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安田朗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겸 캐릭터 디자이너. 전직 게임 디자이너, 전직 그래피커(캐릭터맨). 1964년 7월 21일 홋카이도 출생. 주요 활동명은 あきまん(AKIMAN/아키만)인데, 드래곤 퀘스트를 하면서 이름을 적다가 본명인 아키라가 별로 재미없어서 끝에 울트라맨처럼 MAN을 붙였다가(아키라만) 더 줄인 것이 계기라고 한다. 고객사나 업무 내용에 따라 명의를 바꾸는 특징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히라나가 표기인 あきまん을 사용하며, 선라이즈(브랜드) 관련은 본명(한자 표기), 맥스 팩토리 관련은 akiman을 사용한다.
2. 약력
출생지는 홋카이도 쿠시로시.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고 그림으로 진로를 결정하여 그림이 강한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곳이어서 방황. 졸업 후 상경하여 도쿄디자이너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그림의 길을 걷게 되는데 학교생활이 잘 맞지 않았는지 부모님 몰래 중퇴를 결정, 이후 신문배달로 끼니를 연명하는 나날을 보냈다. 이후 컴퓨터를 구입하여 취미로 컴퓨터 그림을 그리다가 애니메이터로 취직, 동화 담당으로 원화 및 동화 작업을 했는데 쥐꼬리만한 봉급에 견디다 못해 몇 달만에 퇴사하게 된다.이후 1985년, 게임회사인 캡콤에 아르바이트로 입사하게 되는데, 당시 면접관이었던 오카모토 요시키는 포트폴리오도 없이 나타난 야스다를 '틀림없는 천재다'라고 생각하며 바로 채용했다고 한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이유는 그림을 그리면 친구들이 다 달라고 해서 줘버렸기 때문이었다나 뭐라나. 또한 이때 야스다 아키라는 파자마를 입고 면접장에 나타났고(...), 집에 갈 차비가 없다며 오늘 채용해주면 매일 하루치를 바로 달라고 요청했다느니, 이후에도 회사에 파자마 차림으로 출근했다는 등의 수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오카모토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지만 야스다를 보고 '내가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겠다'며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캡콤 입사 이후 자신의 재능을 주저없이 발휘하였다. 그러나 야스다는 그림을 그리는데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에 플래너라는 사람들이 목에 힘을 주고 다녔기에 자기도 상사(아마 오카모토나 후나미즈)가 화장실에 갔을때 따라가서 '저 플래너[1] 시켜주십쇼'라고 하여 직책을 따냈다고 한다. 포가튼 월드에 등장하는 상점 아가씨 실피가 야스다 아키라의 첫 도트 작업물이고 스트리트 파이터 2에서는 류/켄/사가트/가일/혼다/장기에프/블랑카/춘리를 혼자서 모두 디자인해 내기도 했다.[2] 파이널 파이트, 스트리트 파이터 2 같은 각종 게임의 크레딧에는 엄연히 게임 플래너로서 니시타니 아키라와 같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후 미국에서 더블 드래곤 같은 벨트스크롤 액션 게임이 히트하는 것을 보고 왜 그런지에 대해 분석한 다음, 니시타니 아키라와 함께 파이널 파이트를 고안하는 등 플래너로서의 능력도 발휘했다. 캡콤에 있던 선배 기획자가 마계촌과 전장의 이리가 1만장 히트를 두고 '앞으로 이런 시대는 더이상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가 제작에 참여하여 마작 학원 1만 2천장, 파이널 파이트 3만장, 스트리트 파이터 5만5천장이라는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마작 학원의 히트가 커서 인센티브도 많이 받았지만 이때 캡콤이 조금 어려운 시기여서 이 히트가 없었으면 스파2는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니시타니 아키라는 캡콤 최초로 전문 기획자로서 입사한 재능있는 기획자였고, 이 때 야스다 아키라는 니시타니 아키라와 함께 일을 하고서 '난 절대 이 사람을 이길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일러스트/그래픽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여한 게임의 연이은 히트로 직급이 굉장히 빠르게 올랐는데, 특히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대히트 이후에는 위치가 너무 높아져서 현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그룹장을 맡거나 다른 팀에 끼어서 노하우를 전수하거나 했다. 특히 몸값이 너무 비싸져서 일러스트나 플래너 업무 같은 건 시간대 비용 때문에 야스다 아키라에게 굳이 맡겨지는 일이 별로 없었을 정도가 되었는데[3], 이때 게임 제작 전선에서 멀어진 것은 이후 큰 타격이 되었다고 한다.
