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00:57:42

이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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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이소룡
BRUCE LEE
분야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입성날짜 1993년 4월 28일
위치 6933 Hollywood Blvd. }}}}}}}}}

<colbgcolor=#000><colcolor=#fff> 이소룡
李小龍 | Bruce Lee
[1]
파일:이소룡.jpg
본명 Lee Jun-fan
李振藩
리전판(표준중국어), 레이전판( 광동어), 이진번(한국어)
출생 1940년 11월 27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사망 1973년 7월 20일 (향년 32세)
영국령 홍콩 까우룽통[2]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영국령 홍콩|]][[틀:국기|]][[틀:국기|]]) |
[[미국|]][[틀:국기|]][[틀:국기|]]
활동 1941년 – 1973년
데뷔 1941년 영화 ' Golden Gate Girl'
서명 파일:이소룡 서명.sv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이소룡 재단 / 파일:IMDb 로고.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3]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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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민족 한족[4]
종교 무종교( 무신론)
학력 에디슨 기술 고등학교 (졸업)
워싱턴 대학교 (철학 / 중퇴)[5]
직업 배우[6], 무술가[7], 영화 감독
유파 절권도
신장 170.3cm
가족 아버지 이해천(李海泉)[8]
어머니 하애유(何愛瑜)[9]
3남 2녀 중 차남
누나 이추봉[10], 이추원[11]
이충침(李忠琛)[12]
남동생 이진휘(李振輝)[13]
배우자 린다 에머리 (1964년 결혼)
자녀 아들 브랜든 리(이국호, 李國豪)[14]
섀넌 리(이향응, 李香凝)[15]
}}}}}}}}}
1. 개요2. 생애3. 주요 출연작4. 평가5. 그 외
5.1. 근육5.2. 절권도5.3. 이소룡의 영향을 받은 캐릭터
6. 여담7. 어록8.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홍콩, 미국의 배우이자 무술가. 절권도의 창시자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화적 아이콘 중 하나로 꼽히며 전 세계인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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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주요 출연작

