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7 15:48:56

특수 공화국 수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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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훈련을 하는 특수 공화국 수비대 병사들.
특수 공화국 수비대
영문 표기 SRG(Special Republican Guard)
아랍어 표기 الحرس الجمهوري الخاص
분류 대통령궁 경호대[1]

1. 개요2. 창립3. 채용4. 최후5. 후일담6. 기타7. 편제8. 재건9. 관련 문서

1. 개요

이라크 내의 반(反) 후세인 세력들은 걸프 전쟁의 패전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서 사담 후세인 암살과 정권 장악을 전제로 한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를 제압한 후세인은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의 명령을 우선하는 독립 부대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에 대통령궁을 경호할 부대를 창립한다는 명목으로 친위대 창설에 착수한다.

2. 창립

부대는 특수 공화국 수비대(Special Republican Guard)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으며, 황금사단(Golden Division)이라는 이명을 얻었다. Golden은 후세인 황금으로 도색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에서, Division은 사단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했다.[2] 서방 측에서는 이 부대를 ' 후세인 황금방패'라고 부르기도 했다. 자세한 창립연도는 불명이며, 대통령궁 경호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1992년이나 공식적인 사열식과 예산 편성을 하게 된 1995년 3월로 추정된다.

최초 창설시기가 불분명하다보니 초대 사령관도 불분명하다. 최후의 사령관은 미국의 공식교전기록 상 '바루잔 압둘 가후루 슬라이만 알 마지드 앗 티크리티' 준장으로 보인다. 이 사람은 2003년 7월 21일 바그다드 시내에서 게릴라 활동을 하다 미군에 생포당했다.

3. 채용

특수 공화국 수비대는 입대 지원율이 높았다. 훈련 기간에도 높은 보너스가 지급되었고[3], 의료 혜택 등 각종 복지와 여러 파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을 버틸 정도로 몸이 튼튼하고 키가 크면 채용될 수 있었으므로, 이는 하류층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였다.[4] 한편 후세인의 직속 친위부대라는 점에서, 권력층과의 접점을 원하는 후세인 고향 티크리트의 상류층 가문들도 특수 공화국 수비대 지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는 지원율이 너무 낮아서 지원만 하면 바로 합격되었던 당시 이라크 정규군의 상황과 대조된다. 후세인 정권이 망하기 직전의 이라크군은 심지어 대졸자면 영관까지 보장될 정도였다. 이러다보니 군의 허리가 되는 장교단 대부분은 에 관해서 무지했고, 이라크군은 질적으로 엄청나게 떨어졌었다.

다만 후세인 고향 티크리트 출신자가 아니면 서류심사에서부터 탈락했다. 또 집시가 아니거나[5], 바트당 당원이 아니거나, 훈련기간 내에 전향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채용되지 못했다. 여러모로 불공정한 기준이었지만, 특수부대원을 뽑기 위한 사상검사라는 핑계와 높은 급여로 반발을 무마했다.

4. 최후

이라크 전쟁 전까지는 굉장히 뛰어난 정예 부대로 홍보되어서, 특수 공화국 수비대만큼은 쉽게 지지 않을 거라는 여론이 대세였다. 그리고 실제로 특수 공화국 수비대는 어떠한 지원도 없이[6] 동원 가능한 중화기가 고작 50대 뿐[7]이었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5일이나 적의 공세를 막아냈다. 그러나 선전에도 불구하고 얼마 못 가서 무너졌다.

5. 후일담

이후 잔당들이 이라크의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 이런저런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후세인 체제부터 내려오던 유구한 파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8],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합류하다보니 부대의 질이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거기다 만성적인 물자 부족 등 여러가지 잡다한 문제가 겹쳐서 사실상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2004년[9] 미군 철수 이후의 이라크 치안 유지를 위해 편성 중이던 신생 이라크군에 편입된다. 이라크 정규군에 편입된 특수 공화국 수비대 출신 대부분은 IS와의 전투로 소모된걸로 추정된다. 한편 정규군 편입을 거부하고 끝까지 항전하던 이들과 집시 출신들은[10]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군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6. 기타

1970, 80년대 당시 루마니아의 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처럼 후세인 친위대 정규군을 차별했다. 그래서 이라크 전쟁이 아니었다 해도 차별받던 정규군에 의해 후세인은 축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근데 부족주의, 종파주의가 만연한 중동 지역의 독재 정권에서 이런 친위대는 거의 필수요소라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국방을 담당하는 정규군과 국왕 직속의 국가근위대가 각각 따로 있고, 카다피 정권 시기 리비아의 32여단(카미스 여단)과 이란의 이슬람 혁명 수비대는 매우 유명하며, 아사드 정권 치하의 시리아에서도 수없이 많은 첩보부대[11]를 운영했다.

당시 이라크 정규군은 대부분이 저학력자였고, 급여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는데도, 실제로는 그리 큰 불만이 없었다. 질적으로 매우 떨어지는 인원들이었던지라 단지 굶지 않기 위해 입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밥만 굶지 않으면 별 불만이 없었다.

후세인 몰락 이후에, 서구권 언론들에 의하면 후세인 스탈린처럼 군 고위 간부진을 싸그리 물갈이하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병사들 질이 매우 떨어지는 이라크군을 잘못 건드리면 더 망할것 같아서 포기하고, 대신 친위대 창설을 결심했다고 카더라. 그러나 이 당시 서구 언론들의 중동관련 보도 대부분이 신빙성이 떨어져서 영 신뢰하기가 어렵다.

