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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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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시즌별 성적
1998 시즌 1999 시즌 2000 시즌
LG 트윈스 1999년 페넌트레이스 월별 일정
4월 5월 6월 7월 8월 9~10월
LG 트윈스 1999 시즌 성적
순위 승률 1위와의 승차
3[1] / 4 61 1 70 0.466 11.5

1. 개요2. 스토브리그
2.1. 코칭스태프 이동2.2. 선수 이동2.3. 신인 선수2.4. 외국인 선수2.5. 기타
3. 4월4. 5월5. 6월6. 7월7. 8월8. 9~10월
8.1. 상대 전적8.2. 수상 및 기록8.3. 선수별 개인기록
9. 총평10. 둘러보기 틀

1. 개요

LG 트윈스의 1999 시즌을 정리한 문서.

2. 스토브리그

2.1. 코칭스태프 이동

천보성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의 공을 인정받아 2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김영덕 2군 감독과 조 알바레즈 1군 수비코치, 유종겸 2군 투수코치와 재계약하지 않았다. 이광은 루키군 책임코치가 2군 감독으로 보직변경됐고, 김건우는 기존 정삼흠과 함께 1군 투수코치를, 노찬엽 2군 외야 및 주루코치로 영입됐다. 1군 작젼 및 외야코치를 맡은 최정우는 작전코치만 맡는다. 서효인 2군 배터리코치가 1군 배터리코치로, 박철영 1군 배터리코치가 2군 배터리코치로 보직변경됐다. 2군 주루 및 외야코치 김영직은 1군 외야수비 및 주루코치를 맡는다. 1군 수비코치는 민경삼 2군 수비코치가 맡는다. 2군 투수코치였던 배수희는 루키군으로, 루키군 투수코치 오영일은 2군 투수코치로 변경됐다.

2.2. 선수 이동

김승환, 신창수, 오국기 등 투수 3명과 포수 이상우, 내야수 이동진, 외야수 장순호 등 모두 6명을 자유계약선수로 공시했다.

임선동 현대 유니콘스로 현금 8억+ 안병원을 받는 조건으로 트레이드됐다.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이병규 심재학[2], 조인성이 출전하였다.[3]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따냄으로 병역특례를 받았다.

두산 베어스[4]에 1억원의 현금을 주고 김상호 류택현을 영입했다.

2.3. 신인 선수

1차지명된 중앙대 투수 김상태가 계약금 3억1천만원을 받고 입단했다. 고졸우선으로 지명된 신일고 투수 김광삼은 계약금 2억6,500만원을 받고 입단했다.

2차 지명 1라운드로 단국대 좌완투수 이승호를 지명했다. 2라운드로는 신일고 내야수 조재영을 선택했다. 3라운드부터 12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는 성남서고 투수 신동건, 경남고 외야수 이상훈, 덕수정보고 투수 박창수[5], 인천고 내야수 정재복[6], 대전고 투수 윤경희[7], 전주고 외야수 송수근[8], 경남상고 외야수 이중훈[9], 경남대 투수 송호영, 배명고 외야수 조인재[10], 대전고 내야수 김원재[11]다.

2.4. 외국인 선수

지난해 21세이브를 기록했으나 불안한 경기가 많았던 마무리투수 마이클 앤더슨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지난해 8월에 합류하여 후반기와 포스트시즌에 맹활약한 주니어 펠릭스와는 연봉 11만달러, 인센티브 4만달러 등 총 15만달러에 재계약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내야수 케빈 대톨라와 총 9만달러(연봉 8만달러, 인센티브 1만달러)에 계약했다.

2.5. 기타

주전포수 김동수와 주전 우익수 심재학을 트레이드 명단에 올리고 에이스 투수와의 트레이드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심재학이 투수로 전향했다.

1999년 1월 31일 LG 골수팬이자 LG 할아버지라고 불렸던 박기홍(87) 옹이 별세했다.

서용빈이 병역비리 혐의로 구속되었다.