파일:이소룡 서명.svg
이소룡
주연 5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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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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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대형 (1971)]]
[[정무문|
파일:Fist of Fury Logo.png
정무문 (1972)]]
[[맹룡과강|
파일:The Way of the Dragon Logo.png
맹룡과강 (1972)]]
{{{#!wiki style="margin: -15.5px -10.5px" [[용쟁호투|
파일:Enter the Dragon Logo.png
용쟁호투 (1973)]]
[[사망유희|
파일:The Game of Death Logo.png
사망유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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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목록은 금문녀, 세로상, 그린호넷 3편과 상기 틀에 나온 것과 동일한 이소룡 주연 5부작을 합친 8편을 담고 있다. 전체 필모그래피는 영문위키 혹은 중문위키를 참고.
  • 금문녀(金門女, Golden Gate Girl)》(1941) - 이소룡이 생후 3개월 때 출연한 데뷔작이다.
  • 세로상(細路祥, The Kid)》(1950) - 이소룡이 아역 시절 첫 주연을 맡아 아버지 이해천과 함께 출연한 작품이다.
  • 그린호넷(The Green Hornet)》(1966) - TV 드라마로 명탐정 그린 호넷의 조수이자 운전수인 카토(Kato)[16] 역으로 출연. 당시 이소룡이 처음으로 맡은 큰 역할로 작중 내 비중도 높았으나[17] 대부분 검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녀야 했기에,[18] 얼굴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을 꽤나 억울해 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린 호넷》이 유명한 작품으로 남은 것은 이소룡의 열연 덕분이나 다름없었다는 말도 있고, 《Kato's Revenge: featuring Green Hornet》이라는 색칠공부책이 나올 정도로 주/조연 전도가 심했다는 주장도 있다.[19] 극을 휘어잡는 이소룡의 카리스마는 이미 이때부터 끼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고, 조연인데 너무 튄다고 발차기를 못하게 윗분들이 제제를 가했다는 말도 있다. 이때 제작자가 이소룡을 하인 취급[20]해서 같이 있던 여배우가 괜찮냐고 묻자, "겨우 저 정도에 열 받으면 내가 Bruce Lee가 아니죠"라고 대답했다 카더라.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후 이소룡이 대스타가 된 덕에 재평가 열풍 속에 새로 이런 말들이 덧붙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상기(上記)했듯 최초 방영 당시, 이소룡이 카토 역으로 나온 시리즈는 한 시즌 방영으로 그쳤을 뿐이다.[21]
  • 당산대형(唐山大兄, The Big Boss)》(1971) - 이소룡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각인시키는 것에 성공한 첫 번째 작품. 당시 홍콩에서 역대 흥행 1위이던 《사운드 오브 뮤직》을 제치며 319만 홍콩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다만 이소룡 작품치고는 상당히 잔인한 묘사가 많고 이해가 안 되는 장면, 코믹스런 장면, 짧지만 이소룡의 베드 신도 있을 정도로 이소룡 작품들 중 희귀한 작품이랄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데, 그의 최초 주연작이었기에 그의 영향력이 클 수가 없었다. 감독은 무술영화를 많이 감독한 유명 감독, 라유(羅維)였는데, 그는 당시부터 촬영 도중 경마 중계를 듣는 등 태업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이소룡과도, 이후 성룡과도 결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무문(精武門, Fist Of Fury)》(1972) - 여러 번 리메이크된 작품으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쌍절곤이나 괴조음 등이 등장한다. 추정제작비 약 10만 달러, 흥행은 홍콩에서 443만 홍콩달러(HK$ 4,431,423), 미국에서는 340만 달러.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경찰이 극장상영을 미뤄달라고 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성룡은 자신이 이 영화에서 이소룡의 발차기를 맞고 집 밖으로 날아가는 스즈키 관장의 대역을 했다. 스턴트였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전혀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이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22] 당시 한 사람이 장비 없이 날아간 거리로는 최고였다고한다.
  • 용쟁호투(龍爭虎鬪, Enter The Dragon)》(1973) - 이소룡이라는 배우를 전 세계에 알린 작품으로 워너 브라더스사에서 배급. 85만 달러라는 저렴한 제작비[23]를 들여, 홍콩에서 330만 홍콩달러, 미국에서 2,500만 달러, 전 세계적으로는 9,0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흥행기록을 수립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훗날 가화삼보로 알려지는 성룡, 홍금보, 원표를 비롯한 칠소복 멤버들이 엑스트라로 출연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홍금보는 영화 도입부에서 이소룡과 1:1 겨루기를 하는 상대역[24]으로 등장했고, 영환도사로 유명한 임정영이 극중 최종보스인 한의 대역을 맡았다. 원화는 단역과 여러 스턴트를 담당했는데 그중, 이소룡이 홍금보와 대결 직후 덤블링+공중제비의 묘기를 선보이는데 이를 위한 대역으로 출연했다.(당시 원표나, 원화등이 경쟁하였고 결국 원화가 하게되었다.) 성룡은 극중후반부 한의 지하기지에 잠입한 이소룡을 잡으려는 악당부하중 하나로 등장했는데 한 두방에 나가떨어지는 부하 중 그나마 제일 스크린타임이 긴 편이다...다만 그게 활약을 보였다는게 아니고, 머리채를 잡히고 팔은 뒤로 꺾여서 고기방패식으로 잠깐 붙들고 있다가 KO당하는 역할이었다. 그 외에도 곤봉에 두들겨 맞고 나가떨어지는 장면과 쌍절곤을 맞고 물이 고인장소에 빠지는 장면등에 등장한다. 특히 곤봉에 두들겨 맞고 나가떨어지는 장면에서 이소룡의 실수로 실제로 너무 세게 맞아서 부상까지 입자, 이소룡이 사과의 의미로 다음 영화에서는 성룡을 꼭 조연이라도 영화에 출연시켜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을 정도로 성룡을 이미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설이 있다.[25]
  • 사망유희(死亡遊戱, Game of Death)》(1978) - 무술고수들과 탑에서 벌이는 마지막 결전이 인상적인 작품. 본래 《사망유희》는 이소룡의 무술철학을 집결시킨 작품이 될 예정이었으나, 일부 격투장면[26]만 촬영한 상태에서 이소룡이 사망하는 바람에 반쯤 미완으로 제작되었다. 쌍절곤과 단봉을 가지고 싸우는 댄 이노산토는 고난에 대처하기 위한 유연함, 합기도의 지한재는 실수에서의 깨달음, 그리고 마지막의 카림 압둘 자바는 무형의 강한 고난을 상징한다고 한다. 사망한 이소룡의 대역을 했던 사람은 당룡이며, 원표도 참여하였다. 문제는 대역 배우[27]와 이소룡의 외모가 상당히 차이가 나서, 이를 처리하려다 보니 곳곳에서 다소 괴작스러운 부분이 보인다는 것이다.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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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 외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이 입는 노란 체육복은 이소룡의 캐릭터가 전통적인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캐릭터임을 강조하는 것이고, 또한 이소룡의 움직임을 캐치하기 쉽게 하려고, 튀어보이는 노란색을 썼다고 한다. 당시 카메라 기술의 한계로 인해 그의 움직임을 찍은 영상들을 보면 재생 속도를 줄여도 캐치하기가 힘들다는 말이 많다. 실제 이소룡과 비슷한 시기에 촬영된 다른 무술가들의 시범이나 공식 시합 등에서도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심지어 이소룡 사후 20여년이나 더지난 1990년대 영화인 《 데몰리션 맨》 촬영 때도, 주연이자 가라테 유단자인 웨슬리 스나입스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감독과 카메라맨 등이 천천히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사망유희》의 원래 배경은 한국 법주사 팔상전 5층탑[28]이었으나, 이소룡 사후에는 홍콩의 유명 음식점인 남북루(南北樓 The Red Pepper Restaurant)가 되었다.

