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1:28:31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남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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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 이벤트 | 정당과 이념 | 주요 국제 분쟁
국가
국가 | 북아메리카 | 남아메리카
유럽 ( 독일, 브리튼 제도)
구소련 | 동아시아 | 동남 · 남아시아
중동 및 북아프리카 | 서아프리카 | 남아프리카
관련 모드
The Red Order | Victoria 3 버전

1. 플레이 가능 국가
1.1. 브라질
1.1.1. 엔히키 로트1.1.2. 자니우 쿠아드루스1.1.3. 아우르 안드라지(100일 위기)1.1.4. 주앙 굴라르1.1.5. 주셀리누 쿠비체크1.1.6. 카를루스 라세르다1.1.7. 아데마르 지 바후스1.1.8. 군부 쿠데타1.1.9. 1970년 대선 및 기타인물
2. 플레이 불가능 국가
2.1. 파라과이2.2. 가이아나2.3. 페루2.4. 아르헨티나
2.4.1. 페론 루트2.4.2. 반페론 민주주의 루트2.4.3. 군부독재 루트
2.5. 티에라 델 푸에고 총독부2.6. 칠레2.7. 우루과이2.8. 콜롬비아 공화국
2.8.1. 제2애국군
2.9. 콜롬비아 혁명연합2.10. 누에바그라나다2.11. 에콰도르2.12. 볼리비아2.13. 산타 크루스2.14. 베네수엘라2.15. 기아나-카옌2.16. 수리남


지역 개요
>남아메리카 - 빈곤, 착취, 저개발, 굶주림, 질병,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도 끔찍한 갈등과 같은 전염병으로 끊임없이 고통받는 대륙입니다. 사회경제적, 정치적, 내적, 외적 전쟁이 수세기 동안 이 지역을 정의해왔으며, 심지어 지금의 대륙을 만든 식민패권의 수립과 파괴 이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최근 미국이 지원한 파라과이의 과이아 폭포 침공은 오랜 갈등의 현재 사례의 한 예시일 뿐이며, 대륙을 개인의 샌드박스로 취급하는 초강대국 외세의 주장과, 오랜 경쟁심이 차코나 안데스 지역에 상관없이 남미의 지정학적 질서를 정의하는 데 여전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속임수, 인도적 지원, 정치적 영향력에 의존하여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공고히 하려고 하는 반면, 일본, 독일, 심지어 이탈리아는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문을 허물려고 시도합니다. 남아메리카는 어떤 변화를 겪든 과거의 병폐에 계속 시달리겠지만, 대륙은 여전히 존재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더 큰 세력에 의해 위험에 처하게 되며 직간접적으로, 자발적이든 아니든, 광범위한 인간 갈등과 탐욕의 총격에, 휘말린 지역과 그 사람들에게 혼란과 불행을 가져올 것입니다.


남아메리카 지역은 현재 미국이랑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가이아나와 독자적 국민정신이 있는 파라과이를 제외하면 제작진이 아무런 옵션도 건드리지 않아서 한때 빈 껍데기 지역이었다. 이후 모드 제작팀이 남아메리카 관련 서브모드인 Cold Southern Springs와 통합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미 해당 서브모드가 브라질의 데모 모드를 포함한 만큼 근시일 내로 정식 컨텐츠가 들여질 것으로 예고되었으며, 결국 1.1.2 패치로 브라질이 남미의 첫 플레이 가능한 국가로 업데이트되었고,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에도 기존에 없던 국민정신이 추가되면서 해당 국가들의 업데이트도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플레이 가능 국가

1.1. 브라질

브라질은 대조적인 곳입니다. 브라질의 국가 경제는 호황이지만 곳곳에서 빈곤층이 보입니다. 아프리카의 국가판무관부와 냉전이 이어지고 있지만, OFN의 대일 금수 조치에는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수많은 권리들이 보장되지 않고 있기도 하죠.

브라질의 경제는 무역이 지속되는 한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정치 부문에서는 칼날 위에 서 있습니다. 브라질의 미래는 밝아 보이지만, 권력자들은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짧게 플레이 가능(1965년까지)
  • 집권이념: 국민자유주의(자유주의, 사회민주당)[1]
  • {{{#!folding 내각
  • 엔히키 테이셰이라 로트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늙은 장군: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전쟁 지지도 +5%

브라질의 22대 대통령인 엔리크 테이셰이라 로트의 심장은 여전히 ​​군인으로써 존재합니다. 로트는 40년 동안 군 경력을 쌓았습니다. 가족 인맥을 통해서가 아니라 능력을 사용하여 말이죠.

브라질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로트는 미국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로트를 전쟁에 더 깊이 몰아넣었습니다. 독일의 영국 침공과 함께 로트는 브라질 원정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 마스카례나스 데 모라이스와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섬은 함락되고 브라질은 후퇴해야 했습니다. 로트는 그의 노력으로 승진하여 준장이 되었고 전쟁 영웅으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로트는 미국과의 유대를 유지하면서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브라질을 방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1949년에 이스타두 노부 정권이 무너질 때 로트는 바르가스의 가까운 측근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대로 실각하는 대신 행동하기로 결정한 로트는 보장된 선거가 실시되고 바르가스가 해를 입지 않는다는 합의에 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급진적인 군부 세력들에게 권력 이양이 일어날 수 있도록 경고하면서 이 합의가 유지되도록 하는 데 개인적으로 관여했습니다.

로트는 에드아루도 고메스와 주셸리누 쿠비크 정부가 있던 50년대 내내 국방장관이었습니다. 헌신적인 것으로 유명한 로트는 1955년에 브라질 민주주의가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쿠데타 시도를 중단했습니다. 1960년에 로트는 PSD의 기치 아래 승리하여 대통령직에 출마했습니다. 현재 로트는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국가를 이끌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은 정치인이 아니라 장군입니다. 그는 만연한 인플레이션과 같은 브라질을 괴롭히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자니우 쿠아드루스가 부통령직에 당선되었다는 사실과 결합되어, 로트와 브라질에 대한 매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로트가 싸운 전쟁만큼 편향된 통치에 대해 도전적인 자세로 대하도록 바꿉니다.
}}}
* 자니우 쿠아드루스 정부수반 (부통령,보수주의){{{#!folding 인물설명
1917년에 태어난 자니우 쿠아드루스는 어디를 가든지 항상 신동이었습니다. 그의 경력은 1943년 상파울루의 Dante Alighieri 대학에서 지리 교사로 시작하여 사교적인 성격과 괴상한 행동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신정부 독재가 종식되고 정당활동이 재개되면서 쿠아드루스는 1950년 기독민주당에 의해 상파울루 시의원으로 선출될 만큼 충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쿠아두르스의 루소트로피칼리스트적[2] 행동은 살리자르 카우디요의 호감을 얻었고, 그는 그에게 그리스도 질서 군사훈장을 수여했습니다. 1955년에 그는 파울리스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고 시장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마침내 1960년 선거에서 주라시 마갈량이스 후보의 러닝메이트으로 출마했습니다. 잔혹한 운명의 반전으로 쥬라시는 패배했고 이제 자니우는 자신이 미워하는 남자의 부통령이 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떠받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 와우테르 모레이라 살리스 외무장관 (외무부 장관,자유주의){{{#!folding 인물설명
와우테르 모레이라 살르스는 브라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성공으로 가는 쉬운 길을 누렸던 오래되고 전통적인 가정의 정치인입니다. 1912년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살레스는 신 공화국 독재 시기 말기에 워싱턴 주재 브라질 대사로 정치 경력을 시작하여 훌륭한 협상가이자 화합자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그를 바르가스와 친밀한 우정으로 이끌었고 주셸리누 쿠비쳬크 대통령과 로트 대통령 시대의 외무장관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제 살르스는 경력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의 자원은 끝이 없고 그의 명성은 보편적이며 그의 인맥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문인 "A Ultima Hora"나 가족 경영기업인 모레이라 살르스 은행와 같은 다른 직종으로 이직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권하는 동안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브라질에 새로운 독재정권을 강요하려는 시도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 탕크레두 네베스 재무장관 (재무부 장관, 자유주의){{{#!folding 인물설명
탕크레두 네베스는 브라질 정치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유창하고 선량하며 낙천적이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네베스는 1935년 진보당의 시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권한은 신 국가 쿠데타로 소멸되었습니다. 1940년대의 대부분은 상파울루에서 신뢰할 수 있는 변호사로서 그의 대중적 이미지를 높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바르가스 이후의 민주화는 그를 사회민주당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그는 정부의 모든 부문에서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그의 인맥을 사용하여 주셸리누 쿠비체크 대통령의 가까운 동맹이 되었습니다. 경제부 장관으로서 네베스는 일을 처리하는 신뢰할 수 있는 은행가입니다. 때때로 그는 브라질 대통령이 될 자신의 장래 계획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는데, 그는 분명히 최선을 다해 활동할 수 있는 직위에 있습니다.}}}
  • 오질리우 데니스 내무장관 (국방장관, 전제주의){{{#!folding 인물설명
오딜리우 데니스는 20세기 초 브라질의 상황이 만들어낸 특별한 종류의 장군입니다. 구 공화국에서 프로이센 사절단의 훈련을 받아 과두 정부와 신국가 쿠데타를 종식시킨 1930년 혁명에 참여하고 고이스 몬테이로 장군과 가까운 동맹을 맺은 데니스는 20세기 전반에 브라질이 지나는 모든 주요 변화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권위주의적 경향은 그의 강한 의무감과 규율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엔히크 톄이셰이라 로트의 친구인 그는 1955년 주셸리누 쿠비쳬크에 대항하여 조직된 11월 쿠데타를 중단시킨 장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경력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고, 데니스는 어떤 일을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그의 성취의 삶을 되돌아볼수 있었습니다. 외부 및 내부 위협으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보호해야 할 때 필요했습니다.}}}
}}}
  • {{{#!folding 국가 정신
    • 육군의 파벌주의: 낮음
사단 조직력: -3%, 사단 회복률: -3% ,육군 조직력 회복: -3%

야수는 그림자 인형들에게 불만을 품고 피를 흘립니다. 진급의 기회를 오랫동안 무시해 왔던 군인들이 이제는 호의가 아니라 군대에 대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줄다리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강압적인 군부
육군 경험치 획득량: 매일 +0.01, 안정도: -5%, 육군 경험: 매월 -0.50

헌법에 선출된 대통령과 입법부가 브라질에서 권력을 쥐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막사 내 일부 장군 간의 포커 게임에서 불행한 가상 시나리오가 발생하고 군대가 책임을 맡는다면 브라질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논의됩니다.

제4공화국은 군사 쿠데타의 불길 속에서 탄생했으며 50년대 내내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다는 위협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로트 등 일부 장군과 정치인의 노력으로 군부가 진정되고 지금까지 쿠데타를 막아왔습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재앙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군대가 개입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만연한 부패
매일 정치력 획득: -0.50, 소비재 공장: +10%, 연구 속도: -10%

브라질에 질병이 있다면 어린애도 부패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 부패와 그 결과는 지역 시의회에서 주 정부와 브라질 군대, 연방 정부까지 괴롭혔습니다. 사람들이 브라질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일하게 되기 때문에, 부패의 전파는 모든 지도자들에게 골칫거리입니다. 미래에 정부가 그 결과에 시달리지 않도록 정치적 부패는 뿌리째 뽑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지도자는 부패에 대항하여 싸울 수도 있지만, 어떤 지도자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급속한 산업화
월간 인구: +5%, 소비재 공장: 10%, 건설 속도: +5%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브라질에는 거대한 산업화의 물결이 들이닥쳤습니다. 이 흐름을 타고, 고메스, 쿠비셰크, 그리고 로트 대통령은 산업을 육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브라질의 산업 붐을 부채질하기 위해 수십 개의 새로운 공장이 세워지고 자원이 추출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브라질 경제는 페트브라스뿐만이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의 석유 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구 폭발과 급속한 GDP 성장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성장이 계속되고 석유 공급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브라질 경제는 계속 호황을 누릴 것입니다.
  • 랍스터 전쟁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주간 안정도: -0.50%

지난 2년간 지속된 랍스터 전쟁은 반드시 종식되어야 합니다. 브라질의 영해는 현재 아프리카 어부와 독일 기업 어선에 의해 지속적으로 침범받고 있습니다. 한편, 브라질 어부는 고통을 겪으며 어획물들을 도둑맞았으며, 그 배들과 마주쳤을 때 공격을 당했습니다. 펜으로건 검으로건 이 위협에 대처하고 랍스터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로트의 몫입니다.
  • 아마조니아 횡단 고속도로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소비재 공장: 10%

아마조니아 횡단 고속도로는 로트 대통령의 원대한 야망입니다. 황량한 아마존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도로, 개발을 위해 열대 우림을 헤치고 브라질과 콜롬비아를 연결합니다.
}}}
  • {{{#!folding지휘관
    • 카스텔루 브랑쿠 원수, 4, 2/4/3/4
    • 아마우리 크루엘 원수, 3, 4/2/3/2
    • 에르네스투 가이제우 장군, 3, 3/2/3/2
    • 오딜리우 데니스 장군, 3, 4/2/2/2
    • 코스타 이 시우바 장군, 3, 3/3/2/2 브라질의 27대 대통령.
    • 자이르 단타스 리베이로 장군, 3, 2/2/3/4
    • 페리 콩스탕 바빌레쿠레아 장군, 3, 2/4/3/2
    • 올림피오 머우로 필로 장군, 2, 3/1/2/1
    • 아우렐리우 드 리라 타바레스 장군, 2, 1/3/2/2
    • 아르만도 드 모라에스 안코라 장군, 2, 2/2/3/3
    • 시세노 라모스 사르멘토 장군, 2, 3/2/3/1}}}
  • {{{#!folding제독
    • 아우구스토 라데마커 제독, 4, 4/3/3/3 69년에서 74년까지 부통령에도 있었다.
    • 아르놀두 토스카누 제독, 3, 2/3/3/3
    • 질마르 캄푸스 제독, 3, 3/2/2/3
    • 칸지두 칼다스 제독, 2, 3/1/2/1
    • 칸지두 다 코스타 아라강 제독, 2, 2/2/2/2}}}
  • {{{#!folding 멸망 문구
    I leave life to enter History.


브라질 국가정보
>
3공화국의 종말
* 스모킹 스네이크
이스타두 노부 정권 동안 제툴리우 바르가스 대통령 하의 브라질은 미합중국보다 유럽의 파시스트들과 더욱 강력한 경제적 유대를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1939년 있었던 중요 상업거래와 1940년 3월 진행된 브라질의 잉여 총기 구매는 독일인들로 하여금 브라질이 연합국의 편에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민간-군을 포함한 모든 브라질의 선박들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따른 U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는 1942년 바르가스가 브라질을 연합국으로 합류시키는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3개의 육군 사단이 브라질 원정군으로 조직되어서 브리튼에 파견되었고, 바다사자 작전이 개시되었을 때 독일군과 교전을 벌였습니다. 카스텔루 브랑쿠와 엔히키 로트같은 장군들이 지휘하는 "스모킹 스네이크"는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전쟁의 대세를 기울게 하는 데에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연합국은 밀려났고, 추축국은 1945년 승전보를 울렸습니다.* 바르가스의 실각
라틴아메리카와 미합중국 사이에서 이루어진 외교적 정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전쟁의 여파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무역 금수와 미국 경제의 침체는 인플레이션과 결합하여 재앙적 결과를 나들었습니다.

이는 국내에서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을 운영하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군을 파견했던 바르가스의 위선과 합쳐져서 민중과 군부의 지지를 상실하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1949년, 페트로브라스의 결성같은 정치적 성공마저도 바르가스의 어느 측근이 실행한 언론인 카를루스 라세르다 암살 미수 사건으로 그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한 혼란으로 인해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바르가스는 처음에 저항할 것이라는 성명을 내고 한때 거의 자살할 생각까지도 하였으나, 결국 그는 사임을 하여 상파울루로 도주했습니다. 1950년 선거가 실시되었고, UDN 소속의 에두아르두 고메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folding 혼란스러운 50년대 - 4공화국
  • 고메스 대통령

    • 새 대통령 에드아르두 고메스는 음모를 꾸미는 것에 익숙한 공군 출신이였습니다. 처음에 그는 바르가스와 동맹을 맺었지만, 이스타두 노부 정권 기간동안 그에게 반대하였습니다. 대통령으로 선거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둔 이후 그는 가장 먼저 PCB(브라질 공산당)의 활동을 금지시키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시행하였습니다.

      고메스의 주요 목표는 경제 위기에 대처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이였습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완화시키려 하였고, 미국을 포함한 민간 자본을 유치시켰으며, 페트로브라스를 민영화하라는 라세르다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또한 그는 군의 규모를 늘리고 북부 기지에 미국이 접근하는 것을 허가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메스는 임기 기간동안 어리석은 행동도 벌였습니다. 1953년, 그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바르가스가 시행했던 정책인 최저임금제를 UDN의 지지를 받아 폐지시켰습니다. 이는 대중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결국 고메스가 시도하던 OFN 가입은 좌절되었고 1955년 선거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바르귀스트들은 PSD의 주셸리누 쿠비체크의 지도 아래 다시 권력을 되찾았습니다.
  • 1955년 쿠데타 미수 사태

    • 많은 UDN 당원들들과 보수적 군 장교들은 바르귀스트의 승리에 분노하였으며, 그들은 국가가 다시 "나치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넘어가는 전조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쿠데타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질리우 데니스의 지지를 받는 엔히키 로트 장군과 다른 입헌파 장교들에 의해 저지되었습니다.
  • 쿠비체크 대통령

    • 쿠비체크는 바르귀즘의 부활과 "5년 내에 50년의 진보"를 약속했습니다. 대규모의 외국 투자, 산업과 인프라 개발, 도구 수입, 그리고 브라질리아 건설 계획은 빠른 경제적 성장을 이끌었으나, 그 대가로 인플레이션률은 45%대까지 상승했습니다.

      외교적 부문에서는, 2차 서러시아 전쟁에 더욱 집중하기로 방침을 결정한 미국이 추가 투자를 거부하면서, 그 공백에 일본인들이 침투하여 데탕트가 꽃피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인들과의 관계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국가판무관부가 설립되고 서아프리카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1959년부터 브라질의 영해에 불법 어선들과 해적이 난입하면서 랍스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
{{{#!folding 현재 상황
  • 로트 대통령

    • 엔히키 로트 장군은 1960년 선거에서 PTB와 연합하여 UDN의 반 바르귀즘 후보 쥬라키 마갈량이스를 꺾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로트의 러닝메이트 주앙 굴라르는 UDN의 동맹인 PTN의 독특한 후보 자니우 쿠아드루스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이제 여당 연정에서 굴라르와 레오넬 브리졸라는 좀더 왼쪽 포지션으로 넘어갔고, 쿠비체크는 1965년 선거에서 두 번째 대통령직을 노리고 있습니다. 로트의 동료이자 "페세지스타" 탕크레두 네베스는 사실상 대통령이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연정 밖에서는 1955년 쿠데타의 실패에서 성공을 기다리고 있는 군부의 반민주주의 세력이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PSP의 극도로 부패한 기회주의자 아데마르 지 바후스와 UDN의 영원한 골칫거리 카를루스 라세르다 같은 정치인들은 만일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들을 지지할 것입니다.
  • 국내 상황

    • 국내적으로 브라질의 상황은 복잡합니다. 경제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처해야 합니다. 탕크레두 네베스는 1961년 물가 상승률을 8%대까지 낮출 수 있었지만, 로트의 개발주의적 산업화 프로그램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인하가 필요할 것입니다.

      대통령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가장 원대한 계획 중 하나는 대륙을 횡단하는 계획 아마조니아 횡단 고속도로일 것입니다. 이 계획은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있지만 원주민들, 그리고 전형적인 바르귀스트들의 돈낭비라 비난하는 라세르다의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로트 대통령은 1961년 커피 파업으로 인해 브라질 경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마비되는 사태에 맞부딪혔습니다. 파업을 당분간 진정시키기 위해 그는 자신이 신념과 약간 상충될 지도 모르지만 토지개혁을 추진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이것의 성공 유무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그의 행정부의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입니다.
  • 국제 상황

    • 수십 년 동안 그래왔듯이, 브라질은 군사적으로(특히, 군부는 정치인들보다 더욱 친미적 성향이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OFN과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하지만, 브라질은 미국의 동맹국들과 달리 견해의 차이가 있다면 자유롭게 §i미국§!에 반대할 수 있는 자유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광범위한 투자는 로트, 쿠비체크등의 친 OFN정치인들에게도 환영받는 요소이기 때문에, 국가는 상당한 친일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브라질의 '혼혈' 요소를 트집잡아 시도때도 없이 비난해대는 독일에게는 그러한 감정이 전혀 없습니다. 랍스터 전쟁에서 브라질의 노력은 전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적 통합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이 목표는 경제를 강화하고, 라틴 국가들의 세계적 영향력을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아르헨티나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과의 외교적 갈등은 남아메리카 냉전으로 알려지며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

지도자는 엔히키 테이셰이라 로트[3]. 바르가스가 쿠데타로 무너진 이후 민주화가 되었지만[4], 군부의 영향력이 남아있는 국가로 묘사된다. 현임 대통령인 로트 대통령은 PSD 후보인데, PTB와의 연정 후보로 낸 PTB 부통령 후보 주앙 굴라르가 낙선하고 UDN의 자니우 쿠아드투스가 부통령에 당선되어 대통령 청사는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 로트 대통령과 자니우 쿠아드루스 부통령의 권력 투쟁 속에서 최대한 관계를 좋게 하면서 영향력을 키워야 하는데, 거기다가 군부의 힘을 최대한 빼야 한다.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전용 시스템과 전용 패널으로 표현해 두었는데, 산업화가 이끄는 경제 성장과 별개로 점차 상승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상황이 디버프로 수치에 따라 적용되고 있다.[5]
산업과 경제
파일:TNO브라질 경제.jpg
개발패널은 국가의 경제발전을 관리하는 곳입니다.

지역을 클릭하면 활성화된 특별 프로젝트 또는 투자 가능한 개발 칙령이 표시됩니다.

아마조니아 횡단 고속도로와 같은 특별 프로젝트는 완료될 때까지 매월 자원과 정치력을 소모합니다.

전국적으로 한 번에 하나의 개발 칙령만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각 기간은 60일 동안 지속되며 지역의 개발 수준에 영향을 미치며 경제 성장을 촉진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도 아래의 그래프는 현재 지역의 개발 진행 상황과 국가 전체의 경제 발전 상황을 보여줍니다.


일반 지역 옵션 (선택 시 60일 동안은 새로운 개발 칙령을 제정할 수 없습니다.)

* 도시로의 이주 장려
(선택 지역) 지역의 농촌 주민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지역 산업 부문에 충분한 노동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선택시 효과: (선택 지역) 월간 도시인구증가율: +0.25%,
도시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더 많은 건물 슬롯을 잠금 해제할 것입니다.

* 산업 성장 후원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통해 (선택지역) 지역의 산업발전을 독려하겠습니다.
선택 시 효과: (선택지역) 월간 산업 성장률: +0.25%
우리의 GDP는 소폭 상승할 것입니다.

* 기계화 지원
남동부 지역의 농부들은 우리 나라를 잘 먹여 살리고 있지만 최신 기술을 접하지 못한 채 고생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최신 트랙터, 트럭 및 콤바인을 저렴한 가격에 수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선택 시 효과: 남동부 월간 기계화율 증가율: +0.25%
우리의 GDP 성장률은 약간 증가할 것입니다.

* 산업체로부터 자산을 요청
그동안 우리가 제공한 모든 지원으로 (선택) 지역의 산업 기반을 우리의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은 미래의 산업 성장을 저해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확실히 우리 잠재력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택 시 효과: 남동부 월간 산업 성장률: -0.25%
우리의 준비금은 현금으로 유입될 것입니다. 우리의 GDP는 약간의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특수 패널) 아마조니아 횡단 고속도로: 민간 공장, 일일 정치력, 예산 소모를 통해 건설 비율을 조정할수 있다.

브라질군
파일:TNO브라질군.png
브라질 군대는 1955년 쿠데타 실패 이후 브라질 정부의 끊임없는 우려의 대상이었습니다. 군대는 전투 준비태세를 저해하고 쇠약하게 하는 족벌주의에 시달리고 있으며, 군부의 충성도는 기껏해야 미미한 수준입니다.

내부적으로 군부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헌주의자, 온건 성향의 소르보네파, 적대적인 강경파의 세 그룹 간의 권력 투쟁에 직면해 있습니다. 통제권과 군사 충성도 수준에 따라 개입의 가능성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군대가 얼마나 불안정을 견딜 수 있는지 결정할 것입니다.

대통령은 현명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군대에 대한 행동과 국가 안보 문제에 대한 행동이 이러한 모든 자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배적인 군사 파벌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군대가 개입할 가능성을 제어합니다. (시작 기준 지배파벌은 소르보네파입니다.)

충성도: 브라질 제4공화국을 탄생시킨 군사 쿠데타 이후, 군대는 정치에서 엄청난 역할을 해왔습니다. 로트 행정부는 군 고위층을 달래는데 성공했지만, 정치 상황이 심각해지면 불충실한 군부가 개입할 수도 있습니다.

족벌주의: 친족주의는 브라질 군대의 약점이고, 군대는 비효율적이며, 우리 군사들은 적절한 감독이 부족합니다. 이 부패에 대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우리가 다음 분쟁에 대비하려면 꼭 필요한 일입니다.

