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2 14:46:22

주류성


1. 백제의 성
1.1. 개요1.2. 역사1.3. 주류성의 위치1.4. 기타
2. 출판사

1. 백제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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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애사 우금산성 이석정선생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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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산성
禹金山城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산99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 / 면적 198,875㎡
지정연도 1974년 9월 24일
관리자
(관리단체)
부안군
파일:우금산성.jpg
우금바위와 우금산성 서남부
파일:우금산성 전경.jpg
우금산성 항공사진

1.1. 개요

백제의 성채. 백제부흥운동 3년여 기간 중 대부분 기간 동안 전시 수도였다.

그 이름은 기록에 따라 주류성(周留城), 주류성(州柔城), 두율성(豆率城) 등이 있다. 음이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모두 같은 이름을 다르게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1.2. 역사

백제 멸망 이전까지는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 성이다. 아마 평소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 곳을 거점으로 한 귀실복신에 의해 기록에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

660년 7월 18일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의자왕이 항복하고 웅진 사비가 함락, 백제가 멸망하자 옛 백제 땅 각지에서 백제를 부흥하기 위한 반란이 일어났다. 귀실복신, 도침이 주류성에서 일어나 중심을 형성했고, 백제 다른 왕족들이 당나라로 이미 끌려갔기 때문에 왜국에 요청해서 왜에 머물던 왕자 부여풍을 보내달라 요청해 데려와서 대신 왕으로 추대했다. 이후 주류성은 부흥백제의 수도 역할을 하게 된다.

662년 12월 무렵에 주류성의 척박함을 이유로 풍왕 피성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하고, 이를 따라 주류성 대신 피성이 부흥백제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신라가 백제의 남부에 있던 4개의 성을 점령하면서 수도와 적이 너무 가까워져 천도 2개월 만에 다시 주류성으로 돌아오게 된다.

663년 8월 13일 신라군이 주류성을 대대적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웠음이 백제, 왜 연합군에게도 정보가 들어왔다. 8월 17일 신라군이 주류성을 포위했고 부여풍과 왜장들은 백촌강에서 집결해 싸웠지만 나당연합군에게 대패했다. 9월 7일 결국 주류성이 함락당했다. 아직 임존성 지수신 등이 지휘하는 백제부흥군이 남아있었지만 임존성마저 점령되면서 백제부흥운동은 끝나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김부식 삼국사기를 편찬할 무렵에는 이미 위치를 알 수 없는 곳이라 하여 잊혀지게 되었다.

1.3. 주류성의 위치

20세기에는 서천설과 부안설이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 와중에 이병도가 서천군 건지산성설을 지지하면서 사실상 건지산성이 곧 주류성인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2001년 발굴조사 결과 고려후기 산성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2003년 이후 노중국과 김영관이 부안 우금산성이 주류성임을 다시 주장했다. 여기에 과거 우금산성 주위가 바다였다는 점과, 귀실복신이 거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굴의 존재, 조선중기에 편찬된 개암사 별기에 과거 우금산성이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이었다고 기록되어있다는 사실이 추가적으로 알려지면서 학계 내에서는 부안 우금산성설을 정설로 보고 있다. 서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이에 대한 반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2]

주류성의 후보군으로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 있는 건지산성(乾芝山城), 세종시 전의면의 당산성(唐山城), 전북 정읍시 두승산성(豆升山城), 전북 부안군 상서면의 우금산성(位金巖山城), 충남 홍성군 학성산성(鶴城山城), 충남 청양군 정산(定山), 계봉산성 등이 꼽힌다.
  • 서천군 건지산성은 과거 교과서에도 주류성으로 실려있었고 현재 건지산성 정상 표지판에도 여기가 주류성이라고 써 있다. 다만 21세기 들어서는 부정적인 편이다. 백제시대 산성이 확인되지 않아 삼국시대 산성이 맞는지도 불분명하다는 말이 나왔고, 아래 설명할 위금암산성이 더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규모도 큰 산성이고, 금강 하류 교통의 요지로 옛 수도 사비성도 가깝고 바다로 들어올 왜군 지원군과 연계하기도 좋은 위치다.
  • 부안군 우금산성은 21세기 들어 주류성 후보로 백제사 전공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곳이다. 산세가 험하고 둘레가 3,960미터에 달해 상당히 규모가 크다.
  • 홍성군 학성산성(장곡산성)은 2010년대 들어 소장파 학자들이 주류성으로 주장하는 곳이다. # 흑치상지가 거병한 임존성도 가깝고, 나당연합군이 주둔한 부여군에서 거리가 멀고 지형이 험하며 주변에 여러 작은 산성이 줄지어 있어 기록에서 말한 대로 지키기 좋은 입지에 해당한다.
  • 청양군 계봉산성이 주류성이란 소수설도 있지만 성 둘레가 고작 560m 정도라 몇 년 동안 부흥운동의 거점으로 사용되기엔 너무 작다는 문제가 있고, 주류성보단 두량윤성이 여기라는 설이 주류다.

1.4. 기타

백제부흥군의 거점으로서 상당히 방어력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에서 산의 험한 곳에 있고, 산이 높고, 계곡이 좁아 지키기 좋다는 말을 하고 있다. 백강구 전투 당시에도 성을 공격해서 점령한 것이 아닌 부여충승 등이 항복해서 점령했던 것을 보면 산 중턱이나 정상 부근에 있고, 상당히 올라가기 까다로운 위치여서 나당연합군도 쉽게 공격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출판사

역사, 주로 한국사와 관련한 책을 내는 한국의 출판사이다.

이름과 달리 백제사 위주로 내는 것은 아니고 고대 한국사 전반, 고고학 서적 위주다.
[1] 19호 '전봉준선생생가'는 1981년 11월 28일에 해제되었다. [2] 사실 이는 우금산성을 포함하여 아래 있는 모든 후보군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다. 발굴조사에서 주류성임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유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부안 우금산성도 반박의 여지가 그나마 가장 적은 것 뿐이지, 우금산성이 주류성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