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Lee Chan-h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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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 1988년 10월 1일[1] ([age(1988-10-01)]세) |
경상남도
마산시 합포구 (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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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어머니, 남동생(1992년생) |
종교 | 무종교( 무신론) |
신체 | 168cm |
병역 | 병적 제적 및 병역면제[2] |
신분 | 기결수 ( 2014년 4월 9일[3] ~ 2054년 4월 8일) |
범죄 및 형량[4] | |
징역 40년[6] | |
출소까지 D[dday(2054-0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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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주범.2012년 9월에 입대하여 육군 제28보병사단에 배치된 뒤 262포병대대에서 977포병대대 의무대로 전출 후[7] 해당 사건을 일으켰다.
2. 생애
2.1. 입대 전
1988년 10월 1일, 경상남도 마산시(現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자영업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모범생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에는 학생회장을 맡기도 했다. 중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학교 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출하고 난 뒤에는 범죄자의 싹수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소위 ' 비행 청소년', 조금 껄렁껄렁한 아이들과 자주 놀았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종종 싸움을 하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 일진'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사회봉사 징계도 수 차례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불량한 행적은 대학생 시절까지도 이어졌다. 고교 동창생이나 대학 동창생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허언증과 허세가 심했다고 한다.[8] 심지어 아버지가 부산에서 유명한 조폭인 줄 알았다는 동창생들도 여럿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찬희의 친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입대 이전 3년 동안 친척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며 4,000만 원을 모았다고 한다. #
2.2. 군대 시절
2012년 9월에 뒤늦게[9] 대한민국 육군 현역 운전병으로 군입대를 하였다.이등병 시절에는 262 포병대대에 있었는데 뒤늦게 입대한 탓에 선임들로부터 할배라고 불리며 멸시를 당했다고 본인은 주장했다. 또 짐을 운반하다가 손가락 골절을 당했는데 이 사실을 숨기고 제설 작업에 임하다 선임인 황모 상병에게 제설 못 한다고 욕 먹고[10] 연대 이등병 캠프에서 연대장한테 이런 부대에서는 못 산다는 마음의 편지를 부쳐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977포병대대로 전출 뒤 구급차 운전병으로 재배치됐다.[11] 사실 병사인데도 자대 배치 후 다시 전출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좋게 보지 않는 육군의 풍토상 그가 후방 부대에서도 취급이 좋았을 거라고 보긴 힘들다. 인사이동이 잦은 장교[12]나 함정이나 격오지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하면 육상 부대 전출권이 생기고 실제로 많이 이동하기에, 수병 전출자에 대한 편견이 없는 해군에 비해 육군 병들은 복무기간도 짧고 수도 많다 보니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전출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육군에선 부대 해편 등으로 인해 자기 과실이 아님에도 전출 온 병사도 취급이 안 좋은 부대도 많았다.
하지만 신병 시절에 무조건적인 피해자였다고는 할 수도 없는 것이 당시 이찬희와 같이 복무했던 동기의 증언에 의하면 선임에게 무례한 발언을 했다거나[13]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선임들 앞에서 자신이 싫어하는 선임의 배때지를 쑤셔 죽이고 싶거나 생활관을 불태우고 싶다는 뒷담을 하기도 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
하지만 전출 후 시간이 지나 선임들이 전역하고, 그가 부대의 왕고가 되면서 후임병들에게 가혹행위를 가하기 시작했다. 가혹행위가 지속되면서 서열이 낮은 쪽으로 가혹행위의 대상이 옮겨갔고 새로 전입 온 윤 일병이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심지어 윤 일병을 폭행하면서 다른 병사들에게 '말 안 들으면 윤 일병처럼 맞는다'고 협박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찬희가 군생활 시절 폭행한 병사 중에는 윤 일병 사망에 가담한 공범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는데, 폭행 대상이 옮겨가면서 덜 맞게 된 다른 병사들이 자기가 덜 맞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 또한 윤 일병을 폭행하는 결과를 낳았다.[14] 중요한 것은 이찬희는 수송부에서 전출 온 "아저씨"의 신분이었으나 의무대 병들과 계급형성을 하고 간부마저 그의 거짓말과 가스라이팅에 경도되어 설설 기었다는 점이다.