참고로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은 격투장면 일부를 제외하면, 노란 체육복(혹은 바이커복)을 거의 입지 않았으며, 그의 사망 후에는 대역이 노란 체육복을 입고 헬멧을 쓴 채 스턴트 연기를 했다. 즉 《사망유희》에서의 모습은 대역이 많다. 잘 보면 대역의 얼굴이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중국인으로서 유명하긴 했으나 실제로 표준 중국어를 구사하지는 못했다고 한다.[29] 사실 이소룡이 부유했음에도 표준중국어에 서툰 것이 이색적인 것이지 이소룡이 한창 활동했을 때는 중국 본토나 대만에서도 의무교육이 보편화되기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이 사회 중역을 차지했던지라 표준중국어를 구사못하거나 서툰 사람은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30]

주성치가 이소룡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팬으로서 좋아한 것을 넘어 이소룡은 주성치의 인생 그 자체였는데 주성치는 단지 이소룡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화 배우를 꿈꾸었고 그의 영화 곳곳에서 패러디장면이 숨어있다. 진국곤을 단지 이소룡과 똑같이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굴해서 온갖 작품들의 주연(거의 이소룡 역)을 내줬다. 또한, 주성치는 홍콩의 이소룡 팬클럽의 명예 회장을 맡고 있으며 홍콩에서 '이소룡 기념관'을 건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MMA 선수인 코너 맥그리거 무하마드 알리 다음으로 이소룡을 두번째 우상으로 삼고 있고 그의 행동거지를 많이 따라한다.

5.1. 근육

파일:attachment/광배근/info.jpg

이소룡은 당시 동양 무술가답지않게 웨이트 트레이닝, 운동역학, 기능 해부학 등의 학문을 파고 들었는데, 한때 그는 전통적인 보디빌딩 스타일의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벌크업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근육의 사이즈 증가에 초점을 둔 운동이 자신이 하는 무술에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운동루틴을 대폭 수정했고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몸이 되기에 이른다.

예컨대 역도의 파워클린 같은 기능운동 혹은 스트렝스 트레이닝을 추가했는데 오늘날에야 정상급 격투가라면 당연히 하는 훈련들이지만 당시 동양무술계에서는 대단히 혁신적인 생각이었다. 그가 했던 운동들을 아직까지도 격투가들이 한다는 점에서 이소룡을 격투계 최초의 펑셔널 트레이너라고 보기도 한다.


KBS 과학카페에서도 이소룡의 근육을 다뤘었는데, 맹룡과강에 출연했을 때, 특유의 넓은등근이 큰 눈길을 끌었다. 이소룡은 전통권을 깊게 파보지는 않았지만, 전통권에서 중시하는 넓은등근 강화에 특히 신경을 썼다.

5.2. 절권도

절권도는 무술이라기보다는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이소룡은 이 개념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싫어했으며, 심지어는 과학적인 길거리 싸움이라 부르려 했다. 개념 자체는 다분히 실전 격투기인데, 문제는 수련 체계가 제대로 잡히고 제자들이 어느 정도 실력에 다다르기도 전에 이소룡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는 바람에, 현재에는 상당히 복잡한 사정을 갖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이소룡은 어느 날 자신이 가르치던 도장에 온 도전자와 싸우게 되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비(非)중국인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이소룡을 못마땅하게 여겨 도전자를 보내곤 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때도 대수롭지 않게 승부에 임했지만,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것에 3분이나 걸렸다는 것에 이소룡은 충격을 받고,[31] 금방 승부를 내지 못한 것은 자신의 몸 상태가 최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생각, 웨이트 트레이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절권도 개발에 힘썼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모 다큐멘터리에서의 이소룡의 아내의 말에 따르면, 이소룡은 금방 싸움을 끝내지 못한 것은 절권도의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전면 개편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소룡의 아내, 린다 리의 증언도 때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그녀의 문제인지, 그녀의 말을 전달하는 매체의 문제인지는 교차검증되지 않았음도 덧붙여둔다.

그러나 과도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척추를 크게 다쳤었는데 이후 무술 스타일을 변화시킨 것도 포함된다. 여담으로, 이 척추부상에도 부인인 린다의 증언이 있는데, 1970년 8월 13일, 과도한 중량으로 굿모닝 리프트 운동을 하다가 척추4번 천골신경에 심각한 손상이 왔다고 한다. 이로 인해 6개월간 입원하는 등 고통을 겪었고, 주위에 그 운동의 위험성을 열성으로 전파했다고 한다. 상당히 큰 부상이었던 듯한데, 주치의로부터 다시는 발차기를 할 수 없을 거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소룡은 꾸준히 재활하여 결국 부활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소룡의 주연작 다섯 편의 촬영기간은 모두 이 부상에서 벗어나고 1~2년 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운동 한 번 잘못해서 일어난 부상이 그렇게 큰일인가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자칫하다가는 허리가 뽀각날 수 있을 위험성이 데드리프트보다 높은 운동이니 함부로 하지 말자. 61kg으로 굿모닝을 하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데, 이소룡 본인의 몸무게 만큼이다. 굿모닝 리프트를 해봤다면 알겠지만, 이걸 자기 몸무게로 반복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린다의 말에 따르면 평소에도 이 정도 중량으로 운동을 하긴 했는데, 어느 날 준비 운동 없이 웨이트를 하다가 허리운동을 할 차례가 되어 평소처럼 굿모닝 리프트를 했는데, 8번째 동작에서 뚝하는 소리가 체육관에 울리더니 그대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재활운동을 하지 않을 때에는 동양철학 책을 읽곤 했다고 한다.

