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군주의 권위를 상징하는 도장에 대한 내용은 옥새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
玉碎. 직역하면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깨끗이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출전은 이러하다.初 "永"兄 "祚"襲爵 陳留王 "祚"卒 子"景皓"嗣. 天保時 諸元帝世近者多被誅戮 疏宗如"景安"之徒 議欲請姓高氏 "景皓" 曰 "豈得棄本宗 逐他姓? 大丈夫 寧可玉碎 不能瓦全!" "景安" 遂以 此言白顯祖 乃收 "景皓"誅之 家屬徙彭城 由是"景安" 獨 賜姓 高氏.
처음에[1] 영[2]의 형인 조는 진류왕을 습작하였고[3], 조가 졸하니 그 아들 경호[4]가 이어받았다. 천보연간, 효정제의[5] 여러 곁쪽이 살해되자,[6] 경안의 무리와 같은 길카리가 모여[7] 성을 고씨로 삼도록 청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에 경호가 말하였다. "어찌 제 겨레를 버리고 남의 성을 따를 수 있겠는가? 대장부는 구슬처럼 깨질지언정, 기와처럼 몸이나 보전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자 경안이 현조에게 이를 고하였더니, 경호를 붙잡아 주살하고 제살붙이를 팽성으로 귀양보냈다. 이 때문에 경안만 홀로 고씨를 받잡았다.
『 북제서 Vol. 41』, 「 열전 No. 33」, <원경안전>
처음에[1] 영[2]의 형인 조는 진류왕을 습작하였고[3], 조가 졸하니 그 아들 경호[4]가 이어받았다. 천보연간, 효정제의[5] 여러 곁쪽이 살해되자,[6] 경안의 무리와 같은 길카리가 모여[7] 성을 고씨로 삼도록 청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에 경호가 말하였다. "어찌 제 겨레를 버리고 남의 성을 따를 수 있겠는가? 대장부는 구슬처럼 깨질지언정, 기와처럼 몸이나 보전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자 경안이 현조에게 이를 고하였더니, 경호를 붙잡아 주살하고 제살붙이를 팽성으로 귀양보냈다. 이 때문에 경안만 홀로 고씨를 받잡았다.
『 북제서 Vol. 41』, 「 열전 No. 33」, <원경안전>
이러한 고사로부터 '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깨끗이 죽음'이란 의미로써 사용되었다. 쉽게 말해 짧고 굵게 살기. 반대말은 기와처럼 아무 보람(가치)도 없이 몸(목숨)이나 보전한다는 뜻의 와전(瓦全, 가늘고 길게 살기).
삼국지연의에서는 76회에서 위군과 오군의 협공으로 고립된 관우가 손권의 사신으로 온 제갈근으로부터 항복을 권유받자,
玉可碎而不可改其白, 竹可焚而不可毁其節
옥가쇄이불가개기백, 죽가분이불가훼기절
옥은 부서져도 그 빛을 잃지 않고, 대나무는 불에 탈지언정 그 마디가 휘어지지 않는다.
라고 답했다.옥가쇄이불가개기백, 죽가분이불가훼기절
옥은 부서져도 그 빛을 잃지 않고, 대나무는 불에 탈지언정 그 마디가 휘어지지 않는다.
본래 한국에서도 별 문제 없이 쓰이던 표현이었으나, 후술될 이유로 상당히 민감한 인식이 생겨 거의 사어화되었다. 단어의 배경에 있는 역사적, 정치적 문제 때문이다. 사실 과거에도 그리 잘 쓰이는 단어는 아니라서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비슷한 예로 천황이라는 호칭도 오늘날에는 일본의 군주 호칭과 연관되어 사용을 금기시하는 인식이 많다. 단,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일리천 전투를 말아먹은 신검의 동생들이 '전원 옥쇄할 것인지, 항복할 것인지 선택하라'며 신검에게 채근하는 장면이 있긴 하다. 또한 드라마 야인시대 에서도 1부 마지막화인 50화에서 조선이 해방을 맞이하자 미와 와사부로가 '조국을 위해 옥쇄를 선택했다'며 마지막 충성을 받아달라고 만세 삼창을 외치며 자결한다.
