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오전 8시, 제1레이더대대와 제5해병연대 2대대 도합 해병대 2개 대대가 직사각형 모양의 섬 두 끝의 중간 지점인 툴라기 서쪽 해안에 상륙했다.해안 근처의 산호로 인해 상륙정은 해안선에 도달하지 못해 남은 거리를 걸어야 했지만 미야자키 시게토시 대위가 이끄는 툴라기의 일본군은 기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남은 군대가 야음을 틈타 저항해보았지만 8일 새벽 격파되었다. 미군 사망자 45명, 일본군 사망자 307명. 일본군 3명 생포.
가부투와 타남보고 섬은 약 500m 너비의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일본 해군 536명, 제14건설부대 예하 한국인과 일본인 징용자가 이 섬에 있었는데, 미군 사령관 제1해병사단 부사단장
윌리엄 H. 루퍼터스 준장은 일본군과 건설자를 합쳐 200명이 있는 것으로 오판하고 8월 7일 정오 가부투에 제1낙하산대대만을 보냈다가 10%의 사상자를 내고 가부투를 점령하였다. 타남보고는 당초 8월 7일 밤에 제2해병연대 1대대 예하 1개 중대를 5척의 상륙정에 나누어 보냈으나 단 12명만이 살아남아 가부투로 향하였고, 다음날 아침 10시에 제2해병연대 3대대를 가부투에 보내어 가부투의 일본군 잔당을 12시까지 일소한 뒤 타남보고로 향하여 점령하였다. 타남보고 사령관 시게토시 미야자키 대위는 자폭하였고, 남은 일본군은 9일 정오 이전에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