수련한 무술들과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동적인 방어보다 능동적인 공격으로 우선권을 잡고 최대한 빨리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이소룡은, 곡선보다 직선, 복잡함보다 단순함을 강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간단한 예를 들면, 손목이 잡혔을 때에 팔을 비틀어 꺾거나 몸을 움직여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발을 밟거나 낭심을 차버리는 식으로 간략하고 경제적인 움직임을 선호한다.

5.3. 이소룡의 영향을 받은 캐릭터

타임지에서 선정한 이소룡의 유산
게임 장르
* 브루스 리 -《브루스 리》[32]
* 토머스 -《 스파르탄 X[33]
* 빌리 리 & 지미 리, 친 타이메이 -《 더블 드래곤 시리즈[34]
* 가론 -《 뱀파이어 시리즈
* 리우 캉, 쟈니 케이지[35] -《 모탈 컴뱃
* 페이롱[36], 고우키 -《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
* 김용 -《 월드 히어로즈
* 재키 브라이언트 -《 버추어 파이터[37]
* 마샬 로우, 포레스트 로우[38], 리 차오랑 -《 철권 시리즈
* 잔리 -《 DOA[39]
* 홍푸 -《 아랑전설[40]
* 이절(Lee) -《 터프가이[41]
* 이나가키 조 -《 라스트 브롱크스[42]
* 마키시 -《 소울 칼리버[43]
* 배트 블루 - « 솔리터리 파이터»
* 리 롱 -《 소울 엣지, 소울 칼리버
* 우롱 -《 카이저 너클
* 마보라 -《 갓 오브 하이스쿨
* -《 로스트사가
* 리다이린[44] -《 블랙서바이벌
* 리 신[45] -《 리그 오브 레전드
* 리우[46] -《 하이퍼유니버스
* 메이[47] -《 엘라의 2048
* 백룡 -《 세븐나이츠
* 사토나카 치에[48] -《 페르소나 4
* 수도사 -《 디아블로 3
* 제트 찬 -《 이블 지니어스
* 웨이 쉔[49] -《 슬리핑 독스
* 제니온, 제니온 가이[50] -《 제3차 슈퍼로봇대전 Z
* 진진[51] -《 영웅 for Kakao
* Astro Fight, Kung Brother의 횽 -《 DJMAX 시리즈
* R 이이(RARE ENGINE Ver.) -《 삼국지대전
* 오룽(Oolong), 블루스(Blues) -《 이얼 쿵후[52]
* 《 Head Soccer》- 홍콩인 캐릭터[53]
* 《더 쿵푸(THE 功夫)》- PC 엔진발 괴작 쿵후 게임
보다시피 어지간한 대전 격투 게임에 다 한 명씩은 이소룡을 모델로 한 동양인 캐릭터가 존재한다. 그리고 오락실에서 캐릭터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그냥 이소룡이라고 부른다.

이들 중 켄시로는 스탠딩 포즈부터 시작해서 특유의 괴조음과, 상처가 나면 그 부위를 손가락으로 슥 문지른 뒤 한 번 피를 맛보는 등 아예 대놓고 이소룡화되었다. 작가 부론손의 말에 따르면, 실베스터 스탤론(헤어스타일, 벌크업 된 근육질 몸매) + 이소룡(특유의 기합소리와 괴성)이라고 한다. 켄시로는 작중에서 쌍절곤, 쌍곤봉을 쓰기도 한다.

또한, 《 드래곤볼》의 손오공마저도 이미지는 이소룡에서 빌려온 게 많다고 한다. 특히 초기 한국 더빙판에서 청년 오공을 담당한 백순철 성우의 기합 소리는 영락없는 이소룡이다. 만화가 스탠 리는 무술을 쓰는 캐릭터는 다 이소룡의 영향을 받는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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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록

동양철학이나 병법서, 동양고전 등에 있던 경구(警句)나 가르침, 말 등이 많으며, 일부분을 무술에 맞게 변용한 것이 많다. 2018년 11월 27일, 이소룡 탄생 78주년을 맞아 필로소픽 출판사에서 그의 어록을 모은 "물이 되어라, 친구여"를 출간 예정이며, 현재 출판사 공식 포스트 채널에서 '출간 전 연재' 중이다. 물이 되어라, 친구여 - 출간 전 연재