윤 일병을 향한 가혹행위가 지속되면서 그의 가족들이 면회를 오거나 종교활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 이러한 상황에서도 모범병사 표창을 받은 적이 있으며, 윤 일병이 사망하기 직전 그로 인한 특별휴가까지 받았다. 윤 일병에게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을 참조.
3. 국군교도소 내 가혹행위
이유 없이 때리죠. 그니까 먼저 자기가 말을 걸어요. 계속 이름을 불러요. 엄청나게 무서웠죠.
'예, 예' 이러면 '내가 X같냐?' 이런 식으로. 또 눈 충혈이 되고 얼굴 시뻘겋게 돼서 목 조르죠. 조르고 때리고.
윤 일병도 너처럼 똑같이 대답을 안 했다고.
- SBS 궁금한 이야기 Y와 인터뷰한 피해자의 증언
'예, 예' 이러면 '내가 X같냐?' 이런 식으로. 또 눈 충혈이 되고 얼굴 시뻘겋게 돼서 목 조르죠. 조르고 때리고.
윤 일병도 너처럼 똑같이 대답을 안 했다고.
- SBS 궁금한 이야기 Y와 인터뷰한 피해자의 증언
국군교도소 수용실은 위의 사진처럼 순 시멘트 바닥에 아우슈비츠 같은 철문 형태가 아니라 외부로 통하는 창문 2개, 내부로 통하는 창문 2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창살문이고 논산훈련소처럼 침상이 있고 개인별 서랍장이 있다. |
결국 참다 못한 피해자가 고소하면서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찬희는 또 다시 군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
게다가 그는 국군교도소 안에서 나이부심+형량부심을 부렸고[17] 자신이 저지른 가혹행위로 숨진 윤 일병을 모욕하다 못해 유족까지 조롱하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당시 재소자가 언론에 이야기했는데, 윤 일병을 욕하는 말을 한 두 번도 아니고 진짜 많이 했다고. 목격자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또 윤 일병의 어머니가 이찬희에게 사형이 구형되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인터뷰를 했는데 그 뉴스를 보며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욕을 했다고 한다. 목격자가 말하길, 'TV 속으로 들어가서 죽일 것같은' 표정이었다고. 아래는 피해 수감자가 들은 이찬희의 발언이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윤 일병 사건 주범인 이찬희야. 만나서 반갑다.
윤 일병 걔도 너처럼 대답을 잘 안했는데, 너도 걔같다. 너도 당해볼래? 너도 걔처럼 해줄까? 걔가 죽어서 내가 지금 이렇게 됐다.
감옥에 간 후에도 그의 거짓말하고 허세 부리는 버릇[18]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자기 어머니는 대학교수이며 아버지는 큰 룸살롱을 운영하고 월 수입이 몇 십 억이라느니, 프랑스 육군 대학교를 나왔고 벤츠 S클래스 승용차를 갖고 있다느니, 예쁜 여자 사진을 보여주며 여자친구라고 주장하고 장인어른이 경찰인데 빨리 나오라고 변호사를 4명이나 선임해 줬다느니,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친구'가 보내는 편지들도 있어서 다른 수감자들은 그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들이 이찬희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그가 2심 재판을 받느라 교도소를 비운 때였다. 서신들을 잘 살펴보니 여자친구에게서 편지가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전부 어머니의 편지였으며, 여자친구가 면회 와서 이러이러했다는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이나 한 적도 있는데 교도관들에게 물어보니 교회에서 봉사 차원에서 온 것이었고, 자기가 피아노를 10년이나 쳤다고 얘기했는데 정작 교도소 안에 있는 피아노를 쳐 달라고 하면 내가 45년 장기수[19]인데 지금 피아노 치면 사람들이 날 뭐라고 생각하겠느냐는 핑계를 대며 '나는 다시는 피아노에 손을 안 대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느니 하는 구구절절한 이야기까지 하며 보여주지 않는 등이있다. 그런데 말하는 게 정말 진짜 같았다고 한다.
