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포르투갈어: Meu Pé de Laranja Lima (메우 페 지 라란자 리마)영어: My Sweet Orange Tree
브라질의 소설가 조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루스(José Mauro de Vasconcelos: 1920~1984)의 소설. 포르투갈계 아버지와 원주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작가가 쓴 자전적 소설이다.
1968년에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제목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인 이유는 "밍기뉴"라는 나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제제(Zezé)는 이 나무를 간혹 '슈르르카'로 부르며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2. 내용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근처에서 살고 있는 철부지 5살 사내아이 제제를 주인공으로 삼아 여러가지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작품의 주인공 제제는 정신적인 사춘기가 지나치게 빨리 온 나머지 상당한 어려움을 누나와 형, 남동생[1]과 함께 가난하게 사는 제제는 가족들에게서 냉대받고 매질을 당한다. 사춘기가 빨리 온 원인도 아주 어린 때 고생을 좀 해서 그런 듯 싶다. 사실 제제가 작중에 받는 대접은 그야말로 아동 학대다. 제제 역시 악동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받는 폭력은 거의 준살인급 행위다.
2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는 제제의 가족이 이사를 가고 그를 중심으로 생기는 다양한 사건을 통해 제제로 대표되는 빈곤층의 어려운 삶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제제와 포르투갈인인 포르투가[2]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강도 높은 가정폭력과 불화의 묘사로 인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우울하며, 포르투가가 죽은 뒤의 묘사를 보면 정말 미래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암울하다. 주인공 제제가 꽤 강도높은 장난이나 단어구사를[3] 하는 내용들이 많아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던 1980년대 판본에서는 수정, 가필이 많았다. 이후 처음 출판했던 동녘출판사에서 원래 역자 박동원[4]에게 재번역을 부탁해[5] 2003년에 완역본을 내놓았다. 동녘에서는 이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3부작'을 기획하여 2편인 '햇빛사냥'을 2003년에, 3편인 '광란자'를 2008년에 출간하였다.
3. 해외판
한국에서는 작가 이름이나 소설은 꽤나 유명했지만, 작가에 대해서 도무지 알려진 게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1990년대 중순까지만 해도 나온 책들이 죄다 해적판이었던 터라, 결국 1990년대 종반부터야 합법적으로 계약하고 내면서 비로소 작가가 이미 1984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정도이다.굉장히 암울하고 슬픈 작품인데도 완역본이 나온 2015년 이후에도 어린이 추천도서로 읽히고 있다. 워낙 어릴 때 읽은 탓인지 ' 주인공 제제와 말하는 라임오렌지 나무의 신나는 모험!' 같은 내용의 전래 동화로 기억하다 나이를 먹고 다시 읽으며 "이게 이런 내용이라고?"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어린이라고 항상 행복하고 밝은 글만 읽어야 아는 건 아니며, 어린이의 심리묘사가 섬세하고 심금을 울리는 걸작이기 때문에 추천도서로 꼽히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린 때는 어린이의 눈높이로, 나이가 들면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유독 유명하다. 물론 해적판이 나온 당시 한국의 시대상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해당 작품이 쓰여진 시기부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역시 군사정권 치하의 개발도상국이었고 외곽으로 밀려나 사는 빈민들, 권위주의적인 부모의 아동 학대 문제 등은 사실 당대 브라질과 비슷한 문제점이 있었고, 브라질이 오일쇼크와 외채위기로 경제가 고꾸라져 버려서 한국에서 무시당했던 것이지 알고 보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던 나라였다. 한마디로 소설 속 내용이 지구 반대편 먼 나라 브라질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옆집, 옆동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1970~19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세대들은 이 소설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형편이 좋지 못해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장면. 집 마당에 있는 나무를 가족들이 하나씩 자기 것이라고 맡는 부분이 나오는데, 한국 사람에겐 대단히 부유한 이야기로 들렸다. 마당이 있는 집에 개인용 나무라니...
영어권에서는 이 작품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아동 학대적인 장면 때문인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영어 위키백과의 문서는 관련 문헌의 절반 가까이가 한국 출처이며, 아마존닷컴에서 영어판은 절판되었다. 한국어판이나 중국어판, 일본어판, 페르시아어판 등이 아직 팔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에서는 1974년에 <わんぱく天使>(개구장이 천사)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으나[6], 인기가 별로 없어서 현재 절판 상태이다. 그리고 2015년에 <ぼくのオレンジの木>(나의 오렌지나무)라는 포르투갈어 원서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오카모토 하마에 번역 | 나가타 츠바사, 마츠모토 노리코 번역 |
비슷한 홍당무는 본국 프랑스에서 인기를 끌긴 해도 (물론 이 소설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보다도 70년은 먼저 나온 소설이다.) 지금은 많이 잊혀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은 한국에서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는 셈이다.
4. 후속편
이 작품의 후속편으로는 《햇빛사냥》(Vamos Aquecer o Sol, 1974)과 《광란자》(Doidão, 1963)가 있는데, 전자는 가난한 집을 떠나 부유한 의사의 집에 양자로 들어간 제제의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의 시기(11세~15세)를, 후자는 제제가 청년기로 들어서는 시기(19세)를 다루었다. 《햇빛사냥》까지는 스토리가 여전히 시궁창이다. 양아버지인 의사가 제제를 위해 온갖 교육과 정성을 다해주긴 했지만 포르투가와 달리 진정한 의미의 애정은 주지 않았기 때문. 또한 상상 속 대화 상대가 나무가 아닌 두꺼비 '아담'과 영화배우 '모리스'로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이야기 흐름이 거의 비슷하다.《광란자》에서 제제는 양아버지가 몸져 누운 뒤에야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양아버지가 몸져 눕고 제제는 첫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고 또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방랑하게 된다. 그렇게 제제는 어른으로 성장해나간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지 더 이상 상상 속 친구는 없는 등,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광란자》라는 작품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간행되기 전인 1963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즉 원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일종의 프리퀄격으로 집필된 작품인 것이다.
5. 등장인물
5.1. 제제(Zezé)
본 3부작 작품의 주인공으로, 제제는 애칭이며, 본명은 ' 조제(José)'. 본명을 보면 알겠지만, 작가 조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루스 자신을 반영한 인물이다.본작 시점에서는 5살로, 생각과 행동은 여러가지 의미로 상당히 조숙하다. 작중 초반에 이미 글 읽고 쓰는 법을 터득했고, 친동생 루이스와도 상당히 잘 놀아주지만, 그 외의 행동은 이하생략.
글로리아 누나나 엄마, 먼 친척 집에 입양된 이름이 나오지 않은 누나, 남동생 루이스를 제외하면 항상 가족들로부터 맞고 사는 이 집안의 공인 동네북. 특히 아빠와 잔디라는 화룡점정. 아버지가 애를 벨트로 죽기 직전까지 패고, 손윗 누이인 잔디라 역시 힘들어 못 때릴 때까지 패고, 형이라는 안토니우는 말리지도 않고 역시 그냥 패고, 정말 가족들로부터 엄청 맞는다.
제제의 말에 의하면, 속의 작은 악마가 자신이 사람들에게 짖궂은 장난을 하도록 부추긴다고 한다. 사실 애정결핍과 학대로 인한 탈선은 아동심리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 중 하나이다. 제제가 당하는 학대를 봤을 때 제제 정도면 참 잘 성장한 사례에 속한다. 절대로 밥만 먹인다고 애를 키우는 건 아니다.
제제가 그나마 심하게 막 나가지 않은 것도 글로리아 누나의 도움이 컸을 것이며, 친동생 루이스에 대한 책임 의식도 컸을 것으로 보인다. 작중 묘사를 보면 루이스는 사실상 방치된 아이로, 글로리아와 제제 아니면 아무도 돌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7] 그리고 제제는 결국 다른 부잣집에 입양되었는데, 이 덕이 컸을 확률도 높다.[8] 부잣집도 그렇게 따뜻하게 대해준 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두들겨 패진 않은 것만으로도 백배는 더 낫다.