2020년 11월 27일, 이소룡 탄생 80주년을 맞아 액션 스타 중화권 들썩 포산에서는 이소룡에 관련 전시회를 비롯해 닮은 사람찾기 콘테스트, 삶을 회고하는 온 오프라인 행사가 열렸다.
" 인내란,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적극적이고 강렬한 것이다."
"무술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소질과 능력이 모자라 좋지 않은 동작을 하고 있는 사람과, 노력을 하지 않아서 좋지 않은 동작을 하는 사람을 반드시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하며, 후자의 경우 더욱 엄격하게 대하라."
"스승이란 나침반을 쥐어주는 사람이지 데려다 주는 사람이 아니다."
"훌륭한 무술가(격투가)는 긴장되어 있지 않다. 단지 준비할 뿐."
"자신을 치장하는 것은 단순하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무술의 극의이다."
"상대를 마주하고 있을 때 '나'는 없다."[70]
"생각하지 마라! 느껴라!
"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시선이 달이 아닌 손가락에 집중된다면 천국의 영광을 볼 수 없다."[71]
"격투에 대해 논하고 싶다면, 당신은 신체의 모든 부위를 훈련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형태나 구속 없이 마음을 비워라. 마치 물과 같이, 물은 병에 담으면 병 모양이 되고, 컵에 따르면 컵 모양이 된다. 물은 흘러갈 수도 있고 무언가를 파괴할 수도 있다. 물이 되어라, 친구여."[72] -Be water, My friend.-
"허세는 바보들이 찾는 영광이다."
"제가 살면서 확실히 깨달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제가 성격이 좋지 못하다는 겁니다."[73] - 토크쇼의 한 인터뷰에서-
이소룡: 내년의 절권도는 올해와는 다를 거야.
이노산토: 난 지금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소룡: 아니, 내년의 절권도는 올해보다 더 좋을 거야. 내후년에도, 앞으로도 말이지.
"항상 자신 있게 행동하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스스로를 믿으며, 성공한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려고 하지 말라."
"자주 쓸 동작이 아니면 잊어버리고, 필요한 동작이라면 기를 써서 당신 것으로 만들어라."
"나는 만 가지의 발차기를 찰 수 있는 사람도 두렵지 않다. 다만, 한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이라면 두렵다."[74]
"제게 싸움을 잘하냐고 물어봤을 때 제가 긍정한다면 제가 거만하다고 생각해 받아들이지 않을 거고, 제가 부정한다면 겸손해 하지 말라고 하겠죠."
"내가 1인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2인자라고 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할 줄 알아야만 한다. 의지만 갖추고는 충분하지 않다. 행동할 줄 알아야만 한다."
"불멸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억 될 만한 삶을 사는 것이다."
"찻잔의 효용성은 그것이 비어있을 때 생긴다는 것을 알아두어라."[75]
"걱정하지 마라.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변할 수 있다."
"비관적인 시선은 스스로에게 해로울 뿐 이로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실수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말입니다."

