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5 18:49:17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동남 · 남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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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d Order | Victoria 3 버전

1. 개요2. 인도네시아 공화국
2.1. 인도네시아 전쟁2.2. 인도네시아 통일정부(중앙정부)
2.2.1. 동자와 임시정부2.2.2. 1지방군사령부/부킷 바리산2.2.3. 남술라웨시 비상정부
2.3. 인도네시아 공화국 자유정부
2.3.1. 인도네시아 이슬람국2.3.2. 인도네시아 공화국 자유정부 군사위원회2.3.3. 실리왕이 군사위원회2.3.4. 인민민주군2.3.5. 남술라웨시 게릴라부대2.3.6. 프르메스타 군사위원회
2.4. 욕야카르타 특별주(중립세력)
3. 타이 공화국4. 버마 연방5. 필리핀 제2공화국
5.1. 전필리핀 혁명 사회주의 공화국5.2. 자유 필리핀 공화국5.3. 제14군
6. 쇼난-말레이 군정부7. 말라야 항일연합전선8. 베트남 제국9. 베트민10. 캄푸치아 왕국11. 라오스 왕국12. 남방군정총감13. 인도 공화국14. 자유 인도 정부15. 네팔 왕국16. 부탄 자치주17. 아프가니스탄 왕국18. 변경주19. 칼라트 칸국20. 부탄21. 실론

1. 개요

미국과 일본의 대리전 국가가 셋(말라야, 필리핀, 인도네시아)이 있다. 사실상 초반부 미일 냉전 게임판.

2. 인도네시아 공화국

  • 공영권경제의존국
  • 집권이념: 권위적 개발주의(가부장주의) - 인도네시아 국민당-나사콤
  • {{{#!folding 국민정신
    • IKKC

실제로 상환액은 터무니없이 적으며 개발의 결실은 IKKC와 그 소유주에게 전적으로 축적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더 많이 변할수록, 더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5%
기타 수입(십억 달러 기준): +0.10
* 두 사람

이 말은 인도네시아 사회의 모든 계층에 적용되는 짧지만 총체적인 선언인 독립 선언문의 끝부분입니다. 수백만 인도네시아인의 정신과 의지는 대통령 수카르노와 부통령 모하맛 하타의 두 사람(뒤퉁갈)으로 대표됩니다. 냉철하고 국제적인 지식인 하타에 의해 완화된 기질의 불타는 시골뜨기 구세주 수카르노, 둘은 인도네시아를 위해 헌신하는 환상의 지도자 듀오를 형성합니다. 견고하고 깨지지 않는 유대는 세월마저도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굳건합니다.

아직은 말이죠.||
안정도: +10.00%
* 8개년 개발 계획

규모, 확실성, 가속. 이것이 주안다의 새로운 8개년 계획, 또는 더 공식적으로는 보편적 개발 계획의 신조입니다. 국가 주도의 중공업 확장 및 기반시설 메가프로젝트, 거대한 댐 및 웅장한 도로들이 모두 이 야심찬 계획에 포함되었습니다. 물론 자금은 일본에서 조달했습니다. 계획이 2년차에 들어서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현지 자원: +5%
건설 속도: +5.00%
GDP 성장률: +0.50%
}}}
  • {{{#!folding 플레이 요소
    • 민주주의를 당신의 기호에 맞게 이끄세요!
    • 세곳의 주요 권력 세력인 군대, SKN, 정치인과 영향력의 균형을 유지하세요.
    • 국민투표를 통해 수카르노의 권력을 공고하게 만드세요.
}}} }}}
  • {{{#!folding 주요 도시
    • 자카르타

도시 자체가... 독특합니다. "강국의 등대"이자 그 지역의 위대한 도시인 다소 발전된 국가는 굶주리고 궁핍한 나머지 국가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습니다. 나머지 국가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지 속에 있습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프로빈스 효과: 더위 소모 +10.00%, 조직력 회복 -5.00%||
  • 반둥

일본 군함과 병사들의 도착은 반둥 시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습니다. 도시는 빛과 지식의 번영하는 도시로 성장했고 네덜란드인들은 군도 전체에 알려진 대학과 건축물을 남겼습니다. 반둥 공과 대학의 졸업생들은 계속해서 그의 나라를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것으로 크게 재편할 것입니다.

오늘날 반둥은 치카푼둥 강 유역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도시인 서부 자바 주의 주도인 독립 시대에 그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프로빈스 효과: 더위 소모 +10.00%, 조직력 회복 -5.00%||
  • 욕야카르타

사람들의 역사를 묘사한 액자 사진인 이 곳은, 그럼에도 그 지평은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므라피 산 남쪽 경사면에 있는 이 보석에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프로빈스 효과: 더위 소모 +10.00%, 조직력 회복 -5.00%||
  • 세마랑

세마랑의 성공은 오늘날 인도네시아의 신생 국가에 여전히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할만한 중국 소수 민족의 지원을 받아 번화한 상업과 산업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무한한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미래가 무엇을 가져올지 궁금할 뿐입니다.

프로빈스 효과: 더위 소모 +10.00%, 조직력 회복 -5.00%||
  • 수라바야

네덜란드인의 추방과 독립의 시작과 함께 수라바야는 여전히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서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 섬이 가져다주는 풍요의 상징입니다.

프로빈스 효과: 더위 소모 +10.00%, 조직력 회복 -5.00%||
}}}

【도입부 - 인도네시아】
>폭정, 착취, 분열. 이것은 네덜란드가 행했던 전략이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약하게 유지하되 제일 중요한 것은 이익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3세기동안 인도네시아의 사람들은 제국주의의 군홧발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몸부림치며 자유를 부르짖는 아시아의 억압받은 사람들의 교향곡에 동참하였습니다.

1942년 3월 인도네시아에 일본 제국이 처음으로 상륙해서야 구원이 찾아 왔습니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해안가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가족에게는 쿠스노 소스로디하르조로, 친구들에게는 붕으로, 인도네시아 국민들에게는 영웅으로 불립니다. 수카르노의 기념비적인 권력 상승은 그의 카리스마와 국민에 대한 변함없는 헌신으로 이루어졌지만 서쪽의 악마가 진압된 지 약 20년 후 그의 지속적인 통제는 모두 인도네시아군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수카르노는 자국에서 전투를 벌이며 PKI의 공산주의자를 뿌리뽑고, 소수민족을 철저하게 억압하며 팔렘방에서 술자리를 즐기고 있습니다. 그의 국민들은 뭐라도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지만, 수카르노의 저녁엔 엄청난 양의 술과 고급요리가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붕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잃었다고도 하며, 일부는 그가 절대로 변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가 술과 음식을 통해 모든 친구들을 만들었듯이 그의 적도 엄청나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수카르노는 곧 가장 큰 위협이 바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독립으로!

지도자는 독립 영웅 수카르노. 몇 년 동안 공영권에 충성적이었지만 일본에서는 인도네시아 독립을 열렬하게 믿는 수카르노를 의심하고 있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내부에서도 모하맛 하타를 중심으로 불협화음이 생기고 있다. 모두들 공영권이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에 도움이 될 동안만 수카르노가 공영권에 충성을 바칠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이 때문에 대통령 선거를 대비하여 수카르노는 종교 교육을 강화하며 지지층들을 결집하며 연설하고, 선거에서 승리한 후 대통령의 권한을 늘리고 하타 세력을 숙청한다.

TT3 패치로 중점이 삭제되었다.

2.1. 인도네시아 전쟁

우리는 풍요로운 예속보다 빈곤한 독립을 원한다!

"불타는 태평양"

1965년 3월경 점점 심해져가는 수카르노의 독재정에 반발하여 인도네시아에서는 대규모 내전이 일어난다. 2분이 아닌 지역의 여러 군벌들이 팩션을 만들고 내전을 벌이는 것이 특징.

