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1:54:25

조조(삼국지톡)/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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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목록 | 등장인물 ( 기타 세력 · 미분류) | 평가 | 비판 ( 조조/비판 · 피해자) | 오류 ( 시즌 1 · 시즌 2)


1. 개요2. 비판
2.1. 재해석 실패와 역사왜곡2.2. 캐릭터 묘사 실패
2.2.1. 빈약하고 과격한 태세전환 빌드업
2.3.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불쾌한 수위2.4. 모순적인 사료 취사 선택2.5. 지나친 악마화2.6. 팬덤의 분열 조장
3. 원인
3.1. 독자들의 반응
4. 결론

1. 개요

삼국지톡 조조에 대한 비판을 정리한 문서. 항목이 길어져서 분리되었다.

들어가기 전에, 이 문서의 내용은 정확히 말하자면 작중 조조의 행적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조조에 대한 서술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2. 비판


삼국지톡의 평가를 나락으로 끌어내린 최악의 문제점. 본작의 조조는 삼국지톡 사상 최대의 논란이자 삼국지톡의 작품성을 급락시킨 결정적인 원인이 된 캐릭터로 꼽힌다. 조조에 대한 도를 넘은 비하와 실패한 캐릭터 묘사가 원인이었는데, 조조 유비와 대등 혹은 그 이상의 비중을 지닌 삼국지의 주역이자 핵심 중에서도 초핵심 인물인 만큼 조조의 이러한 문제점은 작품 전체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되어 어마어마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사실 삼톡은 캐릭터 묘사에 비판할 구석이 생긴다 해도 이리 작가의 걸출한 작화 버프 덕에 비판이 어느 정도 잠재워지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조조만큼은 이리 작가의 작화 버프를 받고도 비판이 누그러들기는커녕 겉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대폭발한 유일한 캐릭터다.

앞서 이야기하자면, 실제로도 조조가 잔인하고 패역한 호색한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조는 자신의 친구인 여백사도 무참히 살해하였으며 조조가 서주에서 벌인 깽판짓과 대학살은 무려 서진의 관리인 진수가 쓴 삼국지에도 그냥 노빠꾸로 잔륙(학살)이라고 기록했고 그 결과 형주의 백성들이 유비를 따라 피난가는 결과를 초래했고 서주의 인사들중 상당수는 유비나 손권에게 합류해 그들 좋은일만 시켜주었고 조조의 대학살에 질린 연주의 전지역이 반란에 호응하여 멸망직전까지 몰리거나 인류 역사상 임산부를 처형하는 것은 자제하는 편으로 그나마 왕의 궁녀 정도가 정말 예외적으로 노빠꾸로 처형 대상(출산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남자일 시 문제가 되니까)인 수준인데 조조는 무려 헌제의 후궁이, 그것도 헌제의 아이를 임신중인데도 처형했다. 또한 원소와의 싸움 승리후 패잔병들을 생매장 시킨 일이나 겉으로는 유종을 후대하는척 하면서 뒤에서는 개돼지만도 못하다며 돈견이라고 부르거나

최염 공융 등을 죽인일이나 장수의 고모(추씨는 삼국지연의에서 임의로 붙인 명칭이다.)를 탐내다 장수의 한을 사고 이에 장수를 죽이려다가 되레 역공을 당해 장남 조앙이 전사해 조강지처에게 이혼당한 것 또한 유명한 일이며 덕분에 능력도 인성도 명분도 군주의 자리에 오르기엔 한참 미달인 조비가 황제에 올라 삽질만 반복하다 결국 천하통일에 실패하고 나라가 서진에 넘어가는 레일을 착실히 깔았고

유우를 옹립하려다 이후엔 자기가 황제가 될 생각도 가지고 있던것으로 보이는 원소,마찬가지로 황제의 자리를 넘보던 유표나 유언,훗날 헌제까지 쫒아내고 직접 황제에 오른 조비 등등 보다 찬탈을 위한 레일을 충실히 깔아준 조조가더 나쁜놈이라며 망탁조의에 원소나 유표 등이나 조비나 그의 후손들 대신 조조가 들어가고 대중들이나 민간에서도 엄청나게 욕먹는등 어느 것 하나 사실이 아닌게 없다.

애초에 조조의 심각한 인격적 결함에 대해서는 극성 팬덤 수준을 제외하면 위빠 조위정통론 지지자들조차도 조조를 옹호하지 않는다. 또한 삼톡에서 묘사되는 조조의 경박하고 불량한 언행 역시 어느 정도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거니와 조만전에서 묘사되는 일화들을 따랐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만전은 비록 조조까 성향이 크기는 해도 엄연한 삼국지 당대의 기록으로 인정 받는 사료이기 때문에 단순히 이를 참조하는 것 자체는 역사왜곡도, 관점 편향도 아니다.

따라서 조만전에 기반을 둔 조조의 '경박하고 패역한 늙은 날건달'이라는 캐릭터리티는 기존의 메이저 삼국지 창작물과는 확연히 다르면서도 역사적 증언의 신뢰성이 뒷받침되는 '독창적이고 그럴 법한' 캐릭터 설정으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삼톡에서의 조조의 묘사가 이토록 엄청난 비판을 받는 이유는 조조의 수많은 개성들을 모두 삭제하고 경박하고 패역한 늙은 날건달이라는 캐릭터성만 집요하게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조조라는 인물은 실제 역사는 물론 연의 속에서도 쓰레기 같은 인간성에 천재적인 능력 한 문장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순한 인물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조조는 정치가의 냉혹함과 예술가의 폭발성, 측근에게 보이는 자비로운 면모와 부하를 철저히 이용하고 버리는 교활한 면모, 책사의 영리함과 장군의 담대함, 독재자의 독선과 횡포 및 당대 사회의 문제의 근원을 파악하고 고치려 한 입법가적 면모, 그리고 영웅의 배포와 학살자의 광기를 한 몸에 갖추고 있는 굉장히 복합적이고 알기 어려운 인물이다.[1] <업중가>라는 시에서는 조조를 '공으뜸 죄으뜸 모두 한 몸'이라 묘사하며 그가 영웅으로서도 악당으로서도 정점에 올라있는 양면적인 존재라는 점을 부각했다.

괜히 천 년 넘게 난세의 간웅, 치세의 능신으로 불린 것이 아니며, 애초에 늙고 경박한 사이코 날건달이기만 했다면 절대 그 위치까지 갈 수도 없다. 그런 만큼 조조의 캐릭터는 매 삼국지 매체마다 천양지차로 해석이 갈리고[2], 조조에 대한 해석 차이는 작품 자체의 성향 및 작가의 삼국지관과도 직결된다고 할 정도로 큰 차별화 요소가 된다.[3]

이 점에서 삼톡의 초반부, 짧아도 서주 대학살 편~길게 잡으면 협천자 편 중반까지 삼톡의 재해석은 호평이 많은 편이었다. 삼톡 초반의 조조, 일명 '기도위 조조'는 매우 매력적이면서도 입체적인 면모를 보이며 등장하였다. 만화는 황건적의 실상과 조정의 부패를 논하며 한탄하는 조조의 모습과, 건석의 삼촌을 패죽이고 체포된 상태에서 싸늘하게 비웃는 그의 과거를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나라 꼴에 울분을 터뜨리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젊은 우국지사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냉소에 찬 엘리트 지식인이고, 또 한편으로는 살인과 유혈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과격한 면모와 무엇보다 그것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어딘가 결여된 인간성을 복합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세상에 대한 독기와 냉소를 느긋한 태도로 감춘, 냉혹하고 용의주도한 귀공자'로 묘사된 친구 원소와 더불어 기존 삼국지 매체에서 보기 힘들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지 않는 매력적인 조조의 캐릭터를 독자에게 제공해준 것이다. 황건적 1만 명의 목을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치고, 피범벅이 된 손으로 의병장 유비의 노고를 치하하며 웃다가 돌아서자마자 싸늘하게 조정의 무능과 부패를 쏘아붙이는 조조, 마냥 받아들이기 어려운 냉혹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에 대한 예리한 문제의식을 토로할 줄 아는 조조. 조조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내적 요소는 이러한 긴장 관계를 항시 포함하고 있었다. 그래서 놀랍게도 이때까지는 작품이 위빠, 조조빠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황건적의 난 20화 22컷에서 조조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베댓이 있다.

