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7:20:31

황병서

국방성 총고문
황병서
黃炳瑞 | Hwang Byong So
파일:/image/001/2016/05/10/PYH2016051016200001300_P2_99_20160510203107.jpg
출생 1940년 ([age(1940-01-01)]세)
국적
[[북한|]][[틀:국기|]][[틀:국기|]]
계급 차수
정당


1. 개요2. 생애
2.1. 초기 이력2.2. 급부상2.3. 처벌과 강등2.4. 잠적2.5. 복권과 은퇴, 국방성 총고문
3. 경력4. 참고문헌

[clearfix]

1. 개요

북한의 군인이자 정치인. 북한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요직을 역임하여 현재는 국방성 총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다.

2. 생애

2.1. 초기 이력

1940년 출생이나 환갑이 되도록 전면에 나타난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이전에는 1949년생으로, 1959년에 체포되어 1985년에 대전형무소에서 사망한 비전향장기수 황필구의 아들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이에 따르면 황병서는 평택 황씨 16대손으로, 병은 항렬자다. 하지만 전혀 관계가 없고 황재길이란 사람의 아들이란 주장도 있다.

조선기록영화 <어버이 장군님, 인민군 장병들과 함께 하시여>에서 1992년 4월 23일, 조선인민군 장령들 수백명이 집단 승진할 때 김정일 옆에서 군사담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리용철과 함께 군사칭호 수여식을 수행하는 젊은 황병서의 모습이 포착된 바가 있다. 이를 보면 조직지도부 출신으로 보인다. 장진성의 증언에 따르면 1990년대에 사고를 쳐서 지방으로 추방을 당했지만 반성을 담은 시집을 써서 김정일에게 바쳤고 이에 김정일이 용서해주고 다시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임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2년 3월 27일, 김일성 탄생 90주년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2005년 5월에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자격으로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수차례 동행하는 등 군이 아니라 당내에서 경력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황병서의 경우에는 략력이 따로 발표되지 않아 군에서 당으로 간 것인지, 당에서 군으로 간 것인지 다소 불분명한데, 적어도 군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2010년 이전에는 군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인물이었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이때 황병서는 조용원, 박태성과 함께 김정은의 바로 뒤에 착석하였다. 2010년 9월 27일, 최고사령관 명령 0051호에 따라 중장으로, 2011년 4월 12일, 최고사령관 명령 0056호에 따라 상장으로 진급하였다.

2.2. 급부상

2014년 3월,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4월에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언제 대장으로 승진했는지, 4월 15일에 열린 비행사대회에서 대장 계급장을 달고 나타났으며, 4월 26일, 당중앙위원회, 국방위원회 공동결정에 따라 조선인민군 차수로 승진하는 등 초고속 승진을 거쳤고, 5월 2일 북한군 제복군인 서열 1위인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됐다. 기사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김정은 치세 초기를 상징하는 최고 실세 중 한 사람으로 자리잡았다. 이 시점에서 정치국 위원에도 이미 보선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땐 김정은이 조직문제 결과를 잘 보도하지 않던 시절이라서 확인할 순 없다.

최룡해가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나자 그 후임 자리를 꿰어찼으며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도 보선되었다. 특히 김정은이미 죽여 없앤 장성택을 대신하여 최룡해를 견제하기 위해 황병서를 발탁하고 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었다. 황병서가 고용희의 총애를 받아서 김씨 일가와 친분이 깊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도 있었다. 2014년 7월, 전병호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4년 7월 27일 한국전쟁 종전기념일 행사에서 조선인민군 최선임 제복군인 자격으로 단상에 올라 "전략핵무기로 미국 백악관을 타격할 것이다"라고 큰소리를 쳤으며 개소리전문가 2014년 9월 25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13기 2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4년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최룡해, 김양건과 함께 전격적으로 참석하기 위해 인천에 방문하였다. 최룡해, 김양건과 달리 국가체육지도위원회에 연관된 인사가 아니며,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그의 직책과 대동한 호위사령부 소속 경호원들, 그리고 타고 온 비행기가 김정은 전용기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김정은의 특사라고 할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생애 처음으로 방남[1]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때 동행한 최룡해, 김양건이 그에게 깍듯하게 대했다고 하는데 이 시기에는 북한의 최고 실세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이 이루어질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일정을 이유로 청와대 예방은 하지 못했다. 참고기사 오찬회담[2]에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류길재 통일부장관을 만났으며, 폐회식 전과 마치고 난 후에 정홍원 국무총리를 면담하였다. 또한 수많은 언론들이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친서는 없었고,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정홍원 국무총리를 통해 김정은의 메시지만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 2월 18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최룡해가 정치국 위원으로 강등당하면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하였으며, 2015년 4월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 22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직함으로 등장하면서 상무위원 승진이 확인되었다. # 2015년 5월에는 숙청되었다는 설이 돌았으나 이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된 것이 잘못 전해진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는 숙청되지 않았다고 국정원이 전했다. # 현영철 숙청에 황병서가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야전군인 출신인 현영철은 정치군인 출신인 황병서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결국 권력다툼에서 현영철이 패배하고 처형당했다는 것. #