2.2. 인도네시아 통일정부(중앙정부)

  • 집권이념: 혁명적 민족주의(파시즘, 국민통일내각)

지도자는 수카르노. 수마트라 남부, 자바 일부(자카르타, 수라카르타), 보르네오 섬을 점유하고 있다.
한때 수카르노는 일본계 자산을 국유화하려는 시도로 인해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졌으나 곧이어 터진 인도네시아 내전은 일본과의 오월동주를 다시 타게 만들었다.

내전이 너무 오래 일어날 시 휘하 장군인 수하르토가 수카르노를 실각시키고 반군 지도자인 줄키플리 루비스와 협약을 맺어 양두정 체제의 정부를 수립하려 한다

2.2.1. 동자와 임시정부

  • 집권이념: 군사독재(전제주의)

지도자는 쑹코노. 수라바야 등의 동부 자바 지역을 점유하고 있다. 여전히 수카르노에 충성하고 있는 쑹코노는 지역 주지사의 친일 성향으로 민심이 이반되어 있는 열악한 상황이지만, 동부 자바에 주둔해 있는 강력한 해군이 그나마 생존에 위안이 되고 있다.

2.2.2. 1지방군사령부/부킷 바리산

  • 집권이념: 군사독재(전제주의)

지도자는 압둘 마납 루비스. 북수마트라 일부와 팔렘바에 남겨져 있는 일본군이 건설한 군사기지로 인해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중앙정부군이 수마트라와 자신의 지역을 연결하기를 바랄 뿐이다.

2.2.3. 남술라웨시 비상정부

  • 집권이념: 임시정부(술라웨시 연합 내각)

지도자는 안디 판그랑. 술라웨시 최대 도시인 마카사르를 포함한 술라웨시 섬 일부 지역을 점유하고 있는 이들은 극도로 포위되어 있는 형세로 인해 오직 수카르노의 구원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모하맛 유숩이 다시 중앙정부에 합류한 것이 희망.
마카사르가 함락되면 판그랑은 실종되고 모하맛 유숩이 이끄는 마카사르 군사위원회(군사독재)로 재편되어 잔여 세력들을 이끈다.

2.3. 인도네시아 공화국 자유정부

  • 집권이념: 임시정부(가부장주의, 자유 인도네시아 운동)
  • 집권이념: 과도민주주의(가부장주의, 자유 인도네시아 운동) - 내전 승리시
  • {{{#!folding 멸망 문구
    하타는 그의 집에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하지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도네시아에 대한 그의 꿈은 결코 실현되지 않습니다.

    }}}

지도자는 모하맛 하타. 수마트라 중남부 일대를 점령하고 있다. 수카르노의 독재정에 반발을 한 정치인 하타가 자유주의자, 이슬람주의자, 공산주의자, 반수카르노파 장군들의 얼굴마담으로 반군을 이끌게 되었다.
만일 내전이 너무 오래 이어지고 수카르노가 사임하게 된다면 하타 또한 정부의 통제력을 잃고 줄키플리 루비스에게 정권을 넘겨준 이후 인도네시아를 떠나 망명을 하게 된다.

2.3.1. 인도네시아 이슬람국

  • 집권이념: 귀족적 보수주의(전제주의, 다룰 이슬람)
  • {{{#!folding 멸망 문구
    알라께서 낙원에서 저들을 보우하시길.}}}

지도자는 다우드 브르에. 아체를 장악한 이슬람, 분권주의자 세력이다.

2.3.2. 인도네시아 공화국 자유정부 군사위원회

  • 집권이념: 군사독재(전제주의, 인도네시아 공화국 군사위원회)
  • {{{#!folding 멸망 문구
    강철과 네이팜탄이 수마트라 고지대를 불태우면서 군벌이 지니던 불굴의 정신이 무너졌다.}}}

지도자는 아흐마드 후세인. 수마트라 중부를 점유한 세력으로, 중앙정부 내의 반수카르노 세력의 수장이며 하타를 억류하여 자유정부의 수장으로 세운 인물도 후세인이다.

2.3.3. 실리왕이 군사위원회

  • 집권이념: 군사독재(전제주의, 실리왕이 군사위원회)
  • {{{#!folding 멸망 문구
    실리왕이의 대왕이 파라항간에서 울부짖는 동안, 자와 서부의 산들은 침묵을 지켰다.}}}

지도자는 줄키플리 루비스. 동자와 일대의 실리왕이 사단을 이끄는 루비스는 인도네시아 내전에서 유일하게 자유정부 소속으로 포위되어 있는 세력이다. 루비스는 잠재적으로 인도네시아 내전을 종식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도 있다.

2.3.4. 인민민주군

  • 집권이념: 혁명전선(사회주의, 인민민주군-인민민주전선)
  • {{{#!folding 멸망 문구
    혁명의 횃불이 꺼졌습니다. 아마도 이번엔 영원할 것입니다.}}}

지도자는 아미르 샤리푸딘. 수라카르타 등의 동자와 일부를 점유하는 이들은 인도네시아 자유군 중 사회주의 세력을 대변한다.

2.3.5. 남술라웨시 게릴라부대

  • 집권이념: 종교근본주의(국수주의, 남술라웨시 게릴라부대)
  • {{{#!folding 멸망 문구
    카하르는 자신의 방식대로 죽었다. 흔들리지 않고, 그저 알라의 말씀에 헌신해오며 말이다.}}}

지도자는 압둘 카하르 무자카르. 남술라웨시 일대를 이끄는 반정부 이슬람주의 조직인 이들은 프르메스타에 비해 OFN의 지원을 박기 어려운 위치로 인해 극히 취약한 상황이다.

2.3.6. 프르메스타 군사위원회

  • 집권이념: 군사독재(전제주의, 프르메스타 군사위원회)

지도자는 벤체 수무알. 서파푸아(동파푸아는 일본이 점령)와 순다 열도, 티모르 섬과 북술라웨시등을 장악한 이들은 OFN의 지원을 가장 받기 쉬운 입지로 인해 미국, 호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2.4. 욕야카르타 특별주(중립세력)

  • 집권이념: 사회민족주의(가부장주의, 인도네시아 국민당-국민단결파)

지도자는 하멩쿠부워노 9세. 욕야카르타 술탄국이라는 특별한 입지를 이용해 일본, 수카르노 정권에도 대항해온 이들은 특별한 지위를 이용해서 내전에서 완전한 중립을 선언했다.

3. 타이 공화국

업데이트 예고[추후 결정]
  • 공영권독립회원국
  • 집권이념: 혁명적 민족주의(파시즘, 인민당)
  • {{{#!folding 국민정신
    • 타이 르네상스

오늘날 태국은 현대적 국가입니다. 급격히 성장하는 경제, 막강한 군대와 함께 황금기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이 번영의 시대는 피와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국가적 탄압의 희생자들 위에 세워졌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50
안정도: +15.00%
전쟁 지지도: +20.00%
* 밀리터리 룰렛

소이 랏차끄루와 싸판콰이 파벌 사이의 경쟁은 고조되고 무질서해졌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태국을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놓고 경쟁하는 대담한 갈등으로 번졌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50
사단 회복률: -20.0%
계획 수립 속도: -30.0%
최대 계획 지수 (또는 최대 계획 수치): -30.0%
매월 행정 효율 변화: -1.00
* 힘차게 흐르는 물, 밝은 조명 및 포장된 도로
사릿 타나랏이 주장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그의 경제개발 위원회가 추진됨에 따라 태국은 힘차게 흐르는 물, 밝은 조명 및 포장된 도로의 국가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1960년에 시작된 5개년 국가 경제개발 계획은 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정부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번영을 약속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대중에게 주어질 것인지 아니면 정부와 유착한 기득권들에게만 주어질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건설 속도: +10.00%
GDP 성장률: +0.10%
소비재 생산 요인: +30.0%
* 방향을 잃은 혁명
1932년 혁명은 태국을 시암 군주제에서 해방시켰고 국가의 방향을 국민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30주년을 맞이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며 원수가 그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것은 공영권 내에서 민주주의, 평등, 반제국주의의 진정한 횃불인가, 아니면 지식인들의 과두정치이며 권력에 굶주린 폭군과 파시스트의 영토인가? 앞으로 또 3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마도 원수조차도 모를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20.00%
}}}
  • {{{#!folding 주요 도시
    • 방콕

지도자는 쁠랙 피분송크람.