특히 친동생 루이스와의 대화를 보면, 제제는 자신을 '나쁜 아이'로 인식하고 있다. 가정에서 당하는 아동 학대로 인하여 자존감이 심하게 낮아진 상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제제의 아버지는 가상세계고 현실세계고 어디에서든 저런 짓거리를 저지른다면 아동 학대로 잡혀가도 진짜로 할 말이 없는 막장 부모 그 자체이다. 아무리 직장에서 잘렸다고 해도, "난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9]라면서 야한 유행가를 경쾌하게 부르던 아무것도 모르는 5살 아들을 허리띠를 풀어 죽어라 팼다. 어린 제제는 물론 노래 가사에 담긴 의미를 전혀 몰랐고, 그렇기에 자기가 왜 맞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이때 제제가 노래를 부른 의도는 실직한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버지란 작자는 이런 것도 몰라주고 말로 해도 될 일을 다짜고짜 아들을 죽어라 팼고, 잠시 후 딸 글로리아가 와서 말리고 의사가 와서 "아들 잡을 뻔 했다!!"고 차디차게 말하자, 그제서야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했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 엔딩에서 제제의 독백을 보면 이미 제제는 친아버지를 마음 속에서 '저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에 취직했다고 "앞으로는 잘해주겠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까지 보면, 아무리 봐도 본인이 실업한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애꿎은 애를 잡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포르투가와 함께 강변에 놀러갔을 때, 강가에서 실컷 물장난을 치며 노느라 더러워지자, 포르투가는 "점심을 먹기 전에 일단 옷을 벗고 물가에서 좀 씻고 오라!"라고 친절히 타일렀으나, 제제는 머뭇거린다. 옷을 벗으면 상처가 노출되기 때문이다. 어리둥절해하는 포르투가 앞에서 할 수 없이 옷을 벗은 제제의 몸에는 온갖 구타로 인한 멍과 상처 자국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아들을 샌드백과 동급으로 여긴 것이다. 그 몸을 보고 포르투가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이러니 제제가 혈육도 아닌 포르투가를 아빠보다 더 좋아했던 건 당연하다. 물론 포르투가도 처음에는 제제가 자신의 자동차에 장난을 친 것을 보고 때리기도 했으나, 점차 둘의 사이가 좋아지면서 밥도 먹고, 자동차도 태워주고, 낚시도 가서 진정 어린 마음 속의 이야기를 하는 등, 사실상 진짜 부자관계는 포르투가와 이루어진다.
그리고 아빠가 저지른 그 일 때문에 묻혀서 그렇지, 다른 대부분의 식구들도 전혀 정상이 아니다. 특히 첫째 누나인 잔디라는 데이트에서 남자친구랑 싸우고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준비해놓고 제제를 불렀는데, 종이 풍선을 만들고 있던 제제가 대답을 하지 않자 제제의 귀를 잡아당긴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풍선을 계속 만들고 싶었던 제제가 저녁을 안 먹겠다고 하자, 제제에게 오더니 제제가 만들고 있던 종이 풍선을 찢어버린다.[10]
이에 참다 못한 제제가 누나를 " 갈보 계집애![11]"라고 부르자 제대로 분기탱천해서 제제를 힘이 빠져서 더 이상 못 때릴 때까지 팼고, 9살짜리 형 안토니우(또또까)는 달려와서 말리기는커녕 "제제가 누나에게 심한 말을 했다"며 잔디라 누나와 함께 제제를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입에서는 피가 흐르다 못해 치아 하나가 빠질 정도로 오히려 같이 팼다. 글로리아(고도이아) 누나가 와서 둘을 말리지 않았으면 정말 제제는 아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죽했으면 막내이자 제제의 친동생 루이스가 보고 무서워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울었을까? 정말로 제제가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다만 안토니우는 직후 동생을 걱정하는 착한 형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아버지도 자상한 인물이 되었지만, 잔디라의 경우에는 답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제제의 편을 들어주고 신경써주는 가족은 엄마, 글로리아 누나, 그리고 막내 동생 루이스 정도. 하지만 슬프게도 제제가 가장 사랑했던 글로리아 누나와 동생 루이스 모두 채 30살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2편에 해당하는 햇빛사냥에 따르면, 글로리아 누나는 24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시력을 잃고 얼굴 수술만 4번을 했으며, 치아 대부분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서문을 보면 루이스는 20살에, 글로리아는 24살에 자살했음이 암시되어 있다.
시대적 배경이나 스토리랑 안 맞게 책 겉표지나 영화판에 왜 흑인이나 원주민 계통이 아닌 백인에 가까운 주인공이 등장하냐는 말이 있는데, 미국도 그렇지만 브라질도 백인계라고 해서 다 잘 사는 것은 아니다. 물론 브라질 파벨라는 비백인(원주민+흑인) 비중이 높은 게 사실이긴 하다. 그리고 제제는 백인에 가까운 외모를 가진 것이 맞다. 작중에 제제가 포르투가에게 어머니가 삐나제 족 출신이라고 자랑하자, 포르투가가 "그런데 너는 어떻게 금발에 피부도 하얗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또 후속작인 <햇빛사냥>과 <광란자>에도 제제가 금발이라는 묘사가 나온다.
물론 작가인 바스콘셀루스는 원주민 혼혈에 가까운 외모를 가지긴 했으나, 남유럽인이나 남미인들 중에는 어렸을 때 한정으로 금발벽안이었다가 자라면서 머리 색깔이나 눈색깔이 짙어지는 사례도 드물지 않은 편이다. 한 마디로 백인 혈통이 강한 메스티소인데 이러면 가난한 게 당연하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백인은 포르투가 하나뿐이다. 더구나 상파울루의 백인들은 이탈리아인 혈통이 대부분인데, 제제의 식구들은 이탈리아계가 아니다. 칠레의 대부분 국민들은 이렇게 백인 혈통이 대부분인 메스티소로 카스티소라 불린다.
다만 외모를 굳이 작가, 당시 시대상과 연계시켜서 생각할 필요가 없을 수 있다, 단순히 금발벽안의 마치 어린 왕자 같은 제제가 몹시 불우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극단적인 대비 효과를 노렸을 가능성도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소년기를 다룬 <햇빛 사냥>에서는 부잣집 의사의 양자로 들어가지만 여기서도 아버지의 정을 느끼지 못해 방황하며 지내고, 본작인 <광란자>에서는 청년으로 성장해 사랑과 양부와의 갈등 해소, 여러 일을 겪어가며 점차 어른으로 성장한다.
5.2. 밍기뉴(Minguinho)
작품의 또 하나의 주인공이며 1부의 주인공. 슈르르까(Xururuca)는 제제의 기분이 좋을 때 쓰는 애칭이다. 제제가 이사한 집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한 나무. 라임오렌지나무이다.제제는 서부 영화의 말 탄 카우보이를 생각하며 밍기뉴에 올라타 영화 속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때 밍기뉴는 멋진 백마가 된다. 제제는 수시로 이 나무와 대화를 나눈다. 당연히 상상 속의 존재이며, 나중에 밍기뉴가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로 제제 내면의 완전한 성숙을 보여주게 된다.[12]
후속작인 햇빛사냥에서는 밍기뉴를 대신해서 새로운 친구들이 등장하는데 영화배우인 모리스와 두꺼비 아담이 소년 제제의 말동무로 등장한다.
5.3. 포르투가(Portuga)
사실상 2부의 주연으로 포르투갈인이다.본명은 마누에우 발라다리스(Manuel Valadares). 포르투갈식 발음으로는 "마누엘 발라다르스"이다. 국내 판본 대부분은 둘을 합친 '마누엘 발라다리스'로 번역되어있다. 포르투가는 브라질인들이 포르투갈인들을 부르는 멸칭에서 온 별명이다. 제제가 이 호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포르투가 주변의 친한 지인들도 이렇게 부르며, 제제의 아버지가 포르투갈인 흉내를 내며 '마누에우'이라는 이름을 어설프게 따라한게 싫어서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일본인 흉내를 내며 "나까무라상~"하고 장난스럽게 발음하는 것이다. 제제와 친해졌을 때 제제가 "마누엘 아저씨라 부르기도 싫고, 발라다리스 씨라고 부르기도 싫은데..."라며 너스레를 떨자, "요 맹랑한 녀석, 날 포르투가라고 부르고 싶다 이거냐!"라고 꾸짖는 척 허락하는 장면이 훈훈하다.
