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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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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탈레반 이후3. 바차 바지(Bacha bāzī,بچه بازی)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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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는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지만 40년 뒤인 2010년대에는 여성들이 부르카를 착용하고 다니게 되었다.[1][2]

낮은 여성 인권으로 악명 높은 파키스탄조차 아프간에 비하면 양반이다. 적어도 파키스탄의 경우 대도시 지역에서는 여성인권이 존중되는 편이며 히잡을 안 쓰고 다니는 젊은 여성도 꽤 있다.

아프가니스탄 왕국 시절만 해도 1921년 아마눌라 왕이 여성교육을 강조하면서 시대 상황의 한계는 있었지만 강제결혼과 아동결혼( 조혼), 신부값과 일부다처제 폐지를 법제화했으며 소라야 왕비도 여성인권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고 무함마드 자히르 샤 치세 들어 여성교육과 사회참여가 점차 활발해져 갔다. 그러나 1973년 쿠데타로 왕정이 폐지되고 자히르 샤 국왕이 폐위되어 이탈리아로 망명을 가자 잦은 쿠데타와 소련군의 침공, 소련 철수 후 무자헤딘과 나지불라 정부군 간 내전을 겪은 후 사회적 혼란으로 탈레반 따위가 득세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은 여성 인권이 심각하게 퇴보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한 러시아인 군인들의 인터뷰를 담은 아연 소년들이란 책을 읽어 보면 한 번은 소련군 몇 명이 어떤 마을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한 가정집에 들어갔는데 손님 접대를 지극히 중요시하는 아프간 문화의 영향으로 그 집에 있었던 여성들이 마지못해하며 차와 먹을 것을 내놓았다고 하지만 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그 집을 나오자마자 같은 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그 집으로 몰려와서 소련군에게 차와 먹을 것을 준 여성들과 아이들을 모두 돌로 때려 죽였다고 한다.

일부 산악 부족 문화에서는 손님 접대를 준비된 형식에 맞추어 제대로 하지 못하면 대대손손 치욕으로 삼는 풍조가 있으며 손님 접대를 제대로 못 했다는 이유로 피의 복수가 벌어지기도 한다. 해당 인터뷰를 한 소련군이 만약에 아프간 민간인의 집에 들어갔다가 살해당했다고 하더라도 집 안에서 외부인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2. 탈레반 이후

탈레반 정권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나고 나서인 1996년에 들어서야 아프가니스탄에서 집권했다. 탈레반이 패퇴한 직후에는 다소 여성 인권이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여성부가 설치되었고 여학생들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으며 여성 국회의원의 숫자도 100명에 육박하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보수 세력에 의해 2013년에는 조혼 강제결혼을 범죄로 정하고 여성을 사고 파는 행위를 금지한 여권 신장 법안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고 여성의 불복종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의회에서 부결되었다.

물론 이건 핑계고 실제로는 정부 관료들이나 고위직들의 상당수가 성매매에 관련되어 있어서라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바차바지'라고 해서 어린 남자아이를 가지고 성매매를 하는 풍습이 돈 꽤나 있는 고위직들을 중심으로 은근히 펴져 있지만 제대로 처벌이 받지 않을 정도라 여성 인권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다.

여성들이 집 밖으로 못 나오고 나와도 부르카를 뒤집어써야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성욕 해소 대상을 소년들로 대체된 듯 하다(...) 소년애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 남자아이와 청소년이 성인 남성의 성욕의 해소 대상으로 여겨지는 일은 인류사를 통틀어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있어왔던 일이다.

2014년에는 친척의 범죄 행위를 증언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서 가정폭력을 처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

게다가 2016년 3월 9일에 여성이 분살당하는 사건이 발생되었고 법원이 용의자들에게 무기징역, 징역 20년, 10년을 선고하는 사건이 발생되었다. #

이렇듯 여성 인권이 최악이라서 아프간 공군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미국 망명을 신청했다. #

아프간이 워낙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며 폐쇄적인 사회이다보니 여성들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부적절하게 여겨지고 심지어 묘비에조차 여성들이 이름을 적을 수 없는 악습까지 있다. #1, #2

아프가니스탄에도 예멘 못지않게 조혼이 널리 퍼져서 여성 3명 중 1명이 18살 이전에 결혼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

2020년 11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딸의 취업을 반대한 아버지가 남성들을 시켜 여경이 된 딸의 눈을 멀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 더해 탈레반의 협박과 탄압으로 인해 여성 인권 운동가들과 언론인들이 살해당하고 있다.