강경파: 그들의 비방자들에게 "Goosesteppers"로 알려진 강경파는 브라질 민주주의에 가장 적대적인 분파입니다. 이 그룹은 공통의 야망으로 뭉쳐 수십 년 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바르가스를 권력에서 몰아낸 많은 사람들은 1955년 실패한 쿠데타에서 권력을 잡으려고 했던 장교와 장군들과 같은 강경파였습니다. 강경파가 부와 권력을 약속받는 한 그들은 충성을 유지하지만 오래도록 만족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입헌파: 1955년 쿠데타 시도 중에 로트 장군이 형성시킨 입헌주의자들은 지도자와 상관없이 제4공화국과 민주주의의 지속을 지지합니다. 입헌주의자들은 브라질의 문제에 대한 군사적 해결책에 대한 대안을 진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대통령에게 개입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 보호할 것입니다.

소르보니파: 에르네스토 가이젤이 이끄는 소르보니파는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이른바 온건파 브라질 군대입니다. 소르보니파의 주요 관심사는 급여가 제때에 들어오고 상당한 연금으로 은퇴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브라질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강경파의 야망과 입헌주의자들의 이념적 헌신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소르보네파가 가진 것은 실용주의입니다.

선거
파일:TNO브라질 선거2.png
파일:TNO브라질 대통령선거.jpg
{{{#!folding 정당 정보
인게임 정당 설명

1. PSD(사회민주당, 자유주의)는 바르귀즘과 관련된 자유주의 정당으로 브라질 정계의 중도주의 흐름을 대변합니다. 농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농촌지역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 네트워크를 지지기반으로 삼는 이들은 브라질 정계에서 타협과 중간지점의 역할을 합니다. 엔히키 로트, 주셀리누 쿠비체크, 탕크레두 네베스 등 브라질의 정치 거물급 인사들은 대부분 PSD 소속입니다. 1955년부터 PSD는 PTB와 연합을 맺어 양당은 주요 안건에 표를 같이 행사하거나 서로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2. PTB(노동당, 진보주의)는 바르귀즘의 이상을 추구하는 브라질 정계의 좌파적 흐름을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입니다. 바르가스의 퇴진 이후 설립된 이 정당은 브라질 정계를 지배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논란을 빛고 있는 정당입니다. 많은 브라질인들은 PTB를 분홍색 옷을 입은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일부는 PTB의 집권을 이스타두 노부 시절 최악의 정책이 복원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PTB는 당 총재 바르가스와 주앙 굴라르가 이끄는 좌파 포퓰리스트파, 레오네우 브리졸라가 이끄는 좌익 민족주의파, 그리고 소규모 중도좌파 세력인 기독민주주의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TB는 도시, 노동계급, 빈곤층으로부터 주로 지지를 받으며, 1955년부턴 이해관계가 일치해 온 PSD와 연합을 맺어 왔습니다.[6]

3. 브라질의 주류 우파정당이자 주요 정당인 UDN(국가민주연합, 보수주의)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부터 강경 보수파, 진보주의자들이 모인 당으로, 바르귀즘으로 대표되는 대중적 포퓰리즘에 반대하는 이들을 결집시킨 정당입니다. PSD와 PTB와는 달리 UDN은 특정 사회계층이나 집단을 지지층으로 삼지 않고 우파 사상에 우호적인 다양한 세력에 접근하였습니다. 주요 당원으로는 자니우 쿠아드루스, 카를루스 라세르다 등이 있습니다.

4. 브라질의 중도좌파 정당이자 주요정당을 차지하는 PSP(사회진보당, 가부장주의)는 당수 아데마르 지 바후스와 그의 포퓰리즘 사상을 중심으로 뭉쳐 있지만, 정당으로서의 PSP가 지닌 이념은 다소 모호한 면이 있습니다. 대체로 당은 포퓰리즘적이며 상파울루의 가난한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지만, 또한 사회 엘리트층으로부터도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주요 지지지역인 상파울루주는 브라질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로서 득표율을 견인해 주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데마르 외 주요 당원을 꼽자면 전직 대통령의 아들 제툴리우 바르가스 필류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군소정당 PTN, PST, PSB, PR, PL, PRP[7] 등이 있다. 이들은 주요 정당들과 연대하며 브라질의 정치에 참여한다.
}}}
  • 상원
상원 패널은 현재 선출된 브라질 상원의원을 지역별로 표시하고 정당별로 정렬합니다. 상원의원은 다양한 정당 출신이지만 각 정당은 5개 주요 정당 중 하나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선거는 3년마다 이루어지며 선거를 위해 각 주에서 1석과 2석을 번갈아 가며 실시합니다. 선거철에는 지도에 각 주의 주도 정당의 색상이 표시됩니다.

주를 선택하면 선택한 주요 정당과 일치하는지 여부에 따라 선거 운동을 하거나 비방할 수 있는 후보자 목록이 표시됩니다. 캠페인 작업은 2주에 한 번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다른 당사자의 캠페인은 지도에 윤곽선으로 표시됩니다.

* 비방하기: (선거 지역)가 (선택하지 않은 정당 후보)를 선출하지 않도록 (자신이 선거에서 선택한 정당) 회원을 모집하여 그들의 유대와 사생활에 대한 불쾌한 메시지를 퍼뜨릴 것입니다.
* 홍보하기: (선택한 정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전체 (선거에서 선택한 정당) 전력을 (선거 지역)에 동원할 것입니다.
  • 대통령
대통령 후보 패널은 현재 대통령 후보 경선을 보여줍니다.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열리며, 승자는 국민 직접 투표로 결정됩니다.

지도는 각 영역의 유력 후보 색깔을 표시합니다. 지역을 선택하면 각 후보의 인기가 표시되며, 2주에 한 번씩 후보를 대상으로 하는 전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캠페인은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더 효과적입니다.

후보자의 지지도는 브라질인들이 투표소로 향할 때 수집할 지역 표의 몫을 결정하는 반면, 모멘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지도가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 집회 개최 : (후보자) 또는 그의 대리인이 (선택 지역)에서 캠페인 집회를 계획하여 지역의 열정을 높일 것입니다. - 선택 시 효과: (선택 지역)에서 (후보자)의 지지율 증가
* 캠페인에 투자 : 브라질인들이 투표소에 가기 전에 (후보자)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중서부에서 (선택정당) 캠페인 활동에 집중할 것입니다. - 선택 시 효과: 중서부 (후보자)의 추진력 증가.
* 캠페인 인프라 구축 : 캠페인은 현장의 조직력만큼 강력하므로 중서부 전역의 전략적 지점에 (후보자)를 위한 지역 캠페인 사무소를 설정할 것입니다. - 선택 시 효과: (선택지역) (후보자)의 향후 캠페인 결정은 더욱 효과적으로 만듭니다.
* 타겟 서포팅 : 우리는 (선택 지역)에서 (상대)의 핵심 기반에 초점을 맞추며, 지지를 막고 지지자의 일부를 제거하기를 희망할 겁니다. 선택 시 효과: (선택 지역)의 (상대 후보) 지지 감소
* 부정적인 홍보 시행 :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대 후보)에 대한 해로운 정보가 무엇이든, 우리는 (선택 지역) 지역 전체에 부정적인 정보를 퍼뜨리고 그에 대한 담론을 돌릴 것입니다. - 선택 시 효과: 중서부 (상대 후보)의 추진력 감소.

1.1.1. 엔히키 로트

PSD 소속의 게임 시작시 지도자. 1949년 바르가스 정권에 대항한 쿠데타 발생시의 원만한 중재역할과, 1955년 쿠데타 음모를 방지하는데 성공한 로트[8]는 국민들 사이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1960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다.[9] 군부 입헌파(호헌파)의 수장이기도 해서 불명예 퇴진할 시에는 군부 지지도 저하를 피할 수 없다.

미국과 비슷하게 1960년에 선출된 지도자임을 표현하기 위해 로트 대통령의 1년간의 보여주기용 중점이 진행완료되어 표시되어 있는데, 전임 쿠비쳬크 대통령이 진행한 브라질리아 도시를 완성하고, 미국과 일본의 자원과 기술을 이용해 아마조니아 횡단 고속도로 계획을 시작하였으며, 석유 기업인 페트로브라스의 강제적 확장을 통한 이윤 분배를 진행하고, 몇년동안 커피 산업에 지장을 초래하던 커피 파업을 협상과 군을 이용하여 잠재우며, 늘어난 빛과 급격한 인플레이션의 조짐에 대응하여 예산을 감축하며 첫 1년 임기를 보냈다.

당면한 첫 번째 과제는 랍스터 문제. 서아프리카 해안 군벌국가들, 그리고 중앙아프리카 판무관부의 랍스터 불법 조업 과 해적질로 정부가 골머리를 앓는 중, 일본인 여행객이 남대서양에서 아프리카 해적에 납치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일본의 강한 압박으로 인해 국가의 위신이 실추되는 수준에 이르게 되어, '랍스터 전쟁'을 어떤 방식으로건 종결지어야 한다. 각 세력에 따라 무력과 협상을 통한 진압이 가능하며, 로트는 좀더 무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쿠아드루스는 협상을 통한 해결을 선호한다.

이후 경제 문제를 논의하게 되는데, 마침 농민연맹의 지도자 주앙 페드루 톄이셰이라의 암살 사건으로 인해 전국적인 농민 파업사태가 일어난다. 이에 대한 농촌 사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이후 농업개혁법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시도한다. 진행하고 있는 경제 정책은 네베스가 주장하는 증세를 통한 재정확보, 디플레이션 정책 및 산업화 지속, 또는 쿠아드루스가 주장하는 산업화 억제, 인플레이션 방지 예산 감축 정책 및 부채 협상 중 하나를 골라 경제 정책을 진행한다.
파일:TNO브라질 연정.png
로트 대통령과 쿠아드루스 부통령의 관계는 불안정하며 둘 다 우위를 점하고 브라질에 대한 비전을 현실로 만들려고 합니다.

행정부가 내리는 결정이 힘의 균형을 바꿀 수는 있지만 관계의 힘은 정부가 잠재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영향을 미칩니다.

플레이 시작 이후 2년간의 중점과 이벤트에서 조절하는 권력투쟁 디시전이 존재하는데. 진행하면서 일어나는 중점, 이벤트와 직접 건드릴수 있는 디시전을 통해서 조절이 가능하며, 해당 관계도에 따라 처음 주어진 포커스 트리가 끝나갈때 즈음에 로트를 무너뜨릴 계획을 가진 카를루스 라세르다가 아마조니아 횡단 고속도로 계획과 관련된 부패 사건을 가지고 쿠아드루스에게 접촉을 시도한다. 이에 쿠아드루스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서 다음 트리가 결정이 된다.

로트와 쿠아드루스 간의 관계가 좋은 상태이면, 쿠아드루스는 라세르다의 제안을 거절하고 로트 행정부에 협력을 선언하면서 행정부 안에서의 권력투쟁은 종료된다. 내부의 반대자를 협력자로 만드는데 성공한 로트는 이 다음 목표로 '큰부리새 작전' 이라는 일명 군부의 영향력을 억제시키며 불안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굳건히 하려 시도하는데, 군부 내의 강경파 장군들을 한직에 보내고, 군 내부 입헌파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며, 군부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로트 법'을 입안해서 통과시키려 시도한다. 군부는 이를 불쾌해하고 내각의 오질리우 데니스도 이를 만류하려 하지만, 행정부 권력투쟁 과정에서 친해진 상대 정당 후보자였던 부통령 쿠아드루스[10], 전 러닝메이트 굴라르, 55년 당시 로트 덕분에 쿠데타를 방지하는데 도움을 받은 쿠비체크 등 PSD-PTB 정계 전체에서 법안을 동의하고 지지하며 강행하려 한다. 통과 시 해당 국민정신이 생기는것 뿐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군부의 충성도 감소 디시전이 비활성화 된다.

법안이 통과하면 입헌파 장군인 베빌라쿠아 등과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만들며, 법안 통과를 실패할 시엔 대안으로 현상유지 파벌인 에르네스투 가이젤등이 이끄는 소르본파와 접촉하여 그 파벌을 밀어주고 군내 쿠데타를 방지하는 비밀조직등을 만들며 군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이 모든 노력을 통해 군부를 억제하는데 성공하면 바르가스와 시민들의 지지와 환호를 받으며 빛나는 임기를 끝마치고, 정적이였던 쿠아드루스와는 술자리도 가지는 친구가 되며 우정을 과시하며, 정상적인 대통령직 퇴임 이후에는 다시 군에 돌아가서 입헌파의 수장으로 복귀한다.

전반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많고 정치력 소모가 높아[11] 정세의 컨트롤이 쉽지 않지만, 가장 깔끔하게 브라질의 고질적인 문제를 처리 가능한 IF루트. 브라질의 경우는 이 밑의 혼돈상이 정사[12]에 가까운 모양새라 더더욱 희망적으로 보인다.
로트 대통령 축출!

브라질에서 전해진 속보입니다. 오늘 엔히키 로트 대통령이 오질리우 데니스 국방부 장관이 이끄는 쿠데타로 인해 실각하였다고 합니다. 이 쿠데타는 1955년 로트 본인이 일으킨 호헌 쿠데타와 비슷하였기에 데니스와 로트를 친한 관계라고 믿었던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로트의 파면과 관련해 데니스 장군의 공식적 입장은 그의 '위헌 행위'와 군에 대한 뇌물 문제로 명시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군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법안을 제출했던 것이 쿠데타의 원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데니스 장관은 선거가 계속될 것이며, 로트 전 대통령의 죄목이 법정에서 재판될 때까지 군이 '브라질을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사이클이 반복되는군.

로트 법과 관련하여 루트가 한 차례 조정이 들어가면서 히든 루트가 생성되었다. 큰부리새 작전에서 국방장관 오질리우 데니스에게 지나치게 강경하게 나서며 군부를 공격하는 루트를 선택할 경우 데니스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지지층을 결집한다면 쿠데타를 진압할 수 있으나, 만일 상황이 악화된다거나 쿠데타를 진압하는 데 실패한다면 로트는 브라질의 안정을 위해 사임을 선택하한다. 데니스는 로트 법을 폐기하고 보수 정치인 라세르다와 아데마르 중 한 쪽을 지원하여 대통령 자리에 앉히고 물러난다.

1.1.2. 자니우 쿠아드루스

  • 집권이념: 보수적 포퓰리즘(보수주의, 국가민주연맹/국가노동당)
  • {{{#!folding 내각
  • 자니우 쿠아두르스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빗자루의 남자: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5%

"브라질을 휩쓴 사나이"로 알려진 자니우 쿠아드루스는 브라질 정계 속에서 독특한 인물이며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 생각하던 위치에 마침내 도달했습니다. 마투그로수에서 태어나 쿠리치바에서 자라난 그는 나중에 상파울루로 이사하여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쿠아드루스는 1947년에 정계에 입문했는데, 그는 권위주의화 되는 이스타두 노부 정권을 싫어하고 그에 맞서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49년 이스타두 노부 붕괴와 함께 쿠아드루스는 자신이 정권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생각하면서 정치에 대한 그의 열정을 더욱 불태웠습니다.

정치판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간 쿠아드루스, 브라질에서 모든 형태의 부패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주장하는 저명한 반부패 운동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상파울루 시장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주지사 선거에서는 아데마르 지 바후스에게 1%의 표 차이로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빗자루로 부패를 쓸어버리겠다는 열망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1960년에 그는 PTN, UDN, PDC와 기타 소수 정당을 포함한 많은 정당의 연합 후보로 브라질 부통령직에 출마했습니다. 이 선거에서 쿠아드루스는 현직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를 능가하고 부통령의 자리에 도달했습니다. 그 남자가 대통령직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면, 쿠아드루스는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어떤 길이든 추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꿈이 어그러지며 쿠아드루스는 우위를 점하기 위해 로트와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 덕분에 자신이 공약했던 약속들은 제대로 이행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는 대통령이 되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행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시적이고 극적이며 선동적인 자신의 방식을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쿠아드루스가 결국 그의 계획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든 쿠아드루스는 브라질의 부패를 근절하거나, 아니면 이를 위해 죽음을 불사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
* 미우통 캄푸스 정부수반 (자유보수주의) {{{#!folding 인물설명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자원 획득 효율 +10%
많은 사람들에게 미우통 캄푸스란 인물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구 공화국 시대에 자라난 전통적인 자유주의자인 캄푸스는 1934년 진보당 당원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지만 1937년 이스타두 노부 쿠데타로 그의 꿈이 무너지 연방저축은행의 변호사로 방향을 돌렸습니. 독재 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캄푸스는 다른 자유주의 정치인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했으며, 1950년 하원의원, 1955년에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에 선출되면서 부통령직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갔습니다.

캄푸스는 바르귀즘의 권위주의적 조치와 민족주의적 수사학 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신 그는 구공화국과 유사한 국제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국가를 선호합니다. 따라서 그는 정치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조국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자유를 위해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아폰수 아리누스 외무장관 (자유보수주의){{{#!folding 인물설명
암호 해독 +1, AI 변동치: 동맹 호출 욕망 +10, AI 변동치: 공격 중점 +50%

아폰수 아리누스 지 멜루 프랑쿠는 1927년 리우 법대에서 학업을 시작한 이래, 제네바와 몬테비데오,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세 곳에서 박사학위를 딴 유능한 지식인입니다. 정치적으로는 1930년대와 40년대 초반까지 브라질에서 가장 악명 높은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우생학 지지자 중 한 명이었지만, 자신의 이상이 제3제국으로 구현되고 유럽이 노예화되는 것을 보고 나서는 마음을 바꾸어 1951년에 인종차별 정책을 불법화한 "아폰수 아리누스 법"을 통과시킴으로서 브라질에서 가장 저명한 반인종차별주의자이자 트로피칼리즘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쿠아두르스 정부의 외무장관이 된 아폰수 아리누스는 소위 "독립외교정책"이라는 계획을 수립하여 브라질이 OFN이나 다른 세력권에 얽매이지 않고 외교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구축하면해야 한다 주장하며, 친OFN 우파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 아르투르 디 실바 베르나르드스 필류 재무장관 (보수주의){{{#!folding 인물설명
건설 속도 +5%, 연구 속도 +2%, 공장 생산량 +10%

20세기 최초의 브라질 독재자의 아들인 베르나르지스 필류는 1928년 아버지의 비서로 일하면서 족벌주의를 통해 정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30년 혁명의 지지자였던 그는 이내 바르가스와 결별하고 1934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937년 이스타두 노부 쿠데타로 경력이 끊긴 그 정치적 항의의 표시를 위해 해외로 망명했습니다. 이스타두 노부 독재정권이 종식 이후 그는 미나스제라이스 주의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주셀리누 정부 기간 동안 아버지와 함께 "페트롤레우 에 노수(석유는 우리의 것이다)"운동을 지지했습니다.

쿠아두르스의 경제부 장관인 아르투르는 정부 지출과 책임 있는 경제 정책을 신행하는 동시에 브라질의 경제적 독립을 지키고 기독교 복지 국가라는 쿠아드루스의 이상에 함께하려 하고 있습니다.}}}
  • 오질리우 데니스 전쟁부 장관[13][14] (전제주의){{{#!folding 인물설명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3%

오질리우 데니스는 20세기 초 브라질의 상황이 만들어낸 특별한 부류의 장군입니다. 구 공화국에서 프로이센 사절단의 훈련을 받아 과두 정부를 종식시키고 이스타두 노부 체제를 만든 1930년 혁명에 참여하고 고에스 몬테이루 장군과 동맹을 맺은 데니스는 20세기 전반에 브라질이 지나는 모든 주요 변화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권위주의적 경향은 그의 강한 의무감과 규율과 일치했습니다. 엔히키 테이셰이라 로트의 친우인 그는 1955년 주셀리누 쿠비세크에 대항하여 조직된 11월 쿠데타를 중단시켰습니다. 이제 그의 군 경력은 거의 끝나가고 있으며, 국내외의 위협으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일을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경력을 자랑스레 회고하곤 합니다.}}}
  • 에르네스투 가이젤 내무장관[15] (국방장관){{{#!folding 인물설명
사단 방어 +5%, 최대 참호 0

독일계 브라질인인 에르네스투 가이젤은 1930년 혁명 당시 일개 병사였으나, 1932년에는 입헌파와 맞서 싸웠으며 독일계 브라질인을 동화시키려는 바르가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그는 히우그란지두술 주의 제3군 지역을 지휘했고, 출신 때문에 언제나 주변의 감시를 받았슨비다. 혁명이 끝난 이후 그는 미국식 교육을 받았고 소르본파의 영향력 있는 회원이 되었습니다.

쿠비체크에 대항하는 쿠데타 기간 동안 중립을 지킨 그는 입헌파와 소르본파 사이의 가교 역할을 맡으며 로트의 신임을 받았으며 때로는 강경파에 맞서 그들과 협력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쿠아드루스 내각의 전쟁부 장관으로서 그는 강경파, 공산주의자 또는 지하 파시스트 쓰레기와 같은 내부 위협으로부터 브라질과 민주주의를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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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N[16] 소속 부통령. 로트와 쿠아드루스 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동시에 쿠아두르스의 영향력이 로트를 압도하게 되면 아마조니아 횡단 고속도로 사업에서의 부패를 폭로하면서 로트를 사임시키고 대통령으로 자리잡으려고 시도한다.

여담으로 상당히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 맨 처음 이벤트가 대통령 회의실에서 랍스터 전쟁을 해결하던 와중 술에 취한 쿠아두르스가 로트에게 전화를 거는 내용이라거나, 라세르다의 음모 편지가 가기 전에 내각의 관계가 붕괴되면 사임 번복 협박까지 하는 등 상당히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

정치적 성향은 가톨릭 보수주의 성향으로 도덕 윤리에 입각한 법안들을 통과하려 시도한다. 국외적으로는 어떤 국가에 친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중립적이고 독립적 외교를 지향하는 편. 이 때문에 UDN 내에서 라세르다를 중심으로 하는 친미 파벌과 대립하고 있다.

라세르다, 바후스 등의 음모에 응하여 로트를 사임시키고 그들의 음모에 대항하여 대통령직에 안착을 성공하면, 우선 대대적인 로트 정권의 잔재를 청산하고 전임 대통령인 로트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공세하는 데 집중한다. 전임 정부때 과도하게 쌓인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규제 해제를 입안하고, 남아프리카에서 전면 철수를 시도하며, PSP와 PSD 등을 대상으로 하는 부패척결의 일환으로 반부패법과 청탁 금지법인 반트러스트법을 상정하려 한다. 주류 보수세력과 이질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정부 내에서도 정책에 대한 이견을 보인다거나 국영기업 확장같은 행보도 보인다. 업데이트 이전에는 독립외교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줏대없고 부정적인 인상이 강했지만, 현재로서는 남아프리카 철군 이외에는 타 열강등을 향한 노골적인 대외 접근이라거나 비동맹 세력의 접근[17]의 내용을 대거 줄이거나 아끼는 묘사를 보이고 있다. 한편, 상당한 애주가라는 설정을 반영한 건지 부정적 내용이 술에 취한 내용으로 변했다.

참고로 쿠아드루스 루트로 진행을 하면, 1965년 선거에는 라세르다가 후보로 도전하지 않는다. 쿠아드루스의 1965년 선거 출마 가능 루트는 정상적인 로트 임기 종료 루트와 쿠아드루스의 도박으로 인한 대통령직 확보 이후 다음 선거 진출 두가지 방법으로만 진행 가능하다.

여담으로 남미 개발팀은 Qna을 통해 쿠아드루스의 과격한 성격 때문에 브라질 정치 루트 중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18]

실리콘 업데이트와 함께 브라질의 추가된 컨텐츠에서 로트 행정부 시절 방일하는 이벤트가 추가되었다.

1.1.3. 아우르 안드라지(100일 위기)

  • 집권이념: 과도정부(전제주의, 마비된 의회)
  • {{{#!folding 내각
  • 아우르 데 몬드라 안드라지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소의 왕: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소비재 공장 +5%

아우르 안드라지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좌우 중앙에서 미움을 받지만, 그 자신은 정치적 거물입니다. Cattle Antônio 왕의 아들인 아우르는 1932년 입헌주의적 반란을 통해 처음으로 정계에에 들어섰고 이후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과 사업 관계로 바르가스 정부의 적이 되었습니다. 바르가스의 몰락, 그리고 제4공화국의 탄생과 함께 아우르는 상파울루 상원의원에 출마했으며 그 이후로 상원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깨어나 준비하라라는 글자가 적힌 편지를 보았을 때 아우르는 다가올 일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일은 브라질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아우르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로트의 사임으로 아우르는 쿠아드루스와 굴라르 모두에 대항하여 대통령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는 소위 온건하였던 상원의원의 전례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아우르에게 쿠아드루스 또는 굴라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브라질을 무능하게 만들거나 공산주의로 몰고 가는 운명이 된 다고 생각합니다. 아우르는 자신을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아우르는 순간을 포착했고 브라질이 혼란에 빠졌지만 아우르는 이러한 화재에서 더 나은 브라질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또는 적어도 쿠아드루스 또는 굴라르가 대통령이 아닌 브라질 말입니다. 그를 향한 증오에도 불구하고 아우르는 현재의 행동을 계속합니다. 상원과 국가는 그를 제거하기에는 너무 분열되어 있으며 곧 그를 막을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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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콜 라니에리 마질리 정부수반 (임시 대통령){{{#!folding 인물설명
순진한 낙관론자: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소비재 공장 +5%,

베테랑인 마질리는 1932년 제툴리우 바르가스에 대한 입헌주의 전쟁에서 싸웠고 나중에 1942년 국가 재무부의 국장으로서 첫 번째 연방 차원의 직위를 얻었습니다. 민주화 후 그는 1950년 PSD에 의해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로트 행정부에서도 유임되었습니다.

현재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마질리는 아우르 데 몬드라 안드라데에 의해 브라질의 정부 수반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상처 없이, 그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대신 민주주의의 위대한 구세주가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저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문제가 사라질 수 있기를 바라며 하루를 보냅니다.}}}
  • 바스쿠 레이당 다 쿠냐 외무장관 (외무부 장관){{{#!folding 인물설명
이데올로기적 전사: 같은 이념간 월간 평판 +100%, AI 변동치:세력 확장 욕망 -10,

레이당 다 쿠냐는 바르가스 밑에서, 지금은 아데마르 아래에서 일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으로 선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1930년대부터 외교관이었으며 지금은 없어진 소련 주재 브라질 대사를 지낸 레이당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위치에 만족합니다.