2015년 8월 22일 서부전선 포격 사건으로 촉발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판문점에서 남북고위급이 회담을 하기로 했는데 북한 대표 두명중 한명으로 나오기로 하였다. 나머지 한 사람은 김양건 당비서. 원래 북한은 김양건만 보내려고 했는데 한국 정부가 황병서를 보낼것을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였다. 8월 22일부터 8월 25일까지 진행된 회의에서 김관진이 1940년생이라고 들었는데 맞냐고 묻자 그렇다고 긍정했으며 자기가 연장자란 이유로 은근슬쩍 말을 놓기도 했다고 하며 딱딱한 김양건과 달리 회담 분위기를 잘 이끌었다고 전해졌다. 서울신문 보도 회의가 평행선을 달리자 김관진을 화장실까지 쫓아가서 자신의 전투복 상의를 벗어서 자신에게 척추질환이 있음을 호소하면서 "김 선생, 나 좀 살려주시오."라고까지 하면서 저자세로 협상 타결을 촉구했다고 한다. 이에 김관진은 "황 선생, 좋은 날 오면 내 좋은 병원 소개해드리리다. 그래도 협상은 양보할 수 없소. 북한이 잘못한 것 아니오."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2015년 11월에 서부전선 포격도발 수습하고 대북 확성기방송을 중단시킨 공로로 김양건과 함께 북한 최고 훈장인 공화국영웅 훈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정작 김양건이 죽었을때 북한은 김양건이 공화국영웅이라고 발표하지 않았던 걸 보면 오보로 보인다. 2015년 11월, 리을설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리을설 인민군 원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리고 2015년 12월초 싱가포르에서 척추수술을 받았다는 대북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가 나왔다. 김양건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김양건 장의위원에도 위촉되었다.

2016년 5월 열린 제7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직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최고 실세임을 과시했으며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새롭게 신설된 국가최고기관인 국무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군을 대표해 임명되었다. 2016년 5월, 강석주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7년까지 김정은을 적극 보좌하면서 매우 부지런하게 행사를 다녔다.

2.3. 처벌과 강등

그런데 2017년 11월 20일 최룡해 로동당 조직지도부장의 주도로 총정치국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에서 적발되어 중대한 처벌을 받았다고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보고하였다. 김원홍과 함께 부정부패죄(매관매직)로 처벌받아 목숨은 부지했으나 별을 모두 떼이고 모든 직위를 박탈당했다고 알려졌으며 정치적 사망선고인 출당조치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황병서는 2015년 최룡해를 고발해 처벌받게 한 적이 있어서 이에 대한 보복이나 권력 투쟁으로 보고 있다.

리영호와 장성택 숙청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라서 황병서도 같은 꼴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었지만 이후 황병서의 모습이 북한 언론에서 발표되었다. 하지만 처벌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는지 2017년 12월, 김정일 사망 6주기 추도식에서도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때 온갖 설이 돌아다녔으나 국정원은 확인된 바가 없다고 일축하였다. 2017년 12월 18일에는 무려 6계급이 강등되고 모든 직위도 박탈당했다는 뉴스도 보도되었다.


2018년 2월 5일, 국정원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해임, 강등당해 혁명화교육을 받고 있다고 언급되었다. 황병서 숙청 이후 쑥대밭이 된 총정치국을 수습하기 위한 목적인지, 김정일 시대에 오랫동안 총정치국 제1부국장으로 총정치국을 관리해온 김정각이 은퇴 상태에서 급히 총정치국장에 발탁되었다.

