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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이후의 콜라보레이션 앨범에 관한 내용은 퀸(밴드)/+ 폴 로저스, 퀸(밴드)/+ 아담 램버트 문서의 '디스코그래피' 문단을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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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록 밴드 퀸에 대한 평가와 이들의 음악적 영향력에 대해 서술한 문서이다.2. 장르
퀸은 비틀즈,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과 더불어 록 음악계에서 가장 많은 장르를 시도한 밴드 중 하나였지만, 이와 동시에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드문 록 밴드 중 하나이다. 이를테면 파워풀한 하드 록 및 헤비 메탈부터 잔잔한 소프트 록과 포크 록, 영국 스타일의 글램 록, 오페라와 록을 결합한 오페라 록[2], 미국 스타일의 로큰롤과 디스코 등 수많은 장르를 시도했다.
이 중에서도 퀸이 주로 추구했던 음악은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받은 하드 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이런 하드 록 성향이 가장 짙은 앨범은 1집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1집을 들은 평론가들은 블루스의 향기가 진하게 남아 있으면서도 헤비한 기타 리프, 그리고 파워풀한 보컬 등에 주목하여 퀸을 보고 “제2의 레드 제플린”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물론 1집 이후부턴 좀 더 오페라틱한 사운드를 가미하면서 이러한 블루스의 향기는 거의 없어졌으나[3], 하드 록을 추구하는 것은 여전했으며, 1집부터 퀸의 마지막 앨범인 Made in Heaven까지 후술할 Hot Space를 제외하면 전부 하드 록으로 분류된다. 물론 Hot Space가 하드 록이 아닌 디스코 음악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이 앨범은 평론가들 뿐만 아니라 퀸의 골수 팬들에게도 잔뜩 까이는 앨범이고, 심지어 밴드 멤버들도 이 앨범을 싫어한다고 한다.[4] 이후 Hot Space 다음 앨범인 The Works부터 기존의 하드 록 사운드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렇기에 록 팬들 및 평론가들 사이에서 퀸은 보통 하드 록 밴드로 분류되는 편이다.
하드 록 외에도 주로 추구했던 장르는 글램 록이었다. 다만 이는 초기, 그 중에서도 2집과 3집 시절 한정이다.[5] 퀸 멤버들은 데이비드 보위와 티렉스 같은 글램 록 아티스트들을 매우 좋아했는데, 이러한 글램 록 아티스트들의 영향을 받아 글램 록을 추구했던 것도 있다. 이러한 글램 록 성향의 앨범들은 본고장인 영국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고, 미국에서는 별 인기를 얻지 못했다. 이러한 글램 록 성향은 퀸 특유의 오페라틱한 하모니가 적극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즉 퀸 특유의 오페라틱한 하드 록 스타일이 완전히 정립된 A Night at the Opera 시기부터 사라졌고, 이 앨범부터 퀸은 미국에서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초창기의 퀸, 그 중에서도 2, 3집 시절의 퀸만 글램 록 밴드로 취급된다.
퀸 음악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하모니가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록 음악에서의 하모니는 비치 보이스, 더 후 등의 실험적인 밴드들이 1960년대 중반에 시도한 것이었다. 이 중에서도 퀸 멤버들은 더 후의 광팬이었는데, 더 후에게 영향을 받아 하모니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이와 동시에 프레디 머큐리는 오페라 음악도 좋아했는데, 이러한 점이 맞물려 퀸의 하모니는 여타 록 음악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한 하모니가 아닌 오페라틱한 하모니가 되었다. 이러한 오페라틱한 하모니를 만들기 위해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세 명은 녹음을 수도없이 했고, 이렇게 반복해서 녹음을 한 후 오버더빙 작업을 하였다. 물론 이것의 단점은 라이브에서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고[6], 몇몇 평론가들은 이를 지적하기도 했다.