무엇보다 다 쿠냐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태어난 가장 우아한 민주주의 국가건국 이래 인류에게 은혜를 베풀어온 완전한 계몽국가 OFN의 수장 미합중국에 결속된 브라질이며, 브라질을 그들의 이익에 묶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그들이 정당한 대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그들의 권리이기 때문에, 브라질도 대의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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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탕크레두 네베스 재무장관 (재무부 장관, 자유주의){{{#!folding 인물설명
혼합 경제: 자원 획득 효율 +2.5%, 소비재 공장 -2.5%, 생산 효율성 한도 +2.5%

탕크레두 네베스는 브라질 정치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유창하고 선량하며 낙천적이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네베스는 1935년 진보당의 시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권한은 신 국가 쿠데타로 소멸되었습니다. 1940년대의 대부분은 상파울루에서 신뢰할 수 있는 변호사로서 그의 대중적 이미지를 높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바르가스 이후의 민주화는 그를 사회민주당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그는 정부의 모든 부문에서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그의 인맥을 사용하여 주셸리누 쿠비쳬크 대통령의 가까운 동맹이 되었습니다. 경제부 장관으로서 네베스는 일을 처리하는 신뢰할 수 있는 은행가입니다. 때때로 그는 브라질 대통령이 될 자신의 장래 계획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는 분명히 최선을 다해 활동할 수 있는 직위입니다.}}}
  • 오딜리우 데니스 내무장관 (국방장관, 전제주의){{{#!folding 인물설명
범죄 전사: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3%

오딜리우 데니스는 20세기 초 브라질의 상황이 만들어낸 특별한 종류의 장군입니다. 구 공화국에서 프로이센 사절단의 훈련을 받아 과두 정부와 신국가 쿠데타를 종식시킨 1930년 혁명에 참여하고 고이스 몬테이로 장군과 가까운 동맹을 맺은 데니스는 20세기 전반에 브라질이 지나는 모든 주요 변화에 참여했습니다.

그의 권위주의적 경향은 그의 강한 의무감과 규율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엔히크 톄이셰이라 로트의 친구인 그는 1955년 주셸리누 쿠비쳬크에 대항하여 조직된 11월 쿠데타를 중단시킨 장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제 그의 경력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고, 데니스는 어떤 일을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그의 성취의 삶을 되돌아볼수 있었습니다. 외부 및 내부 위협으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보호해야 할 때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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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00일위기.jpg
100일 위기

브라질은 전례 없는 리더십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상원이 앞으로 백일 내에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 주셸리누 쿠비셰크, 주앙 굴라르, 카를루스 라세르다, 아데마르 드 바후스는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호의를 베풀고 파격적인 거래를 시도합니다.

한 후보가 50% 지지에 도달하면 상원이 임명을 확정할 것입니다. 현재 (한 후보)가 (지지율)%의 지지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100일의 위기는 4명의 후보 중 한 명이 50% 지지를 얻어 임시 대통령이 되어야만 해결될 것입니다.

군부의 개입 위협이 다모클레스의 검 으로 상원을 겨누고 있습니다. 100일의 기간이 경과하거나 정치적 상황이 너무 불안정해지면 폭발시킬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라세르다의 음모로 인하여 로트의 사임 이후, 상원의 압박으로 인해 쿠아두르스까지 사임하게 되면, 절차상 대통령 자리를 계승할 사람은 주앙 굴라르였다. 그러나 상원의장 아우르의 좌파를 꺼리는 성향으로 인해서 굴라르의 절차적 대통령 승계를 거부하자 정계는 혼돈에 흽싸이게 된다. 당장은 국방장관 오딜리우 데니스가 중립적 자세를 보이며 이 일이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때를 노리던 강경파 군부가 100일 내로 상황을 종료시키지 않으면 개입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내며 공항 등을 점거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100일 위기를 통해서 절차상의 다음 대통령직 자리를 확정짓는게 목표.

좌파 연합인 PSD-PTB, 또는 우파 연합인 UDN-PSP 중 하나를 선택해서, 후보를 빠르게 단일화시켜서 경쟁 당의 지지율을 흡수시키며 지지율 50퍼센트를 돌파시켜야 하며, 동시에 100일 위기로 촉발된 국가적 안정도를 군부가 뒤엎지 않을 정도로 유지시켜야 한다. 100일 위기동안은 국민정신으로 주간 안정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100일 위기가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후계 대통령이 정해지게 되면 '민주주의가 살아남다'라는 국민정신을 통해 주간 안정도를 주기적으로 올려주는 임시 국민정신이 활성화된다.

안드라지는 이후 실제 역사에서도 군부와 대립하면서 숙청당하는데, 인게임에서도 군부 쿠데타 정권이 장기독재 루트를 타면 토사구팽당하고 부통령직에서 축출되고 만다.

1.1.4. 주앙 굴라르

작은 행동
굴라르의 하루는 충분히 잘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날이 무엇을 가져올지 확실히 알고 눈을 떴고, 다음에 만날 시간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넘어질 즈음에는 거의 직장에 다다랐습니다. 굴라르트에게 그날이 그렇게 골치거리가 된 이유는 그가 걸려 넘어진 것은 어두운 골목길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진흙 속에 누워 있는 남자의 발이었습니다. 그가 땅에 쓰러지기도 전에 굴라르트의 손이 그와 스쳤습니다.

"젠장,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군요." 작은 신문 가판대의 가치가 있는 신문 아래에, 그 남자는 손을 다시 물 흙에 눕힐 때 그의 밑에 있는 진흙이 눌려지면서 마치 블러드하운드나 곰을 피하는 것처럼 누워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진흙 속에 완벽하게 가만히 누워 있는 누군가를 보는 것조차 모욕이었습니다. 굴라르트는 당황스럽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기. 일어서시죠." 한숨과 함께 두 남자는 서로를 쳐다보았고,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용모모가 훨씬 더 나빠 보였습니다. 그 남자는 진흙으로부터 부분적으로만 보호받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진흙의 일부가 그의 등을 덮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남자는 굴라르가 보기조차 고통스러울 정도로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그가 오늘 나중에 할 연설로 날아갔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진흙을 닦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은 아우로[19]와 그를 거기 누워있게 한 PSD의 다른 쪽 끝에 있는 그 놈들에게 보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굴라르트는 이미 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연설에 몇 가지 새로운 "조정"이 적용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눈에는 천 번도 넘게 배신당한 사람의 모습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한 번도 배신을 당했고, 그 남자가 그곳에 어떻게 누워 있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굴라르는 시계를 확인했습니다. 5분 남았습니다. "잘 들으세요, 길을 따라 왼쪽에 부엌이 있습니다, 몸을 씻으세요. 한 시간 후에 거기서 만나죠."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굴라르를 바라보았습니다.

굴라르는 미소지었고, 연설을 하기 위해 걸어갔습니다
  • 집권이념: 좌익 포퓰리즘(진보주의, 브라질 노동당)
  • 집권이념: 통제된 민주주의(가부장주의, 브라질 노동당)[20]
  • {{{#!folding 내각
    주앙 굴라르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바르가스의 제자: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주앙 굴라르는 정치적 기득권층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남부 시골에서 태어난 굴라르는 숙련된 사업가가 되었고 수영과 축구에 대한 열정을 얻었습니다. 굴라르는 축구 경력을 고려할 때 거의 정치에 입문하지 않았습니다. 이 꿈은 굴라르의 보헤미안 생활 방식과 매독에 걸려 산산조각이 났고, 그의 왼쪽 무릎에 마비가 발생하여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굴라르는 그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부족한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브라질 전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대우받았는지 알게 된 이후,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굴라르는 바르가스와 만난 이후 PTB에 합류하여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개인 재산을 사용하여 정치적 야망을 지원하고 하원에 출마하여 의석을 얻었습니다. 선거운동을 하는 동안 그는 두 명의 중요한 인물을 만났습니다. 레오나우 브리졸라라는 주요 정치적 동맹자이자 좋은 친구와 그의 미래의 아내인 마리아 테레자입니다. 브리졸라와 함께 각각은 PTB에서 빠르게 치고올라와,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쿠비셰크가 55년 선거에서 정치 동맹을 위해 PTB에 접근하고 굴라르가 그의 러닝 메이트가 되도록 권유했을 때 굴라르는 이를 수락했습니다. 승리와 함께 PTB의 영향력과 힘은 커졌습니다. 굴라르는 60년 선거에서 옌히크 로트와 함께 출마했지만 부통령 선거에서 간신히 승리한 자니우 쿠아두르스에 의해 저지되었습니다. 짧은 우울한 기간 후에 마리아는 굴라르에게 그가 선거에서 승리하고 그 지도자가 될 하원의원에 출마하도록 설득했습니다.

굴라르의 경력은 피할 수없는 정점, 대통령에 도달했습니다. 그의 추진력과 야망은 멈추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겸손한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브리졸라, 에드나 로트 및 기타 사람들과 함께 굴라르는 모든 브라질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브라질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적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들은 굴라르를 파괴하기를 원하지만, 굴라르는 그가 실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이익과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그는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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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크레두 네베스 정부수반 (부통령)[21]{{{#!folding 인물설명
실용주의적 정치가: 일일 정치력 획득 +0.20,

탕크레두 네베스는 브라질 정치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유창하고 선량하며 낙천적이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네베스는 1935년 진보당의 시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권한은 신 국가 쿠데타로 소멸되었습니다. 1940년대의 대부분은 상파울루에서 신뢰할 수 있는 변호사로서 그의 대중적 이미지를 높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바르가스 이후의 민주화는 그를 사회민주당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그는 정부의 모든 부문에서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그의 인맥을 사용하여 주셸리누 쿠비쳬크 대통령의 가까운 동맹이 되었습니다. 경제부 장관으로서 네베스는 일을 처리하는 신뢰할 수 있는 은행가입니다. 때때로 그는 브라질 대통령이 될 자신의 장래 계획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는 분명히 최선을 다해 활동할 수 있는 직위입니다.}}}
  • 에드나 로트 정부수반 (부통령)[22] {{{#!folding 인물설명
정치적 제자: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소비재 공장 7%
1919년생인 에드나 로트의 성격은 작가 세바스티안 네리의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달콤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그녀의 말과 매력으로 매혹적입니다." 강한 군인 전통의 가문 출신으로, 에드나는 로트의 집권 기간 동안 그녀의 작업을 위해 보수적이고 진보적인 여성 운동에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를 자연스럽게 그녀를 거물 여성 후보로 만들었습니다.

사상 면에서 에드나는 민주주의의 확고한 지지자, 군대에 대한 민간의 우위에 우호적인, 여성 정치가이자 여성의 정치 참여 지지자입니다. 그러나 에드나 로트로 잘 알려진 또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앉아서 모욕을 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에르메스 리마 외무장관 (외무부 장관){{{#!folding 인물설명
이데올로기적 십자군: 같은 이념과의 월간 평판 +100, AI 변동치: 세력 확대 욕망 -10

에르메스 리마에게 정치는 축구 경기와 같고, 누군가가 팀에서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이며, 그리고 일련의 협상을 통해 미래의 라이벌 팀으로 이동할수 있는 공간입니다. 진보적인 변호사로 경력을 시작한 리마는 좌파에 대한 옹호로 공산주의 쿠데타가 실패한 후 1935년에 체포되었지만, 민주화와 함께 에르메스는 정당을 뛰어넘어 마침내 1953년 산 티아구 단타스의 영향으로 바르가스의 PTB에 합류했으며, 로트 내각에서 노동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외무장관으로서 에르메스는 독립적인 외교 정책에 대한 알폰소 아리노스의 이상을 지지합니다. 여기서 브라질은 유럽 및 북미의 지배자들에게 속박되지 않고 국가의 이득을 위해 대신 공영권, 팍트 및 OFN과 거래할수 있을 정도의 자체적인 영향력 영역을 구축할 것입니다. 그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아니면 브라질이 가까운 장래에 미국의 우산 아래 남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 셀소 푸르타도 재무장관 (재무부 장관){{{#!folding 인물설명
산업가: 매일 정치력 획득 -0.20, 자원 획득 효율 +5%, 징병 관련 인구 획득치 -2% 소비재 공장 -7%, 건설 속도 +10%

브라질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경제 정책을 논의할 때 셀소 푸르타도를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푸르타도는 전쟁경험의 대부분을 북아일랜드에 주둔할때 경험했으며 뒤늦은 연합국이 패전한 이후 소집해제되었습니다. 다양한 재단에서 근무한 후 푸르타도는 주셸리누 쿠비셰크의 경제 장관으로 임명되어 목표 계획을 수립하고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지시했습니다.

푸르타도의 목표는 브라질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고통받지 않는 미국이나 일본에 필적하는 강대국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부유한 사람들은 당신이 원한다면 "애국적이고 인도적인 자본주의"인 그의 계획이 실패하는 것에 대처할 필요가 없습니다.그러나 그의 계획은 일반적으로 계획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부패한 공무원의 제약과 전문 인력 부족으로 인해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푸르타도는 꿈을 간직하고 있으며이며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면.브라질이 현재의 나라가 아닌 밝은 미래를 볼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르게미로 드 아시스 브라실 내무장관 (국방장관){{{#!folding 인물설명
건강하고 안전히: 자원 획득 효율 -5%,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3%, 소비재 공장 -5%, 건설 속도 -5%, 공장 생산량 -5%

한 군인이 생각하고 생각합니다. 아르게미로 드 아시스 브라실의 경력은 권력 투쟁, 혁명 및 논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907년 카노아스에서 태어난 그는 1932년의 입헌주의 혁명에 중위로 참여했습니다. 혁명의 패배 후 2년 동안 그는 포르투갈로 망명하게 됩니다. 브라질에 영향을 미치는 유럽 내 파시즘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그의 두려움은 그가 돌아올 수 있었던 지 불과 1년 만에 이스타두 노부의 쿠데타 이후 증폭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훨씬 더 큰 권력을 가지고 복무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군대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인 그는 그러한 임무가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는 현 정부의 정당성에 대한 육군의 인식을 강화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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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B(진보주의) 소속 후보. 이름에서 본딴 "Jango" 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1955년 선거에서는 쿠비셰크의 부통령 역할을 했고, 1960년 선거에서는 PSD와 연정으로 부통령 선거에 나섰으나 쿠아두르스에 밀려 낙선했다. 정치적 스승인 바르가스의 영향을 받은 후보이다 보니 집권 과정 또는 집권시제툴리우 바르가스가 고문이나 정치적 지지를 할수 있다.

100일 위기에서 집권하는 대통령 중에서는 가장 우파의 공격을 맹렬하게 받는 상황으로 시작하는데, 당장 쿠아두르스의 사임 이후에 절차상으로 대통령 승계를 해야하는 위치임에도 상원위장 아우르가 승계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집권때부터 라세르다를 중심으로 하는 우파들의 '파시스트적 공산주의자' 라는 비난을 잠재우고, 군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헌파와 소르본파의 중간위치에 있는 데니스의 지지를 요청하며, 외부적으로 OFN 세력의 지지를 요청한다. 내부적으로는 투표권을 확대시키는 법안과 전기회사를 국영화하는 법안등을 제출하는 등 친서민적 정책을 실시하며[23], 최저임금 상승과 문맹 척결등의 사업을 실시한 이후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위한 선거를 위해 UDN, PSP 후보를 억제하는 선거운동을 시도함과 함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정치적 도박'을 시도하며 중점이 끝난다.

모종의 이유로 쿠데타가 일어날 시에는 실제 역사와 비슷하게 우루과이로 망명한다.

최근 추가된 티저에서 히든 루트인 라세르다의 쿠데타가 실패하여 주앙 굴라르가 긴급명령권을 발동하는 루트가 예고되었다. 이 경우 이념은 통제민주주의로 설정되며 초상 또한 변경된다.

1.1.5. 주셀리누 쿠비체크

새벽녂의 궁전

주셀리누 쿠비체크는 임기가 끝난 후 브라질 대통령 관저인 알보라다 궁전에 들어가는 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쿠비체크가 계획한 새로운 수도의 진주인 모더니즘 건물은 몇 년째 그 창조주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로트 대통령은 확실히 이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궁금했다.

대통령과 전 대통령은 이른 아침 관저 앞을 걸었다. 두 사람 모두 아침형 인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트는 동료가 자신의 창조처에 방문한 것에 결코 놀라지 않았다. 비록 그날 아침의 대화가 험악했을 지언정 말이다. 새로운 수도의 창시자인 주셀리누 쿠비쳬크는 건축가의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이상적인 세계였다면, 전 대통령은 다시 정계에서 영향력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사업가들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PSD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의 지원은 필수적이에요."

"JK,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해서 저들의 심기를 거슬리기라도 했나? 내가 무슨 물가를 낮춰 달라고 이야기했던가?. 평범한 브라질인들이 자가용을 살 돈마저 없는 상태에서, 설마 저들이 그것마저도 모르는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당신..." 쿠비체크의 언성이 내려가면서 로트가 미소지었다. 이른 아침산책은 조용한 분위기어야지 제맛 아니겠는가. 두 사람은 경호원들과 함께 안뜰을 돌아다녔다. 안뜰 너머로 새로운 수도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고 곧 잊혀질 꿈의 또 다른 밤이 끝났습다. 산책을 끝낸 로트가 침묵을 깨고 마지막으로 말을 건넸다."

"JK, 상황은 잘 풀리고 있네. PSD의 상황은 여전히 좋은 상태야. 바로 자네가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았나. 자넨 걱정이 너무 많아. 일만 제대로 한다면 국민들이 우리에게 보상해 줄 것일세."

쿠비셰크은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로트와 악수를 하고 궁전을 떠나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태양이 떠나는 인물에게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A alvorada de um novo dia(새로운 날의 새벽이다.)-
  • 집권이념: 국민자유주의(자유주의, 사회민주당)
  • {{{#!folding 내각
  • 주셸리누 쿠비체크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바르가스의 제자: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쿠비체크의 삶은 가난한 가정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이 브라질의 꿈이라고 그가 묘사한 것입니다. JK가 두 살 때 아버지가 결핵으로 돌아가셔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JK는 인내심을 갖고 교육을 받고 나중에 면허가 있는 의사가 되었습니다. 1930년에 그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바르가스의 집권을 공고히 하는 1930년에 일어난 혁명의 사건을 놓쳤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JK는 브라질로 돌아갔고 도착하자마자 미래의 아내인 사라 쿠비체크에게 결혼을 청했습니다.

쿠비체크은 미나스그라이스에서 정치에 입문하여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그는 직업적인 성격과 그의 대표적인 인프라 및 건축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1943년에 마르시아를 낳았고 1947년에 다른 마리아를 입양했습니다. 그는 또한 그가 긴밀히 협력할 건축가 오스카르 니예메예르를 만났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JK는 바르가스가 의지할 수 있는 핵심 동맹이 되는 끝까지 바르가스를 지원했습니다. 민주주의의 회복과 함께 그는 바르가스의 유산을 이어가기로 결심하고 PSD에서 입법부에 출마했습니다. 그는 인기 있는 인물이 되었고 1955년 선거의 PSD 후보였습니다. 그는 PTB 및 주앙 굴라르와 협상하여 공동 주자으로 달리고 서로를 지원했습니다. JK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로트의 도움으로 쿠데타 시도를 막았습니다.

쿠비체크 대통령은 도시를 설계하기 위해 건축가 오스카르를 사용하여 기반 시설 프로그램과 브라질리아 건설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5년 안에 50년의 발전을 약속했고 PSD와 많은 브라질 사람들에게 그것을 성취했습니다. 이제 다시 대통령이 된 쿠비셰크은 몇 년 안에 또 다른 10년의 발전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그가 가진 몇 년 안에 달성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을 수 있으며 리오의 특정 사업으로 인해 브라질리아의 정치 영역에서 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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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앙 굴라르 정부수반 (부통령)[24]{{{#!folding 인물설명
야망있는 연합의 보스: 일일 정치력 획득 +0.05, 소비재 공장 -5%

아조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주앙 벨키오르 마르쿠스 굴라르는 1940년대 중반 바르가스가 고향인 리오그란데두술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바르가스가 그를 그의 제자로 선택했을 때 이미 성인이었습니다.

"장고"라고 불리는 굴라르는 지금 그가 처음으로 그랬던 것처럼 그의 선거 여파로 주셸리누 쿠비셰므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직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브라질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경제를 지탱하며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지원하고 바르가스의 지원에 자부심을 가질 계획입니다.}}}
  • 에드나 로트 정부수반 (부통령)[25] {{{#!folding 인물설명
정치적 제자: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소비재 공장 7%
1919년생인 에드나 로트의 성격은 작가 세바스티안 네리의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달콤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그녀의 말과 매력으로 매혹적입니다." 강한 군인 전통의 가문 출신으로, 에드나는 로트의 집권 기간 동안 그녀의 작업을 위해 보수적이고 진보적인 여성 운동에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를 자연스럽게 그녀를 거물 여성 후보로 만들었습니다.

사상 면에서 에드나는 민주주의의 확고한 지지자, 군대에 대한 민간의 우위에 우호적인, 여성 정치가이자 여성의 정치 참여 지지자입니다. 그러나 에드나 로트로 잘 알려진 또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앉아서 모욕을 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프란시스코 네그랑 드 리마 외무장관 (외무부 장관){{{#!folding 인물설명
위대한 타협가: 무역 거래 평판 획득치 +20%, AI 변동치: 세력 확대 욕망 +10, AI 변동치: 평화 중점 +50%

네그랑 드 리마는 1933년 대리인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35년 고위직에 선출되었으며 이후 신정부 독재 기간인 1941년 베네수엘라 주재 브라질 대사로 일했습니다. 바르가스의 천부적인 동맹자인 네그랑은 고메스 정부 기간 동안 구이나바라 주지사로, 주셸리누 쿠비셰크 내각당시 법무부 장관으로도 일했습니다.

주셸리누의 재선과 함께 네그랑는 이베리아에 있는 브라질 대사관에서 그의 직책으로 소환되었습니다. 새로운 직책에서 그는 브라질 독립과 미국, 이베리아 및 기타 라틴 아메리카 국가와의 협력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외교적 정통성을 유지할 계획입니다. "그녀가 가는 동안 그의 사역의 운영 기간이 될 것입니다.}}}
  • 로베르투 데 올리베이라 캄푸스 재무장관 (재무부 장관){{{#!folding 인물설명
자유방임주의 자본주의자: 자원 획득 효율 +5%, 소비재 공장 +5%, 건설 속도 +5%

경제적으로 우익이자 기술 관료주의자인 로베르투 캄푸스는 현재 쿠비셰크의 경제 계획 정책에서 중요한 인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교육 기간 동안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미국과 미국이 재정적 책임을 개발하고 균형 예산을 우선시하고 정부 지출을 억제하는 정책에 대해 친밀감을 키웠습니다. 과거 주미대사를 역임한 캄푸스는 안정적인 통화와 저금리를 통해 브라질 경제가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페리 콩스탕 바빌레쿠레아 내무장관 (국방장관){{{#!folding 인물설명
연민어린 신사: 자원 획득 효율 +10%,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5%, 안정도 +5%, 공장 생산량 +10%

오랜 경력을 가진 페리의 첫 번째 위대한 행위는 아우구스토 타소 프라토주가 1930년 혁명 동안 워싱턴 루이스를 퇴위시켜 내전을 방지하는 것을 도운 것이었습니다. 신정부 초기에 두트라 야전 원수 밑에서 근무한 페리는 독일의 침공에 대비해 해안에 브라질 방어선을 조직했습니다. 1950년대에 그는 주셸리누 쿠비셰크가 집권하는 것을 막으려는 쿠데타를 막기 위해 로트와 함께 일했던 장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제 주셸리누의 국방장관으로서 페리는 군대를 질서 있게 유지하고 강경파를 통제하며 브라질의 이익을 안팎의 적으로부터 보호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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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D(사회민주당, 자유주의) 소속 전직 대통령. 전임 대통령 시기에 브라질리아 도시계획을 주도한 이력이 있다. 로트에 비해 친기업적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다시 대통령이 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00일 위기를 극복하고 대통령에 집권하면, 주앙 굴라르에 비해 군부의 반발이 비교적 덜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입헌파와 소르본파를 밀어주면서 군부를 안정시키며(다만 국민정신 파벌주의가 한단계 악화될정도로 족벌주의를 용인한다.) 이후에는 전반적인 산업화를 다시 밀어붙인다. 전임 로트 대통령이 진행하던 아마조니아 횡단 고속도로 건설계획 지원을 확장하는 법안을 입법하고, 자동차 산업, 도로 교통, 페트로브라스등에 대한 재정지원등을 향상시키며, 파라과이를 제외한 모든 남미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지지, 경제교류를 촉진시키는 등 경제 부문 성장에 온 힘을 쏟는다. 그러나 이런 경제성장 과정에서 동반되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유발되는것이 흠.[26]

만일 군부의 주도로 인한 쿠데타가 일어나서 선거가 강행될시, 바르귀스트 계열 정치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활동 가능한 유력 정치인이 된다. 군부는 UDN의 라세르다를 밀며 사실상의 보여주기용 선거를 계획하였으나, 쿠비셰크가 승리할 경우 취임식 이벤트에서 군부의 영향력이 일부 꺾이는 이벤트가 출력되며 민주주의 제도가 살아있다는 희망을 보이며 이벤트가 종료된다.

여담으로, 여성 편력이 좋지 않은듯한 이벤트가 종종 확인되기도 한다.