이후 여백사 살해와 동탁 토벌전의 대패, 서주 대학살을 거치면서 조조의 이러한 복잡한 캐릭터는 더욱 심화되었다. 거악인 동탁을 치기 위해 자신의 이해를 계산하지 않고 덤볐으면서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의숙부를 죽이고, 자신의 실책으로 죽어간 병사들은 안타까워 하지만 무고하게 죽어가는 서주 백성들에게는 악마적으로 잔인하다.

이를 통해 안착한 삼톡 초중반의 조조는 '냉철한 합리가로 있고자 하고,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고자 하지만 정신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4] 냉철한 이성으로 억눌렀던 천성적인 과격한 기질이 광기라는 폭발적인 형태로 분출되어 나오며, 그렇게 하여 분출된 광기에 대해 추호의 후회도 하지 않는 잔혹함의 소유자'로 요약할 수 있다. 기도위 시절 지니고 있던 다혈질적 기질과 과격함이 난세를 만나 피비린내 나는 광기로 오염되어버리는 모습이, 서주 대학살까지의 조조는 매우 설득력 있게 묘사되고 있다. 협천자 편 중반에서 조조가 자신의 친척 동생들에게 주종 관계를 명백히 하며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쳐라'라고 천명하는 독재적 패도주의자로 변모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다 할 것이다. 실제로 저 장면에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조조답다며 호평했다.

문제는 협천자 이후 조조의 캐릭터가 급격하게 추하고 찌질한 사이코패스 꼰대 수준으로 추락해버린 데 있다. 관도대전 첫 등장부터 원소에게 어그로 끌다가 허둥지둥 아부하는 걸로 모자라[5] 조앙 전위를 잃는 완성 전투에선 별의별 추한 꼬라지를 보여주면서 인식이 바닥을 쳤다. 이전에도 조조의 경박한 대사나 언동은 다반사였으나, 이 편을 기점으로 작가들은 아예 추한 아저씨를 컨셉으로 잡아서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말을 할 때마다 잇몸을 굳이 드러낼 수준으로 벌리면서 말하면서도,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있는 대로 눈치를 주며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반면 원소 등 강자에게는 벌벌 떨며 눈치부터 보는 3류 찌질이 악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이전까지 조조라는 캐릭터의 개성을 깊게 해주던 광기와 이성의 혼재는 온데간데 없고, '머리 잘 굴러가는 또라이' 정도의 묘사로 일관되게 묘사된다.

작가 차원에서 조조를 뭉개고 있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한 게, 서주 대학살이나 장수 일가에 저지른 만행이 조조의 옹호 불가능한 악행이 맞기는 하지만 분량이 너무 과하다. 원소 vs 공손찬이나 원소의 기주목 취임, 앞서 얘기한 삼보의 난 중국의 패권이 왔다갔다하는 중요 사건들은 설렁설렁 처리하고 서주 대학살이나 추씨 사건처럼 조조의 더러운 인성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사건의 배경, 심리, 관련 인물, 정사 구절 하나하나까지 천천히 읊어주니...[6][7] 여포의 유비 통수, 원술의 황제 참칭 같은 사건들은 1회만에 아니면 아예 장면 묘사 없이 얘기로만 퉁치고 넘어가는 와중에 말이다. 스케일은 달라도 비슷한 케이스인 공손찬이나 동탁의 살육도 '임팩트 있는 몇 컷'으로만 지나간 것과 대조적이다.

한 마디로 에피소드별로 묘사에 들이는 성의가 극심하게 편중되어 있다. 두 에피소드에서 각 편의 절반 분량은 '조조는 아아아아주 나쁜 놈'을 자극적인 장면을 통해서 말하고 있을 뿐 별다른 서사의 진전은 없다.

때론 악랄하면서도 때론 온화한 이중적인 면모에, 냉철하지만 극한에 상황에 몰리면 살육에 대한 광기를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뛰어난 군사적·정치적 능력과 후대에도 부정하지 못했던 그의 예술가적 면모를 감안하면 차라리 조커를 오마주하는 게 더 나았을 거란 비판도 많다. 특히 예술가적 면모의 경우에는 많은 독재자나 학살자들이 의외로 상당히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면모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삼톡의 조조 캐릭터에 개연성을 부여하고 살려낼 수 있는 중요한 면인데 완벽하게 스킵 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묘사는 단순히 팬들의 감정적 호불호를 떠나서 아래 6가지 논란의 원인이 된다.

2.1. 재해석 실패와 역사왜곡

첫째로, '삼국지의 재해석'이라는 차원에서, 위태조 무제 조조라는 인간상이 가지는 총체적 면모를 조명하지 못하고 편향된 관점으로 왜곡한다는 점이다. 우선 전투 묘사가 빈약하다는 삼톡의 태생적인 약점과 결합해서, 조조를 삼국의 패자로 만들어준 제1의 능력인 군재(軍才)가 제대로 묘사될 기회 자체가 없다.

삼톡의 조조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며, 겁 많고 비굴하면서 대책은 없고, 문제 해결을 부하들에게 의존하면서도 부하들을 다루는 방식은 방자하기 짝이 없는 이상한 인물이다. 삼톡의 묘사만 보면 도대체 왜 저런 답 없는 꼰대에게 그렇게 많은 인재들이 충성을 다하고, 유비의 시선을 통해 묘사된 바, 광신에 가까운 비이성적인 태도까지 보이며 조조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설정상 분명히 유능해야 할 조조의 캐릭터 어디가 유능한지를 공감할 수가 없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조조를 좋아하는 삼국지 독자들은 정사나 연의를 읽어보지도 않았거나 조조가 인격적으로 개차반이고 학살도 저질렀으며 또라이에 사이코라는 걸 몰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다. 그런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마냥 폭군의 스테레오타입으로 취급할 수 없는 군재와 정치적 능력을, 그리고 그런 탁월한 능력이 잔혹무도한 광기나 예술가적 감수성과 섞이면서 발현되는 오묘한 카리스마적 악역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삼톡의 조조는 '광기'만 남고, 능력도 카리스마도 예술가적 감수성도 완전히 실종 상태다. 한 마디로 단점만 가득하고 장점이 안 보인다는 것. 이런 인간인데도 이상하게 잘난 사람들이 계속 곁에 남아서 진심을 다해 그를 보좌하고 있다. 이래서는 외적으로 조조라는 인간을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도 없고 내적으로 조조 세력이 날로 강성해지는 개연성을 제공할 수도 없다. 까놓고 말해서 삼톡의 조조는 귀족적 면모를 빼고 잔혹성을 100배 뻥튀기한 원술이다. 즉 조조의 능력과 인격을 모두 제대로 그려내지 못해 '악랄함이 끝내주는 원술'을 만들어낸 셈이다.

실제 역사 속의 조조라는 인물을 보자. 그는 원소의 그늘 아래에서 출발했지만 탁월한 군재와 정치력으로 대륙의 패권을 쥐었고, 북중국 전체를 통일하여 자신의 왕조가 한 시대의 대표가 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조조는 다름아닌 정사 삼국지에서 손권, 유비도 제치고 유일하게 열전이 아닌 본기에 들어간 사람이다. 즉, 그의 권력은 황제와도 동일하다는 의미다.[8]

그는 결코 황제가 되지는 못 했으나 그 누구보다도 황제에 가까웠던 시대의 1인자였고, 적벽 한중에서의 패전만 없었다면 천하를 통일하여 새로운 통일 왕조의 시조가 될 수 있었던 역사 속 위인의 반열에 있는 인물이다. 때문에 조조라는 인물에 대한 연구와 재해석은 1800년이라는 세월 동안 끊임없이 축적되었으며, 오늘날 미디어믹스에서 묘사되는 안티히어로 조조라는 캐릭터리티는 단순히 위빠들의 찬양으로 만들어진 미화나 스테레오타입이 아니다. 사학자들과 창작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삼덕'들에 의해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끊임없이 재창조되며 마침내 완성에 이른 조조에 대한 근본이자 정설인 것이다.[9]