제제에게 포르투가와의 첫 만남은 매우 굴욕적이었다. 제제가 포르투가의 차에 몰래 매달렸다가 걸려서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귀를 꼬집히고는 어찌나 분했는지 이 다음에 커서 아저씨를 죽이겠다고 말한다.[13] 포르투가는 피식하며 '어디 커봐라.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라고 받아치고는 제제의 엉덩이를 딱 한 대 때리고 풀어줬다. 제제 말로는 "딱 한 대였지만 너무 세게 때려서, 엉덩이가 창자에 달라붙는 줄 알았다"고 한다[14]. 이후 제제와 다시 마주쳤을 때는 씨익 웃으며 짓궂게 도발하고 제제는 나중에 커서 '그 괴물'을 죽이겠다는 마음도 되살아난다.
세 번째 만남은 제제가 발에 유리조각이 박혀 걷기 힘들어할 때였는데 이를 본 포르투가는 앞선 두 번과는 전혀 다르게 제제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병원으로 데려가 제제가 힘든 치료를 견뎌내도록 끝까지 옆을 지킨다. 이날부터 제제에게 포르투가는 원수에서 아버지 같은 존재로 180도 달라졌다. 포르투가의 인품을 고려하면 제제의 엉덩이를 때린 것도 정말로 자신의 차에 매달린 것이 괘씸해 그런 것이 아니라 제제가 달리고 있는 차 뒤에 매달리는 위험한 장난[15]을 하지 못하도록 예방조치 차원에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제제가 사는 곳 인근에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 고속도로가 있었으니 그런 장난이 더 위험하기도 했다.
이 점에서 보면 첫 만남 이후 마누엘이 제제를 볼 때마다 짖궂게 도발했다는 것 역시 별로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 볼 수 있다. 어른인 마누엘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애가 못된(위험한) 장난을 친 것은 한번 혼을 내줬으니 끝난 일이고, 어쨌건 서로 알게 된 사이이니 얼굴을 마주치면 인사삼아 아는 척하는 것은 오히려 친근한 태도라 할 수 있다. 특히 마누엘이 어린아이를 잘 돌보고 장난기도 있는 성격임을 생각하면 제제를 볼 때마다 놀리듯 얼굴을 찡그리는 표정을 지어보인 것은 그의 입장에서는 알게 된 아이에게 장난스럽고 친근한 태도로 인사(아는척)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아직 어린 제제의 사고방식에서는 자신을 혼쭐내서 자존심을 상하게 한 어른이 아는척해오자 그것을 자신을 놀리고 비웃는 것, 즉 도발로 느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이 때문에 더욱 자존심이 상한 제제가 흥칫뿡거리며 고개를 팽 돌리는 반응을 보였음이 묘사되어 있는데도 계속 아는척 하던 것을 보면, 제제가 보인 무례하다고 할 수 있는 태도(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태도)를 보면서도 '꼬맹이가 삐졌군. ㅋㅋㅋ' 정도로 가볍게 여긴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것. 이런 점들을 보면 사실 포르투가와 제제의 첫 만남이 '아주 좋지 않았다'는 것도 작품이 (아직 어린아이의 사고방식을 가진) 제제의 시점에서 진행되기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고, 포르투가의 시점을 가정하여 보면 <철없는 아이가 위험한 장난을 치기에 혼을 냈더니 한동안 삐져서 토라져있다가, 다쳤길래 병원에 데려가고 맛있는걸 사줬더니 아이 기분이 풀려서 친해졌다> 정도의 가벼운 감정 변화에 더 가깝다. 덤으로, 이 점에서는 '나중에 내가 크면 아저씨를 죽여버리겠어!'이라는 제제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포르투가의 반응 역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때렸다는 이유로 나중에 커서 힘이 세지고 상대와 대등해지면 보복하겠다고 벼르는 제제의 태도는 제제가 다섯살짜리 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조숙한 동시에 섬찟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은 가볍게 웃어넘기는 것이 어른스러운 태도지만, 동시에 아이와 친해진 이후에는 어린아이의 성격이 이상하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염려하여 확인해보는 것 역시 어른스러운 태도인 것.
작중 제제가 밍기뉴와 하는 대화나 포르투가가 죽은 뒤의 제제의 심리묘사를 보면, 제제가 포르투가를 얼마나 좋아하고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제제의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며 주변 인물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게 되며, 제제의 몸에 있는 자국들이 사실 멍이란 것을 알자 무척 슬퍼한다. 포르투가도 제제에게 부성애를 느끼고 있다.
"인생이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네 말대로 하고 싶기는 한데 너를 네 부모님한테서 데려올 수는 없어. 그건 옳은 일이 아니야.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하마. 지금까지도 널 아들처럼 사랑해 왔지만 앞으로는 진짜 친아들로 대해 주마."
제제가 자신을 양자로 삼아달라고 하자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는 않되 가장 모범적인 방법으로 대응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포르투가가 제제의 부탁을 거절하는 모습 역시 이래저래 생각해볼만한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당시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에서는 가난한 집의 자식, 특히 똑똑하고 재능있는 아이가 교육의 기회를 얻기 위해 부잣집의 양자로 들어가는 일이 상당히 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제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글 읽기를 깨우쳤을 정도로 똑똑한 아이가 맞고, 포르투가는 부자가 맞고, 무엇보다 후속작을 보면 결국 제제는 부유한 의사 집의 양자로 들어가 학교에 다녔다. (또 작중 시점에서도 글로리아와 안토니우 사이에 있던 누나 한 사람이 먼 친척집의 양녀로 이미 보내진 상태였다.) 그러니까 자신을 양자로 삼아달라는 제제의 부탁은 당시 브라질의 사회상으로 보면 그저 어린아이의 치기가 아니라 충분히 현실성있는 제안, 심지어 이해관계(利害關係)에 따른 거래로 성립하는 것까지도 가능한 요청이었던 셈이다. (예를 들어, "지금 파울루씨는 실직상태라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힘들지 않으시냐? 집안에 입도 하나 덜 겸, 아이를 우리 집에 양자로 보내주신다면 훌륭한 교육까지 받게 해 주겠다" 는 충분히 성립 가능한 제안이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그 부잣집은 재능있는 아이를 자기 집안에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런 제안이 성립하기에는 제제가 좀 많이 어린 나이이기는 하지만 대신 눈에 띌 정도로 많이 똑똑한 아이라는 점이나 마누엘과 이미 아주 친밀한 관계를 단단히 성립한 상태였음을 생각하면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안 될 이유가 전혀 없는 제안이었던 셈. 그런데 마누엘은 이를 '아이를 가족에게서 떼어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라고 판단하여 (제제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한다는 것에 몹시 기뻐하면서도) 이를 거절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누엘은 그렇게 생각했을까? 이에 대해서 가설을 제시한다면, 마누엘은 포르투갈인이기 때문에 당시 브라질 및 남미 사회의 사고방식을 공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남미 사회에서는 '좋은 기회를 주고 받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지만 포르투갈인인 마누엘이 보기에는 '어떻게 아이를 가족에게서 떼놓냐'고 여겼을 수 있다는 것. (또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 나라에서 계속 터잡고 살면서 가문을 이어나갈 현지인이 아니라 언젠가 포르투갈로 귀국할 입장이던 마누엘의 처지가 다른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긴 하다.) 말하자면 만약 마누엘 발라다르스가 포르투가가 아니라 부유한 브라질 사람이었다면 제제의 부탁을 듣고 냉큼 "그럼 너희 아버지와 상담해 보마"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물론 공정하게 말한다면, 브라질 사회에서 이방인이던 포르투가가 아니라 그 사회에 속한 부유한 브라질 사람이라면 마누엘처럼 격의없이 빈민가 소년인 제제와 친해지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포르투가는 제제가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기도 전에 기차 망가라치바에 치여 세상을 떠나고 만다. 마지막에 취직을 한 제제의 친아버지가 제제가 계속 아파하자 이사하느라 라임오렌지나무(밍기뉴)를 두고 가는 것 때문에 걱정돼서 그러는 줄 알고 나중에 하나 새로 사주겠다고 하자, 제제가 "내 라임오렌지나무는 이미 베여버렸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울지 마라, 얘야. 우리는 이제 큰 집에서 살거야 (중략) 새 집에선 나무도 먼저 고르게 해줄게"
"한가지 소식이 더 있다 얘야. 너의 라임오렌지나무도 그렇게 빨리 잘리진 않을거야. (중략) 넌 그게 잘린지도 모를거야."
