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드릭 바워스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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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바워스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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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26번 | ||||
클리어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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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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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2008~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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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4CED4 [[콜로라도 로키스|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31번}}} | |||||
로드리고 로페스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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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바워스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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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데일리 (2009~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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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57번 | |||||
채드 고딘 (2006~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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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바워스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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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푸엔테스 (2011~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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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드릭 바워스 Cedrick Bow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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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세드릭 제롬 바워스 Cedrick Jerome Bowers |
출생 | 1978년 2월 10일 ([age(1978-02-10)]세) |
플로리다 게인즈빌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치플랜드 고등학교 |
신체 | 185cm, 90kg[1], O형[2]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양타 |
프로 입단 | 1996년 드래프트 4라운드 (전체 124번, TB) |
소속팀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04~2005)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6) 한화 이글스 (2007) 콜로라도 로키스 (2008)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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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야구선수. 2007년 한화 이글스의 선발 투수였던 인물로,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을 거치며 MLB 사관학교로서의 한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3]2. 선수 경력
1996년 탬파베이 레이스의 드래프트 지명을 받았고, 2003년까지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하다가 2004년, 2005년에 일본프로야구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2006년에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용병 생활을 했다.2.1. 한화 이글스
그 뒤 2007년에 제이 데이비스의 노쇠화와 선발진 보강을 꾀한 한화의 구상에 의해 제이콥 크루즈와 함께 영입되어 그 한해동안 외국인으로 활동했다. KBO 등록명은 '세드릭'. 기록은 총 28경기 158.1이닝동안 11승[4] 13패에 ERA 4.15, 삼진 140개, 사사구 114개.150킬로미터대의 강속구를 보유하고 그 외 여러 종류의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었으나, 제구가 문제였다. 던지는 본인도 모르는 게 아닐까 싶은 극악한 제구 때문에 시즌 동안 리그 사사구 1위, 탈삼진 4위라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내구력 자체는 좋은 편이었음에도 이 때문에 의외로 이닝을 많이 먹진 못했고, 그래서 나온 별명이 '볼드릭', 주자를 보내고 헉헉거리는 모습을 보고 '땀드릭' 등으로 불렸다. 물론 긁히는 날은 흑현진.