사실 그는 군대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소위 말하는 관종이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매우 부풀려서 하고(실제로 자신의 아버지 차량은 굉장히 오래된 구형 쏘나타였으나 신형 벤츠 S클래스를 탄다고 말하고 다니는 등의 행동), 후배들에게 과시하고 과격하게 대하고, 자기가 잘 나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마치 일진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는 '일진을 하고 싶어 했던' 사람에 더 가까웠다고 한다.
가면이 만들어진 거죠. 사실 그 어떤 시기부터 다른 사람한테 공포를 주기 위해서는 그런 악마 가면을 쓰거든요. 안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미약한 존재인데 그거를 보상받기 위해서 무서운 가면을 일부러 계속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늘 계속 거짓말을 하고, 눈앞에서 거짓말하는 게 밝혀지면 또 다른 임기응변을 통해서 또 하는 거죠.
-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자기 인생 이야기도 해주고 일견 착한 형처럼 보였던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쉽게 말해 자기보다 '약해 보이는' 수감자가 새로 들어오자 본색을 드러냈다. 말도 안 되는 사소한 트집들로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고 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는데 쉽게 말해 자기가 수감된 원인이 된 그 행동을 그대로 똑같이 반복한 거다. 그나마 그는 몇 달만에 출소해서 정말 심각한 일까지는 가지 않았다.
또 국군교도소 내에서는 라면 취식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찬희는 라면을 좋아해 몰래 먹는 건 물론[20] 흉기로 사용될 수 있어 반입이 엄격히 금지된 가위나 손톱깎이도 쉽게 빌리는 등 수감자 관리가 매우 허술했다. 특히 이찬희가 가위를 가지고 들어갈 때 다른 수감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고, 24시간 내내 경계했다고 한다.[21] 국군교도소 안에 진정함(鎭定函)이 있지만 아무도 그 존재를 알려주지 않았을 정도니 결국 국군교도소의 관리 소홀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 또한 같은 방 수감자들에게 자기 판결문을 보여주며 억울하다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소식들을 들은 윤 일병의 유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 뉴스가 나오고 나서 온 가족이 잠을 못 이루고 정말 힘들어했다고 한다. 잊혀질 만하면 드러나는 사건에 가족들은 또 한 번 상처가 헤집어지는 고통을 받고 말았다. 마침내 어머니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이찬희를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 참고로 윤 일병의 어머니는 이찬희와 유모 하사를 제외한 나머지 가담자들을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3.1. 수감자 관리 논란
이로 인해 국군교도소의 허술한 수감자 관리에도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수감자 관리를 군사경찰(당시 헌병) 간부들이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군사경찰 병들이 관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찬희가 다른 수감자에게 위협하고 소리지르고 욕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심지어 창문 너머로 피해자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그냥 지나갔다고 한다. 병 입장에서 보면 본인은 의무 복무를 하는 상황이고 권한도 별로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찬희를 관리하려고 하지 않았음이 명백한데 어떤 분야에서든지 문제가 생겼을 경우 징계를 받는 등의 관리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들도 쉽게 건의 등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별 다른 조치 없이 그냥 말로만 '그러지 마라, 앞으로 사이 좋게 지내라'고만 하고 돌려보내면 그 뒤로 더욱 심하게 당할까 봐 그랬다고 한다.원래 이런 문제 때문에 교도병은 수감자와 적극적으로 접촉하지 않고 직접적인 관리는 부사관급 이상의 교도관이 맡게 되어 있지만 그동안 병 계급으로 이찬희처럼 초장기형을 받은 사례가 없었다 보니까 이런 내무부조리가 묵인된 측면도 있다. 사실 명목상 적극적인 접촉은 부사관이 하게 되어 있지만 교도소 내에서 적지 않은 통제를 근무병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헌병의 경우도 재판 진행 상황 같은 중요한 건에 대해 대화를 하지 않을 뿐이고 충분히 수용자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한다.
