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3 00:15:26

마유(후조)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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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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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麻襦
생몰연도 불명

후조의 인물. 어디 지역 출신인지도, 본명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마유(麻襦)'라는 것도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에 불과하다.

2. 생애

후조의 무황제 석호 재위기에 그는 위현(魏縣)의 어느 시장에서 구걸하고 다니던 걸인이었다. 그는 항상 삼베(麻)로 만든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다녀서 사람들은 그를 '마유(麻襦)'라고 불렀다. 마유는 말하는 능력이 탁월하였으나, 구걸하여 얻은 쌀과 곡식을 먹지도 않고, 항상 큰 길에 흩뿌려 '천마(天馬)'에게 준다고 말하니, 마치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어느 날, 조흥(趙興) 태수가 상황을 보고하고, 마유를 무제 석호에게 보냈다. 그 전에 승려 불도징(佛圖澄)이 석호에게 말하길
"나라 동쪽 200리 지점에서 어떤 날에 매우 비범한 인물이 올 것이니, 그를 죽이시면 안 됩니다."
라 하였는데, 과연 그날이 되자 정말로 마유가 왔다. 석호는 마유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마유에게는 별로 특별한 점은 없었고, 단지
"폐하께서는 곧 한 기둥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
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석호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어 불도징에게 보냈고, 마유는 불도징에게 말했다.
"옛날 광화(光和) 시절의 회동 이래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서융(酉戎)은 현명(玄命)을 받았으나, 그 역사가 끝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금(金)이 땅으로 사라질 것이고, 변방은 덮치지 못할 것입니다. 영기(靈期)의 흔적을 몰아내지만, 멈출 수 없습니다. 후손은 번성할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쌓일 것입니다. 좋은 시기는 언제 올까요? 영원히 탄식할 뿐입니다."
불도징이 답했다.
"하늘의 운이 돌아가며 끝에 다다랐고, 불행히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구목수(九木水)에 어려움이 있으니, 어떤 방법으로도 안정시킬 수 없습니다. 현명한 철학자들이 비록 세상에 있더라도, 기반을 세울 수 없을 것이고,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염부(閻浮)의 이익을 누리면서, 이리저리 많은 환난이 있었습니다. 이제 구름 위로 올라가 허공에서 만날 것입니다."
이들이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아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후 무제 석호는 그를 원래의 현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역마를 보냈다. 성을 나서자, 마유는 말에서 내려 걷기를 청하며 말했다.
"나는 갈 곳이 있으니, 합구교(合口橋)에서 기다리시오."
관리는 그의 말대로 합구교로 사람을 보냈는데, 다리에 이르렀을 때 마유는 이미 먼저 도착해 있었다고 한다.

훗날 전연 모용준이 후조가 혼란한 틈을 타 남진하여 업(鄴)을 점령하고, 현원릉을 파헤쳐 무제 석호의 시신을 꺼낸 뒤에 장수(漳水)에 던져서 버렸다. 이때 석호의 시신이 다리 기둥에 걸리면서 더이상 떠내려가지 않으니, 사람들은 이를 "한 기둥 아래"라는 말의 예언이라 여겼다. 또한, 원제 사마예가 강좌(江左)에서 황제로 즉위해 진(晉)을 계승한 것도 '천마'에 대응하는 것이라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