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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가스 모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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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포르투갈의 공영방송국(RTP)이 포르투갈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포르투갈인 100명'을 선정. 단, 중복 투표가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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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루 카에타누 페드루 누네스 안토니우 비에이라 플로르벨라 이스팡카 페르디난드 마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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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지 루르드 핀타실구 주앙 1세 소피아 드 멜로 브레이네르 안드레센 안토니아 페레이라 파더 아메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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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2세 카를루스 로페스 아폰수 코스타 폰테스 페레이라 드 멜루 가구 코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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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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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수상자 전체 목록 보기
<rowcolor=#fff> 1948년 1949년 1950년
파울 헤르만 뮐러 발터 루돌프 헤스
에가스 모니스
필립 S. 헨치
에드워드 켄들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안토니우 카에타누 드 아브레우 프레이르 에가스 모니스
António Caetano de Abreu Freire Egas Moniz
파일:Moniz.jpg
출생 1874년 11월 29일
포르투갈 왕국 에스타레자 아반카
사망 1955년 12월 13일 (향년 81세)
포르투갈 제2공화국 리스본
국적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직업 의사, 신경학자
업적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노벨생리학·의학상|{{{#black 1949년 노벨생리학상 수상자}}}]]

1. 개요2. 포르투갈에서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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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의 의사, 신경학자.

전두엽 절제술에 의해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당시에는 매우 획기적인 연구로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으나, 뇌의 기능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고 가벼운 뇌 손상조차 지극히 위험함을 나중에 알게 되어 현재는 시술 빈도가 크게 줄었다.[1] 사실상 노벨상의 흑역사 사례들 중 하나인 셈.

의사로서의 활동 외에 젊은 시절에는 정치인으로서도 꽤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아직 20대인 1900년에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며, 1918년 스페인 공사를 거쳐 외무장관까지 되어 파리 강화 회의에 포르투갈 대표단을 이끌고 참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1919년에 정계에서 은퇴하고 의학에 전념하였다.

2. 포르투갈에서의 평가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그의 명성은 여전한데[2], 리스본 대학교에는 모니스의 동상이 있다.

심지어 최고액권 포르투갈의 1만에스쿠도 지폐에도 쪼개진 뇌, 그가 받은 노벨상 메달과 같이 도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파일:attachment/포르투갈 에스쿠도/portugales205.jpg
그 밖에도 뇌를 쪼갠 그림으로 모니스의 전두엽 절제술을 기념했으며, 뇌 관련 학회가 열릴 때마다 주최측에서 모니스의 '업적'을 칭송하고 참석자들이 수긍하는 절차가 들어간다. 이 외에도 모니스의 이름을 딴 훈장이나 학교 등 이 나라에서 세종대왕과 같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의 치료법에 희생된 사람들은 그냥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하라는 태도이다. 지금도 포르투갈에서는 전두엽 절제술에 대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으며, 실제로 잘 시행되지는 않으나 위법이 아니다.

그나마 젊은 세대들은 그를 좀 쪽팔리게 여기는지 위대한 포르투갈인 순위에서 23위에 그쳤다.


[1] 다만 본인도 전두엽 절제술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해두긴 했다. [2] 잘 나갈 때의 황우석보다 한 단계 위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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