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1 12:36:03

크라튈로스



1. 개요2. 등장인물3. 줄거리
3.1. 규약주의 비판3.2. 어원 분석3.3. 자연주의 비판3.4. 언어는 사물 탐구의 적절한 도구인가?
4. 여담

1. 개요

크라튈로스는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이다. 부제는 이름의 올바름에 관하여.

2. 등장인물

  • 소크라테스
  • 크라튈로스: 이름의 올바름이 사물의 본성에 따라 자연적으로 달려있다고 여기는 자연주의자.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이전에 따르던 헤라클레이토스주의자 크라튈로스와 동일인물로 여겨지기도 하나 사상이 극단적으로 치달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려 한 실제 크라튈로스와 행동이 다르다며 동명이인으로 치부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 헤르모게네스: 이름의 올바름이 사회적 합의 언어 사용자 개개인에게 달려있다고 주장하는 규약주의자. < 프로타고라스>의 등장인물 칼리아스의 이복동생이다.

3. 줄거리

3.1. 규약주의 비판

헤르모게네스는 소크라테스에게 가르침과 중재를 부탁한다. 헤르모게네스는 사물에 붙은 이름들이 자연적으로 생겨난 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임의로 만들어낸 건지에 관해 크라튈로스와 토론을 하고 있었는데 크라튈로스는 이름을 붙이는 규칙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이는 그리스에서나 이민족들에게나 같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물으니 크라튈로스가 빙글빙글 돌려 말하기만 하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확히 말을 하지도 않으면서, 나 크라튈로스는 크라튈로스고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소크라테스지만 너는 헤르모게네스가 아니라는 말만 한다는 것이다. 헤르모게네스가 생각하기에, 이름이란 것은 단순한 사회적인 합의에 불과하지 원래부터 올바른 이름과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해 토론을 해보려는데 크라튈로스의 태도가 매우 불량해서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것들은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려운 법이라는 속담[1]을 인용하며 소피스트 강연을 듣다 말아서 자신도 이름의 올바름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는 아무래도 크라튈로스가 하는 말은 자네를 놀리려 하는 것 같다고 하며 속담을 인용하며 말했듯이 이름에 관해서는 알기 어려우니 둘의 주장을 하나하나 따져보자고 제안하며 이름에 관한 탐구에 들어간다.

헤르모게네스는 자기는 이름의 올바름이 자연적 법칙이 아니라 합의나 동의에서 나올 뿐이라고 여긴다고 생각한다며 그 외의 다른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가 보기엔 누군가가 어떤 것에 무슨 이름을 붙이든 그것은 옳은 것이고 다른 사람이 이름을 다시 한번 바꿔 부르더라도 그 이름 역시 올바르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집안 노예들의 이름을 바꾸어 줄 때 옛 이름과 나중 이름 모두 올바른 것 처럼 말이다. 헤르모게네스는 이것과 다른 방식이 있다면 크라튈로스에게서든 소크라테스에게서든 당장 배울 준비가 되었다고 단언한다.[2]

소크라테스는 이를 잠자코 듣더니 문답을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이름은 어떻게 붙이든 붙이는 사람 나름이라는 헤르모게네스의 주장을 재확인 한 후 그럼 지금 당장 내가 사람을 '말'이라 부르고 말을 '사람'이라고 부르더라도 옳다고 여기냐고 묻는다. 헤르모게네스는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바꾸어 참과 거짓, 그리고 참말과 거짓말이 실존한다 생각하냐고 묻고 헤르모게네스는 이 역시 그렇다고 답한다. 헤르모게네스는 그렇다면 '있는 것들'을 있다고 말하는 게 참이고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맞냐고 묻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참말의 부분은 참이고 거짓말의 부분은 거짓이니 참말과 거짓말을 이루는 부분인 이름에 관해서도 참과 거짓을 논할 수 있겠냐고 묻고 헤르모게네스는 동의한다. 즉 참인 이름과 거짓인 이름이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3] 소크라테스는 그럼 각자가 어떤 것의 이름이라고 말하는 것이 곧 각 사물의 이름이냐고 묻고 헤르모게네스는 이 역시 그렇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럼 각 사물들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붙이는 만큼의 이름을 가지냐고 묻고 헤르모게네스는 당연히 그렇지 않냐면서, 자신도 이름을 마음대로 붙일 수 있고 소크라테스 역시 마음대로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민족들의 언어에는 각 사물을 부르는 이름이 그리스어랑은 딴판이지 않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소크라테스는 헤르모게네스가 '있는 것들' 역시 언어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지 한번 검토해보자며, 프로타고라스가 주장한 대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 세상 모든 것은 그 사람이 받아들이는 대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헤르모게네스는 예전엔 프로타고라스를 추종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믿지 않는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혹시 선악 역시 상대적이기에 나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본 적 없냐고 묻지만 헤르모게네스는 자기는 나쁜 사람은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고 부정한다. 그럼 훌륭한 사람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적지만 존재한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가 말한 것이 진리라면 세상엔 분별있는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지 않겠냐 하며 오히려 헤르모게네스는 프로타고라스보다는 에우튀데모스[4]처럼 절대적 선악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결론내린다. 헤르모게네스 역시 맞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모든 사물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과는 관계 없이 각각 자신들만의 본질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 사물들로 말미암아 생기는 행위들 역시 '있는 것들'의 일부이니 마찬가지 아니냐고 묻는다. 헤르모게네스가 그렇다고 답하자 소크라테스는 행위 역시 본성에 따라 행해지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라야 할 때 우리가 원하는 도구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는게 아니라 자른다는 행위에 걸맞은 도구를 올바르게 사용해야 잘 자를 수 있지 않냐는 것이다. 헤르모게네스가 이에 동의하자 소크라테스는 말 역시 행위이니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말을 하는게 아니라 본래의 방식 도구를 이용해 말을 해야 올바르게 말 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런데 이름을 부르는 행위 역시 말의 부분이자 행위의 일종 아니냐고 한다. 즉 이름을 부르는 것도 본래의 방식과 도구를 이용해야 제대로 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뚫어야 할땐 송곳을, 짜야 할땐 베틀을 쓰듯이 이름을 불러야 할 때는 이름이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이름이라는 도구의 기능을 정의하자면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본질을 가를 때 쓰는 것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 그런데 베틀은 (아무나 만드는게 아니라) 목공이, 송곳은 대장장이가 만드는 것처럼 도구의 일종인 이름 역시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아무렇게나 만드는게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헤르모게네스에게 우리가 사용하는 이름은 누구의 제작자인지 묻는다. 헤르모게네스가 모르겠다고 답하자 소크라테스는 이름 제작 기술자는 규칙을 부여하는 이이니 입법가라 부르는게 적당할 거라고 한다. 이러한 입법가들은 많은 기술자중에 가장 드문자들 같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5]

소크라테스는 그럼 입법가들이 이름을 만들때 어디에 주목하는지 살펴보자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설명에 따르면, 목공들은 베틀을 만들 때 그 기능을 만들어주는 베틀의 형상에 주목해 재료에다가 베틀의 형상을 구현시킨다. 마찬가지로 옷을 만드는 기술자들 역시 재료에다가 옷의 형상을 알맞게 구현시킨다. 비슷하게 입법가 역시 각 사물에 적합한 이름을 음성과 음절에 구현시킨다. 그리고 대장장이들이 항상 같은 철에 송곳을 구현하는게 아닌 것 처럼 입법가 역시 자기 나라의 음성과 음절에 걸맞게 이름을 구현시키는데 그리스와 이민족 나라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난 다른 철에, 이민족 대장장이 손에 구현되었더라도 제 역할을 다하는 송곳은 훌륭한 도구인 것 처럼 이민족 언어에 구현된 이름 역시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면 제대로 된 도구이다.[6]

