때의 정치가이자 전서(篆書)의 대가로 유명한 승상 이사(李斯)가 썼다고 한다.
이 옥새는 대대의 황제에게로 전해졌다고 해서 전국옥새(傳國玉璽)라고도 불린다. 매력 100에 빛나는 전국옥새에 대해서는 전국옥새 문서로 이동할 것.
4. 용도
황제가 어떠한 문제에 대해 자신이 직접 결재했음을 증명하는 도장이다. 그러니까 공문에 옥새가 찍혀 있다면 이것은 칙(勅)[5]이 붙은 명령서가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옥새는 반드시 함부로 찍어선 안 되고, 관리를 허술하게 해서도 절대로 안 된다.황제는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의 국가 정책 현안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상세히 읽어본 후 가부 결정을 해야 한다. 해당 정책 현안을 승인한다면 옥새로 날인한다. 그러면 현안은 바로 왕 또는 황제의 이름으로 실행된다. 반면 해당 정책 현안을 기각한다면 옥새를 찍지 않으면 된다. 이게 옥새가 황제의 상징인 이유이다. 옥새가 안 찍히면 실행에 옮겨도 그만 안 옮겨도 그만이지만, 옥새가 찍히는 순간 의무가 되어버린다. 옥새가 찍힌 문서를 받은 환관은 해당 실무자한테 반드시 이 문서를 전달해야 하고, 실무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문서에 적힌 대로 일을 해야 한다. 제대로 일을 안 하면 숙청 당한다.
옥새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여부로 임금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정말 열심히 일을 하는 임금은 옥새를 항상 소지하고 다니고 대신들과 같이 만들어놓은 정책 현안을 끝없이 결재한다. 그래서 제대로 일을 하는 임금은 과로하기도 한다. 반면 근무가 태만한 왕 또는 황제의 옥새는 방치 상태에 놓이거나 심하면 분실하기도 한다. 임금이 사용하는 작업도구인 만큼 이를 분실했다 함은 해당 임금이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음을 의미한다. 한 예로 후한 영제가 황제로서의 정무를 얼마나 보지 않았던지 옥새가 어디 있는지 까먹는 지경까지 갔고 결국 옥새를 진짜로 분실하고 만다. 물론 옥새는 임금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 아니라 엄연히 부보랑(符寶郞)이라고 하는 옥새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직책이 있었다. 따라서 영제가 정무에 관심이 없기도 했겠지만, 그것이 중요하다기보다는 나라의 혼란상이 옥새를 담당하는 관료들까지 제 소임을 하지 않거나 부재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보는 게 맞다.
따라서 옥새의 용도는 한마디로 대통령이 국회에 통과된 법안과 인사이동에 결재하고 행정명령을 내리는 것과 다름없다. 법령과 헌법을 선포하려면 대통령의 결재가 필요하다. 현대에는 국가원수가 서명 또는 사인을 하고 그 자리에 국새를 찍는다. 서양 중 대통령제 또는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국가원수가 서명만 하면 된다.[6]
5. 역사
5.1. 연혁
옥새는 동양에서 군주제가 발달함에 따라 그 역사를 함께 하는데, 본격적으로 군주가 옥새를 사용하는 것이 제도화된 시기는 당연하게도 절대적인 군주권이 황제란 이름으로 최초 확립되는 진시황 치세부터이다.이전 시기, 즉 춘추전국시대 때만 해도 왕·공의 권위는 대개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나 구정이라 불린 청동으로 만든 세발 달린 솥(鼎)을 그 상징으로 삼았다. 진왕 정이 처음으로 황제란 명칭을 사용면서 솥을 대신할 새로운 상징물을 삼은 것이 바로 도장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군주의 도장인 옥새는 군주의 절대적 권위, 더 나아가 왕조와 국가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진시황 이래 황제의 조칙이 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식 문서화 후 반드시 옥새가 찍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황제의 제위 계승이나 왕조의 선양에 있어서도 선황제의 영전이나 종묘에서 옥새를 정식으로 인수하는 의식을 치른 후에야 제위 계승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전국옥새는 제위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의미였을 뿐, 국가의 공식적인 행정 문서에 찍는 옥새는 따로 있었다. 한대 이래로 사용된 실무용 옥새는 모두 6종류가 있어 각각의 업무에 따라 달리 날인했는데, 그 목록과 용도는 아래와 같다.