2018년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 행사에 그의 모습이 잡혔다. 중앙보고대회에서 평상복을 입고 로동당 부부장급들과 같이 있는 모습이 보여 혁명화교육후 로동당 부부장급 직책으로 복귀한걸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시신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할 때도 200여명의 당과 군 간부들 무리 중 중간 정도에 황병서의 모습이 잡히기도 해서 서열이 상당히 낮아진 걸로 보인다. 안 죽은 게 어디냐

2018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3기 6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자리에서 해임당하고, 후임 총정치국장인 김정각이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2018년 4월의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정식으로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소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4. 잠적

그러나, 2018년 5월 18일 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최선임 자리에 앉아 있는 장면이 보도되었다. 2018년 6월 30일에는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며, 수행원 중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호칭은 "로동당 중앙위원회 간부들인 황병서 동지". 이런 정황을 보면 권좌에서 밀려났다기 보단 만년 2인자라는 자리를 인정하지 않은 북한 체제 상 권력 구조의 개편 과정에서 권력 조정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북한 내에서 이런 사례는 예전에는 오극렬, 오진우부터해서 흔하고 최근에는 최룡해, 박봉주 등이 있고, 김정각 역시 좌천당해 있다가 황병서의 후임으로 복권한 케이스이다. 장성택 역시 김정일 시절 이런 종류의 가벼운 숙청을 여러 차례 당하고 복귀하기를 반복했으나 (....) 최룡해가 2인자 자리에서 로동당으로 좌천당해 있다 몇 년 후 다시 복권된 것으로 보아 황병서 역시 이러한 권력의 부침을 겪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완연하게 복권된 것으로 추정된다. 8월 13일 조선중앙통신은 황병서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 호명되었고 이후 조직지도부의 군사부분 제1부부장인 것으로 직책이 확인되었다.

2018년 7월과 8월에 김정은을 매우 열심히 수행하였으며 12월에도 원산구두공장 현지지도 및 4차 전국농업부문열성자회 때 나타났다. 하지만 2019년 2월, 조선인민군 창건 71주년 경축연회를 참석으로 공개석상에서 실종되었으며 2019년 3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8월에 국내에서 추정되기로는 조직지도부 군사부분 제1부부장 직책에서도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황병서 자체는 완벽한 복귀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한직을 전전하다 알아서 물러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애초에 그는 최룡해의 케이스와 달리 조직지도부 군사부분 제1부부장이라는 정말 멀고도 먼 한직으로 발령받았기 때문에 최룡해와 같은 극적인 복귀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최룡해는 로동당 좌천 때도 당 비서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후 숙청 때도 곧바로 복귀해서 역시 당 비서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황병서는 숙청 당한지 1년이 훨씬 지난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직책을 받지 못하고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내부 소식에 정통한 주성하 기자의 칼럼 유튜브 방송에 따르면, 2019년 초 다시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이후 교화소에 수감되었다는 설과 평양 근교의 노동자로 강등되었다는 설 등이 있으나, 가장 믿을만한 북한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김원홍과 함께 2019년 5~6월 경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나 어느 쪽으로 판명나건 비참한 말로를 겪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2020년 7월 새로 공개된 리을설 관련 기록 영화(당을 받드는 길에 인생의 영광이 있다)에는 리을설 사망시 조문단 중앙에 황병서가 있는 모습이 편집되지 않고 나타났기 때문에 황병서의 거취를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북한 공식 선전 사이트에서도 황병서의 여러 저작들이 남아있으며, 뉴스와 각종 기록물에도 남아있는걸 봐서 부침을 겪었다 하더라도 처형이나 출당 수준의 비참한 말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록말살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건강상의 문제로 은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노쇠해서 갈 날이 머지 않은 황병서를 김정은이 굳이 처형할 이유[3]도 없다.

2022년 4월 10일, 김정은 집권 10주년 중앙보고대회 자료화면에서 황병서가 김정은을 향해 박수치는 사진이 사용되었다. 북한에서 동시에 배포한 김정은 찬양 다큐에서 리영호, 장성택은 철저히 기록말살하고 현대판 종파주의자라고 가루가 되도록 깐 것에 비하면 처형까지 갔을 가능성은 또 낮아졌다.

2.5. 복권과 은퇴, 국방성 총고문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차수 계급을 달고 등장했다. 이로서 숙청이 아닌 고령으로 인한 은퇴임이 확실해졌다. 2022년 6월, 중군위 8기 3차 확대회의에서 참석자 중 한 사람이 황병서란 명패를 가지고 참석한 것도 포착되었는데, 정면샷이 나오지 않아서 확인은 할 수 없었지만, 만약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군사 문제의 고문 정도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여러 활동에 나서는 것을 보면 이때 참석했을 개연성도 높다.

