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20:14:03

김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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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정각
金正閣 | Kim Jong Gak
파일:국무위원 김정각.jpg
출생 1941년 7월 20일 ([age(1941-07-20)]세)
평안남도 증산군
국적
[[북한|
파일:북한 국기.svg
북한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김일성군사종합대학 (학사)
최종 계급 차수
정당


1. 개요2. 생애
2.1. 초기 이력2.2. 전성기2.3. 은퇴
3. 경력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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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 군인, 정치인.

김정일 시대 말기 와병한 조명록을 대신하여 총정치국을 이끌었으며 김정은 집권 후 인민무력부장, 총정치국장을 역임하다 은퇴하였다.

2. 생애

2.1. 초기 이력

1941년 7월 20일, 평안남도 증산군에서 태어났고, 1959년에 조선인민군 입대한 뒤 복무 중에 군관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급 장교 교육 기관인 김일성종합군사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정확한 부대 언급 없이 대대장, 부군단장, 총참모부 훈련소 소장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장성 진급도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불분명하다. 최주활의 증언에 따르면 황해북도 사리원 기계화군단 820훈련소에서 일하다가 중앙으로 진출하였으며 김정일의 대단한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1991년 12월 조선로동당 6기 19중전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면서 북한 언론에 공식 언급되기 시작했고, 1992년 4월 23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부임한 김정일이 창군 60주년 기념으로 최고사령관 명령 0024호에 따라 장성들을 대거 진급시켰을 때 3성 장군인 상장으로 승진하면서 주목할 만한 고위 장성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도 임명되어 역대 부장들인 오진우, 최광, 김일철, 김영춘 등 북한 군부 최고위층 인사들 밑에서 일했다. 1992년 12월, 조선로동당 6기 20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5년 7월, 김봉률 장의위원, 1997년 2월, 최광 김광진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 7월에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처음 선출되는 등 정계에도 진출했고, 2000년에는 조선로동당 창당 55주년 기념으로 인민무력부 부부장 직함으로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대규모 열병식의 열병지휘관을 맡기도 했다. 2002년 4월 13일, 최고사령관 명령 00152호에 따라 대장으로 진급했고, 2003년 8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2007년 3월,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 임명되어 각종 질환으로 인해서 집무가 불가능했던 조명록을 대신하여 사실상 총정치국장 자리를 대행하였다. 2008년 10월, 박성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9년 3월,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2009년 4월, 최고인민회의 12기 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2009년 4월, 홍성남 장의위원, 2010년 4월, 김중린 장의위원을 지냈다. 총정치국 제1부국장 시절 평양 엘리트들의 니즈를 기가 막히게 잘 캐치하여, 간부들 자식들의 의무 군복무를 기념관 안내원들을 군편제에 넣어서 편한 꿀보직을 만들어주는 등 엘리트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2.2. 전성기

그러다가 김정은 후계세습을 준비하기 위한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및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월, 박정순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김정일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한 8인(나머지는 김정은, 장성택, 김기남, 최태복, 김영춘, 리영호, 우동측)중 한 명이다. 해박한 군사지식을 바탕으로 김정은의 군사 과외교사 중 한 명이었다는 말도 있다.

김정일 사후인 2012년 2월 15일, 국방위원회 결정에 따라 조선인민군 차수로 진급함과 동시에 김정일훈장을 수훈받았고, 두 달 뒤인 4월에 김영춘이 인민무력부장에서 퇴임한 뒤 그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총정치국장인 최룡해, 총참모장 리영호에 버금가는 군부 최고위 장성으로 입지를 굳혔다. 2012년 4월, 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하지만 불과 6개월 후인 2012년 10월, 4군단장 출신의 강경파 김격식이 후임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되면서 교체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북한 측 소식통들에 의하면 인민무력부장 재임 기간 동안 군부 내의 평이 좋지 않았거나 건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등의 설이 있다. 이후 김일성군사종합대학으로 이동해서 후방에서 편안히 지낸 것을 보면 고령으로 인한 건강 문제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3월 31일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위원에서 소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12기 7차 회의에서 김격식에게 자리를 내주고 리명수와 함께 국방위원에서 소환되었다.

2013년 7월 18일, 평양의 청년중앙회관에서 열린 김일성 전승업적 중앙연구토론회에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으로 등장하면서 김일성군사대학 총장 임명이 확인되었다. 별다른 진급 없이 그대로 대장 계급을 달고 있는 김격식이나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당한 최룡해, 현영철과 달리 강등 소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1월, 리을설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재선된 이후에는 한동안 소식 없이 조용히 지냈으나 이름이 보도되지 않아서 그렇지 2017년 10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 참석하는 등 그런대로 활동은 했다.