새로 공개된 티저에서 마카파-카옌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 컨텐츠가 새로 공개되었다. 기존에 있던 가이아나 영토였던 기아나(OTL의 프랑스령 기아나)에 영향력을 주고 있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1.1.6. 카를루스 라세르다

자유를 위한 고통

"좋아요, 왜 여기 있는지 아실 겁니다. 이 바퀴벌레에 흙을 뿌릴 시간입니다!" 카를루스 라세르다는 손뼉을 치며 붐비는 회의실 앞에 있는 커다란 칠판 위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옌히키 로트. 라세르다는 브라질의 현 대통령이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더러운 행위, 비밀 거래 및 스캔들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최고의 저널리스트 13명을 임명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조사 결과를 발표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조사된 결과는 부족했습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자 라세르다는 손을 허공에 휘둘렀습니다. "뭐라고요? 당신은 몇 달 동안 이 버려진 물건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무엇가를 좀 알려 주세요!" 방 뒤에서 긴장한 표정의 한 여성이 목을 가다듬고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리자 몸을 떨며 일어섰다. "어, 선생님, 저희가 거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저희가 말할 수 있는 한 말이죠.." 그녀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상대를 바라보며 "로트는 청렴합니다. 찾을 만한 구체적인 비난거리는 모두 매우 경미하며 타블로이드 신문에도 나올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한 그 남자는 건드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자 어색한 침묵이 다시 시작됐다. 라세르다는 방을 둘러보며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 그럴 시간이 없어요. 이것 때문에 빈곤문제 회의를 연기해야 ​​했습니다. 아시죠? 리오는 이 나라에서에서 실업률과 노숙자 비율이 가장 높으며, 제대로 대처해야 합니다. 지금. 그런데, 나는 전문적인 바보들과 이야기하고 있었군요!" 앞에 있는 한 젊은이가 당황한 분노로 얼굴을 고정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우리는 근거 없는 헛소리만은 말할 수 없습니다!" 라세르다는 웃으며 분필을 다시 집어 들었다. "절 보세요."

로트가 그의 자식뻘 되는 여자와 있었다! 로트는 해적인가, CIA 스파이인가? 사기 대통령이 표를 훔칩니다! 로트가 매수했을까? 라세르다는 계속해서 글을 썼고, 눈길을 끄는 헤드라인과 무작위적인 비난으로 게시판을 덮고 모든 부분이 이야기로 뒤덮일 때까지 썼습니다. 라세르다는 이제 역겨움과 걱정, 그리고 묘한 흥분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군중들에게로 돌아섰다. "쓰세요. 저에겐 지켜야 할 도시가 있어요."

라세르다는 분필을 남기는 것을 잊었다
  • 집권이념: 자유보수주의(자유보수주의, 국가민주연맹)
  • 집권이념: 통제민주주의(가부장주의, 국가민주연맹) [27]
  • {{{#!folding 내각
  • 카를루스 라세르다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까마귀: 매일 정치력 획득 +0.10

1940년의 라세르다에게 그가 20년 후 어떻게 될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는 당신을 거짓말쟁이 파시스트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세르다는 결국 한때 그가 가장 싫어했던 보수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좌익 집안에서 태어난 라세르다는 청년기와 20대 당시 공산주의를 신봉했습니다.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을 멸망시키자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승리한 것이 공산주의 사상이 너무 나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멸감과 함께 인해 라세르다는 브라질에 강력한 기반을 제공할 사상을 찾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사회보수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에 정착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신문 트리부나 다 임프렌사를 창간하여 바르가스의 숙적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라세르다는 반 제툴리스트로 이름을 날렸고, 바르가스의 몰락이라는 격동적인 정치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빛을 발했습니다. 라세르다에 대한 암살 시도의 여파는 끝내 제툴리우 정권을 붕괴시켰습니다.

라세르다는 에두아르두 고메스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고, 브라질을 더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당이 UDN이라는 확신을 하면서 그곳에 합류했습니다. 1955년 쿠비체크/굴라르 연합의 승리는 라세르다의 눈엔 브라질의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었습니다. 그는 취임식을 막기 위해 55년의 음모에 합류했습니다. 이 음모가 실패하면서 그는 잠시 위축되었지만, 라세르다는 계속해서 음모을 꾸몄고 쿠비체크, 굴라르 그리고 로트의 맹렬한 적수로서, 쿠아드루스와 아데마르와 협력하여 정적들에게 공세를 가했습니다.

구아나바라 주지사의 직위는 이제 그가 달성한 야망인 브라질 대통령을 위한 디딤돌에 불과했습니다. 이 위치에서 라세르다는 전임자들처럼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한 브라질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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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우통 캄푸스 부통령 {{{#!folding 인물설명
많은 사람들에게 미우통 캄푸스란 인물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구 공화국 시대에 자라난 전통적인 자유주의자인 캄푸스는 1934년 진보당 당원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했지만 1937년 이스타두 노부 쿠데타로 그의 꿈이 무너지 연방저축은행의 변호사로 방향을 돌렸습니. 독재 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 캄푸스는 다른 자유주의 정치인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했으며, 1950년 하원의원, 1955년에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에 선출되면서 부통령직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갔습니다.

캄푸스는 바르귀즘의 권위주의적 조치와 민족주의적 수사학 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대신 그는 구공화국과 유사한 국제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국가를 선호합니다. 따라서 그는 정치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조국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자유를 위해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바스쿠 레이당 다 쿠냐 외무장관 (외무부 장관){{{#!folding 인물설명
레이탕 다 쿠냐는 바르가스 밑에서, 지금은 라세르다 아래에서 일해 온 탈이데올로기적 인물이라 지칭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부터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는 지금은 없어진 소련 주재 브라질 대사를 지냈고, 지금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직책에 만족합니다.

무엇보다 다 쿠냐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태어난 가장 우아한 민주주의를, 바로 건국 이래 인류에게 풍요와 정의를 베풀어온 완전한 계몽국가 OFN의 수장 미합중국에 결속된 브라질입니다. 브라질을 그들의 이익에 결속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들의 이익은 우리에게 있어 대의의며, 브라질 또한 대의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 엘리우 베우트랑 재무장관 {{{#!folding 인물설명
독실한 기술 관료인 엘리우 베우트랑는 이제 브라질의 경제 계획 전략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1916년에 태어난 그는 리우데자네이루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리우데자네이루시의 기획부 장관을 재직하며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라세르다의 부상 이후 비슷한 역할을 맡아 연방 정부에 들어간 그는 규제 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더 광범위하게는 브라질 경제를 오른쪽으로 틀기를 희망합니다.}}}
  • 고우베리 두 코투 이 시우바 전쟁부 장관{{{#!folding 인물설명
히우그란지두술 주 히우그란지에서 태어난 고우베리 두 코투 이 시우바는 항상 군사적인 사고를 실천해 온 인물이었습니다. 16세의 나이에 헤알렝구 사관학교에 입학한 그는 정보 장교의가 되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 파견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고우베리는 계속해서 계급을 높여 소르본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올라섰습니다. 이스콜라 수페리오르 지 게하(고등군사학교)의 총장이기도 된 그는 이제 브라질군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략과 기술의 혁신을 촉진하면서 현대적이고 기술 관료적인 군대란 개념을 주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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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lding 쿠데타 루트 진입시
* 미우통 캄푸스 부통령
* 조제 지 마갈량이스 핀투 외무장관
* 에닝그 아우베르트 보일레젱 재무장관
* 조제 길례르미 메르키오르 전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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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DN(보수주의[28]) 소속 친OFN계열 우파 후보이자 구이나바라 주지사 겸 언론인. 원래 있던 반좌파 성향과[29], (실제 역사에서도 반영된) 바르귀스트들의 암살미수 사건을 겪고 난 후 생긴 반집권당 성향으로 인해 후계 정치파벌인 집권당(특히 PTB)에 대해 극도의 편집증적 자세를 보이는 모두까기 인형. 현실과 마찬가지로 정부 여당 입장에서는 발목을 시시건건 잡는 X맨에 가까운 편. 1964년 초순 라세르다가 쿠아두르스에게 편지 한 장을 보내는데, 해당 편지와 음모로 촉발되는 어마어마한 정치적 파장이 현재 브라질 루트의 가장 커다란 분기점인 100일 위기를 촉발시키게 된다.

작중 브라질 지도자 중에서 대통령이 될 기회가 많은 후보중 하나로, 평범하게 선거(100일 위기/1965년 둘다)를 통해 당선된다던가, 쿠데타 이후의 온건파 군부의 (꼭두각시) 대통령이 된다던가, 심지어 좌파 후보인 PTB의 주앙 굴라르가 당선될 시 이 편집증으로 인해 꼭지가 돌면서 정권 전복을 노리는 히든 루트까지 있다. 다만 쿠데타 -> 군사정권 유지라는 고증 루트를 탔을 땐 역시 고증에 맞게 토사구팽 엔딩행.[30]

100일 위기 집권 중점에서는 친 OFN 성향을 반영하여, 미국 대사에게 OFN 가입 의사를 알린다. 우선 OFN에 옵저버 자격과 군사통행권, 독립보장을 받으며 미국에 방문하고, 남아프리카 전쟁에 투입하는 자원병 규모를 증가시키는 법안을 입안하고 무기 지원, 해상 교전등을 하며, 정보기관과의 협력, 그리고 합동 훈련 등의 미국에게 호감적으로 접근한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라세르다노믹스' 라는 이름 아래의 민영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시작하는데, 국영 거대 에너지기업인 페트로브라스에 대하여 칼날을 겨눌지 정할수 있다. 다만, 바르가스가 남긴 페트로브라스의 폐해만큼이나 중요성 역시 상당하기 때문에 바르가스의 유산을 보존하면서 폐단을 개혁하는 선택지도 있다. 또한 전임 로트 대통령이 진행하던 아마조니아 고속도로 계획 비용을 축소하고, 전체적인 긴축 정책을 실시하며, 미국의 투자,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간다. 최종적으로 OFN에 가입하는 안건을 상원에 입안한다.

쿠데타 루트에 진입하면 UDN 연합체에 있던 군소정당들이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

모든 인류의 정신 깊숙한 곳 뒤에는 자신의 안티제제가 있습니다. 모든 생각, 모든 행동에 대한 안티테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후회라는 감정을 가져옵니다. 다른 선택지를 선택했으면 자신에게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지지 않았을까에 대한 회한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카를루스 라세르다가 라틴 거인이라는 새로운 지도자로서 세계 무대에 자리를 잡았을 때 그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불안감, 두려움, 자기 일에 대한 반성도 없습니다. 조국을 구했는데 한 점 후회할 바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굴라르는 덩굴 속에 숨어 똬리를 튼 채 쉭쉭 대는 뱀입니다. 굴라르가 어떻게 승리를 빼앗아 갔는지, 사회주의자가 공산주의자의 강철가은 무자비함에 민주주의를 내주었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장구는 붉은 실에 매달린 채 공포와 두려움의 선율에 춤추고 있는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카를루스 라세르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카를루스 라세르다만이 브라질을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카를루스 라세르다만이 브라질 정치의 메마르고 황량한 초원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굴라르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대중주의, 포퓰리즘이라는 부패의 병자도 그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라세르다의 정적들은 과정된 혐의를 씌워서 그를 비난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사란 장에 그 목소리는 기록되지 않을 겁니다.

1.1.7. 아데마르 지 바후스

새 계획, 옛 전술

"이쪽은 주지사 아데마르 지 바후스입니다. 아까 얘기했던 약속을 떠올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전화를 받은 상파울루의 저명한 사업가이자 정치인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아데마르는 수화기를 5초간 빤히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다시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습니다. "아, 진짜" 그는 펜을 들고, 긴 목록에서 이름을 하나 빼서 다른 목록에 추가했다. "배신자가 하나 늘었구만."

선거에서 그가 패배한 이후로, 그의 빈약한 지지자들 중 많은 이가 편을 바꿨다. 그는 몇 시간째 우쭐해하는 관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점점 더 취하기 어려워지는 평소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유지했다. 전화를 하는 건 아데마르의 일이 아니다. 알량한 자존심을 가진 머저리들에게 끝없이 호소하는 것도 그의 일이 아니다. 그는 밖에 나가서 악수를 하고 아기에게 키스하고 집회를 이끌거나 군중을 행동하도록 격려해야 했다. 행동이라! 쓸모없는 관료들은 그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겠지만, 행동을 통해서라면 차지할 수 있었다.

아데마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로 밖에 있는 비서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사무실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놀라긴 했지만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는 서둘러 서류더미를 움켜쥐고 어색하게 책상을 뛰어넘어 그가 복도로 몸을 숨겼을 때 그를 따라잡았다. "제 책상에서 맨 오른쪽 시트를 꺼내서 30부, 어, 50부를 인쇄하세요. 선동자 명단은 아직 가지고 있겠죠?" "아, 예." "좋아요, 좋아. 전화해서 모집이랑 집회를 늘리라고 하세요. 이제 끝내야 겠네요."

아데마르가 이미 차에 올라타고 있을 때, 그는 살짝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전 말썽을 일으키러 갈 거예요. 제가 돌아올 때 쓸 수 있는 만큼 메모장을 모으세요. 오래된 계획을 수정하고 새로운 계획을 작성할 때니까요. 아데마르의 귀환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상파울루의 거리로 달려갔습니다.
  • 집권이념: 우익 포퓰리즘(가부장주의, 사회진보당)
  • {{{#!folding 내각
  • 아데마르 드 바후스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장난기 많은 포퓰리스트: 매일 정치력 획득 +0.25, 소비재 공장 +10%

아데마르 지 바후스는 좌파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엘리트들과도 잘 어울리는 모순의 포퓰리스트 정치인입니다. 노동계급과 연결될 수 있지만 교육 수준이 높은 부유층들과도 통합니다. 장난꾸러기 포퓰리스트지만 훌륭한 책략가이기도 합니다. 아데마르는 한 가지 범주에 담을 수 있는 이념을 가진 자가 아니기에 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데마르 사상'이란 개념을 새로 창안해야 할 겁니다

전통적인 커피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데마르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1923년에 의학 학위를 받고 졸업한 그는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는 비행사가 되어 다양한 언어를 익혔습니다. 그는 1932년 호헌 혁명당시 조국을 위해 싸운 그는 조국이 패하자 파라과이로 넘어가서 차코 전쟁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브라질로 돌아온 그는 상파울루 시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바르가스의 이스타두 노부 체제가 시작되면서 곧 그 직위를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데마르는 상파울루의 시장이 되어 국가의 운영을 도왔습니다. 이 시점부터 아데마르와 상파울루는 혼연일체가 되었습니다. 상파울루에서 경력을 쌓아가는 그는 주지사 선거에서 세 번이나 당선되었고, 비록 중앙권력은 없을 지언정 국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어 1955년, 1960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득표율을 늘령누 그는 이제 대통령 자리에 안착했습니다.

부패, 족벌주의, 뇌물수수 및 기타 범죄 혐의는 다른 정치인들을 침몰시킬 수 있습니다. 아데마르는 수백 배의 비난을 받고 있으나 아무도 그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는 그것들을 비평가들에 대항하는 무기로 바꾸었습니다. 예, 그는 훔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베풀어줍니다. 그는 브라질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일을 하는 부패한 사람을 원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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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우도 나텔 부통령[31]{{{#!folding 인물설명
휴이 롱에게 오스카 알렌이 있고 바르가스에게 오즈와우두 아라냐가 있었던 것처럼 아데마르에게는 그의 측근인 라우두 나테우가 있습니다. 1920년에 태어난 나테우은 1940년대에 영향력 있는 은행가로 경력을 쌓았고 나중에는 상파울루 축구단의 경영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데마르의 2인자가 된 라우도 나테우는 상파울루주를 더 영향력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여기서 자신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어리석고 무능한 이들은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 에드나 로트 부통령[32] {{{#!folding 인물설명
1919년생인 에드나 로트의 성격은 시인 세바스치앙 네리의 표현으로 요약 가능합니다 "달콤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그녀의 매력과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든 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전통적인 군인 가문 출신인, 에드나는 로트 대통령 시절 동안 그녀의 작업을 위해 보수 및 진보적인 여성 운동에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이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브라질을 대표하는 여성 후보로 부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상 면에서 에드나는 민주주의의 확고한 지지자이며, 문민통제에 우호적이고 여성의 정치 참여를 지지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이름을 알린 성격은 바로 모욕을 참지 못하는 열혈스런 성격입니다.}}}
  • 바스쿠 레이탕 다 쿠냐 외무장관{{{#!folding 인물설명
레이탕 다 쿠냐는 바르가스 밑에서, 지금은 아데마르 아래에서 일해 온 탈이데올로기적 인물이라 지칭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부터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는 지금은 없어진 소련 주재 브라질 대사를 지냈고, 지금은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한 자신의 직책에 만족합니다.

무엇보다 다 쿠냐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태어난 가장 우아한 민주주의를, 바로 건국 이래 인류에게 풍요와 정의를 베풀어온 완전한 계몽국가 OFN의 수장 미합중국에 결속된 브라질입니다. 브라질을 그들의 이익에 결속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저들의 이익은 우리에게 있어 대의의며, 브라질 또한 대의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 베네지투 마냥 바헤투 재무장관 {{{#!folding 인물설명
기술자인 베네지투 바헤투는 와싱톤 루이스 대통령 재직 기간 동안 브라질 국립은행의 총재로서 일했습니다. 이스타두 노부 독재 기간 그는 민간 은행 및 기업에서 활동하며 정치적 색채를 빼가다가 1950년 새로 창당된 PSP에 합류했습니다.

아데마르 정부의 재무부 장관으로서 페트로브라스와 브라질의 산업화를 이어가려는 그는 브라질의 산업화를 지속할수 있도록 지원하려 합니다. 또한 정치적 식견과 함께 그의 뛰어난 재능은 아데마르의 영향력, 부패를 이용하여 다른 대통령 아래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효율성으로 자신의 계획으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아마우리 크루엘 내무장관 (국방장관){{{#!folding 인물설명
독일 이민자의 손자인 아마우리 크루에우은 1924년 잊혀진 혁명부터 1930년 혁명, 1932년 내전 및 제2차 세계 대전까지 브라질 군대 내에서 모든 경력을 쌓아왔고, 영국 원정군의 사령관으로도 복무했습니다. 전쟁의 여파로 크루에우은 가장 대표적인 반공주의자이자 반파시스트 장교가 되었으며, 정보원 양성을 통해 수많은 용공주의자 명단을 작성함으로서 수많은 이들의 미래를 파괴했습니다.

크루에우은 자신의 이상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지역 과두 정치가와 우호적인 정치인의 이익에 의해 주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1950년대와 60년대를 통해 쿠데타 시도에서 군사학교의 구성원들과 협력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크루에우는 로트가 계획한 것과 달리 군대의 정치화를 촉진하고 외국, 특히 미국 요원과의 협력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PSP(가부장주의) 소속 포퓰리스트 성향의 후보이자 상파울루 시장. 바후스는 어마어마한 부패로도 유명한데, 오히려 이를 '부패하지만 효율적인' 모토로 삼아서 자신의 장점으로 역이용한다.

100일 위기 집권 중점은 전반적으로 자신의 지지를 올리기 위한 공작 과정이 주요 내용이다. 우선 군부를 구워삶기 위한 연봉과 군부에 대한 자금등을 지원하며, 기업가, 목장주, 프랑스계 브라질인[33]들에 대한 접촉을 시도하고, 포퓰리즘적 정책과 뇌물을 동반하여 주요 정치세력 중 가장 작은 PSP의 지지율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국가는 어마어마한 부패에 찌들게 되며[34] 포퓰리즘 전략도 감세, 빈민가 유세, 미디어 매수등의 다양한 전략을 단순히 뇌물만을 이용한 단순한 방법으로는 아닌 정치적 행보를 통한 효율적인 전략을 보여주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 경제가 악화되며, 결정적으로 1965년 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부통령 후보인 라우두 나테우가 낙선하고 그 자리를 PTB의 에드나 로트가 당선되면서 치열한 행정부 속의 권력싸움을 예고하며 포커스가 종료된다.

1.1.8. 군부 쿠데타

  • 집권이념: 군사독재(전제주의, 군정)
  • {{{#!folding 내각
  • 움베르투 지 알렝카르 카스텔루 브랑쿠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늙은 장군: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전쟁 지지도 +5%

맹세를 배반한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요? 죄책감을 느끼거나 정당화할까요? 카스텔루 브랑쿠의 답은 둘 다 입니다. 부유한 군사 가정에서 태어난 그가 1918년에 입대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가 일반 참모 학교에서 그의 반에서 1등을 한 노련한 군인인 훔베르투는 그의 경력을 통해 승진을 통해 승진했습니다. 족벌주의가 아닌 능력으로 말이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훔베르투는 브라질 원정군의 일원으로 영국 전역에 참여했습니다. 군대를 지휘하고 전투를 계획하는 훔베르투는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기술이 충분하지 않았고 브라질은 패배하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훔베르투한테 파시즘에 대한 경멸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너무 많은 훌륭한 브라질 군인들이 파시즘으로 인해 죽었습니다. 이미 공산주의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훔베르투는 브라질로 돌아가면 두 가지 모두에 맞서 싸울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4공화국의 탄생과 함께 훔베르투는 공화국 초기에 로트와 함께 일했습니다. 쿠비체크 내각의 출범을 보장하기 위한 로트의 노력을 지원했습니다. 훔베르투가 로트에게 등을 돌린 것은 나중에 로트가 공산주의자들과 배신적인 노동조합 운동가들에 의해 구세주로 환영받았을 때였습니다. 소르보니 파벌에서의 그의 지도력은 둘 사이에 더 깊은 쐐기를 박았고, 그들의 관계는 혼돈의 100일이 지난 후에 군부 쿠데타를 통한 지도력에 의해 파괴될 것입니다.
}}}
* 아우르 안드라지 정부수반 (부통령){{{#!folding 인물설명
밀실 모략가: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소비재 공장 -5%,

상파울루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두제 가족 중 하나인 아우르 지 몬드라 안드라지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바르가스의 검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한 그의 신문 "Aurna"와 "O democrata"은 해당 검열을 준수하지 않아 폐간되었습니다. 1950년에 선출된 그는 PTN에서 PSD로 정당을 교체했고, 결국 로트 정부에서 상원의장의 위치에 도달했습니다.

훌륭한 웅변가였던 안드라지는 자랑스럽게 자신이 떠맡은 군사 쿠데타에서 카스텔루 브랑쿠를 대통령에 임명했습니다. 이제 그의 2인자로서 그는 정치적 상황이의 이 짧은 시간이 지나면 브라질에서 시민의식과 법치가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어쩌면 그는 손을 넘어선 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 필린투 뮐레르 정부수반 (부통령)[35] {{{#!folding 인물설명
지역 폭군: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자원 획득 효율 +7%, 소비재 공장 +10%
고문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뮐레르는 재임 기간 동안 바르가스의 정치경찰 국장으로 복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900년에 태어난 필린투 뮐레르 는 파울리스타 반란에 가담했지만 탈영병으로 간주되어 추방되었습니다. 정치 및 경찰 분야에서 역할을 찾은 그는 경력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축적해 왔습니다. 가혹한 경찰서장으로 시작하여 바르가스 정부 아래에서 이스타두 노부 체제의 핵심 건축가로 봉사했습니다. 그는 바르가스의 실각 후 PSD 하에서 상원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항상 독일 제국에 동조하는 그는 현 체제에서 자신의 영향력 있는 위치를 자주 사용하여 독일식 권위주의적 성향의 정책을 추구합니다.}}}
  • 주라시 마갈량이스 외무장관 (외무부 장관){{{#!folding 인물설명
변증의 서기: AI 변동치: 평화 중점 +50%

주라시의 경력은 1930년 혁명에서 시작되어 북동부를 통해 충성파 세력에 맞서 싸웠습니다. 1931년 바히아의 주지사로 임명되어 1934년에 선출된 그는 1937년 신 국가가 수립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바르가스의 적수가 되어 사임할때까지 말이죠. 독재정권이 종식되면서 그는 UDN의 창립 멤버가 되었습니다.

이제 군사 쿠데타 이후 주라시는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에 의해 외무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외교적 입장은 "미국에 좋은 것은 브라질에도 좋다"라는 그의 말에서 분명하며, 이는 새 정부 아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브라질은 자유 세계의 지도자와 함께 그들의 이익을 보호할 것입니다. 아메리카를 넘어서 말입니다.}}}
  • 데우핌 네튜 재무장관 (재무부 장관){{{#!folding 인물설명
부패한 도둑: 자원 획득 효율 -10%, 건설 속도 -5%, 생산 효율성 한도 -10%

"데우핌 네튜가 누구야??" 이것이 그가 경제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일반적인 반응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 상파울루의 기획 장관이었던 데우핌 네튜는 카스텔로 브랑쿠의 호감을 얻기에 충분한 관계를 맺어 쿠데타 후 내각에 임명되었습니다.

자칭 "구조주의자" 경제학자인 데우핌 네튜는 상당한 수준의 부패, 정실주의 및 광범위한 연결망으로 유명합니다.}}}
  • 시세노 라모스 사르멘투 내무장관 (국방장관){{{#!folding 인물설명
공포의 왕자: 매일 정치력 획득 +10%, 비핵심 인력 +2%, 외세 전복 활동 효율 +30%

파라과이 전쟁 참전용사의 아들인 시세노는 1923년 군 생활을 시작하여 1930년 혁명을 위해 싸웠으며 1932년 입헌주의자들을 탄압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1930년대까지 통합주의자였지만,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영국에서 브라질 군대를 이끌도록 임명되었습니다. 그 여파로 그는 1955년 주셸리누 쿠비셰크가 집권하는 것을 막으려는 쿠데타를 지원하여 매우 유명한 말썽꾸러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카스텔루 브랑쿠의 보안 장관으로서 사르멘투는 플리니우 사우가두와 새 정부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동시에 최근 패배한 세력이 새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

군부의 충성도가 너무 크게 떨어지거나, 100일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집권한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 하니에리 마질리가 임시로 지명된 이후 카스텔루 브랑쿠가 집권하며, 네튜와의 접촉을 통한 경제체제 변화, 반대파 탄압, 정보국 및 신 군사령부 설립 등을 실시한다. 초기 군사정권일때는 소르본파에 가까운 성향으로 선거를 재개하려고 하였으나, 헤시피 공항에서 대통령을 노린 폭탄테러가 벌어지고 강경파 등을 수장으로 하는 시우바의 압박으로 인해 장기 군사독재 체제로 전환될 수도 있다. 장기 군사독재 체제에서는 소르본파와 강경파의 권력투쟁을 통해 소르본파의 가이제우, 강경파의 시우바가 권력을 이양받게 된다.