음악적으로는 비틀즈[7], 레드 제플린,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특히나 멤버 4명 중 3명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 1순위로 비틀즈를 꼽았을 정도로 비틀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상술했듯이 주로 추구했던 하드 록이 레드 제플린의 영향을 짙게 받은 하드 록이었기에 레드 제플린의 영향력 또한 막대하다.[8] 그 외에 영향을 받은 뮤지션으로는 지미 헨드릭스, 더 후, 롤링 스톤스, 슬레이드 등이 있다. 밴드의 주요 작곡가 중 한 명인 프레디 머큐리는 상술한 음악가들 외에도 아레사 프랭클린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3. 음악적 영향력
퀸은 상술했듯이 수많은 장르들을 시도하였으나, 이에 반해 음악적인 영향력은 많이 낮다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원인은 퀸이 시도했던 여러 실험들은 다른 선대 음악가들이 이미 시도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퀸이 주로 추구했던 하드 록은 1965년에 롤링 스톤스와 더 후가 이미 개척해 놓은 장르였고, 블루스와 로큰롤의 스케일을 키워 기존의 하드 록보다 더 하드한 헤비 메탈로 발전시킨 음악가는 레드 제플린과 블랙 사바스, 그리고 딥 퍼플이었으며, 퀸이 주로 추구했던 하모니 또한 상술했듯이 이미 1960년대 중반에 비치 보이스와 더 후가 시도했던 것이었다. 즉 기존에 선대 음악가들이 닦아두었던 틀 내에서만 음악을 했고, 새롭게 시도한 것은 없다는 점이 음악적 영향력이 낮다고 평가받는 원인인 것이다.또한 작가주의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독자적인 장르가 없으므로 음악적 영향력이 적다고 보는 평가도 많다. 퀸은 워낙 이것 저것 시도한게 많아서 어느 장르에서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만 언급되지, 실제로 특정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주거나 독창적인 본인들만의 음악 세계를 구체화하는 모습은 없었다. 이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지만 본인들만의 장르를 구축해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높은 평가를 받으며 후대의 록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라디오헤드와 퀸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라디오헤드 역시 퀸과 마찬가지로 온갖 장르를 시도하며 장르를 바꿨지만 단순 스타일의 답습이나 히트곡 양산이 아닌 밴드 특유의 음악적 성향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평가가 갈리는 것.[9] 그러다보니 퀸을 가장 직접적으로 계승한 장르와 밴드가 없고, 자연스럽게 "장르와 후대 음악가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를 평가의 중요 척도로 매기는 평론가들에게서 허구한날 악평을 받는 것이다. 이건 평론가들 뿐만 아니라, 퀸 말고도 다른 록 음악 장르와 밴드 수십개를 파는 헤비 리스너들 사이에서도 보이는 현상이다.
이렇게 계보가 없는 밴드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퀸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는 밴드들도 꽤나 있다. 대표적으로 프랭크 자파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은 악평했지만[10] 퀸의 음악이 매우 영국적이면서 연주력 부분과 앨범 제작이 매우 뛰어나다고 고평가하였으며, 라디오헤드도 Paranoid Android같은 음악을 만들때 퀸을 참조했다.[11] 프레디 머큐리의 추모 공연에도 참가했던 건즈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는 프레디 머큐리를 존경한다고 자주 언급했다. 또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Welcome To The Black Parade은 아예 대놓고 2000년대 Emo 씬에서 퀸을 오마주하는 작품이라고 기사가 나왔을 정도.
