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6 10:54:50

무와히드 왕조

알모아데 왕조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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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무와히둔 칼리파국
الموحدون
파일:무와히드.png
국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0px-Almohads1200.png
무와히드 왕조의 강역
존속 기간 1147년 ~ 1269년
위치 마그레브 이베리아
수도 틴멜 (1121 ~ 1147년)
마라케시 (~ 1269년)
안달루스 총독부 세비야 (1147 ~ 1162년)
코르도바 (1162년 ~ 1163년)
세비야 (1163 ~ 1248년)
언어 아랍어, 베르베르어
종교 수니 이슬람
성립 이전 무라비트 왕조
함마드 왕조
2차 타이파 시대의 토후국들
멸망 이후 마린 왕조
카스티야 왕국
아라곤 왕국
포르투갈 왕국
레온 왕국
하프스 왕조
그라나다 아미르국
틀렘센 왕국
3차 타이파 시대의 토후국들 등

1. 개요2. 기원 및 형성3. 전성기4.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와 쇠퇴5. 기독교 세력의 역습6. 멸망7. 특징과 의의8. 역대 칼리파

[clearfix]

1. 개요

아랍어: الموحدون [1]
베르베르어: ⵉⵎⵡⴻⵃⵃⴷⴻⵏ Imweḥḥden
스페인어: Los almohades[2]
영어: Almohad Dynasty

1120년 모로코의 아틀라스 산맥 지역에서 발흥하여 1269년 멸망한 베르베르인 왕조. 당시 마그레브와 안달루스[3]를 지배하던 무라비트 왕조를 무너뜨리고 전성기를 맞았으며, 알 안달루스에서 리비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장악하였다. 북아프리카의 패권을 차지한 뒤에는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하여 기독교 국가들과 싸워 이겼으나, 위기감을 느낀 기독교 국가들과의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참패한 이후 이베리아에서의 세력이 급속히 축소되었다. 그 후 기독교 국가들의 본격적인 침입 마린 왕조를 위시한 휘하 베르베르 부족들의 반란에 직면하여 빠르게 해체되었다. 그래도 무라비트 왕조보다는 오래 버텼다

최근에는 아랍어 표기를 따라 무와히드 왕조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영어 혹은 스페인어 표기를 따라 알모하드 왕조, 혹은 알모아데 왕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2. 기원 및 형성

무와히드 왕조의 기원은 무라비트 왕조와 마찬가지로 광신적인 종교 조직이었다. 아틀라스 산맥 주변 지역의 베르베르 부족집단인 마스무다족 출신의 이븐 투마르트가 그 창시자였는데, 젊은 나이에 코르도바, 메카, 바그다드 등을 거치며 신학을 공부한 그는 주위 무슬림들의 종교적 나태함에 분노했다. 28살의 나이에 모로코로 돌아온 이븐 투마르트는 매우 엄격한 종교적 강령을 만들었는데, (한발리 파와 유사하게) 꾸란에서 금지한 모든 것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금지하는 한편 신의 다양한 성격을 모두 부정하고 오직 한 가지의 신격만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알 무와히둔, 즉 "신의 유일성을 믿는 자들"(Unitarians/Monotheists)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꼴통스러운 엄격한 강령을 만든 이븐 투마르트는 1118년 마흐디(구세주)를 자처하고, 여러 도시들을 돌며 설교를 하고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설교의 내용은 지배층인 무라비트 왕조 세력의 종교적 나태함에 대한 비난과 자신의 교조적인 강령에 따른 엄격한 종교적 개혁을 실행할 것 등이었다. 그를 따르는 사람이 늘어나자 당연히 무라비트 왕조 측의 탄압이 뒤따랐고, 이에 이븐 투마르트는 1120년경에 동족인 마스무다 집단의 본거지 아틀라스 산맥의 도시 틴멜(Tinmel)에 자리를 잡았다.

1130년대 전까지 무와히드 세력은 아틀라스 산맥에 자리 잡아 무라비트 왕조를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는것에 그쳤으나, 1130년대 초부터 무와히드 왕조는 마침내 산맥 너머에서의 첫 번째 대규모 공격을 위해 산맥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기독교 세력에 의해 알 안달루스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무라비트 왕조에게 그것은 재앙이었다. 압드 알 무민은 무라비트 왕조의 병력을 쓸어버리고, 마라케시까지 그들을 추격하여 마라케시를 포위하였다. 1130년 4월에 무와히드 왕조는 알모하이라 전투에서 무라비트 왕조의 병력을 참패시켰다. 무라비트 왕조의 군대는 철저하게 대패했고,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무라비트 왕조의 고위 관료들이 절반 이상 전사했고, 생존자들은 겨우 겨우 돌아갈수 있었다.

