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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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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박근혜 정부 ~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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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의당 로고타입.svg 역사 요약
* 유시민 작가는 2013년 2월 19일 정계 은퇴 후 평당원으로 지내다 2018년 6월 13일 탈당했다.

2. 전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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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보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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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의당'으로 당명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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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명 변경 후 2014년 1월 14일까지 사용한 로고

2013년 7월 21일 전당대회를 통해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고[1] 국민참여당 출신인 천호선이 당대표 경선에 단독 출마해 96%의 찬성으로 당선되었다. 부대표로는 김명미, 이정미, 문정은이 당선되었다.

진보정당에서 노동운동계 출신이 아닌 사람[2]이 당 대표가 되는 경우는 처음이라는 점이 시대적으로 특이할만한 전례라 볼 수 있다. 이것으로 소위 1차적인 당 혁신은 끝마친 상황이나 이것이 당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우선 당원이 2만 명도 안 되는 상황이 지속되는 정체기에 빠져 있었다. 당명 개정으로 인한 당내 갈등도 두드러지고 있었고, 홈페이지 내 게시판에서 그대로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향후 행보에 따라 당의 미래가 정해질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2013년 당대표 선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정의당/제2기 전국동시당직선거 문서 참고.

2013년 8월 통합진보당 내란선동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의당은 찬성 당론으로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에 참여했다.

당내 일부 인원들이 이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 “체포동의안의 혐의 사실과 법 적용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당사자들의 해명을 다 인정한다해도 녹취록의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렇다면 국회의원의 특권을 방패막이 삼아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라는 천호선 대표의 입장표명 #을 통해 다시금 찬성 입장을 공고히 했다.[3]

2013년 12월 6일, 전 동양대학교[4] 진중권 교수가 입당하여 # ‘정의당’, ‘진중권’과 같은 검색어들이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달성하면서 대외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었다.

5. 2014년

2014년 1월 6일, 철도파업 등에서 존재감을 나타낸 정의당은 새해 첫 정당지지율 조사에서 1.1%p 오른 3.0%를 기록하며 통합진보당을 제치며 지지율 3위를 기록했다. #

2014년 1월 14일, 당의 상징색을 노랑색으로 바꾸고 당의 로고를 바꿨다. 경향신문 기사

2014년 2월에는 심상정 원내대표가 비교섭단체 대표로 국회 연설에 나섰고 #, 일본 사회민주당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를 한국으로 초청하는 등의 다양한 국제 연대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등록후보수는 총 158명으로 노동당의 112명보다는 조금 많고, 통합진보당의 520명보다는 적은 수이다. 서울시장과 경기 도지사는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한 상태. 단체장은 1+3[5] 전략으로, 기초의원은 3·4인선거구 위주의 당선가능 지역을 위주로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인천의 두 구청장[6]의 경우 진보구청장으로서 많은 활약을 보여왔기에 당 내에서도 기대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울산시장의 단일화 불발 #과 과천시장 단일화 경선에서의 패배 #로 인한 지방선거의 어려움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지방선거를 포기하고 7.30 재보궐 집중으로 선거방침을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 또한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대로 지방선거 결과는 정의당에게는 매우 뼈아팠다. 울산시장 조승수 후보는 선거 직전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범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 범야권 단독후보로 나올 수 있었지만 노동당 이갑용 후보가 끝까지 단일화를 거부하였고 너무 늦게 이뤄진 단일화 효과로 새누리당 김기현 후보에게 완패했다[7]. 또한 인천 동구청장 조택상 후보와 남동구청장 배진교 후보도 선거중반까지는 송영길이 앞서면서 당선이 될듯했으나 선거 막판에 유정복에게 밀리면서 같이(줄투표 효과로) 새누리당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특히 남동구청장 배진교 후보는 근소한 표차로 아깝게 낙선해서 더 아쉬움이 컸다. 결국 최종적으로 얻은 것은 기초의원 11명 뿐이다. [8]

7.30 재보궐이 미니총선으로 치러지는 만큼[9] 노회찬 전 대표를 비롯 당 내 유명인사가 총 동원되어 재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당 내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으로 같이 지선에서 부진한 노동당과 합당해서[10] 일단 당세라도 불려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노동당 내에서 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 정의당 내의 주요 당직자들이 통합안이 부결되자 진보신당에서 탈당해서 일시적이나마 통진당에 합류했던 일과 참여정부에 대한 악감정으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은 상태라 통합이 쉽지 않을 듯하다.