소크라테스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 헤르모게네스에게 베틀이 그 형상을 제대로 반영해 적합하게 만들어졌는지를 평가하는 이는 그걸 제작한 목공인지, 아니면 사용하는 직조공인지를 묻는다. 헤르모게네스는 직조공 쪽인 것 같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뤼라가 잘 만들어졌는지를 감독하는 이는 연주자, 조선공의 제작물에 대해서는 조타수인 것 처럼 이름 역시 사용하는 사람이 만듦새를 감독하는데, 질문과 대답에 능한 변증술 전문가들이 그 감독자들 아니겠냐고 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이름 붙이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찮은 일이 아니고 크라튈로스의 말대로 이름은 각 사물들에 본래 존재하며 입법가들이 심사숙고해 사물들의 형상을 구현해 만드는 게 맞는 것 같다며, 크라튈로스의 자연주의를 지지하는 결론을 낸다.[7]

3.2. 어원 분석[8]

헤르모게네스는 아직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하며 예시를 들어가며 좀 더 확실하게 주장해달라 요청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금 무언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9] 방금의 논의로 사람들간의 합의와는 다른 이름의 올바름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니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우선 이 문제에 관해 아는 사람들과 논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헤르모게네스의 형 칼리아스가 프로타고라스에게 이름의 올바름에 관해 배웠을테니 가서 물어보자고 한다. 헤르모게네스는 자신이 프로타고라스 사상을 지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상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거절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호메로스를 비롯한 시인들에게 배워야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만일 사람이 부르는 이름과 신들이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면 신들의 것이 더욱 올바른 이름일 것이라며 호메로스 서사시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든다.
  • 신들은 트로이에 있는 강을 크산토스(Xantos)라고 부르는데 사람들은 이를 스카만드로스(Skamandros)라고 부른다.
  • 신들은 칼키스(chalkis)라고 부르는 새를 사람들은 퀴민디스(kymindis)라고 부른다.
  • 트로이 평원에 있는 언덕을 신들은 뮈리네(Myrinē)라고 부르는 반면 사람들은 바티에이아(Bathieia)라고 부른다.

소크라테스는 하지만 신들의 이름들에서 감히 올바름을 찾아내기엔 자신이나 헤르모게네스나 능력이 딸리니 헥토르의 아들 아스튀아낙스의 이름을 분석해보자고 한다. 그러면서 호메로스에 따르면 트로이 남자들이 헥토르의 어린 아들을 아스튀아낙스(Astyanax)라고 불렀는데 그렇다면 다른 이름인 스카만드리오스(Skanadrios)는 여인들이 부른 이름 아니겠냐고 한다. 그런데 여자보다 남자가 더욱 분별있으니 남자들이 부른 이름인 아스튀아낙스가 더욱 올바른 이름 아니겠냐고 주장한다.[10] 그리고 아스튀아낙스 쪽이 더욱 올바른 이름인 이유는 트로이 왕비 헤카베가 아들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는 혼자 그들의 나라와 긴 성곽을 지켰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그런 헥토르의 아들과 맞는 성질을 지닌 이름은 아스튀아낙스(도시의 주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거기에 더해 아낙스(anax, 주인)과 헥토르(hektōr, 소유자)는 둘 다 왕의 이름이기도 하다면서 사자의 새끼가 사자이고 말의 새끼가 말인 것처럼 소유자의 자식은 왕의 성질을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냐고 한다.[11] 그렇기 때문에 스카만드리오스보다 아스튀아낙스가 더욱 의 이름에 걸맞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베타(βήτα )라는 이름은 자기 자신(β) 외에도 에타, 타우, 알파를 덧붙이고 있는데 자기 성질을 잘 드러내고 있다며 다른 자모를 추가하더라도 그 이름의 본질을 해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12] 그리고 빛깔과 냄새가 다른 약들도 실제로는 같은 특성을 지닐 수 있듯이 이름 역시 다른 자모를 지녀도 같은 뜻과 성질을 지닐 수 있다며 헥토르(Hektōr)와 아스튀아낙스(Astyanax) 역시 타우를 제외하고는 사용되는 자모가 다 다른데 같은 뜻을 지닌다고 부연설명한다. 소크라테스는 거기에 더해 통치자(Archepolis), 지도자(Agis), 군지휘관(Polemarchos), 훌륭한 전사(Eupolemos) 같은 단어 역시 다른 자모를 지녔지만 왕을 뜻하는 단어들이라고 예시를 든다. 비슷한 식으로 명의(Iatoklēs), 사멸하는 자의 치유자(Akesimbrotos) 같은 단어 역시 의사라는 같은 뜻을 지녔지만 다른 자모를 사용하고 비슷한 단어들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거라 한다. 소크라테스는 뒤이어 신화 속 아트레이드 가문 사람들의 이름의 어원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 오레스테스(Orestēs)는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의 야성적이고 거친 본성을 드러낸다.
  • 그의 아버지 아가멤논(Agamemnōn)은 참고 견디는 데에 경탄할 만한 자(agathos kata tēn epimonēn)이라는 의미이다.
  • 아트레우스(Atreus)는 굽힐 줄 모름(ateires), 두려움 없음(atreston), 혹은 파멸(ateros)라는 뜻을 가졌는데 셋 모두 그의 본성에 적절하다.
  • 펠롭스(Pelops)는 가까이(pelas) + 보다(opsis)라는 의미로 뮈르틸로스를 살해해 자신의 자손들을 저주에 빠트린 그의 근시안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 탄탈로스(Tantalos)는 흔들림(talanteia), 가장 비참한 자(talantatos)라는 뜻으로 여러 재난을 겪은 그의 운명을 나타낸다.
  • 제우스(Zeus)는 목적격으로 제나(Zena) 혹은 디아(Dia)라고 하는데[13] 제우스는 삶(zēn)의 원인(di hon)이니 적절한 이름이다.
  • 크로노스(Kronos)는 순수한(koros) + 지성(nous)라는 뜻으로 지성은 곧 사유(dianoia)이니 제우스(dia)가 크로노스의 아들인 것이 자연스럽다.
  • 우라노스(Ouranos)는 위에 있는 것을 주목함(ourania)라는 뜻으로 이를 풀어 쓰면 위에 있는 것을 본다(horōsa ta anō)가 되고 그 결과 순수한 지성(nous)가 형성되니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의 아들임이 당연하다.