- 황제행새(皇帝行璽) - 책봉 및 논공행상을 할 때 사용한다. 즉 황족을 번왕으로 봉하거나 국가적 위기에서 공을 세운 자를 공신을 봉하는 문서에 찍는다.
- 황제지새(皇帝之璽) - 황제가 칙서를 반포할 때 사용한다.
- 황제신새(皇帝信璽) - 군사적인 업무, 소집이나 동원 시에 사용한다.
- 천자행새(天子行璽) - 조공국의 왕이 즉위했을 때 황제의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책봉하거나 상을 내릴 경우 사용한다.
- 천자지새(天子之璽) - 하늘이나 땅, 또는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다.
- 천자신새(天子信璽) - 대외 동원이나 중국 바깥의 번국을 소집할 때 사용한다.
황제삼새는 대체로 실무 및 내치에 활용되었고, 천자삼새는 의례 및 대외 관계에 사용되었다.
전국옥새가 후당 말에 없어진 후, 옥새에도 인플레가 생겨 송나라 때는 옥새 7과를 사용했고,[7] 명나라 때는 17과, 청나라 중기에는 25과까지 늘어났다. 청나라 말 선통제 푸이가 즉위하자 새로운 체제를 도입한다고 다시 만들었는데, 이 옥새는 1945년 푸이가 소련군에게 체포될 때까지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옥새는 위안스카이가 세운 중화제국 옥새이다.
5.2. 정통성의 상징
워낙 정통성이 강한 물건이다보니 중국의 경우에는 전에 있었던 왕조를 멸망시키고 새 왕조를 수립한 사람이 전 왕조로부터 옥새를 빼앗아서 자기네 왕조의 옥새로 사용하는 일이 많았다. 물론 새 왕조에 맞게 약간의 수선(?)은 거쳤다.[8] 단종이 세조에게 양위할 때 승지로서 옥새를 들고 있던 성삼문이 눈물만 흘리며 옥새를 건네주지 않자 시종 공손한 태도를 보이던 세조가 삽시간에 도끼눈으로 노려본 이야기, 경술국치 때 순정효황후 윤씨가 숙부 윤덕영이 옥새를 가지러 왔을 때 일제에 옥새를 넘기지 않으려 치마폭에 감췄다는 이야기, 원술이 옥새를 얻자 황제를 자칭했다는 일화 등은 모두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 때문이다.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손견과 원소의 대립과 반동탁 연합군의 분열을 손견이 옥새를 주워놓고 모른 척 해서라고 연출하거나, 후에 손책이 병력을 얻는 수단을 원술에게 옥새를 빌려주고 몇천 병력을 얻었다고 처리하고, 병사를 갚아도 원술이 옥새를 돌려주지 않아 손책이 원술 휘하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연출하는 등 옥새라는 아이템 하나로 많은 것을 설명할 정도로 당시 옥새라는 것에 대한 권위는 대단했다.
5.3. 현대
[9]
일본에서는 전서체로 천황어새(天皇御璽)라고 새긴 금제 옥새를 사용한다. 여기서 황(皇) 자의 머리에 백(白) 대신 자(自)가 들어간 「𦤃」 자를 쓴다. 천황어새와 별개로 '대일본국새(大日本國璽)'라고 새긴 국새도 있다. 메이지 초반인 1871년에 「日」자가 아니라 이체자인 「囸」을 써서 「大囸本國璽」라고 새긴 국새를 사용했지만, 1874년에 「大日本國璽」라고 새긴 국새를 다시 제작하여 지금까지 사용한다. 현대에 공문서에는 주로 옥새를 사용하고, 국새는 훈장 수여장(勲記)에만 사용할 뿐이다.
대한민국과 중국 등 군주 없는 공화제를 실시하는 나라에서는 국새만 사용한다. 다만 다른 나라들이 금속제 국새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대만은 옥으로 만든 국새, 말 그대로 옥새(玉璽)를 사용한다. 서양에서는 교황이 착용하는 어부의 반지가 바티칸의 옥새 역할을 한다.