TT 업데이트에서 공화국으로 설정이 변경되었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국내적으로 오른 명성을 통해 폐지한 듯 한데, 왕실 폐지로 인해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겠다고 공산 반군 토벌을 명목으로 라오스/캄보디아를 침공하는 '이싸라 작전'을 벌이다 일본의 개입으로 중지되기도 하는 등 피분의 정권은 점차 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피분 사후 국회에서 후임 대통령을 위한 지명이 시작된다. 의회는 피분의 측근이었던 상 파타노타이를 지명하였으나 국군 주류와는 아웃사이더뻘인 군부의 불만으로 인해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다. 다만 쿠데타를 진압한다면 정식 대통령으로 인준받고 국민생디칼리즘 이념의 루트로 진행된다

쿠데타 루트는 총 3갈래로 피분 정권보다 더욱 잔혹한 군사정권인 타놈 끼띠까쫀, 해군 장성으로 친민주주의적 과도기를 이끄는 타완 탐롱나와사왓, 피분 정권과 가장 성격이 유사한 차띠차이 춘하완 루트로 나뉘어진다.

타놈 루트로 진행할 시엔 군부 내에서도 군사정권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면서 크릿 시와랏을 중심으로 하는 해군 장성들이 행사에 참석한 타완을 납치하고 쿠데타(짜오 프라야 강 전투)를 일으키려 하는데, 진압에 실패할 시엔 타완 정권의 군부 수장 쁘라팟 차루사티엔의 독재정권이, 성공 시에는 크릿 시와랏이 3년간의 임시정권을 이끈 후 끄리앙삭 참마난에게 정권을 넘겨 주고 부분적 민주화가 이루어진다.

찻차이 루트는 석유위기에서 루트 분기점이 생성되며, 촉발된 반외세 시위대가 차이나타운등을 습격하면서(2차 야오와랏 거리 전투) 찻차이가 시위대와의 협상을 진행하게 되고, 협상에 성공할 시에는 집권당인 인민당을 해산하고 국민발전당을 창당해 개발주의 체제로 돌입, 실패할 시에는 임시/영구 계엄령이 발동되며 부분적으로 찻차이가 측근인 쁘라마른 아디렉산의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타완 루트는 자유 태국 운동 등 반군 세력들과의 협상(방콕 회담)을 통해 망명세력의 귀환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이루어진 총선을 통해 민주화가 이뤄진다. 민주화 후 선거에서 쁘리디 파놈용, 쿠앙 아카이웡[1], 쁘라마른 아디렉산등이 집권한다. 이어 1972년 선거에서는 파놈용의 경제 사상을 잇는 수파 시리마논, 뿌아이 응파꼰, 자유화 세력의 후보인 세니 쁘라못, 레카 아카이웡, 큭릿 쁘라못이, 우파 세력을 대변하는 쁘라마른 아디렉산, 탐마눈 티안응은 등이 집권할 수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방콕 회담이 실패하거나 민주화 이후 태국 내 정치상황이 악화되어 검은 2월 사건이 발생하면 군부 주도의 쿠데타가 일어나서 찰랏 히란시리, 싱앗 찰로유등의 군부 세력이 재집권하여 좌파 세력에 대한 숙청이 벌어진다.

TNO1 시점에서는 태국의 왕정복귀는 이루어지지 않으나, 민주화 루트 일부에서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정치세력이 존재하고 복고에 대한 언급이 이뤄지기에 부분적으로 왕정 복고 루트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4. 버마 연방

  • 공영권경제의존국
  • 집권이념: 사회민족주의(가부장주의, 대버마협회 - 주류)
  • {{{#!folding 국민정신
    • 1953년 헌법의 정지
      1953년 헌법은 종교의 자유, 언어의 자유, 지역 자치권이 존중되는 다원주의적 헌법으로, 버마의 새로운 시작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선포 이후 몇 년간은 육군과 함께 양피지에 적힌 글자 쪼가리에 침을 뱉었을 뿐입니다. 바로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지역의회를 장악하고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정지시키는 것입니다. 양곤의 지도자들은 국가가 안전해졌을 때 헌법의 복구를 선포함으로써 끊임없이 사람들의 외침을 빗나가게 합니다. 유일한 질문은, 그것이 언제일까요?

      정치력 획득: -15%
      안정도: +10.00%
      사단 공격: +5.0%
      헌법이 필요 이상으로 정지되면 아웅 산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 폭발할 것입니다!
    • 영원한 갈등의 연합
      태국인과 중국인들이 북동쪽에서 산의 계곡으로 내려오면서 우리나라에 가져온 것은 갈등 뿐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카렌 반역자들이 조국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었을 때 가져온 것은 더 많은 분쟁과 비참함뿐이었습니다. 만달레이 너머 참호에 있는 우리 군대는 집을 그리워하며, 꿈만 꿀 뿐입니다. 날마다 점점 더 많은 비애국적 요소들이 힘을 얻고 있으며 이미 우리나라에 닥친 어두운 날에 맞서서 폭풍이 닥치고 있습니다.

      사단 속도: -10.00%
      공장 생산량: -10.00%
      훈련 시간: +-7.00%
      북동부의 반군이 적시에 처리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연방의 실패를 목격하고 연방의 통치를 거부할 것입니다.
    • 희미해지는 아버지의 별
      우리의 전설적인 장군은 연방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온 마음과 삶을 바친 진정한 투사였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그가 평생 동안 희생하고 싸워온 것을 파괴하려는 요소인 부패하고, 버려지고, 반역적인 요소들의 표적이 되었으며 위협을 받고 있다고 믿습니다. 음모가 폭로되면 그의 통치의 정통성에 도전하려는 쥐들은 극도의 편견을 가지고 쫓겨날 것입니다.

      육군 경험치 획득량: -5.0%
      사단 조직력: -5.0%
      전쟁 지지도: -3.00%
      아웅 산의 정통성이 너무 낮아지면 육군은 아웅 산 장군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 육 마일의 정부
      아웅 산의 정부는 혁명적이기는 하지만, 랑군 시로부터 6마일 이상은 통제하지 못합니다. 종교단체, 지주 및 정권의 다른 반대자들은 명목상의 영역을 넘어서는 국가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공모합니다. 그러나 아웅 산은 현 상황이 끝나길 기다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대통령궁 홀에서 DAA는 자체적으로 급진적 재건 계획을 세웁니다. 아웅 산은 이것이 버마의 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라 믿지만, 다른 이들은 그리 믿지 않는 듯 합니다.

      건설 속도: +5.00%
      연구 속도: +7.00%
      민간공장 수리 속도: +15.00%
}}} }}} }}}
지도자는 아웅 산. 1952년 버마국 초대 대통령이던 바 모[2]의 정권을 네 윈, 보 흐무 아웅이 무혈쿠데타를 통해 탈취하였다. 하지만 독립 이후 지방 반군세력들을 통제하지 못하였고 일본의 통제가 여전한 상황이라 버마 정부는 '6 마일의 정부'라는 멸칭으로 불리며, 국부 아웅 산의 후광도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소수 민족이 거주하는( 친족, 라카인족, 카친족, 샨족, 카렌족) 등의 영토가 죄다 해당 민족 국가로의 영유권 주장이 걸려있다. 민족 통제와 관련된 요소가 있는 것으로 추정.