때문에 상술했듯 유비가 다른 건 다 재해석될 수 있어도 관우, 장비와의 뜨거운 우정만 가지고 난세에 뛰어든 의협적인 인물이라는 사실만큼은 결코 부정되지 않듯이, 조조 역시도 영웅이면서도 악역이기도 한 양면적인 인물이라는 사실만큼은 결코 부정되어선 안 된다. 조조를 영웅으로만, 혹은 악역으로만 묘사하는 매체가 모조리 미화물 혹은 격하물이라고 비판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조조에 대한 재해석은 이러한 조조의 근본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비로소 재해석이지, 삼톡처럼 근본을 파괴하게 된다면 이는 재해석이 아니라 역사왜곡이 된다. 유비를 재해석한답시고 유관장의 형재애를 삭제하는 작품이 나온다면 과연 그 작품의 재해석을 긍정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

또한 분명 조조는 자신이 나고 자라서 출사해 봉록을 받던 한나라를 말아먹은 역적인 망탁조의 4인방 중 하나다. 하지만 전한 말기의 사람이라 삼국지에 나오지 않은탓에 현대인들에게 존재감이 투명한 왕망, 재평가의 여지조차 없는 완전체 악인 동탁과 달리 조조 사마의는 공과가 갈리는 인물이다. 조조의 업적 중 하나인 손자병법을 읽기 쉽도록 산란한 문장을 전부 쳐내고 주석을 달아 3권 13편으로 개정한 위무주손자[10] 저술 같은 긍정적인 업적은 죄다 날려먹었다. 이 위무주손자가 얼마나 대단하냐면 체계와 기술이 매우 탁월해 등장과 동시에 위무주손자 이전의 주석본이나 원본을 묻어버리고 대중적으로 널리 쓰였다. 현재까지도 조조의 위무주손자를 베이스로 주석을 더하거나 빼는 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조조는 원판조차 묻어버릴 정도로 뛰어난 개정판을 내놨고 후대에도 조조의 개정판을 기준으로 삼고 추가 개정판을 내놓고 있단 소리다. 그러나 삼톡에선 이런 긍정적인 업적은 죄다 무시하고 있다.

2.2. 캐릭터 묘사 실패

둘째로, 삼국지톡이라는 하나의 작품 속 조조라는 캐릭터 묘사도 이상해졌다. 젊을 적에는 패기와 열정을 가진 개혁론자였으나 권력을 잡고 타락하는 권력자라는 서사여야 하나의 전형성이 있지만, 엄연히 주연급인 캐릭터라면 그 타락의 과정을 독자가 따라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협천자 중반까지의 조조는 합리가적 이성과 악마적 잔혹성을 모두 갖춘 야심가였다. 그러다 관도대전 편부터 조조는 급격히 강약약강의 방약무인한 또라이, 권력에 취한 사회악으로 캐릭터가 변화한다. 그 사이의 '왜? 어떤 사고의 결과로?'가 부재하다.

이것이 한 캐릭터로서 조조의 서사를 따라갈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다. 협천자를 통해 조조가 무엇을 목표로 했고, 협천자한 뒤 어떤 문제를 직면한 끝에 그렇게 되었는가? 이 부분을 삼국지톡은 전혀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 악랄함과 추태는 이전까지의 묘사에서는 느닷없다 싶을 만큼 돌출되어 나온다.

물론 악행이 나오긴 해야 한다. 실제로 그 시점에 그런 추한 짓거리를 했으니까. 하지만 서사물인 이상, 그것도 '인물의 심리를 세밀히 다루겠다'고 공언한 서사물인 이상 그 과정을 풀어보여야 한다. 사실 조조의 캐릭터 묘사는 오히려 '삼국지'라는 원 모델이 존재하고 독자 대부분이 이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우호적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즉 실제 조조가 그러한 일을 저지른 그러한 인간이라는 지식이 선재하므로 작품 안에서 조조의 캐릭터가 영 부자연스럽게 전락해도 독자들 스스로 개연성을 보충하며 봐줄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톡이라는 작품을 하나의 오리지널리티로 간주하면 이 조조의 캐릭터 변화는 그 사이의 연결고리가 심하게 결핍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2.2.1. 빈약하고 과격한 태세전환 빌드업

사실 작품을 상세히 본다면 조조가 위와같이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작중에서 없는건 아니다. 일단 시점이 관도대전이 아닌 협천자의 서주대학살 파트인데, 우선 삼톡의 조조는 애당초 추태와 악랄함을 보이기 이전부터 그런 모습이 전무했다기보단 억누르고 있었던 것에 가깝다. 물론 삼톡의 조조 또한 드물긴해도 백성들에 평안을 가져다주는 모습에 흡족해하는 반응을 보이지만, 그것은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인식될 때 느끼는 지극히 보편적인 '보람'이라는 감정일 뿐 그 자체가 조조의 행동 원동력은 아니며, 본질적으로 삼톡의 조조는 '썩어빠진 황실과 그 원인인 십상시를 비롯한 자들을 타도하고자' 뜻을 품고 거병했다. 즉 조조의 근본적인 동기 자체가 '애민정신 혹은 올바름에 대한 추구'라기보단 '세상을 자기가 생각하는 올바름에 걸맞게 만들겠다는 독선 심리 내지 거기에 반하는 애들을 쳐죽이고 짓밟고 싶어하는 혐오감과 분노'와 더 맞닿아있는, 독재적 행동에 대한 상당한 위험성이 내포되어있는 캐릭터였다는 점이다. 또한 서주대학살 장면 이후에 과거회상에서 드문드문 언급되는 정도라는게 문제지만, 삼톡의 조조는 어릴 적 부터 상당히 말썽이 심하고 충동적이며 제멋대로 행동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그런 조조가 작중 첫 등장 시점에서부터 서주까지 어느정도 반듯하고 세련된 모습을 보였던 이유는, 그런 욕망이 적다거나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참는 그런 캐릭터가 아닌, 자신의 뜻을 위해 주변에 비춰지는 모습을 고려하여 절제된 모습을 보인 것에 가까우며, 그런 조조의 심리적 바탕을 무너트린 트리거가 서주대학살인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것과 백성이 원하는 것이 일치하기는 커녕 그 반대의 경우에 직면했을 때, 복수에 눈이먼 채 기꺼이 권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상술한 독재성이 돌이키기 힘든 강을 건넌 것이며, 자신의 뜻에 등을 돌린 세상 사람들을 직면했기에, 그런 세상 사람들에 대한 기본적인 적대감과 냉소와 함께 주변에 비춰지는 모습을 고려할 제약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위와같은 조조의 기저심리의 변화는 변양을 살해한 이후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라는 일갈에 "흥!"이라는 비웃음으로써 나타나며[11], 실제로 서주대학살 이후 조조는 말투나 행동거지,악행을 비롯해 점차 세상에 거리낄게 없어지는 캐릭터로 변모하게 된다. 이와 같이 따져보면 아주 납득할 수 없는 변화는 아니다.

다만 그럼에도 비판점이자 작품의 실패점임을 피해갈 수는 없는데, 애초에 위와같은 요인은 보편적으로 쉽게 보일법한 요소가 아니다. 설명이 필요한 드립은 망한 드립이라는 말과 비슷하게도, 따져보면 이유가 있고를 떠나서 삼국지톡은 위와같은 조조의 빌드업을 대다수의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내지 못했다는 것 밖에 안되며, 그 변화의 정도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완급조절이라는 측면에서 실패한 것이다.

2.3.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불쾌한 수위

셋째로, 조조의 악랄함이 상황이나 맥락의 적절성 여부와 상관 없이 과장되어 튀어나오다 보니 이야기를 불필요하게 자극적이거나 불쾌하게 만든다. 이게 가장 극단적으로 폭발한 것이 여포 사후 딸 에게 아버지의 수급을 보여주며 조롱하는 장면. 행동 자체의 패륜성은 둘째치고 이는 연의에서 조조가 여포의 식솔을 허도에 머물러 살도록 허락하는 장면을 재구성한 것인데(정사에선 여포의 처자식이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언급되지 않는다), 조조 자신의 속마음이나 훗날 조조와 그 자식들이 진짜 역적질을 해 위나라를 세우는 건 둘째치고 여포는 황제를 참칭한 반역자인 원술의 조력자로서 한실의 입장에서는 9족을 멸하는 것이 당시 기준으로 정당한 처분이었다.