헤르모게네스는 어원 분석을 하는 소크라테스가 신들린 예언가처럼 보인다고 감탄한다. 소크라테스는 오늘 새벽에 에우튀프론[14]의 대화를 들으며 영감이 깃든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떤다. 일단 오늘은 이 영감으로 어원 분석을 하지만 내일은 이 지혜를 내쫓고 정화하며 신들께 무례를 용서빌어야겠다고 하며 여러 형이상학적인 이름들을 분석하기 시작한다.[15]
  • 신들(theoi)은 궤도를 달린다(theonta)는 의미로 해, 달, 별 등이 곧 신이기 때문이다.
  • 신령들(daimones)[16]은 앎을 가진 자들(daēmones)이란 뜻으로 그들이 분별있고 빼어남을 보여준다. 헤시오도스가 말한 황금족이 이 신령들을 가리킨다.
  • 영웅(hērōs)이라는 이름은 그들이 신과 인간의 사랑(erōs)로 태어난 반인반신들이며 질문(erōtan)하는데에 능숙한 지혜로운 이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 사람들(anthropoi)이란 단어는 짐승들 중 유독 사람들만이 무언가를 보기만 할 뿐 아니라 본 것을 자세히 관찰한다(anathrōn ha opōte)는 말이 음운 변화를 거친 것이다.
  • 영혼(psychē)은 새로운 활력을 갖게 한다(anapsychon), 혹은 본성(physis)을 운반하고(ochei) 유지하는(echei) 것이라는 뜻이다.[17]
  • 육체(sōma)는 영혼의 무덤(sēma)이자 감옥(sōma)이다. 혹은 영혼의 표지(sēma)이자 영혼을 보존하는(sōizetai) 울타리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18]

헤르모게네스는 소크라테스에게 뒤이어 신들의 이름을 분석해달라 요청하고 소크라테스는 이를 받아들여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 헤스티아(Hestia)는 본질(ousia)의 방언 essia에서 비롯된 단어로 본질에 참여하는 것을 있다(estin)이라고도 부른다.
  • 레아(Rhea)는 흐르는 것(rheumata)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입법가들은 헤라클레이토스와 같은, 모든 것은 흐른다는 주장을 추종했음이 틀림없다. 같은 식으로 앞서 살펴본 크로노스 역시 흐르는 것인 샘물(krounos)와 연관시킬 수 있다.
  • 테튀스(Tēthys)는 체로 쳐짐(diattōmenon)과 걸러짐(ēthoumenon)이라는 뜻으로 물이 새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름 역시 모든 것이 흐른다는 사상이 들어가있다.
  • 포세이돈(Poseidōn)은 바다가 걸어가지 못하게 막아서 발들의(tōn podōn) 족쇄(desmos)처럼 작용한다는 뜻으로 이 힘을 다스리는 신이 발의 족쇄(posidesmon)라고 생각해 붙인 이름이다. 혹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이(pollaeidōn)나 땅을 흔드는 이(ho seiōn)라는 뜻일 가능성도 있다.
  • 플루톤(Ploutōn)은 땅에서 나오는 부(ploutos)의 증여와 관련 있는 이름이다. 많은 부 땅에서 나기 때문이다. 그의 다른 이름 하데스(Haidēs)는 많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aides)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 이를 두려워하지만 사실 그는 나쁜 육체에서 벗어나 혼이 깨끗해진 이를 가까이하고[19] 아름다운 지혜로 수많은 영혼을 저승에 잡아두고 있는[20] 철학자적인 면모가 있는 신이기에 훌륭한 것을 알고있다(eidenai)라는 의미이다.
  • 데메테르(Dēmētēr)는 어머니(metēr)처럼 먹을 것을 베푼다.
  • 헤라(Hera)는 사랑스러운(eratē) 여신이다. 그리고 헤라라는 이름에는 공기(aēr)라는 뜻도 숨어있다.
  • 페르세포네(Phersephonē)는 살육을 가져오는 자(phereinphonon)으로 읽기 쉬운데 사실 페레파타(Pherrephatta)라는 이명이으로 살펴보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움직이는 사물들을 붙잡고 접촉하며 뒤쫓을 수 있는 능력이 곧 지혜이기에 움직이는 것과 접촉한다(epaphē tou pheromenou)는 뜻을 가진 이 이름은 그녀의 지혜로운 본성을 드러낸다.
  • 아폴론(Apollōn) 역시 비슷한 식으로 파괴하는 자(apolluōn)이나 살해자(apolōn)으로 읽기 쉬운데, 의술의 신으로써 나쁜 것들을 씻어내고(apolouōn) 거기서 벗어나게 한다(apolyōn)는 의미와 그는 예언술의 신으로써 진실을 다루는데 진실은 곧 순진함(haploun)이니 이를 의미하기도 하고 궁술의 신으로써 언제나 맞히는 자(Aeiballōn)이라는 뜻도 있으며 시가의 신으로썬 선율이 조화롭게 함께 움직임(homopolōn)이란 뜻에서 homo-가 a-로 대체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 무사(Mousa)와 시가(mousikē)라는 단어는 갈망(mōsthai), 즉 탐구와 철학에서 비롯되었다.
  • 레토(Letō) 여신은 부드럽고 온화한데(leion tou ethous), 누가 무엇을 청해도 기꺼워한다.(ethelēmos)
  • 아르테미스(Arthemis)는 단정함과 건전함(artemes)를 의미하며 여자 속에서 남자가 밭갈이 하는 것을 혐오한다(aroton misēsasēs)는 뜻도 존재한다. 또한 이 여신은 덕에 정통한 자(aretēs histōr)이기도 하다.
  • 디오뉘소스(Dionysos)는 포도주(oinos)를 주는 자(didous)라는 의미이다. 추가로 포도주(oinos)는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님에도 제정신(nous)이라고 생각하게(oiesthai) 만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아프로디테(Aphroditē)는 거품(aphros)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이다.
  • 아테나(Athēna)는 신의 지성(theou noēsis)라는 의미를 지닌[21] ha theonoa의 변형이다. 혹은 뛰어난 식견을 지녔다(ta theia noousa)라는 의미를 지닌 theonoē의 변형이나 지성적 성격(hē en tōēthei noēsis)라는 의미를 가진 ēthonoē의 변형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녀의 이명 팔라스(Pallas)는 흔들다(pallein)에서 나온 말로 무장한 채 춤춘다는 뜻이다.
  • 헤파이스토스(Hēphaistos)는 빛에 정통하다(phaeos histora)는 의미를 지녔다.
  • 아레스(Arēs)는 남자다움(arrēn), 용감함(andreia), 완고한 성격(arraton)이라는 뜻이다.
  • 헤르메스(Hermēs)는 해석자(hermēneus), 혹은 말하기를 교묘하게 꾀하는 자(to eirein emēsato)라는 뜻으로 헤르모게네스의 이름이 올바른 이름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헤르모게네스는 헤르메스의 종족(genos)이라는 의미인데 헤르모게네스의 본성은 헤르메스의 교묘함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 (Pan)은 모든 것이라는 의미이며 그의 본성은 이중적인데 언어야말로 모든 것을 표시하고 순환하게 하며 참과 거짓의 양면성을 지녔으니 판이 헤르메스의 아들임이 적당하다.
소크라테스는 신들에게 미움 받는 것이 두려우니 이제 신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만 하자고 한다. 헤르모게네스는 대신 해와 달, 불, 물과 같은 자연의 여러 성질들을 나타내는 이름을 해석해달라고 요청한다.
* 태양( hēlios)는 뜨면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halizein), 혹은 땅 주위를 돌며 운행한다(aei heilein iōn)는 뜻이다. 혹은 운행하면서 땅에서 생산되는 것들의 색깔을 다채롭게 해주기(aiolein)[22] 때문에 붙은 이름일 수도 있다.
* 달( selēnē)는 태양빛(selas)를 받아 빛난다는 의미로 아낙사고라스가 주장한 달이 자체발광하지 못한다는 학설이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드러낸다.[23] 혹은 새로우면서 오래된 빛을 가진다(selas neon kai enon echei aei)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는데 아낙사고라스의 학설에 따르면 달은 태양빛을 받으며 이를 머금고 저장해놓은 지난달의 빛을 같이 뿜어낸다.
* 달(시간)(meis)는 점점 줄어든다(meiousthai)라는 뜻이다.
* 별들(astra)는 반짝임(astrapē)이란 뜻과 눈을 위로 향하게 하다(ta ōpa anastrephei)라는 뜻이 존재한다.
* 불(pyr)과 물(hydōr), 개(kyōn)는 어원 분석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외래어로 보인다.
* 공기(aēr)는 공기가 사물들을 들어올리고(airei) 늘 흐르고(aei rhei), 그것의 흐름이 강풍(aētai)를 일으킴에서 비롯되었다.
* 에테르(aither)는 공기 주위를 흐르면서 달린다(aei thei peri ton aera rheōn)는 뜻이다.
* 땅(gē)는 가이아(gaia)라고 부를 때 의미가 더 잘 드러나는데 이는 어머니(gennēteira)라는 의미이다.
* 계절들(hōrai)는 때를 구별해준다(horizein)는 의미이다.
* 년도(etos)는 동식물 각각을 세상에 내보내고 그것을 자신 속에서 검토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검토한다(etazei)라는 의미의 이름이 붙었다. 혹은 다른 말로 eniautos라고도 하는데 이는 자신 속에서(en heauto)라는 의미로 한 문장이 두 동의어로 나뉜 것이다.