2014년 재보궐선거에는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과 강동원 의원의 탈당으로 인해 창당 후 1년도 안 되어 2석이나 날려먹어 순식간에 원내 4당으로 내려앉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기에, 재보궐 선거에 당 차원에서 사활을 걸 것이라고 천명했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지역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던 노회찬 전 의원을 공천하고, 천호선 대표는 경기도 수원시 정[11] 지역에 출사표를 던졌다.

심상정 원내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에 야권연대를 제안했지만, 새정연 지도부가 야권연대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진전이 없자 정의당 지도부는 여섯개의 지역구에 독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야권 지지자들은 야권 분열로 인해 어부지리로 여당이 이득을 볼까봐 노심초사하는 중. 정의당 측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지 야권연대에 대한 문은 선거 직전까지 열어 두겠다고 한다. 하지만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되는 21일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이 야권연대에 대해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야권연대 제안을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그러나 노회찬 후보가 " 사전투표 첫째 날인 7월 25일 전까지 단일화에 진전이 없을 시 자신이 후보사퇴하고 기동민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초강수를 내세운 것이 시발점이 되어 7월 24일 하루 만에 무려 세 곳의 지역구에서 새정련-정의당 간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지역구는 노회찬 후보, 경기도 수원시 정 지역구는 새정련 박광온 후보, 수원시 병 지역구는 새정련 손학규 후보가 각각 해당 지역의 새정련-정의당 단일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 단일화가 당대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12] 후보 개개인이 성사시킨 것이라 당 차원의 협력은 어려울...것 같았으나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및 문재인 의원 등이 동작구 을 노회찬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했고, 수원시 정에 출마했다가 단일화로 사퇴한 천호선 대표 또한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했다.

그러나 노회찬 후보는 낙선했다. 다른 지역 무효표와 비교할 때 대략 1,200표가 사퇴한 기동민 후보를 찍은 표로 추정된다. 나머지 지역구 후보들은 죄다 한 자릿대 초반 득표율에 머물렀다. 노회찬의 낙선으로 미래가 어두워진 정의당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으로의 합당까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합당이 성사되려면 민주당 새정치연합과 합당했을 때 새정치연합에게 지도부의 지분을 보장한 것처럼, 정의당 측에도 일부 지분을 보장하고 지역구 및 비례대표 공천도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험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일단 지도부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과의 합당은 없다고 부인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비록 선거에서는 전원낙선이라는 성적표를 받았으나 인지도 자체는 재보선 이후 부쩍 상승하였다. 7.30 재보선을 치른 바로 다음주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6.5%를 찍었으며 이는 2014년 정의당 최고 지지율이다. 또 12월까지 3~4%대에 머물러 있다. 2014년 초반 0%대에 머무른 적이 있던 걸 생각하면 상당한 상승세라 볼 수 있다.

6. 2015년

201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서울 관악구 을에 출마를 선언한 이동영 정동영 후보로 단일화 하고, 인천 서구·강화군 을, 광주 서구 을에는 각각 박종현, 강은미를 공천했다.

선거 결과 모두 낙선했지만, 여권 강세인 인천 서구·강화군 을에서 박종현 후보가 3%를 넘겼고, 광주 서구 을에서는 강은미 후보가 6%를 득표했다는 점에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보다 나아진 결과이다. 다만, 정의당이 출마한 두 지역구 모두 구 통합진보당계 후보들이 선거에 나오지 않아[13] 나온 결과일 수도 있기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상황.

