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aeeff><colcolor=#000000> 덴마크 프레데리크 10세의 왕비 메리 도날드슨 Dronning Mary af Danm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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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메리 엘리자베스 도날드슨 (Mary Elizabeth Donaldson) |
출생 |
1972년
2월 5일 ([age(1972-02-05)]세) 호주 태즈메이니아 호바트 알렉산드라 왕비 병원 |
신체 | 172cm |
배우자 | 프레데리크 10세 (2004년 결혼) |
자녀 | 장남 크리스티안, 장녀 이사벨라, 차남 빈센트, 차녀 요세피네 |
아버지 | 존 달글레시 도날드슨 |
어머니 | 헨리에타 클라크 혼 |
형제 | 제인, 패트리샤, 존 |
종교 | 장로회 → 루터교회 ( 덴마크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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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덴마크의 왕비. 프레데리크 10세의 아내로, 2000 시드니 올림픽 기간 중 호주를 방문한 프레데리크와 펍에서 만나 연인이 되어 2004년 결혼하였다. 슬하 2남 2녀 크리스티안 왕세자, 이사벨라 공주, 빈센트 왕자, 요세피네 공주를 두고 있다.프레데리크 9세의 왕비 스웨덴의 잉리드 공주 이후로 52년만에 나타난 덴마크 왕비이다.
2. 작위
- 덴마크의 왕세자비 전하 Hendes Kongelige Højhed Kronprinsesse af Danmark ( 2004년 5월 14일 ~ 2008년 4월 29일)
- 몽페자 백작부인, 덴마크의 왕세자비 전하 Hendes Kongelige Højhed Kronprinsessen af Danmark, grevinde af Monpezat ( 2008년 4월 29일 ~ 2024년 1월 14일)
- 왕비 폐하 Hendes Majestæt Dronningen ( 2024년 1월 14일 ~ 현재)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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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 어린 시절 |
태즈메이니아 대학교에서 경영학과 법학을 전공한 후, 멜버른의 광고 회사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1997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일을 그만두고 이듬해 미국과 유럽, 스코틀랜드[2]를 여행했다. 이후 아버지는 2001년에 영국인 작가 수잔 무디와 재혼했다. 1999년 여행에서 돌아온 후 시드니로 이주하여 이후에는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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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두 사람은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으며, 프레데릭이 호주에 비밀리에 방문하기도 했다. 떨어져 있을 때는 편지, 이메일 등을 주고받았다. 2001년 11월 한 잡지사에서 메리가 프레데릭의 연인임을 밝히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공식화되었다. 2002년 상반기에 메리는 프랑스 파리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하반기에 덴마크로 이주하여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2003년 8월 약혼한 후 2004년 5월 24일 코펜하겐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호주의 일반인과 덴마크 왕세자의 소설같은 이야기에 많은 주목을 받았다.
초기에는 덴마크어를 거의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으나, 결혼 몇년만에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덴마크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2007년에는 메리 재단을 설립해 아동교육 보장, 덴마크 내에 왕따 문제 근절, 여성보호, 인신매매 근절 등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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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50세 생일을 맞아 공개된 가족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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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 가장 좋아하는 색은 보라색이다.
- 골프와 승마광이다. 2005년 덴마크골프연맹의 왕실 후원자가 되었고, 여러 골프클럽의 명예 회원이라고 한다. 덴마크 웜블러드를 포함한 두 마리의 말을 소유하고 있고, 50세 인터뷰에서 "최근 마장마술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 뛰어난 패션 센스로 인기가 많다. 2010년 Vanity Fair 9월호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여성 10인' 중 한 명으로 뽑혔고, 2015년 영국 잡지 헬로의 30,000여 명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30%에 가까운 득표율로 '가장 스타일리쉬한 젊은 왕족' 중 1위로 뽑혔다.
[1]
메리가 결혼할 당시에는
한국과학기술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예비사위 프레데리크가 메리와의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구혼 편지를 보내자,
한국의
절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고급 종이에 답장을 써서 보냈다는 일화가 있다.
[2]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이다. 1963년 결혼 후 태즈메이니아로 이주했다.
[3]
그리스 마지막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의 차남
[4]
이 때문에 즉위 선포 당시 호주 국기를 흔드는 시민들도 있었으며, 호주를 상징하는 동물인
코알라 인형 탈을 쓰고 나와 인증샷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5]
시드니에서
코펜하겐은 거리도 멀 뿐더러 직항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