5.4. 한국사
한국 옥새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예왕지인(濊王之印)'이다. 고구려는 옥새(玉璽)가 아닌 금새(金璽)를 썼다는 삼국사기 기사가 있다. 하지만 굳이 천자의 새(璽)를 쓴 만큼 옥새도 썼을 가능성도 있다. 신라에서 옥새 도장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으나, 비슷하게 왕권을 상징하는 보물로 천사옥대라는 옥 허리띠가 있었다고 전한다. 진평왕부터 사용한 이 옥대는 수백 년이 흘러 고려태조 왕건이 관심을 가져 신라 멸망 직후에 인수인계 받았다고 한다.고려, 조선 왕조는 상국으로 우대해준 국가들에게 국인(國印)이란 옥새를 받아 썼다. 하지만 정종 문명왕이 '새서(璽書)'를 내려주었으며 숙종 붕어 후 예종이 '옥새(玉璽)'를 받았다고 표현했으며 고려사 인종 세가엔 고려 예종이 신하 한안인을 시켜 '국새(國璽)'를 가져와 태자였던 인종에게 물려주었다는 기사가 있다. 이를 보아 타국이 보낸 국인 외에도 고려가 독자적으로 만든 옥새(국새)가 따로 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역시 마찬가지로 명, 청에게 '조선국왕지인'이란 옥새(국인)을 받았지만 오로지 외교용으로만 쓰고 자체적으로 옥새를 만들어 썼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고종은 황제만이 쓸 수 있는 옥으로 황제지보 등의 옥새들을 제작했다.[10] 관련 이야기는 국새 황제지보를 참조할 것.
대한민국 시기에는 옥보다 금이 더 비싸져서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금으로 만든 국새를 쓰고 있다. 또한 이 국새는 근대적 의미의 국새로 군주의 것이 아닌 국가의 것이다.
6. 서양
그렇다고 옥새가 동아시아 문화권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고, 서양권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군주의 도장이라는 개념은 있었다. 동양의 경우처럼 도장의 형태에 국한되지 않고 반지의 형태를 가지기도 했다는 차이가 있지만.[11][12] 찍는 방식도 사소한 차이가 있는데 동양권 옥새는 인주를 묻혀 찍는 방식이라면 서양권 반지 도장은 녹인 밀랍에 찍는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서신을 봉인해 전달할 때도 쓰였다.7. 창작물
7.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시리즈에서 칭하는 옥새는 당연히 전국옥새이며 전통적으로 옥새를 지닌 사람은 매력 100 고정이다. 삼국지 2에서는 다른 보물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랜덤으로 발견할 수 있고 발견시 군주의 매력이 100으로 올라갈 뿐만 아니라 신용도도 무조건 100으로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삼국지 3에서는 정치력이 추가로 15가 상승하며 삼국지 5, 삼국지 10에선 명성이 추가로 오른다. 삼국지5에선 100[13], 삼국지 10에선 50. 삼국지 7에서는 선양이 아니고 황제 자칭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다. 단, 다른 황제가 아무도 없을 때 자칭 한정이며 어느 정도 명성이 필요하다. 만약 다른 황제가 한 명 있다면 옥새 없이도 일정한 명성만 있으면 자칭할 수 있다.[14]다만 다른 아이템과는 달리 오직 군주만 소지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포상으로 옥새를 줄 수 없다.
삼국지 3에서 옥새 보유자는 다음과 같다.
- 시나리오 1 : 없음, 단 11.낙양의 장수 수색을 하다보면 일정 확률로 장수 대신 옥새가 발견된다.
- 시나리오 2 : 손책
- 시나리오 3 : 조조
- 시나리오 4 : 조조
- 시나리오 5 : 조비
- 시나리오 6 : 조예
삼국지 4에서는 가짜 보물이 등장하며, 진퉁이 아닌 모조품의 경우에는 능력치 상승이 없다. 옥새의 경우 통솔력100 매력100 고정.
삼국지 5에서는 무장 수행으로 보내도. 옥새는 절대 얻을 수 없다. 유일한 방법은 백성에게서 헌상받는 것 뿐.
삼국지 6에서는 군주만 유효하게 매력100 고정. 백성이 헌상하는 일은 없다.
삼국지 7에서는 일반 장수도 옥새를 얻을 수 있다. 이력난에 옥새를 발견이라는 메세지가 뜬다.[15] 단, 군웅할거 까지만 적용되고 그 이후부터는 조조 전용 소유보물이기 때문에 처단해야 획득가능하다.(이는 동작도 마찬가지.) 오역으로 옥패로 나오는 건 덤.