나는 흐느끼며 아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됐어요, 아빠. 그런 건 상관없어요. 벌써 잘라 갔어요, 아빠. 벌써 일주일도 전에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잘라 갔아요."
"한가지 소식이 더 있다 얘야. 너의 라임오렌지나무도 그렇게 빨리 잘리진 않을거야. (중략) 넌 그게 잘린지도 모를거야."
나는 흐느끼며 아빠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됐어요, 아빠. 그런 건 상관없어요. 벌써 잘라 갔어요, 아빠. 벌써 일주일도 전에 내 라임오렌지나무를 잘라 갔아요."
포르투가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 제제를 구원해 준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것이 가능한 또 다른 아버지이며, 또한 친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을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지만, 역설적이게도 친아버지가 제제에게 사과를 하기 전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본의 아니게 영원히 제제와 친아버지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소설의 제목 라임 오렌지나무와는 대조적으로 제제와 라임 오렌지나무의 관계는 그다지 안나오고 포르투가의 관계가 주를 이루기에 사실 책의 내용대로라면 '나의 포르투가'가 더 잘어울린다.
5.4. 파울루(Paulo)
제제의 아버지.[16] 본성이 나쁜 인물은 아니지만, 인간 말종스런 행보를 보인다. 결국 나중에 크게 후회할 정도.본래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해서 실직 상태이다. 작품 중반까지만 해도 실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가엾은 아버지상이었다. 제제가 크리스마스 아침에 자기 신발에 아버지가 아무 선물도 넣어주지 못한 것을 보고 화가 난 나머지 "가난뱅이 아빠가 너무 싫어!"라고 무심코 내뱉은 적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바로 뒤에 아버지가 서 있다가 이 말을 듣고 말았다. 물론 제제는 아버지가 거기 있는 줄 모르고 한 말이었는데, 뒤돌아 보니 아버지가 충격감에 너무 슬프게 커진 눈을 하고 서 있었고, 제제에게 아무 꾸중도 못 하고 그대로 모자를 뒤집어쓴 채 나가버렸다. 이 사건은 제제와 아버지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이 되었다. 너무 괴로웠던 나머지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 생각으로 크리스마스에 하루종일 구두닦이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아버지가 좋아하는 담배를 사와서 선물로 꺼내들며 사과하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그런 제제에게 "생각해보니 네 말도 일리가 있어서 화가 나지 않았단다. 이런 일로 울면 앞으로 살면서 울 일이 수도 없이 많겠다. 울지 마라."라며 아들을 위로해 주었다. 이때까지는 제제도 아버지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실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점차 과격한 행동을 범하게 되는데 안토니우가 비겁하게 제제를 내세워 자기 동급생에게 얻어 터지게 만들었는데도 오히려 다친 제제의 머리를 쥐어 박는다거나, 잔디라에게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한 제제에게 한번만 더 그러면 가루로 만들어놓겠다라고 위협하는 등 자상한 면모는 점차 사라진다.
이후 절정을 달리는 중반부에서는 결국 선을 넘고 만다. 실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버지를 위로해주려고 제제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탱고를 불렀는데, 하필 그 가사가 매우 외설적이었다('나는 벌거벗은 여자가 좋아'). 그러자 제제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착각하여 홧김에 잔인하게 폭행한 것. 제제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글로리아가 제지했을 때가 돼서야 정신을 차리고 '아아...! 내가 정신이 나갔지, 얘가 날 놀리려고 부르는 것도 아닌데... 난 이 애를 팼어... 난 정말 못된 아버지야...!'라며 눈물을 흘리며 크게 후회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이런 아버지와는 대비되는 인간상인 포르투가와의 만남 때문에,[17] 제제는 사실상 아버지에게 마음을 닫게 된다.
다시 직장[18]을 구한 후부터는 나름대로 마음을 고쳐먹고 제제에게 잘해주려고 했으나 너무도 때가 늦었다. 파울루가 직장을 구했다며 제제를 안아줬지만 제제는 내심 우리 아버지는 죽었는데,[19] 이 사람은 왜 날 껴안는 거지?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미 아버지와 의절한 상태였던 것. 또한 제제가 파울루를 나무로 묘사하는 장면에서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나무였다라고 생각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있었다.
결국 제제는 초등학생 나이가 되었을 때, 의사의 양아들이 될 기회를 얻자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친아버지의 곁을 떠나길 선택하며 이 사람과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5.5. 에스테파니아(Estefania)
제제의 어머니. 피나제 인디언 혈통이라고 하며, 제제의 가족들 중 글로리아와 더불어서 제제를 아껴주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풀네임은 에스테파니아 피나제 지 바스콘셀루스. 남편과 달리 기본적으로 자상하며, 제제가 못된 장난을 했을 때만 매를 들지만, 심하지는 않다고 한다. 제제의 언급에 의하면, 접시꽃 줄기(그것도 아주 가느다란 줄기를 골라서)로 종아리만 때렸다고 한다. 원작에서는 제제가 구멍난 검정 스타킹으로 뱀을 만들어서 임산부를 놀라게 했을 때 슬리퍼로 한 번 세게 때린 적이 있다.[20] 영국인이 경영하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중이고, 짐을 나르다가 허리를 다쳤다는 언급이 있다.[21] 공장이 쉬는 날에는 삯을 받고 이웃집의 빨래를 한다.[22]5.6. 잔디라(Jandira)[23]
제제의 첫째 누나. 17세. 상당히 악랄하고 못된 성미를 가진 인물이다. 일단 배경 설명부터 막장으로, 남자가 여러 명이 있고, 연애편지를 하도 써대서 집 안의 연필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한다.가족들 중 성격이 가장 빌런에 속한다. 글로리아와 달리 제제가 말썽을 피우거나 자신을 놀리거나 반말을 하면 제제에게 폭언을 하거나 제제가 두들겨 맞을때 위로는 커녕 빈정대거나 제일 심한 폭력을 상습적으로 가하는 인물.[24] 나중에 제제가 아플 때 이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자 제제는 반드시 사랑의 매부터 맞아야 한다며 팰 준비를 하는 등, 제제에게 폭력을 휘두르는게 일상이 된 인물이다.
제제가 동생 루이스의 생애 첫 종이풍선을 만들어주느라 아무리 불러도 밥을 먹으러 오지 않자, 내가 네 식모인 줄 아냐며 홧김에 종이풍선을 일부러 발로 밟아서 찢어버리고 제제를 붙잡아 식탁 앞에다 집어던진다. 애써 재료를 구하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만들던 종이풍선이[25] 허망하게 종이조각이 되어버리자 분노가 머리 끝까지 달아오른 제제는 참다 못해서 잔디라에게 반말을 하며 갈보라고 욕했다. 그러자 잔디라는 제대로 분기탱천해서 가죽장갑으로 제제가 거의 피를 흘리며 기절할 지경이 되도록 마구 폭행했다. 물론 갈보는 굉장히 심한 욕설이었으나,[26] 잔디라의 행동과 대처는 그 이상으로 잔인했다.[27]
후반에 제제가 아플때 제제를 걱정하거나 제제에게 닭고기 수프를 끓여주는 등, 안토니우나 파울루와 마찬가지로 잔디라의 본성이 아주 나쁜 건 아니라는걸 보여준다. 판본에 따라 뉘우치는 묘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의 둘과 마찬가지로 제제와의 관계는 이미 회복될 수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아버지보다 더 죄질이 나쁜 것이 아버지는 실업 스트레스 때문에 홧김에 저질렀지만 잔디라는 이를 거의 상습적으로 행한 셈이다.