그렇게 원내에 진입한 유일한 진보정당이 되었다. 재작년까지는 적은 당원 수로 인한 당비 모금과 펀딩실패로 재정난을 심하게 겪었지만, 2016년 총선 모금 펀드를 출범하여 하루만에 10억 이상의 펀딩을 모으는 기염을 토하며 빚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었다.[14] 새정치민주연합의 후신인 더불어민주당과의 야권연대가 붕괴되긴 했지만, 당 지지율이 작년에 비해 거의 두 배 이상 뛰면서 현상 유지는 그럭저럭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총선에서 무리 없이 야권 연대가 성사되고 통합진보당 깃발 아래 NL계열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했음에도 심상정은 간신히 당선되었고 천호선은 끝내 낙선하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단일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노회찬을 제외하고, 유일한 지역구 의원인 심상정 의원조차 다음 총선에서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15] 최악의 경우 지역구에서 전멸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정당 지지율은 2015년 11월 말의 여론조사도 대략 8% 정도이므로 어떻게든 비례대표 당선자는 3~4명 정도 나올 듯도 하나, 옛 통합진보당이 재창당될 경우 이 지지율도 뺏길 수가 있다.[16]

결론적으론 정의당은 노회찬, 심상정, 유시민, 진중권이라는 이름 있는 인사들은 여럿 있지만, 반대로 그 사람들을 제외하면 인지도든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만한 정책이든 내세울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17] 다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펼쳐지는 19대 대선에서 진보정당 후보로는 이례적으로 두 자리수 지지율을 기록하기 시작하였고, 조심스럽게 15% 이야기가 나오는 등 정의당의 정책과 이념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증가가 보이는 추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참여계, PD, NL과 같이 출신 정당별로 뚜렷하게 각을 세우던 모습이 많이 사라지고 정의당 출범 이후에 유입된 당원들의 증가로 통합진보당 시절과 구분되는 정당 조직이 서서히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 당직자의 말을 빌리자면 당원이 많이 늘어서 재정에 숨통이 트인 편이라고. 정의당에서 제작하는 팟캐스트 방송인 ' 노유진의 정치카페'의 인기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듯하다. 지금도 간간히 참여계와 타 계파와의 갈등이 발생하나 초기의 대립에 비하면 확실히 약화되었다.

6월 4일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와 함께 진보 4자 통합을 추진하기로 발표하였다. 늦어도 올해 안에는 통합을 마무리짓고 내년 총선에서 독자 후보를 낼 계획이라고 한다.

6월 9일 심상정 원내대표의 임기 만료로, 정진후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6월 10일에는 당대표와 부대표, 전국 의원과 대의원 등 당직에 대한 동시선거를 공고하였다. 일정은 6월 18일에서 19일 까지 후보등록을 하고 7월 6일부터 7월 11일 선출하며 결선투표가 진행시 7월 19일에 마무리된다고 한다. 투표 방식은 온라인과 현장투표로 진행되며 대표, 부대표 선거의 경우 마지막 날 미투표자에 대해 ARS 모바일 투표를 진행한다고 한다. 당 대표로서는 심상정 전 원내대표와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과 노항래 전 정책위원장[18] 조성주 전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이 출마의사를 밝히었다.

비례대표 의원들도 각자 지역구 사무소를 개설하여 총선 체제에 돌입하였다. 서울 은평의 김제남 의원, 수원 영통에 박원석 의원이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사무소를 개소했다.

6월 28일 노동당이 정기 당대회에서 통합 총투표안을 부결하였다. 이로 인해 노동당은 내홍에 빠졌고, 당 전체가 아닌 노동당 탈당파만이 통합에 참가하여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문제가 생겼다.