5. 필리핀 제2공화국

티저 공개
  • 공영권완전의존국
  • 집권이념:통제민주주의(가부장주의) - 칼리바피[3]
  • {{{#!folding 국민정신
    • 상류층의 민주주의
    • 휘장의 독재
    • 대규모 강도
}}}
  • {{{#!folding 주요 도시
    • 마닐라

모자이크를 형성하여 도시를 과거로의 창으로 만들었으며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완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광경의 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지난 전쟁을 상기시키는 것이지만, 그들을 찾으려면 눈을 가늘게 뜨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전쟁이 가져온 파괴 위에 겹겹이 쌓인 일본 점령의 영향. 고층 건물, 사원, 항성 폭발 깃발이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필리핀은 변함이 없는 나라이고 마닐라라는 도시는 이러한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프로빈스 효과: 더위 소모 +10.00%, 조직력 회복 -5.00%||}}}

지도자는 호세 율로. 게임 시작부터. 2공화국과, 카를로스 가르시아 및 잔당 미군 윈델 페어티히[4]의 연합 필리핀 자유 공화국, 루이스 타루크의 전필리핀 혁명 사회주의 공화국(ASRFR)으로 세력이 분리된 채 내전을 벌이고 있다. 2공화국이 승리할 경우에는 호세 율로가 암살당하여 후임을 구축하거나 실패시 일본의 군사개입이 일어난다.

필리핀에서 2공화국이 축출당하면 일본은 다시 한 번 14군을 재편성해서 필리핀을 침공하는데, 자유 공화국, ASRFR에 의해 격퇴되거나, AFRSR을 축출하더라도 중부 군도에서 진군이 막힐 시 희귀한 확률로 2분할 휴전이 이뤄지기도 한다.

5.1. 전필리핀 혁명 사회주의 공화국

  • 집권이념: 혁명전선(사회주의, 필리핀 공산당 - 통일전선파)
  • {{{#!folding 국민정신
}}}
루손 섬 북부에 주둔중인 루이스 타루크가 이끄는 사회주의 세력. 성 패트릭의 날 당시 공세가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기존 서기장 호세 라바가 실각하고 세워진 루이스 타루크의 정권은 필리핀 특유의 봉건적 환경으로 인해 혁명의 이상을 잃어가고 있다고 비판받고 있기도 하다..

남쪽의 자유 필리핀 공화국과 잔당 미군들과는 암묵적으로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는데, 2공화국을 무너뜨린 이후 자유 필리핀 공화국과 타협하면 필리핀 연립정부가 수립되고, 자유 필리핀 공화국과 타협하지 않고 통일할 시 타루크는 필리핀 전역에 광범위한 숙청을 시도한다.

반일 지방토호 세력들 중에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같은 우익 세력도 합류해 있는데, 위의 숙청과정에서 마르코스가 역으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우익 중심의 중립 필리핀을 형성시킬수도 있다.

5.2. 자유 필리핀 공화국

  • 집권이념: 과두정(국민당, 가부장주의)
  • {{{#!folding 국민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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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lding 멸망 문구
나는 내 조국 위로 여명이 밝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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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대전에 패배하고 후퇴하던 본대를 따라잡지 못 하고 필리핀에 남게 된 주필미군의 패잔병 세력이 아카기 조약을 거부하고 잔존 세력과 함께 구성한 남부 일대의 구축되어 있는 세력. 지도자는 카를로스 가르시아. 자유 공화국을 지지하는 유력 지방토호들과, 웬델 페어티히 등 잔존 미군 세력이 연합하여 만다나오 섬과 중부 군도를 점거하고 있다.

토호들의 지지를 받는 걸 고려하면 유추 가능하듯 정권이 비교적 부패하고 봉건적인 과두정 체제로 굴러가고 있는데, 전후 미국에 의해 자치령 체제를 복원할지,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필리핀의 고유한 길을 걸어갈 지 선택하게 된다.

원래 필리핀 토착 세력이 아닌 페어티히의 주필미군이 20년간 필리핀에 고립되어 일본군과 게릴라전을 이어가며 생존하고 있다(..)는 괴상한 설정이었는데, 개발팀도 너무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는지 Silicon Dreams 업데이트에서 가르시아의 친미 토착 세력으로 바뀌었다. 미군 세력이 합류해 있는 설정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나 가르시아와 페어티히의 관계는 무척 험악하고, 가르시아가 의도적으로 페어티히를 한직으로 몰아넣는 등의 갈등을 벌이고 있다.

5.3. 제14군

  • 집권이념: 초군국주의(국수주의, 제14군 사령부)
  • {{{#!folding 국민정신
}}}

지도자는 타카야마 시노부.

필리핀 제2공화국이 발린타왁 전격전에서 패배하고 일본이 제14군을 다시 재편성하여 보복침공을 감행하면서 등장한다.

필리핀을 탈환하면 필리핀 제도 임시정부로 국명이 바뀐다.

6. 쇼난-말레이 군정부


티저 공개
  • 공영권일본 군사행정부
  • 집권이념: 식민정부(전제주의, 제25군 사령부)
  • {{{#!folding 국민정신
    • 제25군의 고향
최소한, 서류상에는 그렇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25군은 과거의 모습의 껍데기에 불과하며, 10년 동안 이어진 반군과의 끊임없는 싸움은, 한때 자랑스러웠던 군대를 인력, 식량, 장비가 부족한 구대로 규모를 축소시켰습니다. 이들을 유지시키는 것은 일본 본토에서의 지원과 적의 피로뿐입니다. 좋든 나쁘든 25군은 승리해야 합니다. 또 다른 패배는 관에 마지막 못을 찍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 속도: -20.00%
사단 조직력: -10.0%
항복 한계치: +100.00%
사단 공격: -20.0%
* 분열된 협력 네트워크
말레이 저항군과의 오랜 분쟁은 우리 동맹 네트워크를 떠나게 만들었고, 초기의 상황보다 무리한 일을 더 벌이고, 더 급진화되고, 갈기갈기 찢겨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정보원들은 이중 스파이로 변했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반란 동조자로 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권력에 대한 욕구가 뚜렷한 우리의 "충성적인" 협력자들 또한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우리가 가진 것들이며, 좋건 나쁘건 그들은 야마모토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30
안정도: -15.00%
* 욱일의 풍요
일본의 위성국가로서의 쇼난의 위치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이끌어 냈으며, 후자의 두드러진 예는 자이바츠로 알려진 일본 재벌의 경제적 지배입니다. 자이바츠에 소속된 가난한 말라야 노동자들은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오랜 시간 동안 급여를 거의 받지 않고 일하고 있으며, 효율적인 노예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말라야는 공영권의 별으로, 밝게 빛나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란군을 완전히 분쇄하는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0
건설 속도: +15.00%
생산 효율 성장: +10.00%
* 마라이 의용군 보조대
우리 정권의 동조자들과 범아시아주의를 신봉하는 지역 빈병대들이 여전히 말라야 내에 존재하고 있으며, 비뚤어진 반군들과 그들의 서양 주인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상황에서 그들의 얇은 고개를 끄덕이는 수준으로 보답받을 것이며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해 주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25군의 빈약한 상태는 총을 들고 싸울 수 있는 모든 사람이 환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핵심 인력: +3.0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
보급 소비량: -10.0%
육군 조직력 회복: -3.00%
}}}
  • {{{#!folding 주요 도시
    • 쿠알라룸푸르
      한때 중국인과 말레이인 주석 광부들의 작은 마을이었던 쿠알라룸푸르는 1857년에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으며 나중에 영국 식민 통치권에 의해 지역 수도로 발전했습니다. 이 도시는 20세기 초에 세랑고르 고무 붐의 도래와 함께 빠르게 성장했으며 현재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주요 산업 허브이자 공식 정부 아래 존재하는 쿠알라룸푸르는 20년 간의 일본 군사 통치 기간 동안 핵심 전략 지점이자 착취의 심장이었습니다.
    • 쇼난도

지도자는 제25군 사령관 야마모토 모이치로.