유기징역의 상한선이 늘면서 법조계에서는 무기수들의 가석방이 봉쇄되는 걸 막기 위해 장기 징역의 가석방 기준을 현재의 80% 안팎에서 50~60% 정도로 완화하고 무기수도 과거처럼 가석방 자격 부여 시점에서 +10년이 아니라 그냥 자격이 부여되면 가석방을 시켜 주는 쪽으로 가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찬희처럼 대형사고를 치는 자들 말고 얌전히 지내는 자들의 경우다. 그런데 국군교도소 수감자는 사형수[22]와 장교나 장기부사관, 군무원 정도를 빼면 전원 1년 6개월 이하의 실형을 선고받은, 즉 단순 폭행사범이나 가혹행위범, 성추행범 혹은 중대한 군기 위반 행위자 등 소위 '잡범'이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데다 어쨌건 빨간줄을 긋더라도 빠른 사회 복귀가 가능하기에 막나가기 어렵다는 점을 이찬희가 악용했다는 것이다. 원래 장기수는 미래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교도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형수가 그나마 교도소 내에서 통제되기 시작한 게 역설적이지만 사형 집행이 동결되고 나서 이들이 사형은 당하지 않지만 교도소에서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고분고분해진 1998년 이후의 일이고 무기나 20년 이상 받은 수감자들이 되려 흉악 범죄를 저지른 조폭들조차 감히 건드리지도 않는 악질인 경우가 많다.
방장도 이들을 못 손대고 그냥 사고 못 치게 막는 수준이며 대부분 독방에 수감되고 교도관들도 일반 수감자들과는 태도를 달리한다. 그 흉악범들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존재인데, 잡범들을 가둬 놓는 교도소 혼거방에 넣었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뻔하지 않을까? 이찬희는 그야 말로 '제왕처럼 군림'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으로 확인되긴 했지만 지적장애가 없었다고 해도 결국 똑같이 당했을 것이다. 별 볼 일 없는 찌질한 허세쟁이 나부랭이가 폐쇄적인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제왕처럼 군림하며 폭군이 되어 더욱 그 폭력성과 거짓말을 증폭시켰던 것이다. 이 와중에 이찬희는 피해자 중 한 명을 맞고소한 사실이 밝혀졌다. # 하지만 당시 목격자들은 전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고, 심지어 같은 방 수감자에게 허위 진술까지 요구한 것이 밝혀졌다. 그나마 수감자들의 양심 수준이 내부고발자를 부대 막내보다 못하게 취급하는 인간들보다는 나은 편이었는지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고소당한 피해자는 지적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문제도 있다. 피해자의 지능이 떨어져서 대응을 제대로 못 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보통 이런 상황에 내몰리면 지능이 낮건 높건 피해자의 심리상태가 되면서 결국 이찬희 같은 악마들에게 당하게 되어 있다. 즉 피해자가 지능도 낮아서 대응을 못 한 것이지 지능만 낮아서 대응을 못 한 것이 아니다. 이 건도 황당한 것이 그가 국군교도소에 들어갈 당시 피해자의 지적장애를 처음 파악한 것이 피해자의 국선변호사였다. 주먹구구식 입대 검사 탓에 입대 시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은 물론, 교도소 입소 전의 복무 기간 중에서도 복무 부적합자임을 파악하지 못한(혹은 은폐한) 것이다. 물론 보통 알려진 지적장애인은 아니고 경계선 지능으로 추정되지만 그럼에도 적응을 못 한 것은 마찬가지다. #
3.2. 판결
군인권센터의 브리핑에 따르면 언론에서 말한 피해자는 총 3명이지만, 군인권센터 자체 조사에서 2명이 추가로 피해를 입은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이찬희는 교도소 내 가혹행위로 독방으로 이감되었다. 2015년 10월 28일, 국방부 검찰단은 이찬희를 교도소 내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상습폭행, 강요) 등의 혐의로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기소했다. # 검찰이 기소한 죄명은 총 7가지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강요, 협박, 강제추행, 강제추행 미수, 위력행사 가혹행위, 모욕, 무고... 군검찰은 이찬희에게 30년을 구형했다. #
2015년 12월 30일, 1심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국군교도소 동료들에게 폭행과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인정해 이찬희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보다 많이 감형한 이유에 대해서 "이찬희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모욕과 협박 등 혐의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제출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2015년 10월 29일, 대법원이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재판을 파기하고 고등군사법원에 돌려보내게 되면서, 파기환송심에서는 해당 사건을 윤일병 사건과 병합하여 통합심리하게 되었다.
