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하기룡(河起龍)[1] |
출생 | 1969년[2]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 |
학력 |
부산대학교 (
영어영문학 88 /
중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 사법학 / 제적) |
가족 | 형 하성룡[3]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기간 | 1993년 ~ 1995년 |
임관 | 육군사관학교 (49기) |
최종계급 | 중위 |
최종보직 | 위탁교육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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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군인이자 범죄자.2. 생애
1969년 부산시(現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태어났다.1988년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입학 직후 자퇴했고 이후 재수를 통해 이듬해인 1989년 육군사관학교(49기)에 입학했다. 1993년 육군사관학교를 전체 14등으로 졸업한 뒤 보병 소위로 임관했으며 군법무관이 되기 위해 같은 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사법학과 2학년에 편입해 위탁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994년경에 우연히 빠져든 경마에 지나치게 심취한 나머지 공부를 점점 게을리하게 되었으며 결국 같은 해 치러진 군법무관 임용시험에도 탈락했다. 게다가 이러한 현실을 잊기 위해서 점점 더 경마에 빠져든 데다 고급 술집을 전전하는 바람에 결국 약 4500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다.
2.1. 육군 장교 강도 사건
일이 이 지경까지 가게 되자 하기룡은 결국 모교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생 신분으로 들어가서 사관생도 내무실에 비치되었던 K2 소총 1정을 훔쳐서 나온 뒤 그 소총으로 은행강도를 했다. 하기룡은 1995년 1월 9일 오후 3시 35분경에 서울특별시 성동구 능동(現 광진구 능동) 246-9번지에 있던 국민은행 능동출장소에 침입했다. 하기룡은 바바리 코트에 숨기고 있던 K2 소총을 꺼내 "가스총을 풀라" 며 청원경찰 임승재(任承宰)를 위협했고 임승재가 거세게 저항하자 소총 개머리판으로 때려서 쓰러뜨렸다. 하지만 임승재는 다시 일어나서 말 그대로 하기룡과 격투를 벌였고 이에 같이 일하던 은행 직원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임승재를 도와 하기룡을 제압하기 시작했지만 하기룡은 이들을 뿌리치고 서울어린이대공원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이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비디오제작사 영업사원 지영철(池泳哲)이 임승재를 자신의 차량에 태워 하기룡을 추격한 끝에 대공원 담벽에서 하기룡을 쓰러뜨렸다. 임승재는 하기룡을 체포해서 경찰에 신변을 인도했는데 잡고 보니 육군사관학교 출신 현역 대한민국 육군 장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기절초풍했다. 이 때문에 임승재와 지영철은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부터 용감한시민상을 받으면서도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고.2.2. 이후
보통군사법원에서는 하기룡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으나 단순 은행강도인 데다 미수에 그쳤고 인명피해가 아예 없었던 점을 감안하여 징역 4년으로 형량이 확정되었다. 당연히 현역부적합 전역 조치되었다. 따라서 육군사관학교 동문회에서도 영구제명당했다.하기룡은 소대장 임무만 수행한 후 곧바로 위탁교육을 받았고 참모나 중대장을 한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기룡의 군 경력은 사실상 1993년 한 해 동안 소대장을 한 게 전부였다.
3. 사건이 없었더라면?
만약 경마에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학업에만 전념하여 군법무관 루트를 타는 데 성공했더라면 대령으로서 군법무감으로 재직할 가능성이 높았으며, 설령 군법무관 시험에서 탈락하여 임관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일반 사관으로의 생활을 이어가 OAC를 수료했으면 야전에서 중대장 보직 이후 동기들과 함께 장성까지 진급했거나[4] 혹은 장성이 되지 않더라도 최대 대령까지 진급하여 정년까지 근무를 했었을 것이다.[5] 실제로도 3기수 선배인 강신철이 교수사관을 지망했다가 보직이 꼬이는 바람에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해서 일반사관으로 진로를 수정한 뒤 대장까지 진급해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올랐다. OAC를 거치지 않을 경우 사단 본부대로 발령나서 행정보급관의 장교 버전인 행정장교를 보직한 후 5년차 전역을 해서 군대를 나온 뒤에 공기업 혹은 대기업(혹은 하다가 못해 질이 좋은 곳이 있다면 중견~중소기업) 등 사기업 취직이나 혹은 공직 생활을 계속 쭉 이어가고자 한다면 군 경력자를 대상으로 한 군무원이나 경찰/소방 공무원 경력채용자 임용 등으로 잘 살았을 것이다.좋은 방향으로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지 분명 경마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저런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안 좋은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4. 여담
- 육군사관학교 49기 동기로는 박재열, 서진하, 이승오 (이상 중장), 김흥준, 문병삼, 어창준, 류승민, 최성진, 김수광, 박춘식, 강관범, 김진익, 오병석, 오혁재 (이상 소장), 석용규, 조용근, 박정환, 김병기 (이상 준장) 등이 있다.
5. 참고 기사
[1]
河基龍이라고도 한다.
[2]
1988년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입학 직후 자퇴, 재수하여
육군사관학교에
49기로 입학하였다.
[3]
1995년 1월 10일 조선일보 기사
[4]
육군사관학교 49기 동기들은 2019년 하반기에 첫 준장 진급자가 나온 것을 시작으로 2021년 하반기에 첫 소장, 2024년 상반기에 첫 중장 진급자가 나왔다.
[5]
장교의 경우 대령 이상의 계급으로 정년까지 근무하다가 전역을 하면, 못해도 30년이 넘는 복무기간에 대한 보상으로 높은 군인연금에 이어 품위유지비까지 추가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은퇴 이후의 금전적 걱정은 본인이 흥청망청 낭비해버리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복무기간이 33년 이상이면, 정부 차원의 훈장인 보국훈장까지 수여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명예와 자긍심도 채워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