게임 시작부터 친펑이 일으킨 반란군과 전쟁중이다. 반군 세력이 승리할 경우 쇼난토(싱가포르)만은 지배력을 유지하지만 쇼난토 군정부가되고 지도자도 구로사와 다케오로 바뀐다. 반면 반군이 우세를 점하되 완전히 승리하지 못할경우 싱가포르랑 조호르만 유지하여 조호르 술탄국이 된다. 내전에서 승리할 시에는 선거가 개최되어 부르나후딘 알 헬미, 다토 온 자파르, 사이드 온 알바르등이 집권한다. 만일 조호르 술탄국 체제로 정권이 이어지면 1970년경 통제력이 약화되어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철수하게 될 시 북쪽에 통합투표를 하기도 한다.

7. 말라야 항일연합전선

  • 집권이념: 마오쩌둥 사상(공산주의, 말라야 항일연합전선 - 말라야 공산당)
  • {{{#!folding 국민정신
    • 암울한 기반시설
      욱일의 압제에 대한 오랜 저항은 우리의 고향을 파괴하고, 보급을 한계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친일파 변절자들과의 술래잡기는 우리의 결의를 굳혔으나, 우리의 땅과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말라야 항일연합전선에 투자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 투자일 따름입니다.

      사단 속도: -20.00%
      사단 조직력: -10.0%
      사단 공격: -20.00%
    • 말라야 항일연합전선

우리에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수색: +10.0%
사단 공격: +5.0
사단 방어: -5.0%
* 시골로 몰리다

최악은 기껏해야 죽음뿐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80
안정도: -15.00%
생산 효율 한도: -30.00%
충원률:* 나소 작전
바다를 건너, 우리의 얼굴마담과 대표들이 지원과 물자를 위하여 일본의 경쟁국인 미국에 접근하였습니다. 일본에 대한 10년이라는 긴 싸움은 제자리걸음이 되었고, 10년을 더 보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말라야를 완전히 탈환하면 미국의 물자와 총이 넘처나고, 안전이 보장될 것입니다.
비핵심 인력: +2.00%
징병 가능 인구: 2%
육군 조직력 회복: +20.00%
매주 안정도: +1.00%
}}}
친펑[5]( 마오쩌둥 사상)이 주도하여 일으킨 공산계열 저항군이었지만, 내전 도중 온건 사회주의(인민전선) 계열인 아흐맛 부스타맘, 보수주의(가부장적 보수주의) 성향 툰 압둘 라작[6] 등 광범위한 반일 세력이 결집하였으며, 미국과 인도의 지원을 받고 있다. 내전을 이기면 선거를 개최하여 위의 2가지 정권이 설립될수 있다.

야스다 위기까지 내전이 이어질 경우엔 휴전이 되면서 나라가 완전히 멸망하진 않지만, 친펑이 내부반란을 진압한 이후 권위적인 공산국가로 변모하거나, 국토방위후비군단의 예읍 마히딘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툰 후세인 온에게 민정을 이양해서 우익 정권을 세우게 된다.

8. 베트남 제국

업뎃 예고[추후 결정]
  • 공영권완전의존국
  • 집권이념: 가부장적 보수주의(보수주의, 베트남 국민당전선 - 기술관료파)
  • {{{#!folding 국민정신
    • 베트남 독립동맹회
      모든 세계의 지도는 베트남 제국 하의 정부가 후에 정부의 영토 아래 통합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시골에 발을 들이면 그곳엔 경찰도, 대일본 제국 육군도 없으며 대신 그곳엔 공산 베트남 독립동맹회 즉 베트민 순찰 병력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1941년 프랑스를 상대로 베트남 독립을 위한 싸움을 시작하여, 이제 표적을 베트남 괴뢰정부와 주 베트남 주둔 일본군으로 바꿨습니다. 호치민과 쯔엉찐의 카리스마 아래 베트남은 전국 각지에서 지지, 국경을 넘어서는 중국 국민혁명군 잔당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1950년대 이후 이들의 활동은 점점 잦아들고 있으나, 이들은 단 한순간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단 하나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습니다.

      일일 정치력 획득: -0.50%
      안정도: -30.0%
      매일 공산주의 지지도: +0.10%
    • 독립의 허상
      대동아전쟁이 종결되면서 베트남은 프랑스의 굴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유럽 주인이 아시아의 주인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베트남의 경제, 군사, 내정 모두 통제가 불가능하며 이를 일본이 조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법학자들은 프랑스 치하의 인도차이나 연방이 기술적으로 해체된 적이 없다는 사실마저 발견했습니다...

      일일 정치력 회득: -0.50%
      건설 속도: -15.00%
      생산 효율성 성장: -20.00%
      연간 GDP 성장 요인:-25,00%
      GDP 대비 생산 단위 비율 변동치: -5,00%
      매일 농업방법 변화: +0.01
      매일 산업 장비 변화: -0.01
      매일 산업 경험 변화: -0.01
    • 흔들리는 지배층
      대동아전쟁 이후 도쿄가 베트남 국민전선들의 기술관료를 지도자로 임명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많은 일을 제대로 해낼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1961년 4호작전이 실패로 끝나고 그에 따른 38군-쩐반쯔엉정부 사이의 갈등은 정치적 기득권들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불만을 표면화하였습니다. 쩐반쯔엉 총리가 사임한 이후, 부응옥아인 전 보건부 장관이 임시 총리로 임명되었으나 그의 정부는 베트남 국민전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정부의 각 파벌들이 후계자를 둘러싸고 싸우는 가운데, 베트민이 다음 행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건설 속도: -0.50
    • 새로운 국면
      1947년, 명호작전을 통해 프랑스의 식민지배가 무너진 이후, 베트남 국방군의 재건은 모든 베트남 정부에 있어 최우선적 정치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베트민의 위협이 줄어들면서 일본은 그러한 움직임을 저지하였습니다. 그러나 1960년 4호작전의 실패로 인해 츠치하시 유이쓰 총독은 마침내 우리들에게 베트남군의 잠정적 확대를 진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아낌없는 지원을 유지하면서도 이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는것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사단 조직력: -20.0%
      사단 공격: -15,0%
      훈련 시간: -10.00
      매일 지휘력 획득 증가치: -25
      매월 군전문성 변화: +0.10
}}}
  • {{{#!folding 주요 도시
    • 하노이

프로빈스 효과: 더위 소모 +10.00%, 조직력 회복 -5.00%||
  • 후에

프로빈스 효과: 더위 적응도 -5.00%, 조직력 회복 -5.00%||
  • 사이공

프로빈스 효과: 더위 적응도 -5.00%, 조직력 회복 -10.00%||}}}
보대제가 다스리는 일본의 괴뢰국. 1960년 베트민 세력을 소탕하는 작전인 4호작전이 실패로 끝나면서 쩐반흐엉 정부가 무너지고, 현 지도자인 부응옥아인도 정권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이에 베트남 괴뢰정권에서의 권력투쟁을 통해 응오딘지엠, 웅우옌푹민득, 쯔엉뜨아인 후보자가 권력투쟁을 벌여 집권하게 된다.

베트민에게 밀리면 응우옌카인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한다.

업데이트 전에는 호찌민이 공산혁명을 일으켰을 시에만 제정이 폐지되었지만 현재는 웅우옌푹민득의 왕당파 세력을 제외하면 게임 시작 후 몇 년이 지나 무조건 제정이 폐지되고 베트남 공화국으로 전환된다. 현실에서도 대표적 친불 앞잡이로서 민중들의 지지도가 바닥이었던지라 응오딘지엠이 1955년 국민투표를 통해 제정을 폐지해버렸는데 이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베트민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1971년 경에 베트남 전역이 베트민의 손에 들어간다.