5.7. 글로리아(Glória)
제제의 둘째 누나. 15세. 고도이아(Godóia)라고도 불린다. 제제의 가족들 중 가장 정상인이다. 제제가 장난을 쳐도 무턱대고 때리고 혼내지 않고 제제를 잘 타이르고 용서해주고[28] 제제의 입장을 잘 이해해주기 때문에, 가족 중 제일 착하고 마음이 넓고 어른스러운 아가씨다. 제제에 의하면 가족들 중에서 제제와 글로리아만 '억센 털 러시아 고양이' 같은 금발이라고 한다.가족들 앞에서 제제의 편을 1순위로 들어서 제제에게 어떠한 안 좋은 일이 터져도 옹호하기도 하고, 2번의 처참한 매질에서 제제를 구한 것도 바로 글로리아였다. 때문에 제제의 1인칭 시점인 작품 내에서 제제가 어머니보다도 더 실질적으로 모성을 느끼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인물의 모티브가 된 작가의 누나는 일찍 세상을 떴다고 하며, 후속작에서 제제가 초등학생이 된 시점에서 이미 고인이 된 것으로 암시되어 있다. 다른 집의 양자가 되어 가족과 결별하게 된 제제가, 남동생 루이스와 더불어 그리워하는 3명 중 1명. 루이스에 대해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어머니는 '석양과 같은 그리움'으로 묘사하는데, 누나 글로리아에 대한 묘사는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말로 표현 못할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햇빛사냥>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치아 대부분을 잃고 4차례의 얼굴 수술을 겪었다고 하며, 설상가상으로 시력까지 잃는 후유증까지 남아 결국 자살했다고 암시된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는 안토니우의 외침에 놀라 달려와서 부모님을 대신해 아픈 제제를 돌봐주고 위로해준다.
5.8. 랄라(Lalá)
제제의 셋째 누나. 제제의 말에 의하면 장난을 쳤을 때만 제제를 아주 심하게 때린다고 하는데, 작중에서는 공장에 일하러 다니느라 많이 못 본다고 하여 별로 묘사되지 않는다. 때문에 부친 파울루나 큰언니 잔디라에 비해 욕은 거의 먹지 않는다. 제제의 말에 의하면 "남자친구가 생기기 전까진 잘해주긴 했다."고... 그래서인지 초반부에 가족들에 대해 설명할 때 잔디라와 달리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리고 랄라의 남자친구가 입막음용으로 제제에게 몇 번 사탕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반에 언급한 내용이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작중 비중은 거의 없다. 일 때문에 많이 바빠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많지 않은 편. 2012년 영화판에서는 아예 증발(...). 판본에 따라서 제제가 몹시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해 일하던 도중 급히 귀가해 작은언니 글로리아를 도와 제제를 간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담이지만, 제제가 안또니오에 의해 상급생과 싸움을 했을 때 동네 빵집 주인이 제제 편을 들며 그 상급생을 구타하는데 제제의 말에 의하면 랄라를 좋아해서라고... 심지어 가족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5.9. 안토니우(Antônio)
제제의 형. 또또까(Totoca)라고도 불린다. 9세로, 전반에는 가난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등 철이 든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제제와 같이 놀아주거나 챙겨줄 때도 꽤 많았다.하지만 중반부부터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찌질하고 비겁한 면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는 면에서 아버지(파울루)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 예를 들어 자신을 괴롭히는 비에라는 양아치에게 직접 맞서기가 무서워서 (네살이나 어린 동생인) 제제를 부추겨 대신 싸움붙이고는 자신은 자기 친구들 뒤에 숨어서 제제가 피터지게 싸우는 모습을 구경만 하고 있는다거나[29], "밍기뉴가 잘릴수도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제제의 돈을 속여서 빼앗아가는 행태를 보였다[30]. 게다가 이렇게 형답지 못한 소행을 보이면서도 자기 딴에는 형제자매간의 서열에 대한 권위의식이 있는지, 첫째누나 잔디라가 제제를 피를 흘리며 기절할 지경까지 폭행할 때 이를 말리기는 커녕 감히 누나에게 막말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도 한몫 거들어 제제의 앞니가 부러질 정도로 함께 폭행한다.
그나마 후반부에 제제가 아플 때 갑자기 열이 오르기 시작한 제제의 이상을 발견하고 당황하여 급히 자신과 제제의 이마를 번갈아 짚으며 "세상에! 열이 펄펄 끓네! 너 혹시 어디 아픈 거야?"라며 걱정하고, 제제가 제 정신을 못 차리자 "이거 안 되겠다. 일단 형 등에 업혀. 집으로 같이 가자!!"라며 아픈 제제를 업고 서둘러 달려가 가족을 찾는 등 나름 절절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서 본성이 완전히 개차반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보면 파울루(아버지) 역시 제제를 죽도록 두들겨 패다가도 글로리아의 제지로 정신을 차린 뒤에는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기는 했으니 아버지도 본성이 완전히 쓰레기는 아닌 인물인 것은 마찬가지이다[31]. 그나마 아픈 제제를 업고 온 안토니우가 서둘러 가족을 찾을 때 걱정은 커녕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제제가 또 말썽 시작이라며 빈정거리고 말을 함부로 한 잔디라가 보여준 압도적인 잔인함이나, 어른, 그것도 아버지라는 입장이면서도 그에 어울리는 책임감은 보여주지 못한 아버지에 비해 자기 자신도 아직 어린아이면서도 저 둘보다는 조금 나은 모습을 보여준 안토니우가 그나마 나은 인간인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있는 덕분에 어느 정도의 동정론이나 옹호론을 받기는 하지만 결국 제제의 입장에서 보면 안토니우 역시 명백한 가해자에 해당하는 인물이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파울루)나 잔디라 등 다른 가족 내 가해자들과 비교해 보면 안토니우는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제제를 학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 의도적이고 교활하게 제제를 이용하고 해치는 행태'를 보인 인물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하는 것. 결론은 잘못 잔뜩 해놓고 뒤늦게 후회해봤자 별 소용 없다는 것이고, 제제의 가족에서 파울루(아빠), 잔디라, 안토니우는 변명의 여지 없는 가해자, 에스테파니아(엄마), 글로리아, 루이스는 이해자에 속한다고 깔끔하게 분류되어 버리는 것. (랄라가 어느 족에 속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이유는 직접 등장이 없고 비중이 낮아서...)
이 점에서는 작품 최후반부에 안토니우가 보여주는 후회와 죄책감조차도 상징적이다. 안토니우는 제제가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가 잘릴지도 모른다는 걱정때문에) 제제가 충격을 받아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고, 용돈 몇 푼을 빼앗기 위해 제제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것을 두고 함부로 거짓말을 한 자신의 행동에 큰 죄의식과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반성은 물론 아주 진실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무의미한 것이기도 한데, 제제가 아픈 이유는 사실 라임오렌지나무랑은 별 상관 없고(...) 포르트가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 때문이라서이다. 그러니까 안토니우는 열심히 반성하고 사과하고 있지만 알고보면 그건 단지 엉뚱한 소리에 불과한 것이다. 이 점에서 안토니우와 파울루(아버지)는 또 한번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반성하며 돌이키려고 노력하지만, 과거의 행동들 때문에 제제와의 관계가 이미 끊어져버린 상태이기에 그 노력은 헛될 것임을 결말이 암시하고 있다는 것.