이 외에도 헤비 메탈 씬에 준 영향이 꽤나 큰 편인데, 심포닉 메탈의 시금석을 다졌던 사바타지의 헤더였던 존 올리바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던 밴드가 퀸이었고, 이후 파워 메탈 신에서 오버더빙과 중세풍의 악극을 중심으로 부피를 확장해나갔던 블라인드 가디언의 보컬리스트 한지 퀴르시의 롤 모델이 다름아닌 프레디 머큐리였다. 또한 코히드 앤 캄브리아같은 얼터너티브 신의 총아나 익스트림-프로그레시브 결합에 이바지한 비트윈 더 베리드 엔드 미 등의 밴드들이 항상 영향을 받은 필수요소로 들어갔던 밴드가 퀸이었다. 즉, 오버더빙, 중세풍의 컨셉, 악극 등을 강조했던 80년대 이후의 몇몇 메탈 밴드들에게 하나의 프로토 타입을 건네주었고, 그 유산을 활용한 이후 후배들이 장르의 초석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한 케이스.
4. 평가
전 세계적으로 매우 과대평가된 밴드이자, 매우 과소평가된 밴드라는 상반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는 밴드다. 일부 록부심에 찬 사람들에게는 싸구려 팝 밴드라고 평가 절하를 당하고, 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비틀즈와 더불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밴드라는 식으로 과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청취자들에게는 과대평가를, 평론가들에게는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는 식의 평이 많다. 일단 가장 객관적인 지표인 어클레임드 뮤직에서는 올타임 아티스트 85위로 산정되었으며,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아티스트에서 52위를 차지했고[12], 이브닝 스탠더드에서 선정한 "영국 최고의 록 밴드 20선"에서는 12위에 랭크되었다. 반면에 일반 대중들에게는 "최고의 록 밴드" 투표를 시키면 최소 5위권 안에는 들어간다. 평론가들과 대중들의 평가가 완전 극명하게 갈리는 밴드라고 할 수 있다.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높다 보니 한국에서의 과대평가가 심한 편인데, 이러한 평가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후에 많이 늘어났다. 록 불모지인 한국에서 비틀즈를 제외하면 젊은 세대들은 록 음악에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알고 있는 록 밴드 자체가 없다시피 했으나, 영화에서 나온 퀸의 어마어마한 퍼포먼스와 록 음악에 관심이 없어도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만한 곡들이 사실 퀸의 곡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평가가 매우 높아지게 된 것이다. 특히 일부 팬들은 “퀸이 비틀즈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식으로 과도한 주장을 펼친다거나, 한국에서 비교적 인지도가 낮은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 더 후, 비치 보이스 등 음악적 영향력이 퀸보다 더욱 막대한 다른 록 밴드들을 퀸과 비교하면서 폄하하기도 한다. 이러한 결과 국내 수많은 음악 사이트들에서 ‘퀸은 비틀즈 급이다’라는 악성 팬덤의 주장은 밈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호들갑은 한국에서 퀸이란 밴드의 평가가 더 극단적으로 나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악성 팬덤을 제외하면 퀸이 비틀즈,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더 후 이상이라며 우기는 사례는 일반적이지 않으며, 국내에서도 영화 개봉 이후 레전드 아티스트이긴 해도 퀸이 너무 과대평가를 받았다는 여론이 디시인사이드 등의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비틀즈나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더 후 같은 소위 말하는 ‘대중음악을 형성한 아티스트’들과 퀸을 비교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지금은 생소한 이야기이지만, 1960~70년대 당시에는 록 밴드들에게 블루스는 필수 소양이었다. 그래서 당시 비틀즈, 롤링 스톤스, 더 후, 킹크스, 야드버즈같은 1세대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들은 물론이고 프랭크 자파, 밥 딜런, 재니스 조플린같은 솔로 아티스트들, 그리고 그 이후에 나타난 밴드들인 블랙 사바스, 딥 퍼플같은 밴드들도 블루스 음악을 재해석하면서 커리어를 시작하였다.[13] 반면에 퀸은 2집 이후부터 블루스적 성향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기에 많은 평론가들에게 블루스도 모르는 밴드라고 평가절하를 당했던 것이다.[14] 비슷한 예시로 핑크 플로이드도 데뷔 초에는 무시 당했으며, 존 레논이 시드 바렛에게 “블루스도 모르는 기본도 안되는 녀석들이 무슨 사이키델릭 록이냐?”라고 면전에서 악담을 퍼부었다는 썰이 존재할 정도다.[15] 이정도로 그당시 록 밴드들에게 블루스는 교과서이자 필수 소양이었다.