인간적으로는 괴짜같다 못해 어딘가 결여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는데 캡콤 입사 당시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 할수록 돈이 줄어든다'며 하소연을 했는데 이유인 즉슨 알바비보다 교통비가 더 나가는걸 계산하지 않고 문제가 생긴 이후에도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는 일화가 있다. 캡콤 재직중엔 오카모토에게 1600만엔 정도 하는 3D 그림을 그릴 컴퓨터가 필요하다고 했고 오카모토는 그럼 처리를 해줄테니 일주일 정도 기다리라고 했는데 '지금 당장' 필요하니 자기 돈으로 산다고 했고 오카모토는 나중에 돌려줄테니 영수증이라도 받아오라고 말리느라 혼났다고 한다. 보너스가 500만엔 나왔을 때는 뒷주머니에 넣고 그림 공부에 쓰기 위해 레이저 디스크 가게에 가서 '전부 주세요'라고 하여 몽땅 사왔다는 일화도 있다.
일반 대중들은 야스다를 캡콤 히트작의 일러스트레이터나 캐릭터 디자이너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저기 기록되어 있듯 게임 디자이너와 아트 디렉터 같은 역할을 하면서 겸사겸사 그림에 관련된 일을 한 것일 뿐이며, 특히 스스로 말하길 캡콤 재직 시절 자신이 일러스트레이션에 할애한 시간은 전체 업무시간의 5% 미만이었다고 한다. 다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서 그 유명한 스트리트 파이터2의 공식 일러스트도 연말연시에 친가에 돌아갔을 때 집에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회사에서 게임을 만들어야지 그림 좀 그리지 말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고 이후에도 발각되면 시급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다며 오카모토에게 혼이 났다. 게임의 공식 일러스트를 개발팀 인원이 아니라 외부 팀인 디자인실[4]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즐겁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로 구성된 팀인지라 다들 자신보다 잘 그린다고 평가했다.
개발팀 소속으로 직접 히트작의 일러스트와 도트 그래픽 양쪽을 담당한 적이 많았기에, 캡콤의 아트 스타일을 정립시킨 핵심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캡콤의 경우 주요 일러스트레이터가 '디자인실'이라는 독립된 부서에 소속되어 공식 일러스트를 그리는 식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한때의 키누나 현재의 신키로 같은 작가가 그런 식으로 일을 했었다.[5] 디자인실은 타이틀 로고, 공식 일러스트, 포스터, 매뉴얼 등의 작업을 맡는 '게임/캐릭터 디자인이 아닌 패키지/포스터 디자인에 가까운 업무'를 맡고 있었고, 야스다도 한때는 이러한 일러스트 작업이나[6] 각 개발팀의 캐릭터 디자인 및 도트 그래픽을 맡은 신입 디자이너들의 교육도 담당하여 캡콤의 아트 스타일을 익히게 했다. 특히 게임에 어울리는 캐릭터 디자인을 위해 실루엣만으로도 캐릭터를 알아볼수 있는 명확한 특징을 눈에 띄는 것을 강조했다.[7] 초기 캡콤의 도트 스타일을 살린 스트리트 파이터 2와, 그 후에 나온 뱀파이어 시리즈/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의 비교가 그 좋은 예이다. 기존 캐릭터 도트가 그라데이션으로 실사풍 명암을 표현했는데, 뱀파이어/제로에서는 셀 애니메이션처럼 층을 만들어 통으로 칠해버리는 방식을 작업 효율이 훨씬 좋다는 이유로 제안하였다. 다만 묘사에 쓰는 색이 줄어들어 정보량이 적기에 확실한 캐릭터 데생과 거기에 맞게 늘어난 부드럽고도 정밀한 애니메이션 패턴이 뒷받침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 첫 시도인 뱀파이어는 일본에서 훌륭하게 성공했고 이후 엑스맨으로 시작된 마블 캐릭터를 이용한 대전 격투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와 3까지 계속 방향성을 유지하게 되었다.