7월 6일 부터 치러진 당대표 선거에서는 조성주 후보가 2세대 진보정치 담론을 주장하는 등 여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7월 11일 공개된 당대표 선거 결과에서는 득표율 17.1%에 그쳤고[19] 노항래 정책위원장은 8.7%에 그쳐 3등과 4등을 차지해 결선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노회찬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각각 43%와 31.2%의 득표율로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되었다. 7월 13일 부터 7월 18일까지 치른 결선투표에서는 심상정 후보가 52.5%로 47.5%의 노회찬 후보를 역전해 정의당의 세 번째 당대표가 되었다. 주어진 2년의 임기 가운데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만큼 심상정 대표에게 당대표로서의 큰 책임이 요구될 것이다.

7월 6일부터 치러진 당대표 선거에 대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정의당/제3기 전국동시당직선거 문서를 참고.

당장 지지율은 상승세를 보였다. 줄곧 4~5%대에 머무르던 지지율이 7월 24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7%로 급상승한 것이다. 특히 전략 지역이라 볼 수 있는 호남 지역 지지율이 11%로 상승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이 분당이니 신당이니 혁신이니 여러 가지로 악재가 겹쳐있는 가운데 새로운 당대표 선출 효과로 충분한 이득을 보는 것 같다. 허나 8월 1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다시 5%정도로 돌아갔다. 일단은 컨벤션 효과[20]가 어느 정도 가라 앉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의당의 지지율이 상승세인 것은 분명해보인다. 8월 10일 <리얼미터> 주간정례조사에서 정의당은 1.1%p 상승한 6.6%2012년 10월 진보정의당으로 분리 창당한 이래 <리얼미터> 집계 최고 지지율을 기록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의 목표를 원내교섭단체 구성으로 잡았으며 국민모임, 평등사회네트워크, 노동정치연대와 4자 간 통합을 추진중이며 11월 안으로 통합된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07149.html

심상정 대표의 국정감사 발언이 화제에 오르면서 인터넷상에서 꽤 주목 받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6w0P1H82ME

2015년 11월 22일 드디어 4자 통합이 성사되어 진보 통합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상임대표에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공동대표로 국민모임 김세균 대표, 평등사회네트워크 나경채 대표가 취임했으며 당명은 과도기적 당명으로 정의당으로 하고 총선 이후 6개월 이내 당원총투표를 통해 새로운 당명으로 개정한다는 방침을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통합 결의문

2015년 11월 27일, 당원이 2만 명을 돌파했다. 이러한 당원증가는 총선 기간을 두고 늘어나는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의 유령 당원 증가와 다르게 진보 결집과 노동조합과의 연계로 일어나는 활동가들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 민주당계, 민주노동당계의 표밭이었던 호남, 광주지역에서의 당원들, 이른바 '풀뿌리 조직'들의 발돋움이 눈여겨볼만 하다.

2015년 12월 내년 예산이 통과된 후 일부 지역에 건 당 현수막이 논란이 되었다. 예산안 가결에 반대한 것을 통과에 기여한 것처럼 홍보한 것은 물론 자신들의 업적이 아니거나 심지어는 타 의원들이 발의하고 정의당 모든 의원들이 발의한 것까지 '정의당이 해냈다' 라고 현수막에 게시한 것이다. 내용들을 보면 효도예산, 철도예산, 교통난 해소 등 시민들이 진보정당의 치적으로 착각하기 딱 좋은 것들이다.

7.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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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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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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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간판급 정치인 중 하나인 노회찬 의원이 사망하는 악재를 맞았다. 이후 추모 여론이 일면서 단기적으로 가파른 지지율 상승을 경험하기도 했으나 그 추세가 지속되지는 않았다.

10.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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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보궐선거에서 진땀승을 거두며 노회찬의 지역구를 되찾아오는 데 성공했다. 한편으로는 선거제 개편을 위해 민주당 등과 공조했지만, 이 일환으로 조국 사태 당시 보인 옹호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11.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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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 등의 요인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으며, 이를 계기로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12.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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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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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연이어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당 안팎에 감돌던 위기감이 더 커졌다.