한 밴드를 평가할 때 개별적인 음악 이외에 영향력과 계보라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를 해야하는 비평가들에게는 히트곡이 양적으로 많다고 그 밴드의 위상을 무조건적으로 높다고 평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슷한 예시로 80년대 이후로 계보가 끊긴 글램 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아티스트들도 객관적인 평가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밴드로 비교하면 티렉스의 음악은 당시에는 Electric Warrior가 록 음악 최고의 앨범 열 손가락에도 들어갈정도로 고평가 받았지만 이후에 데이비드 보위의 비쥬얼과 음악에 더 영향을 받은 밴드들이 등장하면서 평가가 불리해졌으며 제쓰로 툴과 머틀리 크루, 킹 크림슨같은 밴드들도 뛰어난 음악은 많지만 평론가들의 평가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는 밴드들이다. 또한 1990년대까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TOP5 안에 반드시 꼽히던 핑크 플로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하락세 때문에 평가가 낮아진 것도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해외 팬들 사이에서는 AC/DC와 대척점에 있는 밴드인 동시에 가장 비슷한 밴드라고 불린다. 두 밴드 모두 음반 판매량은 2억 장 이상으로, 음악적 영향력이 거대한 다른 레전드급 밴드들보다도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점,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대를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밴드라는 점[16],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의 평가는 높지 않다는 것이 유사하다. 다만 퀸은 너무 많은 장르를 취급하여 줏대가 없다는 저평가를 받는 것과 반대로 AC/DC는 한 장르만을 고집한다며 저평가를 받는다(…).
다만 상술했듯이 최근에는 평론가들도 점차 마음을 열고 있는지, 2020년 롤링 스톤 500대 명반의 개정판에서 A Night at the Opera는 100계단이나 뛰어올라 200위권 이내에 안착하였다. 특히나 2020년은 롤링 스톤이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요소를 대거 받아들여 양산형 팝, 힙합 음반들을 순위에 대거 편입시키고, 기존 흑인 음악가들의 평가도 대폭 올려주는 바람에 록 음악 명반들의 순위가 거의 대부분 떨어졌던 때다.[18] 천하의 비틀즈마저 Abbey Road를 제외한 모든 5대 명반의 순위가 하락했으며 롤링 스톤스와 레드 제플린, 더 후, 에릭 클랩튼, 밥 딜런도 박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퀸은 그와중에 자기 앨범을 100계단씩이나 순위를 올린 것으로, 그 의미가 매우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19]
또한 최근 음악 팬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과거에 퀸이 너무 과소 평가를 받았다는 경향이 생겼다. 본래 퀸은 상술했듯이 록부심에 가득 찬 일부 락찔이들에게 ‘싸구려 팝 밴드’라는 멸칭을 얻었었다. 그러나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를 다룬 어클레임드 뮤직이라는 사이트가 오픈되었고, 이 사이트에서 퀸의 순위가 85위라는, 기존의 멸칭에 비해 훨씬 더 높은 순위로 산정되면서 음악 팬들의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대중음악 아티스트들이 있는지를 고려하면 85위라는 순위로 산정된 퀸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 아티스트들 중 하나이다. 당장 어클레임드 뮤직에 따르면 퀸과 비슷한 수준의 평가를 받는 아티스트로는 AC/DC, 메탈리카, 엘튼 존, 레이 찰스, 건즈 앤 로지스 등의 레전드 아티스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퀸은 일반적으로 역대 아티스트 순위에서 50위권까지는 아니더라도, 100위권 안에는 충분히 들어가는 위대한 아티스트라고 평가받는다.