1991년, 니시무라 키누라는 또다른 걸출한 재능을 가진 일러스트레이터가 입사하고[8], 회사에서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팀장이나 그룹장 같은 관리직의 업무인데[9], 본인은 실무 최전선의 일이 더 적성에 맞는다는 괴리감, 그리고 게임의 트렌드가 3D로 전환되는 등 야스다 아키라는 점점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었다. 3D 게임 개발팀에서 처음부터 기술을 배워가면서 텍스처 같은 것을 만들기도 했는데, 이 당시에는 스타 글라디에이터 같은 어중간한 게임에 캐릭터 디자이너로 참여한 것이 고작이었다.[10]
이렇게 회사 안에서 설 자리가 없어지자 오카모토의 배려로 출향(出向)하는 형식으로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과 함께 ∀건담을 만들게 되었다.
2001년에는 마지막으로 게임에 도전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 캡콤과 엔젤 스튜디오(현 락스타 샌디에이고)의 공동 프로젝트인 레드 데드 리볼버의 캐릭터 디자이너 및 현장 감독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때도 현지 개발자들에게 유명세를 치렀다는 듯. 또한 이 당시 엔젤 스튜디오의 한국인 개발자였던 박상순(현 엔씨소프트 CAD) 씨와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제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었고 프로젝트를 발촉한 오카모토는 퇴사, 아키만은 현지에 남아 저항해보았으나 엔젤 스튜디오가 락스타 게임즈에 인수된 후 판권까지 사들였기에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돌아왔을 때는 오카모토와 직접 계약 형식으로 얽혀있던 야스다 아키라도 더이상 있을 자리가 없어져 캡콤을 떠나게 된다. 이때 받은 상처는 상당히 큰듯 일종의 인간불신에 걸린 듯 하다. #
캡콤에서 나온 이후에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데, 흔히 프리랜서가 되면 배신자 취급을 받기 마련이나, 캡콤 시절에는 몸값이 비싸 일이 없었기 때문에 퇴사 이후에 오히려 캡콤 관련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일을 거쳐 지금은 '스트리트 파이터 공식과 죽을 때까지 관여하면서 일거리를 받아낸다'라는 걸 전략으로 삼고 있는 모양. 요즘 정형화된 커미션 같은 것은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것은 자신의 게임성과 맞지 않는다며 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캡콤 퇴사년도인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적자로 그동안 모은 돈을 소모하며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해당기간동안 SNS에서 연봉이 100만엔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 퇴사 직후에는 도쿄에서 화가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여 에로잡지 표지 등 보수가 저렴해도 가능한 많은 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의 작업이 기간을 길게 잡아먹는 관계로, 보수가 낮은 일은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그외에도 ∀건담 이후에는 게임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관련 일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 시리즈의 나이트메어 프레임 등의 메카닉 디자인에도 참여하였다. 슈퍼로봇대전 Z에 등장하는 기체인 XAN 역시 그가 디자인한 물건. G의 레콘기스타를 마지막으로 애니메이션 의뢰는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유로 2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애니메이션 작업은 빠른 스케쥴을 요구하는데 반해 본인의 작업은 긴 기간을 요구하며, 빨리 그려 마음에 들지 않은 작업물이 결국 자신의 정신을 갉아먹었기 때문. # 두번째는 명예욕 때문에 애니메이션 일을 의뢰하고 싶다면 본인을 원작자로 넣어달라는 무모한 조건을 달아서라고 한다. #
친구인 요시다 켄이치, 후배인 니시무라 키누와 같이 작업하다 보니 그림체가 많이 비슷해졌다.
