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22:29:50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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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2.2. 20세기2.3. 21세기
3. 갈등4. 여담5. 관련 문서

1. 개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관계를 설명한 문서. 두 나라는 민족적 동질감도 가지고 있고 문화도 언어도 같지만 역사적, 정치적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역사로 관계를 따지자면 스리위자야로 부터 두 나라의 역사적 관계가 시작된다. 스리위자야가 멸망한 이후에는 마자파힛 제국 믈라카 술탄국 조호르 술탄국의 지배를 받았다.

양 지역은 인도의 영향으로 불교 힌두교를 받아들였고 중세 이후 이슬람교도 받아들였다.

한때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를 삼았을 당시, 말레이시아 역시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다.

2.2. 20세기

말레이시아 영국의 지배를 인도네시아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양국은 일본 제국의 습격을 받았고 일본의 군정이 실시되었다. 일제 패망 이후 잠시 영국 네덜란드의 지배령이 되었지만 양국에서는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각자 다른 과정으로 결국 독립국의 지위를 얻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는 독립의지를 보이자, 영국이 어느정도 받아주는 분위기여서 그럭저럭 독립이 됐는데,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독립을 안 시켜주려고 해서 독립전쟁을 했다. 웃긴건 영국은 자기 식민지 말레이시아의 독립은 이해했고 내분에 관여하는 정도였지만, 인도네시아의 독립은 오히려 반대해서 거꾸로 네덜란드편을 들어 전쟁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만들어준 나라는 미국이었다. 군사패권국인 미국이 영국이고 호주고 다 쫓아내고 계속 혼자 전쟁 중인 네덜란드에게 독립시키라고 압박을 가했다.

말레이시아가 독립 후에도 장기간 혼란을 겪어 안정된 정부를 수립하자, 당시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정권은 말레이시아를 영국의 괴뢰국가, 신식민지[1]라고 비난하며 자카르타 말레이시아 대사관에서 폭력시위를 하는등 양국간 관계가 긴장되었고, 이는 단교 및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대치로 이어지며 1963년부터 1966년까지 군사적 충돌을 했다. 당시 수카르노는 말레이시아령이었던 사바 사라왁을 병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후 인도네시아에 수하르토 정권이 들어서며 관계가 정상화 되었고, 언어가 잘 통해서 여행하기도 좋고 인도네시아 일부 지역들과 문화도 유사하다보니 민간교류가 빠르게 늘었다. 말레이시아로 일하러 가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생긴 것도 이때다.[2]

2.3. 21세기

말레이시아 정부는 수마트라 섬, 보르네오 섬의 칼리만탄에서 산불로 인한 연무가 발생되자 산불 진압을 하라며 항의를 했다. #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김정남 피살 사건때 용의자 2명[3] 중 한명이 인도네시아인이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의 필사적인 외교노력으로 인도네시아인 용의자는 2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무죄이므로 2년간의 구속에 대한 보상금도 받았다고 한다. 반대로 베트남인 용의자는 똑같이 2년을 갇혀 있었지만, 베트남 정부가 별다른 노력을 안해줘서 사법거래형태[4]로 상해죄를 인정하여 상해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기에 보상을 받지 못하였고 범죄전과자로 남았다. 사실 두사람은 같은 형태로 속았기에, 독극물인지 모르고 "유튜브용 기름바르기 몰카"인 줄 알고 발랐던 것이라 한쪽이 무죄면 다른쪽도 무죄인데, 말레이시아 사법부와 검찰 측이 인도네시아인만 우대해 준 것은 외교관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2022년 1월 28일에 인도네시아인 밀입국자들을 태우고 말레이시아로 가던 선박이 전복돼 여성 6명이 사망했다. #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3국이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하면서 해적의 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

3. 갈등

같은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계의 정통성을 두고 다투면서 수카르노 재임 시절에는 동말레이시아의 북 보르네오(동말레이시아의 사라왁, 사바 주) 영토 분쟁이 군사 충돌로도 이어졌다. 현재도 간혹 해상에서 무력 충돌도 벌어진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불법체류자에 대한 태형 집행 등 강경 대처로 국민감정이 악화되기도 한다.