하지만 소유자가 정해져 있다시피 한다. 보통 하진 - 손견(동탁 이벤트 후) - 손책(시나리오3 시작 시) - 원술 - 조조(시나리오4 시작 시) - 조비 - 조예 - 조방으로 가는데 삼국지 8부터는 장수를 사로잡아도 아이템이 몰수되지 않으며 삼국지 10 부터는 참수하더라도 그 아이템이 군주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위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정상적으로 옥새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등용한 다음에 몰수해야 하는데 몰수하면 충성도가 한큐에 0으로 떨어진다. PK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왠지 하진이 들고 나온다. 여기서는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면 옥새를 저절로 얻는다. 아니면 조조를 처단하면 된다.
삼국지 9에서는 낙양을 탐색하면 나온다. 자세력 신망도가 상승하는 완소 아이템이라. 잉여무장들의 자발적 사관 확률이 올라간다.
삼국지 DS 2에서는 소유 군주의 통솔과 매력 능력치를 100으로 만들어주는 효과를 가졌다. 시나리오 1에서는 관중 지방을 수색하다보면 낮은 확률로 낙양에서 무장대신 발견된다. 시나리오 2에서는 원술이 가지고 있고 시나리오 3부터는 조조가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이후 시리즈 부터는 황제로 즉위하기 위해서는 황제 옹립, 옥새 보유 등 까다로운 조건이 걸려 있다. 유비나 손권등이 줄타기하고 버티는 시나리오 4이후 부터는 답이 없다. 그때쯤이면 쭉쭉 밀고 내려오는 조조군 하나 막기도 벅차니.
삼국지 11에서는 모든 아이템이 능력치를 올려주지 않고 다른 부가 효과를 내도록 수정되었다보니 전통적인 매력 100 효과는 사라진 대신 기교 포인트를 추가로 받게 수정되었다.
매력 능력치가 삭제된 삼국지 9와 삼국지 12에서는 관직과 관련되는 수치를 올려주는 역할을 한다. 9에서는 신망 +100과 배반 전법 습득, 12에서는 명성+500, 13에서는 존재감 +1000으로 나오며 후한 황제를 옹립한 세력이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명성 5000이 넘으면 황제 선양 이벤트가 뜬다.[16] 명성이나 신망이 관직에 연관되므로 게임 진행이 편리해진다는 건 사실. 하지만 타 시리즈보단 임팩트가 약하다. 9에서는 입수가 타 시리즈보다 상당히 쉬운 편으로, 특정 시나리오의 원술[17], 여포[18]를 제외하면 모두 낙양에 묻혀 있어 낙양을 집중적으로 탐색하다보면 나온다.
삼국지 12 ~ 13에서는 군주에게 직접 귀속되지 않고 세력의 보물 창고에 보관된다. 손책이 원술에게 옥새를 담보로 병력을 빌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시리즈에서는 옥새도 세력간 거래가 가능하다. 하지만 옥새 가지고는 병력은커녕 금이나 병량도 얻어내기 힘들다. 외교로 거래할 때 컴퓨터는 옥새를 그냥 가치 100짜리 명품으로 간주하는 듯. 하지만 컴퓨터가 담당하는 군주가 옥새를 가지고 있을 경우 어떤 조건을 제시해도 절대로 내놓지 않는다. 그럼 멸망시키면 된다.
7.2.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허창 전투의 보물고에서 나오는데 보유 무장의 병력과 사기를 매턴 일정량 회복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즉 원군 보고 + 칙명서. 그러나 두 아이템 및 마을 / 성채 / 병영 회복 효과와는 중첩되지 않는다. 사기 회복은 쓸 만하나 병력 회복 효과는 미미한 수준.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최강의 아이템 중 하나로 격상. 착용 시 무조건 회심의 일격이 나가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방천화극과 조합되면 흠좀무한 위력을 보여준다. 단 회심의 일격을 무조건 방어하는 황금 갑옷에게는 상성이 최악. 한 마디로 말해서 너무 세게 쳐서 타격 포인트가 빗나가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황금 갑옷을 끼고 있는 유일한 적이 원담인데, 보물 도감을 수집하지 않은 이상 두 보물이 만날 일은 없으므로 별 문제는 아니다.