14.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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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정파 새로운진보 사회민주당을 창당하며 기본소득당, 열린민주당과 같이 개혁연합신당을 만들기로 밝혔고, 세 번째 권력 금태섭 전 의원 주도로 창당 준비 중인 새로운선택에 합류해 공동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당 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인 류호정 의원 역시 세 번째 권력 소속으로 새로운선택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14.1. 대규모 분당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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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에서 잇따라 참패를 겪은 이후 정의당의 방향을 놓고 당내에서 여러 계파가 싸우면서 시작되었다.

정의당 본진은 22대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과의 선거연합정당인 녹색정의당으로 당명을 바꾸며 공식 출범했고, 참여계의 새로운진보 사회민주당을 창당하고 더불어민주연합에 합류하였으며, 제 3지대로의 확장을 주장한 대안신당당원모임 세 번째 권력은 각각 미래대연합, 새로운선택으로 합류했으며, 결과적으로 새로운미래, 개혁신당으로 흡수되었다.

15.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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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과 함께 진보좌파 선거연합정당인 녹색정의당 추진을 선언했다. 이 방침에 반발한 당내 제3지대 계파 대안신당당원모임의 상당수가 집단 탈당하여 미래대연합에 합류를 선언했다. 이후 녹색당 인사들이 개별 입당 방식으로 합류하여 당명을 ' 녹색정의당'으로, 당색을 녹색과 노란색으로 바꾸면서 선거연합을 공식적으로 출범시켰다.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지역구 후보 17인 전원이 낙선하고, 정당 득표율 2.14%로 3%에 미치지 못해 비례대표 후보 역시 전원이 낙선하면서 원외 정당으로 전락하면서 정치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총선 패배의 여파로 오랫동안 정의당 및 진보정당의 대표 정치인이었던 심상정이 정계 은퇴를 선언, 지명도 높은 대중 정치인의 부재라는 뼈아픈 상황을 동시에 맞닥뜨렸다. 이후 선거연합 체제 종료에 따라 4월 27일부로 녹색당 인사들이 다시 탈당해 원 소속 당으로 복귀하였고 당명을 '정의당'으로, 당색을 노란색으로 환원하며 되돌아왔다.

정의당으로 되돌아온 뒤 실시된 2024년 5월 말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0%로 나타났다. 그 황보승희 의원의 입당으로 일시적으로 원내정당이 되었던 자유통일당에도 밀리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셈.[21] 개혁신당이 4%, 조국혁신당이 11%로 집계된 해당 조사에서 0%에 그쳤고, 실제로 6월 이후부터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기타 정당'으로 분류되어 설문에서조차 존재감이 밀리게 되었다.

한편 기존 지도부가 참패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2024년 5월 10~11일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해 당대표·부대표 선거 후보자 등록을 받았으나 아무도 후보로 나서지 않으면서 기간이 지난 뒤 후보 등록을 다시 받는 인물난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결국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4순위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권영국 변호사가 당대표 선거에 단독으로 입후보했으며, 역시 제22대 총선에서 경북 경산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엄정애 전 경산시의원과 비례대표 의원 7순위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한 문정은 전 광주시당 부위원장이 부대표 선거에 입후보했다. 세 후보는 5월 26~27일 진행된 당원 투표에서 각각 93.2%, 90.2%, 88.4%를 득표하며 무난히 정·부대표로 당선되었고 28일 이·취임식을 통해 취임하였다. 새 지도부는 현장과 거리로 나서는 진보정치를 천명하며[22] 2년 뒤 있을 지방선거를 준비하겠다고 하였다.
0석 정의당, "우리는 이래서 망했다" (뉴스토리) / SBS
참담한 정의당…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2024년 6월 30일 SBS '뉴스토리' 코너를 통해 자당이 왜 제22대 총선에서 원외로 밀려나는 참패의 성적표를 받았는지를 자체 분석 및 평가하는 24분가량의 영상이 게시됐다. 다만 영상 내내 "우리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옳은 말'을 했으나 양당제 심화, 제도적 한계, 진보 의제에 대한 백래시 속에 더 선명하고 확실하게 노선을 정립하고 밀고 나가지 못해 망하게 됐다"는 시각을 견지[23]했다.

