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1 05:36:01

창덕궁 소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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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2호 창덕궁
<colbgcolor=#bf1400> 창덕궁 소요정
昌德宮 逍遙亭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 와룡동 2-71번지)
건축시기 1636년 (창건)
파일:소요정.png
<colbgcolor=#bf1400> 소요정 동측면 #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입체 영상. 농산정, 취한정, 취규정, 청의정, 태극정과 같이 소개한다.
1. 개요2. 이름3. 역사4. 구조5. 여담

[clearfix]

1. 개요

창덕궁 후원 옥류천 권역에 있는 정자이다. 청의정, 태극정, 농산정, 소요암 등 옥류천 일대 풍경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곳에 있다.

2. 이름

'소요(逍遙)' 뜻은 '구속없이 천천히 거닐다'이다. 《 장자 - 소요유(逍遙遊)》에서 이름을 따왔다. # '임금이 힘든 것을 잊고 여유있게 쉰다'는 의미이다.

3. 역사

1636년( 인조 14년)에 지었다. 첫 이름은 탄서정(歎逝亭)이었다가 나중에 소요정으로 바뀌었다. 1790년(정조 14년)에는 장마로 쓰러져 수리했다. # 이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파일:옛날 소요정.png
<colbgcolor=#bf1400> 왼쪽은 《동궐도》의 소요정(붉은 원 안), 오른쪽은 《조선고적도보》의 소요정

4. 구조

  • 1층[1] 목조 건물이다. 칸 수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총 1칸이다.
  • 소요정 북쪽과 동쪽으로 옥류천 물이 흐르며 서북쪽엔 옥류천 폭포가 있다. 그래서 지형문제 때문에 각 면마다 기단의 수가 다르다. 서, 남쪽은 1단, 북쪽은 3단, 동쪽은 5단이다.
  • 소요정 동쪽 수로 위에 돌다리를 설치했다. 교각 위에 멍에석과 상판석을 올렸으며 난간은 없다. #
  • 기둥 주춧돌은 원형이다. 지붕은 사모지붕, 처마는 홑처마이다. 공포는 초익공이며 도리장여에 운공을 설치했다. 용마루와 추녀마루는 기와로 쌓았으며, 추녀마루가 만나는 부분에는 절병통을 올렸다. 단청은 모로단청으로 칠했다.
  • 사방이 트여있다. 각 칸의 하단부에는 난간을 설치했다. 다만, 건물로 들어가는 디딤돌 부분에는 난간을 두지 않았다. 난간은 풍혈을 뚫은 궁판 위에 난간기둥과 돌란대를 얹은 형태이다.
  •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보이지만, 가운데에는 중도리를 설치한 후 그 안에 우물반자를 청판 1장으로 설치했다. 실내 서까래는 전체가 부챗살 모양이다. #
  •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주춧돌 사이에 벽돌을 채워놓은 모습이나, 현재는 뚫려있다. 언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 기둥 바깥 쪽에 주련을 걸었다. 주련에는 를 적어놓았다.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一院有花春晝永(일원유화춘주영)

    꽃이 온 정원에 펴서 긴 봄인데


    八方無事詔書稀 (팔방무사조서희)

    온 세상이 평화로워 왕의 조서도 드물어라.


    露氣曉連靑桂月(노기효련청계월)

    이슬 기운은 새벽녘에 청계(靑桂) 달에 이어지고


    佩聲遙在紫薇天(패성요재자미천)

    패옥 소리 아스라히 자미(紫薇) 하늘에서 들린다.

5. 여담

  • 역대 임금들이 소요정을 많이 찾고 아꼈다. 숙종은 창덕궁 후원에서 아름다운 정자 3채를 '상림삼정(上林三亭)'으로 불렀는데 소요정도 여기에 포함시켰다. #[2] 가장 아낀 임금은 숙종의 증손자 정조였다. 위에 썼듯, 1790년(정조 14년)에 수리했는데 그때 《소요정기》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저서 홍재전서》에 실은 《상립십경(上林十景)》에서도 소요정을 언급했다. 《상립십경》은 창덕궁 후원에서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 10곳을 주제로 쓴 시이며, 소요정은 다섯 번째로 나온다.[3] 제목은 '소요유상(逍遙流觴)'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漱玉淸流曲曲長 (수옥청류곡곡장)

    옥 씻은 듯한 푸른 물 굽이굽이 길게 흐르고


    近欄山色納新凉 (근난산색납신량)

    난산 곁의 산색은 초가을 서늘함을 보내네


    濠梁自有觀魚樂 (호량자유관어낙)

    다리 위에서 물고기를 보는 낙이 있으니


    可但蘭亭遞羽觴 (가단난정체우상)

    난정[4]의 술잔에 대신할 만하다


    또한 정조는 여기서 신하들과 같이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는 등 풍류를 즐겼다. 유상곡수연은 물에 술잔을 띄우고 마시며 술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를 짓는 놀이이다.[5] #

[1]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 [2] 나머지는 청의정, 태극정. [3] 나머지는 '관풍춘경(觀豊春耕: 관풍각에서의 봄갈이)', '망춘문앵(望春聞鶯: 망춘정에서 꾀꼬리 소리듣기)', '천향춘만(天香春晩: 천향각의 늦봄 경치)', '어수범주(魚水泛舟: 어수당)', '희우상련(喜雨賞蓮: 희우정에서의 연꽃 구경)', '청심제월(淸心霽月: 청심정에서 보는 개인 날의 맑은 달)', '관덕풍림(觀德楓林: 관덕정의 단풍)', '영화시사(暎花試士: 영화당에서 시험보는 선비들)', '능허모설(凌虛暮雪: 능허정의 저녁 눈)'이다. [4] 왕희지가 놀던 정자. [5] 이 밖의 관련 유적으로는 경주 신라시대에 유상곡수연을 즐겼던 유적 포석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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