이븐 투마르트는 1130년 8월에 사망하였다. 무와히드 왕조가 지도자의 죽음 이후에도 즉각적으로 붕괴되지 않았다는 것은 이븐 투마르트가 틴멜에서 쌓아올린 세심한 조직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후 잠깐의 후계다툼 이후 알제리 출신의 제나타 베르베르인이였던 압드 알 무민이 후계자가 되었다. 압드 알 무민은 외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무와히드 왕조를 다시 단합시켰다.

3. 전성기

그 후 압드 알 무민은 뛰어난 능력으로 1147년 무라비트 왕조를 완전히 멸망시켰으며, 1149년 칼리파를 칭하고 튀니지와 리비아까지 영향력을 넓혀 마그레브 전체가 무와히드 왕조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무라비트 왕조가 멸망하고 또 다시 등장한 안달루스의 타이파들 역시 너무나도 강해진 무와히드 왕조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무라비트 왕조와는 다르게 무와히드 왕조는 후계자들 또한 능력이 뛰어났다. 압드 알 무민의 뒤를 이은 아부 야쿠브 유수프 1세는 알 안달루스를 정복하여 수도를 세비야로 옮기고,[4] 그곳에 웅장한 건축물들을 세웠다.

1184년 유수프 1세가 기독교 군대와 싸우던 중 전사하자 그 뒤를 이은 아들 야쿠브 알 만수르는 부친의 복수를 천명하며 재차 이베리아로 침입하였다. "승리자"를 의미하는 그의 칭호 "알 만수르"는 1195년 카스티야의 왕 알폰소 8세를 알라르코스 전투에서 격파한 뒤 얻은 것이다. 유수프 1세와 야쿠브 알 만수르는 이베리아로 쳐들어올 때마다 압도적인 물량을 이끌고 와서 기독교 군대를 쫓아내고 여러 도시와 마을들을 점령했으나, 매번 오래 머무르지 않고 수도인 마라케시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이에 따라 칼리파가 이베리아로 건너가면 북아프리카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북아프리카로 돌아오면 기독교 국가들이 쳐들어오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나마 야쿠브 알 만수르는 기독교 군대를 크게 격파하여 그 세력을 한풀 꺾었지만, 기독교 국가들을 완전히 격멸하지는 못했다. 반면 기독교 국가들은 오히려 무와히드 왕조라는 거대한 적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오랜 기간 자신들의 발목을 잡아왔던 서로간의 반목을 잠재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4.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와 쇠퇴

1199년 야쿠브 알 만수르의 사후 뒤를 이은 무함마드 알 나시르 역시 처음에는 압도적인 물량을 바탕으로 기독교 국가들과의 싸움에서 뒤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211년 이베리아를 공격하기 위해 역대 최대의 군대를 이끌고 왔던 알 나시르는 1212년 나바스 데 톨로사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했다. 숫적으로 크게 열세였지만 더 중무장했던 기독교 군대는 지형을 이용한 기습 공격을 통해 단기간에 칼리파의 지휘부까지 돌파하는 데 성공했고, 버티다 못한 칼리파 알 나시르가 도주하는 순간 무와히드 왕조의 군대와 패권도 함께 무너져내렸다. 1213년에 사망한 알 나시르는 고작 열 살인 어린 아들을 차기 칼리프 유수프 2세 알 무스탄시르로 임명했다. 무와히드 왕조의 관료들은 고령의 가족 구성원, 궁정 관료, 주요 귀족들을 중심으로 과두 정치를 벌여 어린 칼리파의 통치기를 효과적으로 넘기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던 1224년 유수프 2세가 후계자 없이 죽었고, 와지르였던 우트만 이븐 잠이 이끄는 마라케시의 궁정 관료들은 그의 나이든 외할아버지인 압드 알-와히드 1세(알-마클루)를 새로운 칼리파로 세웠으나, 이는 알 안달루스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알 나시르의 형제들을 분노하게 하였다. 결국 알 나시르의 형제들은 칼리파의 권위에 도전하게 되었고, 칼리파를 칭했다. 이 쿠데타를 기점으로 무와히드 왕조는 본격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했다. 특히 1229년, 이드리스 알 마문이 또다시 안달루스 파벌 및 카스타야측 용병과 함께 마라케쉬를 점령했을 때에 백명이 넘는 기존 셰이크 (부족장)들을 학살하고 카스바 모스크에서 이븐 투마르트의 교리를 부정하면서 무와히드 왕조는 창건 이래 이어지던 핵심 지지 기반 및 명분 (정체성)을 모두 상실하였다. 안달루스 왕공들이 집권을 위해 현지 병력을 대부분 모로코로 보내어 소진시킨 것도 안달루스가 빠르게 기독교 세력에게 잠식된 원인이 되었다.