2024년 8월 26일 중앙당사를 구로구로 이전한 뒤 개소식을 열었다. 김준우 전 녹색정의당 대표가 정의당TV 유튜브에서 "김준우의 응급실" 라이브를 진행했는데 다행히 부채가 31억원에서 29억원 수준까지 감소했다고 밝혔다. 장혜영 전 의원[24], 강은미 전 의원[25], 조귀제 노동부대표[26], 정의당내 정치단체 전환[27] 등에서 부채 상환을 위해 큰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한편 현장으로 찾아가겠다는 권영국 대표의 선언처럼 8기 지도부는 취임 100일 동안 무려 전국의 65곳의 투쟁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정의당의 새 당사 개소식에 참석한 노동계 인사들이 "요즘 투쟁 현장에 정의당이 없는 곳이 없다"고 평했을 정도.

다만 이런 긍정적인 평가와 달리 당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못한데 22대 총선 참패 이후에 심상정이 정계 은퇴 선언을 하고 배진교 전 국회의원, 윤소하 전 국회의원 등이 탈당하거나 탈당을 준비하면서 아무래도 당세가 위축된 현 상황에서 몰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으며, 게다가 남은 당권파 특성상 경쟁정당인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진보당과 달리 민주당 지지층의 교차투표도 받을 가능성은 0로 수렴하고, 정치혐오층에게 선택받을 유인도 없는 것이 현실이기에 자체적인 지지표로만 선거를 치뤄야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직전 총선에서 몰락한 민생당과 달리 비교적 분쟁 없이[28] 현장중심의 신 지도부를 세우고 주요 정치인[29]들이 다시 지역당직을 역임해 당의 틀 안에서 활동을 벌여 나가고 있다.

물론 이와 별개로 정의당은 광역의원 선거 이상에선 공천이 어렵고, 기초단체장 4곳이 걸렸던 2024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 공천하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 있을 선거를 위해 기초조직을 정비해서 회생을 노리고 있다.

16. 2025년

2025년 재보궐선거에는 해당 보궐 선거구에 정의당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강한 마포구 사선거구[30]가 있고, 역시 유력한 지역인사가 존재하는 양산시 마선거구에 참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재보궐선거 특성상 당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만약 해당 선거에서 선거보전비용의 절반(10%)라도 받는다면 2023년 하반기 보궐선거에서부터 진보당에게 밀리기 시작한 서울 지지세를 재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선거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다면 또다시 내분이 발생하여 민생당처럼 당 자체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이로부터 또 얼마 뒤 치르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당의 사정을 감안하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이며, 여기서 위에 언급한 경쟁정당과의 최후의 결전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외로 나간 이후로 존재감이 극히 미미해진데다 원내 시절에도 조직세가 진보당에 밀려왔기에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현 상황상 기초의회에서라도 어느정도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가 될 전망이다.