정군산 전투 때 획득 조건은 사실 / 가상 루트 둘다 난이도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악물 각오는 해야 한다.
사실 : 북서 요새 + 북쪽 성채 / 정군산 진지 함락 시 (싸움을 계속한다 선택)[19]/ 적 전멸 / 20턴을 버틴다.
가상 : 10턴 내로 적 전멸[20]
사실 모드나 가상 모드를 막론하고, 북서쪽 요새에는 조홍이라는 애물단지가 있다. 다행히 가상 모드에서 조홍과 함께 강제로 북서쪽에 배치되는 방덕은 최강의 탱커이면서 딜링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고[21] 사실 모드에서는 취향대로 장수를 선택하면 된다.
사실 모드는 제한 턴수가 20턴으로 여유로운 편이라 적을 전멸시키는 것도 의외로 어렵지 않으며 일부러 정군산 진지 이외의 진지들을 적들에게 넘겨 원군들을 불러내서 최대한 경험치를 빨아먹는 플레이도 가능하다. 적들은 산지를 끼고 각개격파를 하느냐, 아니면 정군산 진지에 모두 모여서 총력전으로 맞서느냐의 선택인데 이는 순전히 유저 취향 혹은 육성 방향에 따라 결정한다.
가상 모드는 제한 턴수가 25턴이나 사실상 10턴이라 난이도가 좀 더 상승한다. 하후연이 황충과의 일기토에서 전사하지 않기에 조황비전을 얻지 못하므로 굳이 일기토 붙여서 전력을 깎아먹을 필요는 없고, 원군까지 10턴 내에 정리할 것 같지 못하면 산채를 사수하고 싸우는 것이 좋다. 모래폭풍 - 회귀 조합이 갖춰진다면[22] 난이도는 매우 하락하긴 한다.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장착 시 회심 공격을 하는데, 물리 공격뿐만이 아니라 책략을 쓸 때에도 보통 때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준다(책략에 회심 피해가 들어갈 때엔 화면 가장자리가 흔들림). 그리고 전작과는 달리 회심 공격 면역 효과를 보유한 대상은 회심 공격을 받을 시 아무 피해도 받지 않는 게 아니라 HP가 1만 깎인다. 보물 강화 효과 등을 통해 최소 피해량을 늘릴 수 있으나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한 편. 참고로 회심 공격 면역 효과를 보유한 장수는 회심 책략에도 별 피해를 입지 않으므로 옥새를 장착한 후 책략을 사용한다면 대상이 회심 공격에 면역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로 연의에서 원술은 옥새를 장착한 상태로 등장하는데, 원술, 조비, 조예는 옥새를 장착하지 않아도 장수 효과로써 옥새의 보물 효과인 회심 공격을 적용시킬 수 있다. 사실 장수 효과로써 회심 공격 효과가 존재하는 장수는 이외에도 더 있으나, 언급한 군주계 장수들은 게임사가 이들의 행적을 의식한 게 틀림없다(...).
7.3. 매직 더 개더링
Imperial Seal 문서로.7.4. 레전드히어로 삼국전
300년에 1번 열리는 드림배틀의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어떠한 소원이든 이루어주는 보물.[23] 이렇게 드림배틀이 열리는 이유는 세상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옥새가 그 에너지원으로 300년에 1번씩 '위대한 꿈'을 필요로 하기 때문.하지만 드림배틀 최후의 승자인 유비가 소원으로 '드림배틀을 없애달라'고 하고 장각이 소유했던 새로운 옥새의 설계도로 위대한 꿈이 필요 없는 세상 사람들의 작은 꿈으로 에너지를 얻는 새로운 옥새가 완성되면서 그 시스템을 이어받은 후계자에 의해 드림배틀도 폐지된다.8. 여담
축구에서는 가는 팀마다 우승을 만드는 선수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선수로한편, 2020년대 이후로는 어휘력 저하로 인해 옥쇄와 글자를 헷갈리는 세대가 적지 않은 단어이기도 하다.
9. 관련 문서
[1]
옥새와 형태는 다르지만 한국사에서도 권위의 상징물이던
신라의
금관이 황금과
곡옥이란 두 재료가 중심이다. 일본에서도 옥은
조몬 시대부터 중요시되었다.