헤르모게네스는 이번에는 덕과 윤리와 관련된 이름들을 검토해보자고 제안한다. 소크라테스는 옛 입법가들은 만물은 흐른다는 헤라클레이토스적 사상을 가지고 이름을 지은 것 같다고 하며 이에 기반해 어원 분석을 한다.
  • 분별(pronēsis)은 움직임에 대한 인식(phoras noēsis), 혹은 움직임의 향유(phoras onēsis)라는 뜻이다.
  • 판단(gnōmē)은 출산(생산)에 대한 관찰(gonēs nōmēsis) 혹은 검토를 의미한다.
  • 인식(noēsis)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neouhesis)라는 뜻이다.
  • 절제(sōphrosynē)는 분별(phronēsis)의 보존(sōteria)이라는 의미이다.
  • 지식(epistēmē)은 혼이 움직이는 사물을 따라가되(hepetai)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 이해(synesis)는 곧 헤아림(syllogismos)이고 혼이 사물들과 함께 나아가는(synienai) 것이기도 하다.
  • 지혜(sophia)는 페르세포네의 이름을 분석했을 때 살펴봤듯 움직임에 접촉한다는 의미이나 이것으로는 어원 분석이 불가하니 스파르타 방언을 동원해야 한다. 스파르타에서는 재빠른 돌진을 Sous라고 하는데 이에 접촉함(epaphē)이 곧 지헤이다.
  • 훌륭한(agathon)이라는 단어는 경탄할 만한 것(agaston)이라는 의미인데 특히 재빠른(thoon) 것의 감탄할 만한 것을 의미한다.
  • 정의(dikaion)는 모든것을 관통하며(diaïon) 지배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것으로 인해(di' ho) 무엇인가가 생겨난 원인(aition)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 불의(adikia)는 관통하는 것(diaïon)에 대한 방해를 뜻한다.
  • 용기(andreia)는 거꾸로 흐름(anreia)이라는 뜻으로 큰 흐름에 반대하여 싸우는 것을 의미한다.
  • 남자(arren, anēr)는 용기와 비슷하게 위로 흐름(anōi rhoēi)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 여자(gynē)는 자궁(gonē)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역시나 여자라는 의미인 thēly는 젖꼭지(thēlē)에서 유래하였다.
  • 젖꼭지(thēlē)는 어린이를 자라나게(tethēlenai) 한다는 의미이다.
  • 자라다(thallein)라는 단어는 달리다(thein)와 도약하다(allesthai)의 합성어이다.[24]
  • 기술(technē)은 타우를 빼고 오미크론을 두개 넣으면 echonoē가 되는데 이는 지성의 소유(hexis nou)를 의미한다.[25]
  • 고안(mēchanē)은 커다란(mēkos) 성취(anein)라는 뜻이다.
  • 덕(aretē)은 방해받지 않고 언제나 흐르는 것(aei rheon)을 의미한다.
  • 악(kakia)은 나쁜 움직임(kakos ion)이란 의미이다. 이는 움직임이 방해받음을 의미한다.
  • 겁(deilia)는 혼의 매우(lian) 강력한 족쇄(desmos)이다.
  • 나쁜(kakon)은 의미 분석이 힘든 것으로 보아 외래어로 보인다.
  • 수치스러운(aischron)이라는 단어는 흐름을 언제나 저지하는 것(aei ischon ton rhoun)이라는 뜻이다.
  • 아름다운(kalon)이라는 단어는 이름을 붙이는(kaloun) 능력, 즉 사유와 분별력을 의미한다.
  • 유익한(sympheron)이란 단어는 혼이 사물들과 함께 회전한다(symperipheresthai)는 뜻으로 지식(epistēmē)와 같은 단어이다.
  • 이득(kerdos)는 좋은 것의 성질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통과하며 모든 것과 섞인다(kerannytai).
  • 이로운(lysiteloun)이란 단어 역시 좋은 것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빨라서 항상 사물을 움직이게 한다. 즉 움직임의 끝을 무효화시킨다.(lyon telos)
  • 유용한(ōphelimon)은 자라나게 한다는 뜻의 외래어이다.
  • 해로운(blaberon)이라는 단어는 흐름을 방해하는 것(blapton ton rhoun)이라는 뜻이다.
  • 방해하는 것(blapton)은 붙잡아 매려 하는 것(boulomenon haptein)을 의미한다.
  • 붙잡아 매다(haptein)는 묶다(dein)과 같은 뜻이다.
  • 손해가 되는(zēmiōdes)이라는 단어는 델타와 이오타를 많이 사용한 옛 어법에 따르면 데미오데스(dēmiōdes)가 되는데 이는 움직임(나아감)을 묶는 것이라는 뜻이다.
  • 비슷한 식으로 해야 하는 것(deon)은 지금의 단어로 봐서는 족쇄(desmos)가 연상되나 옛 어법에 맞춰 diion으로 읽으면 통과하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 날(hēmera) 역시 옛날식으로 himera로 읽으면 사람들이 햇빛을 반기고 갈망한다(himeirousi)는 뜻이 드러난다.
  • 멍에(zygon)도 옛 단어 dygon은 두마리 짐승을 같이 묶는 것(dyoin agōgēn)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 쾌락(hēdonē)는 즐기는 것(hē onēsis)을 목표로 하는 활동이다.
  • 고통(lypē)은 몸의 외해(dialysis)를 의미한다.
  • 슬픔(ania)은 움직임(ienai)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 괴로운(algeinos)라는 단어는 외래어이다.
  • 비통(odynē)은 고통에 빠짐(endysis)라는 뜻이다.
  • 성가심(achthēdōn)은 움직임의 무거움, 즉 움직임에 짐이 됨을 묘사하는 이름이다.
  • 기쁨(chara)은 혼의 흐름이 확산되고 순조롭다는 의미이다.
  • 환희(terpsis)는 혼을 거쳐서 슬그머니 나아간다(herpsis)는 뜻이다.
  • 유쾌(eupherosynē)는 혼의 움직임이 사물들과 조화를 잘 이룬다(eu sympheresthai)는 의미이다.
  • 욕구(epithymia)는 격정으로 나아가는(epi ton thymon iousa) 힘이라는 뜻이고 격정(thymos)은 혼의 격노(thysis)와 끓어오름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 열망(himeros)은 급격한(hiemenos) 흐름이자 사물들을 갈구하는(ephiemenos) 흐름이다.
  • 동경(pothos)은 다른 어디엔가(pou)에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다.\
  • 사랑(erōs)은 눈을 통해 바깥의 아름다운 존재에서 흘러 들어오는(esrei) 것이다.
  • 의견(doxa)은 앎을 추구하는 행위(diōxis), 혹은 활(toxon)쏘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 생각(oiēsis)은 어떠한 것을 향한 혼의 움직임(oisis)을 나타낸 단어로 이 역시 발사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 의도(boulē)는 던짐(bolē)과 관련있다.
  • 숙고하다(bouleuesthai)라는 단어는 무엇인가를 목표로 삼는다(ephiesthai)는 뜻이다.
  • 무계획(aboulia)은 맞히지 못함(atychia)이라는 뜻이다.
  • 의도적인(hekousion)이라는 단어는 움직임에 양보하고(eikon to ionti) 저항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 강제(anankē)는 관목이 무성하고 거칠어 나아감을 제지하는 골짜기(ankē)를 통과한다는 뜻이다.
  • 이름(onoma)은 호명된 것(onomaston)이라는 표현에서 더욱 어원분석이 쉬운데, 그것이 탐구의 대상이 되는 존재이다(on hou masma estin)라는 문장이 축약된 것이다.
  • 참(alētheia)이라는 단어는 있는 것의 신적인 움직임, 즉 신성한 방랑(alē theia)을 의미한다.
  • 거짓(pseudos)은 움직임과 반대되는 것으로 잠자는 자들(katheudousi)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 있는 것(on)은 이오타를 첨가하면 나아감(ion)이 된다.