[1] 이 날은 진보신당연대회의 노동당으로 당명을 바꾼 날이기도 하다. [2] 천호선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지만, 학생운동 및 민주화운동을 했던 경력은 있다. [3] 정의당 자체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에소 탈당파를 중심으로 창당된 정당이기도 하기에 당원의 다수가 당론 채택에 반대했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4] 당시 현역 [5] 울산시장 + 인천 남동구청장, 인천 동구청장, 경기 과천시장 [6] 수도권 최초 기초단체장 두 명[31].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으로 당선 되었었다. [7] 조승수 26.4%, 김기현 65.8% [8] 지역구 10명, 비례대표 1명 [9] 최소 12석 ~ 최대 18석 [10] 노심조가 노동당에 사과해서라도 통합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11] 영통구 [12] 물론 정의당은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단일화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13] 광주 서구 을은 조남일 후보가 중도 사퇴했다. [14] 과거 국민참여당이 펀드빚 8억 때문에 마비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10억이란 돈은 정의당 같은 작은 정당에겐 어마어마한 액수다. [15] 19대 총선 당시 심상정 의원은 새누리당 손범규 전 의원에게 개표 97%까지 200표 가량 뒤지고 있었으나 막판 해외부재자 투표자 개표에서 대거 득표하며 170표차로 극적인 역전을 거둬 당선되었다. 19대 총선 최고의 이변 중 하나로, 재선 안정권은 절대로 아니다. 다행인 점이라면, 20대 총선의 지지율 추이는 10%정도 심상정이 리드하고 있다. [16] 이 부분은 민중연합당이 창당되면서 현실화 되는 듯 했으나, 오히려 PD, 비주사 NL계의 결집으로 정의당 지지율은 오히려 민중연합당 창당 이후로 상승세이다. [17] 20대 총선에 아예 의석을 전부 잃고 정당 자체가 폐기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추측도 있었다. 다행히 6석을 얻어 폐당이 아니라 의석수 증가까지 된 것을 보면 일단 미래가 있긴 한 듯. [18] 참여계 출신 [19] 많은 사람들이 뉴비라고 생각하지만, 조성주는 뉴비가 아니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최순영, 홍희덕 의원실에서 일을 해왔고, 통합진보당 시절에는 최순영과 홍희덕 등 당내 유력인사들을 멘토단으로 삼아 청년비례대표에 도전했다. 조직표 싸움에서 밀려 김재연에게 패배한 탓에 다시 무명생활을 했을 뿐이다. [20] 전당대회나 당대표 선발같은 정당의 이벤트에 지지율이 증가하는 효과 [21] 총선 당시에도 정의당의 비례 득표율은 자유통일당에 살짝 못 미쳤다. [22] 어찌보면 노동당과 비슷한 행보를 걷기 시작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초심으로 돌아간 셈. [23] 장혜영 전 의원 등 신좌파- 진신류 계열 인사들은 " 페미니즘 성소수자 인권을 당의 의제로 내세운 것은 옳은 선택이었으나 그 방식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이라고 진단한 반면, 김준우 녹색정의당 공동대표 등 당내 좌파 의견그룹 ' 전환'과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등 노동계 원로 인사들은 "노동과 페미니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친민주당과 반민주당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어찌보면 당 내부에서도 어느정도 의견차가 있었던 것이다. [24] 22대 총선 이후 후원이 쇄도해 후원 계좌가 한도초과로 닫히기도 했었다. 당시 선거 비용을 제하고 당의 부채를 위해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김준우 전 대표와 함께 정의당의 "정의당 119 부채상환특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25] 집안의 오랜 금붙이를 팔아 특별당비를 냈다고 한다. [26] 만기된 적금을 특별당비로 냈다고 한다. [27] 방송에서는 전환에서 활동 중인 정의당의 전 부대표 김윤기와 전화통화를 진행했다. [28] 사실 당연한 게 정의당에서 노선 문제로 갈등을 겪은 인물들이 전부 탈당했고 거의 같은 계파 사람들만이 남아 '현장으로 나가는 선명한 진보정당'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 대략 2019년 이후 노동당, 이수봉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의 민생당과 비슷한 상황이다. [29] 강은미, 장혜영, 여영국, 이은주 등 전직 국회의원, 기초 및 광역의원들 등 [30] 성산동, 망원동, 연남동 선거구로 세 지역 모두 20대 여성 1인 가구 비율이 높아서 정의당 지지세가 높다. 서울에서 진보당에 비해 조직력이 앞서는 사실상 유일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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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배진교 남동구청장, 조택상 동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