그러니까 초선은 죽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 조조가 '자비를 베풀어' 살려준 것인데[12], 이 장면을 삼국지톡에서는 조조의 사이코스러운 잔학성의 발로로 바꿔버렸다.

어린아이 앞에서 아버지 목을 들고 아저씨 거 운운하는 조조의 모습은 농담이 아니라 스플래터 영화에 나오는 가학성 변태 살인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정도면 '조조는 전적으로 인면수심인 쓰레기'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해서 긍정적인 모습도 사실 부정적인 모습이라고 해석해버린 것인데, 결과적으로 너무 평면적이라서 유치하다 못해 이해가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다 떠나서 대체 '왜' 조조가 그 순간 그 상황에 초선과 금에게 그런 조롱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조조가 무엇을 얻을 수 있기에? 여포를 상대로 가지고 논 건 자신이 서주에서 대학살을 저지르는 틈에 저지른 연주 뒤치기의 원한+유비를 향한 눈치 게임이라고 할 수 있고, 진궁에게 보인 모습은 그와 조조 사이의 애증을 감안하면 그럴 만한 것이다. 실제로도 장막+진궁+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여포 덕분에 연주의 전 지역이 반란에 호응해서 조조는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렸기에 충분히 여포에게 이를 갈 법한 상황이었고, 당시 조조는 유비를 잘 대해주면서 그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고 있었으니 유비의 뒤통수까지 친 데다 언제든지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는 여포를 죽이는 것 역시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창업 파트너나 마찬가지였던 진궁은 마지막까지 살려주려고 한 모습 역시 정사나 연의와 일치한다.

그런데 초선과 금은 뭐하러? 그보다 왜 그렇게까지 비참한 조롱을 가하면서 이 정도의 위험 인물들을 편히 살게 도와주는가? 조조에게는 자비조차도 가학 취미의 일환인 것인가? 오히려 이렇게까지 하면 나중에 초선이나 금이 유비에게 붙는 식으로 딴 마음을 먹거나 그에게 복수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정서적으로 선을 넘어도 너무 넘은 악랄한 언동을 본래 긍정적인 부분까지 철저히 부정적으로 재해석해 묘사하면서도, 그런 묘사를 하는 논리적 당위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조조가 나쁜 놈이라는 진술에 근거 한 줄을 더할 뿐이다. 없던 나쁜 짓까지 만들어서 더하고 카리스마나 인간적 깊이는 더욱 얄팍해졌다.

이러니 참고 참았던 독자들의 원성이 대폭발한 것도 이상하지 않은 셈. 무려 900개가 넘는 댓글이 한 컷에 쏟아지며 현재까지도 키배가 진행 중인 상태다. 뿐만 아니라 장료를 대하는 자세에도 연의에도 없던 이런 면모가 계속해서 나온다. 게다가 이 장면에서 정작 조조는 지금 죽을 것인지, 어디 카페라도 차리고 조용히 살아갈 것인지를 물어봤고 초선이 자신의 핵심 근거지인 허도 한복판에 카페를 차리는 것도 눈 감아줬다. 정황상 여포의 수급 들고 조롱한 조조가 그냥 죽여도 자신의 평판에는 아무 문제 없을 사람들을 살려준 것도 모자라 자기 근거지 한복판에 가게도 차려줬고, 부하인 장료가 이들을 방문하는 것도 모른 척해줬을 가능성이 높다. 즉, 작가가 묘사한 악마 같은 조조라곤 상상이 안 가는 행보를 보인 셈이다.

이후로도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지는데, 적벽대전에서 역병에 걸려 고통을 호소하는 병사를 감히 자기에게 역병을 옮기려 한다며 발로 차서 물에 빠뜨려 죽이는 장면, 한중의 장로를 토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벼랑이 살짝 무너져 죽을 뻔 했다 살아나자 자기를 암살하려 했다며 길잡이 백성을 효수하는 장면 등 정사에도 연의에도 없는 장면을 창작해내며 거의 동탁급의 묘사를 하고 있다.

한중전 들어서는 작품 외부 역사적 사실 차원이 아니라 내부 서사상의 아귀까지 어긋나게 끼워가며 조조를 추레하게 묘사하는 데 몰두하는 지경까지 가고 있다. 실제 역사는 접어두고 작품 내 묘사상으로도 조조한테 잘못이 없거나 중립적으로 묘사되어야 할 부분을 전부 조조의 문제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가령 한중전 말미에서 자신을 도우러 온 조창에게 쓸모 없는 아들이라고 화 내고, 이에 조창이 속으로 저 귀 큰 놈(유비)은 가짜 아들도 아끼는데 당신은 뭐냐며 자길 도구로 본 거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조조가 당연히 조창을 이렇게 취급한 적이 없는 건 그렇다 치고[13] 작 내부적으로 봤을 때 조조가 조창을 이렇게 대한 원인은 다름아닌 조창에게 있다. 이 작품에서 조창은 조정의 실세이자 왕인 조조 앞에서 칼을 뽑은 채 들고 나타나, 아직 조조가 후계자를 정하지도 않았건만 멋대로 조식을 태자로 부르고, 조식이 사마문을 지나 왕권을 침범한 일을 별 것 아니라며 옹호하고, 나아가 조조 면전에서 이제 느긋하게 텃밭이나 가꾸라며[14] 대놓고 뒷방 늙은이 취급을 했다.

즉 삼국지톡의 행적상 조창은 조조를 아버지로서도 군주로서도 모욕한 불충불효한 인물이다. 따라서 이에 분개해 조창을 죽이네 살리네 하는 조조의 태도는 시대가치상 정당한 것이며, 조창은 아버지가 자기를 자식 취급 안하네 하고 원망할 게 아니라 위협만 당하고 만 것을 다행히 여기며[15] 언동을 뼈 저리게 반성했어야 옳다.

그런데 마치 자기가 충직한 아들이었는데 아버지가 자길 이용하기만 했던 것처럼 '저 귀 큰 놈은 가짜 아들도 아끼는데 당신은' 운운하는 건 자기 한 짓에 대한 인식도 없는 얼간이의 사고방식이다. 그런데도 삼톡은 조조는 필요할 때만 아들 타령하며 이용하려는 못난 아비로, 조창은 그런 조조에게 실망한 비운의 효자로 연출하여 자기가 이전에 만들어놓은 두 사람 사이의 서사를 잊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역사 기록과 맞냐 안 맞냐 이전에 조창의 서사 내적 캐릭터 자체가 심히 이상하고 앞뒤가 안 맞는데, 잘못의 근원이 전적으로 조조에게 있고 조조가 추한 아버지인 것처럼 억지로 묘사하다 보니 그 추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대상물'에 불과한 조창의 서사적 일관성을 무시해버렸다고 볼 수 있다.

2.4. 모순적인 사료 취사 선택

넷째로, 같은 기록이라도 조조는 최선을 다해서 불리한 연출로 격하시키는 한편 다른 캐릭터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연출하여 모순적이고 차별적이라는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가장 말이 많이 나오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축첩제'인데, 삼국지는 배경이 2-3세기 고대 중국이고, 그에 따라 정부인 이외의 첩을 두는 축첩제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다. 따라서 한 인물 당 부인이 여러 명 있는 경우가 당연했는데[16], 문제는 일부일처가 당연한 현대적 도덕관을 억지로 끌어들이다 보니 똑같이 부인이 여러 명인 상황에서 조조는 불륜으로 묘사하고 손견 여포는 처첩 통합, 유비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 넘어가는 연출로 어물쩡 넘겨버렸고 욕은 조조만 먹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조는 작중에서 정략결혼한 상대인 정영옥(정부인)을 내치고 변영(변부인)과는 불륜 관계인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작중에서도 둘이 내연 관계라는 기사가 난 장면이 있다. 조조의 경우만을 놓고 본다면 자연스럽게 '현대적 도덕관을 적용 시켜서 일부일처제로 만들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유비는 먼저 결혼한 감소혜(감부인)가 죽은 것처럼 알려진 상황에서 얼결에 미축 미영란(미부인)과 결혼 시킨 것으로 표현되었다.