9. 베트민

  • 집권이념: 혁명전선(사회주의 - 베트민)
  • {{{#!folding 국민정신
    • 20년간의 항쟁
      베트민은 이 시점에서 거의 20년간 활동해 왔으며 그 기간 동안 베트남 최고의 항일 저항 조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분산시킨 일본인들의 최악의 상황을 견뎌낸 중국 동지들보다도 오래 버텼습니다. 베트민은 연속적인 일본의 공격을 격퇴하고 태국의 야만성을 견뎌냈으며, 여전히 인도차이나 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조직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이 인도차이나 반도에 남아있는 한 베트민은 앞으로도 20년 더 지속될 것입니다.

      생산 효율 성장: +5.00%
      사단 방어: +10.0%
    • 랑선에서의 승리
      베트민은 예젠잉의 도움으로 보응우옌잡이 고안한 여름-가을 국경 작전으로 일본에 대한 첫 성공적 공세를 해냈습니다. 몇 주만에 베트민 부대는 38군 제5사단을 격파하여 랑선 시를 점령하고 홍가이로 퇴각했습니다. 이 놀라운 승리는 일본과 베트남 국민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고, 이들은 위기를 처리하지 못한 제국 정부에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혼란에 빠진 동안 베트민은 이미 세력을 확장하고 일본과 베트남 제국을 더욱 악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사단 조직력: +5.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3%
      매주 안정도: +1.00%
      사단 공격: +5.0%
    • 북쪽에서 온 동지들
      중국은 일본에게 완패했지만, 중국인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국민혁명군 잔당,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신4로군, 신8로군은 운남과 광서로 남하하여 베트민과 접촉했습니다. 베트민의 입장에서 전문 지식과 군사력을 가진 이들은 베트남 투쟁에 있어 필요한 자들이였기에 베트민은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간의 협력이 엄청난 시너지를 내고 있음에도, 망명자들이 모국으로 복귀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그 효과는 곧 사라져버릴 지도 모릅니다...

      지휘관 경험치 얻음: +3.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
}}}
지도자는 호치민. 호치민이 사망하면 쯔엉찐이 후임 지도자가 된다. 2차세계대전 때 부터 20년동안 베트남에서 항일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도자는 현실처럼 호치민이며 호치민은 베트남인들을 결집시키고 베트민을 구성했다. 중일전쟁 패전 이후 베트남으로 망명한 국민당 및 중국공산당 잔당의 도움을 받아 랑선에서 베트남 제국군과 일본군을 크게 물리치고 베트남 북부 지방에 근거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10. 캄푸치아 왕국


  • 공영권완전의존국
  • 집권이념: 반-입헌군주제(가부장주의 - 평민공동사회-시아누크파)
  • 국가정신 없음

지도자는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이란 신분으로서 정치적 활동에 제약이 걸린 시아누크는 1955년 스스로 양위를 선언하고 평민공동사회라는 정치단체를 형성하여 캄보디아의 정계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사실상의 독재정치를 벌이고 있다.

지역 내 반군으로는 손응옥탄이 이끄는 공화파 민족주의 진영을 크메르 세레이와 공산주의 세력 자유 크메르, 투 사뭇이 이끄는 사회주의 세력 캄푸치아 인민혁명당 등이 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한편 정계 내에선 군부를 주도하는 론 놀이 일본의 지원을 받아 은밀히 쿠데타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1965년과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쳐 시아누크의 집권은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왕정이 폐지되고 베트남에서 베트민이 승리하면 캄보디아 역시 확률에 따라 투 사뭇의 캄푸치아 인민혁명당이 집권하며 공산화될 수 있다. 다만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공산화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11. 라오스 왕국

  • 공영권완전의존국
  • 집권이념: 가부장주의(꾸 아파이 정부)
  • 국가정신 없음

지도자는 꾸 아파이. 1959년까지는 왕족인 펫사라트 라타나봉사가 총리였으며 펫사라트의 사망 이후 태국에 부역 혐의[7]가 없는 중립적 정치인인 꾸 아파이를 총리로 내세우고 1962년 선거를 개최시키기로 예정되어 있다.

1962년 선거에서는 펫사라트의 동생이자 자유주의자 수완나 푸마가 이끄는 국민진보당, 보수파 푸이 사니니꼰이 이끄는 독립당, 펫사라트의 이복동생이자 좌익[8] 수파누봉이 이끄는 라오 애국전선이 경쟁을 벌이고 연정을 세우게 된다.

펫사라트의 자유주의적 성향 덕분에 공영권 국가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뿌리깊게 박혀 있는 상황. 흥미롭게도 라오스 정계는 우파 세력이 탈공영권적인 성향을 보이고 좌익 세력들이 친공영권 성향인데다 지도부가 푸마, 수파누봉같은 왕족이기 때문에[9] 일본 또한 국민진보당, 라오 애국전선의 집권을 더욱 선호하려 하는 편이다. 이때문에 공영권 내에서 민족 공산주의 국가가 등장하는 다소 이색적인 모습도 볼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골든 트라이앵글 지대에서 일어나는 아편 밀매 이권의 문제로 인해 국민당 잔당들과 교전하는 아편 전쟁이 발발하기도 한다. 문제는, 해당 교전지대가 자국의 영토가 아닌 버마, 태국 영토에서의 싸움이라는 것. 이 때문에 부분적으로 양국이 개입을 시도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아편 밀매는 위의 협력정부를 이끌던 노사반이 라오스 망명정부에 전향하기 전까지 군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거래를 시작한 것이 시초인데, 라오스 정부에 전향한 이후 노사반이 군부로 들어가서 군부 주도의 아편밀매가 이어지게 된다. 아편전쟁의 승패 유무에 따라 노사반의 쿠데타 집권 경로도 존재한다. 또한 쿠데타의 유무에 따라 라오스의 왕정 폐지 유무도 결정지어진다.

해당 설정은 라오스 출신 인물이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2. 남방군정총감


  • 공영권일본 군사행정부
  • 집권이념: 식민정부(전제주의 - 제37군 사령부)
  • {{{#!folding 국민정신
    • 제37군의 본거지

56독립성여단과 기독립혼성여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37군은 공영권의 다른 군대에 비해 빈약한 규모이지만, 지금까지 쌓아 온 귀중한 전투 경험을 통해 부족한 실력으로 만회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37군 없이 북보르네오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37군이 없다면 일본은 향신료 제도의 유일한 직항지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핵심 영토에서 사단 공격: +5.0%
핵심 영토에서 사단 방어: +5.0%
* 사라왁 독립운동

캔버라 외곽 어딘가에서, 사라왁 왕국의 마지막 라자 마이너 브룩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DFN 지도부와 북보르네오의 독립 세력과 연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유능한 망명정부가 보르네오에서 일본의 이익에 위협을 이어가는 한, 규신과 인근 영토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정도: -10.00%
* 매우 부족한 자금

하지만 명예로운 장군 바바 마사오는 그런 상황에서 최대한의 수완을 발휘하며, 분기마다 대본영에 예산의 증액을 위한 로비를 시도합니다. 그럼에도, 행정부가 절약에서 벗어나 최상의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엔화가 필요해 보입니다...||
사단 조직력: -25.0%
연구 속도: -50.00%
최대 계획: -25.0%
}}}
일본 군부가 석유밭이자 전략적 요충지인 보르네오 섬에 박아넣은 영지. 지도자는 제37군 지휘관인 바바 마사오[10]. 타카기 루트에서 조사를 받고 마사오가 소환되면서 공영권 구성국으로 분할될수 있다