민정 루트로 복귀를 마음짓는다면 시우바의 쿠데타 음모를 저지한 뒤, 라세르다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선거를 재개하여 민정을 복귀시킨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노력에 따라 쿠비체크를 당선시킬 수도 있다. 만약 강경파의 영향력이 높다면 시우바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또다른 쿠데타로는 로트의 군부 제어법을 강행할 시 이에 반발한 오질리우 데니스가 정권을 뒤엎기도 한다. 명목상으로는 임시정권을 표방하며 민정을 다시 돌려줄 수 있으나, 노동당 등 좌파에 대한 혐오감을 지니고 있기에 굴라르가 당선할 시에는 반굴라르-PTB 숙청작업을 벌인 이후 코스타 이 시우바에게 정권을 넘길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서 일부 강경파가 준동하다가 대통령 당선인이 탄 비행기를 격추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이게 되기에, 선을 넘었다 감지하는 미국 등이 손을 빼고 반정부 세력이 명분을 얻어[36] 군정이 험난할 것이라는 미래를 예고한다.

1.1.9. 1970년 대선 및 기타인물

현재는 스켈레톤 컨텐츠로만 구현되었다.
현실에서는 굴라르 정권의 주요 장관직과 미나스 제라이스 주지사를 거쳐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브라질 민주주의 정당의 온건파로서 활동했으며, 이후 1984년의 보통선거를 이끌어내며 높은 인기 속에 최초의 문민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그 다음해에 고령의 나이와 지병인 소화불량이 도져서 대통령 자리에 않기도 전에 급사한 비운의 인물. 인게임에서는 로트 정부, 쿠비체크 내각 등의 중요관료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1970년 PSD 소속 대통령 후보로 활동 가능하다.
  • 에드나 로트 (PTB)
아빠와 딸

팔라시우 두 플라나우투 인근의 날씨는 맑고 청명했다. 엔히키 테이셰이라 로트는 이 좋은 날을 이용하여 자신의 적도 아니고, 막 무언갈 망쳐버릴 자도 아닌 누군가를, 상대를 위해 가능한 많은 양보를 제공하려고 애써야 하지 않는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당적과는 정반대로, 사랑하는 딸 에드나는 막 노동당의 일원으로서 하원에 선출되었다. 로트는 가끔 딸에게 자신과 다른 당을 선택했다는 것을 두고 그녀와 농담을 나누기도 했지만, 장구의 당이었기 때문에 그 상황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에드나, 요즘 일은 어떠니?"

"아주 좋아요, 아버지. 이제 하원 업무 처리 방식에 익숙해졌어요. 장구에게 여러가지로 배우고 있고, 탕크레두를 통해서도 여기저기서 연락하는 중이에요."

"정말? 다행이구나. 그 두 사람은 믿어도 돼. 그나저나, 새로 뭔갈 계획했다는 데 뭔지 알 수 있을까? 아빠가 도울 수도 있잖니."

"아, 요즘은 도시의 여성노동자들 권리 향상을 위해 뛰어다니고 있어요. 상파울루와 리우에서 일어난 모든 산재, 남자들이 원하는 바를 얻는 데에 비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급여을 받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들어보셨을 거예요."

"아, 그거 좋은 생각이야. 아주 좋아. 레오네우 브리졸라한테 연락해서 그 일을 돕도록 해 주마. 특히 리우의 까마귀가 그 사람 머리 위에서도 평소처럼 깍깍댈지 보자꾸나."

"레오네우 브리졸라? 좋은 생각이에요. 잊고 있었는데. 고마워요, 아빠."

대화가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넘어가고서야 로트는 긴장을 풀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딸이 자랑스러웠다. 주께서는 시간이 흐른다면 그녀를 더욱 자랑스러운 인물로 만들어 줄 것이 분명했다.

에드나는 잠재력이 많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스타팅 대통령인 로트의 딸. 현실에서는 PTB의 유력한 정치인이었지만 군사 정권에 의해 공산주의자로 몰려 탄압받다가 의문의 살인을 당했다. 1965년 선거에서 주앙 굴라르 내각의 부통령으로, 또 아데마르 지 바후스 내각에서 부통령으로 활동하며,1970년 대선에서는 대통령 후보로까지 나올 수 있다.
  • 제툴리우 사르마뉴 바르가스 (PSP)
후계자 사냥

아데마르는 자신의 집무실에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세 번째라면 성공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대통령 자리는 또다시 자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1970년이면 그의 나이는 60대 후반이다. 만일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임기가 끝날 무렵에는 74세가 된다. 네 번째 출마는 무리다. 브라질 전역을 번개같이 쏘다니면서 악수를 나누가 아기들에게 키스를 반복하는 것도 이젠 못 하겠다. 그토록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멀었던 대통령직은 이제 그의 손아귀에서 영원히 벗어나고 말았다. 아데마르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이제 그가 대토열이 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 논의하는 대체역사 소설작가들에 맡겨 두도록 하자.

아데마르는 밖으로 나가서 자신을 지지한 모든 선거운동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것이 끝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머릿속에서 무언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 생각은 처음엔 작았지만, 점차 그의 머릿속을 잠식해 가며 그것에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자. 과연 이것이 끝이 아니라면 다음은 무엇인가?

그는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브라질 정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는 정치적 거물이며, 비록 상원의원이라거나 대통령직에 오르진 못했지만 지난 10년 동안 브라질 정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이상과 PSP를 이어받을 상속인이 필요했다. 언젠가 그가 죽더라도, 그 이상을 이어갈 수 있는 자 말이다. 그럼 그 적임자가 과연 누구일까? 답은 분명하다. 상파울루 주지사 후보로 추천했던 자, 스스로도 자신의 후계자가 되리라 인정했던 자, 그리고 주지사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자. 그러다가도 잠시 멈칫했다. 정말 그로 괜찮을까? 부유한 플레이보이이자 자선 사업가이자 전 대통령의 아들인 그가 아데마르가 남긴 유산을 과연 이어갈 수 있을까?

아데마르는 미소 지으며 집무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는 자신을 만나러 와준 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는 자신의 비서에게 다가갔다.

지금 바르가스 주니오르를 연결하세요. 논의할 것이 많습니다.[37]

PSP 소속 인물이자 제툴리우 바르가스의 아들. 현실에서는 소아마비로 2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지만, TNO에서는 살아남아 유망한 사업가를 이어 1965년 상파울루 주지사가 되었고 이후 1970년대 대선에 도전할수 있다고 한다. 사업가이자 화학자 출신으로, 이 때문에 석유 위기에서 대체 에너지 사업에 유연하게 투자할수 있을 지 모른다고 언급되기도 한다. 아버지(PTB)와 정당은 달라도, 가족이라는 점 때문인지 라세르다 등의 반 바르귀즘 정치인들의 음모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거나[38] 집권 이후 바르귀즘적 정책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암시를 보인다.
  • 레오네우 브리졸라 (PTB)
1970년 선거에 출마할수 있는 PTB 후보. 게임 시점에서는 포르투알레그리 주지사를 역임하고 있다. 100일 위기에서는 신변이 위험해진 사촌 주앙 굴라르를 대신해 중앙정계에서 활동하기도 하지만 스펙트럼 상 PTB 내에서도 좌성향이 강해 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로 선출되면 기존 PSD와의 연합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 네이 브라가 (UDN)
1970년 선거에 출마할수 있는 UDN 후보. 가톨릭 보수주의성향. 인게임에서는 파라나 주지사이며, 상대적으로 쿠아드루스의 순한맛 느낌으로 표현되는데, 성격도 모나지 않고 라세르다와 달리 극단주의 세력을 제외한 모든 온건 정치세력에게 유화적인 입장을 보인다. 그 덕에 1970년에 이를 때에는 쿠아드루스와 라세르다 파벌로 나뉘어져 있던 UDN이 브라가를 중심으로 단결할 수 있을 정도.
군부 쿠데타 루트에서 강경파 후계자 포지션.
군부 쿠데타 루트에서 소르본파를 중심으로 하는 후계후보들. 이 중 가이제우는 브랑쿠의 장기독재 루트 이후 68년에 브랑쿠의 후계자로 집권 가능하다.
강제적인 이른 퇴직

플리니우 사우가두는 앉아서 멍한 사무실 창 밖 풍경을 멍하니 응시했습니다. 리스본은 브라질리아가 아니었습니다. 1955년 그의 실패 이후로 사우가두는 이베리아 도시 리스본에서 강제로 망명을 했고 그는 그것에 대해 거의 지겨워했습니다. 시에스타[39], 그리스도. 사우가두는 빌어먹을 이베리아인들이 지겹고 그들의 바보 같은 관습이 지겹고 자신의 파티가 백만 마일 떨어진 곳에서 전복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지겹습니다.

깊은 한숨이 나옵니다. 사우가두는 자신의 나라를 땅끝으로 몰아넣는 바보 로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화가 났습니다. 그는 산책을 해야 했고, 담배를 피워야 했습니다. 우울한 보고서에서 벗어나기 위해 브라질에 있는 그의 충성스러운 요원는 여전히 그에게 정보를 보냈습니다. 사우가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건으로 가득 찬 지저분한 건물에서 지저분한 임대 사무실을 떠났습니다. 그가 이베리아로 도피했을 때 그의 희망은 프랑코나 살라자르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그들의 지지를 모으고 파시즘의 이름으로 브라질을 탈환하는 것이었습니다. 불행히도, 그 생각은 곧 사라졌습니다. 프랑코는 간신히 만든 그의 요청과 회의를 유머러스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살리자르는 그와 이야기하기를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결국, 프랑코조차도 동료 파시스트 애국자이자 신자의 요청에 분명히 짜증이 나서 그를 피했습니다. 바보들.

사우가두는 연못이 있는 야외의 매력적인 작은 조각인 건물 근처의 작은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좋든 싫든 그는 브라질로 돌아갈 길이 없었고 조국을 되찾을 희망도 없었습니다. 여기에서든 집으로든 뭔가 바뀌지 않는 한, 사우가두의 대의는 파멸되었습니다.

그는 오리들을 위해 빵을 가져왔다.

PRP 소속 파시즘 성향의 후보. HOI4 본편에서는 파시즘 지도자로, 인게임에서는 고유이념인 인테그럴리즘으로 나온다. 1955년 쿠데타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40] 시작 시점에는 이베리아 연방의 리스본에 망명한 상황이며, 가톨릭 근본주의적 성향 때문에 엄격하고 금욕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농촌 사회에 입각한 반산업주의의 성향을 보인다. 개발자 QNA에서는 이를 쿠아드루스의 부정적 면모를 극대화한 인물으로 표현하였다. 인게임에서는 100일 위기에서 우파 연합의 지지 전략을 위한 귀국이 허용된다면 1970년 선거에 출마 가능하다.
  • 윌송 레이트 파수스 (UDN)
윌송 문제

카를루스 라세르다가 이끄는 UDN 소속 의원인 윌송 레이트 파수스가 최근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구이나바라 주지사는 사실상 다른 사람이라면 자당원이 승리한 것에 대해 기뻐하기는 커녕 불쾌감과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사실 라세르다 본인에게 말하면 분노할 지 모르지만, 그 자리에 윌송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제툴리우 바르가스를 교차지지했다고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 그런 말이 가능한 걸까? 적어도 바르가스는 윌슨과 달리 파시스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엔히키 로트부터 구아나바라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라세르다가 파시즘을 혐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세르다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윌송의 최근 연설 내용이 헤드라인에 박히면서 다시금 화산이 터지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저 쓸모없는 나치 빠돌이 자식이 독일과의 관계 개선을 지지하고 싶다 말했단 겁니까? 그걸 공식 석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요?"

"안타깝게도, 그런 것 같습니다."

"비유적인 뜻은 전혀 안 담겨있는 채 말입니까?"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망할 자식같으니라고... 히틀러 후장이나 빠는 그 멍청이 자식을 제어하지 못하면 저희는 독수리같이 날뛰는 편협한 금발 놈들의 노예가 될 겁니다. 에스터 양, 지금 당 지도부로 가서 그자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 적절히 처리를 해야 한다고 전해주시죠."

"네, 알겠습니다."

비서가 떠나자 라세르다는 진정을 위해 위스키를 마시면서 고개를 휘저었다.

어떻게 저딴 개뼉다구같은 자식에게 표를 줄 수 있는거지?

UDN 소속의 국가사회주의 친독 성향 의원. UDN의 창립 멤버 중 하나인 원로 정치인이지만 OTL에서는 친나치 성향과 우생학에 기반을 둔 인종 차별 정책 등으로 더 악명이 높았다. 현실과 같이 쓰잘데없이 높은 영향력을 가진 UDN의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고, 바르귀스트를 편집증적으로 혐오하는 라세르다마저도 파수스가 국회의원이 될 바에야 바르가스가 대신 당선되는게 나을거라고 여길 정도. 히틀러가 사망하면 브라질 정계는 정파를 가리지 않고 축제 분위기로 변하는데, 윌송 혼자서 슬퍼하며 대사관에 조문을 가는 이벤트가 있다.
  • 주앙 아마조나스 (PCdoB-브라질 공산당)
분열!

"정회를 선언합니다!" 주앙 아마조나스는 브라질 공산당 긴급 회의에서 계속되는 폭동을 멈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의사봉을 내리쳤다. 그는 당의 중요 분파를 지휘했고, 현재 술집 중앙 탁자 위에 서 있는 놈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당의 지도자가 되었을 것다.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치스는 오랫동안 아마조나스와 당내 현실파에 맞선 순진한 분열주의자였다. 오랫동안 당내 긴장이 고조되었지만 어제의 사건은... 상황을 폭발시켰다.

"그 망할 의사봉 내려놔 주앙, 이 빌어먹을 폭군! 네 부하가 살인죄로 처벌받을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프레스치스는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졌지만 물려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마조나스는 의사봉으로 벽을 내리치며 모두에게 정숙해라 외치면서 손을 휘저었다. 양 진영이 폭력으로 충돌하기 일보 직전 그 순간의 판단으로 일단 모두가 물러섰다.

"프레스치스, 미게우를 공격한 건 너네들이였지, 그건 정당방위였어! 이제 이해했나?" 방에 잠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프레스치츠의 지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마조나스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맺히는 것을 보았다. 프레스치스가 목을 가다듬더니 차분히 반박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주앙.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날이 갈수록 폭력적이고 권위적으로 되어가는구나. 우리 계획은 어떻게 된 거야? 이제 넌 피비린내 나는 농업 혁명 얘기만 하고 있어! 이게 마지막이야. 언젠가 나도 '정당방위'라는 명목으로 죽일 거지? 이 당은 더 이상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공산 브라질을 위한 당이 아니야. 너희들을 위한 거지."

그 말과 함께 프레스치스의 부하들이 문을 나섰다. 남은 이들은 혼란에 빠졌다. 투쟁을 하기 전부터 당의 절반이 분열되고 말았다. 아마조나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뒤쪽 벽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자신에 의해 당이 분열되고 있는 지금 어떻게 혁명을 이끌 수 있단 말인가?

망치는 파편 더미였습니다.

이벤트 극초반에 나오는 브라질 공산당 관련 이벤트. 시작부터 아마조나스의 강경한 폭력 성향[41] 때문에 공산당이 분열되고, 이후 65년경 아라구아이아에서 무장투쟁을 준비하는 이벤트 이외에는 집권에 대한 암시가 있지 않았다. 이후 TT 업데이트 라이브 스트리밍에서 아마조나스의 초상화가 공개되었다. 고유 이념은 아마조나스의 이름을 딴 아마조니즘(공산주의).
  •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치스 (PCB-브라질 공산당)
    주앙 아마조나스와 달리 PTB와의 연대를 통한 온건혁명을 주장하는 지도자이다. 실 역사에서는 친소 공산당 세력으로서 바르가스 정권에 대항하며 1935년 봉기를 일으킨 적이 있었으며[42], 바르가스 정권 몰락 이후 민주화가 되자 바르가스 정권을 지지하고 연방 상원의원으로 잠시 활동하기도 하다. 브라질 좌익계열에서는 나름대로 큼직한 이력을 남겼으며 민주화 이후에는 상술하는 1989년 선거에서 레오네우 브리졸라를 지지하기도 했다. 다만 개발자 QnA에서 프레스치스의 정치적 역량 부족으로 지도자로 올라서지는 못할 것이라고 언급되었다.
  • 카를루스 마리겔라 (PCB-브라질 공산당)
    현실에서는 브라질 독재정권 수립 이후 도시에서의 무장투쟁을 이끌면서 1969년 주브라질 미국 대사 찰스 버크 엘브릭을 납치한 적도 있었으며, 이후 독재정권의 강경 탄압 속에서 사살당했다. 아직 인게임에선 미등장했으나 군사정권 이후 PCB에서 분리되어 무장투쟁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고되었다.

2. 플레이 불가능 국가

2.1. 파라과이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협동조합주의(파시즘, 콜로라도당 - 적기대)
  • {{{#!folding 국가 정신
    • 라틴 아메리카 파시즘의 보루
      파라과이는 부패했고 퇴폐적인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들의 OFN 주인 발아래 굽실대며 우리나라를 애워싼 지금 아메리카 대륙의 위대한 파시스트 이상의 유일한 수호자로서 자랑스럽게 서 있습니다. 우리의 요새 국가에는 독일인 고문, 공작원들, 기술자, 기업자들 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역에서 생겨난 우익 계열의 망명자들이 이곳을 보금자리 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이웃으로부터 우리나라를 고립시켰지만, 별 문제되지 않을 것입니다. 파라과이는 타락에 대항하는 보루이기 때문입니다.

      전쟁 지지도: +10.00%
      이념 변화 방어: +33.0%
      육군 비용 변동치: +33.00%
      지역의 파시즘 지지 기반이 될 것입니다.
    • 정치적 요새

그러나 국내외에서 조직되고 있는 신비주의적 세력들이 행운의 수레바퀴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기에, 총검으로 만들어진 이 왕좌는 영원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정치력 획득: +10%
* 아바니에
아바니에는 문자 그대로 표현하면 "인민의 언어"라는 뜻의 과라니어입니다. 이 대륙에서 우리나라는 과라니어를 스페인어, 즉 "주인의 언어"보다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들이 자신들의 토착유산을 거부하면서 유럽인처럼 보이려 노력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단일 민족이 위대한 이베리아인과 아메리카인의 융합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와 언어의 독특한 특징은 우리에게 힘과 통일성, 그리고 뚜렷한 민족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항복 한계치: +15.00%
전쟁 지지도: +5.00%
핵심 영토에서 사단 방어: +33.0%
* 그림자 속주

1930년대 이후 사실상 파라과이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행권 제인 국가는 사실상 아르헨티나입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이익은 모든 측면의 경제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기업, 다국적 기업의 아르헨티나 지부는 해운, 통신, 교통, 석유 화학 등 모든 분야를 독점한 채 그란차코의 거의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파라과이의 외교적 고립은 우리를 더욱 아르헨티나의 품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그리고 파라과이 외교 정책의 지속과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아르헨티나의 지원이 필수불가결합니다.||
공짜 생산 단위: +2.0
(아르헨티나 공화국)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50.00%
}}}
  • {{{#!folding 멸망 문구
    Another Paraguayan War, Another Paraguayan Humiliation.

    또 다른 파라과이 전쟁, 또 다른 파라과이의 굴욕.}}}

지도자는 이히니오 모리니고.

남미 유일의 파시즘 국가이며, 이 때문인지 남아메리카의 모든 국가와 미국과의 관계가 최악이다. 그나마 남미냉전 여파로 인해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에 의해 아르헨티나와의 관계는 양호한 편. OTL에서도 모리니고 정권이 친독 성향을 띄었으며 2차대전 당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한 듯 하다.

독일 내전이 일어나면 독일 자본 유입으로 복지정책을 시행하며 정권 지지율을 유지하던 모리니고 정권은 몰락하며, 정권 내부의 쿠데타 또는 파라과이 부시 전쟁을 통한 내전을 통해[43] 집권세력이 개편된다.

구 콜로라도당 세력 루트
  • 후안 나탈리시오 곤살레스(콜로라도당-적기대, 파시스트 포퓰리즘) : 모리니고 정권의 이데올로기적 수장을 맡았던 곤살레스는 내적인 쿠데타 또는 민주파에 대한 역쿠데타, FULNA 반란을 막으며 집권할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모리니고만이 실각하고[44] 나머지 구성원들은 사실상 기존 내각과 다를 바 없으며. 전면적인 개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 무쓰히토 비야스보아(콜로라도당-전쟁 전선, 군정 나치즘) : 집권당 파벌 중에서 가장 친독, 반외세적 성향을 보인다. 여담으로 친파시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자신의 아들 이름을 '아돌포 히로히토'라고 지었다.
  • 페데리코 차베스(콜로라도당-민주파, 기독교 민주주의->국민보수주의): 모리니고가 콜로라도당을 흑화시키기 전부터 있어온 온건 보수주의적 성향 잔당세력. 집권 직후 나탈리시오에 의한 역쿠데타가 일어날 위험성이 있으나, FULNA등의 온건 공산주의 세력에게도 유화적 스탠스를 취할수 있어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콜로라도당-군국주의파, 군사정권) : 페데리코 차베스 정권의 반대파 탄압이 심해질 시 쿠데타를 일으킨다.

FULNA 루트
  •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FULNA 임시군사정부, 게바라주의) : 칠레에서 추방된 체 게바라는 자유당, 공산당, 사회민주주의(페브레리스타), 반정부 성향의 군부를 광범위하게 결집하여 파라과이에서 게릴라 내전을 벌인다. 이후 FULNA 세력은 공산-비공산주의 세력간의 2차 내전을 벌이게 되며, 어떤 세력이 승리하건 간에 게바라는 지도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 라파엘 프랑코(페브레리스타 혁명당, 좌익포퓰리즘, 사회민족주의) : HOI4 본편에서 파라과이 지도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 호세 펠릭스 에스티가리비아(자유당, 귀족적 보수주의, 사회자유주의) : 모리니고 정권에서도 군복무를 해온 에스티가리비아는 파라과이 내전에서 궁지에 몰린 정부를 쿠데타하여 집권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 민주화도 가능해진다. 현실에서는 차코 전쟁의 후광으로 1939년 대통령이 되었으나, 입법부를 해산시키고 독재정권을 설립하였으며 1년 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였다. TNO에서는 이 설정에서 스타팅 지도자 모리니고가 집권한 형태로 바뀌어 있다.
  • 미겔 앙헬 솔레르(파라과이 공산당, 공산주의) : FULNA 내전(아순시온 전투)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승리할 시 집권이 가능하긴 하지만 인접국들이 적색 위협을 느끼며 군사적 조치를 취하며 2차 삼국 동맹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여담으로, 실제 역사에서 솔레르는 스트로에스네르 정권에서 탄압받다 고문 과정에서 전기톱으로 산 채로 절단당하며 살해당하였다.

2.2. 가이아나

플레이 불가
  • 자유국가기구OFN 의존회원국
  • 집권이념: 자유보수주의(연합전선)[45]
  • {{{#!folding 국가 정신
    • 영국의 유산

체디 자간 시절 시행된 탈식민지화 정책이 일부 기업을 국유화하고, 복지 제도를 수립함과 동시에 독립적인 국가를 만들었지만, 해로운 지도자 피터 다과이어는 자간이 이끄는 정책을 계승하는 대신 웨스트민스터 체제를 유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가이아나 내면의 깇은 곳에서는 식민지 시절 과거에 대한 분노가 잠들어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한, 그 분노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겁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50
필요 소비재: +10.00%
* 불안한 연정

연정은 이미 안정적이지 않으며, 집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주요 정책을 두고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연정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PPP가 정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균열은 더욱 커지고 있으며,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동맹이 무너지는 것이 단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10%
안정도: -25.00%
* 에세키보 분쟁

일찍이 베네수엘라는 중남미 독립 전쟁 당시 영국령 가이아나 식민지의 영토 절반 이상의 영유권을 주장했습니다. 가이아나는 1899년 중재에서 둘 사이의 국경을 명확히 정립했다고 생각하지만, 베네수엘라는 이 중재를 영국의 음모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이아나가 1950년 독립하자, 베네수엘라는 이전의 국경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곤 가이아나 에세키보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가이아나보다 더 큰 규모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이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미국은 지금까지 이 분쟁에서 가이아나를 지지해 왔습니다. 그러기에 양국 간의 직접적인 대립은 OFN의 결속력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베네수엘라가 우리 영토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OFN에 남아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할 것입니다.||
전쟁 지지도: +5.00%
이 분쟁은 OFN의 결속력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 미국의 투자

피터 다과이어와 경제적 자유주의 정당이 당선됨에 따라, 그는 가이아나라는 작은 경제에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다시 미국 기업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이아나는 이제 경제적 호황기에 접어들었으며, 돈이 계속 흐르는 한 경제는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GDP 성장률: +1.50%
필요 소비재: +5.00%
매일 자유주의 지지도: +0.02
}}}
  • {{{#!folding 내각
    피터 다과이어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가이아나의 많은 사람들에게 보수주의와 자본주의의 맹렬한 신봉자라고 여겨지는 피터 다과이어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나머지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1951년 선거 당시 국민민주당 후보로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1955년과 1957년 선거에선 선거에서는 출마하지 않았습니다.