심지어 여포 진영에 있었던 감소혜가 살아 돌아오자 미영란은 즉시 유비의 '전 부인'으로 표기되며, 그 이후로 부인이라는 것이 강조되지 않고 그저 유비의 부하 1처럼 보이는 촉 진영 동료로만 비춰진다. 실제 역사에서는 둘 다 똑같은 첩이고 둘 다 별로 문제 되는 행동도 아니었는데, 삼톡 내의 캐릭터 설정에 따라 편파적이고 차별적으로 해석되어 조조는 정부인을 두고도 다른 여자와 놀아난 파렴치한 불륜남이 되었고, 유비는 압박에 의해 강제로 새 부인을 맞고도 원래 부인과만 사랑을 나누는 순애보가 되었다. 이러한 점은 스토리 작가 무적핑크가 촉빠 겸 위까인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17][18]

사실 첩을 내연녀로 묘사한 것도 조조뿐이고 감부인, 미부인이 워낙 유명한 유비 빼고 다른 군웅들의 부인 문제는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더라도 적당히 바꿔 문제시될 계기 자체를 없애버린지라 '내연녀 묘사 자체가 조조 까기의 일환 이상의 의미는 없는 거 아니냐'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지경이다. 대표적으로 손책의 어머니와 손랑의 어머니를 하나로 합쳐놓은 오국태 캐릭터나, 연의에선 첩이고 정사에선 아예 간통 상대에 불과했던 초선 여포의 본부인(연의의 엄씨 설정을 통합)으로 어레인지된 것 등등. 이들 커플은 심지어 서로 죽고 못 사는 잉꼬 부부다. 손견도 엄연히 중혼자였고 여포는 그 조조가 추잡하게 부하들 여자 밝혔다고 비웃을 정도로 성적으로 방종했던 인물인데 삼톡에서는 한 여자만 바라보는 로맨티스트가 됐다. 여포가 부하들에게 배신 당한 이유들 중 하나가 부하들의 부인과 간통해서였다. 조조는 여자를 밝히다 죽을 뻔 했고 여포는 실제로 죽었는데 두 사람이 삼국지톡에서 묘사될 때 차이를 생각해보자.

오국태의 전례를 보면 조조의 부인도 그냥 한 사람으로 통합해버려도 될 일인데 오히려 첩 제도를 불륜으로 바꿔놓으면서까지 여러 부인을 등장시킨다.[19] 즉 혼인 관계 하나만 두고 보자면 여포는 있던 잘못도 없애고 독자들이 보기 좋아하는 금실 좋은 커플로 왜곡시켜 놓은 반면 조조는 있는 잘못 그대로 내고 잘못 아니었던 것도 잘못으로 둔갑시켜 먹어야 할 욕 당연히 먹고 안 먹어도 될 욕까지 보너스로 먹는 파렴치한 엽색가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유비는 가상의 개그풍 시추에이션까지 넣어 중혼을 정당화하는 와중에 조조만 이 꼴인 건 정말 심각한 차별이자 모순이다.

이 점은 여성 캐릭터 운용에서도 문제가 된다. 작중에서 유비와 감소혜는 같이 있는 장면이 많고 애틋한 연출도 많지만 유비와 미영란은 그런 거 없다. 심지어 정사에서는 감부인보다 미부인이 먼저 유비와 혼인했고 정실이었는데, 그것을 감안하면 삼국지톡의 미부인 묘사는 실제 역사 인물에 대해 모욕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변부인 또한 정치인의 내연녀쯤으로 전락해버려 그 전의 주체적 여성 캐릭터 표현에 대한 장점이 사라져버렸다. 그야말로 조조 하나를 까기 위해서 작품성 자체가 피해를 입은 셈이다.

이 첩 문제를 어물쩡 넘어가고 현대의 절대적인 일부일처제를 작품 안에 반영하려 애쓰고 있으나, 이 부분이 작품 내 세계관에 또 다른 모순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무슨 얘기인고 하니 원소 공손찬은 실제 역사에서처럼 천민 어머니를 둔 얼자, 평민 어머니를 둔 서자로 소개되며 이는 두 사람의 핵심 콤플렉스로서 캐릭터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한 마디로 삼톡 세계는 서얼이라고 하는 자녀 분류가 존재한다는 얘기인데, 정작 첩 제도는 없다. 축첩이 인정되고 정식 제도화된 사회상이라면 조조의 내연녀 문제가 그렇게 기자들 사이에서 먹잇감이요 이슈가 될 까닭이 없다. 첩이란 개념은 없는데 서얼이란 개념은 있다니 말이 되나?

그러니까 부부 관계'만' 21세기 현대식으로 조정되고 정작 부모자식 관계는 2세기 가족 제도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 어처구니 없는 모순과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오로지 조조 한 명을 까기 위해서 말이다.

2.5. 지나친 악마화

다섯째로, 조조를 단순한 악역을 넘어 천하 만민이 모두 혐오하는 살인마 파괴대왕 수준으로 묘사하여 독자들의 조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저해한다. 흔히 '또주 대학살'이라고 조롱 받을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서주 대학살이 재탕으로 묘사되어 삼톡의 거의 모든 서사에 언급되는 수준인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물론 서주 대학살이 당대에도 지탄을 받은 천인공노할 악행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위나라의 시각에서 정사를 작성했을 진수마저 잔륙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비판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과연 서주 대학살이 당시에도 이 정도로까지 온 천하가 조조를 혐오하는 계기가 되었는가이다. 흔히들 이러한 묘사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서주 대학살로 인해 서주 출신 명사들이 대거 이탈하여 조조에게 항거하게 됐다는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팩트 체크를 해보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우선 정사에서 확실하게 서주 대학살 때문에 서주를 떠났다고 추정할 수 있는 서주 출신 인재는 보즐 서성 정도가 전부다. 만약 정말로 서주 대학살 때문에 온 천하가 조조를 혐오하게 됐다면 서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여기던 대표 호족인 진등은 왜 조조를 따랐고 진교, 서선 등은 왜 피난을 갔다가 서주가 안정되자 다시 서주로 돌아와 조조를 따랐으며, 서주 낭야에 살던 제갈탄 등 나머지 제갈씨 일가는 왜 계속 남아 위나라를 따랐는가? 서주 대학살 때문에 온 천하가 조조를 혐오하게 되어 이로 인한 나비 효과 때문에 조조가 천하통일에 실패했다는 주장은 어폐가 있다. 그 밖에 노숙은 학살이 아니라 원술에게 실망해서 남쪽으로 갔다는 기록이 있고, 장소는 기존 관리와 갈등이 있어서 남쪽으로 갔다는 기록이 있는 등 다른 인물들의 기록에서도 서주 대학살 때문에 서주를 떠나 조조에게 항거했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학살이 현대 기준으로 보면 만고의 지탄을 받을 악행인 것은 맞지만 당대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 비판은 받을지언정 온 천하가 혐오하는 악마의 화신 수준으로 지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조조가 오랜 세월 악역으로 취급 받았던 진짜 이유는 서주 대학살이 아니라 한왕조에 대한 능욕과 이로 인한 촉한정통론의 발흥 때문이다. 왜 망탁조의로 엮이는지 생각해보라. 이는 상술한 진등, 진교, 서선 등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다만 진궁이 서주 대학살에 실망하여 반란을 결심했다는 서사는 충분히 재해석으로 기능할 수 있다. 실제로도 진궁의 반란은 그 연유를 알 수가 없고 마침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주 대학살이 일어났으니 현대적 윤리관을 추구하는 삼톡으로서는 이 두 사건을 엮어볼 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어야 했다. 논영회부터 적벽대전까지 시도 때도 없이 모든 스토리에서 서주 대학살이 튀어나와 캐릭터들의 동기가 '기승전서주'로 귀결되는 것은 작품의 역사왜곡 논란에 더 불을 지피는 일이다. 거기다 조조를 작중에서 온 천하에게 혐오 받는 살인마 파괴대왕으로 취급하다 보니 이런 조조를 따르는 위나라측 장수들은 악마를 추종하는 광신도처럼 묘사하는 무리수를 뒀다는 추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허도 반란 관련 또한 매우 악의적이다. 물론 정사에서 조조는 실제로 무고한 신하들까지 싸잡아 죽여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고 이는 조조가 비판 받아 마땅한 내용이다. 오히려 연의에서 흰색 깃발에 선 사람은 살려주고 상을 준 걸로 묘사한 게 그나마 미화된 것이다. 그러나 삼국지톡에서는 왕필은 등장조차 하지 않으며 해당 반란의 동기와 과정은 축소 시킨 채 흰색, 빨간색으로 낚시하는 것만 매우 강조하고, 심지어 연의는 물론 정사 내용에도 백성들을 죽였다는 내용은 없고 오로지 허도에 있는 신하들만 이용하였는데 여기선 위나라의 수도 업이 빛나기 위해선 한나라의 수도 허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백성을 잔혹하게 죽이는 것으로 무려 3화 이상을 소비하였다.