총평으로는 비틀즈나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라디오헤드, 비치 보이스 등의 ‘대중음악을 개척한 몇 안 되는 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록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편견을 많이 허물고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록 음악에 입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밴드라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반면 밴드 전체 평가가 아닌 멤버 개개인의 역량에 대한 평가는 최상이다. 로저 테일러나 존 디콘은 아무리 저평가되어도 최소한 " 뒤에서 묵묵하게 밴드의 음악을 받쳐주는" 악기 연주를 한다고 평가받으며, 대부분은 베이스와 드럼을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노래든 잘 녹아들게한다는 평가를 받는다.[20] 로저 테일러의 백보컬도 평가가 전혀 나쁘지 않으며, 밴드의 음악에 어울린다며 고평가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21] 로저 테일러의 보컬은 걸걸한 음색에 3옥타브 대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하드한 보컬이기에, 취향에 따라 미성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보다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편이라고 한다.
브라이언 메이나 프레디 머큐리의 평가는 말할 필요가 없다. 프레디 머큐리는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훌륭한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또한 선후배 및 동료 기타리스트를 디스하는 것으로 유명한 잉베이 말름스틴이 연주력과 영향력 측면에서 존경하고 칭찬하는 기타리스트가 몇 안 되는데, 그 중 한 명이 브라이언 메이다. 잉베이가 존경심을 보내는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지미 페이지, 에디 밴 헤일런, 리치 블랙모어, 지미 헨드릭스니 할 말은 다 한 셈이다. 이러한 공로로 브라이언 메이는 2023년에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4.1. 평론단과의 악연
퀸은 평단과 아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평론가들은 밴드 활동 초기부터 '퀸 까기'를 서슴치 않았기 때문에 멤버들의 반감은 굉장히 심했으며[22] 인터뷰 역시 드물게 허가했다.사실 데뷔 앨범인 Queen 발매 당시에는 평론가들의 평가도 나쁘진 않았다. 당시 평론가들은 이 앨범에 대해 ‘ 아주 훌륭한 데뷔 앨범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 훌륭한 밴드가 될 수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 괜찮은 데뷔 앨범’이라는 평가를 했으며, 특히나 당대 유행하던 블루스 향기가 나는 하드 록 풍의 앨범이었기에 퀸을 가리켜 제2의 레드 제플린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하였다.[23]
그러나 2~3집 시기부터 평론가들은 앨범 커버나 퀸의 음악을 갖다가 온갖 악평들을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평론가들은 퀸을 짝퉁 레드 제플린이라고 평가 절하했으며, 프레디 머큐리의 경우 평론가들은 실패한 뮤지션들(=뮤지션이 되려다 실패한 자들)이라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롤링 스톤과 사이가 아주 극악이었는데 이들은 We Will Rock You를 꼬투리잡아 퀸을 ' 파시스트 밴드'로 규정하기도 했다.[24] 프레디가 이에 대해 "본인들이 제대로 평가를 시도하기도 전에 우리가 순식간에 유명해져서 못마땅한 모양이었던 듯하다."라는 내용의 말을 한 적도 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롤링 스톤의 퀸 굉장히 성의 있게 작성된 당신의 기사 " Queen Holds Court in South America" 기사를 읽고 놀라고, 한번 더 놀라고, 기절할만큼 놀랐습니다. 