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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0년 4월 16일 ([age(1940-04-16)]세) | ||
덴마크 보호령 코펜하겐 아말리엔보르 궁전 | |||
재위기간 | 덴마크 여왕 | ||
1972년 1월 14일 ~ 2024년 1월 14일[1]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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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0013><colcolor=#fff> 가문 | 글뤽스부르크 가문 | |
이름 |
마르그레테 알렉산드리네 토릴두르 잉리드 (Margrethe Alexandrine Þórhildur Ingr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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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프레데리크 9세 | ||
어머니 |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 ||
자매 | 베네딕테, 아네마리 | ||
배우자 |
앙리 드 라보르드 드 몽페자 (1967년 결혼 / 2018년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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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프레데리크 10세, 요아킴 | ||
학력 |
N. Zahle's School (졸업) 코펜하겐 대학교 (정치학 / 수료) 케임브리지 대학교 거튼 컬리지 (선사고고학 / 수료) 오르후스 대학교 (정치학 / 수료) 파리 대학교 (수료)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수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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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루터교회 ( 덴마크 교회) | ||
신체 | 182cm, 69kg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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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Guds hjælp, Folkets kærlighed, Danmarks styrke 하느님의 도움, 국민의 사랑, 덴마크의 힘 마르그레테 2세 시절의 덴마크 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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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년 마르그레테 1세 여왕이 세상을 떠난 지 560년 만에 탄생한 '마르그레테'라는 이름을 쓰는 여왕이다. 덴마크의 최장 재위 군주이다. #[2]
2. 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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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FFF> 문장[3] | 모노그램 |
-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마르그레테 공주 전하 Hendes Kongelige Højhed Prinsesse Margrethe af Danmark og Island ( 1940년 5월 16일 ~ 1944년 6월 17일)
-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공주 전하 Hendes Kongelige Højhed Prinsesse Margrethe af Danmark ( 1944년 6월 17일 ~ 1953년 6월 5일)
- 덴마크의 왕위 계승자 마르그레테 공주 전하 Hendes Kongelige Højhed Prinsesse Margrethe til Danmark, Tronfølgeren ( 1953년 6월 5일 ~ 1972년 1월 14일)
- 여왕 폐하 Hendes Majestæt Dronning ( 1972년 1월 14일 ~ 2024년 1월 14일)
- 마르그레테 2세 여왕 폐하 Hendes Majestæt Dronning Margrethe II ( 2024년 1월 14일 ~ 현재)
3. 생애
3.1. 즉위 이전
1940년 4월 16일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왕세자와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의 장녀로 태어났다. 이름은 외할머니 코넛의 마거릿 공녀, 친할머니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알렉산드리네 여공작, 어머니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로부터 따와 지어졌고, 할아버지인 크리스티안 10세가 아이슬란드의 국왕도 겸임했기 때문에 '토릴두르(Þórhildur)'라는 아이슬란드 이름도 갖게 되었다. 애칭은 데이지(Dais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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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동생들과 함께 |
1947년 4월 20일 할아버지 크리스티안 10세가 사망하자 아버지 프레데리크 9세가 국왕이 되었다.
마르그레테가 태어났을 당시에 덴마크 왕실에서는 여자가 왕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작은아버지인 크누드 왕자[6]가 왕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1953년 살리카법이 폐지되고 남자 형제가 없다면 여성이 왕위 계승을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어 마르그레테는 추정 상속인이 될 수 있었다.[7]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 재학 중일 때 프랑스 출신의 대사관 비서 앙리 드 라보르드 드 몽페자를 만나 1967년에 결혼했다. 부군 헨리크 공은 프랑스 귀족 가문인 몽페자 가문의 일원이다. 외할머니 코넛의 마거릿 공녀의 웨딩 베일을 썼고, 이집트 국왕으로부터 선물받은 까르띠에 티아라를 착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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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1970년 가족사진 |
3.2. 재위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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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즉위 선포 | 1972년 즉위식 기념 사진 |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창덕궁을 관람하며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 2월 13일, 부군인 헨리크 공이 사망했다.
2022년 1월 14일 재위 50주년인 골든 주빌리를 맞았다.
2022년 9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사망함에 따라 마르그레테 2세는 재위 중인 유일한 여성 주권 군주[8]이자,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재위 중인 군주가 되었다. 이때 코로나 19로 연기된 재위 50주년 행사를 치렀지만, 엘리자베스 2세의 사망에 따라 규모가 다시 축소되었다. #
2023년 1월 1일에 차남 요아킴 왕자의 자녀들의 왕자, 공주 지위를 박탈했다. 논란이 있던 와중에 "왕실의 모습을 시대에 맞춰 유지하는 것은 여왕으로서 나의 임무"라며 "이는 곧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같은 해 2월에는 허리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재활 치료를 위해 공식 업무 수행을 중단했다.[9] 공무에 복귀한 후에도 거동이 다소 불편해져 지팡이를 사용하거나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행사에 참석한 경우가 많았다.