검찰은 이찬희 병장이 극단적인 인명경시를 보여줬으며 앞에서는 반성한다면서도 국군교도소 수감자를 대상으로 폭행 사건을 또 저질러 교화의 여지가 없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2016년 6월 3일, 고등군사법원은 이찬희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2016년 8월 25일, 이찬희는 징역 40년이 너무 무겁다며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나이, 성행, 환경, 가족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기록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들을 살펴보면 징역 40년을 선고한 것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그의 상고를 기각해 형이 확정되었다.
4. 판결 후
이찬희는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된 후 군적에서 제적되어 민간인이 되어 법무부 교정본부 산하 교도소에 수감되어 복역 중이다.2021년 7월, 민사소송에서 윤 일병 유가족 중 부모에게 각각 1억 9953만 원, 누나 2명에게 각각 500만 원, 총 4억 9천 6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 다만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패소하여 항소할 경우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이찬희는 2054년에 출소 예정이다.[23] 이 때 이찬희는 만 65세가 되는데 남들은 대부분 정년퇴직할 나이에 출소하기 때문에 사실상 이찬희의 인생은 끝났다. 세월이 오래 흐른 뒤라서 그의 범죄, 수감을 사람들이 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전과를 떠나 교도소에서 40여년간 사회생활 경력이 없으니 일용직 이상은 하기 어렵다. 하다 못해 계약직도 4대보험을 징수하려면 이력서를 조회한다. 게다가 일거리를 잡는다고 해도 이찬희가 자신의 범죄로 인해 국민들한테 신원이 알려진만큼 그를 기억하고 알아본 사람들에 의해 사적제재를 당할 가능성도 있기에 이찬희는 40년 후 감옥에서 석방된다고 해도 명이 다할 때까지 사실상 남은 인생 평생을 극심한 빈곤을 겪게 되는 백수로 살아야 하니 차라리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생을 보내고 마감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나을 지도 모른다.[24]
5. 기타
- 공범들은 2심 기준으로 이 모 일병을 제외하고 전부 징역 10년 이상을 선고받았으나, 2019년~2021년을 전후로 이미 출소했다고 한다.
- 웹툰 < 뉴 바이블> 50화에는 실존 인물 이찬희의 이름을 비튼 '이찬히'라는 이름의 인물이 등장했는데, 영향을 받은 실제 인물이 저지른 사건처럼 국군교도소에서 사건부심으로 동료 수감자들에게 갑질을 하려고 하지만 갑자기 동료 수감자들이 우르르 나가게 되면서 교환죄수라는 명목으로 들어온 제이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후임에게 했던 가혹행위를 그대로 되갚음으로 당하고[25] 마지막으로 들어온 제이에게 목숨을 구걸하나 결국 머리가 깨지면서 사망한다.[26]
- 체구가 왜소한 편이다. 특히 키는 168cm 이하로 추정된다.