현직 애니메이터는 아니지만 전직으로 잠깐 일한 적은 있어 기본적인 기술은 있기 때문에 아주 가끔 직접 그려넣기도 한다고 한다. 건담 G의 레콘기스타 마지막 화에 나온 토미노 감독은 야스다 아키라가 마감 직전 몰래 그려넣은 것이라고 한다.
3. 토미노 요시유키와의 관계
요시다 켄이치와 함께 토미노 감독 말년 작품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다.1990년대에 우울증이었던 토미노는 Marigul이라는 회사를 오가며 비디오 게임의 디자인 작업을 돕고 있었다. '턴에이의 치유'라는 책에서 언급된 내용인데, 기동전사 V건담을 만들고 정신 질환에 걸린 토미노의 치료비를 게임 회사 Marigul에서 지원하는 대신 디자인을 대가로 받았다고 한다.[11] 이 회사 주선으로 야스다를 만난 것이다.
토미노는 야스다를 처음 만났을 때 대뜸 " 쓰러진 상대를 때릴 수 있는 스파2가 정말 싫어!!"라고 호통을 친 적이 있다. # 야스다는 "그건 스파2가 아니고..." 하고 당황했다고 한다.[12]
야스다는 토미노 앞에서 즉석에서 춘리를 그려주었고 토미노는 당신은 천재라고 감탄하면서 바로 신작을 같이 하자고 했다고 한다. 당시는 토미노 감독도 많은 상처를 받았던 시기라 서로 상처를 보듬어주는 사이였다고 한다. 이후 토미노와의 인연을 이어가 ∀건담, 오버맨 킹게이너, 건담 G의 레콘기스타의 제작에도 참여해 메카닉 디자인을 맡게 된다. 그 토미노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이 바로 야스다.[13] 하지만 토미노도 그의 작업속도에 대해서 단점으로 지적하는데, 한 번 디자인을 부탁했더니 1년 뒤에야 가져왔다고 한다. 그래도 항상 만족스러운 디자인을 가져오므로 믿고 맡기게 된다고 한다.
토미노 요시유키와 개인적으로도 친해서, 때문에 전직 캡콤 소속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턴에이 건담 이후의 토미노 작품에 스탭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024년에는 토미노가 신작을 만들 생각인지 다시 야스다를 부른다고 하며 토미노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빈도가 늘었다.
4. 기타
- 게임 제작과 공식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한 유저들의 생각과 질문에 '캐릭터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를 혼동하지 말라'라는 취지의 발언을 자주 한다. 자신은 기획자 겸 캐릭터 디자이너면서 일러스트도 직접 그리려고 했던 입장인데, 회사에서는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아닙니다. 스파2의 캐릭터 일러스트는 저와 팀의 캐릭터맨이 했습니다. 키누 씨는 그 뒤 스파2 대쉬에서 일러스트로 참여했습니다. 캐릭터 디자인은 팀의 캐릭터맨 모두가 한 것입니다."
"캐릭터맨이 2년간 회사에서 먹고 자며 제작한 사랑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화보집 같은 것 때문에 '그 게임은 그 일러스트레이터가 없으면 안 돼' 같은 말이 나옵니다. 고객님들 입에서. 그러나 캐릭터 디자인과 일러스트는 전혀 다른 능력입니다."