2. 일본의 옥쇄(ぎょくさい)
일제가 태평양 전쟁 때 카미카제나 반자이 돌격처럼 자살돌격하는 행위를 ' 천황을 위한 옥쇄' 운운하며 미화한 적이 있어서 요즘에는 그다지 뉘앙스가 영 좋은 단어가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폭. 태평양 전쟁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일본군을 통해 '옥쇄'란 단어를 알게 되었을 텐데, 당시 일본군은 자폭 외에도 후퇴 없이 끝까지 위치를 사수하다 죽는 걸 옥쇄라고 표현하는 등 아무튼 싸우다 '명예롭게 전사'하면 일단 옥쇄라고 여기기도 했다. 끝까지 위치를 사수하다 전사한 경우도 자발적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강제로 쇠사슬로 묶어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한 경우도 많았는데, 이런 경우 어쩔 수 없이 위치를 사수하다 죽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강제로 미화된 측면도 있다. 일본군도 그럴 지인데 강제로 징집된 타국 국민들이 일본을 위해 옥쇄하는 경우는 대부분 전부 이런 식이였다.[8]
일본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태평양에 끌려온 강제 노동자들과 현지 민간인 및 주민들에게까지 강요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 사이판 전투의 만세 절벽(Banzai cliff), 오키나와의 주민 집단 자살 등 수많은 사례들이 있었다. 일본제국은 미군이 자신들이 했던 것과 동일하게 미군의 포로가 되면 민간인 부녀자들은 수없이 강간과 능욕을 당하고, 남자들은 결국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며 강요와 세뇌를 하였으며, 이는 주민들이나 일본군이 항복을 못 했던 이유가 되었다.[9]
하지만 말하자면 일본의 옥쇄는 상명하복하고 불만을 표시하지 못하는 일본 제국의 병폐[10] + 전체주의의 결과물.
일부 일본 극우계 인사들은 상술된 대로 이 옥쇄를 임전무퇴의 사무라이 정신, 일본인들이 깊이 새겨야 할 정신으로 추천(?)하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군국주의 미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일본의 일반 대중들에게도 일본의 저질 역사 교육 문제로 인한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무관심, 또는 우경화 풍조의 영향으로 옥쇄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 문제. 심지어는 (별다른 의도는 없다지만) 옥쇄에 대한 왜곡된 뜻을 공공연하게 차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켜 온갖 잔혹한 짓이 벌어진 면은 그닥 신경 쓰려 하지 않았고 그냥 넘어간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몇몇 애니메이션에서는 작가가 극우든 아니든 상관없이, 특공과 자폭 공격 등의 주인공의 옥쇄 정신이 알게 모르게 녹아 있다.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1억 옥쇄가 있다. 이쪽도 실제 일본군이 선전에 이용했던 용어이다.
세계 각국 군대의 극단주의자들이 옥쇄를 미치게도 좋아하고 있다. 보통 높으신 분들 기득권 귀족 혹은 극단주의자들이 이걸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남이 목숨을 바쳐서 자기 것을 지켜 주기 때문이다. 그 후 이걸 애국심으로 포장만 하면 자기들이 욕먹을 일도 없이 관심도 돌릴 수 있다. 일본 제국도 마찬가지로 옥쇄니 자폭이니 강조하는 쪽은 대본영인데 정작 여기에 죽어나간 사람들은 죄다 일반 병사들, 조선인이나 본토의 민간인이었다. 즉, 자기들은 죽지 않고 타인들이 대신 죽어 주니 이런 정신나간 소리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도조 히데키 등 대본영은 국민들에게 옥쇄를 강요하면서 자기들은 옥쇄는커녕 마츠시로 방공호를 만들어 살길을 궁리했으며, 패전 후에는 잡혀서 추한 꼴로 재판을 받고 사형당했다. 옥쇄는 커녕 얌전히 버스로 호송되는 A급 전범들 사진
그러나 어디까지나 생존자가 있어야 승리가 있는 법이다. 저런 식으로 아군에게 무의미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어떠한 긍정적 결과도 불러올 수 없다.[11]
일본 제국이 맞선 적국 중국의 지도자인 장제스도 중일전쟁 당시 우한 함락 이후 옥쇄의 각오를 다졌다. 이쪽은 의미 없는 죽음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조차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말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는 표현 방법이다.
화기 등장 전 냉병기가 주무기이던 시절에는 사기진작의 방법으로도 사용되기도 했다. 필사즉생행생즉사라는 오자병법의 말도 있는 것처럼 냉병기 시절에는 사기로 전세를 뒤엎는 것도 공공연히 있던 일이고, 목숨을 건 특공은 병법의 하나로 취급되기도 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주된 전략이 아니라, 도저히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시도하는 것이다. 사면초가의 경우처럼 포위당해 몰리면 옥쇄는커녕 병사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탈주 행렬이 이어지는 경우가 다수다. 이런 병법을 일본 제국은 냉병기도 아닌 화기 시대에, 시도할 때 안 할 때를 못 가리고 시도했으니 옥쇄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괜히 영 안 좋은 것이 아니다.
