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8 16:26:52

범찬

범승명에서 넘어옴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

1. 개요

范粲
(202 ~ 285)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승명(承明). 연주 진류군(陳留郡) 외황현(外黃縣) 출신. 범교의 아버지, 범단의 손자.

2. 생애

고상하고 절조가 있었으며, 널리 사물을 파악하고 기억력이 좋았다. 그의 학문을 모두 본받으려 해서 멀고 가깝게 무리들이 유익한 사람이 되었으며, 성품이 조심스럽고 엄숙하지 않았지만 모두 공경했다.

위나라 때 주부에서 다투어 그를 벽소했지만 모두 가지 않았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 승낙해 치중, 별가 등을 지내고 태위연으로 벽소되었다. 나가서는 정서사마가 되었고 역임한 직위에서 모두 명성을 얻었으며, 사마의가 보정이 되자 무위태수로 옮겼다. 군에 이르자 어진 관리를 선발해 학교를 세우고 농업과 양잠을 권장했으며, 융이 침입하자 질서를 갖추어 막자 적이 함부로 침입하지 못해 서역은 통할 수 있었고 봉화가 오르는 경계가 없었다.

군은 부유해져 진기한 물품들이 모였고 범찬은 화려함과 사치를 단속하고 절제했으며, 어머니가 연로해 관직을 떠났지만 군에 도적과 오랑캐가 접근하자 다시 가서 낙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얼마 후에는 태재종사중랑이 되었고 어머니의 상을 당해 괴로워하자 효성이 있다고 칭송받았으며, 상복을 입고 입궐해 다시 태재종사중랑을 지냈다. 제왕 조방이 유폐당해 금용성으로 옮겨지자 소복을 입고 전송하자 주변에서는 애통해했다.

사마사가 보정이 되자 군의 관리가 불러 회의를 하려고 하자 범찬은 가지 않았으며, 병이 있다면서 문을 나가지 않았다. 사마소가 시중을 시키자 거짓으로 미친 척 해서 말하지 않았으며, 수레 위에서 자고 땅을 밟지 않았다. 자손들이 혼례와 출사 같은 일이 있을 경우에 은밀히 가서 의견을 물었는데, 뜻이 맞으면 안색의 변화가 없지만 맞지 않으면 잠을 설쳐 처자들이 이를 보고 뜻을 헤아렸다.

자식 3명이 학업을 포기하고 오로지 집에서 부모님만 모셨는데, 진나라가 건국되고 태시 연간에 태자중서자 손화가 천거했지만 가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2천 석의 녹봉을 주어 병을 치료하게 하고 비단 1백 필을 하사했지만 범교는 부친의 병이 중하다고 사양해 받지 않았으며, 말을 안한 지 36년이 된 84세에 수레 위에서 사망했다.