"캡콤의 격투게임 그래픽은 도트를 그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만든 겁니다. 자수와 애니메이션 기술 양쪽을 갖춰, 1도트 1도트 키를 넣어 색을 입힌 거죠. 캐릭터의 아이디어를 늘리는 것은 그들의 힘으로 작업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고객님들은 며칠만에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만 찾습니다."
"캐릭터맨이 2년간 회사에서 먹고 자며 제작한 사랑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화보집 같은 것 때문에 '그 게임은 그 일러스트레이터가 없으면 안 돼' 같은 말이 나옵니다. 고객님들 입에서. 그러나 캐릭터 디자인과 일러스트는 전혀 다른 능력입니다."
"캡콤의 격투게임 그래픽은 도트를 그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만든 겁니다. 자수와 애니메이션 기술 양쪽을 갖춰, 1도트 1도트 키를 넣어 색을 입힌 거죠. 캐릭터의 아이디어를 늘리는 것은 그들의 힘으로 작업은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립니다. 하지만 고객님들은 며칠만에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만 찾습니다."
http://togetter.com/li/453034 목록을 펼쳐보면 그가 참여한 작업과 다른 작업자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http://togetter.com/li/454035
http://togetter.com/li/454035
-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스스로도 '야스히코의 그림이 좋아서 애니메이터가 되려했으나 실패하는 바람에 게임 업계에 들어갔다'라고 할 정도. 더불어 자타가 공인하는 건담의 팬으로, 학창 시절 '건담은 왜 재미있는가'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 일도 있다고 한다. 디자인실 지도를 보면 건프라가 쌓여있는 그의 자리를 찾기가 가장 쉽다. 상기의 토미노와의 관계 덕분에 건담 vs 시리즈의 탄생에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다만 야스다 아키라는 야스히코의 작화는 존경하지만 연출한 감독 작품은 재미와 로망이 없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매번 이상하게 파괴하는 분이라고 한다.
- 니시무라 키누, BENGUS, 요시카와 타츠야 등 후배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야스다 아키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니시무라 키누와는 스승과 제자 관계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각별한 관계. 다만 니시무라 키누의 팬들이 아키만의 블로그나 트위터 코멘트로 니시무라 키누에 대한 것을 묻는다던지, 아키만의 그림에 '난 키누선생님 그림이 더 좋은데'라던가 하는 식으로 무개념적인 발언을 하는 등 만사에 키누와 얽히는지라 스트레스를 받는 듯 하다. 이에 대해 아키만은 본인과 달리 니시무라 키누 본인이 팬들과의 교류를 잘 하지 않아서 많은 것이 베일에 싸여진 터라 팬심이 신앙에 가깝게 변질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코멘트하고는, 무개념적으로 키누를 떠받드는 키누의 팬을 '키누시탄(キヌシタン)'[14]이라고 이름 붙이고 트위터에서 블록하기도 했다. 물론 키누 본인을 디스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부터 '나에게 질문을 하면 블록하겠습니다'라고 질문 자체를 상당히 싫어하는 자세를 보여왔다.
- 인물이나 성격은 꽤나 까탈스러운 듯. 꽤나 직설적이고 거친 입담의 소유자인데다, 약간 삐딱선을 타는 성격. 카오스 라운지 사건에서도 카오스 라운지를 옹호하는 입장에 섰었다. 일본의 코스프레이어인 우시지마 이이니쿠와도 개인적으로 매우 돈독한 사이인데, 우시지마에 대한 세간의 평판이 워낙 나쁜지라 덩달아 까이기도 한다.
- 업계에서 전설적인 위치에 서 있는 프로이지만, 위의 우시지마 이이니쿠를 모델로 한 19금 동인지로 코믹 마켓에 참가하는 등 공적인 이미지를 딱히 신경쓰고 있지는 않다. 이전 운영하던 블로그의 절반이 그라비아 아이돌 사진으로 차 있었으며, 트위터에서도 성인물 여부를 가리지 않고 리트윗한다.