기사에 언급된 그 록밴드의 멤버로서, 저는 퀸의 음악과 그 업적에 다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자부심이 존나게 큽니다. 저는 제 어머니에게도 편지를 쓰지 않지만 당신의 가치가 1도 없는 "The National Enquirer"[25]급의 기사를 읽고는 편지를 쓸 수 밖에 없었답니다. 한 10년정도 지체된 당신의 구닥다리 사고관과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로큰롤 장르에 대한 몰지각한 태도는 저를 빡치게 합니다. 사이비적인 정치관과 당신의 사고관이 틀니 같음을 증명할 뿐인 뇌피셜 사고관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보낼 뿐입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저희들의 사운드 체크만 듣고 제 밴드의 실력을 모조리 평론해버린 당신의 평가에 대해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철 좀 드세요. 당신은 하루 하루 똥을 만드는 기계일 뿐입니다. 아주 쓰레기 같다는 소리입니다. 당신은 지루하고 저희들을 암 걸리게 합니다. 한 8달 뒤에 발매하는 제 작업물을 당신이 매력적으로 평가할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질 않는군요! 로저 테일러, 런던에서 편집장 주 - 이 편지는 비행기용 구토 봉지에 작성되었습니다. |
초기 퀸을 맹비난했던 몇몇 평론가들은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퀸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면 신발을 먹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 일화가 유명하다.[28]
5. 퀸에게 영향을 준 아티스트들
- 비틀즈 : 상술했듯이 멤버 4명 중 3명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로 비틀즈를 꼽았으며, 밑의 레드 제플린과 더불어 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이다. 관리 구조와 경영 방식 등에서도 비틀즈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며, 여러 록 밴드들처럼 데뷔 이전에 비틀즈의 곡들을 커버하면서 실력을 키웠다고 한다.[29]
- 레드 제플린 : 레드 제플린의 포지션을 그대로 차용하는 등 밴드 관리 구조와 밴드 경영 면에서 영향을 받았으며[30], 동시에 음악성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이다. 멤버들도 이를 알고 자주 언급해 왔기에 레드 제플린에게 곡을 바치기도 했으며, 데뷔 이전에도 레드 제플린의 곡들을 커버하면서 실력을 키웠다고 한다.[31]
- 데이비드 보위 : 초기 퀸은 데이비드 보위의 영향을 받아 글램 록도 주로 취급하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퀸은 1982년에 발매된 앨범 Hot Space의 수록곡인 Under Pressure을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 더 후 : 퀸의 음악에서 하드한 면모와 하모니는 더 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 비치 보이스 : 위의 더 후와 더불어 오버더빙과 하모니 측면에서 영향을 주었다.
- 티렉스 : 위의 데이비드 보위와 더불어 초기 퀸의 글램 록 앨범들에 영향을 준 아티스트이다.
-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 브라이언 메이는 지미 헨드릭스의 공연을 보고 “내가 기타를 접어야 되나?”는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사운드와 연주 측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
- 엘튼 존 : 퀸 음악의 팝적인 사운드에 영향을 끼쳤다.
6. 기타
- 이들의 라이브 공연과 투어 역시 큰 규모를 과시하곤 했다. 멤버들이 심하게 조명덕후였던지라 수 톤(ton)의 조명과 거대한 무대장비가 뒤따랐으며[32], We Will Rock You, Love of My Life와 같은 곡들은 관객의 참여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는데 이는 "수만의 관객을 한손에 움켜잡는다"고 평가받던 프론트맨 프레디 머큐리의 화려한 스테이지 매너와 곁들여져 빛을 발할 수 있었다.
