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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법에 반대하여 촛불집회를 하는 한나라당[1] |
1. 개요
4대 개혁 입법(四大改革立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당시 추진한 정책으로 문제점이 있는 네 가지 법을 반드시 개혁하겠다고 거론한 것을 말한다.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과거사 진상 규명법 제정, 언론관계법 제정이다.2004년 탄핵 역풍속에서 원내 과반을 이룬 열린우리당은 제17대 국회 첫 정기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 입법을 추진하자 '4대 개혁입법' 논란으로 여야는 첫 국회부터 파행을 거듭했다. 한나라당은 이를 '4대 국론 분열법'으로 규정하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결과적으로 4대 개혁 입법은 여야간에 적당히 타협되어 '누더기 법'으로 전락했다.
이것의 실패로 열린우리당은 개혁 동력을 상실하고 재보선에서 연달아 패배하며 결국 참여정부 레임덕의 신호탄이 되었다.
2. 경과
2.1.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였으나 #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강력 반발과 여론의 악화로 이 일부 개정으로 선회하였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까지는 찬성하자는 의견이 주류였다. 그러나 당내 강경파와 민주노동당의 반대로 개정조차 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참여정부 들어 국가보안법 사범은 증가추세를 보였으며, 민주노동당에서도 이에 대해 비판하였다.2.2. 사립학교법
사립학교법은 학교법인 이사 중 3분의 1과 감사 2인 중 1인을 교수회, 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 등이 참여하는 사학구성원 단체가 추천하여 선임하는 개방형 이사제 및 공익 감사제, 학교법인 이사 정부를 7인 이상에서 9인 이상으로 확대, 학교법인 임원간 친인척 비율을 3분의 1에서 4분의 1로 대폭 축소하고 이사정수 7명 중 4분의 1이상을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가 2배수로 추천하는 이른바 '개방형 이사'로 채우도록 했으며, 이사장은 학교장이나 다른 학교법인 이사장을 겸직할 수 없도록 개정했다. 또한 학교회계의 예산은 교직원이 아닌 외부인이 포함된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의 자문을 거치도록 해 사학재단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도록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강력히 반대했으나 결국 김원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으로 2005년 통과되었다.그러자 2005년 한나라당은 첫 등원거부 장외투쟁에 나섰다. 이후, 결국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사립학교법 재개정에 합의하고, 이후 2007년 7월 4일 통과되었다. 민생법안 처리가 너무 지연되지 않느냐는 비판 여론을 의식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속전속결로 합의한 결과라는 평가가 있다.
2.3. 언론관계법
열린우리당의 원안을 한나라당의 강한 반대로 합의하지 못하자, 결국 재협상을 통해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도입하는 취지로 '신문지면에서 광고 비율 50% 제한'은 도입하지 않기로 했으며, 편집위원회·편집규약·독자권익위원회 설치도 의무조항이 아닌 '권고조항'으로 통과되었다. 광고비율 제한과 편집위원회 등의 설치에 있어 열린우리당이 양보하는 대신 한나라당은 신문·방송의 겸영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에 합의해 줬다.[2] 또한 공동배달제를 위한 신문유통공사 설립에 있어 여야는 공사와 법인을 두고 끝까지 진통을 벌이다가 공사의 형태를 띤 '특수법인'의 설립에 합의했다.당초 열린우리당은 1개 일간지의 시장점유율이 30% 이상이거나 3개 일간지의 점유율이 60%를 초과할시 규제를 가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한나라당의 강한 반발로 대상을 전국의 130여개 일간지로 확대했다.
2.4. 과거사 진상 규명법
여야 합의 실패로 부결된다.3. 이후
이후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고 연말 국가보안법 처리 여야 합의 실패까지 이어져 2005년 열린우리당 이부영 대표와 천정배 원내대표는 사퇴한다.또한, 당내 내홍이 심화되어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연달아 참패하며 결국 참여정부 레임덕의 신호탄이 된다.
[1]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이다.
[2]
물론
18대 총선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되자 4년 뒤
미디어법(이른바
종편허가법)이 날치기로 통과되면서 겸업이 현실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