PPP(인민진보당)의 양대 당수였던 포브스 버넘과 체디 자간의 관계가 분열되자, 피터는 보수적 정책을 지지하는 가톨릭 교회와 연합한 반공 정치조직 자유의 수호단을 결성하였습니다. 자간을 패배시키기 위해 그는 버넘과 동맹을 맺었고, 버넘과 그의 동맹 세력들은 성공적으로 1961년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과이어는 자신의 추종자들이 있는 정당을 "연합전선"으로 개편한 이후, 버넘의 PNC(인민국민회의)와 불안정한 연립내각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가이아나에서 자신의 이상을 행동으로 옮기고 싶어 하지만, 연립여당 내부의 갈등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베네수엘라와의 긴장 관계는 그의 꿈을 무너뜨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
}}}
* 포브스 버넘 총리 (인민국민회의)
인물설명 미공개
* 존 카터 외무장관 (인민국민회의)){{{#!folding 인물설명
대전쟁 기간동안 런던에서 법학을 배우고 가르친 변호사 존 카터는 포브스 버넘의 충실한 동맹자로, 버넘이 이끄는 인민국민회의에 가입하고 그가 초대 의장이였던 1957년부터 그와 함께해 왔습니다.

내각진에 버넘의 측근을 앉히는 일환으로 그가 외무부 장관에 임명된 이래,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버넘을 정치적으로 도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 해보입니다.}}}
  • 라이오넬 룩호 재무장관 (연합전선){{{#!folding 인물설명
피터 다과이어에 대한 충성심만큼이나 변호사로도 유명한 라이오넬 룩호는 내각에서 다과이어의 가장 유능한 동맹이기도 합니다.

1950년대 의원으로 활동하고, 1955년부터 60년까지 조지타운 시장을 지낸 그는 시장 시절 피터와 친분을 맺게 되었고, 1961년 선거에서 피터가 승리를 거둔 이후 라이오넬은 연합전선에 가장 먼저 합류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현재 연립내각에서 재무장관직을 맡고 있습니다.}}}
  • 프롤레미 리드 내무장관 (인민국민회의){{{#!folding 인물설명
한때 교사였고, 이후 수의사로 활동한 프롤레미 리드는 이제 자신이 이 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터스키기 연구소에서 수의학을 전공한 이후, 가이아나로 돌아온 그는 한동안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으나 얼마 후 가이아나 최대 규모의 설탕 플렌태이션 기업체인 부커스 설탕 농장에 수석 수의관이 되었습니다.

1960년 포브스 버넘이 이끄는 PNC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인 그는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피터 다과이어는 충분한 인내심이 있다면 언젠가 그를 설득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으며, 반면 버넘은 그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생각 중 누가 옮은지는 오직 시간만이 답해줄 것입니다.}}}
}}}
대영제국이 잉글랜드의 항복으로 무너지며 미국의 짧은 통치 이후 1950년 독립한 국가. 현 지도자(대통령)은 피터 다과이어이며, 연립정권의 총리는 포브스 버넘.[46]

전임 대통령인 체디 자간[47](인민진보당, 사회주의)이 급격히 진행하는 사회주의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투자가 위축되고 인민진보당 내의 버넘이 갈라져 나와 인민민족회의(가부장주의)를 창당하자, 보수, 가톨릭 성향의 다과이어는 연합전선를 결성한 이후 인민진보당과 동맹을 맺어 1961년 선거에서 자간을 패배시키고 연립정권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러나, 과거의 동맹이였던 버넘과의 관계에 점차 균열이 가면서 연립정권의 미래는 불투명해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독립 이후 베네수엘라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에세키보 분쟁으로 인해 OFN의 지지에 더욱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또한 OFN의 옵서버로서 양측의 분쟁이 심화될 경우 OFN의 결속에 분열을 일으킬 위험성이 존재하는 상황.

2.3. 페루

플레이 불가

티저 예고
  • 집권이념: 보수주의
  • {{{#!folding 국가 정신
    • 헛된 꿈

페루가 오랜 꿈인 민주주의를 다시 실현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역사를 다시 반복시킬가요? 우린 이 문제에 조심스레 신경써야 합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우리의 꿈과 함께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또한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민주주의는 실현될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05
안정도: -10%
전쟁 지지도: -3%
* 조용한 해방
리마 전투 이후, 북부의 친 APRA지역은 어느날 그들이 멈출때까지 부스타만테 정부와 오드리아 정부에 맞서 반란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침묵만이 남았습니다. 병사들은 총격이 없음을 보고했고, 경찰들은 자신있게 모든것이 통제하에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아무일도 없었단 듯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침묵은 안좋은 징조를 의미합니다. 우린 북부를 한시 빨리 확인해야 합니다. 저 APRA 놈들이 여전히 숨어있는걸 알고있으니까요...
정치력 획득: -2%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6%
* 투자 전쟁
일본의 태평양에서의 승리와 수많은 일본인 체류자들로 인해, 일본인들은 1947년 이후 우리 국가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미국의 뒷마당에서 활동하면서 그들의 분노를 불러왔습니다. 1950년대 부터 지금까지, 미합중국과 대일본제국은 주요 농장들부터 시작해서, 산업 부문, 그리고 탈라라의 유전 지대를 장악하기 위해 투자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 유전지대는 양키들과 그들의 석유 회사가 장악했습니다. 하지만 최근들어, 일본이 기름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투자 공세를 벌임으로서 두 초강대국 사이의 갈등을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 시민들이 초강대국 사이에 속수무책으로 껴있는 상황속에서, 이 전쟁을 승리 하기 위해선 카드패를 제대로 사용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외세의 탐욕에서 벗어나 승자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소비재 공장: 30%
안정도: -6%
연간 GDP 성장 요인: +8%
* 다양한 문제를 떠안은 국가
한때 잉카 제국의 심장부였던 우리의 아름다운 나라는 메스티소, 외국인 이민자, 원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들과 전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정부는 농업 개혁, 정글 통합, 안데스 지역 개발 등을 등한시 해왔습니다. 게다가 이 문제에 항의하는 사람들 조차 뭘 할수도 없었습니다. 우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겁니다! 조만간 우리가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공한다면, 우린 시민들로부터 지속적인 신뢰를 얻을 것입니다.
안정도: -15%
전쟁 지지도: -8%
}}}
지도자는 마누엘 프라도 우가르테체. 프라도 본인은 1957년 취임한 두 번째 임기가 끝나가는 상황이고, 1963년 선거에서 6명의 후보가 대통령직에 도전하고 있다. 임기 말에 프라도가 암살당하면 군부 쿠데타로 나라가 뒤엎어지는 티저도 공개되었다.

페루 북부에 퍼져 있는 좌익 반정부단체 APRA의 진압 문제로 인해 1948년 마누엘 오드리아가 쿠데타를 일으켜 호세 부스타만테 이 리베로 대통령을 몰아내고 1950년 집권하였으나, 미국과 대내외의 압력으로 인해 1956년 선거에서 다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프라도 대통령과 오드리아는 이전 행정부의 부패를 수사하지 않도록 하는 거래가 이루어지는등 등 페루의 민주주의의 길은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
  • 정상적인 1963년 대선 진행시
    • 페르난도 벨라운데 테리(민중행동당 - 민주연합, 자유주의)
    • 마누엘 아르투로 오드리아(오드리스타 국가연합, 우익 포퓰리즘)
    • 마누엘 세오아네 코랄레스(국민과 국가를 위한 연합, 좌익 포퓰리즘)
    • 페드로 벨트란 에스판토소(국가민주보수동맹(국민연합), 보수주의)
    • 엑토르 코르네호 차베스(국가민주보수동맹(기독민주당), 기독교 민주주의)
    • 카를로스 모레이라 이 파스 솔단(국가민주보수동맹(페루민주운동), 보수주의)
  • 프라도 대통령 암살시

    • 루이스 가요 포라스(보수민주주의)가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이후
    • 루이스 페데스 고도이(페루 군부, 군사독재)의 군사정권이 탄생하거나
    • 정상적으로 63년 선거가 진행이 가능하나 마누엘 세오아네가 대통령 당선시 군부가 개입하여 후보직 사임을 강요함으로서 2등 후보였던 페드로 벨트란이 취임한다.

TT 3 업데이트 이후 일부 로어가 압축되었는데[48], 페르난도 벨라운데와 마누엘 오드리아 2명으로 압축되었으며 추가적으로 루이스 베요다(기독민주당, 기독교 민주주의)라는 인물이 추가되고 오드리아의 군부 친위 쿠데타 로어가 추가되었다. 다만 커스텀패스에서는 후보가 압축된것 외에는 커스텀 로어 설계가 되어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알수 없는 상황.

2.4. 아르헨티나

플레이 불가

티저 예고
  • 집권이념: 국민자유주의(타협하지 않은 급진시민연합 - 자유민주주의)
  • 트라움비라투스의 옵저버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아르헨티나 경제권
  • {{{#!folding 국가 정신
    • 무너진 규율

군내에서 확립된 전통의 이러한 파괴는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부활한 장교들의 페론 귀환 가능성에 대한 편집증적인 정치 관리와, 지속적이고 굴욕적인 군사적 계획으로 표현되어 프론디시 대통령은 몇 번이고 군사적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혼돈의 상태에 대한 반발이 커지는 가운데, 프론디시 대통령과 다른 사람들은,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로 결정하였고, 그들은 역설적으로 끊임없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필요한 명령을 군의 "전문가"에게 하기를 거부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쿠데타의 합법성과 관련된 사실상의 정부 원칙(De Facto Government Doctrine)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은 아르헨티나 판례법의 오랜 요소들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으며, "혁명"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는 위험요소가 되게 하였습니다.||
사단 조직력: -20%
최대 지휘력 획득 증가치: -50%
매월 군 전문성 변화: -0.30
* 달러, 리라, 그리고 우울

언론이 선정적인 기사로 불안감에 박차를 가하면서, 환율에 대한 집착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상업이 큰 비율을 차지하는 아르헨티나의 경제 특성상, 환율은 경제의 신용성과 거래성을 나타내는 비교적 정확한 수치로서 기능합니다. 그렇기에, 정부의 경제 실적은 무엇보다도 지금 당장의 환율로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월간 신용 등급 상승률: -2.50
* 구조적 분열

- 파블로 곤살레스 베르헤스 박사||
매일 정치력 획득: +0.50
안정도: -10%
* 후안 도밍고 누구?

1항) 실각한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긍정할 목적으로 이미지, 상징, 신호, 표현, 교리, 기사자료 및 예술 작품을 활용하여 페론주의 개인이나 단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위

페론주의자들 또는 그들의 친척들의 초상화나 조각상, 페론주의를 상징하는 문장과 깃발, 퇴임한 대통령의 본명, "페론주의", "페론주의자", "정의주의", "정의주의자", "제3지대", PP라는 약칭, 실각된 정권에 의해 지정되었던 기념일, "페론주의자 행진곡"와 "에비타 장군" 또는 그와 비슷한 선전물, 퇴임한 대통령이나 영부인의 연설문이나 그에 준하는 표현 등을 사용하는 행위

2항) 1항에서 정의한 목적을 가진 개인이 1항에서 정의한 것들을 주장하는 것,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1항에서 정의한 것과 같이 해석될 수 있으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페론주의를 상징하는 개인, 유기체, 사상이 연상될 수 있는 이미지, 상징, 표현, 교리, 기사자료, 예술 등을 사용하는 행위

칙령 41/61, 1956년||
안정도: -15%
매일 가부장주의 지지도: -0.02
}}}
  • {{{#!folding 내각
  • 아르투로 프론디시 지도자 {{{#!folding 인물설명
    권모술수를 가진 종이인형: 매일 정치력 획득: +0.45, 안정도 : -5%
14명의 형제자매중 12번째로 태어난 어린 아르투로와, (그의 모든 형제자매는) 어머니의 강요로 인해 지적인 경력을 쌓아야 했었습니다. 그는 그 운명을 피하기 위해 한때 축구선수가 되려고도 하였지만, 불의의 부상은 그를 부에노스아이레스 법대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여기서, 이전에는 평범했던 프론디시는 탁월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당시 군사정권이 임명한 대학 총장에 반대하는 의미로 졸업 증명서를 받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 이후 급진당(UCR)을 통해 정계에 발을 들이고서, 프론디시는 리카르도 발빈과 함께 1946년 대리인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여러 차례 실패한 군사 쿠데타에 참여했었습니다. 두 사람은 MIR(비타협적 혁신 운동)의 지도자로도 활동하였고, 1951년 선거에서는 UCR의 집권을 위해 파벌을 이끌었으며, 이 선거에서 이들은 한 팀으로 출마했다가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둘은 반페론파의 수장이 되면서 정치적 생명을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특히 프론디시는 "석유와 정치"라는 민족주의적인 책을 저술하면서 페론주의자들이 해외 석유기업과 접촉하려는 모습을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 된) 쿠데타 음모의 주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폭군이 물러난 이후 프론디시의 무절제한 행동은 우려할 수준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UCR 국가위원회에 대한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1958년 강령으로 발빈을 대체하고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며, UCR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분열시키는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자신의 UCR-I가 발빈의 UCR-P를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지자 프론디시는 쫓겨난 페론주의자들에게 지킬수도 없는 약속을 하였고 그 표를 이용해 선거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취임 직후 그는 자신의 선거계획과 완전히 다른 노선을 통해 정부를 이끌었습니다.

여기에, 프론디시가 페론주의자들에게 했던 약속이 드러나자 UCRI와 군대는 분노하였으며, 그 세 파벌은 그의 통치를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프론디시의 끊임없는(그리고 제대로 할 수도 없을 것으로 보여지는) 전략은 아르헨티나를 빠르게 정치적 혼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그의 비전은 그의 산업주의적 경제정책의 놀라운 성공으로 입증되기도 하였으나, 그 성과는 그의 정부를 비난하는 많은 정치적인 파업활동과 군부의 움직임로 인해 제대로 조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
* 알프레도 로크 비톨로 내무장관 (자유급진주의 - 자유주의)
조용한 일꾼: 일일 정치력 획득 +0.15, 자원 획득 효율 +10%
{{{#!folding 인물설명

1958년 프론디시가 UCR을 분열시켰을 때도 비톨로는 멘도사 주지사 경선에서 패해했음에도 다시 한 번 승리한 편에 머물기로 선택했고, 타협하지 않은 급진시민연합(UCRI)에 들어갔습니다. 그 보상으로 그는 정무와 경찰업무를 폭넓게 다루는 내무장관직에 임명되었으며, 현재까지 프론디시 내각에서 놀라울 정도로 오래 재임하는 유일한 장관이 되었습니다.||}}}
  • 미겔 앙헬 카르카노 외무장관 (자유보수주의 - 보수주의)
    노련한 대사: 안정도 +5%, 관계 개선 평판 +10%, 무역 관계 요인 +10%
    {{{#!folding 인물설명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프랑스, 영국, 미국 대사로 근무한 카르카노는 조셉(조지프) 케네디 가문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 관계는 군사적 압력 아래 프리헤리오의 협력자들이 축출된 이후 그가 외무장관으로 임명될수 있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 알바로 카를로스 알소가라이 재무장관 (자유주의)
    조합 분쇄자: 안정도 -10%, 공장 생산량 +10%, 조선소 생산량 +10%
    {{{#!folding 인물설명

그의 사상은 대중의 정서와 상당히 맞지 않고(심지어 가장 보수적인 분야에서까지) 그가 있는 독립시민당의 영향력이 무척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군대와의 관계는 그를 1956~1958년 상무부 장관으로, 그리고 현재 재무부 장관직에 앉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의 임명은 (원래 그 자리를 차지했어야 할) 로젤리오 프리헤리오의 추천으로 이뤄진것으로 보여지는데, 그의 개발주의적 계획를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인플레이션 통제를 할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프론디시에게 실망스럽게도, 그는 그 당시의 약속을 대부분 어겼고, 그와 군의 관계는 그의 자리를 대체하기 매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 로센도 프라가 전쟁부 장관 (자유보수주의 - 보수주의)
    {{{#!folding 인물설명
    은퇴한 장군: 사단 조직력 +5%,일일 지휘력 획득 요인 +10%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라고 자칭한 프라가는 그의 과거 동지였던 토란조 몬테로 장군과 군대 내에서 그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들에 대해 조금씩 불신관계를 쌓고 있습니다. 그의 성공은 다가가기 쉬운 그의 성격과 개인적인 명성에 힘입어서 프론디시 정권의 생존에 꼭 필요한 존재로 밝혀질 것입니다.||}}}
}}}* {{{#!folding 멸망 문구
And the free people of the world replied: "And with glory, they died."
세계의 자유인들이 화답하네: "그들은 명예롭게 죽었도다."}}}

지도자는 아르투로 프론디시. 페론의 실각 이후 급진시민연합이 프론디시가 이끄는 타협하지 않는 급진시민연합(UCR-I)와 리카르도 발빈이 이끄는 인민급진시민연합(UCR-P)로 분열된 이후, 1961년 부통령 특별선거에서 UCR-I가 밀어주던 에치테파레보르다가 낙선하고 UCR-P의 리카르도 발빈이 당선되면서 아르헨티나의 정국은 급격히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특히 1958년 자신의 대통령 선거 승리를 위해 프론디시가 실각한 페론주의자 세력과 접촉한 것이 드러남에 따라 자신을 지지하던 당내 세력, 군부 등의 반발까지 떠안게 된 상황.

이런 정국은 결국 군부 일부 파벌의 쿠데타 시도로 인해 절정에 다하게되며, 쿠데타의 성공, 아르투로의 전략에 따른 계승등의 다양한 결과가 나옴에 따라 본격적인 루트가 분할되기 시작한다.

종속국으로 티에라델푸에고 지역이 존재한다. 해군 사령관이 지도자를 하고 있는 점과 운하에 관련된 국민정신을 보면 파나마 운하 구역과 유사한 사례로 보여진다.

주요 루트는 크게 세 갈래로 후안 페론의 복귀, 반페론 민주주의, 군부 독재가 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역시 페론의 복귀 루트.

남아메리카 냉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 인접국 브라질과 경쟁중이며, 좌측 이웃 칠레와는 파타고니아, 라구나델데시에르토 등에서 다양한 분쟁을 한다.

2.4.1. 페론 루트

호세 마리아 기도(프론디시 실각후 승계) - 로돌포 마르티네스(기도[49] 행정부 쿠데타) - 비셴테 솔라노 리마(63년 선거)[50] - 호세 에밀리오 비스카(선거기간 임시대통령) - 후안 도밍고 페론(1기) - 후안 페론(2기)-리카르도 발빈(페론주의 해체), 카를로스 사울 메넴(친미 페론주의), 마누엘 안초레나(친독 파시즘 페론주의), 이사벨 페론(영적 나치즘)-훌리안 리카스트로(페론주의 후계자 루트 한정 쿠데타)

반페론주의 정치인들의 무리수와 자폭으로 페론이 복귀한다. 페론은 처음에는 페론주의(권위민주주의) 이념을 가지지만 2번째 임기 도중 부통령이 갑작스레 테러에 휘말려 사망한 이후 긴급 선거로 부통령을 선택하게 되는데[51], 후계자 성향에 따라 페론주의(권위민주주의), 개인독재(전제주의), 파시스트 포퓰리즘(파시즘) 이 될 수도 있다. 또는 페론이 이들 중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여길 시에는 의도적으로 반페론주의 야권 정치인인 리카르도 발빈에게 정권을 넘기도록 페론주의를 스스로 해체하는 경우도 있다.[52]

페론 이후의 대통령이었던 이사벨 페론은 매우 부정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념부터 영적 나치즘 지도자이다.[53] 정확히 말하자면 이사벨 본인은 꼭두각시에 불과하고 이사벨을 뒤에서 조종하는 호세 로페스 레가가 부르군트와 관계가 있었던 신비주의자이자 영적 나치즘의 추종자이기에 이사벨의 이념이 영적 나치즘으로 표기되는 것이다.

참고로 OTL에서도 이사벨 정권의 실세였던 호세 로페스 레가는 정통 페론주의자로 파시스트, 반공주의 성향의 극우주의자였으며 페론 정권의 노조 및 좌파 탄압을 주도했다. 파시즘이 주류 이념이 된 TNO 세계에서는 더욱 급진화된 것으로 보인다.

2.4.2. 반페론 민주주의 루트

  • 63년 선거 후보자 : 아르투로 움베르토 일리아(급진시민연합-인민파), 호세 루이스 로메로(사회당), 에밀리오 아르도이(국민민주당), 알프레도 팔라시오스(민주연합-사회당)->실바노 산탄데르(민주연합-급진시민연합(인민파))[54], 페레즈 콤팡크(국민전선-타협하지 않는 급진시민연합(개발주의파))
  • 69년 선거 후보자 : 로돌포 마르티노빅(인민급진시민연합(코르도바 라인)), 에밀리오 호프레(보수민주당), 기예므로 에스테베스 보에로(사회당), 시프리아노 레예스(정의주의에 충성하는 인민전선(노동당))

2.4.3. 군부독재 루트

  • 63년 이전 쿠데타(적색파 군부) : 라울 알레한드로 포기 - 벵하민 메넨데스 - 아이삭 로하스 - 페드로 에우헤니오 아람부루
  • 63년 선거 이후 쿠데타[55](청색파 군부) : 후안 카를로스 옹가니아 - 로베르토 마르셸로 레빙스톤 - 알레한드로 아구스틴 라누세

2.5. 티에라 델 푸에고 총독부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식민정부 (전제주의, 아르헨티나 해군)
  • 아르헨티나의 군사 정부
  • 경제: 계획경제/아르헨티나 경제권
  • {{{#!folding 국가 정신
    • 세계의 끝에 위치한 영지

법령 5626은 해당 영토에 대한 해군의 통제권을 확립시키고, 모든 공권력을 총독에게 부여했으며, 명목상으로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이 자리는 해군 고위 장교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이곳의 독재적인 성격은 차치하고, 성공적인 식민지화 장려과정은 이 지역을 성공적으로 개발시키고, 불모의 남쪽 땅에서 아르헨티나국의 존재를 크게 강화시켰습니다.||
  • 분쟁지대

전통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군의 강경한 입장을 감안해 보면, 그들의 총독령식 지배는 이러한 갈등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정식 명칭은 티에라 델 푸에고 해양 총독부. 지도자는 호세 마리아 구즈만. 수도는 우수아이아. 비글 해협을 일부 통제중이다.

1943년 아르헨티나 군부 쿠데타 당시 남쪽 영토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군정을, 호세 마리아 구즈만 소장이 1956년 페론의 실각 당시 해당 군정을 재복원하면서 설립된 해양 정부. 이곳은 명목상으로 아르헨티나 해군의 영지와 마찬가지 같은 곳으로, 캐나다령 포클랜드, 아르헨티나령 남극, 티에라델푸에고와 관련된 칠레와의 분쟁을 하고 있는 곳이다.

2.6. 칠레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국민자유주의 (자유주의, 칠레 민주전선)
  • {{{#!folding 국가 정신
    • 총체적 사회문제

독립 이래로, 지금까지 있어왔던 여러 정부는 이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왔습니다. 비록 몇몇 성공사례가 있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까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칠레의 빈곤문제는 계속되고 있으며, 도시의 군집된 아파트부터 시골의 가난하고 불행한 농부들까지 칠레 어디를 가건 이 냉혹한 현실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인구이동, 광범위한 문맹, 문제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끊임없는 비용 지출 부제 같은 여러가지 사회적 병폐를 야기합니다.

정치적 상황이랑 관계없이 어떤 정부든, 현재건 미래건 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 문제를 무시한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것입니다.||
안정도: -15%
연간 GDP 성장 요인: -0.05%
납세 인구: -20.00%
월간 빈곤률 변화: -0.05
* 정치적 분열

강력한 야당 연합의 형성이 끊임없이 정치적 포위망을 형성하고 여당을 방해하며, 강력했던 자유당은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무기력해져 있으며, 최악의 문제는 정치적 극단주의 세력의 성장과 유래없을 정도의 증가하는 폭력행위가 이 나를 완전히 마비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젋은이들은 이 나라가 마지막으로 안정되어 있던 때를 기억조차도 하지 못합니다.

기술관료 개혁가 호르헤 알레산드리의 칠레 대통령 선출과 그의 초기 임기때는 많은 칠레인들이 희망을 가졌습니다. 이 위기가 점차 끝나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발디비아 지진 이후의 정치적 위기는 이를 악화시킬 뿐이었고, 이제 알레산드리에게는 암울한 현실만이 남아 있습니다. 국가를 개혁하려던 그의 시도는 FDC를 양극화시키는 결괄 가져왔고, 재난 이후 지뤄진 1961년 총선 이후, 이 연합의 단결은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입니다.||
정치력 획득: -50%
안정도: -10.00%
매일 자유보수주의 지지도: -0.02
* 경제적 복종

과거의 영국인이건, 현재 미국인들이건, 최근의 일본인들이건 간에, 칠레는 나라를 분열시키겠다고 위협하는 해외 세력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이죠.||
기타 수입(십억 달러 기준): +0.20
(미합중국)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15.00%
(대일본제국)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10.00%
* 농촌 시한폭탄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서 하이엔다(대농장)의 준봉건적 조건에서 생활받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빈곤 농민층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농촌 개혁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이 지역의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의 힘이 증가하는 가운데 남부는 비유적으로도, 어쩌면 말 그대로도 불화와 분노의 불길에 휩싸이기 직전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매주 안정도: 0.10%
}}}
  • {{{#!folding 멸망 문구
    A refuge from oppression no more, the tomb of the free forevermore.

    이제 압제를 피할 곳은 없습니다. 자유의 무덤은 영원합니다.}}}

지도자는 호르헤 알레산드리.