5.10. 루이스(Luís)
제제의 남동생. 4세. 집안의 막내. 제제와 연년생이고, 제제와 달리 얌전한 성격이기 때문에 귀여움을 받는 듯하다. 사실 4살이라는 어린 나이를 생각하면 안 좋은 가정환경 때문에 철이 일찍들었다고 봐야한다. 천진난만하고 순종적이고 제제를 잘 따르며, 제제가 유일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돌보려 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32] 사실 루이스도 마찬가지로 완전히 방임 스타일로 가족들에게 소외된 아이였던지라 돌보는게 글로리아와 제제 밖에 없긴 했지만, 앞에서 언급된 제제의 종이 풍선 관련 사건에서 빨리 밥먹으러 가지 않으면 큰일날 거라고 제제를 걱정해주기도 했다.불행히도 글로리아 누나처럼, 루이스의 실제 인물인 작가의 남동생도 이른 나이인 20살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5.11. 주민들
제제가 사는 마을의 주민들. 인정 많고 소탈한 사람들로 제제의 말썽으로 인해 골치를 썩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제제를 도와주거나 일을 같이 하는 사이가 되는 인물들도 있다. 제제가 포르투가의 죽음을 믿지 못해 망가라치바 사고현장으로 갈때 제제를 안심시켜 주고, 제제가 아플 때는 문병을 오고 "주여, 빠울루 씨네 어린 아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부디 그 소년이 건강하게 나아지도록 도와주소서..."라며 간절히 기도를 한다. 제제는 '나를 욕하던 걸 다 잊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아리오발두 (Ariovaldo)
마을 주민들 중 가장 등장 비율이 높은 인물 중 하나로 탱고나 유행가들을 만들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악보를 팔아서 먹고사는 노래꾼이다. 제제가 그에게 흥미를 보이고 계속 따라오자 제제를 부른뒤 같이 일하는 사이가 된다. 제제의 기발한 수완과 둘의 콤비로 다른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유명해지자 아예 날을 잡아서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며 다니게 된다. 제제가 중반부에 불렀다가 아빠에게 열나게 터진 일의 근원이 바로 이 아저씨가 부른 노래다.[33] 항상 커다란 칼을 갖고 다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제제가 무서워했지만, 실제 성격은 유순하고 재치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집에서 아내에게 빗자루로 두들겨 맞고 살 정도라고... 후반부에 앓아누운 제제에게 문병을 왔을 때도 오열을 하면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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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 파잉 (Cecilia Paim)
제제가 다니는 학교의 담임교사. 자상하고 다정한 성격 덕분에 제제가 좋아하는 얼마 안되는 사람이다. 제제의 가정사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제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는 모습도 보인다. 제제의 묘사로는 얼굴에 있는 큰 점 때문에 외모가 아름답지는 않다 묘사된다. 이후 제제의 병문안을 오면서 반 친구들과 함께 꽃과 편지를 주며 아이들과 같이 오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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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아이들
남자애 중 한명은 여자아이를 괴롭히다 제제에게 혼쭐 나는데, 이후 제제가 남의 집 꽃을 꺾어 세실리아에게 주는 걸 보고 고자질한다. 하지만 역시 제제의 문병을 올 때 아이들과 함께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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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젬베르그 (Rosemberg)
비중은 적은 편으로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다. 초반부에는 제제의 누나인 랄라를 짝사랑 하고있다고 회자되며, 안토니우가 제제에게 자기 대신 조져달라고 한 비에라는 녀석에게 제제가 마구 얻어 터지고 있을때 제제를 구해주기도 한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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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스라우 (Ladislau)
제빵집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중반부에 아빠에게 열나게 얻어터진 제제와 포르투가와 함께 재회했을때 잠깐 등장하는게 첫 등장으로, 포르투가와 친분이 있는 걸로 묘사된다. 짧은 단역으로 보이지만 포르투가가 망가라치바에 치였다는 소리를 듣고 학교도 뛰쳐나와 미친 듯이 달려가던 제제를 붙잡은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포르투가가 죽고 난 뒤에 제제의 심리 묘사를 보았을때, 이 사람이 제제를 붙잡지 않았다면 제제는 포르투가의 뒤를 따라 갔을지도 모른다. 미친듯이 발버둥 치는 제제를 그 끔찍한 현장에 가지 못하게 붙잡으면서도,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진정하고 음료수 줄테니 마시면서 기운 차려라.." 라며 계속 달래주지만 제제가 계속 울며 현장에 가려고 하자 그 또한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린다. 이후 제제가 구토를 하자 '아아... 정말로 불쌍한 녀석...'라고 안타깝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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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문두 (Edmundo)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로, 가까운 근처에 살고 있는지라 제제의 이웃중에서는 직접적, 간접적으로 꽤 언급이 많이 된다. 아내가 있으며, 제제가 안심하고 가끔씩 놀러와서 얘기할 수 있는 얼마되지 않는 이웃. 가끔씩 제제에게 돈을 주기도 한다. 일부 판본에서는 제제의 큰아버지로, 아내는 에드문두의 어머니로 번역되어있다.
6. 미디어 믹스
본고장 브라질에서는 이미 1970년에 영화가 제작되었고, 2012년에 다시 영화화됐다. 국내에서는 2014년 5월 29일에 개봉했다. 그러나 독립영화로서 전국 47개 상영관에서 상영해 전국관객 7,893명에 그치며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브라질 드라마로 1970년, 1980년, 1998년 세 번이나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80년판 드라마 전 에피소드 모음목록 98년판 드라마 전 에피소드 모음목록 물론 브라질 드라마인 만큼 브라질 포르투갈어이며 영어 자막이 없음을 감안하고 봐야한다.
한국에선 만화가 이희재가 만화로 월간 만화지 보물섬에 87년~88년까지 연재한 바 있다. 물론 저작권자와 협의는 없었다. 2000년대 와서 컬러로 단행본이 재간되었는데, 비로소 원저작권자와 계약 협의가 되었다. 다만 제제는 후술하였듯이 금발의 백인 외모인데, 이쪽에서는 원주민 외모에 가깝게 나온다. 이 판은 가족의 악행이 더 심하게 나왔고[35], 때리는 물건이 더 심하게 나오고 빈도, 횟수가 심하다, 제제의 심리 묘사를 더 강하게 했다. 아빠와 잔디라가 때릴 때나 사건이 있을시 분위기가 어두워진다. 형은 철없는 면모가 매우 강해졌으며[36] 잔디라 누나보다 더 심한 수준으로 때린다. 제제도 장난끼가 어느정도 늘었다. 루이스와 글로리아 누나는 거의 원작 그대로 나왔다.
한편으로 브라질에서도 원판 소설 저작권을 가진 출판사에서 그래픽노블을 출판했으며 한국에서도 번역되었다.
1989년에는 한국 영화 <내 친구 제제>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영화는 한국을 배경으로 했기에 포르투갈인인 포르투가 아저씨가 일본인 우치다[37]로 다르게 나왔다. 그런데 개봉 시기에 엄청나게 망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 지금은 아예 필름 자체도 없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저작권비는 내지 않았다.
그래도 영화 개봉 후에 이 책 제목이 <내 친구 제제>라 한 제목으로 나온 바 있다.
계림출판사에서 펴낸 만화판도 있다. 다만 작중 배경이 브라질인데 크리스마스에 눈이 펑펑 내리는 오류가 있다(...).
7. 기타
- 바스콘셀루스는 어렸을 적 찢어지게 가난했던 부모와 떨어져 나타우(Natal)시에 위치한 삼촌네 집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9살 때 수영을 배웠던 경험이 즐거웠다고 회자했는데, 이를 감안하면 소설 속 포르투가와 후속편의 양아버지는 바스콘셀루스의 삼촌이 모델이라 볼 수 있다.
- 아이유가 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와 작사한 노래 <제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CHAT-SHIRE/논란 문서로.
- 학교 등지에서 필독도서로 선정을 자주 하는 탓에 학교 주변 공공도서관들은 이 책을 내놓으라는 민원에 휘말려서 대부분 성인용, 청소년용, 초등학생용으로 나눠서 각 2~3권씩 복본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상호대차 같은 서비스에서는 보유서적은 상호대차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규칙까지 겹쳐지는 동네면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려버린다.
7.1. 포르투가의 죽음
소설에서 제제와 교감하던 마누에우 발라다리스(포르투가)가 기관차 망가라치바(Mangaratiba)에 치여서 사망한 사건. 작중에서 오히려 가족보다도 제제를 더욱 아꼈던 포르투가의 죽음이었기에 당시 독자들에게 상당한 충격과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실제로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욱 포르투가에게 부성을 느꼈던 제제는 그의 죽음에 커다란 슬픔을 느꼈고, 이후에 이사를 할 때 "저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이미 죽어 버렸어요..."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대사를 남기기도 했다.7.1.1. 자살설
일부 독자들은 포르투가가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자살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아래 내용은 그 주장의 일부이다.- 포르투가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기차에 치여 차가 박살나면서 사망한 듯하다. 포르투가의 죽음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 차도 박살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실에서 이런 사고의 대부분은 자살이 목적이 아니면 철도 건널목을 건너다가 차단기가 내려가는 바람에 당황해서 탈출을 못해 나는 사고이다. 실제로 작품 중에서 제제도 망가라치바 기차의 기적 소리는 정말로 요란하다고 하기도 하였다.