헤르모게네스는 의미 해석에 감탄하면서도 뜻풀이에 사용된 어근들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해한다. 소크라테스는 한가지 가능성으로 앞서 언급한 외래어 유입 단어의 가능성이 있음을 들지만 모든 어근이 외국어에서 들어왔다고 설명한 채 만족하지 말고 한번 제대로 숙고해보자고 제안한다. 소크라테스는 단어들을 쪼개서 분석하고 또 그 어근을 다시 쪼개기를 반복하다보면 결국 자모음 음소들로 최종적으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하며 우리가 말 없이 무언가를 몸짓으로 표현할 때 묘사 대상의 본질과 최대한 가까운 몸짓으로 모방하는 것처럼 '최초의 이름들', 즉 합성어를 구성하는 어근들은 자모와 음절로 묘사 대상을 모방한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즉 대상의 본질과 가장 비슷한 성질의 자모음을 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최초의 이름들'을 분석하기 위해선 우선 자음과 모음의 종류와 성질을 파악하고, 대상 사물들의 성질 역시 분류하고, 자모를 성질에 맞게 각 사물에 적용해 이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화가들이 색깔의 종류를 구분해 그림 그릴때 적절히 배색을 활용하는 것에 비유한다. 그리고 이것이 옛 입법가들이 이름을 붙인 방식이며 이 외의 더 나은 설명 방식이 존재하지 않기에 자모의 활용을 부정하고 싶으면 극작가들이 곤경에 처할때마다 신을 등장시켜 갈등을 해결하듯 신들이 '최초의 이름들'을 붙였다는 식으로 궁색한 설명밖에 할 수 없을 거라고 강변한다. 그리고 '최초의 이름들'이 올바르지 않다면 그것들을 조합해 만든 나중 이름들도 올바르지 못할 것이라고 하며 분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 우선 는 운동(kinēsis)을 나타낸다.[26] 사례로 rhein(흐르다), rhoē(흐름), tromos(떨림), trechein(달리다), krouein(때리다), thrauein(산산조각 내다), ereikein(찢다), thryptein(부수다), kermatizein(부스러뜨리다), rhybein(빙빙 돌리다) 등이 존재한다.
  • 이오타는 모든 것을 잘 통과할 수 있는 미세한 것을 나타낸다. 사례로 ienai(나아감), hiesthai(돌진)이 있다.
  • , 프사이, 시그마, 제타는 센 호흡으로 발음되는 음소들로 바람이나 호흡을 모방할때 이용된다. psychron(추운, 떨리는), zeon(끓는), seisthai(흔들리다), seismos(흔들리는)과 같은 단어들이 그 예시들이다.
  • 델타 타우는 속박(desmos)과 정지(stasis)를 나타낸다.
  • 람다는 미끄러짐을 뜻한다. 사례로 olisthanein(미끄러지다), leion(매끄러운), liparon(반질반질한), kollōdes(끈적끈적한) 등이 존재한다.
  • 감마는 미끄러움을 멈춘다는 의미로 glischron(찐득찐득한), glyky(달콤한), gloiōdes(끈적거리는) 등에 이용되었다.
  • 는 소리가 안에서 나는데 이 성질을 모방해 endon(안에)와 entos(속에)라는 단어가 생겼다.
  • 알파는 크다(mega), 에타는 길이(mēkos)라는 뜻인데, 이는 이 자모들이 발음할때 입이 크게 열리기 때문이다.
  • 오미크론은 둥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이 자모를 많이 넣어 goggylon(둥근)[27]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3.3. 자연주의 비판

소크라테스는 어원분석을 마치며 이름의 올바름이란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말한다. 하지만 크라튈로스가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헤르모게네스는 크라튈로스가 자기 주장의 근거를 제대로 말하는 것을 본적이 없어 소크라테스의 해석이 크라튈로스 맘이 들었을지 잘 모르겠다고 툴툴대며 크라튈로스에게 만족했냐고 묻는다. 덧붙여 더 좋은 설명이 있으면 자신과 소크라테스에게 가르쳐달라고 한다. 크라튈로스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그렇게 쉽냐고 딴청을 부리지만 소크라테스 역시 자기 견해가 있다면 말해달라고 간청하자 일리아스를 인용하며[28] 자기가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만족했음을 멋들어지게 말한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방금 자신의 이야기에서 찜찜한 부분이 있어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며 크라튈로스와의 논변을 시작한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이름의 올바름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낸다고 한 지금까지의 논의가 옳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크라튈로스는 당당하게 그렇다고 답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름을 붙이는 기술도 있고 그 기술의 장인, 즉 입법가도 존재한다고 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이름 붙이는 기술 역시 사람 사이에서 생겨난 것이면 훌륭한 화가 모자란 화가처럼 훌륭한 입법가와 모자란 입법가가 존재하지 않겠냐고 한다. 크라튈로스는 그렇지 않다며, 그림과 건축물에는 훌륭한 것과 잘못된 것이 존재할 수 있지만 입법가들이 만드는 법률과 이름은 그럴 일 없다고 단언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이름은 모두 올바르게 붙여졌다고 생각하냐고 묻고 크라튈로스는 올바르지 않다면 이름이라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헤르모게네스의 이름[29]을 거론하며 이 이름을 이름이 아니라고 해야할 지, 아니면 이름이 맞지만 잘못 만들어졌다고 해야할 지를 묻는다. 크라튈로스는 '헤르모게네스'라는 단어는 전혀 그의 이름이 아니라고 말하며 실은 그 본성에 걸맞은 다른 사람의 이름이라 봐야 할 거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만약 '헤르모게네스'라는 단어가 진짜로 그의 이름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헤르모게네스를 가리키며 '그는 헤르모게네스다'라고 말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크라튈로스가 무슨 뜻이냐고 묻자 소크라테스는 거짓 이름이 없다는 소리는 거짓을 말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같은 것 아니냐며, 거짓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 아니냐 한다. 크라튈로스는 거짓을 말한다는 것은 있지 않는 것을 말한다는 소리인데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30] 소크라테스는 이를 자기같은 늙은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교묘한 연변이라고 일축하며 거짓을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알겠지만 거짓을 주장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크라튈로스는 주장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크라튈로스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반갑네, 스미크리온의 아들 헤르모게네스!'라고 인사를 건넨다면 이것은 거짓을 말한거나 거짓을 주장한 것 아니냐고 한다. 크라튈로스는 그건 말한게 아니라 목소리를 낸 것 뿐이라고 반론한다. 소크라테스가 그렇다면 그가 목소리로 표현한게 참일지 거짓일지를 묻자 크라튈로스는 북을 두들기는 것처럼 무의미한 잡음을 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떻게든 자기 논리를 밀고 나가려는 크라튈로스를 납득시키기 위해 사물과 이름은 별개의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킨 후 이름이 사물에 대한 모방물이라는 점을 동의시킨다. 그러면서 이 모방물들을 모방의 대상인 사물에 배정하고 적용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한다. 크라튈로스가 동의하자 소크라테스는 남자의 상을 남자에게, 여자의 상을 여자에게 배정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남자의 상을 여자에게, 여자의 상을 남자에게 배정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전자는 참이고 후자는 거짓인 경우 아니냐고 묻는다. 남자에게 여자 초상화를 잘못 배정할 수 있듯, 남자를 여자라고 잘못 부를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크라튈로스는 찜찜해하면서도 일단 그렇다고 해두자 한다. 소크라테스는 일단은 그런 반응을 넘기고, 이름을 올바르게 배정 못 할 수 있으니 이름들의 결합인 문장 역시 잘못 말할 수 있지 않냐고 묻는다. 크라튈로스는 이에는 틀린게 없는 것 같다며 동의한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에 더해 그림에는 그 사물의 적합한 색과 형태를 모두 배정할 수도 있지만 그 양과 크기가 너무 많거나 적을 수도 있다며, 이름들 역시 음절이나 자모가 잘 배정되지는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묻는다. 전자의 그림이 훌륭한 그림이고 후자의 그림이 사물의 모상은 맞으나 모자란 그림인 것 처럼 이름 역시 훌륭한 이름과 모자란 이름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거기에 더해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가 있듯 이름을 잘 만드는 입법가가 있고 이름을 잘 못 만드는 입법가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크라튈로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름을 쓸 때 자모를 빠거나 덧붙이거나 자리를 바꾸면 그건 이름을 쓰긴 했지만 틀리게 쓴 게 아니라 이름을 아예 제대로 쓰지 못한 거라고 반론한다.