실제 역사와 같이 1962년 월드컵은 칠레에서 개최된다. 칠레-이탈리아 경기가 축구를 빙자한 패싸움이 된 것도, 브라질이 우승한 것도 동일. 1960년 발디비아 지진을 겪고도 재건에 성공하여 월드컵을 개최하였다는 기사로 내용이 수정되었다.

아래는 칠레의 정상적 선거를 통한 지도자 목록이다
  • 라울 레티그(칠레 민주전선 (통합자유당 - 급진 리버럴), 급진자유주의)
  • 훌리오 필리피 이스키에르도(칠레민주전선, 자유주의)
  •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기독교민주당, 기독교 민주주의)
  • 호르헤 프라트 에차우렌(국민노동당, 우익 포퓰리즘)
  • 살바도르 아옌데 고센스(대중행동전선, 인민전선)

이중 호르헤 프라트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서 민간독재 정권이 들어서거나, 의회의 반격으로 인해 카라비네로스(칠레 경찰) 장교인 호세 세풀베다 갈린도(과도정부)가 이끄는 임시정부가 들어서기도 한다.
또는 군부 쿠데타 컨텐츠로 친이베리아적 군사정권 로베르토 비아욱스(국민혁명전선, 국가생디칼리즘)가 집권하거나, 이에 반대하는 해군 제독 호세 토리비오 메리노(군사정부)가 역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한다.

루트 설정에 따라 페루와 함께 독자적인 경제권인 '안데스 조약'을 창설할 수 있으며, 여기에 브라질을 초청할 수도 있다.[56]

실리콘 드림 업데이트 이후 우고 세페다 지도자 루트가 삭제되었다. 알레산드리가 임기 종료 이전 사임을 선택할 수 있는데, 사임을 선택할 시 대통령직을 승계받는 훌리오 필리피의 성공 여부에 따라 64년 선거의 극단화 유무가 결정된다. 정상적인 임기로 종료될 경우 64년 선거는 기민당의 에두아르도 프레이가 승리하나, 64년 선거가 소위 10월 위기로까지 극단화된다면 좌익 세력을 이끄는 아옌데, 우익 세력을 이끄는 프라트, 그리고 급진 리버럴파를 이끄는 라울 레티그가 경쟁하게 된다.

2.7. 우루과이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자유보수주의 (보수주의, 전국정부협의회)
  • {{{#!folding 국가 정신
    • 스위스의 환영: 의심스러움

우루과이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선출된 부패한 정치 계층은 우루과이산 제품이 언젠가 다시 요구될 것이기에 현재의 위기는 저절로 지나갈 것이라 주장하며 그 희망에 여전히 매달리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이 주장이 사실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만약 바트예가 구축한 민주주의가 사실상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게 될 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우루과이는 주저앉았으나, 아직 무너지진 않았습니다.||
매월 인구: -5.0%
안정도: -10.00%
GDP 성장률: -0.10%
* 불구의 몸

서유럽의 중요 시장에 대한 접근이 줄어들고, "OFN으로의 전환"이라는 논리 아래 우루과이는 미국에 접근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성공적으로 이윤을 창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북쪽의 거인에 대한 의존도를 증가시켰습니다. 이베리아와 일본과의 거래는 증가하는 외세의 영향력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루어졌으나, 잃어버린 시장을 대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과의 관계 회복은 라이히와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으나, 과거, 현재의 독일이 주도하는 침략은 이 개념을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의 친파시스트적 이력과 결합하여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어렵게 합니다.||
GDP 성장률: -0.10%
(독일 민족의 대게르만국) 무역 거래 평판 획득치: -35.00%
(미합중국)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10.00%
(대알본제국)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2.50%
(이베리아 연방) 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2.50%
* 죽음의 상인
(Fray Bentos se fue a la guerra, ¡qué dolor, quédolor, qué penal)

아메리카의 스위스 뒤에 숨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콘비프와 섬유 수출이죠. 전자는 영국인들이 즐겨 먹었는데, 많은 이들에게 수치스럽게도 2차 세계대전 동안은 독일 군인들이 이를 소비했습니다. 우루과이는 수출 다변화를 시도했는데, 여기서 진정한 문제는 공화국이(그리고 공화국에게 가장 중요한 복지의 원천]의 기반이 전시 수요에 달려 있다는 점인데, 평화 시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50년대 후반의 경제 붕괴로 인해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썩은 세계에서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해서, 우루과이를 살핀 소들의 시대로 되돌리진 않을 것입니다. 우루과이 시민들과 정치 계층이 무시해버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현재의 발전 모델이 유용성을 지나, 이젠 낡은 방식이란 겁니다. 공화국을 구하려면 우루과이는 새로운 전쟁에서 이익을 얻을 뿐만 아니라, 현대화를 이루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정직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다. 만일 이 일에 실패한다면, 국가는 끊임없는 붕괴의 나락 속으로 빠질 것입니다.||
무역 거래 평판 획득치: +10.00%
기타 수입(십억 달러 기준): +0.01
외국의 전쟁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내부의 적

결국, 아메리카의 스위스라는 환상이 국민들의 눈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국가의 모든 문제를 공동의 적으로 돌리는 것이 쉬운 방법 아니겠습니까? 우루과이인들이 외국에 대한 전복을 두려워하는 것이 DFN과 정치인들에게 얼마나 유용한 수단이 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들은 공화국이 자유 세계의 편에 확실히 서도록 보장하거나, 자신들의 정적에 대한 자유 선거 과정에서의 프로파간다로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안정도: -5.00%
이념 변화 방어: -10.0%
국가사회주의 외교 수용: -35
}}}
  • {{{#!folding 멸망 문구
    Who will cry for the neutral?

    누가 중립국을 위해 울어줄까요?}}}

지도자는 국가평의회. 실질적인 지도자는 평의회 의장인 에두아르도 빅토르 아에도이며, 1962년 2월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1930년대부터 지속된 가브리엘 테라의 마르시스트 독재정권은 세사르 차를로네에 의해 한 차례 연장되었는데, 그 아래에서 민주화 정치인으로 두각을 드러내던 루이스 바트예를 견제하고자 부통령 자리에 앉힌 것이 화근이 되어 46년 집권한 베레타 대통령 사후 루이스 바트예의 신바트예주의 정권이 탄생한다. 루이스가 이끄는 콜로라도당 정권은 삼촌이 구상한 평의회 제도를 부활시킨다거나 대외적으로 친미기조를 이어갔으나, 1950년대 말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콜로라도당의 96년 집권이 종말을 맞고 상대적으로 파시스트 정권에 유화적인 백색당에게 58년 선거에서 패하게 된다. 이후 1958~62년 선거에서 양당은 내부적인 견해가 나뉘어지며 분열된 채 62년 2월에 열리는 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정치 지형도는 전통적인 우루과이 양당인 국민당(백색당)과 콜로라로당(적색당)이 양분하고 있으며, 각 당내에서 62년 선거에서는 2개의 파벌, 즉 4가지의 루트로 나뉘어진다.
  • 엘베르토 아로세나(국민당, 에레라-농촌주의자 연합)
  • 다니엘 페르난데스 크레스포(국민당, 민주백색연합(UBD))
  • 오스카르 헤스티도(콜로라도당, 콜로라도 바티예스타 연합(UCB))[57]
  • 루이스 바티예 베레스(콜로라도당, 리스트 15)

집권당이 변경하기는 하지만 평의회제도를 폐지시키고 대통령제로 환원할 수 있는 시점은 1966년 선거 이후이다.

아케이드 모드 디시전을 통해 개그성 루트가 나타나는데 우루과이 골목마다 무료 우유 공급[58]을 해주기 누르면 토르토레이가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기사와 함께 동방 연맹 SS기사단국(농본 스파르타주의)이 세워지며 도밍고 토르토레이가 등장한다. TT3 패치 이후 필라르 바리오스[59]라는 흑인 공동체 정당이 이끄는 범아프리카주의 우루과이도 등장했다.

2.8. 콜롬비아 공화국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귀족적 보수주의 (콜롬비아 보수당, 전제주의)
  • {{{#!folding 국가 정신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휴전이 1958년 이루어져 지금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휴전협정에 균열이 일어나고, 산발적 교전이 벌어지고, 식량난이 가중됨에 따라 이 평화는 곧 끝날 것으로 보여지며, 콜롬비아는 다시금 혼란에 빠질 지도 모릅니다.||
매주 인력: -40
매월 인구: -40.0%
연간 GDP 성장 요인: -50.00%
육군 비용 변동치: -30.00%
납세 인구: -50.00%
* 거인의 어깨 위에서

물론, 이런 배후를 대는 이유도 있습니다. 가이탄은 모든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았기에, 정치인들은 그를 이용해 자신의 대의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자신의 정적을 위대한 카우디요를 암살한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비난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자신들의 정적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50
전쟁 지지도: +15.00%
* 농업 위기

이런 오래된 문제 외에도, 식량 부족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점차 대두되고 있습니다. 내전의 여파로 일어나는 살인, 억압, 농촌 인구의 이주 등으로 인해 식량 생산을 어렵게 하면서 콜롬비아 전역은 기아와 기근의 위협에 직면하였습니다.||
매월 인구: -10.0%
안정도: -20.00%
* 가짜 자유

물론, 현실은 약간 다릅니다. 보고타 정부가 주장하는 자유는 억압, 계엄령, 부정선거, 정치적 암살등이 일상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자유입니다. 국민들은 이제 이런 짓거리에 익숙해져 있으며, 보고타 정부가 주장하는 뻔뻔한 거짓말과 위장된 자유에 점차 염증을 표하고 있습니다.||
안정도: -25.00%
전쟁 지지도: -10.00%
* 콜롬비아-미국 친선의 붕괴
콜롬비아와 미국은 1940년의 중립 선언과 미국의 전쟁 참여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입장 표명 이후, 양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1965년 보고타에 마지막 미국 외교관이 철수함으로서 외교 관계가 확실히 붕괴되면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오랜 파트너간의 외교적 근접성에 대한 문제는 중앙정부가 여전히 외교에 대한 논의를 해야하는 여지를 남겨 두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5.0%
GDP 성장률: -0.30%
무료 생산 단위: -2.0
(미합중국)국가에 대한 공격 해택: +5.0%
(미합중국)타국에 대한 방어 해택: +5.0%
(미합중국)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66.00%
}}}
지도자는 라우레아노 고메스.[60] 2차 세계 대전이 추축국의 승리로 끝난 여파 때문인지 보수당이 현실보다 훨씬 우경화되고 친파시스트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1954년 자유당의 호르헤 가이탄[61] 대통령이 암살당하고[62] 그 여파로 보수당-자유당 사이의 내전이 벌어지면서 이러한 충돌은 더욱 가시화되었으며, 1956년 휴전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고메스는 공포를 기반으로 국가를 지배하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이베리아 연방과 친한 편이며 이베리아 경제권에 가입되어 있다.

고메스 사후 로베르토 우르다네타 아르벨라에스(귀족적 보수주의)가 정권을 이으나, 구스타보 로하스 피니야[63](개인독재->선거 이후 사회민족주의) 장군이 고메스 정권을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다자외교정책 성향의 콜롬비아를 만든다.

피니야 정권은 베네수엘라에 망명해 있는 보수당-자유당 연합 국민전선 민주파의 쿠데타를 통해 정권이 뒤집어질 수 있으며, 국민전선이 승리시 보수당(당내 중도파)의 기예르모 레온 발렌시아(기독교 보수주의), 자유당의 알베르도 예라스 카마르고(진보자유주의)가 집권하며 양당은 이전의 파멸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양당이 협치를 할 것이라는 예고를 보여준다. 이즈음 되면 파시즘 세력이 씻겨나갔다고 판단하게 되었는지 미국 또한 콜롬비아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시도한다.

실리콘 드림 업데이트 이후 전후 컨텐츠가 추가되었다. 악화되었던 대미 관계 개선과 공식적인 선거를 통한 후임 지도자 선출등이 추가되었다. 콜롬비아 관련 전체 경로도

2.8.1. 제2애국군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아리오크리오이스모 (민족운동, 국가사회주의)
알폰소 우리베 미사스[64]가 다스리는 국가. 혁명전선이나 누에바그라나다가 게릴라전(게임 상에서는 국경 분쟁으로 나온다.)을 진행하다보면 바랑키야에서 독립한다. 미사스는 크리올부터 기원한 백인, 즉 메스티소나 다른 백인들을 나치 독일의 아리아인처럼 아메리카의 최고 우등 민족이라 여기고, 다른 원주민들이나 메스티소화를 반대하는 모든 인종들을 말살해야한다는 아리오크리오이스모라는 사상을 믿으며 민족운동을 이끌고 있다. 이 아리오크리오이스모는 어쩌면 힐베르토 아베다뇨의 파시즘보다 더 급진적이다. 백인과 메스티소들은 정책에 동참하여 크리오요라는 정부가 인정한 우등 민족으로서 살아가지만, 원주민이나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들은 크리오요에 찬성하고 동화되지 않는 한 노예가 되고 박해받는다. 어느 정도 쇄국적인 면도 보이는 지 아리오크리오이스모 하에는 외국인도 박해를 받는다.

독립 한 이후에는 독일의 지원을 받아 독일 경제권에도 들어간다.

내전 직후 미사스는 암살당하고, 독일계 후계자 헤리베르토 슈바르타우가 이끄는 정통 국가사회주의 세력이 봉기를 벌여, 2애국군을 이어받은 수장 디오헤네스 힐과 토벌당한 자유주의 세력인 연합민주전선과 연합해 2차 내전을 벌인다. 후자가 승리할 시 다시 자유주의 세력과의 3차 내전이 벌어진다.

2.9. 콜롬비아 혁명연합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가이탄주의 (8월 7일 공화전선, 진보주의)
  • {{{#!folding 국가 정신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휴전이 1958년 이루어져 지금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휴전협정에 균열이 일어나고, 산발적 교전이 벌어지고, 식량난이 가중됨에 따라 이 평화는 곧 끝날 것으로 보여지며, 콜롬비아는 다시금 혼란에 빠질 지도 모릅니다.||
매주 인력: -40
매월 인구: -40.0%
연간 GDP 성장 요인: -50.00%
육군 비용 변동치: -30.00%
납세 인구: -50.00%
* 거인의 어깨 위에서

물론, 이런 배후를 대는 이유도 있습니다. 가이탄은 모든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았기에, 정치인들은 그를 이용해 자신의 대의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자신의 정적을 위대한 카우디요를 암살한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비난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자신들의 정적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50
전쟁 지지도: +15.00%
* 농업 위기

이런 오래된 문제 외에도, 식량 부족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점차 대두되고 있습니다. 내전의 여파로 일어나는 살인, 억압, 농촌 인구의 이주 등으로 인해 식량 생산을 어렵게 하면서 콜롬비아 전역은 기아와 기근의 위협에 직면하였습니다.||
매월 인구: -10.0%
안정도: -20.00%
* OFN의 개입

현재 OFN과 베네수엘라는 혁명운동에 많은 지원을 제공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상황이 변화하지 않는 한 이 상황을 유지할 것입니다.||
육군 조직력 회복: +5.00%
항복 한계치: +50.00%
포위 불이익: -25.0%
근접항공지원 피해량 감소: +25.0%
* 성자와 죄인의 군대
대의를 위한 군대를 만들 때, 전쟁이 가져오는 세상의 모든 유혹에서 천사들만의 힘을 이용하려는 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진실은, 모든 종류의 능력과 자질을 가진 자들은 후방에 남은 자들의 웅대한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 전선을 보내집니다. 콜롬비아엔 약탈자, 도적, 살인자들이 부대에 깔려 있기에, 전선에 나갈 전사로의 기준이 무척 낮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아마, 전쟁이 끝나면 의로운 자들은 성자로서 환송받는 날이 올 겁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들은 이 땅이 낳은 가장 끔찍한 죄인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사단 조직력: -5.0%
사단 공격: +7.5%
AI 변동치: 공격 중점: +50.0%
최대 일일 지휘력 획득 증가치: -15%
매월 군 전문성 변화: -0.05
}}}
지도자는 과달루페 살세도 운다.[65]

가이탄 암살 이후 콜롬비아판 수정의 밤인 검은 셔츠단이 자유주의자들을 향한 테러를 벌이기 시작하자, 살세도는 가이탄 대통령의 유지를 이어 동부에서 좌파 세력을 규합하여 혁명전선을 설립하고 동부 일대에서 날뛰는 검은 셔츠단을 몰아냈다. 가이탄 대통령이 생전 친미+자유주의적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자유 국가 기구는 시작 기점으로 혁명전선이 좌파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에서 이들을 지지하며, 내전에서 승리할 시 이들은 자유 국가 기구에 가입한다.

내전 이후 선거를 치루게 되는데, 알폰소 로페스 미켈센이 이끄는 가이타니스타 세력의 좌익 포퓰리즘 정부, 카밀로 토레스 레스트레포가 이끄는 기독사회주의 정권, 힐베르토 비에이라 위테의 볼셰비즘 정권,[66] 마누엘 세페타 바르가스가 이끄는 피니야 정부의 잔당 세력의 사회민족주의 정권으로 계승된다. 여기에, 전후 선거가 교착 상황으로 이어질 시 공산주의 세력과 가이타니스타들의 권력투쟁을 통해 상대파에 대한 숙청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2.10. 누에바그라나다

플레이 불가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휴전이 1958년 이루어져 지금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휴전협정에 균열이 일어나고, 산발적 교전이 벌어지고, 식량난이 가중됨에 따라 이 평화는 곧 끝날 것으로 보여지며, 콜롬비아는 다시금 혼란에 빠질 지도 모릅니다.||
매주 인력: -40
매월 인구: -40.0%
연간 GDP 성장 요인: -50.00%
육군 비용 변동치: -30.00%
납세 인구: -50.00%
* 거인의 어깨 위에서

물론, 이런 배후를 대는 이유도 있습니다. 가이탄은 모든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았기에, 정치인들은 그를 이용해 자신의 대의에 합법성을 부여하고, 자신의 정적을 위대한 카우디요를 암살한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비난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자신들의 정적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50
전쟁 지지도: +15.00%
* 농업 위기

이런 오래된 문제 외에도, 식량 부족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점차 대두되고 있습니다. 내전의 여파로 일어나는 살인, 억압, 농촌 인구의 이주 등으로 인해 식량 생산을 어렵게 하면서 콜롬비아 전역은 기아와 기근의 위협에 직면하였습니다.||
매월 인구: -10.0%
안정도: -20.00%
* 반동들의 소굴

이는 누에바그라나다의 정치적 안정성을 이상치보다 훨씬 낮게 만들었지만, 나름의 이점도 있었습니다. 전시, 그리고 기타 활동을 유지하고 이를 지원하는 비용은 저렴해졌으며, 범죄 네트워크를 통해 구축한 국제적 연결망은 정권에 많은 기회를 부여하였습니다.||
육군 경험치 획득량: +0.02 매일
사단 조직력: +10.0%
비전투 상황에서 보급품 고갈 불이익: -20.0%
* 성자와 죄인의 군대
대의를 위한 군대를 만들 때, 전쟁이 가져오는 세상의 모든 유혹에서 천사들만의 힘을 이용하려는 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진실은, 모든 종류의 능력과 자질을 가진 자들은 후방에 남은 자들의 웅대한 이상을 수호하기 위해 전선을 보내집니다. 콜롬비아엔 약탈자, 도적, 살인자들이 부대에 깔려 있기에, 전선에 나갈 전사로의 기준이 무척 낮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아마, 전쟁이 끝나면 의로운 자들은 성자로서 환송받는 날이 올 겁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들은 이 땅이 낳은 가장 끔찍한 죄인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사단 조직력: -5.0%
사단 공격: +7.5%
AI 변동치: 공격 중점: +50.0%
최대 일일 지휘력 획득 증가치: -15%
매월 군 전문성 변화: -0.05
}}}
지도자는 힐베르토 알사테 아베다뇨. OTL에서도 알사테는 보수당 내에서 가장 친파시스트적이고[67] 당내 반체제 세력을 이끄는 수장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가이탄 대통령 암살 이후 휘하 준군사조직을 이끌고 보고타판 수정의 밤을 일으킨 이후 서부에 눌러앉아 고메스의 비호 아래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콜롬비아 내전이 발발하면 이들은 일본의 지원을 받는다.

1967년이 되면 알사테가 암으로 사망하고, 파벌간의 권력투쟁을 통해 엔리케 고메스 우르타도가 이끈느 정통 파시스트, 카를로스 에체베리 코르테스(파시즘)가 이끄는 실용 파시스트, 호세 리산드로 시에라 벨라스케스(기업독재)가 이끄는 민영화 기업독재 정권, 훌리안 멘도사 게레로(교권 파시즘)이 이끄는 교회 파벌, 교회 소속의 준군사집단을 이끄는 로스 파하로스(국가 가톨릭주의, 근본주의) 세력이 권력 투쟁을 벌인다.

2.11. 에콰도르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통제 민주주의 (가부장주의)
  • {{{#!folding 국가 정신
    • 사슬에 묶인 국가

그가 남긴 유산은 미국과 페루의 이익을 위한 꼭두각시 정권뿐이였습니다. 가뜩이나 허약했던 군은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수십 년 동안 재계를 지배해온 과두재벌에에게 더욱 권력이 몰리고 있으며, 사실상 벨라스코의 독재로 여겨지던 정부가 사라지고 새로운 "민주주의"가 확립되었으나 변한 것은 그저 그가 수장이었냐의 유무일 뿐입니다.

정부의 많은 이들은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그들의 대부분은 무능했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이 안타까운 국가를 구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국가와 정권의 탄생을 약속하는 더욱 극단적인 정당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안정도: -10.00%
군사 사용 부문: -20.00%
필요 소비재: +10.00%
* 공산주의의 망령

그러나 에콰도르의 사회주의를 꿈꾸는 이들의 미래는 밝아 보입니다. 벨라스코는 이제 라틴아메리카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에 있고, 페루의 꼭두각시 정부가 시민들의 생활수준을 악화시키는 현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에콰도르의 미래와 페루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되었으며, 많은 국민들이 그들에게 합류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인기는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에콰도르 수도를 벗어난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이 혁명의 망령은 날이 갈수록 짙어지며 키토의 상공 위에 끊임없이 배회하고 있습니다.||
사단 조직력: -5.0%
안정도: -10.00%
전쟁 지지도: -15.00%
징병 가능 인구: -30.00%
매일 공산주의 지지도: +0.05
* 바깥의 늑대들과...

그곳에서 그는 페론으로부터 받은 힌트를 통해 새로운 포퓰리즘으로 무장하고 정치에 대한 그의 접근 방식을 바꿀 것입니다. 벨라스코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그의 통치를 그리워하는 망명자들과 본토에서 그의 귀환을 바라는 많은 정치인들을 결속시켰으며, 완전히 구축되지 많은 신생 에콰도르 정권에 끊임없는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안정도: -5.00%
* ...그리고 우리 안의 늑대들

명목상 페루에게 버림받고, 미국에 적대적이며, 과두재벌들에게 끌려다니는 정부가 처한 이 안타까운 상황은 혁명가들의 봉기와 무정부상태를 막는 존재로서 미약한 군대가 여전히 존재하도록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군대가 정부를 지지한다는 의미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군은 현재 정부에 참여하고 있지만 쿠데타의 가능성에 대한 그들의 지지와 미국과의 비밀스런 접촉에 대한 소문으로 인해 많은 이들은 이 우스꽝스러운 공화국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정치력 획득: -30%
안정도: -10.00%
}}}
지도자는 카를로스 아로세메나 몬로이. 1944년 있었던 1차 에콰도르 혁명 이후 15년 동안 에콰도르를 통치해오던 벨라스코 정권은 과두재벌들의 쿠데타[68]와 이로 인해 발생한 공산주의 봉기등으로 인해 무너졌는데, 페루군이 에콰도르에 개입하여 사회주의 봉기를 진압하였으며, 국내에 잔류해 있던 몇 안되는 정치인인 아로세메나가 민정 복원을 페루에게 제안하면서[69] 페루군이 철군하고 민정을 복원할 때 대통령으로 세워졌다. 문제는 안 그래도 과두재벌들에게 휘둘리던 경제가 페루군의 침공으로 인한 막대한 배상금까지 지게 되면서 나라를 거의 식물국가로 만들어버린 상황. 아로세메나 내각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페루에 외교적 접근을 하지만 자신들의 무능한 외교술로 회담이 대참사로 끝을 맺는다. 한편 군부는 은밀히 미국과 연계하여 무능한 정부[70]를 향해 칼을 갈고 있다.

북쪽의 콜롬비아가 내전에 휩싸이면 콜롬비아 난민이 몰려들면서 에콰도르의 정치 위기가 다시 촉발되며, 미국의 지원을 받은 마르소코 간다라 엔리케스(군사정부)의 쿠데타가 일어나서 친미 정권이 세워지거나[71], 쿠데타가 실패할 시 과두재벌들이 차악으로 선택하여 귀환한 호세 벨라스코 이바라(우익 포퓰리즘)가 귀환하여 과두재벌을 숙청하고 친이베리아 정권이 세워질 수도 있으며, 마누엘 아귀스틴 아기레(게바라주의)가 이끄는 지방 게릴라조직의 봉기를 통해 사회주의 에콰도르 정권이 세워질 수도 있다.

벨라스코가 귀환하거나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하면 군부 세력은 갈라파고스 제도로 도망쳐 미국의 지원을 받아 기예르모 프레일레 포소(군사정부)가 이끄는 망명정권을 설립한다.