- 제제가 회복 도중에 꾼 악몽에서 망가라치바 기차가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 난 잘못이 없어!"라고 말하는 꿈을 꾼 이후 제제가 깨어나서 계속 울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 실제로 포르투가가 자살을 했고, 자신은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과 자신이 있음에도 포르투가가 자살이란 이기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한 한없는 무력감과 슬픔, 가장 소중한 사람이 이제 현실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을 느낀 듯 하다. 포르투가는 제제에게 친부모보다도 더 의지가 되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실제 부모 이상의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하루아침에 기차에 치여서 사망한다면 제제는 무너질 듯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다만 이런 해석은 작품의 전체적인 전개 및 캐릭터성을 모두 따져서 생각해 보았을 때 설득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아래에 그 이유를 서술한다.
7.1.2. 반론
사실 작중 내용을 보면 근거조차도 부족한 것이, 포르투가와 제제는 양자 이야기까지 오고 갈 정도로 친근한 상태였으며, 포르투가 역시 제제를 끔찍히 아꼈다. 게다가 포르투가가 자살을 할 만큼 심적으로 힘든 처지에 있었다는 암시는 작중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자살설은 말 그대로 뜬금포 기습사격, 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작품과 전혀 상관없는 제멋대로의 상상을 섞은 해괴한 오독을 '독창적이고 신선한 독해' 라고 착각하는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구글에 검색해봐도 나무위키 이외에는 어디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된 사례를 확인할 수 없고, 그렇다고 나무위키 내에서 제기된 해당 주장에 상식적으로 납득 가능한 근거가 함께 제시된 것도 아니다.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누구나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나무위키의 특징이 나쁜 형태로 나타난 사례로, 어떤 이가 자신이 상상한 2차 창작을 자기 블로그가 아닌 나무위키에 올린 것인데 어쨌건 그것도 누군가의 기여이긴 기여이니 (문서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차라리 지우는게 나을 엉뚱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남아있는 것일 뿐이다.자살설 측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두 가지에 대한 반론은 다음과 같다.
- 상식적으로 차가 철도 위에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작중 망가라치가 기차의 기적소리는 정말로 요란하다고 하니, 운전자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자살할 생각이 아니라면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알고서도 철로 위로 자동차를 몰고 갈 이유가 없을 것이다.
-
일단 철도에는 '
철도 건널목', 즉 철도과 도로가 교차하는 길목이 있다. 그리고 이 철도 건널목은 1990년대까지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교통사고 빈발 지역으로 손꼽혔다는 사실 단 하나로 반박되는 주장이다. 심지어 나무위키에도
철도 건널목 사고라는 문서가 따로 만들어져 있을 정도. 그나마 한국의 경우는 90년대를 지나면서 철도 건널목의 안전장치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사고 예방을 위한 대규모 캠페인까지 실시했지만 작중 배경은 1920~30년대의 브라질, 게다가 빈민인 제제의 가족이나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주변에 사는 것으로 보아 그리 잘 사는 동네도 아니다[38]. 차단기, 경보기등 그나마의 안전장치조차 미비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90년대 한국의 철도 건널목 관련 교통안전 켐페인 내용을 보면 "철도 건널목에서 차의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 기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릴 경우, 시동을 다시 거는 것을 포기하고 차를 버리고 탈출해야 한다"는 것을 아주 중요시하여 강조했다. 웬만해서는 시동이 꺼질 일이 없는 자동 변속기 차량과는 달리 수동 변속기 차량의 경우 운전중 시동이 꺼지는 일이 드물지 않고, 특히 저속으로 심한 요철을 넘어가야 하는 건널목은 시동이 꺼지기 쉬운 구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꺼진 시동이 바로 다시 걸리면 다행이지만 만약 잘 걸리지 않을 경우, 차보다는 목숨이 소중하니 차를 버리더라도 운전자와 승객들이 탈출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 해당 켐페인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런 뻔한 이야기를 굳이 홍보까지 해야 했던 것은, 만약 다시 시동이 걸리기만 하면 불과 수미터정도만 이동하는 것으로 충분히 건널목을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마침 심하게 당황하기까지 한 상태에서 기차가 점점 다가오는데도 차에 머무르며 계속 시동을 걸어보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사고를 당하는 일이 그만큼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더해 21세기는 커녕 80~90년대에 비해서도 기계적 신뢰성이 부족했던 20~30년대 자동차의 기술적 수준을 생각하면 브레이크나 조향장치 등 고장으로 불의의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 즉 이 부분은 근거라고 보기도 우스운, 억지 트집에 불과하다.
2. 제제가 회복 도중 꾼 악몽에 등장한 망가라치바 기차가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라구!"라고 말하고, 이 꿈에서 깨어난 뒤 제제가 계속 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포르투가의 죽음이 기차의 잘못이 아닌 포르투가의 자실이라는 것, 그리고 제제에게 있어 친부 이상으로 소중하고 의지가 되는 존재였던 포르투가가 자살이라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여 자신을 떠났다는 슬픔과, 그것을 막지 못했다는 제제의 무력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 물론 제제에게 있어 포르투가는 친아버지 이상으로 더 소중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을 사고로 잃었으니 제제가 지독한 슬픔에 빠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심으로 '포르투가를 죽인' 망가라치바 기차를 원망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며 그 감정이 망가라치바 기차를 '살인자'라 부르는 꿈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기차는 어디까지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위치를 지나간 것 뿐이고, 악의를 가지고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불운한 사고였을 뿐이기에 '내 잘못이 아니다' 라는 항변이 나오는 것이라 본다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소중한 사람이 죽으면 무조건 슬픈 것이지, 소중한 사람이 자살로 죽어야만 슬프고 사고사로 죽으면 안 슬픈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부분은 그냥 '포르투가는 자살했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근거를 억지로 거기 끼워맞추려고 드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작중 포르투가는 자신이 좋아하던 트라스 우스 몬트스(Trás-os-Montes)[39] 근방으로 가서 여생을 평화롭게 마무리하고 싶다고 제제에게 말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훨씬 나중의 일이 될 것이다'(=당분간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이기까지 한 것. 자살따위를 꿈꾸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희망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인생에 대한 염증따위는 전혀 보여준 바가 없다. 오히려 제제가 아버지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뒤 '자신은 쓸모없는 아이'라며 '망가라치바에 뛰어들어 죽겠다'고 말하자 정말로 화를 내면서 "네가 날 사랑한다면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고 하고, 그날 밤 혹시라도 제제가 정말로 자살할까봐 철길 옆에서 망가라치바 막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 뒤에야 집에 돌아가기까지 한 인물이다. 즉 작품 전체의 주제에서 '삶에 대한 절망'의 결과인 자살에 대한 안티테제의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인 것이다. 작품을 정 독특하게 읽고 싶다면 작품에서 종종 '죽음'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망가라치바 기차[40]에 의해 '삶과 희망을 지키는 선한 어른'의 상징이던 포르투가가 슬픈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는 아이러니에 대해 연구해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1]
사실 이외에도 형제가 더 있는데, 글로리아와 안또니우 사이에 있는 또 다른 누나(랄라의 언니인지 동생인지는 불명)는 다른 집으로 입양갔고, 제제 본인과 루이스 사이에 있던 동생 둘은 어릴 때 죽어서 실질적으론 9남매다. 제제는 그 중 차남이자 6번째.
[2]
''포르투가"는
포르투갈인에게 대한 경멸적인 멸칭이다.
한국 정서에 대입해보면 이웃집에 사는
중국인 아저씨를 '
짱깨'로,
일본인 아줌마를 '
쪽발이'로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포르투가는 제제가 자신을 처음으로 그리 부르겠다고 했을 때 장난으로 화를 내는 시늉을 했을 정도. 물론 제제는 그만큼 친함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꾸중을 듣는 일은 없었고, 되려 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받는다.