여권운동에 활발히 참가했던 아프간의 한 여성 언론인이 2019년 5월 11일에 카불에서 무장괴한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

2021년 3월 2일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지방 라디오 및 TV 방송국의 여성 직원 3명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

여성 인권 개선 운동의 결과로 아프간은 여경 인력을 1만명으로 끌어올리려는 계획을 했으며 2천명 이상의 여경이 활동했다. #

2017년 8월 20일 '아프가니스탄의 킴 카다시안'으로 불리는 아리아나 사예드가 테러 협박에도 불구하고 카불의 호텔에서 콘서트를 열면서 소녀들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찾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

2017년 8월 30일에 아프간의 바글란 주에서는 여성들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식당이 아프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

더 나아가 자신이 성추행, 성폭행당한 것을 폭로하는 미국의 미투 운동이 아프간에도 확대되었다. #

아프가니스탄의 10대 소녀가 부모를 살해한 탈레반 무장대원을 사살해 SNS에서 영웅으로 떠오르면서 환영을 받았다. #

아프간 여성들 사이에서 태권도 주짓수 등 자기 방어 스포츠가 각광받았다. #

2020년 9월 드디어 아프간 여성들의 이름 찾기 운동의 결과로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법률적으로 신분증과 출생증명서에 이름을 올릴 권리가 없었던 여성들이 이름을 공개할 권리를 얻게 됐다. #

2021년 3월 아프간 교육부가 12세 이상의 여학생들이 공적인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지 못 하게 하는 지침을 내렸다가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철회했다. #

남편이 쏜 총탄에 얼굴 반쪽을 잃은 아프간 출신 여성이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이 카불에 무혈입성하면서 정권을 잡아 과거처럼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이 그야말로 바닥을 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탈레반의 무혈입성 후 가게 업주들은 탈레반의 눈치를 보면서 길거리에 있는 도배된 여성 그림들을 다 흰색 바탕으로 덧칠하였다. 이후 하얀색 덧칠이 되지 않은 여성 사진은 탈레반이 검은색 페인트로 가려 버렸다.

3. 바차 바지(Bacha bāzī,بچه بازی)[3]

바차 바지는 '소년(bachen)', '놀이(bazi)'라는 페르시아어 어휘의 합성어인데 사전적인 의미는 노는 소년이고 주로 공연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청소년 무용수들을 뜻한다. 주로 9~15살 사이의 가난한 집 아이들을 무용수로 모집하며 개중에서 잘생긴 바차 바지들을 여장시켜서 공연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여자 가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불법이다 보니 각종 잔치나 행사에서 여자 가수가 해야 할 일을 곱상한 무용수가 대신 한다. 이들 청소년 무용수들은 아프간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해 성매매나 성착취의 대상이 되기 일쑤인 데다 폭행이나 강간을 당해도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동성애가 멸시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이들을 상대로 성관계를 가지거나 연애하는 것에 대해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남색이다. 전통적으로 이를 향유하는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지역의 토호나 유력 군벌, 부자들이다 보니 아프간 게이들은 커밍아웃하면 명예살인이나 테러, 징역형 같은 안 좋은 꼴을 당하기 십상인데 권력자나 부자들은 뇌물로 법망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프간의 동성애자들은 권력자와 부자들은 마음껏 동성을 취해도 처벌받지 않는데 자기네들은 돈과 권세가 없어서 안 좋은 꼴을 당하는 것이라면서 자조하기도 한다.

이런 풍습은 수백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왔다. 여성들에게 나무스에 따른 극단적인 정조 관념이 요구되면서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성생활이 부부관계 이외에는 터부시되자 몇몇 지위 있는 남성들이나 광대들이 남성적인 외모가 옅은 10대 초반의 남자 아이들(평균 나이대가 11~14세 미만)을 데리고 무용수로 만들어서 여성의 대체품으로서 성행위를 향유하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추측된다. 사실 이러한 풍습은 아프가니스탄에만 있던 것은 아니었으며 오스만 제국에는 쾨젝, 옛 이집트에서는 카왈이라고 부르는 남자 무용수들이 존재했지만 현재는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던 풍습 정도로 취급되는지라 아프가니스탄과는 사정이 다르다.[4] 이들은 기본적으로 아프가니스탄 각지를 돌면서 공연을 하면서 그 돈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남사당패와 비슷한 존재들이었지만 성매매로 돈벌이를 하는 경우도 많고 착취해서 돈을 상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서 아프간에서도 논쟁거리가 되었다.

시르 알리 칸 시절인 1872년부터 1873년까지 일시적으로 금지하기도 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어 영국인들이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아프간의 유흥가를 수놓은 존재였지만 탈레반 1차 집권기에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엄하게 단속되었고 일부는 처형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탈레반 정권이 전복되자 바차 바지를 성매매 상대로 삼는 풍습이 다시 급속히 확산되었다.

