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2 09:01:12

무진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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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구조

1. 개요

武珍古城. 광주광역시 무등산 장원봉· 잣고개 일대에 있는 산성. 무진고성은 역사적 이름은 아니며, 무진주 시기에 쌓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아래 지도에서 파란색 부분이 현재 복원되어 있다. 올라가면 광주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무진고성은 '무진고성지(武珍古城址)'라는 명칭으로 1989년 3월 20일 광주광역시의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됐다.

2. 역사

늦어도 통일신라 중기인 8세기 말-9세기 초에 처음 건설되었다. 9세기 중반에는 방치되어 폐성되었다. 유사시를 대비한 성인데 이용할 상황이 거의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다가 9세기 말에 수축(修築)되었다. 초축 때와는 달리 수축된 성벽은 축성 방식이 정연하지 않고 급히 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당대의 혼란한 정세를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임영진,1989,1990] 이후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다.

발굴 이전에는 무진고성이 무진도독의 치소( 무진도독성)였다고 추정하기도 했다.[박태우,1987] 그러나 1988-1989년 전남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도독의 치소였다는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입지와 내부 시설을 보면 무진고성에 행정 기능이 있었다고 말하기 어려우며, 한반도의 여러 고대 성이 평지성과 산성의 이중구조를 갖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무진고성은 무진도독성의 배후산성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임영진,2008]

3. 구조

파일:무진고성.png
[임영진,1989,1990]
  • 서문: 광주 쪽으로 바로 이어지는 문이다. 현재 무등로가 지나가는 위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도로 건설 당시[5] 고갯마루를 절토했기 때문에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양옆으로 성벽이 복원되어 있다.
  • 동문: 현재 무등로가 지나가는 위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수구(水口): 4수원지 방향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통로였다. 수구 안쪽에 집수시설이 있었다. 동문지 바로 옆에 있으며 현재 복원되어 있다.
  • 이외 장원봉에서 무등산 방면으로 가는 통로, 북쪽에서 군왕봉 방면으로 가는 통로가 암문 형태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영진,1989,1990] 임영진. (1989). 무진고성Ⅰ. 광주직할시: 전남대학교박물관.
임영진. (1990). 무진고성Ⅱ. 광주직할시: 전남대학교박물관.
[박태우,1987] 박태우. (1987). 통일신라시대의 지방도시에 대한 연구. 백제연구, 18, pp. 49-91. [임영진,2008] 임영진. (2008). 統一新羅武珍都督城의 位置와 規模. 지방사와 지방문화, 11(2), pp. 243-266. [임영진,1989,1990] [5] 1958년 산수동에서 원효사를 잇는 도로가 개통된다. 당시에는 무등산 관광도로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