3.3. 퇴위
2023년 12월 31일, 새해 전야 연설에서 오는 1월 14일[10] 장남 프레데리크 왕세자에게 양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원래 여왕은 생전 양위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으나, 지난해 수술을 받으면서 심경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고 지금이 왕위를 물려줄 적절한 때라고 판단했다. 덴마크 국왕이 생전 양위를 하는 것은 1146년 에리크 3세가 퇴위한 이후 878년 만이다. 이로써 즉위 52년 만에 국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유럽 입헌군주국 중에서 여왕은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11]워낙 퇴위 발표가 비밀스럽게 진행되어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도 연설 직전에서야 퇴위 발표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원래 예정했던 신년 연설 내용을 모두 갈아엎고, 여왕의 퇴위 발표에 맞춘 연설문을 새로 작성해야 했다. 덴마크의 주요 정치인들도 여왕의 퇴위 발표 직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당사자인 프레데리크 왕세자도 양위 소식을 발표 3일 전에 알았다고 한다. 다만, 여왕의 외사촌인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에게만 퇴위 소식을 미리 알렸다고.
퇴위 후에도 계속 마르그레테 2세 여왕으로 불리게 되며[12], 프레데리크 10세와 크리스티안 왕세자의 부재시에는 섭정직을 맡아 국왕의 업무를 대행할 예정이다. 일반적으로 상왕의 국무 개입으로 인해 금상과 충돌하는 것을 막는 장치를 마련해둔다는 점에서[13] 다소 흥미로운 대목인데, 현재 덴마크 내에 섭정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고위 왕족의 수가 적은 것이 원인이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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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족관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와는 팔촌이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 공과는 영국 왕실 기준으로 팔촌, 덴마크 왕실 기준으로 칠촌[15]이며,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와 그의 왕비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와도 팔촌이다. 마르그레테 2세의 여동생 아네마리 공주가 소피아 왕비의 남동생 콘스탄티노스 2세와 결혼했으므로, 그리스 왕가와는 사돈이 된다.룩셈부르크 대공 앙리와도 칠촌이다.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16], 벨기에의 알베르 2세와는 육촌이며,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와는 사촌이다.[17]
이렇듯 여러 왕실과 혈연으로 엮여있어, 스웨덴 왕족들과 노르웨이 왕족들은 마르그레테 2세를 "데이지 고모(Aunt Daisy)"라고 부른다. #
4.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마르그레테 2세 (Margrethe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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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크 9세 (Frederik I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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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10세 (Christian 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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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크 8세 (Frederik VI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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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로비사 공주 (Princess Louise of Sweden)[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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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알렉산드리네 여공작 (Alexandrine of Mecklenburg-Schwer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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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 (Frederick Francis III, Grand Duke of Mecklenburg-Schwer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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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19] (Grand Duchess Anastasia Mikhailovna of Russ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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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Ingrid of Swed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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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6세 아돌프 (Gustaf VI Ado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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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5세 (Gustaf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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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의 빅토리아 (Victoria of Baden)[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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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넛의 마거릿 공녀 (Princess Margaret of Connau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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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 (Prince Arthur, Duke of Connaught and Strathearn)[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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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의 루이제 마르가레테 공주 (Princess Louise Margaret of Prussia) |
4.2.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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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이름 | 출생 | 배우자 / 자녀 |
1남 |
프레데리크 10세 (Frederik X) |
1968년 5월 26일 ([age(1968-05-26)]세) |
메리 도날드슨 슬하 2남 2녀[22] |
2남 |
요아킴 왕자 (Prince Joachim) |
1969년 6월 7일 ([age(1969-06-07)]세) |
슬하 2남[23] |
마리 카발리어 슬하 1남 1녀 |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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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레테 2세의 스마우그 일러스트. |
- 그래픽, 일러스트, 번역 분야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톨키니스트로, 반지의 제왕 덴마크판은 마르그레테 2세가 직접 번역 및 일러스트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가 개봉된 후 덴마크 국적을 가진 아라고른 역의 배우 비고 모텐슨에게 훈장을 수여했다고 한다. 또한 노르웨이의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의 모노그램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패션 감각 또한 탁월하다.
- 고고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1962년 에트루리아에서 고고학 발굴에 참여하기도 했고, 외할아버지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와 고고학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기도 했다.