13. 인도 공화국

  • 집권이념: 민주사회주의 (진보주의, 인도 국민회의 - 네루파)
  • {{{#!folding 국민정신
    • 종교적 긴장감

이 종교단체들 중 적어도 일부에 대한 광범위한 자치권이나 독립은 불가피하며, 만약 그러한 변화가 인도 정부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폭력적인 수단을 추구할 것입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5%
안정도: -10.00%
* 허가의 제국

영국 통치에 빗대 조롱하는 의미인 "허가의 제국"으로 널리 알려진 관료체계는 극도로 부패했고 경제 성장을 심각하게 저해합니다. 이는 사회주의와 같이 가는 것이 필요하고 좋다고 믿고 있는 좌파와 무능한 자들이 운영하는 불필요한 시스템을 발견한 우파 사이에서의 무거운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일일 정치력 획득: -0.50
소비재 공장: 5.0%
* 분열된 정부

지금까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인 건국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만이 이 연합을 유지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고, 자신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가 공백을 매우고 혼란이 뒤따를지는 의문입니다.||
일일 정치력 획득: -0.15
안정도: -5.00%
}}}
인도 국민 회의(ANC)가 세운 인도. ANC 좌파의 자와할랄 네루가 지도자로 있다. 남인도와 북서부 인도와 파키스탄(영국령 인도 영토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임팔 작전 이후 인도 국민군의 지도자 찬드라 보세가 ANC를 "영국 부역자 "라고 규정해 버리자 이에 반발해 1944년 세운 국가로 자유 인도 정부와는 "우리가 진정한 인도고 저놈들은 영국/일본의 개다!"하면서 치고받는 관계다.

네루 사후 V. K. 크리슈나 메논[11]이 정권을 이어받아 동인도와의 외교적 접촉을 통한 남아시아경제회의를 개최하려 하지만, 그 행사장에서 동인도의 지도자 수바스 찬드라 보스의 암살 미수 사태가 일어나면서 메논 정권은 붕괴, 보스 암살미수 사건의 영향 때문에 거대여당인 인도 국민회의가 랄 바하두르 샤스트리의 구파와 차크라바르티 라자고팔라차리의 신파로 분열되면서 정치적 루트가 나뉘어진다.

위치, 국력 등등 여러 세력이 군침을 흘릴만한 국가지만 중점은 커녕 이벤트조차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나마 지역 강국이긴 하다보니 미국, 이탈리아같은 국가들의 외교 중점에서 열강 견제목적을 위한 교류 포커스가 언급되기는 한다.

삭세된 더미 데이터로 사비트리 데비[12]가 이끄는 영적 나치즘 인도가 존재하며 국기는 검은 바탕에 노란색의 슈바르체존네로 바뀐다. #

14. 자유 인도 정부

  • 집권이념: 사회민족주의(가부장주의, 전인도진보권 - 수바스파)
  • 공영권독립회원국
  • 경제:계획경제/공영권 소속 경제권
  • {{{#!folding 국민정신
    • 힌두스탄 토지개발청
      토지 없는 소작농들의 재정착을 도와주고, 농업생산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공식적인 목표와 함께, HILDA의 지역 사업은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토지 재분배 사업은 인구가 넘쳐나는 뱅골에서의 소작 문제를 상당히 완화하고 새로운 정부 수입원을 창출해냈지만, 제일 많은 정착지가 계획된 지역에서는 분리주의와 지역 민족주의 정서가 증가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안정도: +15.00%
      건설 속도: +15.00%
      행정비용이 중간수준 증가합니다.
    • 언어 문제
      정부와 당은 압도적인 뱅골인이나, 말라야 공동체에서 추방된 타밀인들. 이 운동의 핵심을 구성한 버마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힌두스탄어를 로마자로 표기하고, 정부 공식 언어로 표준화하려는 보스의 열망과 함께, 뱅골어와 힌디어 사용 지역 모두에 긴장을 일으키는 중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5.00%
    • 보스주의란 무엇인가?
      사회주의, 민족주의, 볼셰비즘, 파시즘 - 아자드 힌드가 공식적으로 추종하는 이념은 여러 가지로 불러왔지만. 최고의 열성 당원일지라도 정부와 정치인들의 정확한 입장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이념적 유연성은 다른 나라들(그리고 특정 반군 단체)과의 협상에서만 유용할 것이므로, 조만간 결정을 내리고, 보스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무슨 모습을 취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죠.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안정도: +3.00%
}}} }}}
찬드라 보스의 인도 국민군이 세운 인도. 방글라데시 아삼 일대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령 인도 붕괴 직후에는 독립 인도 공화국과 통합정부를 수립하였으나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에서 패한 책임으로 인해 정부에서 수배령이 내려지자 탈출하여 지지자가 있는 벵골 일대에서 독자정부를 수립했다.

1965년경 서인도와의 화해가 파토나고 보스 암살 시도가 있은 뒤 권력에 한 차례 변동이 존재하는데, 보스가 개인독재를 선포하거나(전제주의), M.Z. 키아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으며(군사독재/전제주의), 모한 싱의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할 수도 있다.(좌익 민족주의/사회주의)

15. 네팔 왕국

  • 집권이념: 귀족적 보수주의(전제주의, 판차야트)
  • 경제:계획경제/무소속
  • {{{#!folding 내각
    • 마헨드라 비르 비크람 샤 지도자
      • 비렌드라 비르 비크람 샤
      • 툴시 기리
      • 수리아 바하두르 타파
      • 카이저 슘서 장 바하두르 라나

    }}}

16. 부탄 자치주

  • 집권이념: 군사독재(전제주의, AHF - MAB)
  • 경제:계획경제/무소속
  • {{{#!folding 내각
    • 칸왈 싱 지도자 / 정부수반
      • 피루 싱
      • 이안 카르도조
      • 후세인 무함마드 에르샤드

    }}}

17. 아프가니스탄 왕국


  • 집권이념: 전제군주제(전제주의, 바라크자이 왕조)
  • {{{#!folding 국민정신
    • 분열된 파슌투크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은 현상 유지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땅에서의 불복종과 계속되는 충돌, 다우드 칸의 확고한 파슈툰족 민족주의적 입장은 이 시한폭탄을 단번에 해체하거나, 폭발시키고 대가를 치르는 것 외에는 아프가니스탄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을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사단 회복률: +10%
사단 공격: +10%
  • 세계 사이의 통로

복잡한 요인은 많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투르키스탄 군단과 파키스탄 독립운동을 위한 중앙아시아로의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두 지역에 대한 개입은 지역 강국으로서 아프가니스탄의 입지를 확고히 했지만 두 지역에는 부작용으로 반아프간 정서가 뿌리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카불에 대한 복수를 막은 유일한 것은 여전히 격렬한 두 지역의 내부 갈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앙아시아, 신장, 이란 등 모든 방면에서 나오는 신생 마르크스주의, 개혁주의적 영향력은 아프가니스탄 내의 정치적 논쟁과 싸움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군주제 질서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들은 국내의 정치적 안정 덕분에 현재로서는 완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적절치 못한 시기에 다시 발생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을 결국 무너뜨릴 지도 모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2%
  • 두 모하메드

위에는 벨벳 장갑을 낀 개혁가인 모하마드 자히르 샤가 앉아 있습니다. 그의 지지자들은 중도주의자, 온건파, 보수주의자, 전통주의 귀족, 우즈벡인, 타지크인들입니다. 그 아래에는 철권통치적 근대주의자인 모하마드 다우드 칸이 있습니다. 그는 친독파와 친일파가 총애하는 자이며 모든 파슈툰 민족주의자와 급진적 근대주의자의 동지입니다.