2.12. 볼리비아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자유주의 (제도민주동맹 - 공화사회연맹당)
  • {{{#!folding 국가 정신
    • 누더기 국가

과거 명목상으로 스페인과 외국에 대항해 단합했던 이 집단은 이제 지배자와 피지배 계급으로 서로 증오의 감정을 품은채 으르렁대고 있으며, 오늘날 국가단합의 개념은 간판만 간 수준으로, 통일민족국가 볼리비아라는 꿈은 이제 허상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의 대부분은 국민도, 정치인이 가지고 있지 않으며 광산 과두재벌과 밀실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군부들의 손에 쥐여져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5
안정도: -10.00%
납세 인구: -25.00%
* 굴욕의 세기

최근 몇 년간은 파라과이가 우리 동쪽 영토를 침범했으며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는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부를 제멋대로 만들기로 합의했으며, 우리는 체스판 위에 올려진 말 같은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정치력 획득: -50%
전쟁 지지도: -20.00%
* 임계점

정부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군 주둔군과 사령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갈등은 군대의 불온한 움직임을 차라리 나이 보이게 만들 정도로 심각합니다. 격양된 어조의 신문기사와 심각한 사안의 토론이 마치 일상같이 벌어지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러한 현상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약과로 보일 정도로 파업이 국가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볼리비아는 정치적 임계점에 점차 다가가고 있습니다. 건설적인 개입이 없다면 이 나라는 혼란, 혁명, 회전문같이 뒤바뀌는 새로운 정권의 난립, 그리고 그 상황을 뒤엎을 반복적 쿠데타라는 소용돌이 속에 빠질 것입니다.||
차를 부어내지 않으면 주전자는 끓어오르다 마침내 터져버릴 것입니다.
}}}
지도자는 아르만도 알바 삼브라나.

어떤 모드에서건 남미 최약체 아니랄까봐 차코 전쟁 이후에도 파라과이와 세 차례 전쟁(1938, 1946, 1952)을 더 벌여서 산타 크루스를 뺏기고 파라과이 협력자들의 괴뢰정부가 세워지는 등 혼란상이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브라질, 미국, 칠레 등에 의한 비야로엘 정부의 붕괴 이후 외세의 입맛대로 세워진 삼브라나 정권은 국민들의 지지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으며, 볼리비아 특유의 민족 분열과 내적 갈등은 국가를 거의 마비시킨 상황이다.

파라과이 정권이 붕괴된 이후 수복 전쟁을 개시하며, 볼리비아 지역에 고립된 파라과이 1군과 꼭두각시 국가 산타크루즈 양국에게 승리를 거둘 시 영토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파라과이 정권이 붕괴되지 않고 오일쇼크까지 버티면 파라과이가 산타 크루스를 앞세워 볼리비아를 침공하는데 치트로 파라과이와 산타 크루스의 병력을 삭제하더라도 무조건 볼리비아가 패전하게끔 되어있다.

2.13. 산타 크루스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우익 포퓰리즘
  • {{{#!folding 국가 정신
    • 동방인종주의당

서구 백인 혈통의 순수함을 기리고, 과라니 메스티소 전사의 후예로서 자신의 혈통을 찬미하는(때때론 그 두가지를 모두 찬양하기도 하는) 이들은 서구 언론이 이들을 '동방인종주의자당'이라고 부르면서 산타크루스를 볼리비아의 가장 커다란 재앙거리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안정도: -10.00%
매일 순응도 획득: -0.05%
* 포소 카노의 망령
1938년 이후 파라과이 외교정책의 최수선 사항과 목적은 산타크루스를 자신들의 영토로 통합시키기 위한 전초단계로 동부의 독립을 성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라울 델 포소 카노와 뱅하민 벨리아는 이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았으며, 그들이 있었던 산타크루스 주재 파라과이 대사관은 분리주의자 선전의 온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파라과이의 군사력을 뒷받침 한 그들의 선전은 우유부단한 동부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있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해오고 있습니다.
핵심 영토에서 사단 방어: +25.0%
기타 수입(십억 달러 기준): +0.05
육군 비용 변동치: -50.00%
(파라과이 공화국)종주국과의 추가 무역: +80.00%
* 이중 롯지 시스템

이 음모론적 사고가 진실을 담고 있는 세계의 유일한 지역에 있던 두 롯지가 프리메이슨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사실은 잔인한 희극과도 같을 겁니다.

"토보로치"가 "카바예로스 멜 오리엔테"에서 떨어져 나오기 전까지 한때 하나였던 이 단체는 크루세뇨 정치를 집어삼키는 암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지도층도 이곳의 회원입니다. 부유층도 이곳의 회원입니다. 위정자들도 이곳의 회원입니다. 산타크루스 사회의 어느 곳인가로 가고 싶다면, 한 '롯지'에 맹세하거나 아니면 당신이 시작했던 곳에 뿌리내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10%
안정도: -15.00%
납세 인구 요인: -7.50%
* 동방의 기적

대규모 석유 매장지의 발견은 급속한 도시와화 보편적 경제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도시엔 인구 붐이 일어났고, 낙후된 산간 지대 산타크루스는 급격한 도시화와 전례 없는 인프라 프로젝트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하세요. 산타크루스는 지금 최고의 나날을 보내는 중입니다.||
매월 인구: +15.0%
안정도: +10.00%
GDP 성장률: +2.50%
기타 수입(십억 달러 기준): +0.04
}}}
1938년 일어난 2차 차코 전쟁이 파라과이의 승전으로 끝난 이후 파라과이에 협력하는 크레뇰인들의 주도 아래 새운 국가. 지도자는 분리주의 파벌의 수장격인 언론인/기업인 출신 카르멜로 오르티스 타보르가. 외교적으로 고립된 국가에 고립받은 국가의 입지로서 상황이 안 좋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석유가 산출됨에 따라 생각보다 잘 나가고 있는 편

인종주의 이념 아래 세워진 이 국가는 파라과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들에게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받고 있지 않으며, 인종주의 이념 아래 볼리비아 전체를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통합주의자와 현상 유지를 원하는 분리주의자들로 나뉘어져 갈등을 벌이고 있다. 한편 파라과이는 잠재적으로 이 지역을 통합하려 시도하지만 잘 되지는 않는듯. 한편 국가 존재의 기반이 파라과이의 군사력 아래 이루어지는지라 파라과이 본국의 정권이 붕괴하면 통합주의자-분리주의자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일반적으로 볼리비아의 군사력을 동원한 고토수복 시도로 인해 멸망하게 된다.

2.14. 베네수엘라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진보주의 (민주행동당)
  • {{{#!folding 국가 정신
    • 푼토피오 협약

그러나 모든 좋은 일은 금방 끝나버립니다. 푼토피호 협약은 벌써 그 힘을 잃어버리려는 것 같습니다. 한때 철통같았던 협약은 벌써부터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조약이 갱신될 수 있을지, 아니면 파멸로 이어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20
매주 안정도 획득: +10.00%
* 에세키보는 우리 땅!

(쥐잡이같은 일을 하는)환경 보건 행정관 이상의 베네수엘라 공직인들은 이 지역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질문받으면 눈에 불을 뿜은 채 이 땅을 되찾아야 한다고 외치며, 그 열망은 잠깐동안 사회주의자와 강경 보수주의자들을 단합시킬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문제가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면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가 함께 속해 있는 자유 국가 기구는 분열의 위기를 겪을 지도 모릅니다.||
전쟁 지지도: +15.00%
* 석유의 왕

이 막대한 매장량의 통제 덕분에 우리는 외교적 측면에서 우리가 짊어질 짐 이상의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친구와 적을 만들수 있습니다. 만일 콜롬비아인이 우리 행동을 따라한다면 그들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겪게 되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부 우리의 석유 덕분이죠!||
자원 획득 효율: +20.00%
건설 속도: +15.00%
생산 효율 한도: +15.00%
생산 효율 성장: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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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로물로 베탕쿠르.

베탕쿠르는 1950년대 군부 쿠데타로 인해 실각하였으나, 미국이 발빠르게 개입하여 다시 민정을 수립시켰기 때문에 친 OFN적 성향을 보인다. 이후 베탕쿠르는 파시스트 국가들에 대한 석유 금수조치를 취하였으며, 이로 인해 도미니카 공화국의 라파엘 트루히요가 베탕쿠르에 대한 암살테러를 기획하기도 할 정도.

대외적으로는 가이아나와 에세키보 땅을 가지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2.15. 기아나-카옌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군사 위임통치령 (가부장주의, 기아나-카옌 연합군 행정부)
  • 브라질의 군사 정부
  • {{{#!folding 국가 정신
    • 프랑스의 유산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날 브라질 군대가 카옌에 진주하면서 이 지역의 현 상태가 만들어졌습니다. 기아나-카옌 연합군 행정부는 미국의 외교적 지원을 받아 브라질 정부와 육군에 의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잠재적 경제 파트너인 프랑스국이나 자유 프랑스의 분노를 사지 않으려고 이 위임통치령의 국제적 지위가 모호하게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독일인들에 의해 비시 정권이 묶여 있고 드골 정권이 아프리카에 얽매여 있는 상황에서, 카옌을 브라질 경제권에 통합시키려는 브라질의 목표가 점차 확연해져가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5
안정도: -10.00%
* 브라질 이민자들
브라질과 프랑스령 기아니 간의 이민 행렬은 항상 있어왔던 일이지만, 1960년 로트 대통령이 주도하는 통합 정책이 시작된 이후 이민자들의 비율은 더욱 증가하였습니다. 안젤루 놀라스쿠 지 아우메이다 주지사는 로트가 추구하는 목표를 위해 수많은 일자리 창출을 장려했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이민은 기아나-카옌에서 브라질인들이 주요 소수민족으로 부상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프랑스계, 크리올인들과의 충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매월 인구: +10.0%
안정도: -5.00%
}}}
2차 세계 대전 마지막 날 브라질군이 공백 상태의 프랑스령 기아나에 진주하여 설치한 군사 위임통치령. 미국은 잠재적인 프랑스와의 경제 교류를 염두에 두고 이 지역의 입지를 모호하게 유지시키고 싶어하나 브라질은 이 지역을 잠재적으로 브라질 경제권역에 통합하려 한다.

2.16. 수리남

플레이 불가
  • 집권이념: 자유주의
  • {{{#!folding 국가 정신
    • 1947년 네덜란드 헌법

1947년 공표된 새 헌법은 사실 이전 헌법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네덜란드는 입헌군주제의 바탕 아래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기본적인 가치관을 여전히 지향하고 있죠. 그러나 몇몇은 크게 변하였습니다. 새로 제정된 헌법은 카리브해 일대의 각국 식민지들에게 충분한 자치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리고 이 식민지들은 망명 네덜란드 왕국의 민주 체제 아래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안정도: +10.00%
일일 자유주의 지지도: +0.01
* OFN의 포스터보이

수리남으로 향한 끊임없는 원조의 결과 이 국가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동맹국들의 광범위한 원조에 의해 경제가 번영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OFN의 포스터보이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햔재의 걍제 상황은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경제의 대부분을 OFN의 지원에 의존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 기반은 무척 취약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무역 거래 평판 획득치: +20.00%
무료 생산단위: +4.0
* 빌헬미나 여왕

1940년 독일이 네덜란드를 침공하자 빌헬미나는 영국에 망명하여 네덜라늗 망명 정부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연합왕국이 독일에게 무너진 것은 그녀에게 조국을 잃은 것과도 닽은 커다란 타격을 주었고, 그녀는 카리브해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수리남에 도착한 직후, 빌헬미나는 퇴위를 하려 하였지만 망명정부는 그런 부담을 감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합의안이 제시되었습니다. 자신은 여왕의 직위를 여전히 가지되, 공주 율리아나가 여왕 대리로 공식 행사와 직무를 대행하게 되었습니다.

1940년대 디르크 얀 더 헤이르가 내각을 떠났고, 피터르 슈르츠 헤르브란디가 그 자리를 이었습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헤르브란디 또한 정무에 지처 사임하였고, 그 자리에는 온화한 성격의 아트 판 레인이 앉았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세상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빌헬미나는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정부와 불화를 겪고 있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안정도: -5.00%
}}}
지도자는 아트 판 레인. 대전쟁 당시 네덜란드가 파라마리보까지 쫓겨나게 되자 망명정부 내각의 대부분이 심적으로 지쳐 은퇴를 선택하였고, 상대적으로 굳건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판 레인 박사가 1950년대 후반부터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다.

어글리 아메리칸 업데이트 이후 수리남과 관련된 스켈레톤 컨텐츠가 추가되었다. 여러 차례 선거가 개최되는데, 수리남의 자치권과 망명정부 루트 일부의 부패 논란과 네덜란드 망명자 연고주의등으로 인해 수리남 현지인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독립 국민투표가 실시될 수 있다. 독립 성공 시 자유 프랑스 제 2버전네덜란드 정부는 네덜란드령 안틸레스로 다시 망명하여 국제적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릴 수도 있고, 독립투표가 부결될 수도 있으나 특정 루트에선 이를 우려한 네덜란드 왕립군의 쿠데타로 인한 군사정권이 들어설 수 있으며, 부분적으로 CIA가 이에 개입함으로서 외교적 정당성을 크게 실추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


[1] 노동당(진보주의)와 사실상의 연정 상태. [2] 브라질의 사회학자 질베르토 프레이리가 창안한 포르투갈 제국주의의 특징을 연구하는 이론. 사실상 포르투갈의 식민지배가 타 식민제국의 지배보다 우월하다는 이론으로 해석되었으며, 이에 1950년대부터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라자르는 이 이론을 이용해 포르투갈 식민주의의 정당성을 유지하려 하였다. [3] 원역사에서는 1960년 브라질 대선에서 PSD–PTB 연합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쿠아두루스에게 패배했다. [4] 현실 역사와 달리 바르가스는 자살하지 않았다. 로트의 중재로 인해서 쿠데타임에도 비교적 평화적인 절차를 통해 민주화가 되었기 때문. 현실 역사에서는 민주화 이후 1951년 재집권하였으나, 이 시기 정치적 공격과 라세르다의 암살미수 사건이 일어나면서 1954년 궁지에 몰리자 자살한다. TNO에서는 재집권 없이 PTB의 바르귀즘 원로 정치인으로 영향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중. [5] 이는 TT 업데이트로 경제 UI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독자적으로 브라질 컨텐츠에 있는 시스템이였다. [6] 연립 내각이라는 특성상 PSD, PTB로 상원 선거를 진행할시 주의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선택한 정당의 의석을 늘리는게 연립 정당의 의석을 깎아먹는 짓이 될 수도 있기 때문. [7] PRP(대중행동당, 파시즘)는 추방된 플리니우 사우가두가 이끌며, 극단주의와 절충주의의 "통합주의" 이념을 고수하는 우익 민족주의 정당이다. [8] 현실에서도 '선제적 쿠데타'라는 방식으로 쿠비셰크의 집권을 안정화시킨 이력이 있다. 1955년 11월경 대통령 대행 카페 필류가 심장발작으로 쓰러지자, 하원의장 카를로스 루스가 임시로 대행직을 맡았는데, 루스가 쿠비체크-굴라르에 반대하는 군부의 움직임을 옹호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로트가 역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쿠비셰크의 집권을 보장한것. 이후 의회는 상원의장인 네레우 라모스에게 권한을 위임하였고, 이후 쿠비체크는 정상적으로 대통령 취임식을 거행할수 있었다. [9] 현실에서는 쿠아드루스에 밀려 낙선하지만(쿠아드루스 48, 로트 28, 바후스 23) 부통령으로 러닝메이트였던 굴라르를 꽂아넣는 데에는 성공한다. [10] 특히 쿠아드루스는 정적인 UDN 등의 지지를 규합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해주는 묘사가 있다. [11] 브라질은 기본적으로 진행하는 사업과 부패 문제 등으로 일일 정치력 획득이 비교적 낮은 편인데, 군부 제어 루트로 진입할 시 시작부터 정치력 100을 차감하고 시작하는지라 세심한 정치력 적립이 필요하다. 그나마 TT업데이트로 일부 정치력 소모 관련 시스템등이 경제 패널쪽으로 돌아감에 따라 정치력 수급이 안정화되면서 이전보다 AI의 민주주의 정권 생존률이 크게 올라갔다. [12] 현실에서 1960년 대선에서 엔히키 테이셰이라 로트와 자니우 쿠아드루스가 맞붙어 쿠아드루스가 승리하나 돌연 사임하고 부통령 주앙 굴라르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1964년 군사 쿠데타로 민주주의가 붕괴되어 21년간의 군부독재가 펼쳐진다. [13] 로트를 사임시킨 이후 1965년 선거 이전까지 [14] 군부 세력이며 쿠데타를 시도할 정도로 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이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전제주의로 분류되었다. [15] 1965년 대선에서 쿠아두르스 당선후 집권시 [16] 원 소속은 PTN(국민노동당) [17] 초기 쿠아드루스 루트의 마지막 포커스는 체 게베라에게 훈장을 수여하면서 UDN 내의 친미파 당원들이 우려하는 내용으로 끝났다. 이 내용은 이후 로트 루트에서 체 게바라 행보를 주시하는 내각회의 중 이를 제안하다가 곧바로 기각당하는 내용으로 교체되었다. [18] 이와 정반대인 입장이 쿠비체크로, 전임 대통령 기간 동안 상당한 인기를 쌓아둔 덕에 콘크리트층이 형성되어 정책이 실패해도 그닥 지지율이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19] 상원의장 [20] 라세르다의 쿠데타 실패시 추가예고된 히는루트 [21] 100일 위기 집권시 [22] 1965년 대통령 선거 이후 [23] 둘 다 상원 입법절차를 필요로 한다. 굴라르 루트를 탈 시에는 정치력을 크게 비축해두는게 좋은편. [24] 100일 위기 집권시 [25] 1965년 대통령 선거 이후 [26] 이는 실제 역사에서도 똑같이 일어난일인데, 쿠비셰크 정부 시기의 산업화와 적극적 재정 지출이 일으킨 환율폭락등이 유발한 인플레이션은 1959년 39%에 달할정도로 폭증하였으며, 당시 재무장관이였던 조제프 아우크밍, 호베르투 캄푸스, 루카스 로페스등은 이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임하였다. [27] 쿠데타 시 [28] 히든 루트 진입시 가부장주의 [29] 한때는 브라질 공산당에도 있었으나, 소련 붕괴의 여파로 우파로 전향했다. [30] 볼수 있는 마지막 이벤트로는 혹시 모를 체포에 대비하여 언제든지 탈출할수 있도록 헬기를 확보하라는 지시를 비서에게 내리고, 비서가 라세르다의 평소 모습이 아닌 절망의 기운을 느껴서 놀라는 이벤트가 출력되며 종료된다. 군부가 장기 집권하는 루트에서는 온건계 정당들은 브라질 민주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정당명이 바뀌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군부가 장기 집권하자 기존의 쿠데타 지지 입장을 철회하고 정적이였던 굴라르, 쿠비셰크 등과 연합하여 민주화를 지지하기도 한다. [31] 100일 위기 집권시 [32] 1965년 대통령 선거 이후 [33] 3공화국 멸망 이후 피난민들이 대거 브라질로 유입되면서 유력한 정치 세력이 될 정도로의 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이며, 정치적 스탠스는 자유 프랑스를 지지하기에 자유 프랑스의 드 골을 초대하여 이들에게 호감을 얻게 하는 포커스가 있다. [34] 부패 관련 국가정신이 최고수치로 악화된다. 국가정신 설명 창에서 아예 아데마르를 고정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아데마르 루트에서만 진입할수 있도록 설계된것으로 보여진다. '아데마르는 정치적 부패와 체제를 이용하여 정권을 안정시켰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이 여전히 대통령 선거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 이는 저절로 해결될 것입니다! 그렇겠죠? [35] 군부 강경파 유지루트 [36] 부통령 당선인인 에드나 로트는 망명한 이후 미국 언론과 접촉해 정권의 불법성을 고발하며 투쟁을 이어 나갈 것을 암시한다. [37] 1965년 선거에서 바후스가 대통령이 될때도 짤막하게 바르가스와 취임식을 보는 내용이 나온다. [38] 특히, 라세르다가 꾸미던 친위 쿠데타에서 결정적인 타격을 주어 이를 좌절시킬 수 있다. [39] 스페인 등 남유럽 일대의 낮 시간대 낮잠을 자는 관습 [40] 사실 직접적 관련은 없는데 인게임에서는 CIA의 개입으로 연루되었다. 55년 쿠데타 음모에 직접 개입하려 했던 라세르다도 멀쩡히 정치활동을 하는걸 봐서는 미국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하여 망명한것으로 여겨진다. [41] 실제로 주앙 아마조나스는 마오주의 성향에 경도된 공산세력을 이끌면서 브라질 공산당의 분열을 초래한 적 있다. [42] 이때 첫 번째 아내였던 올가 프레스치스가 독일로 압송되어 수용소에서 사망하였다. [43] 현재는 내전 메커니즘 대신 국민정신이 부여 후 일정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도출되는 형태로 표현된다. [44] 망명 복귀가 불허된다. [45] 인민국민회의(가부장주의)와 연립정권. [46] 현실에서는 1964년부터 1980년까지 가이아나 총리를 하고 이후 1985년 죽을 때까지 대통령을 했던 인물. 본래 자간과 같은 인민진보당 간부였지만 자간과의 노선 차이로 인민민족회의를 창당한다. 이후 1964년 자간을 상대로 선거에서 승리, 총리 자리에 올랐다. [47] 현실에서는 가이아나 초대 총리였던 인물로 가이아나의 국부. 가난한 인도계 노동자의 아들로 가이아나 최초의 현대 정당 인민진보당을 창당, 영국령 가이아나의 총리까지 되었지만 영국이 도입한 비례대표제로 1964년 선거에서 패배한다. 이후 1992년 자유롭고 공평한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1997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후 그의 아내인 자넷 자간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48] 삭제로 보기엔 이른 점이 페루와 칠레의 안데스 조약 커스텀이 요구하는 지도자가 페루의 세오아네인데, 현재 압축된 상황에서 삭제되지 않았기에 임시적인 압축으로 추정된다. [49] 더 정확히는 적색(콜로라도)파 군부 [50] 로돌포 마르티네스의 쿠데타가 일어나야 가능 [51] 페론은 현실처럼 죽음이 임박한 상황이다보니 사실상의 후계자로 여겨지는 중. [52] 제작자 Qna에서 밝히길 이 시점이 되면 페론주의는 이미 뿌리내릴대로 깊게 사회에 파고들어서 지우고 싶어도 지울수 없는 지경에 이루어졌다고. [53] 포트레이트의 이상한 선글라스는 합성이 아니라 진짜로 쓴 사진이다. [54] 팔라시오스 재임중 고령으로 사망하여 승계 [55] 호세 루이스 로메로, 아르투로 움베르토 일리야 루트 한정. [56] TT3에선 임시적으로 제거. 기존 조건은 세오아네(페루)와 아옌데 조건 아래 진행할 수 있었으나 TT3이후 페루의 집권경로가 2개로 잠깐 압축되었다. [57] 또다른 별명으로는 리스트 14. [58] 그냥 배급을 해준다는 것도 아니고 아예 수도관으로 공급한다는 의미. 토르토레이는 당시에 이런 엉터리 공약들을 남발하며 선거에 나섰지만 단 50표도 얻지 못하고 낙선하고 만다. [59] 실 역사에선 아프리카계 우루과이인 민권운동가이자 작가로 활동 [60] OTL에서는 야당과 심지어 여당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 유엔군과 미국 편으로 파병을 결정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반공 친미 독재자가 세계관의 변화로 친파시스트 반미 독재자로 변한 사례. 사실 고메스는 1946년 자유당 정부 붕괴시절에도 유력 대선후보로 물망되었으나 본인의 과도한 극우성향이 오히려 지지에 독이 될 수 있다는 당내 기류로 인해 대선출마를 한때 포기한 적도 있으며, 1950년 라 비올렌시아로 인한 자유당의 선거 불참으로 보수당 후보로서 단독출마해 당선하였고, 1년의 집권 이후 지병을 명목삼아 사임하였으나 후임인 우르다네타를 내세워 사실상의 실권을 계속 누려왔다. 그러나 극우적 성향으로 인한 라 비올렌시아의 격화로 인해 염증을 느낀 보수당, 군부, 자유당 온건파가 결집되는 결과를 가져와 총 집권 3년만에 쿠데타로 인해 실각하였다. [61] 보고타 시장을 역임하였으며 자유당 내 민중파를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1946년 대선에서 분열된 자유당의 후보로 출마해 3위로 낙선하였고, 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이어나가다 미주회의 도중 의문의 총격으로 인해 암살당했는데, 그의 사망으로 인해 일어난 소요는 약 10년동안 이어진 라 비올렌시아의 촉매가 되었다. [62] 워낙 명망이 높았다 보니 파라과이를 제외한 남미 모든 국가가 애도를 표할 정도 [63] 같은 호이4의 모드인 카이저라이히에서 콜롬비아 후견전제주의 정당의 지도자로 나오는 그 사람 맞다. [64] 콜롬비아의 전 상원의원이자 변호사. 보수당의 유력한 달변가이자 대표인이었으며 기독교와 큰 연줄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65] 현실에선 라 비올렌시아 시기 자유주의 반군을 이끌다가 휴전이 이루어진 이후 1957년 보고타에서 의문의 총격을 통해 암살당하였다. [66] 예상 가능하듯 이들이 승리하면 OFN을 탈퇴한다. [67] 실제로 무솔리니와 닮았으며, 무솔리니와 동일시되려고 하였다. [68] 미국의 동맹 확보와 이권을 위한 사주라는 뉘앙스의 내용이 있다 [69] 1941년 페루와 에콰도르는 전쟁을 치루어 에콰도르 영토의 절반 가까이를 페루에게 빼앗겨서 국민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 [70] 군대는 페루의 침공 이후 거의 껍데기만 남아 있으나, 여전히 남아 있는 페루의 위협과 미국의 미진한 지원으로 인해 정부는 군에 대한 통제력을 거의 상실한 상황이다. [71] 뼛속까지 친미성향은 아니다. 차후 침공받을지도 모르는 적 페루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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