2.6. 팬덤의 분열 조장

마지막으로, 이러한 조조의 심각하게 편향적인 묘사에 분노한 팬덤과 작가의 노선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팬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반복한다. 단순히 캐릭터에 대한 호불호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라면 그렇게 큰 논란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삼국지톡이라는 작품이 삼국지라는 동아시아 초대형 문화 미디어믹스의 2차 창작물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작품의 비하 캐릭터도 모든 독자들이 까는데만 그치는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다.

때문에 삼국지톡에서 특정 인물에 대해서 큰 논란이 발생했다면, 그것도 그 인물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국지 전체의 메인 코어이자 상징, 아이콘격인 존재인 조조라면, 더 이상 이 논란은 삼국지톡이라는 작품 안에서만 발생하는 논란이 아닌 기존의 삼국지 팬덤과 삼톡을 통해 삼국지에 유입된 신규 팬덤의 파벌 싸움으로까지 확장되어버린다. 이 때문에 조조의 묘사를 옹호하는 신규 팬덤 측에서는 비판론자들을 모두 악성 위빠신규 팬들에게 텃세를 부리는 꼰대로 치부하는 횡포를 부리는 것이 일상이며, 삼톡의 컷 하나하나마다 치열한 키배가 끊이지 않게 된다.

상술했듯 조조가 삼국지에서 지니는 비중은 그야말로 초월적이어서 조조의 캐릭터적 완성도가 곧 그 작품의 완성도와도 직결된다. 조조가 찌질하게 추락할수록 저런 조조에게 쳐발린 원소, 손권, 유비 등 다른 군웅들도 저 찌질한 놈 하나 이기지 못하는 무능력한 인간들이 된다. 심지어 저런 찌질이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상황에서 본인의 잘못된 판단과 발전투 2번으로 죄다 패배하고 망한 작가의 최애 원소는 역설적으로 무능 그 자체의 인물이 된다. 아무리 병이 어쩌고 해도 결국 원소 본인 실수로 조조한테 백마 전투, 관도 전투를 압도적으로 패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삼국지는 엄연히 1800년 전의 역사이기 때문에 1800년 동안 무수히 많은 민담, 재해석, 미디어믹스, 역사학적 연구가 매우 깊게 이루어져있는 거대한 문화적·학문적 집합체이며, 이 때문에 특정 작품의 조조에게서 논란이 발생한다면 필연적으로 기존 팬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인지도가 거의 없다시피 한 팬픽 같은 곳이라면 몰라도 삼톡은 상당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는 정식 연재작이기 때문.

결국 이러한 문제 때문에 삼국지톡보다는 삼국지를 좋아해서 작품을 보던 팬덤이 대거 이탈하면서, 심하면 한 컷에 댓글이 10개 미만인 정도로 줄어들었고 대부분의 독자층은 트위터를 본진으로 한 부녀자들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사실 조조는 트위터에서도 다양한 커플링으로 엮이며 큰 인기를 구가하던 캐릭터라 부녀자 독자층도 온전히 남아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들은 무비판적으로 작가의 노선을 지지하며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댓글이 있으면 단체로 몰려들어 물어뜯는 홍위병이나 다를 바 없는 막장 집단으로 전락했고, 그나마 남아있던 일반적인 독자들까지 이들의 횡포에 학을 떼며 중도이탈하는 경우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3. 원인

원소가 진짜 중요한 캐릭터예요. 삼국지를 상, 하로 나눈다면 상의 주인공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고, 조조를 자기 발가락처럼 부린 인물이에요. 원소는 병으로 죽었는데요. 다른 말로 하면 누구도 원소를 죽이지 못한 거예요. 하늘이 원소를 죽인 거죠. 『삼국지톡』 으로 원소를 발견한 건 정말 큰 수확이었어요.
무적핑크, 단행본 1권 출간 기념 인터뷰 中
가장 큰 원인은 단연 무적핑크 작가의 지나친 원소 추앙과 원소의 비중 올려치기이다.[20] 원소가 여지껏 창작물들에서 연의에 충실한 우유부단하고 조조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인물로 묘사되었던 것과 달리 삼톡에서는 정사를 반영하여 신세대의 신처럼 군림하고자 하는 매력적인 독재자 기믹을 살린 훌륭한 캐릭터가 되어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적당히'를 모르고 미화, 신격화 수준으로까지 추앙하며[21] 대립자였던 조조를 최대한 격하시켰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조조의 캐릭터를 완전히 작살내버렸으며 시즌 6 관도대전 파트까지 희대의 졸작으로 마무리지었다.

원소가 정사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지닌 거물이었던 것은 맞지만 결국 삼국지는 삼국지다. 삼국의 시조들인 조조, 유비, 손권이 주인공인 시대다. 삼국지를 상, 하로 나누면 원소가 상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과도한 올려치기이며,[22] 작가의 최애캐 한 명을 빨기 위해 다른 주역이 망가지고 작품성이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진삼국무쌍 8과도 닮은 점이 있다.

원소는 병으로 죽었고, 이는 다시 말하면 아무도 원소를 죽이지 못한 것이며, 하늘이 원소를 죽인 것이라는 발언 또한 결국 작가의 원소 신격화 논란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원소를 병에 걸리도록 만든 게 누구인가? 정사 원소전에는 "군이 패한 이후 병을 얻었고 건안 7년(202년)에 근심으로 죽었다(憂死)."라는 기록이 나온다. 정황상 원소가 병에 걸린 이유는 관도에서 대참패하여 홧병이 도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개연성 있는 해석이다. 실제로 원소가 조조를 항상 자기 밑으로 여기는 오만한 성격이었다는 것을 삼톡이 가장 열심히 조명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밑으로 여기고 있던 조조에게 굴욕적인 대패를 당했으니 홧병이 도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작가의 인터뷰에서는 이러한 부분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무슨 제갈량마냥 아직 일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천명을 다해서 죽었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작중 내에서도 원소가 병에 걸린 것은 어린 시절 무리하게 6년상을 치르다가 생긴 후유증이라는 듯이 연출한 것을 보면 이 역시 신격화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되면서 원소는 저렇게 잘났음에도 하찮은 조조에게 2번이나 깨진 놈이 되어버려 그 위상이 더욱 애매해졌다.

3.1. 독자들의 반응

정사에서 보여준 조조의 좋은 모습을 마지못해 보내주는 탐욕으로 표현하셨네요 더군다나 연의에서 보여준 조조의 쪼잔함은 그대로 표현하셨고...
관도대전_110화 베스트 댓글 中[23]
너무 억지로 조조 까는 연출이라 노잼임. 빌런이 어느정도 위압감이 있을때 격파하는 카타르시스가 있는거지. 이건 뭐 세계사 100대 명장에 들어가는 인물을 원술만도 못하게 그리네
한중왕, 유비 21화 베스트 댓글 中
너무 추하게 그리려는듯...조조를 좋게 보진 않지만 저건좀 아닌듯...저 순간의 실패를 자식탓으로 돌릴만큼 못난사람은 아닌것같은데
한중왕,유비 21화 베스트 댓글 中
나도 조조 싫어하지만 작가님은 조조한테 원한이 있나 싶을 정도로 혐오하시는듯
한중왕, 유비 21화 베스트 댓글 中

4. 결론

드라마 삼국 조조는 독보적인 역대 최고의 조조로서 제1의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창천항로는 조조를 어마어마하게 추앙하기는 했지만 의외로 고증을 어긴 경우는 많지 않으며[24], 정사에서 조조가 받은 평가인 초세지걸(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라는 캐릭터리티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들었다. 대군사 사마의 조조의 격정적인 감성과 냉혹한 이성의 충돌을 훌륭하게 연출하며 본작이 배출한 최고의 아웃풋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본작의 작품성 자체를 격변시켰다는 공로를 인정 받는다. 화봉요원은 조조를 악랄하고 비정하면서도 능력이 전혀 돋보이지 않는 무색무취한 인물로 묘사해 논란이 되었으나, 심금을 울리는 많은 명대사들을 남겨 적어도 '조조로서의 간지'는 유지했으며 본작이 최초로 조조를 중심으로 채택하지 않은 작품이기 때문에[25] 조조가 작품성에 끼친 악영향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이처럼 삼국지를 다룬 2차 창작물들은 모두 원전의 근본을 망치지 않거나 작품성에 악영향이 가도록 하지 않는 선에서 각기 다른 노선으로 조조를 재해석하며 각자의 고유한 캐릭터리티의 영역을 개척했다.