- 2016년부터 오버워치를 플레이하고 있는데[15], 본인이 그린 D.Va 그림에 " 디바쨩 핥고싶다"(...)라는 멘트를 달아놨다. 2017년에는 블리자드 본사에 초청받아 블리자드 직원들 앞에서 라이브 드로잉을 선보이기도 했다. toco toco와 진행한 영상 인터뷰에 따르면 프리랜서 활동 이후로 느껴지던 게임업계에 대한 염증을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디자인적 후계라고 느껴진) 오버워치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고[16], 이후 게임업계에 복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 오버워치에 굉장히 열중하여 1년 반가량 오버워치에만 집중한 결과, 그 동안 모은 돈을 다 써버리고 생활이 곤란해져서 그만뒀다고 한다. #
- 서양화, 실사화풍으로 테두리를 그리지 않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많아졌지만 그는 실사풍으로 그리더라도 여전히 테두리 선을 고집한다고 한다. 마음이 아이같아서 자극을 원한다나 뭐라나.
- 2020년 3월자 트위터 내용에 따르면 스트리트 파이터 실사영화판을 아직 본 적이 없다고 한다.
- 어느날 야스다 아키라 본인의 블로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내용인 즉슨 엔터브레인 직원이라 자칭하는 자가 캐릭터 6명, 한 명당 8천엔에 디자인 일을 맡아주지 않겠냐는 것. 단순 일러스트도 아니고 캐릭터 디자인이라면 손이 상당히 많이 가는 일인데 달랑 8천에 후려치는 것도 모자라, 야스다 같은 거물에 저런 당돌한 메일을 보낸 것은 대체 무슨 용기인가 하는 반응. 이에 야스다가 답변하길, "1명당 10만엔은 받아야 하는데 6명 전부라면 한 명당 8만으로 깎아주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 X(구 트위터)에서 개인적인 의뢰나 질문은 받지 않는다. 질문의 경우 블록 대상이므로 주의를 요한다.
5. 주요 참여 작품
5.1. 게임
- 사이드 암즈
- 로스트 월드
- 파이널 파이트
- 전장의 이리 2
- 스트리트 파이터 2
- 캡틴 코만도
- 천지를 먹다 2[17]
- 퍼니셔(캡콤)
- 뱀파이어 시리즈[18]
- 엑스맨: 칠드런 오브 디 아톰
- 마블 슈퍼 히어로즈
-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2
- 스트리트 파이터 제로 3
- 스트리트 파이터 3
- 스타 글라디에이터
- 파워스톤 시리즈
- 레드 데드 리볼버 - 캡콤 개발분까지만 참여
- 브레이브 스토리 새로운 여행자
- 스타 오션 5
- 스타 오션 6
- 매직 소드(게임)
5.2. 애니메이션
6. 외부 링크
[1]
planner. 기획, 원안, 아이디어 관리 등을 맡는 자리라고 보면 되는데 게임 메인 기획자라고 보면 된다. 현재에는 국내, 해외 게임 회사 모두 게임 디자이너(game designer)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플래너라는 단어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2]
도트까지 혼자 다 찍었다는건 아니고 캐릭터를 고안하고 기본 틀을 잡는 정도까지.
[3]
그림 같은 걸 그리고 있으면 너처럼 중요한 사람이 이런 작은 일이나 하고 있냐는 식으로 오카모토가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4]
오해하기 쉬운데, 과거의 디자인실은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 곳이 아니라 패키지나 포스터, 매뉴얼을 디자인하는 홍보부서 산하의 팀이었다. 직접 언급한 것은 과거에 있다가 없어진 '도쿄 디자인실'과 캡콤 전체의 '디자인실'이다.
[5]
디자인실의 설립자는 岡野正衛 오카노 쇼에이(활동명 SHOEI)로, 자신도 전문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이 아니라 류, 켄의 도트를 찍은 도트 담당 출신이지만,스파2 대쉬의 일러스트를 맡기도 했고 현재도 디자인실 실장으로 근무중이다.