8. 외부 링크


[1] 영어권 MMA 포럼 등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할때는 종종 약어로 BL이라고 표기한다. 한국에선 부르스라고 잘못 아는 사람도 있다. [2] 정확히는 구룡반도 북부에 위치한 주택지구인데, 이 곳을 까우룽통이라 부른다. 참고로 표준 중국어로는 주룽탕이라고 읽는다. [3] 인스타그램 계정은 딸인 섀넌 리가 직접 맡아 운영하고 있다. 사망한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팔로워가 무려 1000만 명을 넘는다. [4] 본적 광둥성이라 한족 중에서도 남방계 중국인이다. 어머니가 영국계 혼혈이므로 유라시안이라고도 할 수 있다. [5] U. of Washington alumni records". Washington.edu. Retrieved January 22, 2010. [6] 사실 이소룡은 무술보다 연기를 더 먼저 시작했다. 데뷔는 만 0세에 아역으로 출연한 《 금문녀》. [7] 이소룡은 아마추어 무술가라는 주장에 대해: 무술에 대한 전문성과 체계적 연구를 바탕으로 직업 활동을 했고, 자신만의 유파까지 창시한 이상 단순한 취미로 무술을 한 사람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무술가로 표기했다. [8] 1901년 2월 4일 ~ 1965년 2월 7일 (향년 64세). [9] 1907년 1월 1일 ~ 1996년 6월 24일 (향년 89세). [10] 1937년 출생 ~ ([age(1937-01-01)]세). [11] 1938년 출생 ~ ([age(1938-01-01)]세). [12] 1939년 10월 23일 ~ 2008년 9월 3일 (향년 68세). [13] 1948년 12월 16일 ~ ([age(1948-12-16)]세). [14] 1965년 2월 1일 ~ 1993년 3월 31일 (향년 28세). [15] 1969년 4월 19일생 ([age(1969-04-19)]세). 미국에서 결혼하여 딸이 있다. 이소룡의 경우 남계쪽 직계만 끊어졌을 뿐 여계쪽 직계는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이소룡의 외손녀가 렌 키슬러(Wren Keasler)이다. 섀넌 리(Shannon Lee)도 아버지의 유선형의 몸매와 운동능력을 물려받았는지, 운동신경이 좋아 액션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16] 영어 발음상으론 케이토에 가까워 나무위키에도 케이토로 검색이 된다. [17] 《그린 호넷》이 당시 방영하던 《배트맨》의 안티테제(anti-thesis: 정반대, 반(反))적인 면이 있어, 사실상 짐 덩어리였던 로빈에 비교, 싸움도 잘하고 유능한 인물이 되었다는 평도 있다. [18] 가끔 가면이 없던 때도 있었다. [19] 주연인 그린 호넷이 겨우 featuring밖에 안 되었다는 걸 주목하라는 논지이다. 그러나 반론이 있다. 잘 검색해보면, 원제는 《 The Green Hornet Coloring Book – “Kato’s Revenge” (featuring Van Williams and Bruce Lee)》이다. 비중이 큰 배역의 배우를 먼저 내세우는 게 할리우드의 전통적 관습이다. 이소룡이 너무 뛰어나서 주/조연 전도가 심했다기보다는, 카토의 복수를 다루는 에피소드를 색칠공부책으로 출판했을 뿐이라는 게 반론의 내용. [20] 다른 여배우를 차로 태워오라고 명령했다. 같이 있던 여배우는 황당해서 이 사람은 배우라고 하자, 그 제작자는 "그게 뭐 어쨌다고?"하는 식으로 씹고 갔다고. [21] 편집되어 극장에 걸리긴 했으나, 이소룡 사후(死後)인 1974년의 일이다. [22] 사족으로, 스즈키 관장 역의 배우는 프로야구선수 출신의 일본인으로, 《대마신(大魔神)》(1966)의 수트 액션을 하기도 했던 하시모토 치카라(橋本力). [23] IMDB. 150만 달러가 제작비라는 출처불명의 이설(異說)도 있다. [24] 이 때의 홍금보는 잘 알려진 뚱보 이미지와는 달리 날씬한 모습이라 홍금보를 잘 아는 사람도 모르고보면 알아보기 힘들다. [25] 성룡을 정식 발굴한 건 《당산대형》, 《정무문》을 감독했던 라유 감독이다. 이소룡 사후(死後) 그의 후계자를 찾던 라유 감독은, 《소림문(少林門: Hand of Death)》(1975)에서 무술지도를 하기도 했고 실력이 인상적이었던 성룡(당시 예명 진원룡陳元龍)을 그의 아내가 추천하자, 바로 그를 불러 이소룡의 뒤를 잇는 용으로 성공하라며 성룡이란 예명까지 지어주고는, 그를 주연으로 《신(新)정무문》을 만드는 등 성룡을 키우려고 무척 애를 썼다. 즉 이소룡이 한 건 성룡이 영화계로 뛰어드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고, 성룡을 본격적으로 키운 건 라유 감독이며, 성공시킨 건 성룡을 라유에게서 빌려와 《 사형조수(蛇形刁手)》, 《 취권》을 제작하여 대박을 낸 오사원 감독일 것이다. 이 와중에 성룡을 놓고 흑사회까지 얽힌 다툼이 벌어지고, 단순히 성룡을 데리고 라유 감독이 외국으로 달아난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성룡납치사건이라 불렸던 사건까지 일어난다. 이때 끼어들어 다툼을 중재해서 성룡이 골든 하베스트에 자리 잡게 해준 것이 외팔이 검객으로 유명했던 천황거성(天皇巨星) 왕우(王羽)이다. 왕우는 무술실력도 실력이지만, 삼합회(三合會) 죽련방(竹聯幫)의 간부라는 얘기가 정설로 통할 정도로 암흑가와의 연관 소문이 많은 인물이다. 그리고 이후 《사제출마》의 기록적인 대성공으로 시작해, 성룡이 세계적인 대스타가 되게 후원한 건 골든하베스트의 추문회 사장이라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할 것이다. [26] 원래는 탑에서 카림 압둘 자바를 쓰러뜨리고, 뒤에 무술 대회가 나오는 시나리오였다고도 한다. [27] 당시 김태정 원표 등의 배우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28] 추위를 많이 타던 이소룡이 홍콩, 대만 등에 비해 무척 추운 한국에서의 촬영을, 계절이 바뀌면 하자면서 계속 미루었다는 얘기도 있다. [29] 해외 특히 서구권과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은 대부분 남방계, 그 중에서도 광동 출신이 많고 이소룡 본인도 광동혈통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예전부터 해외무역이 빈번했던 곳이라 외래문화와 외국이민에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표준중국어를 쓰는 지역인 베이징을 비롯한 북방은 내륙 성향이라 외래인과 딱히 접점이 없었고 기껏해야 인접지방인 한반도와 일본 정도에 또 실제로 한국과 일본에 있는 화교들은 절대다수가 북방출신이다. 