그리고 2022년 7월 26일, 제8차 전국로병대회에도 참가했으며 이 로병대회 영상에서도 황병서가 많이 나오면서 대접이 좋아진게 보이며 7월 27일, 전승절 행사에도 참석하여 김정은 근처에서 환호하는 사진이 찍혀 조선중앙통신으로 배포되는 등 여러 점에서 볼때 이전보다는 확실히 대접이 많이 나아졌다. 2022년 정권수립 74주년 기념행사에 김영남, 최영림, 박봉주, 리명수, 최태복, 김경옥, 박재경, 김정각과 함께 초대받았으며 실로 오랜만에 북한 매체에서 '황병서 동지'라고 이름 석자가 보도되었다.[4] 처음에는 김정은 앞에 제대로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경례를 하니, 김여정이 자리를 비켜주며 앞으로 갈 것을 권하자 뛰쳐 나가는 모습이 상당히 웃기게 나왔다. 황병서가 다가오자 자리에 앉아 있던 김정은이 일어나서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까지 그대로 나왔는데 이는 김정은이 황병서에 대한 감정이 꽤 해소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풀이된다. 방송에서 '노간부'로 언급된 것을 볼때 확실히 은퇴한걸로 보인다. 12월 17일, 군간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2023년 2월 7일, 건군절 기념연회에 참석했다. 차수 예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차수 계급도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 2023년 2월 8일 북한 열병식에 참석했다.
파일:PIC0072204.jpg
왼쪽에서부터 총참모장 박수일, 국방상 강순남, 총정치국장 정경택, 그리고 황병서

2월 17일, 내각-국방성 체육경기에 국방성 대표로 참석했다. 단순 노간부로 보기에는 활동이 갑자기 활발해졌는데 내부적으로 뭔가 직책을 맡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5월 19일, 현철해 서거 1돐 추모대회에 참석했다. 7월 25일, 군부 지휘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 기념보고대회에 참석했으며 열병식에 초대받았다. 뜻밖에도 12월 26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참석했다.

2024년 2월 8일, 김정은과 김주애의 국방성 축하방문을 영접했으며 건군절 기념연회에 참석했다. 4월 10일, 김정은의 김정일군정대학 현지지도를 수행했으며 국방성 총고문에 임명되었음이 확인되었다.[5]

3. 경력

임기시작 임기종료 비고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2014년 4월 8일? 2017년 말? 2014년 4월 8일 정치국 회의에서 임명?
2017년 말에 숙청
조선로동당 6,7기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2014년 4월 8일? 2018년 4월 20일? 2014년 4월 8일 정치국 회의에서 임명?
7차 당대회에서 재선
7기 3중전회에서 소환?
13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2014년 9월 25일 2016년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 13기 2차 회의에서 보선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직함 폐지
조선로동당 6,7기 정치국 상무위원
2015년 2월 18일 2018년 4월 20일? 2015년 2월 18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보선
7차 당대회에서 재선
7기 3중전회에서 소환?
13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2016년 6월 29일 2018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에서 선출
최고인민회의 13기 6차 회의에서 소환

4. 참고문헌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21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21).


[1]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의하면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상 북측 인사의 남쪽 방문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의 이동일 뿐이다. 그러므로 방한이 아니라 방남이 대한민국 헌법에 부합하는 표현이고, 한국 언론도 방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우리 집 작은 방에서 우리 집 큰 방으로 이동하는 것을 두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고 하질 않는 것과 같다. 자세한 설명은 방남 문서를 참조. [2] 인천시청 인근의 '영빈관'이라는 한정식집에서 이뤄졌으나, 해당 한정식집은 2016년말 폐업하고, 현재 그 자리에는 도심형 오피스텔 건물이 들어서 있다. [3] 황병서는 김정은이 유년기에서 청년기로 성장할 때 당 사업과 정치 분야에 나설 수 있도록 밀착 보좌한 인물이기 때문에, 이유가 어찌되건 김정은이 황병서의 숨통을 끊는다면 북한 최고 권력층 여론에 좋을 게 전혀 없다. [4] 이전까진 얼굴만 스쳐 지나갔지 이름이 보도되진 않았다. [5] 본래 이 직책은 현철해가 갖고 있었다. 2022년 현철해 사후 황병서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난 점을 보아 그때 즈음에 황병서가 국방성 총고문직을 이임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