그러다가 2018년 2월, 총정치국장 황병서가 숙청된 이후 후임 총정치국장에 임명되었다고 국정원에서 확인하였으며, 군창건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하였으며 2018년 4월, 최고인민회의 13기 6차 회의에도 참석, 신임 국무위원회 위원에 보선되었고 2018년 4월 2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 참석, 첫째 의정을 토론하였으며 정치국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그런데 공개된 프사를 보면 원래 그런 건지 건강 문제 때문인진 몰라도 거의 눈도 뜨지 못하고 혈색도 굉장히 좋지 않다. 그러더니 2018년 5월 2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김수길 전 평양시당위원장이 '총정치국장 육군 대장'으로 보도되어, 총정치국장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5월 17일, 중군위 7기 1차 확대회의에서 정식으로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8월 김영춘이 사망하자 장의위원으로 선출된 것이 북한 보도에서의 마지막 등장이었다. 그런데 정치국 위원임에도 장의위원 서열이 상당히 낮았다. 김수길에게 총정치국장을 물려주면서 정치국 위원 업무는 보지 않았거나, 황병서 숙청 이후 흉흉한 내부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총정치국에서 잔뼈가 굵은 원로인 그를 데려와서 얼굴 마담으로 삼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의 해임 사유에 대해서 나이가 너무 많아서 실무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란 말도 있고, 2018년에 발생한 북한 유커 버스 교통사고에 대한 책임을 졌단 말도 있다.

2.3. 은퇴

2018년 9월 10일 공개된 9.9절 열병식에서 차수계급장을 달고 간만에 모습을 보였다. 현직 총참모장, 인민무력상, 총정치국장과는 달리 리용무 차수, 오극렬 대장 등과 같은 군원로들과 함께 모습을 비춘 것으로 보아 차수칭호만 유지한 군원로로서 여생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2019년 4월 9일,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한 것이 조선중앙텔레비죤 방송을 통해 잠시 비췄다. 정위원 자리에 착석해서 표결까지 한 것을 봐서 은퇴했지만 예우상 정치국 위원직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4월 1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 참석했으며, 정치국 위원 자격으로 1열에 앉았으나 정치국 위원에서 소환, 은퇴하였다. 2020년 10월, 조선로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 김영남, 최태복, 양형섭, 최영림, 김경옥, 리수용, 안정수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후 공개석상에서의 등장은 없으나 2022년 5월, 현철해가 사망한 이후 배포된 현철해의 생애를 기리는 다큐멘터리에 김정각도 나온 것을 봐서는 은퇴생활을 보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2022년 정권수립 74주년 기념행사에 김영남, 최영림, 박봉주, 리명수, 최태복, 김경옥, 박재경, 황병서와 함께 초대받음으로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9월 9일에 열린 경축연회에도 다른 노간부들과 함께 참석했다.

2023년 7월 27일 열병식에 손님으로 초대받았다. 한달 후인 9.9절 열병식에도 노간부 자격으로 초대받았다.

2024년 5월 7일 김기남의 사망에 따라 수령인 김정은을 제외하면 운구차 7인방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7월 8일, 김일성 30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추모음악회 관람 후 김정은과 기념사진을 찍는 등 상당한 예우를 받았다. 9월 8일, 정권창립 기념 야회에 참석했다.

3. 경력

임기시작 임기종료 비고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2007년 3월 2012년 4월 11일 조명록 권한대행
4차 당대표자회에서 인민무력부장으로 조동
12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
2009년 4월 9일 2013년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12기 1차 회의에서 선거
최고인민회의 12기 7차 회의에서 소환
조선로동당 6기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2010년 9월 28일 2012년 4월 11일 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거
4차 당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진
조선로동당 6기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2010년 9월 28일 2013년 3월 31일? 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거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은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무력부장
2012년 4월 11일 2012년 10월? 4차 당대표자회에서 임명
김격식에게 이임
조선로동당 6기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2012년 4월 11일 2013년 3월 31일 4차 당대표자회에서 선거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은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2018년 2월? 2018년 5월 17일 황병서의 후임으로 임명
중군위 7기 1차 확대회의에서 해임
13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
2018년 4월 11일 2019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3기 6차 회의에서 보선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임기만료
조선로동당 7기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2018년 4월 20일 2019년 4월 10일 7기 3중전회에서 보선
7기 4중전회에서 은퇴

4. 참고문헌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2021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