5. 기독교 세력의 역습

한편 무와히드 왕조가 내전에 휩싸인 동안 힘의 공백을 감지한 레온 왕국의 알폰소 9세와 포르투갈 왕국의 산초 2세등은 1225년에 무와히드 왕조의 알 안달루스 영토를 연이어 침공해왔다. 무와히드 왕조는 이를 막을 여력이 없었고, 숫적에서 압도적인 열세였던 알 안달루스의 도시들이 공격을 받자 곧바로 항복한 덕분에 1225년 말에는 이미 포르투갈의 군대가 세비야까지 도달했다. 세비야는 그래도 알 안달루스 무슬림들의 유서 깊은 대도시였기에 민병대를 조직하여 맞서 싸웠으나, 결과는 대학살이였다. 포르투갈군은 무장도 제대로 하지않은 민병대를 손쉽게 압살하였고, 결국 수만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자 알 안달루스의 도시들도 무와히드 왕조를 믿지 않게 되었다. 포르투갈 왕국 레온 왕국은 게속해서 이베리아 반도 내의 무와히드 왕조의 영토를 조금씩 빼앗았고, 무와히드 왕조가 알 안달루스를 지켜내지 못하자 분노한 민중들이 알 안달루스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결국 1228년 말에 이르면 사실상 알 안달루스 대부분은 무와히드 왕조의 영향력에서 벗어났고, 다시 타이파 시대가 시작되었다.

알 안달루스의 무와히드군 역시 이를 지켜보기만 했던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230년 알랑게 전투에서 완패하여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알 안달루스 총독부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이미 궤멸된 알 안달루스군으로는 무리였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최후의 이슬람 도시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와히드 왕조에게 도움을 청하였으나, 무와히드 왕조는 이베리아로 돌아오지 못했다. 안달루스 각지의 타이파들은 무와히드 왕조의 도움 없이는 기독교 세력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1228년부터 1248년까지 기독교의 레콩키스타는 전례없는 엄청난 진전을 보였는데, 1236년에는 마침내 코르도바가 함락되었다.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디난트 3세가 이끄는 군대가 1248년 12월 22일에 세비야에 입성하면서 무와히드 왕조 알 안달루스 지배의 종식을 알렸다.

1228년에서 1248년까지의 크나큰 기독교 국가들의 진격 이후 그라나다에서 나스르 왕조가 그라나다 아미르국을 세워 알 안달루스의 명맥을 이어나갔지만, 사실상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속국 신세였다. 일부 도시들은 지방영주 타이파의 아래에서 몇 년 더 독립해있었으나 대부분은 1260년대까지 합병되었다. 결국 그라나다만이 알 안달루스의 마지막 이슬람 국가로서 250여년 동안 더 독립 국가로서 지내게 되었다. 다만 그라나다 아미르국이 남은 덕분에 명목상으로만 기독교 세력의 레콩키스타 종료는 200년 더 미뤄지게 된다. 물론 그라나다 아미르국 하나만 있었다고 레콩키스타 종료가 미뤄진 것은 아니었다. 바로 무와히드 왕조가 망했다고 이슬람 세력이 알 안달루스를 포기한 것이 아니고 나름의 반격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무와히드 칼리프국을 대체한 마린 왕조가 그 주인공. 마린 왕조는 무와히드 칼리프국이 망한 이후인 1275년 카스티야로부터 알 헤시라스 지방을 다시 빼앗아왔고 1310년에 행해진 카스티야의 공세를 격파했으며 뒤를 이어 알메리아에 행해진 아라곤의 공세 역시 격퇴해내는 등 기독교 국가들의 레콩키스타 방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그 결과 기독교 국가들은 1340년에 마린 왕조를 격퇴 할 때까지 레콩키스타에서 그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명목상의 이유뿐이 아니라 마린 왕조로 대표되는 이슬람 측의 반격이 나름 성공을 거두고 있었던 것도 레콩키스타 종료가 미뤄지는데 한 몫을 했던 것이다.