- 유영철과 정남규가 2000년대부터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마 캐릭터의 모티브가 되었듯 이찬희는 2014년 이후 군 배경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조리 선임의 모티브가 되었다. < 666부대>의 김창식, < 군검사 도베르만>의 마범락 병장, < D.P.>의 황장수 병장, 동명의 원작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해서 나온 드라마인 < 신병>의 강찬석 상병은 실존 인물인 이찬희에서 따 온 부분들이 많다. 그 외에도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유정우 에피소드 중 일병을 죽인 진범인 '오동환 병장'도 여기서 따온 것 같다.
- 장삐쭈의 신병에 나오는 전대한과 외모가 닮았다. 아마 이찬희에게서 따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찬희와 마찬기자로 후임들에게 부조리를 저지르는 불량 선임으로 나온다. 후에 영창 징계를 받고 9박 10일을 가게 되며 후임에게 외모가 낑깡 닮았다며 까이는 건 덤.
[1]
출생일이
국군의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최악의 범죄가 된 사건 중 하나를 일으킨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2]
대한민국 육군 병장
불명예 전역
[3]
출처
[4]
출처: 대법원
판결문. 피고인 D가 이찬희이다.
[5]
육군교도소에서 같은 방 수용자들에게 가혹행위를 해 징역 3년을 추가로 선고받았으나, 파기환송심 고등군사법원에서는 28보병사단 사건과 통합심리했다.
[6]
2054년
4월 8일 만기출소 예정. 2016년 6월 3일 파기환송심 고등군사법원 선고, 2016년 8월 25일 대법원 확정. 대한민국에서 징역 40년 이상을 선고받은 몇 안되는 범죄자 중 하나가 되었다. 2014년 10월 30일 열린 1심에서는 무려 45년이 나왔었는데, 이는 당시 최장기 유기징역 형기였다. 물론 현재는
그 이상의 형기도 나왔다.
[7]
의무병은
간호학과 재학생이나 보건 계열 재학생들을 우선 선발하지만 의무대에 배치되는 운전병은 전공과 상관이 없기 때문에 이찬희가 의무대 운전병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8]
허언증과 허세가 심한 사람들은 자기
방어기제 수단으로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 앞에서 존중받고 싶고 타인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고 싶은데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을 때 허언증과 허세를 심하게 부린다.
[9]
2012년이면 그의 동갑내기들은 거진 예비역 1~3년차다. 같은 나이에 간부로 갔으면 장교는
중위, 부사관은
하사 ~
중사이다.
[10]
손가락 골절 사실을 알고도 오히려 왜 빨리 말 안 했냐고 갈궜다고 한다.
[11]
앰뷸런스 운전병은 상시 운행대기를 하느라 군생활 내내 각종 작업에 동원되지 않는 1호차 운전병 급은 아니지만, 각종 훈련(유격, 행군등)에 차량 주위에서 운행 대기를 해야하는 특성상 상당한 꿀보직이다. 이는 군생활에 적응을 잘 못해 문제를 일으키는것을 꺼리는 군대의 특성상 나름 편한 보직을 주려하는 특성이다. 이는 수송부 내에서 꿀보직 하나를 굴러들어온 돌이 집어갔다는것에 대한 상당한 불만을 만들수 있다.
[12]
육사 출신 소위/중위는 1년 복무하면 무조건 전출한다. 주로
신임장교 지휘참모과정(소위) →
소대장(소위) → (전출) →
참모(중위) → (전출) → 정규 4년제 대학교 위탁 교육(중위) →
대위 지휘참모과정(대위) →
중대장(대위) 이 루트를 탄다.
[13]
1호차를 모는 선임을 보고 운전 실력이
쓰레기라는 소리를 했다.
[14]
자신이 직접 폭행하지는 않았던 의무반 분대장 하 병장에게도 "말로만 하니까 애들이 이딴 식이지"라며 무시하면서 폭행에 가담하도록 유도했다.