[3]
사실 아이들은 무시당하고(애정결핍) 학대당할 때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다. 이는 아동심리학에서도 의미 있게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 진짜 부모가 좋지 않은 짓을 하는 경우도 등장한다. 보통 미취학 아동이 하는 일의 대다수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4]
여성이다. 대학 재학 중 습작으로 한 번역판이 100만부 이상 팔렸다. 이후
외교관이 되어,
파라과이 대사를 역임했다.
[5]
역자 후기를 보면 1978년 학부 졸업 전 이 작품 번역을 했었고, 이후
브라질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한 후 재번역 의뢰를 받아 100여군데 이상을 바로잡았다고 한다.
[6]
영어 번역본의
중역
[7]
가족들에게 아에 방치된 것인지 가족들의 폭력도 최근에 시작되었다고 언급되었다.
[8]
복선이라면 복선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제제가 포르투가에게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서 "원래 글로리아 누나와 또또까 형 사이에 누나가 한명 더 있었는데, 그 누나는 북부지방에 사는 먼 친척에게 양녀로 갔어요"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9]
영화에서는 "엄마의
거시기를 팔아야 해요~"
[10]
영화에서는 풍선이 아닌
연으로 나온다.
[11]
일부 번역본에는 '바람둥이'라고 쓰여있기도 한데, 바람둥이는 엄청나게 순화한 것이고, 갈보의 실제 의미는 요즘 식으로 하면
창녀 정도다. 어떤 버전에서는 "누나가 아니야!
화냥년이야!"라는 더 과격한 표현으로도 나온다. 물론 누나에게 하기에는 굉장한 폭언이기는 하나, 이 나이대의 유아동은 욕이 '나쁜 말'이라는 것만 알지 그 뜻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리고 인터넷도 없는 시대에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가 이런 욕을 잘도 배울 환경이라면 사실상 이웃 아니면 가족인데, 전자라고 해도 제제가 그런 말이나 배우도록 방치한 셈이고(제제가 비속어를 썼을 때 포르투가는 '그런 말은 쓰지 말고, 이 말을 써야 한단다'라고 점잖게 가르쳐준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후자라면 더욱 누가 누구를 혼내는지 답이 없는 상황.
[12]
작중 후반부에 밍기뉴가 꽃을 피우는데, 꽃이 피면 당연히 열매를 맺어 번식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단짝인 밍기뉴가 성장을 마쳤다는 것으로, 제제 역시 성숙하게 되었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는 셈.
[13]
이게 꽤나 기억에 남았는지 포르투가는 나중에 제제와 친해지고 나서 '아직도 커서 날 죽일 생각이니?'라고 넌지시 물어봤다.(...)
[14]
이 역시 마누엘의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인 것이, 파울루 등 주변의 다른 어른들의 경우 제제를 때릴 때 자기 감정에 못이겨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마누엘이 가한 체벌은 '아주 세게 때렸지만 딱 한대 라는, 즉 어떤 행동이 잘못된 행동임을 각인시키기 위한 교육적 체벌의 선을 넘지 않은 것. 본작이 출간된 1968년은 물론이고 작품 속 배경시대인 1920년대는
체벌이 당연시되던 시대, 즉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을 교정하기 위해서 체벌을 가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여기는 정서가 주류이던 시대였음을 생각하면 마누엘의 행동은 그 시대의 어른으로써는 적절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15]
아직 어리고 철없는 제제는 그저 재미있는 놀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까지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하고 무서운 장난이다.
[16]
마을 사람들이 제제를 보고 "너 혹시 파울루네 아들 아니냐?"라고 묻는 장면이 있다.
[17]
제제가 포르투가와의 대화 중에서 간접적으로 비속어를 언급할 때 포르투가는 '그 단어가 어떤 뜻인지 알고 쓰는가'를 확인한 후, 만약 몰랐다면 뜻을 알려주면서 쓰면 안 된다고 자상하게 알려주며, 만약 뜻을 알았다면 더더욱 써서는 안 된다고 확실히 당부했다.
[18]
산투 알레이슈(Santo Aleixo)의 공장 지배인으로 취업.
[19]
하필 포르투가는 제제가 아버지와 완전히 화해하기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덕분에 제제는 아버지가 나중에 사과하든 말든 아버지에 대한 재평가를 할 겨를 자체가 없어져버렸다.
[20]
사실 아동 학대로 점칠된 유년 시절을 감안하더라도 이 장난은 도를 넘은 장난이 맞았다. 까딱했으면 배 속의 아이가 유산될 수 있는 상황이니.
[21]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압박붕대로
복대처럼 허리에 감고다닌다고 한다.
[22]
제제는 다른 집의 빨랫줄을 끊는 장난을 자주 쳤고 얻어맞았는데, <햇빛사냥> 시점에서는 빨래가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서 절대 하지 않는 장난이라고 회고한다.
[23]
브라질 식으로는 잔지라로 읽는다.
[24]
제제가 장난으로 놀렸다고 빗자루의 손잡이 부분으로 머리를 때린다.
[25]
심지어 이 풍선의 재료인 색종이는 제제가 귀중히 여기던 딱지를 팔거나 해서 열심히 긁어모은 돈으로 산 거였다.
[26]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창녀 정도다.
[27]
막내 동생인 루이스는 이 모습을 보고 눈물을 터트렸다.
[28]
웬만해선 말로 조곤조곤 타이르려고 하고, 정말 심하다 싶을 땐 귀를 잡아당기는 정도다. 매는 물론이고 손찌검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29]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9살인 안토니우는 5살인 제제보다 체격도 훨씬 크고 힘도 훨씬 셀 것이다. 그런데 자신도 무서워서 상대하기 힘든 양아치를 상대로 같이 싸워달라는 것도 아니고 대신 싸우게 하고 자신은 숨어있었다는 것은,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비겁함이다.
[30]
물론 스트레스를 덜 받았을 때의 안토니우는 가난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제제에게 '돈이 필요하면 구두닦이라도 해서 직접 벌 수 있다'는 것을 따끔하게 가르쳐준 인물이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아 찌질해진 이후의 안토니우는 어떻게 하면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지' 제제에게 실습시켜준 꼴이 된 것이다.
[31]
이런 식으로 면죄부를 발부하기 시작하면 심지어 잔디라조차도 제제를 턱없이 의심해서 아픈 것도 믿지 않으려 했을 뿐, 정말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닭고기 수프라도 끓여줬다고 말할수도 있다.
[32]
사실 제제에겐 루이스 말고도 동생이 둘이나 더 있었다. 둘 다 어머니를 쏙 빼닮아서 여동생에겐 아라씨, 남동생에겐 주란디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고. 그 둘을 떠나보낸 후 태어난 아이가 바로 막내 루이스다. 그래서 제제가 루이스를 더 책임감을 가지고 돌봤던 것.
[33]
사실 제제가 노래 가사의 뜻은 잘 모르고 그냥 노래가 좋아서 같이 부른다는 묘사가 종종 나온다.
[34]
이때 과정이 상당히 과격한데 계산대를 박차고 나와 제제를 패던 비에의 멱살을 잡고 양쪽 뺨을
심벌즈 때리듯이 후드려 팼다고 한다. 빽의 위엄
[35]
이웃들도 심하다고 생각했지만 단순히 큰 잘못을 했다고 생각해서 방치했다.
[36]
그래도 막판엔 철이 든 모습도 나온다.
[37]
신구가 연기했다. 포르투가라는 별명은 극중 무도아 아저씨라고 부른다.
[38]
브라질의 심한 빈부격차와 열악한 빈민가의 사정은
파벨라와 같은 빈민가의 사례로도 유명하다.
[39]
포르투갈 북동부에 있는 지명.
[40]
망가라치바 기차는 단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를 움직일 뿐인 무인격의 강력한 힘의 상징처럼 등장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이 무자비한 힘과 그에 의한 죽음을 상징하는 소재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상기된 것처럼 삶에 절망한 제제가 '망가라치바에 뛰어들어 죽겠다', 즉 이 힘에 의한 죽음을 가장 고통없고 빠른 죽음으로 여기는 것이 좋은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