2002년 더 타임스를 통해 널리 소개되었고 2010년에 제작된 영국 타큐멘터리 영화 The Dancing Boys of Afghanistan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칼리드 호세이니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에서 작 중 중요한 사건으로 언급된다. 바차 바지로 일하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면 수염이 나고 목소리도 굵어지는 등 남성의 특징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여자랑 결혼하는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들 중 일부가 생계를 위해서 바차 바지 포주 일을 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남자와 의 성매매로 먹고사는 경우도 빈번하며 트랜스젠더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지니더라도 바차 바지로 일하는 것 자체가 남자에게 몸판다고 멸시당하는 일인 데다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기도 힘들어서 이중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직후 탈레반의 주요 개혁 과제 중 하나가 '바차 바지'의 타파였다. 의외인 것 같지만 당연한데 애당초 탈레반의 정당성은 샤리아 율법[5][6]에 입각한 사회질서의 재건이었는데 '바차 바지'는 샤리아가 금지하는 동성애와 사치, 향락 모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상대한 무자헤딘들 가운데서도 바차바치를 껴놀고 노는 종자들이 꽤 있던 것도 사실인지라 악습 타파가 지지층 확보를 위한 카드로 잘 먹혔다. 그래서 탈레반 1차 집권기에 '바차 바지'는 양귀비 재배와 함께 엄격하게 금지되는 범죄였으며 발각되면 당사자들은 사형에 처해졌다. 물론 이들이 혐오한 건 아동 성범죄자가 아니라 동성 간 성행위였고[7] 그 때문에 가해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성착취 피해자인 아이만 처형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 였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직후 집권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에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는데 탈레반이 축출되고 나서 보상심리 때문인지 지역사회 곳곳에서 대놓고 바차바지랑 성관계를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지어 최말단 군경도 권위와 남성의 상징이랍시고 거리낌없이 즐겼다. 당연히 아프간 대중들 사이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할 사람은 다 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영 연합군의 장병들, 나중에는 국제안보지원군(ISAF)의 일원으로서 파병된 참여국의 장병들은 외부자로서 자신들이 본 이러한 행위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고 각자 지휘 체계에 목격담을 보고 및 고발해왔지만 대부분 '문화적 차이'로 넘기라는 답변만 듣기 일쑤였다. 미국 국무부에서도 자체 조사를 할 만큼 문제의식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결국 바차 바지 문제도 아프간 사회 내부의 이권과 정치에 개입하냐 마느냐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사안인 만큼 별 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바차 바지가 행해진 정황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의 일부. 영상 2분 6초에서 경찰서장이 미 해병대 장교들의 말을 대놓고 무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8]

바차 바지와 관련된 중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는 2017년 뉴욕 타임스 보도로 알려진 미군 SOF 소속의 댄 퀸 대위(Capt. Dan Quin)와 찰스 매틀랜드 중사(SFC. Charles Martland)가 아프가니스탄 지역 경찰(Afghanistan Local Police, ALP) 사령관인 압둘 라만(Abdul Rahman)을 매타작한 사건이다. 어린 성폭력 피해자가 경찰 초소에서 2주 간 납치된 채 강간 당했다는 사실에 매우 분노한 나머지 해당 사령관을 더러운 놈 등등의 거친 욕설과 함께 한 시간 가량 폭행, 상해를 입힌 사실로 미 육군 검찰에 기소되어 유명해졌다. 해당 사건의 부조리와는 별개로 엄연히 2012년 쿠란 소각 사건처럼 파급력이 커질 만한 일[9]이었던지라 여러모로 섣불리 접근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긴 하다. 다만 쿠란 소각 사건과 달리 바차 바지는 아프가니스탄 내에서도 지탄받는 범죄행위였던 만큼, 현지에서는 "저딴 쓰레기 같은 놈을 패주니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고, 당연히 두 사람 모두 귀국 조치 후 별 다른 불이익 없이 군 검찰에서 기소를 취하함으로서 마무리됐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정책 연구가 사예드 살랄 샤잔(Sayed Jalal Shajjan)에 따르면 바차 바지가 오늘날에 횡행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아프간 군경들과 군벌 휘하 민병대원들의 열악한 처우로 인한 불만이 성착취가 가능한 권력으로 무마되는 것에서 묵인되어 왔다고 한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시기의 공권력, 정치권과 지역 군벌들 사이의 유착 관계, 국제 사회의 무관심 등도 여러 요인이 될 수 있다. 2017년에 법률이 개정되어 바차 바지는 엄연한 성폭력 범죄로 규정되기에 이르렀지만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영상을 통해 바차 바지들이 여전히 밤무대에 종사하며 돈벌이를 하는 모습을 여전히 볼 수 있다는 씁쓸한 사실을 알 수 있다(...)