소크라테스는 수의 경우 어떤 수를 빼거나 더하면 곧바로 다른 수가 되니 그런 주장이 통하더라도 모방물 일반에 통하는 주장은 아닌 것 같다며, 만일 크라튈로스의 모방물이 크라튈로스 자신과 완전히 같다면 그걸 크라튈로스 자체라고 불러야 할 지 크라튈로스의 모방물이라고 불러야 할 지를 묻는다. 크라튈로스는 그 경우는 자기 자신 그 자체라고 하는 쪽이 옳을 것 같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렇기 때문에 모방물은 그 대상 사물과 완전히 같아서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즉 모방물의 일부인 이름도 대상 사물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모도 이름에 들어갈 수 있으며, 따라서 잘 만들어진 이름과 잘못 붙여진 이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름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장과 말 또한 대상을 모사하기는 하나 잘 모사하지는 못하는 말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이 주제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것 같다며, 고집을 풀고 잘못된 이름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자고 넌지시 말한다. 그리고 이를 반박하고 싶으면 차라리 이름이 음절과 자모로 사물을 표현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부정하라고 한다. 크라튈로스는 이제야 고집을 풀고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소크라테스는 다음으로 넘어가 그렇다면 최초의 이름들은 표현하려는 사물을 최대한 닮게 만드는 것이 알맞은지[31], 아니면 헤르모게네스의 주장대로 단지 사회적 합의만 존재하면 되는지를 묻는다. 크라튈로스는 방금까지의 논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름이란 사물을 묘사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부정하고 싶어하나 최초의 이름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게 아니라 사물의 성질과 최대한 닮은 자모를 조합해 만들어졌다는 쪽이 맞다는 데에 동의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단단함(sklērotēs)이라는 단어를 한번 보자면서 앞서서 어원 분석 때 로( ρ, r)가 움직임, 운동, 단단함을 의미하고 람다( λ, l)가 매끄러움, 부드러움을 닮았다고 주장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단단함이라는 단어에 람다가 들어가있는데 묘사하는 사물의 본래 성질과 반대되는 자모가 들어가지 않았냐고 한다. 크라튈로스는 앞선 어원분석에서 자모가 잘못 들어간 사례나 세월이 지나며 발음이 변하며 본 의미가 훼손된 사례가 있었다고 하며 이 경우에는 람다 대신 로가 들어가는게 맞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런데 우리가 단단함(sklērotēs)라는 말을 할 때 우리는 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32] 크라튈로스는 그건 잘못된 관습이 굳어져서 그런 거라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크라튈로스의 입에서 관습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것이 헤르모게네스가 주장한 합의와 다를 것 없지 않다는 점을 꼬집는다. 즉 합의와 관습 또한 이름의 올바름을 기여하는 데에 일정 부분 관여한다고 봐야겠다는 것이다.소크라테스는 거기에 더해 수를 가리키는 이름 역시 대상하는 수의 성질에 걸맞은 이름을 만들 수가 없어 관습에 어느정도 의지해야 하지 않느냐며 사물의 자연적 성질과 사람 사이의 합의가 모두 이름의 올바름에 기여하되, 사물과 그 성질이 닮은 이름이 좋은 이름이고 관습에만 의존하는 이름이 가장 나쁜 이름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3.4. 언어는 사물 탐구의 적절한 도구인가?