하지만 조조를 과도하게 비하하면서도 조조의 어마어마한 비중은 원전 그대로 유지시킨 삼국지톡의 조조는 진삼국무쌍 8의 조조와 함께 역대 최악의 조조라 불릴 정도로 극악의 평가를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삼8은 조조 한 명을 빨기 위해 개연성을 개박살내버린 역대 최악의 조조 추앙으로 비판 받았다면, 삼톡은 조조 한 명을 까기 위해 개연성을 개박살내버린 역대 최악의 조조 비하로 비판 받는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진삼8에 비하는 건 약간 과하지 않느냐"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초창기에는 호평 받던 '기도위 조조' 시절의 캐릭터성을 얼빠지게 붕괴시키며 독자들의 기대를 배신했다는 반감이 가미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다 떠나서 역사상 최악의 조조 1위로 손 꼽히던 진삼8의 조조와 비견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일이다.[26]

역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삼톡의 조조는 특색이랄 게 없고 부정적이고 폄하적인 요소만 가득한 캐릭터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 캐릭터의 콘셉트적인 측면으로만 따진다면, 연의의 스테레오한 이미지를 탈피해,충동적이면서도 변화무쌍 모습과 더불어 탁월한 창의성과 임기응변으로 혁신적인 방안을 생각하거나 상황을 대번에 반전 시키는 데 정체성이 있는, 현재 인지도가 있다고 할 만한 작품 중 유일하게 정사를 버무리는 정도를 넘어 아예 정사에 나타난 조조의 인물상에 가까운 모습을 기본으로 삼았으며,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그 희소가치를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박하다고 하기에도 부족한 묘사로 작가 스스로가 그 캐릭터성을 죽여버렸으며, 최종적으로는 작품 전체가 붕괴됨으로써 빛을 바래게 만들었다.

그나마 조조의 최후는 평가가 괜찮다.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을 이용한 연출과 결국 조조의 좋은면을 보여준 유언등으로 지금까지 조조 묘사에 비하면 평가가 훨신좋다. 이후로 작품 자체가 꼴아박아 버렸지만... 몇몇 독자들은 조조의 사망이 진짜 삼국지톡의 엔딩이라는 소리까지 나오고있다.

결론적으로 삼톡의 조조는 조조의 실패가 삼국지를 다루고 있는 작품에 어떤 참사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역사와 연의를 막론하고 매우 복합적이며 다중적인 면모를 지닌 어려운 인물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해석하기 시작하며 캐릭터성 자체가 무너져내렸고,[27] 당연히 조조의 핵심 라이벌들인 유비, 손권의 위상도 덩달아 떨어지며[28] 작품 자체가 실패작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캐릭터성을 때어보고 봤을 때 타 작품인 랜덤채팅의 그녀! 최준우보다 더 하다고 볼 수도 있다. 적어도 최준우는 한 작품을 망치는데 그쳤지만 삼톡의 조조는 삼국지연의라는 문학작품을 근간마저 흔들렸으며 역사왜곡까지 겹쳤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다.[29] 아니 내로할 할 수 있는 최악이라고 평을 캐릭터들을 전부 언급해도 삼톡의 조조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30] 그나마 비슷한 사례를 뽑자면 고려 거란 전쟁 박진 정도다.[31]

애초에 조조는 함부로 건드리기에 너무 거대한 비중을 지니고 있다.[32] 차라리 유장, 장로, 한수, 장각 같은 한두 번이나 한 파트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을 조금 망친다면 아무리 망쳐도 정말 대체역사물 수준이 아닌 이상은 그 파트만 망하고 끝난다. 그러나 조조는 삼국지 초부터 이릉대전 전까지 엄청난 기간 동안 영향력을 끼치니 조조를 조조 하나로 끝나지 않는 게 된다.