7. 편제

규모가 가장 크던 시기에는 4개의 여단과 1개의 후세인 직할부대로 구성되었다.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기 전까지는 이라크에서 가장 충실한 설비와 보급품을 자랑했었다고 한다.

총원규모 12000명, 각 여단 2500명 구성의 편제로 되어있었다.

아래는 2003년 기준 편제다.
  • 여단
    • 제1여단 : 수도방위 담당
    • 제2여단 : 방위전 담당
    • 제3여단 : 방위전 담당
    • 제4여단 : 기갑전 담당
  • 병과사령부
    • 방공사령부
    • 전차사령부
    • 야전포병사령부
    • 박격포사령부
    • 통신사령부
    • 보급수송사령부
  • 직할부대
    • 화학소대
    • 수송소대
    • 헌병소대
    • 수리견인담당부대
    • 회계국
    • 탄약고
    • 품질관리부
  • 독립소대
    • 전차소대
    • 정보소대
    • 방송국방어소대
    • 엘리트기동소대

8. 재건



이라크 내전 중 황금사단 명칭을 쓰는 부대가 재등장했다. 사실 이들은 황금 사단으로 활동하는 이라크의 최정예군종인 이라크 특수작전군 (Iraqi Special Operations Forces (ISOF), قوات العمليات الخاصة العراقية‎‎)이다. 이들은 연전연패하던 다른 군종들과는 달리 ISIL과의 전투에서 놀라운 활약을 벌였다. 소련이 대조국전쟁 당시에 제국시절에나 있었던 근위대를 부활시킨 것과 유사한 이유로 만들어진 듯 하다. 이들은 독자적으로 M1A1로 이루어진 예하 기갑부대까지 보유하고 있다.[12]

파일:1546576714.jpg

사막 지역인 이라크지만 아군에게는 사기를, 적에게는 위압감을 주기 위한 흑복을 입고[13], 미군에서는 구식이 되어 퇴역한 지 오래된 CIRAS Land/Maritime 방탄조끼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테러조직 연관된 인물들 은신한 곳으로 보이는 건물로 진입하여 인질들을 신원조사하는 것으로 여전히 테러와 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야간투시경은 일부 요원들은 양안또는 PVS-14에 하이컷헬멧등을 착용하고 있다.

파일:황금사단 2.jpg

2020년에 나온 홍보사진으로 4안식 GPNVG-18 야시경을 착용하고 중국군 황모미채 위장이 된 컴뱃셔츠를 입고 있다.

9. 관련 문서


[1] 어디까지나 명목상이었을 뿐 사실상 친위대였다. [2] 후세인 뿐 만 아니라 중동에서 도금 등으로 장식하는 건 꽤 흔한 일이다. [3] 정식 급여가 아님에도 당시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에 맞먹었다고 한다. 급여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던 정규군과는 대조적이다. [4] 현대 중국에서도 인민해방군 입대가 시골 청년들에게는 가장 쉽고 효율적인 신분 상승 기회라서 지원율이 높다. [5] 이라크가 1940, 50년대까지 하심 왕조가 통치하던 왕국 시기 1958년 왕정을 폐지하고, 수립되어 1960년대 초까지 5년간 집권한 압둘 카림 카심 전 총리 제1공화국 시대까지도 차별받았던 이라크 집시들은 카심의 제1공화국 정권이 1963년 바트당 주도의 쿠데타로 붕괴하고, 뒤이어 집권한 아흐메드 하산 알 바크르와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 치하에서는 오히려 꽤 우대를 받았었다. 그래서 이들은 제4차 중동전쟁과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전쟁에서 이스라엘, 이란, 쿠웨이트군과 열심히 싸웠고, 가게나 집을 얻어 정착해서 잘 살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이 이슬람 신자가 아니라고 테러를 당하면 아예 군대를 보내 호위해줬을 정도였다. 그래서 이라크 집시들은 사담 후세인을 강하게 지지했고,  이라크 전쟁 당시엔 민병대까지 만들어서 총력을 다해 미군과 맞서 싸웠다. 결국 후세인이 축출된 후 교수형으로 죽자 집시들은 슬퍼하며 애도하기도 했다. [6] 이라크군은 이미 궤멸하여 유일하게 정상이던 부대는 공화국 수비대 뿐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질적으로 매우 떨어졌던 이라크 정규군은 있었어도 별 도움은 못 됐을 가능성이 높다. [7] 199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 금수 조치 때문이었다. [8] 상술했듯 원래 특수 공화국 수비대는 후세인의 고향 출신이거나, 바트당 소속이어야 했다. [9]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기 위해 잡다한 수속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10] 특수 공화국 수비대 중에서도 집시들 만큼은 항복을 절대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결사항전 했다고 한다. [11] 당연하지만, 이 중에서는 친위대 역할을 하는 부대들도 있고, 타 첩보부대를 감시하는 부대들도 있는 등 다양했다. [12] 아마도 기갑의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있어서인 것 같다. 그간의 공적을 감안해 이라크군이 가진 최고의 전차인 M1 에이브람스를 받은 것이다. [13] 다에시들이 이들의 흑색 복장이나 흑색 도색된 차량만 보면 도망갈 정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