소크라테스는 다음 주제로 넘어가 크라튈로스에게 이름은 우리에게 어떤 좋은 기여를 하냐고 묻는다. 크라튈로스는 가르치는 일이라며, 이름을 아는 사람이 사물도 안다고 주장한다. 이름과 사물은 서로 닮았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통해 사물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있는 것들을 가르치는 방법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보자며, 다른 방법도 있지만 이 방법이 가장 좋은지 아니면 이 방법, 즉 이름을 통해 사물을 탐구하는 방법 밖에 없는지 생각해보자고 한다. 크라튈로스는 이름을 통한 탐구가 유일할 뿐더러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답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름을 통한 탐구를 하는 이는 속을 가능성이 클 것 같다고 한다. 크라튈로스가 어째서냐고 따지자, 소크라테스는 이름을 붙인 입법가들이 올바르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이름을 붙였다면 꼼짝없이 속을 수 밖에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크라튈로스는 이름들이 가지고 있는 깔끔한 일관성을 보라며, 이름 붙이는 이들은 분명 진리를 알았을 거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는 전혀 반론이 되지 못한다고 질책하며 입법가들이 처음 이름 붙이기를 시작한 이의 오류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그대로 끌고 가 억지로 이름 붙였을 가능성도 있다며 기하학 증명에서도 처음에 오류가 있으면 뒤따르는 나머지 과정들이 모조리 틀렸지만 서로 일치하지 않냐고 한다. 즉 이름 붙이기의 시작이 올바르게 놓인 가정에서 시작되었는지를 검토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어원 분석을 다시 꺼내들어 논의를 이어간다.
  • 지식(epistēmē)은 사물들로 향하는(epi) 우리의 혼을 멈추게 한다는(histēsi) 뜻이다.
  • 확고한(bebaion)은 고정(basis)이나 정지(stasis)를 모방하는 것이다.
  • 탐구(historia)는 흐름을 멈추게 한다(hisēsi ton rhoun)라는 뜻이다.
  • 신뢰(piston)는 오로지 멈추게 함(histan)을 의미한다.
  • 기억(mnēmē)은 혼 안에 머무름(monē)를 뜻한다.
  • 잘못(hamartia)는 동행하다(homartein)와 비슷하다.
  • 불운(symphora)은 함께 따라 움직이다(sympheresthai)가 연상된다.
  • 무지(amathia)는 신과 함께(hama theōi)와 비슷한 발음을 지녔다.
  • 무절제(akolasia)는 사물들을 따라 함께 간다(akolouthia)와 닮았다.
앞선 어원 분석 논의에서 입법가들이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33]을 따라 만물이 움직인다고 가정했기에 좋은 것을 뜻하는 단어는 움직임과 관련 있고, 나쁜 것을 뜻하는 이름은 움직임을 방해함과 관련 있다고 여기며 논의를 이어나갔는데 보다시피 좋은 단어가 정지와 관련된 어원을 지녔거나 나쁜 의미를 가진 단어가 움직임을 뜻하는 단어와 비슷한 사례가 존재한다. 소크라테스는 이 이름들을 근거로 삼아 이름을 붙인 이들이 만물은 정지해있다고 여겼다고 추측할 수도 있지 않냐고 묻는다. 헤라클레이토스 사상을 받드는 크라튈로스는 그래도 앞선 어원분석에서 봤듯 특히 좋은 뜻을 지닌 이름에는 움직임을 뜻하는 이름이 훨씬 많다고 반론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름들의 수를 일일이 헤아려 한 쪽을 뜻하는 이름이 훨씬 많으면 그걸로 참이 결정되냐며 이를 일축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소크라테스는 최초의 이름을 붙인 이들은 그 대상 사물에 대해 알았을 것이 분명한데 그때 당시에는 이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분명하다며, 이름을 통한 탐구만이 사물을 탐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면 최초의 이름을 붙인 이들은 어떻게 사물에 대해 배웠는지를 지적한다. 크라튈로스 또한 그것이 의미있는 지적이라고 여기고 수긍한다.)[34] 소크라테스가 이 점을 물고 늘어지자, 크라튈로스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최초의 이름들, 즉 어근들은 신들이 붙였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35]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신들이 이름을 모순되게 붙인 거냐며, 방금 논의한 좋은 이름에 정지와 관련된 속뜻이 있고 나쁜 이름 움직임을 뜻하는 사례를 상기시켜보라 반문한다. 크라튈로스는 서로 모순되는 둘 중 한 쪽, 즉 진리에 어긋나는 쪽은 전혀 이름이 아니라는 주장을 다시 꺼내든다.

소크라테스는 그 진리에 어긋나는 쪽은 어느쪽인지 물으며 그저 한 쪽 이름의 숫자가 많다고 그쪽이 진짜 이름이라고 결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 크라튈로스가 이에 동의하자 소크라테스는 어느 쪽 이름이 올바른지 어떤 식으로 파악해야 할지를 따져보자며 이름들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의존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낸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통해 이름 없이도 '있는 것들'에 관해 탐구할 수 있지 않겠냐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는 그 무언가는 바로 우리가 탐구하려는 사물 그 자체일 거라고 하며 이름이라는 대상의 모상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는 대상 그 자체를 통해 배우는 것이 더욱 진리에 가깝지 않겠냐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있는 것들'을 어떻게 배우고 탐구하는지는 지금 이해하려 들기에는 너무 큰 주제라 우선은 이름이 아니라 '있는 것들' 그 자체를 통해 탐구를 해야한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으로 넘어가 최초의 이름을 붙인 입법가들이 가졌던 모든 것이 흐르고 이동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적 사상이 정말로 옳은지, 아니면 그들이 진리를 잘못 파악해 후대인들도 우왕좌왕 헤매고 있는지를 이야기해보자 한다. 소크라테스는 크라튈로스에게 자신이 자주 사색하곤 하는 문제를 알려주겠다며, 아름다운 것 그 자체가 존재하고 좋은 것 그 자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들' 각각에 그 자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크라튈로스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있는 것' 그 자체가 끊임없이 흘러 떠나간다면 우리는 '그것이 이것이다'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같은 상태로 있지 않는 것이 언제나 자신과 동일한 '어떤 것'이 될 수 있겠냐며 사물의 형상은 불멸이어야 하지 않겠냐고 강변한다. 그리고 만물의 본질이 변하고 지속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에 다가가 관찰하려 하는 순간 다른 성질의 것이 되어서 그 성질을 탐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것은 탐구가 불가능하기에 앎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36]

그렇기에 소크라테스는 만물에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본질이 존재하고 모든 것이 밑 빠진 도자기나 감기 걸린 이가 흘리는 콧물처럼 샌다고 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 역시 진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지각이 있는 이라면 이름이라는 모상을 통해 만물을 탐구하고 자기자신의 혼을 맡기는 일은 없을거라고 단언한다.[37]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어 이것이 거짓일 수는 있겠지만 용기를 내어 잘 살펴보자고 권유하며 크라튈로스에게 이데아론을 영업한다. 크라튈로스는 당연히 탐구해야겠으나 자신은 지금까지의 논리를 곱씹어보니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이 설득력 있다고 더욱 확신을 가졌다고 답한다.[38] 소크라테스는 우선 논의는 이만 마치고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자네 의견을 가르쳐달라 하며 크라튈로스와 헤르모게네스를 보내준다. 크라튈로스 역시 선생님도 이 문제를 계속 생각해보라며 응수하며 대화편이 끝난다.

4. 여담

이 대화편은 보통 중기 대화편으로 분류되나 < 테아이테토스> 등 후기대화편에서 다루는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척도설, 헤라클레이토스의 유전설이 전면에 거론 되는 등 후기 대화편으로 볼 여지도 존재해 플라톤이 말년에 내용을 손봤다는 설이 대세이다. 본문 속에 삭제 논의가 있는 부분과 판본이 둘로 갈리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이 역시 플라톤이 말년에 글을 손봤다고 가정하면 깨끗하게 설명 가능하다.

<크라튈로스>는 언어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다가 극후반부에는 이데아론과 인식론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지녔는데 이로 인해 이 글을 저술한 플라톤의 의도와 두 주제의 관계성이 논란거리이다. 어떤 이는 플라톤은 인식론을 주장하기 위해 이름의 올바름을 부수적으로 다뤘다고 여기기도 하는데 이러한 시야에서는 어원 분석등의 연어철학적 논의가 결국은 사물을 인식하고 탐구하는 방법을 다루기 위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시야도 존재할 수 있다.