3.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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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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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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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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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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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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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상대 전적

LG 트윈스 1999년 팀별 상대 전적
상대 팀 승 - 무 - 패 승률 승패마진 우열
현대 유니콘스 6 - 0 - 12 0.333 -6 절대열세
삼성 라이온즈 10 - 0 - 10 0.500 0 백중세
두산 베어스 5 - 0 - 13 0.278 -8 절대열세
해태 타이거즈 8 - 0 - 10 0.444 -2 열세
쌍방울 레이더스 12 - 1 - 7 0.632 +5 우세
한화 이글스 10 - 0 - 10 0.500 0 백중세
롯데 자이언츠 10 - 0 - 8 0.556 +2 우세
총합 61 - 1 - 70 0.466 -9 매직리그 순위: 3[1] / 4
  • 분류 기준
    • 남색은 압도(승률 ≥ .800)를 뜻한다.
    • 청색은 절대우세(.650 ≤ 승률<.800)를 뜻한다.
    • 하늘색은 우세(.550 ≤ 승률<.650)를 뜻한다.
    • 녹색은 백중세(.450 ≤ 승률<.550)를 뜻한다.
    • 오렌지색은 열세(.350≤승률<.450)를 뜻한다.
    • 적색은 절대열세(.200≤ 승률<.350)를 뜻한다.
    • 갈색은 압살(승률<.200)를 뜻한다.

한동안 강했던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6승12패 절대열세를 기록했다. 특히 이 시즌 하락세의 시작이 5월 19~21일 현대와의 3연전이었으니 더욱 뼈저리게 느껴질 것이다. OB 베어스에서 구단 명칭을 바꾼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도 5승13패로 엄청나게 고전하였는데 특히 1990년 LG 트윈스로의 구단 명칭 변경 후 처음 스윕 당한 것도 모자라 2번이나 스윕 당하기까지 했다.[13] IMF로 구단 형편이 더욱 나빠지던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도 8승10패 열세를 기록했다.[14]

반면 같은 매직리그에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는 둘 다 10승10패 백중세를 기록했고 드림리그 2위 롯데 자이언츠에게는 10승8패로 우세를 거두기까지 했다.[15] 그러나 KBO 역대 최저승률 2위 쌍방울 레이더스에게는 12승1무7패로 고전하였을 뿐 아니라 쌍방울에게 가장 많은 패배를 당한 팀이 되었으며[16] 이는 결과적으로 LG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게 된 숨은 원인이 되었다.[17]

8.2. 수상 및 기록

1999년 LG 트윈스 정규시즌 팀 달성 기록
날짜 기록명 상대팀 구장 달성기록, 선수 비고
5월 16일 팀통산 1,000승 두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역대 3번째

1999년 LG 트윈스 정규시즌 선수 개인 달성 기록
날짜 선수 기록명 상대팀 구장 비고
4월 15일 김용수 KBO 최초 100승-200세이브 현대 유니콘스 인천 세계 프로야구 사상 5번째
4월 23일 김동수 개인통산 1,000경기 출장 삼성 라이온즈 대구
5월 17일 김민기 1이닝 4탈삼진 두산 베어스 잠실 역대 3번째
6월 24일 이병규 최단기간 20-20(홈런-도루) 달성 삼성 라이온즈 대구
6월 25일 김동수 개인통산 500타점 삼성 라이온즈 대구 역대 18번째
6월 28일 유지현 개인통산 200도루 해태 타이거즈 잠실 역대 6번째
9월 1일 김용수 개인통산 120승 삼성 라이온즈 대구 역대 18번째
9월 30일 이병규 30-30(홈런-도루) 달성 롯데 자이언츠 잠실 역대 5번째

유지현은 2년 연속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이병규는 1997년 이후 2년만에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병규는 192안타로 안타 1위에 올랐다.