[2]
하지만 남전옥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보다 적확할 듯하다. 화씨지벽에서 벽(璧)이란 옥을 둥그렇게 가공하여 도넛처럼 가운데 구멍을 뚫은 것을 말한다. 이를 재가공하여 전국옥새를 만들었다면, 옥새가 몹시 작아야 하고 화씨지벽의 남은 부분은 가치가 뚝 떨어진다.
[3]
진시황 때부터 후당 말제 때라면 천 년이 넘는다.
[4]
受命于天 旣壽永昌: 하늘에서 천명(天命)을 받았으니, 그 수(壽)가 길이 빛나리라.
[5]
왕의 명령은 교(敎)라고 하고,
황제의 명령은 칙(勅)이나 조(詔)라고 한다.
[6]
공식 조약문 등 중요서류에는
철 스탬프(압인/철인) 형태의 국새(Great Seal)를
찍는다.
[7]
원나라 때의 옥새에 대해선 자세한 기록이 없다.
[8]
진시황의 옥새는 중간에 부서져서 금으로 땜질하기도 하고
조비나
석륵 등은 옥새에 자신의 문구를 새기기도 했다.
[9]
나라의 도장인 국새(国璽)와
천황의 도장인 어새(御璽)가 따로 있지만, 인면의 글씨(인문)를 제외하면 디자인이나 재질은 같다.
[10]
다만 국새인
대한국새는 금도금 순은(天銀鍍金)으로 제작했다.
[11]
지금도
교황이 사용하는
어부의 반지가 대표적이다.
[12]
반지로 만든 이유가 매우 실용적인데 서양에서는 임금이 언제 어디서든 정무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항상 휴대하기 위해 반지형 옥새를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서양사에서 왕들은 전쟁터를 돌아다니기 일쑤라서 주먹만한 뭔가 덩어리진 물건을 들고 그걸로 계속 인쇄(?) 작업을 하기가 매우 번거롭기 때문에 휴대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옥새를 반지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후
민주주의가 만들어진 이후 이것이
장교들에게 적용되어
임관반지와 군번도장이 생겨나게 되었다.
[13]
어떤 경우에도 최소 명성 100은 유지된다. 따라서 약탈 + 징병 + 훈련 → 전쟁만 반복하여 천하 통일하는 꼼수도 가능하다.
[14]
이 경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도시가 5개 이상이거나, 장수를 많이 거느리고 있을 때 밑의 신하들이 처음에 왕의 자리에 오르라고 권유한다. 그 후 타 세력이 황제가 되면(자칭 내지는 선양) 비로소 황제가 된다.
[15]
순찰시 낮은 확률로 주민이 플레이어에게 가보로 아이템을 준다.
[16]
단 유비는 제외.
[17]
여포의 연주 강탈과 소패왕 출진 시나리오
[18]
황제 여포 시나리오
[19]
하후연이 죽으면 조황비전을 획득 어이
[20]
10턴 경과 시 밑에서 제갈량이 출현해 이벤트로 적군이 모두 퇴각하고 승리한다. 즉, 10턴 내에 적군을 전멸시키지 못하면 옥새는 얻지 못한다.
[21]
방덕이 아래쪽, 조홍이 오른쪽 관문에 배치되는데 조홍이 물러나게 한 후 방덕을 오른쪽 관문에 배치시키는 방법도 있다. 방덕이 도사의 허보 같은 계략에 걸렸을 때 의외로 잘 풀리지 않기 때문에 조홍이 아이템으로 회복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22]
기마 책사계인 사마의가 이 전투 직전에 합류한다.
[23]
단, 세상을 재창조해야하는 수준의 소원은 안된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소원이 안된것도 이런 이유 때문.
[24]
정말 웃기게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퇴출시킨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의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은 무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지역예선 광탈을 먹이고 본선에 올라가서 어처구니 없게도 동네북이 되고 만 챔피언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게만 덜미를 잡히고 나머지를 다 이기고 16강에 올라간 뒤 8강에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장렬히 산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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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보다 더 대단한 케이스다. 본인이 우승을 만들지 않고서도 리그,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FA컵 가리지 않고 우승컵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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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FC를 제외하고 데뷔 이후 뛴 팀에서 우승컵을 한 번씩 다 들었다. 물론 팀에 기여한 것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