[1] 이 때문에 문학적으로는 유비가 많이 회자되는 것과 달리 역사 연구의 측면에서 삼국시대 인물 중 조조보다 중요한 사람은 없다. 북방민족을 토벌해 서진이 개판임에도 수십년 동안은 통일왕조로 기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고, 구품중정제 시행이나 둔전제 개편, 호조법 시행 등 훗날 등장하는 왕조들에도 널리 그 영향력을 떨쳤다. [2] 대표적인 예로 코에이 창천항로는 조조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켰고, 삼국 대군사 사마의는 조조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어느 정도 균형 있게 묘사했으며, 화봉요원 삼국지톡이 조조의 부정적인 면만을 부각시킨 작품들이다. 그리고 삼국지톡은 긍정적인 면을 깎아내리고 부정적인 일화는 공을 들여서 묘사하며 극대화시킨 가장 극단적인 케이스다. 따라서 그간의 삼국지 창작물 대부분이 조조의 긍정적인 면만 지나치게 부각시켰기 때문에 삼톡의 조조는 신선하다고 옹호하는 극성 팬들의 주장은 그간의 삼국지 미디어믹스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있는 궤변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유비가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유장의 땅을 빼앗은 행적이 있다고 유비를 그냥 무작정 겉과 속이 다르기만 한 인물 수준으로 묘사했다고 보면 된다. [3] 비슷하게 재해석이 많이 이루어지는 유비 도원결의로 상징되는 의형제들과의 뜨거운 의리만큼은 절대로 부정되지 않는다. 유관장의 신의와 거기서 비롯된 드라마틱한 일대기가 삼국지에 군웅할거의 난투극 이상의 서사를 부여하는 핵심이자 근본이기 때문. [4] 추적 당하는 자로서의 공포나 아버지의 비명횡사에 대한 분노 등. [5] 이때 조조의 말투도 초반과는 달리 상당히 가벼워졌다. (예시: '흥!', '우리 딴 말하기 없기다 퉤퉤퉤') [6] 예로 들어 추씨 사건은 대략 6-7회, 서주 대학살은 조숭의 죽음부터 진궁의 배신까지 자그마치 16회. 즉 2달을 통째로 서주 대학살 편만 그렸다! 위에 나오듯 황건적의 난 에피소드에서 유비네의 첫 전투(14화)부터 황건적의 난 종식 선언(29화)까지가 16회다. 즉 서주 대학살 사건 하나가 사실상 황건란 전체 분량과 맞먹는 셈. [7] 하지만 반대로 당시 조조가 느낀 절망과 분노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작가의 역량 부족으로 아무도 조조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조조를 쓰레기로만 인식했단 것이다. [8] 가장 쉽게 생각하면 항우를 생각하면 된다. 항우는 패왕으로서 진나라를 무찌르고 유방에게 졌으나, 본기에 기재되어 있는 것만으로 보면 권력의 핵심에 다가간 것이다. 조조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9] 조조는 망탁조의로 엮이며 희대의 역적이자 악당으로 평가 받기도 하지만, 무너진 한나라 예토전생 시키고 이를 선양으로 계승한 조위정통론의 시조가 되어 그가 정통한 한의 계승자라는 관점 또한 부정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업중가>에서 묘사한 "공으뜸 죄으뜸 모두 한 몸"이라는 구절이 조조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10] 정식 명칭은 손자약해인데 보통 위무주손자로 알려져있다. 연의에선 맹덕신서로 나온다. [11] 작중에도 몇번 언급되는데,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처럼 하늘은 세간 사람이라는 말로써 치환하여 읽을 수 있다. [12] 심지어 가진 걸 다 몰수하거나, 신분을 빼앗은 채 목숨만 살려주거나, 외지로 귀양 보내거나 한 것도 아니고 알아서 조용히 잘 먹고 살 수 있게 허도에 카페까지 차려줬다. 이는 다름아닌 여포의 수급을 들고 조롱하던 장면에서 조조 본인이 말한 내용이다. [13] 정사에서는 유봉이 산을 끼고 자신을 도발하자 조창을 언급하며 조창을 불러 너를 상대할 테니 기다리라고 했는데 조창이 장안에 다다랐을 때쯤 이미 조조는 한중에서 발을 뺀 상태라 싸울 일이 없었지만 그만큼 조창을 믿고 신뢰한다는 말이다. 연의에서도 조조의 황수아 드립은 자식의 능력을 믿는 아버지로서의 조조를 보여주는 대목이며, 실제로 조창은 그 기대에 부응하듯 엄청나게 잘 싸웠는데 삼톡에서는 귀신 같이 적반하장격의 부조리한 갈굼으로 바꿔놓았다. [14] 왕인 조조가 국사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일하지 말고 쉬라는 건 사실상 권좌에서 내려오라는 소리다. 조창이 무슨 의도로 말했건. [15] 아닌 말로 조창이 조조 친아들이 아니라 일반 신하였으면 딱히 조조가 폭군이 아니라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신하였으면 모가지가 날아갔을 짓을 했는대도 몸에 칼자국만 내고 달리 좌천 등의 징계인사도 없었던 건 조조가 아들을 특별 취급해줬기 때문이다. [16] 당장 삼톡에서 유비만 해도 첫 부인이자 정실 부인인 감소혜와 측실로 미영란이 있다. [17] 조조의 사례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유비 또한 여럿의 아내를 두었다. 이 부분은 작가도 이전에 맞아들인 여성들을 감부인 설정에 통합했다고 밝힐 때 같이 언급했다. 사서를 통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인물만 해도 4명이며 감황후전의 '유비는 본처를 여러 차례 잃었기 때문에 감부인이 항상 집안일을 관리했다'라는 구절을 통해서 처자가 여럿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저렇게 순애보로 표현이 되지만 감부인은 첩이었다고 명시되며 본처는 따로 있었다. [18] 그런데 정작 유비의 캐릭터 묘사도 조조에 버금갈 정도로 심각해서 촉빠 논란은 수그러든 상태다. 심지어 조조를 제외한 다른 위나라 책사들은 보정을 많이 먹은 탓에 위까 논란도 다소 수그러들었다. 확실시되는 것은 위까가 아니라 조조까 논란이다. 또한 미영란의 사망까지도 미영란의 신분 문제는 촉빠 사이에서도 두고두고 논란이었다. [19] 단, 이 경우 조앙 사건으로 정씨가 조조와 헤어진 것을 묘사하고 싶은데, 부인을 하나로 만들면 이후 조비 형제의 어머니가 멀쩡히 등장하는 게 모순이 되어버리니 선택한 방법일 수도 있다. 혹은 정부인과 변부인 모두 당대 사료에서 드물게 인상적인 일화가 나오는 흥미로운 인물상인지라 양쪽 다 포기할 수 없었던 걸지도. [20] 한중 공방전에서조차 조조가 원소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장면을 집어넣어 이 논란의 방점을 찍었다. 유비에게 패배한 전투인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원소한테 열등감을 느끼는 건지 하등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 독자들의 원성이 기어코 폭발하여 별점이 7점대까지 추락했다. [21] 원소의 단점도 충분히 묘사했다는 반론이 있는데, 부끄럽다는 이유로 전풍을 처형한 것처럼 원소의 명백하게 추한 정사 기록들은 모조리 도려내어 결국 마지막에서는 미화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원소의 캐릭터는 한 마디로 용두사미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22] 정작 원소는 십상시의 난 반동탁연합군을 주도한 거 이후엔 대사건을 주도한 일이 없다. 그것들마저도 십상시의 난은 결국 동탁의 집권으로 끝났고 반동탁연합군도 흐지부지되어 결국 모두 용두사미로 끝난 채 확실한 결말을, 특히 원소에게 이득 되는 결말을 맺지 못했다. 이후 북방에서 힘을 키워 중원을 위협했지만 결국 그 영향력은 북방으로 제한되었고, 그나마 중앙으로 진출할 기회였던 관도대전에서 패배하고 죽었다. 1부 주인공이라기엔 허무한 행적이다. 무엇보다 삼국지를 상, 하로 나눴을 때 원소가 주인공이란 해석은 유비 사후의 삼국지는 배제한 수준의 발언이다. [23] 관우의 뜨거운 의리와 조조의 쿨한 대인배적인 풍모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삼국지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인 천리행에서조차 조조를 구차한 소인배로 만든 비하성 연출로 인해 삼톡 역대 최저 별점을 기록한 회차다. 이때 이후로 학을 뗀 독자들이 상당수 이탈하며 별점 참여자 수가 1천명 가까이 줄어들었다. 즉 이때부터 삼톡은 눈에 띄게 망해가고 있었고 여기서도 정신 못 차린 작가의 막장행보로 인해 완전히 골로 가버린 것이다. [24] 창천항로는 조조를 인간을 초월한 신처럼 묘사하고 다른 인물들은 조조보다 열등하다는 게 바탕인 먼치킨물이긴 하지만, 의외로 조조의 최대 악행인 서주 대학살이나 완성에서의 추태, 정부인에게 손절 당하는 기록 등을 빠짐 없이 묘사한 작품이다. [25] 수경팔기의 존재에서도 드러나듯이 화봉요원은 군주보다는 책사들의 역할이 강조되는 작품이다. 화봉요원의 두 주인공인 사마의 요원화의 역할(책사/암살자)에서도 나오듯이, 화봉요원은 기본적으로 역사의 어둠 속에서 암약하며 시대의 흐름을 조절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에 가까운 작품이기에 조조나 유비 등의 일반적인 주인공, 군주 캐릭터들이 중심에 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6] 촉빠들조차도 삼톡의 조조만큼은 어딘가 확실하게 잘못됐다고 평가하는 여론이 많으며, 작가의 도를 넘은 조조 비하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빌런이 영웅을 완성 시킨다'는 말처럼 촉빠들도 조조를 빌런으로써 고평가하기 때문이다. [27] 당초에 이 인물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건 결국 후대에 만들어지는 이미지고 당대에는 복잡했다. 인덕의 군주라는 유비는 친족인 유장을 쫓아내고 익주를 먹었고, 개혁가 이미지가 강한 조조는 정말 개혁가가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따라다니는 등. 이러다 보니 이 인물은 이런 인물이다! 라고 평가하는 것은 대단히 성급한 평가로, 실제로 조조=절대악 이미지가 강했던 그 옛날에 나온 삼국지 관련 소설들은 조조 비하와 촉빠 성향이 더 강했다. 그러나 나관중은 그 당시 기준으로는 꽤나 조조를 고평가해주고, 그렇다고 유관장 삼형제를 홀대한 것도 아니며 결말도 실제 역사 그대로 내면서도 여운을 남기게 만들었다. 그렇게 연의는 자체의 가치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호평을 얻어 수백 년 동안 읽히고 있는 명작이 되었다. [28] 요컨대 조조를 띄워주면 그만큼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천하통일 야망을 좌절 시킨 유비, 손권도 간접적으로 띄워지지만 조조를 비하하면 그만큼 유비, 손권은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을 이긴 사람이 되어버린다. [29] 아이러니한게 최준우도 삼톡의 조조와 마찬가지로 본래 특색이랄 게 없고 부정적이고 폄하적인 요소만 가득한 캐릭터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즉 둘다 작가로부터 엄청난 피해를 입은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30] 그만큼 실존인물 그것도 위인을 함부로 다루면 안된다는 반증한 셈이다. [31] 삼톡의 조조는 적어도 삼국지톡이라는 근간을 부정시키지 않았지만 이쪽은 고려 거란 전쟁을 고려 궐안 전쟁이라며 부를 정도로 작품의 근간을 뿌리채 뽑으며 부정시켰다. 다만 본래 특색이랄 게 없고 부정적이고 폄하적인 요소만 가득한 캐릭터가 결코 아니었다는 점과 비슷하다. [32] 삼국지를 어떻게 쓰더라도 조조는 삼국의 한 축이자 가장 큰 축인 조위의 시조이며 또한 400년 한나라의 숨통을 실질적으로 끊은 사람이라는 것은 묘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만큼 조조의 비중은 아주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