서양 문화권 중에서도 러시아로 대표되는 동구권의 화교들이 주로 북방출신인데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 북방의 베이징을 수도로 하여 세워졌으며 특히 동북 지역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옛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래도 냉전 시절 같은 공산국가였다는 공통점 때문에, 화남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산주의 체제에 우호적이었던( 천안문 사태를 봐도 알 수 있듯 전부 그런 건 아니었지만) 화북 지역 중국인들은 해외 이민도 주로 동구권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소련을 포함한 구 공산권에 북베트남인들이 이민을 많이 갔던 것처럼). 참고로 표준중국어와 광동어는 한자를 쓴다는 부분만 공통이고(그나마도 광동어는 방언자가 존재) 입말은 거의 영어와 독일어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통역이나 필담 없이는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차이가 있다. [30] 당장 대만에도 7~80대 노인분들은 관화를 해도 민남어나 객가어 등 방언 말투가 심하게 섞였다. [31] 이때 상대는 겁을 먹은 상태라 소극적으로 싸웠다 카더라. [32] 이소룡과 비슷한 사람이 등장할 뿐인 다른 게임과는 다르게, 이 게임의 주인공은 분명히 '이소룡'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부인인 린다 리의 허락을 받았으므로, 이 게임만은 패러디나 오마주의 영역이 아닌 브루스 리 정품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닌자와 스모역사들과 싸우며 탑에 올라가서 사악한 마도사를 해치운다는 내용. 1984년작으로 브루스 리 관련 최초의 게임이며, 게임 역사상 최초로 모든 플랫폼에서(애플, 아타리, 코모도어, MSX, IBM등) 발매가 되었던 게임이기도 하다. [33] 괴조음, 전등깨는 날라차기 등. 80년대 초중반 격투게임 초창기였으므로 조금만 닮아도 이소룡으로 칭해졌으며, 이얼 쿵후 소림사로 가는 길 등 쿵후 오락기 제목을 퉁쳐서 죄다 이소룡으로 부르는 현상도 있었다. 다만 스파르탄이라는 제목과 토머스라는 주인공 이름은 성룡 작품의 게임이지만 게임의 분위기 자체는 사망유희에 가깝다. [34] 서양인 보기엔 팔꿈치를 쓰는 등이 닮아보였다고 함. 격투물 제목에 '드래곤'이 들어가는 것도 이소룡의 영향이며, 주인공 형제 중 동생 빌리는 사망유희의 주인공 이름(빌리 로)과 같음. 또한, 속편에서는 '친 타이메이'라는 중간보스가 나오는데 쌍단봉을 쓰고 특유의 괴조음, 드래곤 킥 등 누가 봐도 이소룡의 판박이. 이소룡이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아니라 악당으로 나오는 보기 드문 예. [35] 둘 다 첫 시작은 이소룡의 모티브로 시작했는데 리우 캉은 전형적인 이소룡의 캐릭터를 가져오고, 쟈니 케이지는 영화 배우로써의 이소룡을 가져오면서 캐릭터의 분위기가 다르다. 쟈니는 시리즈 초기엔 영화 투혼 장클로드 반담에 더 가까운 외형이라 이소룡과는 거리가 멀었다. 데들리 얼라이언스부터는 절권도 관련 기술(쌍절곤 포함)이 생기고, 모탈 컴뱃 X, 모탈 컴뱃 1 같은 작품에선 아놀드 슈워제네거스러운 설정과 복장을 모티브하며, 할리우드 시절의 선글라스 이소룡을 오마주 하는 등 다양한 액션 배우를 섞어놓았다. [36] 영화 내에서 이소룡이 연기한 캐릭터가 아닌 영화배우로서의 이소룡 자체를 모티브로 삼았다. [37] 절권도 설정이 있고 백 너클, 라이트닝 킥, 서머솔트, 엄지 코 액션을 취한다. 버추어 파이터 4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소룡의 분위기가 잘 살아나지 않았는데, 버파 4 에볼루션 이후로 모션이 교체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체성을 찾게되었다. 게임상에서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쌍절곤도 잘 다루기 때문에 버추어 파이터 애니메이션에서도 이소룡의 직접적인 오마쥬가 잘 들어나있다. 여동생 사라는 오빠에게 살짝 영향만 받은 듯, 비슷한 움직임을 사용하였지만 버추어 파이터 4 이후로 빠졌다. [38] 그 유명한 "1인치 펀치" 또한 보여준다. [39] 제작 당시 이소룡을 가장 완벽히 재현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었다. 상징적인 날아차기, 점프 다운공격, 백 너클 등등 영화에서 채용된 움직임을 줄곧 썼다. DOA3에서 밖으로 떨어지며 네온사인에 부딪히는 연출은 사망유희 엔딩 그 자체. DOA4의 엔딩에서는 잔리가 어릴 때 이소룡 영화를 열중해서 보고 있는 회상씬도 나온다. [40] 캐릭터가 주는 느낌은 성룡에 더 가깝지만 괴조음, 밀어차기, 쌍절곤 사용하는 캐릭터로 이소룡과 적절하게 섞여있는 모습이다. [41] 스탠스, 백너클, 괴조음 [42] 쌍절곤 [43] 스텐스, 쌍절곤. [44] 기본 스킨이 이소룡이 사망유희에서 입은 노란 체육복을 모티브로 했으며, 영원회귀에서의 주무기도 쌍절곤이다. 단, 무술 자체는 주로 취권을 쓰는 걸 봐서 이소룡, 성룡을 적절히 섞은 캐릭터인 듯하며 이름의 모티브는 홍콩 여배우인 슝다이린이다. [45] 용의 권 리 신 스킨 한정. [46] 클베 시절 패시브 아이콘이나, 주인공의 우상이 액션 영화 배우인 그, 절권도 등 이름만 안 나왔지 캐릭터 자체가 스스로 이소룡의 후계자를 자처한다. [47] 이소룡의 DNA로 만들어진 여성이다. [48] 쿵푸영화를 좋아하는 격투소녀라는 설정으로, 전투 대사 중에 불타라 드래곤!!!