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4 18:01:56

변범지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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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卞範之
(? ~ 405)

동진의 인물. 자는 경조(敬祖). 연주 제음군(濟陰郡) 완구현(宛句縣) 출신.

2. 생애

변범지는 눈치가 빠르고 영민하여 당대 능력있는 자로 이름이 높아, 태원 연간(376년 ~ 396년)에 단양승, 시안태수를 역임하였다. 환현과는 어릴 적부터 함께 놀던 친구 사이라, 환현이 강주자사에 부임하자 변범지를 불러 자신의 장사로 삼았다. 환현은 변범지에게 중임을 맡기며 크게 의지하였고, 변범지 또한 환현을 위해 몰래 계략을 획책하니, 환현이 변범지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원흥 원년(402년) 정월, 형주까지 관할하게 된 환현의 위세가 나날이 강해지는 것을 보다못한 동진 조정에서 대군을 일으키고, 사마원현을 표기대장군에 임명해 환현 토벌을 맡겼다. 손은의 난 이후로 조정에서 군대를 발동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환현은 크게 놀라 강릉(江陵)의 성곽을 보수하고 수비로 응대하려 했는데, 변범지가 수도 건강(建康)을 함락시켜야 한다 주장하였다. 이에 환현은 변범지의 계책에 따라 동쪽으로 진격하여 관군을 격파하고, 무리없이 건강을 장악하였다.

원흥 원년(402년) 3월, 사마원현을 축출하고 조정을 장악한 환현이 스스로 승상에 오르자, 변범지는 단양윤에 임명되어 크고 작은 정사를 결정하였다.

원흥 2년(403년) 9월, 변범지는 은중문과 함께 환현에게 안제 사마덕종으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을 것을 권하는 한편, 암암리에 책명을 위조해 환현이 9석을 수여받게 하고, 환현의 측근들의 관직을 높였다. 이때 변범지 본인 또한 승진하여 정로장군, 산기상시에 제수받았다.

원흥 2년(403년) 11월, 변범지가 환현에게 제위를 넘긴다는 조서 내용을 지은 다음, 임천왕 사마보(司馬寶)로 하여금 안제를 겁박하여 그 내용을 베껴 쓰게 만들었다. 이후 조서의 내용에 따라 환현이 황제로 즉위하니, 변범지는 시중, 후장군에 임명되고, 반검(班劍) 20명을 하사받았으며, 임여현공(臨汝縣公)에 봉해졌다.

황위에 오른 환현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는데, 변범지 역시 자신의 저택과 관저를 크게 짓는 사치를 부렸다. 변범지는 스스로 환현을 보좌한 큰 공훈이 있다며 자부심을 가졌고, 부귀함을 남들에게 자랑하였다. 그의 자제들 또한 거만하게 행동하니, 그의 집안은 뭇 사람들의 두려움과 질투를 받았다.

원흥 3년(404년) 2월, 유유가 의군을 일으키고 건강을 향해 진군해오자, 변범지는 병력 20,000명을 거느리고 복주산(覆舟山) 서쪽에 주둔하였다가 유의에게 패하고, 환현을 따라 서쪽으로 달아났다.

원흥 3년(404년) 4월, 강릉에 도착한 환현은 다시 백관을 설치하고 변범지를 상서복야로 삼아 반격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유의에게 대패해 좌우가 모두 흩어지니, 오직 변범지만이 그 곁을 지켰다.

의희 원년(405년) 정월, 환현이 평정되고 강릉성에 입성한 유의는 변범지 등 환현의 측근들을 붙잡아 참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