[1]
퀸의
블루스 성향의 곡인
Now I'm Here에 대해 인터뷰할 때 나온 발언으로,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의 음악적 뿌리가 로큰롤임을 보여주는 곡이다” 라는 발언이었다. 로큰롤이 블루스의 파생작임을 고려하면, 결국 퀸의 음악적 뿌리도 1970년대의 수많은 록 밴드들처럼 블루스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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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록 오페라와는 다르다. 퀸의 오페라 록은 기존의 록 음악과 오페라의 음악성을 결합한 것이며, 록 오페라는 오페라의 형식을 빌려 앨범 혹은 곡 내에서 스토리를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록 오페라는
콘셉트 앨범의 한 종류이다. 참고로 ‘오페라 록’이라는 명칭은 실제 있는 장르가 아닌 팬들이 음악 커뮤니티 같은 곳들에서 임의로 붙인 명칭이며, 음악계에서는 록 음악과 오페라의 결합이라는 꽤나 실험적인 록 음악의 하위 장르라는 사실을 고려하여
프로그레시브 록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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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의 2/3를 블루지한 정통 하드 록으로 채웠던 초창기 시절만큼은 아닐 뿐이며, 실제로 이후에도
Now I'm Here,
It's Late 등의 정통 하드 록 넘버들을 발표하였다. 특히나 Now I'm Here은 퀸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서 퀸 역사상 라이브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 곡이다. 그러나 블루스에 기반한 곡들답게 이 곡들의 국내 인지도는 제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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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앨범이 하드 록 성향이 아닌 디스코 성향으로 나온 이유는 당시
프레디 머큐리가 게이 클럽에서 디스코 성향의 음악들에 잔뜩 빠졌기 때문이다. 후에 프레디 머큐리도 “Hot Space가 실패하여 멤버들이 나를 싫어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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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는 나무위키에도 “퀸은 데뷔 시절부터
A Night at the Opera 이전까지는 글램 록 밴드였다”거나, “퀸의 주 장르는 글램 록이다”라는 잘못된 정보가 적혀 있었는데, 실제로 퀸이 글램 록을 건드렸던 시절은 2, 3집밖에 없었다. 상술한 것처럼 퀸의 주 장르는 1집 시절부터 프레디 머큐리 사후까지 추구했고 멤버들도 가장 좋아했던 하드 록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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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hemian Rhapsody의 오페라 파트의 경우 퀸은 아예 테이프를 틀어놓고 무대 뒤로 퇴장했다가 하드 록 파트에서 컴백하는 형식을 취했다. 이들은 공연에서 따로 백킹 보컬들을 고용하지 않고 (존 디콘을 제외한) 세 멤버가 모든 보컬을 커버했기 때문에 라이브에서 이 대규모 사운드를 구현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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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한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퀸의 음악적 뿌리는 로큰롤이었다. 비틀즈의 영향을 안 받았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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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멤버들은 아예 레드 제플린에게 곡을 헌정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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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라디오헤드 외에도 수많은 장르들을 시도했으나 퀸과 달리 평가가 높은 록 밴드로는
비틀즈,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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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는
루 리드와 프랭크 자파가 서로 열심히 디스전을 하던 사이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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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런 노래의 원류는
Happiness Is a Warm Gun인 만큼 결국 둘 다 비틀즈의 영향에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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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롤링 스톤의 70~90년대 영국 음악에 대한 평가는 믿을게 못된다.
데프 레파드나
다이어 스트레이츠,
더 스미스,
데이먼 알반 등의 레전드급 음악가들이 없는 취급을 당한다. 당장 51위가
핑크 플로이드고, 25위 안에 들어간 영국 밴드가
비틀즈,
레드 제플린,
롤링 스톤스로 고작 3개다.
[13]
여기서 1세대 브리티시 인베이전 밴드인 야드버즈의 후신인
레드 제플린이 블루스 음악의 스케일을 키우고 헤비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롤링 스톤 등의 평론 잡지와 평론가들에게 공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에도 레드 제플린의 그런 방법론을 참신하다고 칭찬한 아티스트와 평론가들도 많았다. 또한 이런 방법론이 이후에
하드 록과
메탈,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록 음악의 세부 장르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그들의 방법론을 현재까지도 비판하는 평론가들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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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블루스의 향기가 짙게 남아 있는 1집은 평론가들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데뷔 앨범은 아니지만, 앞으로 훌륭한 록 밴드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 좋은 데뷔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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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는
카더라 통신으로, 진위가 불분명하다. 또한 시드 바렛이 밴드를 탈퇴한 후에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데이비드 길모어를 영입하고 블루스 음악을 활용한
프로그레시브 록을 발표하면서 이들이 블루스도 잘하는 밴드라는 인식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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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이 두 밴드는 대중음악에서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평가받는
롤링 스톤스,
더 후,
비치 보이스보다도 더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다.