그럼에도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소화하여 당시 문동환의 부상으로 구멍이 난 한화 선발진에선 없어선 안될 인물이었고, 그 해 잦은 비와 함께 한화의 아슬아슬한 중위권 사수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류현진 - 정민철 - 비 - 비 - 비, 류현진 - 정민철 - 세드릭 - 비 - 비...) 시즌이 지나면서 제구도 아주 약간 좋아져가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 간의 기록에도 제구력 점수가 바닥을 긴다.
2.2. 이후
이후 2008년에 구대성의 부상으로 인한 마무리 문제로 인해 한화와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 콜로라도 로키스에 입단했으나 2009년 재계약한지 얼마 안돼 퇴출되어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그리고 2010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했다. 한 때 그가 메이저리그에 콜업됐단 기사가 떠 화제가 됐으나, 실제로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상태. 2010년까지 메이저리그에 14번 등판하여 1패를 기록했다. 2011년 이후 종적을 알기 어렵다가 2013년 독립 리그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3. 총평
세드릭과 브래드 토마스 이후 한화 이글스에서 뽑은 용병(특히 투수용병)들이 하나같이 폭망한 때문에[5], 장단점이 뚜렷했지만 제 역할은 해줬던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몇몇 있다. 그도 그럴 게, 한화에서 10승 이상을 기록한 외국인 투수는 2014년까지 세드릭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워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 이후 8년후 2015년 미치 탈보트가 한화의 외국인 투수로서 2번째로 10승을 달성했으며 2017년 알렉시 오간도가 10승을 달성하였다. 다만 오간도의 경우 복사근 손상으로 2개월이나 이탈하며[6] 선발 로테이션에 어마어마한 구멍을 뚫어버렸고, 후반기 세부스탯이 굉장히 좋지 않은 편이라 평이 썩 좋지 않다.그리고 11년이 지나서야 키버스 샘슨이 7월 후반 11승을 달성하며 외인 최다승 타이 기록을 세웠고, 8월 1일 마침내 12승을 달성하며 세드릭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외국인 좌완 유일무이 11승 기록 역시 12년 뒤 채드 벨이 9월 23일 11승을 기록하면서 깨졌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
2007 | 한화 | 28 | 158⅓ | 11 |
13 (2위) |
0 | 0 | 0.458 | 4.15 | 143 | 7 |
114 (1위) |
140 |
81 (3위) |
73 (4위) |
1.56 | |
KBO 통산 (1시즌) |
28 | 158⅓ | 11 | 13 | 0 | 0 | 0.458 | 4.15 | 143 | 7 | 114 | 140 | 81 | 73 | 1.56 | ||
<rowcolor=#C4CED4>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이닝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ERA+ | fWAR | bWAR |
2008 | COL | 5 | 0 | 0 | 0 | 0 | 0 | 6⅔ | 13.50 | 11 | 2 | 5 | 1 | 5 | 2.400 | -0.3 | -0.6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이닝 | ERA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사구 | 탈삼진 | WHIP | ERA+ | fWAR | bWAR |
2010 | OAK | 14 | 0 | 1 | 0 | 0 | 0 | 14 | 4.50 | 12 | 4 | 6 | 2 | 18 | 1.286 | -0.1 | -0.3 |
MLB 통산 (2시즌) |
19 | 0 | 1 | 0 | 0 | 0 | 20⅔ | 7.40 | 23 | 6 | 11 | 3 | 23 | 1.286 | -0.4 | -0.9 |
5. 여담
- 외지 생활을 오래 한 탓에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담배를 피우면서 달랬다고 한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와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이케빈도 세드릭과 마찬가지로 고향 생각이 나면 담배를 피우면서 달랬다고 한다.
- 한화 역대 외국인 선수들의 계보에서 자주 보였듯이 인성이 좋은 선수였다. 자기가 망친 경기야 그렇다 쳐도, 불펜이 불지른 경기조차도 자기 탓이라며 자책하며 심지어는 살짝 울 정도였고, 공중전화에서 미국에 국제전화를 걸고 있던 도중에 어떤 팬이 사인을 요구하자 바로 전화에다 "Wait, Wait" 하고는 전혀 불쾌한 기색없이 사인을 해 주는 친절한 선수였다고 한다. 또한, 뒤에 밝혀진 바로는 그의 불안한 경기 운영 때문에 구단에서 시즌 중반이던 7월부터 대체 용병을 물색하기 시작한 것을 미국의 지인을 통해 알게 됐는데, 이에 대해 화내거나 서운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담갖지 말고 더 좋은 선수를 찾아 데려오라"고 하였는데, 이 모습을 보고 김인식 당시 감독이 기회를 더 줘 보자고 생각해 계속 기용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론 선발진의 한 자리를 맡아준 셈이니 믿음의 야구가 통한 셈이다.
6. 관련 문서
[1]
네이버 프로필 기준
[2]
#
[3]
포스팅 대박을 터뜨리고 풀타임 선발로 활약중인
류현진이 대표적이다. 세드릭의 MLB 유턴 이후
프랜시슬리 부에노,
브래드 토마스,
대나 이브랜드 등 많은 한화 출신 외국인 선수들이 MLB 복귀에 성공했다.
[4]
참고로 저게 11년 후
키버스 샘슨이 경신하기 전까지 한화의 역대 외국인투수 중 최다승이었다.
[5]
이후 2014년 현재까지 유일한 성공한 외국인 투수로
데니 바티스타를 꼽을 수 있지만, 당시 한화의 전력이 최악이었던 데다 바티스타가 선발과 구원을 오가 훌륭한 지표를 남겼다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한 자리를 쭉 맡았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야구에 만약은 없다.
[6]
비싸게 잡아온 외인
원투
펀치가 부상으로 골골대고 다른 노장 야수들마저 전염병같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드러눕느라 한화는 시즌 내내 최대 전력으로 싸우지 못했고, 결국
비밀번호 탈출에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