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아시아 | ||||||||||
대한민국 |
일본 |
중화권 |
몽골 |
인도 |
|||||||
파키스탄 |
방글라데시 |
아프가니스탄 |
위구르 |
우즈베키스탄 |
|||||||
투르크메니스탄 |
타지키스탄 |
카자흐스탄 |
키르기스스탄 |
||||||||
유럽 | |||||||||||
러시아 |
벨라루스 |
우크라이나 |
몰도바 |
조지아 |
|||||||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
가가우지아 |
독일 |
오스트리아 |
|||||||
폴란드 |
헝가리 |
영국 |
프랑스 |
네덜란드 |
|||||||
루마니아 |
불가리아 |
세르비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알바니아 |
|||||||
그리스 |
키프로스 |
북키프로스 |
코소보 |
스웨덴 |
|||||||
리투아니아 |
이탈리아 |
||||||||||
서아시아 · 북아프리카 | |||||||||||
이란 |
팔레스타인 |
사우디아라비아 |
시리아 |
이라크 |
|||||||
쿠웨이트 |
바레인 |
카타르 |
아랍에미리트 |
예멘 |
|||||||
이스라엘 |
레바논 |
쿠르드 |
이집트 |
튀니지 |
|||||||
리비아 |
알제리 |
수단 공화국 |
|||||||||
아메리카 · 아프리카 | |||||||||||
미국 |
베네수엘라 |
브라질 |
소말리아 |
탄자니아 |
|||||||
오세아니아 | |||||||||||
호주 |
뉴질랜드 |
||||||||||
다자관계 | |||||||||||
키프로스 5+1 회담 |
튀르키예·시리아·이라크 |
튀르키예·이란·아랍권 |
튀르키예·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
유럽연합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 ||||
대한민국 |
러시아 |
우크라이나 |
독일 |
리히텐슈타인 |
|
폴란드 |
체코 |
헝가리 |
영국 |
프랑스 |
|
스페인 |
이탈리아 |
세르비아 |
슬로베니아 |
튀르키예 |
|
캐나다 |
|||||
다자관계 | |||||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 |
튀르키예 | 오스트리아 |
[clearfix]
1. 개요
오스트리아와 튀르키예의 관계. 오늘날 오스트리아는 튀르키예의 유럽 연합을 가입을 적극 반대하는 나라이기도 하다.2. 역사적 관계
2.1. 근세
합스부르크 제국의 특수성은 그 다종족적, 다민족적 특성이 아니라 이 다민족 제국을 유지시킨 요인에 있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독일인(
오스트리아인)은 특별히 인구가 많거나 군사적으로 우월한 것은 아니었다. 즉
오스만 제국의 팽창이 이들 기독교 영토에 가하는 더 큰 위협이 없었다면,
합스부르크 가문은 결코 유럽 동남부에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거나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만 제국에 대한 방어 세력으로 생겨난 제국이었다. 동남부 유럽인들은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 중 차악으로 어쩔 수 없이 합스부르크를 택했다.
민족 / 아자 가트, 알렉산더 야콥슨
민족 / 아자 가트, 알렉산더 야콥슨
튀르키예와 오스트리아는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 시절부터 숙적이었다. 제1차 빈 포위 때는 오스만 제국에 의해 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수도 빈이 점령당할 뻔하기도 했다. 이후 30년 전쟁이 발발하자 보헤미아 왕국 대표들이 오스만 제국에게 개입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시 사파비 페르시아를 주적으로 여겼던 무라트 4세는 이 요청을 기각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오스만 제국과 헝가리 왕국을 삼분할해 지배하다가[1] 제2차 빈 포위와 뒤이은 대 튀르크 전쟁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이 헝가리 왕국 전역을 지배했다.
2.2.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과 그 후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오스만 제국이 약해지자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발칸반도로 진출하면서 영토를 확장해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한 때는 오스만 제국에 맞선 동맹이었던 러시아 제국과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오스트리아 측의 범게르만주의와 러시아 측의 범슬라브주의가 충돌하게 되었다.2.3. 20세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동맹국이라 관계가 좀 개선되는듯 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양국은 패전국이 되면서 많은 영토를 잃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었고 신생 오스트리아 공화국과 튀르키예 공화국이 생겨나면서 수교했다.2.4. 21세기
오스트리아에는 지금도 튀르키예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2] 오스트리아는 튀르키예의 유럽연합가입도 반대했고 게다가 이미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2018년 6월 8일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튀르키예 출신의 이슬람 성직자 60여명을 추방하겠다고 밝히자 튀르키예와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 그리고, 극우 자유당대표는 에르도안을 찍은 튀르키예인은 튀르키예로 돌아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터키어 운전면허시험을 폐지했다. #
2020년 6월 23일 튀르키예 외교부는 난민 문제와 관련해 그리스를 옹호하고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
그러나 이들의 외교성항은 비슷한 편이다. 역사적으로 주변국가들을 침략한 전적이 있으며 주변국가들에게 밉상 취급받는 것까지 말이다.[3]
2020년 9월 1일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튀르키예 스파이를 체포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
2023년 2월 11일, 오스트리아군은 점점 어려워지는 안보 상황 때문에 튀르키예에서의 구호활동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
3. 관련 문서
- 오스트리아/외교
- 튀르키예/외교 / 튀르키예-유럽 관계( 유럽연합-튀르키예 관계)
- 오스트리아/역사
- 튀르키예/역사
- 오스트리아/경제
- 튀르키예/경제
- 오스트리아/문화
- 튀르키예/문화
- 오스트리아인 / 튀르키예인
- 독일어 / 튀르키예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중부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