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09:50:23

무함마드 앗 나시르

무와히드 왕조의 칼리파
3대 야쿱 알 만수르 4대 무함마드 앗 나시르 5대 유수프 2세

الناصر لدين الله محمد بن المنصور
앗 나시르 리딘 알라 무함마드 이븐 알 만수르[1]
생몰기간: 1182년 ~ 1213년 12월 25일
재위기간: 1199년 ~ 1213년 12월 25일

1. 개요2. 치세
2.1. 바누 가니야 격파2.2. 안달루스 원정과 실패
3. 여담

1. 개요

무와히드 왕조의 제4대 칼리파. 야쿱 알 만수르의 아들. 기독교도 측 기록에는 칼리파를 의미하는 '아미르 알 무으미닌'의 몬데그린인 '미라마몰린'으로 기록되었다. 치세 초반에 앗 나시르는 선대부터 제국을 괴롭히던 무라비트 왕조의 잔당 (바누 가니야)을 격파하고 발레아레스 제도와 이프리키야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하는 등 군사적 치적을 쌓았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선대를 본받아 안달루스로 원정하여 살바티에라 함락하는 등 위업을 떨쳤지만, 1212년 나바스 데 톨로사 전투에서 기독교 연합군에 대패하고 라바트로 철수하여 얼마 후 사망하였다. 그의 죽음과 어린 아들 유수프 2세의 죽음과 함께 무와히드 조는 급속도로 분열되며 쇠퇴하였고, 레콘키스타 전쟁은 기독교 국가들로 완전히 기울게 된다.

2. 치세

1199년 1월, 부친 야쿱이 사망하자 17세의 나이로 계승하였다. 당시 무와히드 조는 표면상으론 레콘키스타를 저지시킨 전성기로 보였지만, 1195년에 이미 마요르카 튀니지 일대가 바누 가니야에게 장악되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2.1. 바누 가니야 격파

앗 나시르의 즉위 직후인 1200년에는 메노르카 마저 상실하였다. 1203년, 반격에 나선 앗 나시르는 2만 대군을 파견해 마요르카와 메노르카 모두를 점령하며 바누 가니야의 본거지를 장악하였다. 하지만 이프리키야의 바누 가니야 지도자 야흐야 빈 이샤크는 같은해 튀니스를 함락하며 건재함을 과시하였고, 무와히드 조는 콩스탕틴 이동 지역을 상실하였다. 1204년, 앗 나시르는 대군을 편성하여 튀니지로 친정하였고 튀니스를 포기하고 도주하던 야흐야를 테브자 전투에서 격파하였다. 이로써 튀니스와 알 마디야가 수복되었고, 앗 나시르는 일대의 총독으로 압둘 와히드 이븐 아비 하프스를 선임한 후 회군하였다. 앗 나시르는 후퇴 도중 츨레프에서 야흐야의 습격에 직면했으나 격퇴하였고, 그후 야흐야는 총독 압둘 와히드에게 연거푸 패배하며 점차 외지로 밀려났다. 배후를 안정시킨 앗 나시르는 15년 만에 안달루스 전선에 나서기로 하였다.

2.2. 안달루스 원정과 실패

1212년 앗 나시르는 톨레도 코르도바 사이에 위치한 칼라트라바 기사단의 본부인 살바티에라를 함락하였다. 이에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카스티야 국왕 알폰소 8세와 아라곤 국왕 페드로 2세를 도울 십자군을 선포, 알비 십자군을 이끌던 아르노 애므리를 교황 특사로 임명하였다. 이로써 결성된 레온-카스티야-아라곤-포르투갈 주도의 십자군은 무와히드 진영을 급습하여 대파하였다. 패전 후 라바트로 돌아온 앗 나시르는 상심에 젖은 채로 기독교도 노예 출신의 카마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10살배기 아들 유수프 2세에게 보위를 물려주고 숨을 거두었다. 이후 10년간 반세기에 걸쳐 마그레브와 안달루스에 군림하던 무와히드 조는 빠른 속도로 붕괴되어 마린 왕조로 대체되고 만다.

3. 여담

13세기 초엽 잉글랜드의 존 왕은 성직자 과세를 두고 교황 인노첸시오 3세와 대립한 끝에 파문 및 성무 금지령을 당하였다. 동시에 마그나 카르타를 내세운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프랑스 군이 영국 본토를 침공해 혼란이 이어졌다. 1230년대에 과거를 회상한 성직자 파리의 마티외는 궁지에 몰린 존이 앗 나시르에게 사절을 파견해 도움을 청하며, 그 대가로 이슬람으로 개조하고 잉글랜드를 이슬람 국가로 바꾸어 무와히드 칼리파 휘하에 두겠다고 제안했다고 기록하였다. 런던의 성직자 로버트 등이 포함된 사절단이 당도하자 앗 나시르는 존의 굴욕적인 요청에 역겨워하며 그들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역사가들은 당대의 비슷한 기록이 없다며 그 사실성을 의심하지만, 존의 잔머리와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꼭 배제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 사건이 사실이라면 16세기 말엽 엘리자베스 1세 아흐마드 알 만수르간 동맹의 시초 격이 되는 것이다.

한세기 이후의 맘루크 왕조 술탄인 앗 나시르 무함마드와 왕호가 상당히 헷갈린다... 한쪽은 칼리파, 다른 쪽은 술탄이긴 하지만


[1] 영어 : an-Nāṣir li-dīn Allah Muḥammad ibn al-Manṣū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