- 골초로도 유명하다. 공개 석상에서나 언론과의 노출에서나 늘 담배를 물고 있어 언론에서 아이들 교육에 안 좋다는 식으로 압박이 들어오자 부군인 헨리크 공이 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해 성인의 자기 결정권을 방해하지 말라라고 옹호해준 일도 있었다. 2023년 2월 허리 수술 이후로는 금연 중이다.
- 고령의 할머니임에도 불구하고 키가 182cm로, 덴마크인 남성의 평균키 181cm보다도 크다. 이러한 큰 키는 가족 유전자 영향이 크다. 마르그레테 2세의 아버지 프레데리크 9세는 198cm였고, 할아버지 크리스티안 10세는 201cm로 모두 엄청난 장신이다.
- 덴마크 국왕 중에서 유일하게 부계와 모계 모두 러시아 황실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의 후손이다.[24]
[1]
현지시각 오후 2시. 즉위한 지 정확히 52주년 되는 날 퇴위하였다.
#
[2]
이전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의 재위 기간이 60년으로 마르그레테 2세의 52년보다 더 길지만, 크리스티안 4세는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아 공식 대관식을 늦게 한 점을 감안하여 덴마크 왕실에서는 마르그레테 2세를 덴마크의 최장 재위 군주로 인정했다.
[3]
덴마크 왕실의 문장이자, 덴마크의 국장이다.
[4]
외할머니 마거릿 공녀의 애칭과 같다.
[5]
훗날
콘스탄티노스 2세와 결혼하여 그리스의 마지막 왕비가 된다.
[6]
크리스티안 10세의 차남.
[7]
언제든지 남동생이 태어날 가능성이 존재했기에 공식적인 왕세녀는 아니었다. 2009년부터 법이 개정되어 현재는 성별에 상관없이 절대적 맏이 상속제로 바뀌었다.
[8]
주권 군주 중에서는 유일한 여성 군주이지만,
비주권군주제에서는 여성 군주가 더 있다.
[9]
이 기간 동안에는
프레데리크 왕세자가 섭정으로 임명되어 여왕의 업무를 대신 수행했는데, 실제 이 무렵에 거행된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대관식에도 여왕 대신 왕세자 내외가 참석했다.
[10]
아버지
프레데리크 9세의 기일이자 마르그레테의 즉위 52주년 기념일이다.
[11]
다만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의 왕위 계승자가 여성이라 다음 세대에는 여왕이 즉위할 예정이다. 현재 재위 중인 군주들의 나이로 보면, 스웨덴이 가장 앞서고, 벨기에, 스페인, 네덜란드 순이다. 덴마크는 아직 맏이가 계속 아들이라서,
크리스티안 왕세자의 맏자녀가 딸이 아닌 이상 한동안은 남계로 승계될 예정이다.
[12]
베아트릭스 여왕의 경우는
아들에게 양위하면서 여공(princess) 작위를 받았으며, 여왕 폐하로 더는 불리지 않는다.
[13]
일본의
아키히토는 섭정과 복위가 금지되어있다. 일본은
인세이 시대 태상천황과 금상천황 간의 황권 분쟁이
막부라는 극단적 결과를 낳은 역사적 폐단이 있어 '상왕 노릇'에 대한 국민 인식이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14]
요아킴 왕자는 미국에서 거주 중이고,
메리 왕비도 프레데리크 10세와 함께 해외 순방을 나가는 일이 많기 때문에 섭정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여왕의 여동생인 베네딕테 공주도 80세를 앞둔 고령이다.
[15]
두 사람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현손이며, 필립 공의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가 마르그레테 2세의 할아버지
크리스티안 10세의 친사촌이다.
[16]
마르그레테 2세의 할아버지 크리스티안 10세와 하랄 5세 할아버지
호콘 7세가 형제지간이었다. 또한 마르그레테 2세의 외할머니
코넛의 마거릿 공녀가 하랄 5세의 할머니
모드 왕비와 사촌이었다.
[17]
칼 16세 구스타프의 부친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와 마르그레테 2세의 어머니
잉리드 왕비가 남매이다.
[18]
칼 15세의 장녀이다.
[19]
니콜라이 1세의 친손녀다.
[20]
빌헬름 1세의 손녀다.
[21]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3남이다.
[22]
크리스티안 왕세자,
이사벨라 공주,
빈센트 왕자,
요세피네 공주
[23]
니콜라이 백작,
펠릭스 백작
[24]
아버지
프레데리크 9세는
니콜라이 1세의 손녀
아나스타샤 여대공의 외손자고, 어머니
잉리드 왕비는 니콜라이 1세의 셋째 누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