8.3. 선수별 개인기록

9. 총평

매직리그와 드림리그의 양대리그로 개편된 1999시즌을 맞이한 LG의 전력은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입단 전 소송으로 시끄러웠던 임선동 대신 영입해 기대를 모았던 안병원은 부상으로 전력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고, 야수에서 투수로 전향한 심재학과 신인 김상태, 김광삼이 선발 마운드의 축이 되어야 할 정도로 마운드가 매우 불안했다. 게다가 최향남, 유지현이 연거푸 부상을 당했고 서용빈이 병역비리 관련하여 전열에서 이탈해 시즌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결국 1996년 이후 3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어 천보성 감독이 물러나게 되고 후임으로 LG 트윈스 출신 최초의 감독인 이광은 감독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페넌트레이스가 시작되자 시즌 전의 비관적 전망이 무색할 정도의 상승세가 펼쳐졌다. 4월 7일 대전 한화전에서 이병규가 한 경기 세 개의 홈런을 몰아치면서 팀을 매직리그 공동 선두로 끌어올렸고 대활약을 예고했다. 이병규는 1999시즌 내내 눈부신 활약을 보이며30개의 홈런과 31개의 도루로 잠실을 홈으로 사용하는 선수 중 처음으로 30-30 클럽에 가입했고, 0.349의 타율과 192개의 최다안타를 쳐내 팬들을 기쁘게 했다. LG는 4월 17일부터 19일까지 잠실에서 열린 한화와의 3연전을 싹쓸이했다. 이 경기에서 심재학, 김광삼, 김상태 등 신인급 투수들이 잇따라 데뷔 첫 승을 기록하며 시즌 처음으로 매직리그 단독 선두에 올랐다. 차명석은 4월에만 5승 무패 행진을 이어갔고 마무리 김용수도 6경기 연속 세이브 행진을 하며 팀의 승리를 지켰다. 김용수는 4월 15일 인천 현대전에서 세이브를 추가함으로써 최초로 프로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다. 1998시즌에 기록한 100승과 함께 100승 200세이브 투수가 되는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특히 김용수는 현역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등번호 41번이 영구결번되어 영구결번식을 가졌다.

그러나 5월 들어 LG 마운드에 균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6승으로 다승 공동 1위를 달리던 차명석이 5월 16일 잠실 두산전 후 옆구리 통증을 호소했고, 같은 날 손혁은 어깨 부상으로 자진 강판됐다. 이러한 마운드의 위기는 김민기의 깜짝 활약으로 만회되는 듯 했다. 김민기는 5월부터 등판, 6월 하순까지 3개의 구원승과 1세이브를 올리며 LG 마운드에 활력을 주었다. 그의 활약으로 6월 17일에 잠시 매직리그 1위로 복귀 하기도 했지만 곧이어 터진 6연패와 6월 말 김민기의 상무 입대로 LG는 더 이상 상위권을 유지할 동력을 잃었다. 시즌 초반부터 최향남 유지현, 김동수 등 핵심 주전들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고 최향남, 유지현이 복귀하자 곧바로 차명석, 손혁, 김재현, 심재학, 김용수의 부상이 이어졌다. 최향남은 시즌초 한 달 결장에 이어 8월 말 급성 장염으로 시즌아웃되어 리그 2위 다툼을 치열하게 벌이던 팀의 전력에 결정적 손실이 되었다.[18] 반전의 기회는 있었다.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4연전을 전승으로 이끈 것을 포함, 6연승을 거두며 선두 삼성과 한 경기 차로 바짝 다가서기도 했다. 입단 후 2년간 저조한 모습을 보이다가 롯데와의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둔 장문석은 LG 마운드의 희망이 됐다. 그러나 연승 분위기가 우천으로 끊기며 아쉽게도 상승세도 끊어졌다. 결국 LG는 3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시즌 전부터 지적된 마운드의 불안은 방망이가 나쁘지 않았던 LG를 포스트시즌 탈락으로 이끈 가장 큰 약점이었다. 6~7득점을 하면 8~9실점하는게 1999시즌 LG 야구였다. 0.281의 높은 팀타율에 비해 LG 역사상 최악의 방어율인 ERA 5.49는 팀의 투타 불균형을 극단적으로 말해준다. 10승투수가 손혁 하나뿐이었는데 이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들의 면면을 보면 10승투수 3명[19]은 기본적으로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마운드의 힘에서 밀릴수밖에 없었다. 선발투수로 1번이라도 등판해본 투수가 무려 18명으로 선발투수난에 시달렸다. 주니어 펠릭스 케빈 대톨라로 구성된 외국인 선수들의 팀 공헌도도 극히 저조했고[20][21], 부상 선수들이 시즌 내내 끊이지 않았던것이 크나큰 악재로 작용했다. 두산에서 현금을 주고 데려온 김상호의 활약도 노쇠화로 인해 저조했다. 결국 심재학의 투수 전향은 안하니도 못한 결과를 가져왔고 결국 구단과 사이가 틀어진 심재학은 시즌 후 트레이드로 현대 유니콘스로 떠났다.