[17]
다만 하드 록 외길을 걸어온 AC/DC의 특성상 하드 록이라는 장르 내에서의 평가는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어클레임드 뮤직에 따르면 객관적인 평가는 AC/DC가 퀸보다 조금 더 높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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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2020 개정판은 ‘PC 스톤’이라며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19]
다만 A Night at the Opera는 일반적으로도 올타임 앨범 200위권 이내에 드는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이 경우에는 이 앨범이 롤링 스톤의 개정 전 리스트에서 저평가를 받았던 것.
[20]
로저 테일러는
푸 파이터스의 드러머였던
테일러 호킨스가
폴리스의 스튜어트 코플랜드와 더불어 가장 존경하던 드러머였고,
존 디콘의 경우
빌리 시언이나
나단 이스트같은 베이스계의 거장들이 입을 모아
그의 능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21]
어울리는 것도 있지만, 로저 테일러는 목소리 자체가 탄탄해서 프레디와는 달리 고음을 못 내는 일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프레디가 고음을 부르기 힘들어 할 때 그 고음을 내주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보컬에 고음이 생각보다 꽤나 포진해 있었던 퀸의 음악을 생각해 본다면 나름대로 큰 어드밴티지라고 할 수 있겠다.
[22]
심지어 지금도 심하다.
[23]
레드 제플린의 대성공으로 인해 보통 영미권에서는 1970년대부터 흔히 말하는 ‘괴물신인’에게는 ‘제2의 레드 제플린’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이런 호칭이 붙었던 그룹은 퀸 외에도
러시나
그레타 반 플릿 등이 있다.
건즈 앤 로지스 또한 음악 성향이나 스타일 때문에 이런 호칭이 붙었었다.
[24]
사실 상술했듯이 롤링 스톤은
비틀즈,
롤링 스톤스,
더 후 등 60년대 아티스트들 정도를 제외한 영국 출신의 밴드라면 음악도 듣지 않고 무조건 까기로 유명했다. 퀸이 가장 부각되어서 그렇지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도 롤링 스톤의 큰 피해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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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음모론을 진지하게 주장하는 대표적인 기레기 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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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저 편지는 원래 비행기의 구토용 봉투에 썼다고 한다. 위 사진에서 맨 밑에 써 있는 글로 알 수 있음(해석: 이 편지는 기내에서 제공되는 구토용 봉투에 작성되었습니다.)
[27]
The Game이나 The Miracle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The Works는 그저 그렇다는 평을 받았다 Hot Space는 멤버들 조차도 싫어할 정도로 평이 나쁘다.
[28]
이런 사례는 퀸 이전에도 있었는데, 60년대 후반에 “
레드 제플린이 성공하면 모자를 먹겠다”는 평론가도 있었다.
[29]
폴 매카트니도 인터뷰에서 퀸을 언급하면서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에 대해서 칭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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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1명, 기타 1명, 베이스 1명, 드럼 1명의 구조. 현재에야 이 구조가 가장 보편적이지만 당시엔 매우 파격적인 구성이었고, 레드 제플린이 이 구성을 완성한 이후 퀸을 포함한 후대의 여러 록 밴드들도 이 구조를 애용한다.
[31]
여담으로 1986년 6월 26일
베를린 공연에서 퀸이 레드 제플린의 히트곡인
Immigrant Song을 커버한 적이 있는데, 하필이면 이 날 프레디 머큐리의 컨디션이 극악이었어서 록 팬들 사이에선 프레디 머큐리 대신
오노 요코가 보컬을 맡았다는(…) 밈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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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1986년 마지막 투어인 'Magic Tour'를 제외하고는 항상 적자를 기록했다고. 로저 테일러가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해 "이러한 상황에서도 계속 투어를 도시는 이유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자 이에 대해 "직업적 만족감(Job Satisfaction)"이라고 답한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