현재도 스포츠 시합에서 두 나라 간 경기가 벌어지면 양국 응원단들 사이에서 패싸움도 벌어진다. 총 경제규모의 경우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보다 인구가 9배나 많기 때문에 인도네시아가 앞선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인도네시아의 3배에 달하기 때문에 1인당 경제력은 말레이시아가 더 잘 산다. 그래서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가정부와 일용직 등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말레이시아인들은 인도네시아인들을 거지나 가난뱅이라 욕하고 인도네시아인들은 말레이시아인들을 졸부라며 서로 까대는 경향이 짙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더욱 부유한 말레이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인에 대한 차별 대우도 횡행하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서로를 적국으로 여기며 전투기나 수송기, 전차, 장갑차, 순양함 같은 무기들을 미국이나 영국, 독일, 러시아 등 세계 군사 강국들로부터 구입하고 전투기 등 무기 수명 연장 사업에 막대한 양의 돈을 아끼지 않는 등 유사시 전쟁을 대비하고자 군비 경쟁을 벌인다.

일단 양국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사이에 끼어있는 중립국 싱가포르가 중재한다.

아세안의 제2공용어를 두고 양국간에 갈등이 생겨났다. #

4. 여담

2019년에 한-말레이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어로 인사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두 국가의 언어는 마인어 문서에서도 보듯 언어학적으로 두 언어는 거의 같은 언어이며, 국어사전을 각국 국어학교수끼리 공동편찬을 할 정도로 표준어가 매우 비슷하다. 나쁘게 봐도 사투리 느낌에 가까우며, 그것도 제주도 사투리도 아니고 충청도나 전라도 등 육지로 이어진 지역 사투리 수준으로 가까운 언어이다. 영국식 영어 미국식 영어보다 더 차이가 없는 셈이다. 오죽하면 인도네시아인과 말레이시아인은 사전 언어교육 없이 상호국가를 여행하며, 말레이시아인이 인도네시아에서 만든 국어사전을 읽어도 이해할 정도이다. 비유하자면 "국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대신 "국민 여러분 안녕하세유." 말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외국인이라면 충분히 이해받을 일이다. 오히려 현지에서는 오후 시간이 아닌데 오후 인사를 했다는 쪽이 크게 느껴지는 실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는 조선일보의 억까에 가까운 논란.

5. 관련 문서



[1] 이는 영국이 말레이시아는 독립시켜놓고 인도네시아 독립은 못하게 방해한 것에 대한 악감정이었다. 말레이시아가 공산세력의 쿠데타 시도 등 복잡한 시간을 겪고 친영국 친자유주의 성향의 정부로 안정되자 "저쪽 정부세력은 영국 앞잡이라서 영국 허락받고 정부 운영하는 것일 거다. 그러니 전에 우리 독립을 영국이 방해할때도 저 세력도 보조적 역할을 했을 거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2] 말레이시아의 소득이 인도네시아보다 높다. [3]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따로따로 접근하여 독극물을 발랐다. 사건 순간에도 둘다 "쟤는 누구지? 아 나한테 얘기는 안했지만 나말고 한명 더 섭외해서 연타로 발라서 영상을 더 웃기게 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했고, 직후에 바로 둘다 서로 다른 쪽으로 도망가서 죽은 것도 못 봤다. 서로 사건후 대화하지 않은 이유는 그전부터 "기름 바르면 무슨 상황이 됐건 지체없이 거기서 먼 곳으로 도망가라"라고 지시받았고, 그전부터 수개월간 독극물이 아닌 진짜 기름이나 끈적한 로션 등으로 행인(이것도 북한의 지시를 받은 연기자로 추정됨)들 얼굴에 바르자마자 튀는 연습도 지시자의 주도하에 많이 해봤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습할때도 기름이 손에 묻은게 불쾌하긴 했기에, 끝나자마자 화장실에서 씻는 건 했었다. 서로 다른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감옥에서도 어쩌다 한번씩 지나갈때 한두번 본 게 다이고 서로 웃으며 Hello라고 말하고 끝났다고 밝혔다. [4] 말레이시아는 사법거래가 가능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2년이 되어갈때 검사를 만나고 온 변호사가, 상해죄 유죄를 인정하면 선고가 구속 2년이 되는 시기 근처이니 공소장도 살인죄 없애고 상해죄로 바꾸고 판사한테도 합의해서 징역 2년을 주고 며칠안에 금방 풀려나게 끝내겠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풀려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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