[15]
피해자의 목을 조르기, 1.5L짜리 음료수 병으로 때리기, 볼펜으로 찌르기, 수감자 3명에게
옷을 다 벗긴 채 화장실에 무릎을 꿇게 하고 소변을 보는 행위, 섬유유연제를 입에다 대고 먹으라며 뿌리는 행위 등. 참고로 이거 윤 일병한테도 그대로 혹은 거의 엇비슷하게 하였던 짓들이다.
[16]
자기
음경을 보여주며 성희롱을 했고, 잘 때 옆에 와서 만져 달라고 강요하기도 하였다.
[17]
형량부심은 민간 교도소에서도 흔하다.
조폭 방장들이 왜 사형수, 무기수, 10년 이상 장기수들은 터치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자. 갑질도 잃을 것이 있는 사람 상대로나 가능한 거다.
[18]
사건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예전부터 아버지가 조폭이라는 허세를 계속 부려 왔다.
[19]
실제로 1심에서 45년을 선고받았고 2심 재판 중이었으니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20]
사실 사식을 몰래 반입해 먹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교도소 환경이 그리 좋지 않고 음식의 다양성도 제한되기에 이런 위반은 생각보다 흔한 편이고, 특히 장기수들이 신경쓰는 일은 거의 없다. 어차피 인생 끝장난 장기수가 교도소 규율을 얌전히 따를 거라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다.
[21]
출처:
SBS 추가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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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상 군인에 대한
사형은
총살형밖에 없으며 사형수는 원칙적으로 미결수 신분이라는 점, 군형법은 사형 집행은 소속 군 참모총장이 지정한 장소에서 군인의 전통적인 사형 방법인 총살형을 집행하는 군형법 3조 조항 때문에 군인 신분의 사형수는 병이든 간부든 해당 군인의 신분을 막론하고
국군교도소에 수감한다.
[23]
공범이었던 후임병들은
2021년, 이들과 함께 가혹행위에 동조했던 하사는
2019년에 이미 출소한 것이 알려졌다. 이로서 이찬희만 아직 죄수 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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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출소한 후임들은 이찬희보다 죄질이 상대적으로 약한 종범이었기 때문에 20대 후반에 출소한 후 직장 내부 여건과는 무관하게 어떻게든 취업에 성공하면서 죗값을 치르고 뒤늦게나마 사회로 복귀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찬희는 본인의 죄질, 출소 시점의 나이 등을 고려하면 이럴 기회마저도 없을것이다. 아니 그전에 아예 본인 잘못에 대해서 일말의 반성도 없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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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도 싸움 잘 하는 한 다이한테 당하고, 허 기에 의해 배 터질 때까지 냉동만두, 초코파이로 식고문도 당하고, 김 호모에 의해 후장에 안티푸라민도 발렸고, 심지어는 김 찔뿡에 의해 그가 싼 인분까지도 먹었다. 작중에는 만신창이가 된 이찬히 병장의 모습만 나왔지만, 아마 이찬희가 실제로 저지른 짓을 생각해 보면 제이와 12제자들의 성격상 이찬히에게 복합적으로 린치를 가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허기가 냉동만두를 전자레인지에 안 돌린 상태로 무더기로 퍼먹여서 입 안이 긁히게 만들고, 이찬히가 난리를 치자 한다이가 훌륭한 대화수단으로 입을 다물게 만든 뒤에, 정신을 잃은 이찬히의 후장에 김 호모가 안티푸라민을 발라 고문하고 그 고통으로 이찬히가 깨어나자마자 한다이의 구타로 다시 입을 다물게 한 뒤 허기가 이찬히의 입에 초코파이를 무진장 우겨넣었을 것이다. 김 찔뿡의 인분테러 역시 한 다이가 이찬히를 밟아서 얼굴을 인분에 박았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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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제이의 말이 압권인게, 살려달라는 말에 국군교도소도 군의 일부이니 다나까로 대답하라 말하고 이에 이찬히가 살려주시지 말입니다..라고 하자 조까라고 말하고 바로 죽인다. 제이도 자기 말대로 '까'를 붙인 말을 하면서 그의 머리를 박살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