서구권에선 이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2차 세계 대전 말기를 그린 대중매체에선 일본군을 묘사할 때 옥쇄 관련 내용이 대부분 등장한다. 소설 1984에도 영향을 줘서 아시아 지역의 국가는 '죽음 숭배'를 따른다는 서술이 나온다.
3. 가상매체
인터넷에서는 '옥쇄만이 있을뿐!'이라는 대사로 유명한 미즈키 시게루의 만화 전원 옥쇄하라!의 짤방이 유명하다. 전원 옥쇄하라!는 대중문화에서 옥쇄의 문제점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이 만화는 미즈키 시게루라는 작가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환상에 가깝고 비인간적인 옥쇄로 인해서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닥친 비참한 비극을 상당히 참혹한 방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유희왕에서 카이바의 대사 중 "분쇄☆옥쇄☆대갈채!"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 때 옥쇄는 2번 항목의 그 옥쇄가 아니라 그냥 "분쇄"의 라임을 맞추기 위해 사용된 단어이다. 뒤에 이어진 "대갈채"도 일본어 기준으로 라임에 맞다. 이와 별개로 유희왕 듀얼몬스터즈에서 "사나이의 활약, 혼다 옥쇄"라는 화가 있어서 "죠노우치 죽다"처럼 화의 제목이 스포일러성이 강하고 과장이 심해서[12] 밈 화 된적이 있다.
[1]
예전에 초영(初永)을 '초영연간'으로 번역하였지만 실제로 초영이라는 연호는 이때 쓰인 적이 없었으므로 이것은 틀린 번역이다.
[2]
대나라의 마지막 임금 소성황제 탁발십익건의 아들인 청하환왕(淸河桓王) 흘근(紇根)의 친
현손이고 진류환왕(陳留桓王) 건(虔)의 친
증손이고 진류경왕(陳留景王) 숭(崇)의 친손자고 진류왕 건(建)의 아들로 경안의 아비다.
[3]
시호는 장(莊)이다.
[4]
따라서 경호는 경안의
종형제다.
[5]
예전에는 '동위의 원제와'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의 원제元帝는 원씨 황제라는 뜻이고 동위에는 원元을 시호로 받은 황제가 없으니 이 또한 틀린 번역이다.
[6]
효정제 및
문양제 항목 참고. 문양황제는 위의 황족인 하남원씨를 70호(戶) 700여명이나 죽이고 장수(漳水)에 버렸다. 하남원씨로서는 후술할 개성을 해서라도 생존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무서운 일이었다.
[7]
유송부터
선양하면 전조(前朝)의
종실을
멸족하는 게
국룰인데
폭군인
경렬제가 일부 하남원씨를 살려둔 것은 아리송한 일이다. 길카리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원경호·원경안 종형제는
효정제와 17촌이나 되면서
항렬도 훨씬 높아서
효정제의
친현조부뻘이다. 동아시아에서
항렬을
역주행하는 계승은 금지되었기에 이들은 비록
종친이지만 황제가 될 수 없다. 추측하건대 황제가 될 수 없기에 굳이 살려둔 게 아닐까 싶지만 막상 하남원씨가 살해될 거라 두려워한 걸 생각하면 다른 영문일 수도 있다.
[8]
강제로 징집되어 억지로 일본군이 되어 쇠사슬을 차고 옥쇄하는 경우였지만
연합국 군인들이 보기에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다 동양인으로 비슷해 보였고, 중국어와 한국어, 일본어는 서양인들이 듣기에 잘 구별이 가지 않기 때문에 일본인 출신 일본군으로 오해당하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도 많았다.
[9]
물론 막상 미군에게 점령당한 뒤에는, 분명 여자는 겁탈하고 남자는 고자로 만든다던 미군이 그냥 별 마찰 없이 주민들을 무시하거나,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주고 있는 판(...)이었으니 대부분 진실을 알게 되었다.
[10]
이 성향은 전후 일본인이 국가에 대한 신뢰를 잃고 개인주의가 강해지면서 거의 사라졌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 그 잔재가 은근히 남아 있다고 분석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 북한에도 남았는데, 그야말로 최악의 일제강점기 잔재 중 하나이다. 일본과 달리 한국과 북한은
징병제 국가인 터라서 오히려 더더욱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다.
[11]
조지 패튼이 정반대로 "나라를 위해 죽지 마라, 적이 나라를 위해 죽게 만들어라" 라는 어록을 남긴 것이 괜히 그런 게 아니다. 결국에는 끝까지 살아남는 쪽이 이기는 게 전쟁이기 때문이다.
[12]
둘 다 캐릭터가 죽는 걸로 표현했지만 결과적으로 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