2021년 탈레반 재집권 이후 이런 악습이 근절될 일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공화국 시절에 구축해 놓은 인프라를 탈레반들이 죄다 헤집은 데다 식량난 때문에 국가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태인데 장기매매와 신생아 거래 등의 비극도 벌어지는 상황에서 고작 매춘 따위가 사라 질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파탄 국가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참고 링크: 블로그 에펨코리아

[1] 위쪽 사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생각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8월 마음을 180도 바꾸어 미군 증파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 [2] 그런데 위 사진에서 나온 것과 같은 자유로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모습은 카불, 잘랄라바드, 헤라트, 칸다하르 같은 대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당시에도 시골 산간지역은 전기가 깔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라디오, 전화, 영화 같은 현대식 대중매체와 통신수단 같은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인 경우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구성원 개개인보다는 부족과 가문의 명예가 더 우선시되는 경향이 유지되었는데 특히 파슈툰족이 그랬다. 시골 사람들의 대다수가 현대 문물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2000년대 중후반에 휴대전화와 텔레비전이 보급된 후의 일이었다. 또 이와 관련하여 70년대 이란 사진이 70년대 카불로 날조되어 유포되니 주의가 필요하다. [3] 참고로 현지어로 검색하면 말 그대로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사진이나 동영상도 같이 나오는데 뜻이 겹치기 때문이다(...) [4] 물론 현대 튀르키예에서는 남자들이 쾨젝들이 추었던 춤을 재현하기는 한다. 역사책에 나오는것처럼 잘생기거나 곱상한 청년보다는 춤 잘추는 아저씨들이 치마를 입고 재현하는 경우가 많다 [5] 여기서 먼저 짚어둘 것은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정책적 혐오는 특정 종교의 교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내부에서 보편 인권을 무시하고 특정 권위주의를 내세우려는 정치적인 영향력에 따라 좌우된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이 돋보이는 정교일치 국가라서 돋보이기는 하지만 무슬림이 대다수인 튀르키예의 분위기나 법률 문제는 대한민국이랑 별 차이 없고 팔레스타인, 요르단, 바레인은 동성애를 불법으로 취급하진 않는다. 힌두교는 교리적으로 성소수자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데도 인도에서는 21세기에 들어서 동성애가 불법이냐 아니냐로 헌법이 세 번이나 바뀌었고(...) 무슬림이 대부분인 알제리는 성소수자를 불법으로 규정해 놓긴 했지만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시민 사회 뿐만이 아니라 법조계 일각에서도 나올 정도다. 미국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들어 연방법으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명시했는데도 플로리다를 포함한 12개 주에서는 주법으로 이를 어떻게든 부정하려고 난리를 치는 데다 대한민국은 세속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일개 장성이 독단적으로 성소수자 색출 작업을 벌였던 전례가 있다. [6] 동성애와 동성 간 성행위는 엄밀히 다른 영역에 속하고 구분할 필요가 있다. 미국 교도소에서 남성 수감자들이 강간당하는 사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7] 애초에 탈레반이 잘 하는 게 여아 대상 매매혼약탈혼이다. 탈레반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바치 바지를 하는 대원도 한둘이 아니라서 율법을 지키겠답시고 총질은 잘만 해대는 놈들이 남자랑 동성애는 잘만 한다면서 비꼬임당하기도 했다. 웃긴 것은 탈레반은 일반 주민들이 하는 바차 바지는 엄격히 금지했다. [8] 해당 다큐멘터리 본편 전체를 보면 충격적인데 어떤 경찰 초소에서는 일하던 소년 한 명이 의문사 당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명색이 경찰인 작자들이 민간인과 탈레반을 동일시하고 있고, 강간살해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얼굴에 당혹감과 분노가 가득 서린 미 해병대 장교들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9] 조금 쉽게 비유하자면 주한미군 두 명이 업무 때문에 가끔 보던 미군 기지 근처의 경찰서장을 마음에 안 든다고 시비 걸고 두들겨 팼다고 생각해 보자. 압둘 라만이 부패 공무원에 아동 성폭행범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두 대원이 타국의 사법 절차를 무시하고 물리적인 사적제재를 행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충분히 문제가 될 일이다. 여기에 더해 지역 사회의 분위기와 해당 성범죄자가 지닌 이런 저런 유착 관계가 맞물리면 정말 복잡해진다. 따지고 보면 닫힌 사회의 폐쇄성이 국제정치적인 사안으로 불거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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