[6]
1998년에 외부 일을 따오기 위해 캡콤 재직 상태를 유지하면서 유한회사 아키만을 세웠고, 이때 디자인실에 있는 책상 2개를 빌려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작 디자인실 소속이었던 적은 없는 모양.
[7]
이 방향성은 후에 길티기어의 캐릭터 디자인에도 보인다. 길티기어의 캐릭터 디자이너인 이시와타리 다이스케가 캡콤의 대전 격투 게임의 팬이기도 했고 야스다 아키라의 캐릭터 디자인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해서 비슷한 말을 인터뷰에서도 했었다.
[8]
'야스다 아키라보다 낫다'라고 사내에 도는 말을 본인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단, 두 사람의 사이는 사제지간에 가깝다. 원래는 일러스트 전문이 아니라 도트 그래픽 담당으로 입사하여
머슬 보머 제작에 참여했다가 디자인실이 생기면서 부서를 옮기고 일러스트 전문으로 자리를 잡은 것.
[9]
1996년 7월부터 1년간 개발본부의 제6그룹 그룹장을 맡았다고 한다. 게임 출시일을 고려하면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스파 3의 막바지 작업시기와 원화를 담당한
마블 슈퍼 히어로즈 VS 스트리트 파이터의 출시일이 겹친다.
[10]
이 무렵 니시타니 아키라는 질리기 쉬운 성격이기도 하고, 향후 불투명한 미래를 점치고 캡콤으로부터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대히트를 보상받으면서 퇴사하는 걸로 선수를 쳐서
자신의 회사를 설립하였다.
[11]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2]
버추어 파이터 혹은
철권, 또는
엑스맨 VS 스트리트 파이터 등과 착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토미노는 게임을 싫어한다고 공언해 왔지만 기술 발전에는 관심이 있으며 양아들이라 불리는
나가노 마모루가 알아주는 게임 중독자라 재밌는 신작 게임이 나오면 토미노에게 소개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야스다 말로도 게임에 대해 아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13]
토미노가 천재라고 한 디자이너는
야스히코 요시카즈와
나가노 마모루 정도이다. 토미노는 그 유명한
오오카와라 쿠니오,
카토키 하지메,
이즈부치 유타카 같은 디자이너에게도 이런 칭찬을 한 경우가 드물다.
[14]
과거 일본에서 기독교가 핍박받던 시절, 막부 몰래 숨어서 종교 생활을 하는 가톨릭 신자를 숨은
크리스천 =
카쿠레키리시탄이라고 불렀는데 이 '키리시탄'을 패러디한 것이다.
[15]
오버워치 발매 이후 한동안 트위터 닉네임이
솔저: 76을 패러디한 이름이었다. 전적 검색 사이트에 따르면 경쟁전 티어는 PS4판
골드.
[16]
오버워치의 보조 아트 디렉터 겸 캐릭터 디자이너인 아놀드 창은 과거
캡콤 파이팅 잼에 참여했고, 자신이 공동 창업한 UDON에서 캡콤 관련 일러스트레이션을 작업했던 전적이 있다. 또한, 오버워치가 공개된 초기에는 캐릭터로부터 캡콤의 디자인 영향이 느껴진다는 반응이 많았다.
[17]
게임에 등장한 여캐들은 원작자인
모토미야 히로시가 그린게 아니라 야스다 아키라가 그린 것이다. 컷인이 나올 때의 모습을 보면 그림체가 다르다. 모토미야 히로시는 여캐를 그리는 것을 어려워 해서 아내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18]
제대로 참여한 게 아니라 일종의 감수 담당으로 참여했다고 하는데, 각 캐릭터의 도트 그래픽을 기본 포즈만 그려서 베이스를 제공하고, 나머지를 담당자에게 다 맡기는 식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탭롤에 이름도 들어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