왕의 통치 30년과 다우드 칸이 총리로 취임한 첫 10년이 다가오면서 한때 우호적이었던 그들의 관계에 극명한 분열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국왕과 정부 수반의 서로 다른 입장과 서로 다른 지지 단체들은 그들을 서서히 나라를 뒤덮고 있는 권력 투쟁에 휘말리게 하고 있습니다. 둘 다 국가의 안정을 추구하지만 내부 분쟁의 결과는 최종적으로 국가에 안정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 미발달의 정치 구조

웨시 잘미안, '깨어있는 청년' 운동은 1947년 출현하여 1949년 월레시 지르가(인민의 집, 하원)에 입성했습니다. 정치적 분열에도 불구하고 반정부라는 공동의 가치 하나로 모여 제브하예 멜리(조국전선)이라는 연합전선이 등장했습니다. 웨시 잘미안이 공식 정당이 된 것입니다. 구바르의 부하들은 헤즈브와탄(조국당)을 결성했고 마흐무디는 헤즈브 칼크(인민당)을 결성했습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새 정당과 출판물을 탄압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들은 자신과 다른 이들의 행적이 적힌 의심스러운 보고서가 쓰인 채 지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953년 다우드 칸의 즉위는 파키스탄인들과 트란스옥시아나 분쟁의 도움으로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혼란은 일시적인 수준입니다. 당들이 다시 등장하면 더 단단하고 강력해지며 조직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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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lding 내각
    • 모하마드 다우드 칸 정부수반
    • 모하마드 하심 마이완드왈 외무장관
    • (공석) 재무장관
    • 사르다르 샤 왈리 칸 내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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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인도 제국 땅이던 발루치스탄을 침공해 뜯어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인도 제국군과 인도 국민 회의의 저항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한 모양.

처음에는 전제군주제 국가이지만 이후 헌법을 개정하여 준입헌군주제 국가로 바뀌는데[13] 그래도 여전히 왕 모하마드 자히르 샤가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를 자유화시키고자 하지만 급진적인 자유화는 막으려 하며 수틀리면 개혁을 취소하고 전제군주제 국가로 회귀할 수도 있다. 1965년과 1969년경 선거를 개최하여 총리를 선출하기도 하는데, 샤가 고정 지도자이기 때문에 총리는 공식적 지도자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사회주의부터 이슬람 근본주의 총리까지 다양하다.

1973년이 되면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며 사건의 전환점이 시작된다. 크게 5가지 루트가 있으며, 샤가 권좌를 유지하는 한가지 루트 빼고는 전부 물러나게 된다. 샤가 물러나지 않는 루트는 전제군주제 국가로 다시금 회귀하는 루트이다. 샤가 물러나는 경우는 신민주주의 도입이나 1973년 쿠데타로 왕국이 붕괴될 시인데, 국민들의 반발에 못이겨 신민주주의를 도입하면 자히르 샤는 평화롭게 권좌에서 내려온다.[14] 왕국 붕괴 시나리오는 아크람 야리의 마오주의 정권, 골람 모하마드 니아지의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 하피줄라 아민의 개인독재 루트로 나뉜다.[15] 아니면 현실 역사처럼 모하마드 다우드 칸이 왕을 쫓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하여 독재자로 군림할 수도 있다. 다우드 칸은 자히르 샤와 달리 외세에 우호적이며 경제권에 가입할 수 있다. 다우드 칸의 사상과 가까운 사회민족주의 루트는 경제권에 가입하진 않지만 찬드라 보스의 아자드 힌드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민간독재 루트는 터키 경제권, 혁명적 민족주의 루트는 일본 경제권, 국가사회주의 루트는 독일 경제권에 가입한다.

18. 변경주


  • 아프가니스탄 왕국군정
  • 집권이념: 귀족적 보수주의 (전제주의, 변경주 민정부)

지도자는 나왑자다 샤하부딘 칸(Nawabzada Shahabuddin Khan)이다.

19. 칼라트 칸국


  • 아프가니스탄 왕국위성국
  • 집권이념: 준 입헌군주제 (가부장주의, 아크학자이 왕조)

20. 부탄


  • 공영권독립회원국
  • 자유 인도 정부괴뢰국
  • 집권이념: 군정 (전제주의, 자유 인도군 - 부탄 군사점령국)
  • 경제:계획경제/공영권 소속 경제권
  • {{{#!folding 국민정신
    • 과도기 군사점령

잠정적인 주 승격 날짜는 1975년 1월 1일 입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일일 자치도 진행이 오름: -0.0
* 보타무즈 저항군
보타니 무즈마트, 줄여서 보타무즈는 부탄에서 가장 큰 저항군 조직입니다. 지그메 도르지 왕축이 이끄는 이 조직은 부탄 왕정의 복귀와 입헌군주제를 목표로 삼습니다. 거기다가 미국 돈도 받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매주 보타무즈가 무기고를 습격하고 INA 연대를 공격했다는 보고서가 쏟아집니다. 뭔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쿠데타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일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15.00%
일일 자치도 진행이 오름: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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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인도 국민군의 장군인 칸왈 싱. 설명은 1975년 자유 인도에 합병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아직 관련 이벤트는 없는 듯 하다.

21. 실론

  • 집권이념: 보수주의
  • 국민정신 없음

지도자는 현실에서 스리랑카의 제2대 총리였던 더들리 세나나야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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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권 6개월후 노령으로 사망하여 세니 쁘라못, 레카 아카이웡 등으로 부분적 계승 [2] 모드 초기에는 버마의 원래 지도자였으나 TT3 업데이트 이후 변경되었다. [3] 카피사난 응 파글리링코드 사 바공 필리피나(Kapisanan ng Paglilingkod sa Bagong Pilipinas)의 약자로, 해석하면 신 필리핀 봉사 협회로 해석될수 있다. 실제 역사에서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한 이후 만든 필리핀의 유일정당. [4] 실제 역사에서도 민다나오 섬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한 이력이 있다. [5] 1924~2013. OTL에서 일본 점령기에 항일운동을 했고, 일본 패망 후 1948년에서 1960년까지 반영 봉기를 일으켰다가 실패하자 태국으로 망명했다. [6] OTL에서 말레이시아의 2대 총리였고, TNO에서는 항일을 위해 현실에서 정적이던 친펑과 오월동주를 했다. [7] 1950년대 초 태국이 시도한 공산주의 게릴라 토벌 작전 당시 라오스와 캄보디아가 태국의 국경을 넘는 작전 요청을 거부하자, 태국군이 두 나라를 침공하였다. 라오스의 경우엔 당시 푸미 노사반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태국의 괴뢰정부로 들어가버렸는데, 기존 정부 요인들은 쌈누아 일대로 퇴각한 이후 반 방명정부를 이끌며 태국과 괴뢰정부 군대에 대한 게릴라 작전을 벌였다. 이후 괴뢰정부를 이끌던 푸미 노사반과 태국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노사반이 라오스 망명정부에 전향을 선언, 태국 입장에선 아무런 소득 없이 작전이 종료되었다. [8] 이후 베트남의 공산화 유무에 따라 공산주의 국가를 선언 후 공영권에서 탈퇴할 수 있다. [9] 수파누봉 또한 독립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일본과의 협력을 정당 강령으로 내세운다. [10] 일본 육군 장군으로 보르네오 섬에서 일본군을 지휘했다. 이후 산다칸 죽음의 행진을 벌인 혐의로 사형에 처해진다. [11] OTL 인도 국방장관. 의외로 한국과 인연이 있는데. 1948년 개최된 유엔 한국 위원회의 의장이었다. 여기서 그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쓰레기통 속 장미가 피어나길 바라는 것과 같다고 평했다. [12] Red Flood에서는 화신령을 이끄는 지도자로 등장하며 아시아 전체를 피바다로 만든다. [13] 1964년 아프간이 입헌군주정 국가로 전환된걸 고증한것으로 추정된다. [14] 다만 완전히 폐위되진 않고 그대로 지도자로서 남아있지만 여러가지 개헌이 실시되어 권력을 대부분 잃고 포트레잇 또한 온순하게 바뀐다. [15] 후버전에선 왕징웨이 사상/장제스 사상으로 변경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