10. 둘러보기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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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직리그는 3위 전체로 따지면 최종 순위는 6위. [2] 1998 플레이오프에서 부상을 입은 강동우의 대체자. [3] 1996년 LG 지명을 받았으나 대학교 진학을 선택한 경헌호 역시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4] 이 해부터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바뀌었다. [5] 단국대 진학. 이후 지명권 포기. [6] 인하대 진학 후 투수 전향. [7] 동의대 진학, 지명권 포기 후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 [8] 원광대 진학. 지명권 포기 후 SK에 신고선수로 입단. [9] 경성대 진학. 이후 지명권 포기. [10] 고려대 진학 후 1학년을 마치고 야구를 그만두었다. [11] 동아대 진학, 이후 지명권 포기. [1] 매직리그는 3위 전체로 따지면 최종 순위는 6위. [13] 이것도 5승 6패로 팽팽하다가 내리 7연패를 당한 것이며, 9월에 있었던 두 번의 3연전 스윕패가 치명적이었다. [14] 해태가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1997년에는 LG가 우세했으나 해태가 이종범이 일본으로 진출하고 IMF의 직격탄을 맞아 임창용이 삼성으로 떠나는 등 전력이 매우 약화됐음에도 1998년부터 해태에 3년 연속으로 열세에 그쳤다. [15] 특히 LG는 중요한 상황마다 롯데의 발목을 잡았는데 개막 6연승이 끊어진 것도 LG전, 5월초 마산에서 9회 연속 뒤집기로 역전패한 것도 LG전, 후반기 9연패의 시작도 사직 LG전, 드림리그 1위 확정을 무산시킨 것도 LG전이었다. [16] 쌍방울이 연패가 이어질때마다 LG가 끊어줬다. 특히 10월 8일 서스펜디드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KBO 역대 최다 연패 기록 경신을 막아주기도 했다. [17] 드림리그 팀들에게 훌륭한 먹잇감이 되었다. 1위 두산은 16승 1무 1패, 2위 롯데는 12승 2무 4패를 기록하면서 제대로 양민학살에 성공했다. 3위 현대는 15승 1무 2패, 4위 해태도 13승 2무 3패나 기록하면서 드림리그의 승률 인플레를 초래했다. 매직리그에서는 1위 삼성이 15승 5패, 2위 한화가 14승 6패를 기록하면서 그나마 드림리그 팀보다는 선방했다. [18] 이로 인해 마무리투수였던 김용수가 선발로 이동했는데 아랫돌 빼어 윗돌 괸 꼴이 됐다. [19] 두산은 진필중 이경필, 강병규. 롯데는 문동환 주형광, 박석진. 삼성은 임창용 노장진, 김진웅. 한화는 정민철 송진우, 이상목. [20] 타팀의 외국인 타자( 타이론 우즈, 펠릭스 호세, 찰스 스미스, 트레이시 샌더스, 제이 데이비스, 댄 로마이어, 에디 피어슨)들이 홀로 30홈런을 넘기는 와중에 LG 외국인 타자들의 홈런 총합은 겨우 22개다. [21] 외국인 타자들의 기여가 저조했음에도 타격에서 타팀에 밀리지 않았다는 점은 1999시즌 LG의 국내 야수전력이 튼튼했음을 보여준다. 차라리 심재학을 그대로 두고 외국인을 투수로 영입해 부족한 마운드를 만회했더라면 이해 LG 성적은 높아졌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