대화편의 3/5 가량을 차지하는 소크라테스의 어원 분석은 사실 제대로 된 어원분석이라기보다는 민간어원설이나 파자와 같은 끼워맞추기에 가깝다. 그리고 결말부에서 이름을 통한 탐구보다는 본질을 통한 탐구가 더욱 올바르다는 결론을 낸 만큼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는 어원 분석 파트가 그다지 진지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반론도 존재하는데, 어원 분석의 진지함을 의심하는 의견은 과학적 역사비교언어학이 발달한 현대의 시야로 고대 철학을 재단한 것에 불과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의 플라톤 독자들이 <크라튈로스>의 어원 분석을 장난스럽게 여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크라튈로스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이전에 따르던 스승으로, 만물은 변화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주의를 숭상하다가 극단적으로 빠져 결국은 말하기를 그만두고 손가락만 까딱거리며 산 인물이다. 플라톤은 크라튈로스에게 배운 헤라클레이토스주의를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소크라테스와 만난 후에도 헤라클레이토스적 관점을 꾸준히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대화편 속 크라튈로스가 그 크라튈로스와 동일인물이라는 가정이 옳다면 플라톤은 대화편 속에서 자신의 두 스승을 맞붙여 철학적인 면에서 우열을 가렸다고 볼 수도 있다.
[1]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솔론이 했다고 전해진다. [2] 헤르모게네스의 주장이 크라튈로스의 자연주의보다 현대 언어학에 부합하기는 하나 헤르모게네스의 주장 역시 사회 규범을 강조하며 언어의 사회성을 주장하다가도 이름을 임의로 고쳐 불러도 그것 역시 올바르다면서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3] 괄호 친 부분은 큰 틀에서는 헤르모게네스의 규약주의를 비판한다고 볼 수 있으나 논의의 흐름 면으로 보아도 뜬금없고 논리적으로는 소크라테스가 분해 오류를 저지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대화편 속 소크라테스가 이데아에 근거하여 일정부분 자연주의를 수용하기에 그런 관점에서는 논리적 오류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으나 다른 대화편에서 비슷한 논의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일부 학자들은 흐름에 맞게 이 부분의 위치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옥스퍼드 판본(OCT)에서 이 구절이 삭제되었다. [4] 소피스트로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 <에우튀데모스>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5] 플라톤 대화편에서는 아테네 직접민주주의 비판을 위해 수많은 분야에서 다수 대중보다는 소수 전문가, 혹은 기술자가 현명하지 않냐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 단락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다. [6] 언어의 규약주의와 상대주의의 대표적인 논거가 (헤르모게네스가 극초반에 말한 것처럼) 언어마다 단어와 문법이 확연히 다르고 서로 연관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인데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이를 비판하는 근거해 나름대로 자연주의를 지지하는 논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현대 언어학의 시야로는 언어의 사회성에 반대하고 언어가 절대적 본질, 즉 이데아를 반영한 결과라는 주장이 그다지 설득력있진 않지만 언어의 사회성마저 일부 무시할 정도로 언어의 자의성을 주장하는 헤르모게네스를 효과적으로 비판하는 면은 현대 기준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다. [7] 하지만 대화편 후반부에서는 소크라테스가 자연주의와 크라튈로스 역시 비판한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이 자연주의를 지지하는지, 규약주의를 지지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존재한다. 기본적으로는 각 사물의 절대적 본질이 존재한다는 이데아론에 기반한 자연주의자이지만 크라튈로스의 극단적 자연주의에 대비되는 온건파라고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8] 이 대화편의 3/5를 차지하는 부분이다. [9] 소크라테스는 항상 자신이 무지함을 자처했다. [10] 스카만드리오스를 여인들이 부른 이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뒤의 논의를 위해 어거지로 끼워맞춘 감이 없지 않은 부분으로 사실은 스카만드리오스는 헥토르가 직접 붙인 본명이고 아스튀아낙스는 트로이 시민들이 붙인 애칭이다. [11] 다만 이게 꼭 들어맞는 건 아니라 훌륭한 사람 아래에 나쁜 사람이 태어나는 것처럼 본성에 맞지 않는 괴물로 태어난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럴때는 그 부모보다는 자신의 성질에 맞는 이름을 쓰는 것이 맞다고 덧붙인다. [12] 재밌는 점은, 소크라테스는 뒷부분 크라튈로스와의 논의에서 이 점(그 단어가 지닌 뜻과 성질에 맞지 않는 자모가 단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언어의 사회성 역시 일정부분 이름의 올바름에 관여한다는 주장을 펴 크라튈로스의 극단적 자연주의 사상을 반박한다. [13] 시에서는 제나, 아닌 경우는 디아를 이용한다. [14] 대화편 < 에우튀프론>의 등장인물로 신관 혹은 종교 근본주의자로 추정되는 이이다. [15] 신화 속 영웅들의 이름은 그 선조들의 이름을 따거나 아니면 기원을 담아 붙인 이름이 많아 그 본성에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6] 소크라테스는 늘 자기 안의 다이몬(daimon), 즉 신령이 영감을 준다고 했다. [17] 후자의 경우 지성이나 혼이 모든 것의 본성에 질서를 갖게 하고 유지하는 것이라는 아낙사고라스의 주장의 영향을 받았다. [18] < 파이돈> 등에서 묘사된 플라톤 철학의 이원론적 영혼관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19] < 파이돈> 등지에 나온 영지주의적 영혼관이 다시금 드러난 부분이다. [20] 소크라테스는 강제보다는 자발적인 욕망이 훨씬 강하기에 수많은 영혼들을 저승에 묶어두고 있는 것은 강제가 아닌 욕망이고 훌륭함에 대한 욕망만큼 큰 것은 없기에 하데스는 훌륭한 것에 능통할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21]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 [22] 원 뜻은 이리저리 움직이다. [23] 여담으로 데모크리토스 역시 비슷한 논지로 아낙사고라스를 비판한 적이 있다. [24]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주제가 윤리와 관련된 이름에서 벗어나 딴길로 샌 것을 눈치 못챈 헤르모게네스를 한번 힐난한다. [25] 너무 작위적인 분석이라 헤르모게네스가 이를 궁색하다고 까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름이 세월이 흐르며 변화하며 이렇게 된 것이라고 발뺌한다. [26] 운동(kinēsis)라는 단어 그 자체는 돌진(hesis)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27] 그리스어 발음변화 때문에 보통은 gongylon이라는 로마자 전사를 많이 이용한다. [28] 아킬레우스가 하는 '그대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내 맘에 드는 것 같구려.'라는 구절이다. [29] 도입부와 어원분석에서 나왔다시피 헤르모게네스의 성격이 이름의 어원인 헤르메스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30] < 소피스테스>에서 비슷한 논변이 등장한다. [31] 소크라테스는 앞선 어원분석에서 단어를 쪼개 본뜻을 밝히며 대다수 단어들의 뜻풀이를 하였고, 그 뜻풀이를 이루는 쪼개진 원소들은 대상의 성질과 가장 비슷한 성질(발음)을 지닌 자모를 조합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32] 크라튈로스가 앞서 했던 자모를 하나라도 잘못 쓰면 그건 그 사물을 지칭하는 이름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33] 후술되듯 크라튈로스가 지닌 사상이기도 하다. [34] 이 대목은 필사 판본에 따라 원문이 두 버전으로 갈린다. 과거에는 둘 중 하나가 위작이라고 여겼으나, 현대에는 둘 다 플라톤의 친필이고 대화편을 말년에 한번 수정한 증거라는 설이 대세이다. [35] 어원분석 대목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이용하는 극작가들을 비꼬는 부분이 있다. [36] 추가로 앎의 형상 그 자체가 변한다면 앎의 형상과는 다른 형상으로 바뀌는 순간 앎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37] 이 대목에 주목하자면 결국 이름을 통한 본질 탐구는 의미없는 일이니 소크라테스가 앞서 한 어원분석 역시 진지하게 봐서는 안된다. 어원분석 파트가 진지한 철학적 고찰을 담았는지, 아니면 비꼬는 의도를 지녔거나 그저 지적 장난에 불과했는지 또한 논란거리이다. [38]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이전에 따르던 인물의 이름이 크라튈로스로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주의를 숭상하다가 결국 모든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한 지적 극단주의자이다. 대화편속 크라튈로스가 그 실존인물 크라튈로스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설에서는 대화편이 아직은 극단주의에 빠지기 전인 젊은 크라튈로스를 묘사했고 대화편에서 보이는 여러 고집스럽고 외골수같은 면모가 그의 미래를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다만 실존인물 크라튈로스와는 그저 동명이인에 불과한 완전히 다른 인물이라는 해석 또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