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 전 이름이 이영재였던 LG 트윈스 소속의 야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이우찬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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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심판위원 2025 시즌 심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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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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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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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6번 | |||||||||||||||||||||||||||||||||||||||||||||||||||||||||||||||||||||||||||||||||||||||||||||||||||||
오명록 (1989~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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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1991~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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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림 (1995.5.10.~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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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KBO 리그 심판위원 No.12 | |
이영재 李咏宰 | Lee Youngjae |
|
출생 | 1968년 9월 2일 ([age(1968-09-02)]세) |
대구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경북고 - 동국대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1년 1차 지명 ( 삼성) |
소속팀 | 삼성 라이온즈 (1991~1994) |
경력 | KBO 심판위원 (1996~) |
[clearfix]
1. 개요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포수, 현 KBO 심판위원.2. 선수 경력
경북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1년 이만수를 이을 삼성의 차세대 포수 재목으로 평가받으며 1차 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그러나 1차 지명자임에도 이미 이만수[1]와 박정환 등 실력있는 선배 포수들이 즐비한 탓에 통산 1군 출장이 32경기에 불과했을 정도로 선수 시절 경력은 시망(…). 1992년 3월 17일 시범경기 OB전에서 루킹 삼진 처리됐어야 할 카운트에서 박찬황 주심의 오심으로 스트라이크 투가 되고 안타를 쳐낸다(...). 1993년 4월 17일에는 통산 2번째 끝내기 패스트볼을 범해 KBO 리그 기록사에 이름을 남겼다.또, 현역 시절 도루 저지없이 10도루 허용을 기록하며 통산 도루 저지율이 0이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1 | 삼성 | 1 | 1 | .000 | 0 | 0 | 0 | 0 | 1 | 0 | 0 | 0 | .000 | .000 |
1992 | 3 | 3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000 | .000 | |
1993 | 28 | 13 | .154 | 2 | 0 | 0 | 0 | 0 | 0 | 0 | 0 | .154 | .154 | |
1994 | 1군 기록 없음 | |||||||||||||
KBO 통산 (3시즌) |
32 | 17 | .118 | 2 | 0 | 0 | 0 | 1 | 0 | 0 | 0 | .118 | .118 |
3. 심판 경력
결국 4년의 짧은 선수 생활을 뒤로 하고 1994년 은퇴를 선언한 뒤 1996년부터 KBO 심판을 지원해 합격하여 현재까지 한국야구위원회 소속 심판으로 활동 중이다. 2009년, 2017년 최고 심판상을 받았으며 2013년 1,500경기 출전 기록을 달성했다.포수 출신으로 스트라이크-볼 판정에선 상당히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예전의 평가인지 나중에는 빅게임마다 태평양존, 일관성 부족한 스트/볼 판정 때문에 논란이 많이 되었다. 타자와 포수 사이에 자리를 잡기 때문에 타자 바깥쪽이 상대적으로 후한 편.
1999년 5월 21일 한화와 삼성의 대전 경기에서 구대성의 퇴장 이후 한화 이희수 감독으로부터 뺨을 맞은 바 있다.[2] 이때 이빨이 나가고 턱뼈도 금가는 중상을 입었다. 아이러니하게 한화는 이 사건을 계기로 뭉쳐 그해 우승을 거둔다.
2005년 4월 22일 9회초 김재호의 타석에서 2스트라이크 3볼 카운트에서 볼이 들어왔지만 볼로 인정은 했는데 2-4 카운트에서 볼넷으로 출루시키질 않았다. 거기다 김재호는 그 카운트를 깔고 우전 안타를 쳐내게 된다.[3] 이로 인해 20만원의 벌금과 엄중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2007년 안경현, 봉중근 벤치클리어링 때 당시 주심이었다.
2023년 4월 7일 사직 kt wiz vs 롯데 자이언츠 경기에서 주자 1,3루 상황, 내야에서 심판에 맞은 타구에 대한 오심을 저질렀다. 원래는 내야수 앞에서 심판이 타구에 맞았을 경우 야구규칙 5.06(c) 6항[4]에 따라 타자는 내야안타로 출루하고, 타자의 진루로 진루 의무가 생기는 1루 주자의 2루 진루만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3루까지 진루했던 1루주자만 2루로 귀루시키고, 홈인한 3루주자의 득점을 인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기 도중 KBO는 오심을 인정했고, 경기 직후에도 본인이 오심임을 인정했지만 롯데 벤치에서 항의가 없었기 때문에 득점을 인정했다는 인터뷰로 공분을 샀고, 결국 다음날 벌금 100만원과 무기한 2군 강등 징계를 받았다.[5]
5월 2일, 3주만에 징계를 마치고 1군에 복귀하였다.
4. 관련 문서
[1]
이영재가 입단한 1991년 0.317의 타율로 리그 5위를 차지한 것부터 시작해서 1994년까지 꾸준히 1군 경기에 출장하여 녹슬지 않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다만 이 시기부터 수비력 하락이 시작되던 때라 삼성은 포수를 닥치고 모으려고 했으나, 죄다 실패하고 FA로 영입한 김동수마저 폭망하며 진갑용 전까지 삼성은 포수난에 시달렸다.
[2]
이희수 감독이 야구공을 손에 쥔 상태로 후려쳤다.
[3]
재미있는 점은 볼카운트를 착각한 오심이 모두 이영재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은 타자로 한 번은 주심으로.
[4]
내야수(투수 포함)에게 닿지 않은 페어 볼이 페어지역에서 주자 또는 심판원에게 맞았을 경우 또는 내야수(투수 제외)를 통과하지 않은 페어 볼이 심판원에게 맞았을 경우 타자가 주자가 됨으로써 베이스를 비워줘야 하는 각 주자는 진루한다.
[5]
같은 경기 주심 장준영, 1루심 김익수, 3루심 김정국, 대기심 윤상원 심판은 강등되지 않고 경고와 벌금 100만원 징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