6. 멸망

한편 아프리카에서도 무와히드 왕조의 파멸을 틈타 휘하 부족들의 반란이 빈발했다. 무라비트 왕조에서 무와히드 왕조로 교체될 때처럼 강력한 구심점과 추진력을 가진 군사 교단 집단 따위가 출현하지는 않았으므로 무와히드 왕조는 나름 오래 저항했지만, 영토의 상실을 막을 수는 없었다. 13세기 중엽까지 무와히드 왕조는 하프스 왕조, 자얀 왕조 등에 의해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를 상실하고 모로코로 밀려났다. 반란 세력 중 가장 강력했던 것은 마린 부족(Banu Marin)으로, 1268년에 이르러 무와히드 왕조의 마지막 칼리파인 이드리스 알-와티크를 공격하였다. 1269년에 마라케시가 함락될 때, 이드리스 알-와티크는 노예에게 살해당했다(...) 이렇게 마지막 칼리파가 죽은 뒤 모로코는 마린 왕조의 땅이 되었다. 튀니지 하프스 왕조, 알제리 자얀 왕조가 각각 차지했다.

7. 특징과 의의

무와히드 왕조는 무라비트 왕조와 마찬가지로 엄격하고 교조적인 교단 조직이 군사 조직을 갖추어 국가로 발전했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그 종교적 광신은 무라비트 왕조보다 한 술 더 떴던 모양인데, 예컨대 압드 알 무민은 1151년 튀니지를 정복한 이후 유대인 기독교도들에게 "이슬람과 죽음 중 한 가지를 택하라"고 강요했다. 한 손엔 칼 한 손엔 코란 아랍인 베르베르인을 데려다 놓고 서로의 문화 중 어느 쪽이 우월한지를 논쟁하게 하는 "위험한 장난"까지 쳤다고 할 정도. 처음에는 종교적 광신주의로 시작했지만 세력 확장 과정에서 다소 관대해진 무라비트 왕조와는 다른 점이다. 국력이 절정에 달했던 야쿠브 알 만수르 시대에는 다소 태도가 누그러지기도 했었지만, 전체적인 추세가 변하지는 않았다. 무와히드 왕조의 박해와 학살로 많은 유대인과 기독교도가 순교했다.

이런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예전까지 무슬림들과 잘 지내던 유대인( 세파르딤)이나 기독교인( 모사라베)들이 무와히드 왕조 치하에서 국외로 이주하는 현상이 잦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원래 코르도바에 살았지만 이집트로 도망쳐서 살라흐 앗 딘의 궁정 의사가 된 유대인 학자 마이모니데스(모세 벤 마이몬) 일가이다. 하지만 마이모니데스처럼 먼 길을 떠나 상대적으로 관대한 이슬람 국가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탄압을 피해 가까운 기독교 국가들로 들어가는 이들이 훨씬 많았다. 다만 무슬림의 경우에는 어느정도 관용을 베풀었던 모양으로, 중세 이슬람 세계 최대의 철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이븐 루시드는 교조적인 신학자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여러 저작을 남기며 천수를 누렸다.

교조적인 종교 강령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무와히드 왕조는 문화, 예술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븐 투마르트 시대에는 모스크에 있는 종교 예술품들을 우상 숭배라 하여 파괴하게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대신 건축 분야에는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데, 왕조의 중심지였던 모로코와 이베리아 남부에 궁전과 사원, 학교들을 많이 지었다. 이때 건설된 모스크 중 하나가 세비야 대성당의 모체가 되었다.

8. 역대 칼리파

칼리파 이름 재위 비고
아브드 알 무민 1130 ~ 1163 칼리파를 칭함. 무라비트 왕조 멸망. 튀니지 ,알제리, 리비아 점령
아부 야쿠브 유수프 1세 1163 ~ 1184 알 안달루스 정복
야쿱 알 만수르 1184 ~ 1199 알라르코스 전투
무함마드 앗 나시르 1199 ~ 1213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완패, 무와히드 왕조 쇠퇴시작.
유수프 2세 1214 ~ 1224
아브드 알 와히드 1224 ~ 1227 쿠데타 발생으로 칼리파가 두명이 됨.
압둘라 알 아딜 1224 ~ 1227
야흐야 1227 ~ 1235
이드리스 1세 1227 ~ 1232
압둘 와히드 라시드 1232 ~ 1242 코르도바 함락
아브르 하산 사이드 1242 ~ 1248 세비야 함락
우마르 1248 ~ 1266 페스 함락
이드리스 2세 1266 ~ 1269 마라케쉬 함락, 무와히드 왕조 멸망 (-> 마린 왕조)

[1] 알 무와히둔 [2] 스페인어에서는 아랍어 정관사 al까지도 고유명사의 일부로 간주하고 그 앞에 다시 정관사를 붙인다. 스페인어의 아랍어 유래 단어들은 이러한 경우가 매우 많은데, 이를테면 el arroz(쌀) 같은 단어들이 있다. 원형은 ar-ruz. [3] 이슬람 치하의 이베리아 남부 [4] 그러나 얼마 안 가 다시 마라케시로 옮긴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