이라는 대사가 있고, 기술도 드래곤 킥(추격기술), 드래곤 허슬(최종각성기) 등 이소룡을 떠올리게 하는 기술이 많다. 방안에는 이소룡의 영문 이름의 패러디인 Blue 3(Three) 포스터도 있고, 일상복도 트레이닝복, 다만 색깔은 초록, 대신 그녀의 페르소나인 토모에는 사망유희 출연 당시 입은 이소룡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 추리닝을 입고있다. [49] 본편에선 잘 드러나지 않고, DLC인 조디악 토너먼트에서 용쟁호투를 오마주한 이소룡의 모습이 많이 부각되는 편. 연출이나 게임의 전체적인 색감도 복고적인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으며 노란색 츄리닝도 제공하고 있다. [50] 파일럿인 히비키 카미시로가 절권도 실력자란 설정 때문인지 기술 연출에 이소룡의 오마주가 많이 들어가 있는 편. 특히 제니온 가이의 최종기술인 니벨룽 어나일레이션은 대놓고 이소룡의 오마주다. [51] 정무문에서 이소룡의 배역인 진진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듯 하다. [52] 게임 패키지 전면에 이소룡 비슷한 사람이 발차기하는 그림을 그려놓음. 주인공 이름이 오룽인데, 이것은 소룡의 반대말로서 대룡이라는 이름을 말하는 듯하다. 최종보스 이름은 블루스(Blues)인데 이게 어디서 온 이름인지는 묻지 않아도 뻔하다. [53] 출시당시 달심과 같이 출시돼서 스트리트 파이터 유저들이라면 페이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54] 14기 부터 [55] 애니판 한정. 사쿠라다 네네를 짝사랑하고 그를 목적으로 주인공인 노하라 신노스케를 라이벌로 여기는 망상소년. 이 캐릭터는 영화광으로 여러가지 컨셉을 잡고 승부를 겨룬다. 그 중 이소룡 컨셉도 들어있다. [56] 파이팅 스타일은 절권도에 이소룡 특유의 기합을 내지르며 싸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이 이소룡의 원인치 펀치와 똑같은 자세의 펀치를 날린 것이다. [57] 북미판 이름인 히트몬리(Hitmonlee)의 유래가 이소룡의 영어 이름 브루스 (Bruce Lee)이다. [58] 어쩌면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패러디의 일종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대부분 이소룡 캐릭터를 볼때마다 싱하형 드립이 종종 나온다. 이소룡의 팬들 사이에선 싱하형이 금기어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59] 아뵤의 아버지 이름도 이소룡의 영어 이름인 브루스다. [60] 노란 복장이 트레이드 마크. [61] 이소룡과 실베스타 스탤론을 적절히 섞은 캐릭터. 복장은 매드맥스의 멜 깁슨에게서 따온 것이다. [62] 인간체 한정. 악마로서의 본모습은 이소룡과 무관한 디자인이다. [63] 이소룡의 비하 버전이자 네거티브 캐릭터. 그렇다보니 이소룡의 팬들은 자신의 우상이 지나치게 희화화 되었다는 이유로 이 캐릭터를 상당히 안좋게 생각한다. 국내에선 마샬 로우 싱하형이라고 부르는 드립이 많은 반면, 일본에서는 페이롱 하루마키라고 부르는 드립이 종종 나온다. 사실상 일본의 싱하형 같은 존재이자, 거의 '이대롱'으로 부른다. [64] 소림축구 주인공인 아성도 일부 수련장면에서 이소룡을 따라하고, 아예 닮은 배우 진국곤이 등용되어 이소룡을 오마주한 골키퍼로 열연한다. [65] 후반 전투씬에서 이소룡처럼 싸우다가 노룩 백너클을 시전한다. [66] 조폭 선배와 패전 후 오신상담하며 혼자 수련하여 다시 도전하는 장면에서 절권도 스텐스와 제트펀치를 구사함. [67] 절권도를 숭상하는 액션을 여러 미디어에서 선보이며 뽀뽀권으로 승화. [68] 촛불진영에서 노란추리닝과 복싱글러브를 코스프레 하여 복싱으로 보수정당 대상으로 사회풍자 퍼포먼스를 한다. 프로복서급은 아니지만 생활체육시합에 참가하여 실전 경험과 우승도 많이 했다고 한다. [69] 일반인 복서에 해당하지만 프로 못지않은 복싱 실력을 갖추어져 있다. 정치성향은 더불어민주당이고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기사에 담겨있다. 관련기사 [70] 해당 인용구는 본인이 주연한 《용쟁호투》의 대사이다. 이소룡은 생전에 도가와 불교의 사상을 무술에 접목시키는 데 관심이 컸는데, 이는 불교의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얘기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71] 여기서 달은 무술가들의 최종 목표이자 지향점, 즉, 승리(상대를 이기는 것)을 의미하며, 손가락은 달에 도달하려 하는 길(무술 그 자체)을 의미한다. 이 문장의 뜻은 "싸움에 이기는 것이 중요한 거지, 스스로가 자신의 무술에 국한되고 그 형태에 집착하다가는 무술의 극의에 달할 수 없다."정도로 해석된다. [72] 도가(道家) 철학의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관련된 내용과 역대 학자들이 붙인 주석들을 섞어 따온 것이다. [73] 이 말 이후 이소룡은 멋쩍게 웃어넘겼는데 그가 단순히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니다. 그의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은 이소룡이 영화 속 모습과 같이 일상 생활에서도 곧잘 화를 내곤 하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한다.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던 듯. 다만 어떤 면에서는 이 세상의 사람같지 않을 정도로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했고, 또 매우 매너가 좋고 상냥하고 친절했다고 한다. [74] 이 말 때문에 원챔이 최강이라는 개드립이 있다 [75] 선종(禪宗)과 도가(道家) 등에서 수백 년 전부터 계속 나온 화두(話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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